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영화의 시간
무명의 비평가들: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
섹션 1. 그럼에도 아직 할 말이 남았습니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2월 24일 (토) 오후 1시 상영 후
상영 〈파랑새〉(홍기선, 이효인, 이정하 감독), 〈하늘아래 방한칸〉(이수정 감독)
참석 김명우, 박동수 비평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진하 님의 기록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화면에서 사람들이 운다. 억울하고 슬퍼서 운다. 40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헤아릴 틈도 없이 스크린 속에서 우는 사람들의 얼굴이 지금과 닮았다. 시대가 지나갔다지만 모르는 문제가 아니다. 시간을 뚝 자를 수 없듯 시대의 문제 또한 변화해왔다. 〈파랑새〉와 〈하늘아래 방한칸〉, 그리고 지금의 독립영화는 시대의 흐름에 반응하여 움직이며 연결된다. 그때의 우리에게서 지금의 나는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박동수 비평가(이하 박동수):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고 이번 기획전 기획에도 참여하는 영화 평론가 박동수라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토크 시작하기 전에 기획전 취지를 간단하게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저희는 한국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비평의 자리에 대한 논의를 나누며 기획을 진행하였는데요. [무명의 비평가들]이라는 제목은 문자 그대로 이름을 알 수 없거나 이름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무명이라는 말이 다소 가볍게 느껴질지언정 쉽게 규정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독립 영화의 성격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4명의 기획자 각자가 한국의 독립 영화 담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들을 상영하기로 기획을 진행하였습니다.
때문에 기존의 GV가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방식이라면 저희는 좀 더 비평과 그것의 자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4명의 기획자가 각자의 기획에 서로 진행자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토크를 진행해보고자 합니다. 또 저희가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웹진 해파리'에 올라가 있습니다. 토크를 들으시면서 보셔도 좋고, 토크가 끝나고 돌아가시는 길에 한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토크 시작해 보겠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명우 비평가(이하 김명우) :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한국 영화사를 공부하고 있는 김명우라고 하고요. '그럼에도 아직 할 말이 남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이번 섹션 준비해 보았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박동수: 먼저 왜 〈파랑새〉와 〈하늘아래 방한칸〉이라는 두 영화를 고르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파랑새〉는 서울영화집단의 홍기선, 이효인, 이정하 3명의 감독이 공동 연출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하늘아래 방한칸〉은 민중영화연구소와 그곳에서 만들어진 한겨레영화제작소에서 제작된 이수정 감독님의 단독 연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랑새〉에 참여했던 이효인, 이정하 감독님이 민족영화연구소에도 참여하시고 이정하 감독님이 〈하늘아래 방한칸〉 제작으로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김명우: 사실 저도 이 영화들을 공부할 때 자료로, 작은 화면으로 봐왔던 것 같아요. 근데 오늘 스크린을 통해서 보니까 영화를 본다는 느낌이 많았어요. 공부할 때 시험을 준비하면서 고민했던 부분들이 기획전의 의도와 맞닿아 있기도 한 부분일 것 같은데요. '80년대 영화를 지금 다시 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게 어렵기도 하고 문제처럼 남아 있었는데요. 특히 〈파랑새〉 같은 영화는 이미 영화운동사나 독립영화사에 많이 기입되어 있는 영화죠. '파랑새사건'이라든지. 특히 오늘 본 영화들은 운동주의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이기 때문에 지금 그 영화들을 다시 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요즘 들어서 80년대 영화운동사를 이야기하고 그것들을 다시 주목하고자 하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서울독립영화제의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성하훈 기자님의 '한국영화운동사'가 책으로 묶인다든지. 이런 식의 성과들이 나오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그런 작업들을 볼 때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말해주지 않아왔던 것, 계보 속에서 숨겨져 있던 부분들이 발굴되고 드러난다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자유롭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섹션을 준비해 보았고요.
