'그녀들'이 '우리들'이 될 때까지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그녀들의 점심시간>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5 20일(토) 오후 4 30분 상영 후

참석 구대희 감독,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기획전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첫 번째 작품으로 <그녀들의 점심시간>이 관객들을 만났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그녀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 영화가 가장 먼저 상영된 배경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을 앞둔 시간, 구대희 감독과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가 함께했다.



<그녀들의 점심시간> 발제문: 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접속하기  http://indiespace.kr/3434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소현): 이 영화는 가사노동을 비롯한 노동환경 속에서 여성성과 식사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어떻게 공동체적 가치를 지니며 연대의 의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이하 이지원): 이 영화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주목했다. 많은 출연자가 등장하는데 공통적으로 삶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보통 우리가 취업준비 기간을 단지 준비 혹은 허비의 시간으로만 치부하지 않나. 그러나 그런 시간들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시간들이다. 또한 육아, 가사, 돌봄 노동으로 분류되는 것들도 분명히 노동의 영역에 속하지만 ‘모성’이라는 신화 속에서 그 가치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부분들을 잘 짚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먹는’ 행위로부터의 공동체와 연대가 주는 느낌이 좋았던 영화이다. 출연자들의 식사시간에서 느껴지는 끈끈함, 힘든 일상의 시간들을 서로 견딜 수 있게끔 하는 부분들이 잘 전달된 것 같다.



안소현: 실제 이 영화는 많은 질문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의 식사를 세대별, 직업별로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구대희 감독(이하 구대희): 이 영화를 처음 기획했을 때가 벌써 2년 전이다. 당시 자취 10년 차였는데, 하려던 것들이 다 잘 안 돼서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다. 매일 밥을 챙겨먹는 것도 힘이 부치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문득 밥을 먹다가 그런 내 모습이 곧 인생으로 느껴졌다. 초라하게 자취방에서 대충 차려서는 밥상을 꺼내기도 귀찮아 바닥에 놓고 먹는 모습이 궁상맞으면서도 서글펐다. 그러던 찰나 누군가의 식사하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 혹은 삶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점심시간을 통해서 한국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안소현: 두 분 다 여성이라는 삶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계기가 궁금하다.



구대희: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에 따라 맺는 관계와 능력 발현이 달라질 것이고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들이 많다보니 그 책임감이 우리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출연자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힘 같은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지원: 여성주의 활동을 하면서 여성의 문제가 전면적 담론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가령 청년 문제가 ‘N포 세대’로 담론화될 때 여성의 입장에서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 얘기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중년층 여성 노동자들은 매우 고강도의 노동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찬값을 벌러 나왔다’는 인식 하에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 임신과 출산 이후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의 노동문제 같은 부분들이 사회적 담론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현실이 아쉬워서 활동으로 이어나가게 됐다.





안소현: 여성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지 않나.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이후 벌어진 여성들의 자발적 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스스로 목소리를 내게 됐다. <그녀들의 점심시간>은 다양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놀라운 점은 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한 기준과 영화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방점을 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구대희: 점심식사라는 행위로 한국의 다양한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전달하고자 했다. 최대한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을 다루고자 했고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기보다는 우선 인터뷰가 가능한 분들을 물색했다. 처음엔 지인들을 섭외하기도 했는데, 너무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들은 영화에 담기가 어려웠다. 여성이 많은 직업군인 식당, 환경 미화 종사자 분들을 꼭 섭외하고 싶었다. 



