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드라마인 줄 알았지?
시인 연우(박병은)와 비밀정부요원 혜린(조시내)은 부부다. 어느 날 연우는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같은 별에서 온 외계인 세아(장소연)와 만난다. 혜린은 연우에게 여전히 자신이 비밀정부요원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함께 일하는 한실장(선우)과 정을 통한다. 말이 없는 부부는 점점 더 말이 없어진다. 여기까지 보면 <지구에서 사는 법>은 지구인과 외계인을 아우르는, 말 그대로 ‘범우주적 불륜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영화가 던지는 미끼에 불과하다.
사실 <지구에서 사는 법>은 자신에게 주어진 오해, 운명 같은 걸 극복하는 나 혹은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영화다. 그런 점에서 가장 통속적이고 누추하고 첨예하고 극화하기 쉬운 소재가 불륜이 아닐까
생각했다.
연우와 혜린의 관계는 부부의 권태기를 상징하는 걸 수도 있고 부부관계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걸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또 많은 영화가 그걸 다뤘다. 근데 많은
영화가 결론에 가서 소통이 안 돼 괴롭다 또는 결국 부모가 자식을 용서하고 부부가 서로를 용서한다, 그래서 어쨌든 소통을
이룬다, 고 한다. 하지만 <지구에서 사는 법>은 그래, 어차피 우리 사이에 소통은 잘 안 돼,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내 잘못도 아니고 네 잘못도 아니야,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이대로 잘 살아
보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사람 사이에 무슨 얘기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어쩌다 얘기를 해도 상대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저 사람이 날 참
모르는 구나, 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지 않나. 예를 들어 연우가 설거지를 안 해놓고
혜린에게 설거지를 했다고 하거나 출장 간 혜린에게 전화해서 “밤인데 아직도 일해?”라고 묻는 장면이 바로 그런 거다. 그런
문제는 부부만 아니라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양아치 같은 운명
지구에서 사는 법을 탐구하기 위해 영화는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하기야 애초에 우리가 지구에 떨어진 것부터가 운명이란 놈이 벌인 일 아니겠는가? 이 영화에서 그에 버금가는 짓을 하는 자는 한 실장이다. 그는 자기 뜻대로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그래서 길을 가다 어깨를 부딪친 사람에게 “똑바로 살라”고 윽박지르고 욕을 하고 당장 떨어진 가방을 주우라고 다그친다.
그걸 운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신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천박한 힘의 권력 같은
게 있지 않나. 그걸 상징하는 인물이 한 실장이다. 되게 양아치 같은 인물이지. 남자들은 살면서 그런 천박한 힘의 권력과 만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몇 년 전에 신촌에서 목격한 건데 딱 보기에 시골에서 올라 온 모범생 같이 생긴 남자가 걸어가다가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랑 부딪쳤다. 그 바람에 덩치 큰 남자가 손가방을 떨어뜨렸는데 그 남자가 부딪치자마자 뒤를
돌아보더니 “XX놈아 빨리 안 주워? XXX야, 떨어뜨렸으면 주워야 될 거 아냐?” 그러는 거다. 그러니까 맞은 편 남자가
자존심이 되게 상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는데도 결국은 가방을 주워 줬다. 그랬는데 또 덩치 큰 남자가 “잘못했다고 안
그래? XXX아, 잘 보고 다녀.” 그러니까 맞은 편 남자가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하더라.
한 실장이 여기서 딱 덩치 큰 남자 같은 인물이다. 사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어떤 부당한 힘의 권력이 카리스마가 있거나 아주 악마적인 건 아니다. 오히려 양아치에 가깝지.
지구를 떠나지 않고 ‘지구에서 사는 법’
영화에서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빼면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 존재다. 사는 게 힘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지구에서 떠나는
법을 찾는 데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지구에서 사는 법을 찾는다. 그래서 제목이 ‘지구에서 떠나는 법’이 아니라 ‘지구에서 사는
법’인 거다. 사는 게 힘들어도 자꾸 떠나려고 하지 말고 잘 살아 보자, 그러는 거지.
결말 이후에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까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지구인과 외계인이 서로 종류도 다르고 소통도 안 되지만 그래도 운명이란 놈 앞에서 한편이 된다, 이런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작정하고 어둡게
<다섯은 너무 많아>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혹은 안슬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나의 노래는>(2008)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지구에서 사는 법>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지구에서 사는 법>은 <다섯은 너무 많아> <나의 노래는>보다 확실히 무겁다.
사실 <나의 노래는>보다 <지구에서 사는 법>을 먼저 기획했다. <다섯은 너무 많아>는 관객들이
좋아해 줬지만 영화적으로 한계가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배우고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섯은 너무 많아>와 완전히
다른 방향의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이야기의 층위를 많이 나누고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그래서 일부러
무겁게 갔다. 그 점에 대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캐릭터를 설정할 때부터 내가 고집을 좀 피웠다.
불륜이란 소재 자체도 천박하지만 공간도 일부러 SF답지 않게 누추하게 갔다. 처음에 나오는 아파트 단지도 그렇고 겨울이란
계절도 그렇고. 연우와 시내가 바닷가에 가는 장면도 그렇다. 보통 남녀가 바닷가에 놀러 가면 뭔가 낭만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겨울 바다라는 게 가보면 황량하다.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지, 횟집 아줌마는 삐끼처럼 들어오라고 성화지. 보안국 사무실도 평범한
회사 사무실처럼 그렸다. 외계인이나 비밀정부요원이란 설정을 빼면 현실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게.
영화를 찍는 또 하나의 방법, 꾸준히 겸손하게
<다섯은 너무 많아> <나의 노래는> <지구에서 사는 법> 모두 조용히 시작해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격해진다. <지구에서 사는 법>도 보면 처음에는 되게 정적이다. 그러다 중반 이후부터 편집이나 리듬이 빨라지고 마지막 장면에 총격전이 일어난다. 그렇게 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가슴이 벌렁벌렁한 느낌, 뭔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향해 객기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행진곡을 집어넣은 거다. 내가 막 우겨서. 다음 영화에서는 지금까지 내 스타일을 깨보고 싶다. 캐릭터나 이야기의 구성적인 부분을 강화하는 쪽으로.
아직까지 궁극적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다. 물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처럼 내용, 깊이, 형식 같은 측면에서 인류의 모든 문화유산과 미래, 꿈 그리고 그것에 대한 호기심을 집대성한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기는 하지. 하지만 과연 내가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싶은 거고. 또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관객에게 사랑을 받는 동시에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품을 하고 싶다. 근데 내가 그런 작품 만들 때까지 조금 오래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웃음)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 영화 자꾸 만들지 말고 모든 게 준비가 되면 하나씩, 10년에 하나씩만 찍으라고. 물론 그게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만한 참을성도 없고 만들면서 배우는 성격이다. 내가 잘 하는 건 그저 열심히 하는 거다. 거짓말 안 하고 겸손하게. 도망가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면서. 앞으로 영화 한두 개 더 만들고 그만둬야겠다, 아직까지 그런 생각은 안 하니까. 홈비디오로 찍더라도 영화는 만들 거다. 사통팔달이라고 중심에 가면 사방팔방으로 난 모든 길을 다 볼 수 있다는 옛말이 있다. 좀 더 공부해서 중심에 다가가야지. 거장이 아닌데 거장인 척 하는 것도 슬프지만 거장인 척조차 못하는 것도 굉장히 슬픈 거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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