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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울산의 별〉인디토크 기록: 크레인 조명 아래에서

by indiespace_가람 2024. 2. 5.

 

크레인 조명 아래에서

〈울산의 별〉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1월 27일(토)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정기혁 감독, 김금순, 도정환, 임정민, 변중희 배우

진행 라이너 (영화 유튜브 채널 라이너의 컬처쇼크 진행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기록입니다.

 

 

〈울산의 별〉에는 한국 사회에 산적한 수많은 문제 사이에서 헤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리 앞에 놓인 삶의 가능성을 한정 짓는 시스템의 압력이 지배하는 〈울산의 별〉의 세계 속에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될 인간의 형상을 새겨낸 정기혁 감독과 김금순, 도정환, 임정민, 변중희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라이너: 먼저 감독님께 질문드리겠다.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울산의 별〉을 만들게 된 건가.

 

정기혁 감독 (이하 정기혁): 몇 해 전에 울산에 살고 있는 사촌 형제를 만났다. 영화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소 노동자다. 이전에는 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자녀 문제, 직장 문제와 같은 삶의 문제들에 대해 대화 나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울산의 별〉의 시나리오를 썼다. 많은 사람에게 울산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다. 그들은 블루칼라 노동자 중 주머니 사정과 노동환경이 좋은 편일 것 같다는 편견 말이다. 막상 대화해보니 전혀 사실과 달랐다. 〈울산의 별〉을 만든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나의 오해가 깨진 기억 때문일 것이다.

 

라이너: 울산과 같은 중공업 지대를 생각하면 대기업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울산의 별〉에서 표현하고 있는 윤화(김금순)의 삶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윤화의 삶을 통해 관객이 어떤 것을 떠올리길 바랬나.

 

정기혁: 절망적인 이야기를 상정해 두고 〈울산의 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도시의 흥망에 따라 그곳에서 거주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지는 모습을 생각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울산의 별〉이 너무 절망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길 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을 떠올렸고, 우리 안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다.

 

 

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라이너: 그래서인지 영화의 결말 부의 희망 어린 메시지가 따뜻하게 다가왔다. 김금순 배우에게 질문하겠다. 어떤 사람으로 윤화를 표현하려고 했나.

 

김금순 배우 (이하 김금순): 먼저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영화의 특징, 그리고 인물의 지역적, 직업적 특징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이를테면 중성적인 몸짓과 말투, 그리고 물론 모든 경상도 분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욱하는 모습이 있지 않나. (웃음) 어머니가 경상도 분이시기에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라이너: 윤화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노래방에서 소리 지르며 열창하는 장면이 있다. 평소에도 그렇게 노래 하시는 편인가. (웃음)

 

김금순: 평소에도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윤화를 연기하며 소리 지를 일이 많았는데,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더욱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몸부림친다고 해야 할까. 감독님도 “노래를 못해야 한다. 그러니 마음대로 음을 틀려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라이너: 윤화는 거의 모든 인물과 만난다. 그중에서 가장 잘 맞았던 사람은 누군가.

 

김금순: 윤화를 아껴주는 태민(임정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내 윤화와 태민과 담배를 피우지 않나. 임정민 배우가 한 장면을 촬영하며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게 되어서 육체적으로 힘들어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인혁(도정환) 도련님과의 장면들을 촬영하며 많이 웃었다. 두 분과 친하게, 재밌게 촬영했다.

 

라이너: 도정환 배우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인혁을 연기했나.

 

도정환 배우 (이하 도정환): 감독님 본인을 투영한 캐릭터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영화감독은 아니지만, 배우 또한 무명의 시간 속에서 헤매지 않나. 연혁과 내가 맞닿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며 접근했다.

 

라이너: 영화를 보며 기억에 남는 인혁의 대사가 많았다. 자신의 대사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도정환: 어른으로 살았던 적이 없다. 남자로도 살아본 적이 없다라는 대사가 와닿았다. 공감이 가는 면이 있었다.

 

라이너: 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변화의 이유가 있는지.

 

도정환: 감독님의 모습을 따라가 보려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살도 찌운 상태였다. 다른 작품을 촬영하며 살을 뺐다.