안소현: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식사하는 행위를 세세하게 쪼개어 보여줌으로써 그 사이 새롭게 재발견하게 되는 것들이다. 실제로 밥을 해서 먹(이)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라는 행위가 누군가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좀 더 이어가보고자 한다. 작년 페미니즘 운동을 재촉발 시키기도 한 사건이다.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명백히 드러났다. 사건의 범죄자가 ‘피해 여성이 자신을 무시해서 죽였다’라고 정확한 워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검찰은 ‘묻지마 살인’으로 한정지었다.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여성은 폭력 가까이에 놓여있는데, 언론과 사회 분위기는 이를 여성문제와 철저히 구분 짓고 있는듯하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이 가져다준 변화는 여성과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보편적으로 나아가게끔 한 점이다. 시위 현장 속 얼굴 노출의 위험 등 여러 제약적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꿋꿋이 동참했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작용했겠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불안을 느껴왔다는 것에 기반한다. 이런 목소리가 하나의 큰 움직임으로 터져 나온 데에 사회가 정상적으로 응답했다면 결코 정신질환자의 일탈로 치부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보편의 경험으로 문제의식이 터져 나온 것이라면 적어도 사회는 성실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우리 사회, 문화, 제도 등 전반에 도사린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는 단순히 성전쟁, 남녀갈등 조장 등으로만 몰아가는 점이 매우 아쉽다. 여성과 페미니즘의 이야기들을 보편의 영역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다.



관객: 먹는 행위의 양상이 세대별로 다른 것 같다. 젊은 세대는 챙겨먹는 것도 힘든 것 같은데, 또 다른 세대에서는 먹는 것이 유일한 낙으로 기능하고 대화의 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구대희: 이 영화는 큰 갈등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의 배열순서가 매우 중요했다. 처음엔 그냥 쉽게 연령별로 배열했는데, 그렇게 하니 별로 재미가 없었다. 아무리 같은 점심식사라고 해도 각각의 점심마다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나 재미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이 재밌게 느낄 수 있도록 순서를 다시 배열할 필요가 있었다. 크게 보면 연령대별로 구성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딱 그 틀에 맞춰서 구성한 것은 아니다. 사이사이 장치들을 넣으려고 고민했다. 그리고 연령대보다는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듯하다. 가령 경마장 환경 미화원 분들은 워낙 일이 고되다보니 같이 모여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자 휴식인 거다.





관객: 제작기간, 그리고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 들인 시간 등이 궁금하다.



구대희: 총 제작기간은 2년 반에서 3년 정도이다.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 제대로 갖추고 난 다음 진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고 제대로 촬영한 기간은 약 1년 반 정도였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사실 엄청 많은 장면을 찍은 다음, 그중에서 아주 예쁘고 잘 나온 것들을 뽑아서 만드는 거다. 등장한 열 분 모두 다 인간극장을 찍을 수 있을 만큼 각자의 이야기가 많은데, 어쨌든 콘셉트가 있었고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에 많이 편집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쉽다.



이지원: 영화를 만들기 전에 기획 의도 등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작업에 들어가지 않나. 계획과 작품이 얼마나 부합하게 나왔는지가 궁금하다. 촬영한 결과물이 이전 의도와 달랐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구대희: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점심시간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설득을 하는 과정이었다. 제작 지원을 받아야 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작업물의 가치를 설득시켜야만 했다. 구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에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는 다소 오글거리는 안도 나왔다. 그런데 다 엎어지고 되게 담백하게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작업물이 완성됐다. 군더더기 없이 내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원: 영화가 끝으로 가면 갈수록 점심시간이라는 게 힘이 되는 시간 혹은 즐거운 시간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희망적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데, 맞는가?



구대희: 맞다.(웃음) 모두의 삶이 녹록치 않다. 무미건조하게 살기보다는 자기만의 꿈이나 희망 등을 품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 영화 속에서 경마장 점심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반찬을 싸와서 다 같이 먹고 당번으로 돌아가며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되게 보기 좋았다.



안소현: 개인적 성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지만, 여럿이 같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 매우 이상적이지 않았나 한다. 요즘은 SNS 상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모임을 찾는 경우도 있다.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닌 소통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식사가 우리 사회의 매우 중요한 담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대와 공동체의 가치는 여성으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로 확장해 가져가야 할 것이기도 하다.





관객: 촬영의 원칙, 현장에서 지키고자 했던 윤리, 찍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더 듣고 싶다. 그리고 영화를 희망적으로 보았다는 활동가님께 질문이 있다. 요즘 현실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데 활동의 동력을 무엇에서 찾고 있는지 궁금하다.