다시 동수 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 이 두 작품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릴게요. 〈파랑새〉는 일단 86년도 서울영화집단의 작품인데, 영화운동사에서 서울영화집단이 갖는 의미도 크다고 생각해요. 70년대에 영화 소모임들이 있었고, 80년도에 본격적으로 시대적 변화 같은 것들과 호응을 하게 되죠. 82년도에 서울영화집단이 만들어지면서 영화운동이라는 지향점을 가진 단체의 선두 주자라고 할까요? 그런 의미도 가지고 있는 것 같고요. '파랑새 사건' 같은 영화운동에서의 중요한 지점들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또 〈하늘아래 방한칸〉은 시기를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영화 운동의 거의 끝자락에 탄생한 영화예요. 한겨레영화제작소에서 제작 부문이 특화된 민족영화연구소라는 집단이 88년도에 만들어지는 거죠. 거기서 이수정 감독님이 제작한 영화예요. 두 영화는 어떻게 보면 가장 급진적으로 영화운동이라는 것이 활성화되었을 때 나왔던 영화들이고, 그 영화들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선택했습니다.
박동수: 조금 덧붙이자면 지난 주에 영상자료원 발간으로 『1980년대 한국 영화』라는 책이 나왔고 그 책에 파랑새 연출에 참여하셨던 이효인 선생님과 유운성 선생님이 당시 영화 운동에 관련한 글을 실어주셨어요. 성하훈 기자님의 '한국영화운동사'와 함께 읽어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계속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그 당시에 많은 영화 집단이 있었고 영화운동에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늘아래 방한칸〉 엔딩 크레딧에 보면 영상집단 바리터, 영화 집단 우리 등 다양한 이름이 있고, 민중영화연구소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노동자 뉴스 제작단 등도 떠올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다른 집단들이 아니라 서울영화집단과 한겨레영화제작소의 두 작품이었는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명우: 80년대 전후로 만들어졌던 여러 집단이 있는데 오늘 제가 가져온 영화들은 그때 활동이 거의 마무리된 집단들이었어요. 창작보다도 어떤 정치적인 경향에 중점을 둔 집단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그래서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운동사나 한국독립영화사 이런 식으로 역사를 봤을 때, 물론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서 서술 방식이나 방향이 달라지겠지만, 정치적 방향성이 강조된 집단이라는 요인으로 인해 현재의 영화사에서 조금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부분도 사실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지금 다시 한 번 그런 텍스트를 꺼내서 보았을 때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박동수: 말씀 주신 것처럼 '80년대 한국 영화'라고 하면 보통 3S 이야기나 한국 영화 뉴웨이브 같은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독립영화의 시발접과도 같은 작품들이잖아요. 다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럼 먼저 〈파랑새〉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요. 농민들에 대한 이야기고, 제가 알기로는 실제 농민들을 섭외해서 촬영한 영화로 알고 있어요.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노래에 맞춰 노동하는 장면들을 집어넣는다든가, 영화 마지막에 사진으로 처리된 소 경매장, 플래카드와 신문 기사들 같은 것들을 보다 보면 극영화가 전개되다가 다큐멘터리적인 운동의 방식으로 넘어간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영화의 연출자 중 한 명인 홍기선 감독님의 첫 작품은 완전한 다큐멘터리였고 그렇게 관람을 했는데, 〈파랑새〉는 조금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지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명우: 저도 〈파랑새〉를 큰 화면으로 보면서 거친 느낌이 확 다가왔는데요. 〈수리세〉와 〈파랑새〉는 서울영화집단에서 만든 영화죠. 근데 그 양상이 되게 달라요. 〈수리세〉 같은 경우에는 다큐멘터리의 양식을 따르고 있고 내레이션이나 재구성에 대한 계획이 있기 때문에 좀 다른 느낌일텐데요. 〈파랑새〉 같은 경우에는 거친 감이 조금 있죠. 극영화라는 문법을 취하고 있고요. 동수 님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파랑새〉 제작이 당시에 예정되었던 일정이 캔슬이 되었다가, 이후에 가톨릭 농민회에서 한 농가를 소개해줬다고 해요. 그래서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실제 농민들이시다 보니까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8시간씩 일을 하고 쉬는 시간에 틈나서 약간 촬영하는 방식인 거였거든요. 그래서 영화 자체도 조금 급한 느낌이 있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거친 느낌인데요.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도 이동 상영,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영사를 했어요. 그런 부분들이 〈파랑새〉라는 텍스트를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지금 영화의 정의를 생각했을 대 제작자와 수용자 간의 측면이라든지 그들이 맺는 방식, 상영의 문제 등을 폭넓게 볼 수 있는 텍스트인 것 같습니다.