 

라이너: 임정민 배우께 질문드리겠다. 역시 어떤 생각으로 태민을 연기하셨는지 이야기 듣고 싶다.

 

임정민: 처음에는 태민의 다양한 면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은 친구로서 책무를 다하는 담백한 사람 정도로 태민을 이해했다. 촬영 중 김금순 선배와 정기혁 감독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대선배의 조언을 받아 태민 앞에 놓인 상황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 결과물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조금 있다.

 

라이너: 태민 캐릭터를 만드는데 김금순 배우의 역할이 상당했던 것 같다.

 

김금순: 뭐 이야기 해준 게 없었는데…. 긴장할 때 그냥 편하게 하라고, 얼른 퇴근하자고 말한 것밖에 없다. (웃음)

 

임정민: 그게 컸다. (웃음) 긴장을 많이 했었다. 그럴 때마다 금순 선배가 지금처럼 차분하게 도움을 줬다. 현장에서 마음에 와닿는 도움이 많았다.

 

라이너: 태민은 윤화의 모든 분노와 짜증을 받아주는 인물이다. 실제로 윤화가 미워 보이지는 않았나.

 

임정민: 태민은 윤화의 상황을 가족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화를 내기보다는, 뒤에서 따뜻하게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라이너: 변중희 배우께도 여쭙겠다. 인물에 대한 설명과 촬영 후기를 듣고 싶다.

 

변중희 배우 (이하 변중희): 인혁의 대사 중 “전근대적”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나. 인혁의 어머니 금순은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금순을 연기하며 어려웠던 것은 전라도 사투리다. 임정민 배우가 일정이 없는 날임에도 나를 위해 촬영장을 찾아 사투리 개인교습을 해줬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현장에서 가장 연장자였지만, 연기 경력으로 보자면 가장 신인이다. 현장에서 선배들의 연기를 보며 많이 배우기도 했고, 샘도 났다. 특히 금순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나와 찰떡으로 맞는 역할을 맡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라이너: 많은 분이 김금순 ‘선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른 배우들과 함께한 경험에 대해 더 이야기해 줄 수 있나. 기억에 남는 다른 배우들의 장면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김금순: 변중희 배우님과 〈태어나길 잘했어〉(2020, 최진영)를 비롯해서 함께 연기한 기억이 많다. 매번 큰언니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호흡 맞추기 편했다. 다들 고기를 구워 먹다 취하는 장면에서 금순의 대사를 들으며 시원했다. 윤화가 태민의 집 앞에 갈비를 놓고 가는 장면에서 임정민 배우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그의 침묵도 그렇다. 둘 사이의 친밀도가 어느 정도인지 잘 설명해 주는 장면 같아 좋아한다. 도정환 배우가 방파제에 올라가기 위해 몇 번씩 미끄러지는 장면이 있지 않나. 그 장면 참 귀여우면서도 동시에 짠하다. 이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배우분들과 호흡을 나눴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에게 주어진 개별 장면들 모두 소중하고 기억에 남아있다.

 

 

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라이너: 질문을 받기 전에 감독님께 한 가지 여쭙고 싶다. 〈울산의 별〉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정기혁: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일이 부끄럽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보자면… 도시가 발전하면 광해가 생긴다. 별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는 광해에 가려진 별을 쉽게 보지 못한다. 도시에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그런 위치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도시의 성장 과정에서 희생되고 소모된 노동자들의 모습은 쉽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울산이라는 지명의 기원에 많은 설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산에 올라가면 별이 잘 보이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건물의 조명들, 크레인의 조명들만 보일 뿐 별은 잘 보이지 않더라. 그런 의미를 담았다.