구대희: 몇 번이고 촬영이 가능한 소재다. 한 번에 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몇 번에 거쳐서 촬영을 했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촬영을 하니 같이 식사를 할 수 없었는데, 항상 같이 먹자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 노인정 촬영이 특히 그랬다.



이지원: 활동의 동력은 활동을 계속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인 듯하다. 돈도 시간도 많이 모자라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이 동력으로 작용한다.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롤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남자선배와 남자교수가 전부였다.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을 접하기 어려웠는데 이 활동을 하면서 많이 만나고 있다. 자극이 된다.



안소현: 이 작품은 대상들과의 거리감이 존재한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대상들과 가까워지려는 강박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관계를 맺지 않고 진행을 이어나간 배경이 궁금하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도 듣고 싶다.



구대희: 치밀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웃음) 사람 자체가 아직은 많이 조심스러운 편이다. 카메라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평생 불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출연자에게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실 이 영화는 그들이 소탈했던 탓에 완성될 수 있었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기본적으로 나를 찍지 않는 이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갖고 그 사람의 속마음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경지를 욕심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다가가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고 성격상 어려워하는 편이기도 하다. 출연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아직은 더 배워야 할 것도 있어서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은 미뤄두고 있다. 이제 막 이 영화에서 손을 뗀 기분이라 앞으로 차근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안소현: 인물들과의 거리감이 꾸준히 견지된 것이 이 영화를 빛나게 한 점이라 생각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단면이 영화에서 툭툭 튀어 오를 때 한 개인의 삶이 아닌 우리의 모습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활동가님의 계획도 묻고 싶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는 이제 일 년 정도 지났는데, 초기 멤버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앞으로는 퀴어-페미니즘 활동에 집중해 활동할 수 있도록 이름도 바꾸고 채비를 할 예정이다. 많이들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다양한 여성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점심시간을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구대희 감독의 말이 인상 깊다. 흔히 영화는 항상 특별한 것들, 특별한 이야기들, 특별한 사람들만을 담는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도리어 종종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들이 아닐까. 점심시간이라는 한 단면을 통해 마주한 그녀들의 삶은 혹여 전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면 스크린 위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게 아닐 지도 모른다. 역으로 ‘페미니즘’을 생소하게 느끼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극히 일상적인 여성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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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접속하기

<그녀들의 점심시간>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 이지원


영화 <그녀들의 점심시간>에는 총 열 명의 여성들이 출연한다. 카메라는 별다른 사건이나 반전 없이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취업준비에 지쳐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모습, 직장에서 상사에게 지적받는 모습, 사람 없는 경로당에 누워 잠든 모습……. 우리는 연령도, 직업군도 모두 다른 그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포착해낸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는 은밀하게 접속된다.

직업이 배우인 ‘그녀’는 임신 이후 난생처음으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삶에서 일이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미뤄왔던 임신을 한 그녀는 때로는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기도 했던 임신의 경험이 배우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녀에게 임신은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뤄왔던 것이지만 지금은 어머니로서의 행복과 배우로서의 자원, 양쪽 모두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어머니로서의 행복 이면에 있는 육아노동을 동시에 조명한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의 하루는 아이들을 깨워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빵으로 늦은 아침을 때우다가도 아이가 깨어 엄마를 찾으면 먹던 빵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달려가 아이를 얼러 안아야 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난 뒤 식사를 준비할 때에도, 아이들에게 밥을 다 먹이고 본인의 식사를 챙길 때에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다. 보기만 해도 엄청난 강도의 노동임을 짐작할 수 있으나, 그녀의 정신없는 식사시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부터 질문해보아야 한다.