박동수: 말씀 주신 부분과 연관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독립영화라는 이름으로 이 작품들을 통칭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작은 영화' 혹은 '소형 영화'라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35mm 필름 대신 〈파랑새〉처럼 8mm로 촬영한 영화들을 지칭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던 언어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독립영화라고 범주화되는 작품들이 굉장히 많은 소재와 스케일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오늘 관람한 〈파랑새〉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작은 영화'라는 단어를 곧이 곧대로 설명해준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지금의 독립영화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작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 〈파랑새〉인 것 같은데,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명우: 독립 영화에 대한 정의가 지금도 굉장히 모호하고 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동수 님이 대담에서 말씀해주셨던 것 같아요. 독립영화라는 용어에 관한 문제는 결국 태도의 문제와 연결된다는 식으로 말씀해주셨던 것 같은데요. 저도 그 말에 되게 공감해요. 예를 들어 과거에 독립영화가 공식화되기 전에 '작은 영화'나 '소형 영화'로 불렸던 것들이 있잖아요. 그게 헐리우드 영화나 충무로 영화에 대항하기도 하고, 8mm 필름 같은 포맷의 문제를 담고 있는 용어기도 하고. 각각의 용어가 다 의미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모호하게 사용되었던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봤을 때 〈파랑새〉 같은 경우에는 8mm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작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죠. 근데 '작은 영화'를 공권력으로부터의 대항 같은 식으로 본다면 〈파랑새〉 텍스트가 갖고 있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파랑새 사건' 같은 경우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하는데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파랑새를 제작했던 홍기선, 이효인 감독님, 또 제작을 하지 않으셨지만 변재란 선생님까지 86년도 11월 쯤에 연행이 돼요. 근데 그게 사실은 〈파랑새〉라는 영화 때문에 잡혀가신 게 아니거든요. 당시 연세대에서 만들어진 〈부활하는 산하〉라는 영화가 있었는데요. 당국이 그 영화를 문제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단체를 서울영화집단으로 상정을 하고 주시를 하고 있었고 그렇게 세 분을 연행해갔어요. 근데 사실상 그 세 분과 〈부활하는 산하〉는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풀어주는 게 아니라 별건수사를 하게 돼요. 결국 〈파랑새〉가 영화법을 위반한 걸로 사건을 처리하게 돼죠. 당시에 홍기선, 이효인 선생님이 선고 유예를 받았어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정치적 영화라는 이유로 공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은 사건이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주변 대학 영화 서클이라든지 개인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대학영화연합 같은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요. 그런 식으로 공권력으로부터 대항하는 작은 영화로서의 〈파랑새〉로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동수: 그러면 〈하늘아래 방한칸〉 이야기로 조금 넘어가 볼까 하는데요. 두 영화를 연달아보면서 〈파랑새〉보다는 〈하늘아래 방한칸〉이 저희가 흔히 생각하는 한국 단편 영화라는 틀에 좀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파랑새〉보다 몇 년 뒤에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고 필름 규격 자체가 둘 사이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한데요. 다만 제가 받은 인상으로는 〈파랑새〉 같은 경우에는 훨씬 거칠고 운동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상이 강했다면, 〈하늘아래 방한칸〉은 좀 더 80년대에 나온 한국의 리얼리즘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과 좀 더 가까운 것으로 느껴졌어요. 물론 〈하늘아래 방한칸〉도 투쟁 현장, 시위 현장을 보여주고 실제로 집값 문제 등으로 자살을 선택하게 된 분들의 신상 정보 같은 것들이 자막으로 나온다든가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좀 더 있는 느낌을 받게 됐습니다. 이렇게 비교해서 본다면 어떻게 보셨나요?
