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DIESPACE, since2007

[로니를 찾아서] Director & Production Note

by Banglee 2009. 7. 1.
Director  감독  심상국         
“바쁜 현대인들에게 작은 미소를 전하고 싶었다”


중앙대학교 영화과 졸업 이후 이형탁 감독의 <혼자 뜨는 달> 연출부로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은 심상국 감독은 1997년 양윤호 감독의 <미스터 콘돔> 제작부에 들어간다. 연출에 대한 꿈을 키워왔던 심상국 감독은 다음 해 심승보 감독의 <남자 이야기>로 다시 연출부로 복귀, 같은 해 장길수 감독의 <실락원>에 합류한다.

이후 심상국 감독은 이황림, 신상옥 등 베테랑 감독들 아래서 조감독으로 일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다지고 4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첫 장편 데뷔작 <로니를 찾아서>를 완성했다.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첫 작품 <로니를 찾아서>로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심상국 감독은 본인 스스로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기, 무언가 끊임없이 찾아내려 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로니를 찾아서>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된다.
감독은 인생을 살다 보면 앞을 가늠할 수 없이 막막한 심정을 겪을 때가 있다. 가슴을 부대끼는 사소한 감정들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마지막 길목에 들어섰을 때, 여유를 가지고 나를 돌아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웃음의 가치를 <로니를 찾아서>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Cast
주먹 한방으로 일생일대의 기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태권도 사범, 인호

융통성 없이 앞•뒤 꽉 막힌, 남은 건 자존심 밖에 없는 태권도 사범. 초짜 중의 초짜에게 망신을 당한 후 복수심에 그를 찾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찾는 목적도 마음도 변화를 겪으며 인생과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만능 재주꾼, 유준상

1995년 연극 무대에서 먼저 데뷔한 유준상은 연극뿐만 아니라 뮤지컬 무대에도 오르며 뮤지컬 스타로 먼저 자리 잡는다. 1998년 브라운관으로 넘어온 유준상은 <토지><강남엄마 따라잡기>등 다양한 영화 출연과 1999년 스크린까지 영역을 넓히며 종횡무진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며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텔 미 썸딩>을 시작으로 <가위><쇼쇼쇼><나의 결혼 원정기>로 영화배우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해 <리턴>으로 섬뜩할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싸이코 연기를 선보이며 45최 대종상 남우 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는다.

최근 데뷔 이후 제 2의 전성기라 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유준상은 <로니를 찾아서>에서 특유의 코믹함과 진지함으로 연기력의 절정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그의 노련미와 열정이 더해져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다.

‘내 사랑 내 곁에’ 노래 한 곡 때문에 바다 건너 온 한국생활 8년 차, 뚜힌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한국생활 8년 차 이주 노동자. 요리사 자격증에 멘사 회원증까지 있는 실력자지만 한국에서는 그것들이 종이조각에 불과하단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밝게 살아가는 선천적 낙천주의자.

외국인 노동자에서 배우로! 첫 연기에 도전하는 내추럴 본 액터, 로빈 쉐이크

한 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였던 로빈 쉐이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방글라데시 축제에 참가했다가 캐스팅을 위해 헌팅을 나왔던 제작진들 눈에 띄어 ‘뚜힌’ 역으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길거리 캐스팅인 셈. 오디션 장에서 본인의 끼를 자유롭게 모두 내보였던 로빈 쉐이크는 스텝들의 만장일치로 ‘뚜힌’으로 캐스팅했다.

제 작진의 기대 이상 한국말을 잘 구사했던 로빈 쉐이크는 한국어만이 가지는 뉘앙스나 톤 하나도 틀리지 않아 제작진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본업이 따로 있는 로빈 쉐이크의 회사 사장님께서도 로빈의 영화 출연에 적극 협조, 촬영 때는 일을 빼주기도 했다는 후문.



Production Note  1.
제작비 4억 6천 만원의 예산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


사소한 집착이 한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그린 <로니를 찾아서>는 평소 사람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감독이 4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시나리오로, 2008년 6월 23일 크랭크인을 시작으로 25회차 촬영, 4억 6천 만원의 예산으로 완성됐다.
영화진흥위원회 HD 장편 극영화지원작인 <로니를 찾아서>는 지방과 서울, 그리고 방글라데시 현지 로케까지 한정된 예산안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프로덕션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제작팀은 하루 24시간 혹은 밤을 새며 무리하게 촬영을 진행하기보다는 밤 촬영 씬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하루 평균 9~10시간의 계획적인 스케쥴을 고수하며 안정적으로 현장을 운영했다.