사회는 ‘그녀’의 하루에 노동이 있다고 이야기할 것인가? 육아는 어째서 ‘그녀’의 몫인가? ‘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노동임을 주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보자. 모성애 없는 여자, 비정한 모정의 낙인이 찍힐 것이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집에서 놀고 먹으며, 떼로 몰려다니며 카페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고 아이 단속도 하지 않는 엄마”를 지칭하는 ‘맘충’ 서사가 대중화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한국사회에서의 모성신화는 여성의 영역을 가정으로 규정하고, ‘육아’라는 엄청난 노동을 어머니로서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으로 포장해왔다. 이는 비단 육아 뿐 아니라 가사노동에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빛 좋은 개살구”, 골드미스인 ‘그녀’가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다고 느끼면서도 “가정에서의 ‘나’가 되는 것은 밥을 차린다는 것”이라고 통찰하듯이 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밥 차리는 것’이야말로 젠더화된 노동이다. 누군가에게 식사시간은 휴식의 시간일 수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특히 여성에게는 식사시간이란 으레 노동의 시간인 것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그녀’는 타인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동안 “전쟁을 치른다.” 뒷정리까지 모두 마친 그녀는 늦은 시간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그 와중에도 손님맞이는 계속된다. 그녀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여유로운 점심시간은 사실상 그녀의 노동 위에 서있는 셈이다.

신발가게를 하는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식사할 때와 혼자 식사하는 지금을 비교하며 “그때는 반찬도 신경 써서 준비하고, 예쁘게 차려 먹”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남은 반찬으로 점심을 먹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여자는 가족을 먹이기 위해 요리”하는 것인데, 이것이 비단 그녀만의 생각인지 질문해보아야 한다.

취업준비생 ‘그녀’는 혼자 식사하는 또 다른 출연자다. PD의 꿈을 꾸고 있는 그녀는 강의를 듣는 등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되고 싶은 욕구만 남아있고, 실패한 기억 뿐”인 그녀에게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과정은 녹록치 않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돌아올지를 확신하기 어려운 채로 기약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취업준비생에게 식사다운 식사란 어쩌다 친구와 만났을 때에야 겨우 가능한 것이다. “이게 7일째 된 밥인가? 괜찮아. 먹고 소화하면 돼.” 되고 싶은 모습과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의 외로움과 불안함은 그러나 그 되고 싶은 모습이 된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의 행복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택시기사인 ‘그녀’는 “택시는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차 안에서 김밥으로 식사를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얼른 먹던 것을 멈춘다. 그러나 “운전하는 것도, 손님과 이야기 나나누는 것도,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아하는 그녀는 택시운전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여성 운전자로서 겪어야 하는 부당한 대접에도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린다.

한편, 함께하는 점심시간을 통해 노동의 고단함을 잠시 잊어내는 경우도 있다. 경마장 청소노동자인 ‘그녀들’은 돈을 잃은 경마꾼들의 예민함에 힘든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 관리자는 청소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불을 꺼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서는 맛이 없”던 밥도 “여럿이 먹으니 맛있다.”는 그녀들은 서로 반찬을 나누고, 너무 적게 먹는다며 핀잔을 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챙겨주고 의지한다. ‘식구’의 뜻이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임을 비춰봤을 때, 그녀들에게 점심시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식구인 시간이다.

경로당의 ‘그녀’ 역시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아침도 못 먹고 온” 노인들의 식사를 챙긴다. 이틀 안 나오면 궁금해서 전화를 한다는 그녀는 그 이유를 “식구니까”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경로당의 할머니들은 같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모여앉아 식재료를 다듬는다. 경로당이라는 공간에서 모두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음으로서 그들은 혼자가 아닌 그들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간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과 노동 속에서 그녀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또래 여성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하드록, 블루스록 같은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고, 누군가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저녁만이라도 맛있는 식사를 찾아 먹기도 한다. 또 함께 먹는 시간을 통해 서로에게 든든한 식구가 되는 ‘그녀들’이 있는가 하면, 고된 취업준비의 시간 속에서 간간히 친구를 만나 “밥다운 밥”을 먹는 ‘그녀’가, 자신의 일을 온 몸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그녀’가 있다.