 

관객: 〈울산의 별〉의 내용을 듣고, 울산의 풍경들과 높은 크레인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위아래로 넓은 화면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울산의 별〉은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촬영되었다. 지금의 화면비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정기혁: 영화를 시작하며, 울산의 풍광을 열심히 담아보자고 촬영 감독과 이야기 나눴었다. 이렇게 말하면 변명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지만, 울산에서 촬영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이를테면, 조선소를 촬영하고 싶은데, 화면에 조선소를 잡으면 “여기서 촬영하시면 안 된다”며 경비요원분께서 바로 나오시더라. 모든 촬영을 울산에서 진행하고 싶었지만, 많은 곳에서 촬영 협조를 받지 못해 영화의 대부분을 부산에서 촬영했다. 시네마스코프는 계획했던 톤 앤 매너가 어긋나버린 이후 결정하게 되었다. 울산을 많이 담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관객: 임정민 배우는 정말 영화 속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연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하고, 실제로 경상도 분이신지도 궁금했다.

 

임정민: 부산 토박이다. 사투리 연기가 어렵지 않았고, 그래서 태민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선소 일을 한 적은 없지만, 기계과 출신으로 용접일을 8개월 정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소 부근에서 말이다. 오랜만에 간 장소였는데도 낯이 익어 무척 신기했다. 〈울산의 별〉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노동 장면도 대역분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전부 직접 했다.

 

관객: 변중희 배우와 도정환 배우의 캐릭터, 금순과 인혁에게 설명되지 못한 전사가 많을 것 같다. 감독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궁금하다.

 

변중희: 사실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웃음) 하지만 촬영을 기다리고 있을 때면 항상 한 마디씩 디렉션을 전해주셨다. 그걸 받아 나름대로 열심히 금순에 대해 생각해 봤다. 제가 신인에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조금 불편하셨던 건가 싶기도 하다. (웃음)

 

라이너: 감독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정기혁: 감독이… 다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웃음) 변중희 선생님의 캐릭터 금순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어 아쉽지만, 금순은 영화 내내 서울말을 하다 술에 취하고 난 뒤 처음 전라도 사투리를 한다. 윤화가 이를 알아채고 “전라도 셨는교?”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장면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이 어떻게 박탈되고 삭제되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편집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다는 의견을 받고 삭제했다. 이런 과정을 변중희 배우께 전부 설명드리지는 못해 죄송하다.

 

도정환: 시나리오상으로는 인혁에 대한 분량이 더 있었다. 인혁을 조금 더 설명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축소된 장면이 있다. 이런 것에 대해 감독님께서 설명해 주신 적이 있다.

 

정기혁: 독립영화는 비교적 상업영화에 비해 만드는 사람의 삶의 일부분을 투영할 수 있고, 투영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배우가 자기 삶의 일부분을 영화에 꺼내 쓴 것 같다. 개인적으로 디렉션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상황 설명을 더 자세하게 하지 않더라도, 배우들이 자기 삶과 겹쳐지는 점들을 꺼내쓸 때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배우분들께서 한 분도 빠짐없이 연기를 너무 잘해주셨다.

 

 

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관객: 영화에 대왕오징어가 두 번 등장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대왕오징어가 다시 등장할 때, 자연스럽게 윤화의 처지에 빗대어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오징어로 의미를 담아낼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정기혁: 자주 듣는 질문이다. 조선소에 늙은 대왕오징어가 떠내려온다는 이야기를 사촌들에게 들었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처지가 대왕오징어와 닮은 것 같았다.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노동자의 삶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힘없이 밀려나 활기를 잃어버리고, 살을 뜯어먹히는 처지에 놓이는 대왕오징어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촬영 뒷이야기를 말해보자면, 커다란 오징어를 찾을 수 없어서 대왕 한치를 구해 촬영했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CG를 통해 크기를 키우고 또 키웠다. (웃음)

 

라이너: 마칠 시간이 되었다. 정기혁 감독님과 김금순 배우께 한마디씩 듣고 인디토크를 마무리하겠다.

 

정기혁: 보통 독립영화는 상영관도 많지 않고, 부지런해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부당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분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독립영화인들이 힘낼 수 있게 관심 많이 가져주시면 좋겠다. 오늘 인디토크를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김금순: 해가 가면 갈수록 영화를 사랑하게 된다. 〈울산의 별〉이 개봉할 수 있어서 기쁘고, 특히나 독립영화관에서 만나는 모든 관객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매번 영화를 사랑하는 동료들을 새로 만나는 기분이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한 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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