김명우: 저도 〈파랑새〉를 보고 〈하늘아래 방한칸〉을 보니까 영화의 만듦새가 더 좋아졌다는 느낌이 더 드는 것 같아요. 이수정 감독님의 구술 자료들을 살펴보면 당시에 〈꼬방동네 사람들〉이나 〈바보 선언〉 같은 영화를 통해서 영화적인 관심이 증폭된다거나 어떤 인사이트를 많이 얻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영화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영화운동 당시에 그분들이 제작한 영화를 보면 극영화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보도 영화를 찍는다든지 기록 영화 같은 형식이 많았죠. 노동자뉴스제작단이라든가 속보 영화라고도 이야기를 했었고요. 배경을 살펴보자면 87년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전국 각지에 민주노조들이 많이 생겨나죠. 그 노조의 노동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필요한 선전 자료, 교육용 자료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거예요. 그래서 민족영화연구소를 포함해서 영화 운동 집단들이 그런 영상물을 제작하고 보급하는 활동들이 이어졌었죠. 그때 민족영화연구소도 그런 영상 자료들을 많이 만들고 판매하면서 수익금이 꽤 들어오게 돼요. 당시 자료들을 살펴봐도 판매나 대여를 통해서 벌어들인 돈이 꽤 되고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수익이 되는 사업이었는데요. 그런 식의 작업이 이어지면서도 이 단체들이 극영화에 대한 열망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니었거든요. 단순히 시위 장면을 보여주는 것보다 조금 더 이해가 쉽고 정서적 교감이 되도록 하려면 극영화가 훨씬 더 효과적이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극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나, 기록 영화나 속보 영화에 비해서 국내 영화 만들기가 당시에 어려운 일이기도 했죠. 경제적인 부분이나 인력, 시간, 카메라에 관한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고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판매 등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조금 여유가 생겨서 이 돈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했던 게 이수정 감독님의 〈하늘아래 방한칸〉이었어요. 88올림픽 이후 전셋값 폭등으로 연이어서 자살을 하고 이런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아까 〈파랑새〉는 아마추어 배우분들이 나왔다고 하셨잖아요. 이거는 실제 배우분들이 나오신 거예요. 〈파업전야〉에 출연하신 분이 나오기도 하고 극단에 소속되어 있는 배우분들이 나오기도 하고 엔딩 크레딧 보시면 분장 역할도 있죠. 큰 화면에서 보니까 추격 장면 같은 부분도 굉장히 흥미롭더라고요. 보면서 화면의 구성도 다양했구나 생각하면서 봤던 것 같습니다.
박동수: 저도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에 가서 VOD를 관람하는 것밖에 없는데, 작은 화면으로 볼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장면들. 이를테면 술에 취한 주인공이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장면을 얼굴 클로즈업으로 찍은 장면이라든가 밤거리 같은 것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조금 더 얘기를 해보자면 사실 이수정 감독님께서는 최근에 만드신 〈재춘언니〉까지 해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오고 계시잖아요. 이게 KMDB만 본다면 이수정 감독님께서 연출로 참여하신 거의 마지막 극영화처럼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럼 〈하늘아래 방한칸〉과 이후 이수정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어떻게 연관되고 연결된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명우: 사실 오늘 〈하늘아래 방한칸〉을 연출하신 이수정 감독님이 와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수정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말씀을 드리면요. 과거에는 공동체 의식을 담는 것이 좀 더 배후가 되었죠. 지금은 그거와는 주제나 형식에 관해서 방식이 많이 변화되었죠. 근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이수정 감독님이 한겨레영화제작소 시절이나 그때 당시 만드셨던 영화는 기록 영화들이 대다수였고 그것들을 편집하고 제작하는 작업을 계속 해오셨어요. 그런 작업들은 다큐멘터리 방식과 좀 더 유사한 부분들이 있죠. 지금 계속 해오고 계시는 다큐멘터리 작업들이 그런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재춘언니〉 같은 경우에도 콜트콜텍이라고 하는 기타 제조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당하게 되면서 복직 투쟁하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였는데요. 노동자에 대한 관점이나 시선이 과거부터 이어져 온 연속성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 방식이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감독님이 갖고 계시는 문제의식이나 관점이 이어져서 지금까지 계속 작업을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박동수: 네. 민족영화연구소 시절부터 해오시던 작업들을 지금도 이어오고 계시고 앞으로 차기작을 또 기다리고 있고요. 그러면 관객 질문을 받아가면서 진행을 해보려고 합니다. 질문 있으신 분 계시면 손을 들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관객: 80년대 영화 중에서도 비슷한 영화들을 좀 더 알고 싶어서요. 소개해 주실 수 있는 영화가 있는지 좀 궁금합니다.