영화는 “점심시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생활의 기본적인 영역인 식사를 조명함으로서 여성들의 삶과 노동에 진하게 접속한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점심시간”을 통해 만나는 그녀들의 삶과 노동이 각자 분리된 듯 연결되어 있고, 어쩌면 ‘그녀들’을 바라보는 ‘나’의 그것과도 닮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맛있기만 한 것은 아닌, ‘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솔하게 와 닿는다.

영화 속 ‘그녀들’, 그리고 영화 밖의 ‘그녀들’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매일 먹는 밥을 짓고, 먹고, 나누며 ‘우리’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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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클릭하면 영화별 상영일정과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7.05.18 - 05.24 인디스페이스 상영시간표

<컴, 투게더> 신동일 | 113분 | 드라마 | 15세이상관람가

<더 플랜> 최진성 | 102분 | 다큐멘터리 | 15세이상관람가

<다시, 벚꽃> 유해진 | 99분 | 다큐멘터리 | 12세이상관람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 101분 | 드라마 | 청소년관람불가

<어폴로지> 티파니 슝 | 105분 | 다큐멘터리 | 12세이상관람가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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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전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기간 2017년 5월 20일(토) - 21일(일) | 2일간

장소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람료 7,000원 (인디스페이스 후원회원 무료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신다모, 찍는페미 회원 천원 할인)

상영작 <그녀들의 점심시간>, <난잎으로 칼을 얻다>, <개의 역사>, <버블 패밀리>

주최 DMZ국제다큐영화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신나는다큐모임, 찍는페미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2017년 현재, 많은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 작품들을 제대로 볼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신진 여성 감독들의 작품은 사소한 일을 다룬다는 폄하의 시선마저 종종 받곤 합니다. 그러나 공과 사를 분리하고 여성의 삶의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편향된 시선이 아닐까요? 언제나 여성 감독들의 다큐멘터리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을 섬세한 결로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의 감수성에 따른 시선으로 사회를 해석해왔습니다. DMZ국제다큐영화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신나는다큐모임, 찍는페미는 이번 기획전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사회의 다양한 결들을 만나보고자 합니다. 또한 여성이면서 동시에 신진일 경우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을 찾기가 더 어려운 점에도 주목하고자 합니다. 기획전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는 한국 여성들이 현재 처해 있는 문제를 함께 나누고 신진으로서의 여성 감독들을 응원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상영작정보 



1. 그녀들의 점심시간 Ladies’ Lunchtime

구대희 | 2015 | 다큐멘터리 | 67



더운 날씨에 몸이 좋지 않은 경마장 미화원 숙정씨, 입맛은 없지만 오후 일정을 위해 억지로 밥을 떠 넘긴다. 여고생들은 맛없는 급식 대신 햄버거를 몰래 배달 시켜 먹으며 다이어트 이야기를 한다. 택시기사인 희숙은 차 안에서 점심으로 김밥을 먹다 손님을 발견하고 황급히 숨긴다. 

각양각색 다양한 점심의 풍경, 그 속에 담긴 여자들의 삶과 이야기. 





2. 난잎으로 칼을 얻다 The Orchid and the Sword

임경희 | 2016 | 다큐멘터리 | 79



평생을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딸 다훈은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는다. 눈이 멀어가는 아버지가 학자로서 못다한 『만주순례기』 초고를 대신 완성해달라는. 2015년 겨울, 다훈은 어쩌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될지도 모르는 원고를 들고, 복잡한 심정으로 아버지와 함께 만주로 떠난다. 여행 안에서 다훈은 아버지 대신 ‘한국독립운동사 복원’을 위한 원고를 완성해가며,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3. 개의 역사 Baek-gu

김보람 | 2017 | 다큐멘터리 | 83



마을 공터에 늙은 개 한 마리가 산다. 카메라는 그 개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저마다의 기억을 꺼내어 놓는 사람들. 기억과 현실 사이를 부유하며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4. 버블 패밀리 Family in the Bubble