<로니를 찾아서>는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짜임새 연출과 화면 구성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등을 촬영한 정성욱 촬영감독의 손을 거쳐 화려하게 구현됐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컷이 거의 없는 <로니를 찾아서>는 바스트샷이나 풀샷을 주로 활용하는 가운데, 클로즈업 장면을 비롯해 인물의 감정선을 이야기할 때는 각 상황에 따라 핸드헬드를 적절히 이용해 관객들에게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두명이 등장하는 장면이 유난히 많은 <로니를 찾아서>는 인물간의 화면이나 배경 구성에서 거리의 전봇대 하나도 소품으로 갖다 놓은 듯 한 프레임 속에 작은 것 하나 놓치지 디테일하게 담아내며 세련된 대칭구도를 보여줘 안정감을 더한다


Production Note  2.
단 4명으로 구성된 2박 3일간의

방글라데시 판타스틱 촬영기

한국 촬영분을 모두 마친 후 뭔가 아쉬움이 남았던 제작진. 빠듯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영화의 퀄리티를 위해 방글라데시 로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예산 탓에 감독, 촬영감독, 제작부장, 배우 딱 4명만이 방글라데시로 향한다.

사전 헌팅 없이 관광비자 하나 들고 무작정 찾아간 방글라데시에서 촬영을 진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방글라데시는 홍수가 한차례 쓸고 간 뒤라 도로 곳곳이 물에 잠겨있었으며, 심지어 라마단 기간(금식 기간)이었다. 덕분에 촬영팀은 음식을 먹을 때도 심지어 물을 먹을 때도 현지인들과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초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촬영팀은 현지 코디네이터를 구하고 컨셉을 설명해준 뒤,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이곳 저곳을 헤매기 시작한다. 강, 거리, 기차 안까지… 스탭도 없이 해외 로케 현장을 통제하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국민 전체가 끼를 가졌다고 할 만큼 카메라만 들이대면 배우로 돌변하는 현지인들과 현지 코디네이터의 협조 누가 봐도 감탄할 아름다운 화면들을 카메라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


Production Note  3.
최적의 로케이션으로 만들어 낸 생생한 리얼리티!

숨은 공신은 연기 경험이 전무후무한 비전문 외국인 배우들

<로니를 찾아서>는 전라북도 무주와 서울 일대에서 촬영되기도 했지만, 제 3세계 이주 노동자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만큼 주 촬영지는 바로 안산이었다. 실제로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세계 곳곳의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점차 다국적 문화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안산에서 대부분의 촬영을 진행, 최적의 장소에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화면을 만들어 냈다.

<로니를 찾아서>에는 유준상, 김호정, 기주봉 등 이름만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이 출연, 탄탄한 연기를 바탕으로 자연스런 위트와 유머를 선보인다. 이들과 함께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백미가 또 있었으니, 이는 바로 영화 속 이주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연기 경력이 전무후무한 비전문 배우들이다. 하지만 ‘꼭 배우여야 한다’는 틀을 깨고 국내의 모든 방글라데시 관련 축제와 단체를 방문하며 찾아낸 <로니를 찾아서> 제작진의 과감한 캐스팅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최적의 요소가 되었다. 영화 속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삶이기도 하기 때문에 비전문 배우라 할 지라도 그 누구보다 실감나게 연기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Production Note  4.
뼈에 금이 가고 깁스를 해도 촬영은 진행된다!

고난도(?) 액션 씬의 유준상 부상 투혼

태권도 시범 경기 당일, 로니에게 한방에 쓰러진 태권도 사범 인호. 유준상은 실감나는 이 한 컷을 위해 온몸을 내던졌다. 맞고 쓰러지고 또 맞고 쓰러지고… 감독의 OK 컷이 떨어졌지만 더욱 실감나는 장면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유준상은 다시 한번 몸을 던진다. 덕분에 유준상은 다리 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게 되고, 급기야 깁스까지 하고 와서는 다른 촬영분을 찍게 되는 부상투혼을 발휘, 프로정신을 보였다.

외에도 손으로 각종 격파 시범을 보이는 장면 등 ‘휴먼 드라마’ 라는 장르에 비해 태권도 사범이라는 배역 덕분에 유난히 액션씬이 많았던 유준상은 잦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유준상은 ‘태권도 사범’이라는 극 중 역을 위해 아들과 함께 일부러 태권도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또한, 영화의 실감을 더하기 위해 인호가 뚜힌을 잡는 장면에서 뚜힌에게 골목을 숨이 차도록 뛰게 하고 본인 역시 쉴 새 없이 뛴 다음에야 촬영에 임해 영화에 대한 열정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