김명우: 저는 영화운동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80년대라는 시대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소위 상업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을 좋아했었는데요. 박광수 감독님이나 장선우 감독님 같은 분들의 영화를 좋아했었고요. 그래서 저한테는 80년대가 연속성 있는 시대이면서도 돌출된 시대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때의 어떤 태도에서 제가 절대 느낄 수 없는, 미지의 멘탈리티가 있는 시대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당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래서 80년대 영화를 좋아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장산곶매의 영화 〈파업전야〉나 〈오! 꿈의 나라〉 같은 영화도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극영화들인데, 당시 공동체 상영 같은 것들을 통해서 반응을 얻었던 작품들이죠. 그런 영화들을 좀 참고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동수: 저도 흥미롭게 본 영화들이고요. 〈오! 꿈의 나라〉 같은 경우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고, 〈황무지〉라는 영화도 있어요. 그게 5.18을 다룬 첫 번째 장편 극영화로 알고 있는데요. 이 작품은 최근에 리마스터링 개봉도 한 적이 있고, VOD 통해서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또 덧붙여서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는 홍기선 감독의 첫 장편영화라고 할 수 있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어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볼 수 있는 경로가 있다면 챙겨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파랑새〉랑 〈하늘아래 방한칸〉을 보면서 새삼 한국에서 영화운동이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가를 스스로 많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영화운동이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오르는 것들은 대부분 다큐멘터리 작업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김동원 감독님이 푸른영상에서 만드신 〈상계동 올림픽〉이라든가 노동자뉴스제작단, 이화여대 영화패 누에 같은 곳에서 만든 속보 영화들. 지금으로 옮겨오자면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들이나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들을 많이 떠올리게 되는데요. 지금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 아니라서 오히려 〈상계동 올림픽〉 같은 경우가 더 찾아보기 쉬운 영화로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한 지점이 영화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운동이 다큐멘터리 중심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영화운동 시기의 극영화들을 어떻게 재발견할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김명우: 공교롭게도 제가 두 영화를 극영화라서 가져온 것은 아니었고요. 그쪽을 한번 생각해보면 영화운동이라는 활동을 다시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운동이라고 하면 예술적인, 미학적인 부분을 성취하는 부분에서의 영화 운동사가 또 있을 수 있겠죠. 근데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정치적이거나 운동주의적인 영화운동을 말씀드리는 건데요. 이걸 말씀드린 이유는 결국 당시 영화운동을 했던 게 영화를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목적 의식이 강했던 거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영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봐서 같이 변화를 해야 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탁월햇던 게 영상이었기 때문에 그런 매체를 많이 사용했던 것이고, 다큐멘터리 공부를 할 때 다시 80년대 영화운동 시기로 돌아가는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 부분만 있었던 건 아니고 극영화에 대한 열망이나 극영화를 통한 선전도 있었기 때문에. 여건이 어려움에도 당시 극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노력을 본다면 대안적인 형식에서의 극영화, 예술 영화로서 노동이나 민중을 바라볼 수 있는 성취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으로 당시 극영화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동수: 사실 요즘은 운동의 성격을 띤 극영화를 찾아보기 많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등장하는 운동에 가까운 영화들은 대부분 다큐멘터리 형식이나 오히려 SF 영화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노동, 젠더, 퀴어 이슈나 세월호 참사 같은 이슈를 다룬 영화들은 계속 나오고 있고 그러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극영화도 꾸준히 나오고는 있다지만 그런 영화들이 무언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요구한다는 생각은 많이 안 드는 것 같아요. 물론 최근 〈다음 소희〉가 개봉한 이후에 다음 소희법이 입법되었다든가 과거 〈도가니〉가 개봉한 후 그게 계기가 되어서 법이 되었다든가 하는 식의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 이 영화들이 운동적인 영화였냐고 하면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도 영화를 통해서 운동을 전개하려는 집단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런 단체들의 작업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어요. 연분홍치마나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같은 것들을 떠올려볼 수 있죠.