마민지 | 2017 | 다큐멘터리 | 77



1980년대, 소규모 건설업, 소위 ´집장사´를 하던 나의 부모님은 도시 개발의 붐을 타고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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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 그리고 우리들의 점심시간

 SIDOF 발견과 주목 <그녀들의 점심시간> 인디토크 기


일시: 2016년 12월 20일(화)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구대희 감독

진행: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대충 차린 볼품없는 점심 밥상이 마치 자신의 인생 같았다던 구대희 감독은 이렇듯 삶이 깃든 누군가의 점심시간을 조금은 먼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12월, 올해의 ‘SIDOF 발견과 주목’ 정기상영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 <그녀들의 점심시간>과 함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이하 이): 우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이 작품을 재미있게 봤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단순히 먹는 것을 다룬 점이 좋았다. 요즘 TV 프로그램이나 온라인 매체에서 소위 ‘먹방’이라고 하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영화의 먹는 장면이나 요리하는 장면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식과 요리에 관련된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풀었다는 것이 좋았다. 역사적으로 영화에서 먹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찰리 채플린의 거의 대부분의 영화에 먹는 장면이 나온다. 예를 들어 가죽 신발을 스테이크처럼 썰어 먹는다거나 구두 끈을 스파게티처럼 먹는다.

두 번째 이유는 감독님이 젊다는 점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는 매년 신진감독들을 주목하고 있다. 젊은 감독들이 어떤 작품을 만드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떠한 경향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지 꾸준히 주목해왔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활력을 얻기도 하는데, 감독님의 작품에서도 그런 지점들을 몇 가지 발견했다. 그 중 한가지는 사실상 서로 연관이 없는 인물들이 쭉 나와서 자기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익명의 사람들을 모아서 만든 다큐멘터리는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기존 다큐멘터리는 현장 중심에 있거나 특정 공동체 중심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처럼 익명의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힘은 뭘까 궁금했다. 특히 젊은 감독, 이제 막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분들에게서 이런 느낌의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했던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2015, 박영임)도 성향은 다르지만 감독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서 인터뷰한 것이다. 이런 것이 어떤 경향성 내지는 시대적 흐름이 아닌가 싶었다.

질문을 드리겠다. 이번 영화와 전작 <어떤 둘째>(2015) 외에도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이력이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를 부탁한다.


구대희 감독(이하 구): 사실 이력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연출한 것은 <어떤 둘째>가 처음이고 방송 다큐멘터리 쪽에서 일을 했는데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좋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영화를 하게 되었다. 


이: <어떤 둘째>를 찍을 때 어머니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카메라가 필요했다는 자막이 있었다. 왜 다큐멘터리여야 했는지, 그리고 왜 카메라가 필요한지 궁금하다.


구: 처음부터 카메라를 쓸 생각은 안 했다. 그 이전에 ‘요구르트’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를 구상했다. 요구르트 아줌마를 찍고 싶었다. 그들을 보면 마음이 짠했다. 왜냐면 외할머니가 3년정도 그 일을 하셨고, 때문에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왜 외할머니에게 마음이 쓰일까 생각하다가 엄마한테 맺힌 게 많구나 느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엄마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 된다. 전작 단편을 찾아봤는데, 오늘 영화를 보니 여러 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하신 것 같다.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구: <어떤 둘째>는 혼자 뭣도 모르고 한 것이었고 이번 영화는 돈과 시간 그리고 도와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 좋아진 것 같다.


이: 이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 어떻게 이 소재를 떠올리게 되었나?


구: 2, 3년 전 여름이었다. 20살부터 서울 올라와서 오랫동안 자취를 했다. 사회 생활이 힘들고 되는 것도 없었다. 혼자서 어떻게든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정적으로 어느 날 집에서 혼자 점심을 바닥에 대충 차려놓고 먹고 있었는데, 문득 이 점심이 나의 인생 같았다. 초라하고 궁상맞고 외롭고. 점심이 누군가의 삶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본인의 이야기에서 시작이 되었는데 또래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지? 연령대를 확장한 것도 의도한 것인지 궁금하다. 


구: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결론적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나이, 직업, 상황에 상관없이 한국에 사는 여자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요리가 주제가 되는 다른 프로그램들과의 차이점은 뭘까 생각해봤다. 이 영화는 여타 프로그램들과 달리 밥 먹기의 고단함, 지겨움 같은 정서적인 결을 따라가는 작품인 것 같다. 많은 인물들을 섭외한 과정이 궁금하다. 


구: 처음에 할 수 있는 것은 지인들에게 소개를 받는 것이었다. 친구를 찍기도 했는데 어색했다. 한 다리 건너서 친구의 지인을 소개받았다. 어느 정도 촬영이 된 후에 사이사이 빠져있는 부분을 채워갔다. 최대한 인물이 중복되지 않게 담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여성이 많이 종사하고 있는 청소, 식당이라는 직업군을 꼭 담고 싶었다. 식당의 경우 직접 다니면서 섭외했다. 설움도 많이 당했지만, 꼭 담고 싶어서 어렵게 섭외를 했다. 



이: 부득이 내밀한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고 사생활과 맞닿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구: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찍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먹는 모습을 자유롭게 찍게 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막막했었다. 그런 걱정에 비해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원래 다큐멘터리는 대상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관계를 만드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개개인의 역사를 세밀하게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다양한 분들을 담을 수 있었다. 


이: 첫 번째 취업준비생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현실이 드러난다. 밥솥의 밥이 일주일이나 되었다던가 쌓여있는 설거짓감 중에 그릇 하나만 씻어서 쓰는 장면이 그랬다. 협의가 된 부분이었나?


구: 기본적으로 굉장히 털털한 분들이었다. 촬영 전 그들의 삶을 쭉 들어보고 계획을 세우고 촬영에 들어갔다.


이: 한 분당 최소 며칠 정도를 동행했나?


구: 평균적으로 2주 정도 함께했던 것 같다. 


이: 여러 인물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심식사가 있다면?


구: 사실 이 영화는 강력한 스토리나 주인공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영화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초반에 그런 틀을 잡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신발가게 분이 아는 감독님의 어머니인데, 그분의 점심을 찍고 이렇게 쭉 가면 되겠구나 감을 잡았던 것 같다.


관객: 식사라는 것이 사실 무미건조할 수도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을 어떻게 담아냈을까 궁금했다. 과하지 않고 일상적인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 것이 좋았다. 제한된 조건 내에서 사람들의 구성을 계획한 부분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 다양한 직업들 중에서 특히 담고 싶었던 모습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구: 처음엔 한국에 사는 여성분들을 전부 인터뷰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부담이 있었다. 그만큼 최대한 다양한 여성을 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분들도 찍고 싶었다. 그렇지만 의도치 않게 다른 분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직업적으로나 상황적으로 다양한 분들을 담고 싶었다. 구성을 명확히 정하고 한 것은 아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공감이 많이 됐다. 감독님의 현재 점심식사는 어떤지, 그리고 남성들을 주제로 다른 작품을 구상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구: 계속 혼자 살다가 올해부터는 동생이랑 같이 살게 됐다.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 것을 준비하는 것은 힘들지 않고 참 좋았다. 동생과 잘 살고 있고 밥도 잘 먹고 있다. 직장인들이 부러웠던 게 구내식당이 있다는 점이었는데, 지금 회사에 구내식당이 있어서 정말 좋다. 점심식사가 삶의 낙이다.(웃음)


이: 동생의 식사를 챙기는 게 말하자면 노동 아닌가? 


구: 평소 요리를 즐겨 하지 않는데, 말하자면 누나의 마음인 것 같다. 혼자였으면 대충 먹을 것이지만 동생이랑은 조금 더 챙겨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다소 개인주의적인 사람인데, 밥을 먹는 일에 있어서는 다같이 먹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내 삶이기도 하고 과거이자 미래이기도 해서다. 내가 남성이었으면 남성의 점심시간에 관심이 조금 더 갔을 수도 있겠지만, 성별을 굳이 나누려고 하진 않았다. 다만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데, 여자로서 사는 것에 스스로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것이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만든 것 같다. 