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던 건 푸른영상의 최근 두 작품이었는데요. 김동원 감독님의 〈2차 송환〉, 이효진 감독님의 〈가단빌라〉를 생각해보면 과거에 비해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기도 한데요. 과거 영화운동 시기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사회적 발언을 하기는 하지만 운동적이지는 않게 되는 영화들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명우: 사실은 그렇죠. 80년대 영화들이 운동적인 측면이 굉장히 컸기도 하고 90년대로 들어오면서 동구권의 몰락이라든지 이런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운동주의의 양상들이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요. 그전에는 공동체 의식으로 문제를 바라봤다면 그 이후에는 감독의 개인적인 시선이 들어간다든지 좀 더 다양한 문제로 바라보고 그런 시선들이 작업으로 나타나게 되는데요. 그렇게 봤을 때 80년대가 굉장히 특징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겠죠. 이렇게도 생각을 해보고 싶어요. 아까 말씀해 주셨듯이 어떤 소재를 다루는지, 개인이 만드는지 공동체가 만드는 건지는 사실 창작 혹은 창작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영화운동이라고 하면 창작의 문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화를 어떻게 어디서 상영해서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줄 것인가 하는 교육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했고요. 관련한 연구나 보급에 대한 문제도 중요했어요. 여러가지 문제 의식이 있었던 건데요. 지금 영화운동을 바라볼 때 이런 지점들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한 운동이라는 목적 의식이 있었겠지만 지금 그걸 다시 봤을 때, 무엇을 독립영화라고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고도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지금의 독립영화도 크게 공유할 수 있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관객이 줄어드는 부분이라든지 독립영화의 정의가 무엇이며 이런 문제의식들과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80년대 영화운동을 바라보는 것과 지금의 독립영화를 바라보는 것 사이의 관계성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동수: 실천의 차원에 있어서 과거 영화운동 시기의 영화들과 지금의 독립영화가 공유하고 있는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런 지점을 계속 이야기하고 발견해 나가는 게 저나 명우 님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 저희 토크 마무리해보려고 하는데요. 마무리하기 전에 명우 님이 설명 한번 해주시겠어요?
김명우: 오늘 이수정 감독님께서 아까 와주셨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감독님이 와주신 만큼 소감을 소감을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수정 감독: 부끄럽네요. 갑자기 제가 주목받을 필요는 없는데. 1990년 이전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분들이 많이 오셔서 반갑고 2024년에 이런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가 뭘까 하는 걸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저는 대학교 때 영화 서클 활동을 하면서 시대가 시대인지라 다큐멘터리 운동을 해야 한다고 얘기가 됐어요. 그래서 학내 집회라든지 도시 빈민을 기록하기도 하고 그때 이미 제3세계 영화운동이라는 게 있었잖아요. 그런 책들을 공부하면서 기록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배웠고 그래서 8mm 필름 카메라로 기록을 했었고요. 이후에 영화학교를 다니기도 했었죠. 대부분 극영화를 만들려고 들어와서 배웠고 저도 그랬지만, 1987년도 대선을 기록 영화로 만들겠다고 했더니 안 된대요. 87년 6월 항쟁도 거리에 나가서 기록을 했었거든요. 결국 졸업 작품도 촬영으로 참여해서 졸업을 했어요. 이후에 극영화 연출부로 활동을 하기도 했었는데 88년도에 민족영화연구소가 만들어지면서, 영화 서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들과 운동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자고 한 게 장산곶매, 민족영화연구소 이런 것들이 시초였다고 기억을 하고요. 80년대의 영향권 안에서 우후죽순 많은 영화 창작 집단들이 만들어진 거죠. 근데 그때도 우리들은 이미 세계의 예술 영화들을 다 봤어요. 장 뤽 고다르라든지 잉마르 베리만 같은 화제작들을 이미 80년대 중반에 봤었고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과 욕망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 미학적인 것들을 영화 학교나 이런 데서 만든 분들도 계시죠. 그런데 영화 운동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방식으로 극영화처럼 만들다가 다큐처럼 바뀌는 그런 영화를 만들었던 거예요. 전체 변혁 운동에 복무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던 것이고. 그래서 〈파랑새〉에서 농촌의 부채 현실, 〈하늘아래 방한칸〉에서 전셋값 폭등 주거 문제 같은 게 사실 다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배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 20대 청년들이 저런 영화를 만들었고 오늘날 역시 20대 청년들이 오늘날의 문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있죠. 그런 것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이후로도 풍부하게 이야기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동수: 감독님 감사합니다. 오늘 첫 번째 섹션은 이렇게 마무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후에도 다른 섹션들이 준비되어 있고 내일도 기획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많이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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