이: 제목이나 구성에서 젠더적인 영화이지만, 불평등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의 입장을 보여주는 점이 흥미로웠다.


관객: 보통 세 끼를 다 챙겨 먹지는 않는다. 그 중에서 점심식사를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흐름으로 인물들을 배치했는지 궁금하다. 


구: 보통 세 끼를 먹는다고 할 때 아침은 시간에 쫓기고 저녁은 술자리에서 거하게 진행된다. 그것은 일상을 벗어난 식사이고 점심은 우리 일상의 중심에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생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인물을 배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처음엔 나이 순으로 했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다. 각각 처한 상황이나 캐릭터에 따라서 정서가 다르다. 처음엔 가볍다가 나중에 커지는 느낌을 원했다. 중간 중간 음악도 조금씩 넣어서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관객: ‘그녀들의 점심시간’ 그 안에 감독님도 포함되는 것 같다. 본인을 찍을 생각은 안 했는지?


구: 사실 첫 번째 점심은 나의 점심을 찍었다. 나의 점심을 찍어봐야 다른 사람의 점심을 찍을 수 있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 모습이 많이 어색해서 그 장면을 쓸 수가 없었다.(웃음) 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기 때문에 내 장면을 써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사실 나는 앞으로도 본인을 찍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관객: 감독님이 꾹꾹 눌러 담은 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앞서 인물들과 친밀해지는데 상대적으로 힘을 덜 들인 것이 아쉽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관객들이 대상의 내면을 궁금해 하거나 대상의 깊은 곳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방송 다큐멘터리에서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방송 다큐멘터리는 눈물 한 방울을 나오게 하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이 영화에서도 은연중에 학습이 되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감독님의 시선이 좋았다. 대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얼마만큼 관계를 오픈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궁금하다.


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른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 감탄을 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들의 솔직한 말을 듣는 걸까. 아직 경험이 많이 없기 때문에 그런 점이 부럽다고 느낀다. 적당하게 거리를 두는 것이 나의 성격과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할 때 내가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공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카메라가 응시하고 있을 때의 그 불편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섣불리 가까이 가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관객: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구: 이 영화는 제작지원을 받아서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하느라 서두른 부분이 있다.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떨쳐버리려 했지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 영화를 완성한 것이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생각만 하면 울컥하는데, 내가 과연 이런 작업을 또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열심히 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자취생의 밥상과 세 아이를 둔 엄마의 밥상이 각기 다르듯 일상의 중심에 있는 점심시간은 단순히 밥 먹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개인의 경험해서 시작한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점심시간에 집중한다. 영화는 특정 몇몇을 담았으나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의 이야기를 동시다발적으로 하고 있다. 특정 젠더를 대상화 하거나 불평등을 호소하는 대신 이 영화는 오늘도 어김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있을 누군가의 존재 의미를 넌지시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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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OF 발견과 주목 <그녀들의 점심시간>

일시: 2016년 12월 20일(화) 오후 8시

인디토크(GV) 참석: 구대희 감독 / 진행: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람료: 6,000원 (인디스페이스 후원회원 무료 / 멤버십 5,000원)




<그녀들의 점심시간 Ladies’ Lunchtime>

구대희 | 2016 | 67min | Color

제 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다큐쇼케이스

제 16회 인디다큐페스티발 봄 제작지원작



 SYNOPSIS 


더운 날씨에 몸이 좋지 않은 경마장 미화원 숙정씨, 입맛은 없지만 오후 일정을 위해 억지로 밥을 떠 넘긴다. 여고생들은 맛없는 급식 대신 햄버거를 몰래 배달 시켜 먹으며 다이어트 이야기를 한다. 택시기사인 희숙은 차 안에서 점심으로 김밥을 먹다 손님을 발견하고 황급히 숨긴다. 각양각색 다양한 점심의 풍경, 그 속에 담긴 여자들의 삶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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