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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나의 피투성이 연인〉인디토크 기록: 탈피 이전과 작별

by indiespace_가람 2023. 12. 9.

탈피 이전과 작별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11월 26일(일) 오후 1시 30분 상영 후

참석 유지영 감독, 한예리 배우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진연우 님의 기록입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라 오르려는 나의 몸보다 나에게 들붙은 것이 어긋날 때가 되면 껍질을 벗어야 한다. 그 과정을 우리는 탈피(脫皮)라고 부르고, 탈피는 한편으로 곧 탄생의 은유이다. 탈피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실패할 경우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위태롭지만 껍질을 벗어내지 않고서는 그의 크기에 맞게 성장할 수 없다. 난산이었지만, 끝끝내 태어나고야 만 그는 절대로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 지난한 진통의 과정을 유지영 감독의 솔직한 고백과 함께했다.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이은선): 오늘 오신 관객 여러분들께 인사 한 말씀씩 먼저 부탁드립니다.

 

유지영 감독(이하 유지영): 안녕하세요, 〈나의 피투성이 연인〉 만든 유지영이라고 합니다. 오늘 영화 보시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듣고 싶고, 또 한예리 배우님과 기자님과 좋은 이야기들 나누면서 좋은 시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예리 배우(이하 한예리): 안녕하세요, 배우 한예리입니다. 오늘 날이 추운데 이렇게 극장까지 찾아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영화가 막 끝나서 감정들이 아직 잘 수습이 되지 않으셨을 텐데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은선: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라는 제목이 되게 치열하게 느껴지실 텐데, 제목만큼이나 아주 치열한 무드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도 느끼셨을 것 같아요. 영화를 단순하게 먼저 언급을 하자면, 원치 않는 임신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죠. 엄마가 된다는 것 때문에 개인의 존재가 지워지고, 엄마로서의 역할을 계속해서 요구받는 한 여성이 등장하고, 작가로서의 나의 이상향을 채우고 싶은. 말하자면 인정 투쟁이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들을 쭉 따라가고 있어요. 어느 영화에서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는 이 영화의 솔직하고 담대한 점은 그 과정의 틀을 빌려서 아주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사회적인 성 역할에 대한 부분도 이야기되기도 하고. 그리고 임신하고 뭔가를 사랑하는 주체로서뿐만 아니라 꿈을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갈망 같은 것들도 그 틈에서 다 발견이 되는 영화죠. 그리고 임신 주체인 여성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곁에서 파트너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상황 전체를 비슷한 비중으로 풀어낸 그 힘에 압도당한 부분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고요. 사회적으로 각각 요구받는 성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이들의 관계에 어떠한 균열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더 폭넓은 시선을 가진 영화가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여러 차례 밝히신 바와 같이 자전적인 부분이 많은 이야기이고, 아주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은 이야기인데 이걸 세상에 내놓는 기분은 지금쯤 어떻게 달라지셨을지 그게 가장 궁금했어요. 이전 작품에도, 혹은 다른 창작물에도 사실은 창작자 개인이 아주 투영되지 않기란 어렵잖아요. 일부씩은 다 있을 텐데 이렇게 일기 같은 영화가 세상에 나왔을 때의 기분은 조금 남다른 것이기도 할 것 같아서요. 만드실 때와 공개가 되고 지금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유지영: 시나리오 쓸 때부터 시작해서 개봉까지의 모든 기간 안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임신과 출산은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고, 사건들은 모두 픽션이지만 제가 많이 투영되어 있는 이 부분들을 저는 자꾸만 지나치고 싶고, 또 저만의 방식으로 이 영화로 애도해서 보내 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 쓰고 나면 더 괜찮아지겠지. 현장 가서 보면 다르겠지.’ 했는데 매 순간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볼 때 울컥한 적이 많았고, 시나리오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지나고 나서도 이 영화를 보기 힘들 정도로 괴로울 때도 있었어요. 예전에 제 첫 장편 영화 같은 경우는 지나갔던 20대를 돌이켜 보면서 ‘그때 저렇게까지는 안 살아도 됐는데 좀 실패하면 어때.’ 하는 마음의 후련함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인간관계나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겠고, 다만 이 영화를 만들고 GV를 하면서 늘 집에 돌아갈 때 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오늘 했던 말들, 주인공들이 앞으로 찾아갈 욕망들을 응원하고, 그 욕망에 서로가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내가 지키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은선: 영화가 말하자면 여러 번의 이별이 있는 영화인데 그냥 단순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가장 크게는 내 몸에서 출산을 한 아기와의 이별이 가장 가슴 아프게 자리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또 관계가 이별되기도 하고, 그리고 스스로에게나 혹은 관계 안에서 미성숙하게 굴었던 어떤 시절을 보내는 이별 같다는 생각도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들었어요.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창작자가 자기의 생각과 모든 시간이 투영된 이 작품과 아주 잘 이별하게 되기를 정말 간절하게 바라게 되는 작품이 간혹 있는데 저는 이 영화가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좀 어렵다고 말씀하셨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에 ‘유지영 감독 역시 이 영화와 잘 이별할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유지영: 감사합니다.

 

이은선: 한예리 배우님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굉장히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하는 영화라 보고 난 뒤에 저희도 말이 좀 없었죠. 이후에 말을 더 많이 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고요.

 

한예리: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자리에서 못 일어났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페이드아웃이 되고 꽤 오랫동안 타자 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를 제가 계속 듣고 있더라고요. 저도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까 이런 현실적인 부분에서 부딪히는 여성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고, 저 또한 어떤 부분 그런 것들을 감내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도 있고요. 그리고 이별이라는 건 모든 사람들이 겪는 아픔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도 와닿는 게 컸고, 인간관계도 컸어요. 그리고 자신의 성취라는 것도 삶에서 그거 외에 나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존재들 같은 거에 대해서 좀 많이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가 참 날카롭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결국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한발 더 나아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하는 영화였어요.

 

이은선: 아무래도 양쪽의 입장에 고루 이입하게 되더라도 재이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는 면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재이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계속 듣잖아요. 본인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지만,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사실 저는 재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구석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기 말고 자기의 욕망을 더 투영하기 때문에 이기적인 게 아니라 관계를 볼 줄 모른다는 점에서 약간 이기적인 어떤 면모를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건 저는 사실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이 사람은 본인의 작업과 자기를 거의 동일시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은 작업과 나를 분리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예 그걸 생각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는 이 주인공을 그렇게 바라보았는데, 재이라는 인물에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도 궁금하고, 그리고 한해인 배우의 연기 톤이 재이의 어떤 부분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었을 거라는 짐작을 저도 계속 하면서 봤거든요. 같이 연기하는 한예리 배우님 눈에는 어떻게 보였는지 그 두 가지가 좀 궁금하네요.

 

한예리: 저도 똑같이 어떤 관계에서 이 사람이 미숙해서 이기적이다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가졌을 때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저 사람이 저렇게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정말 자신이 없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정말 잘 알아서 이 관계에서도 미숙할 거라는 걸 틀림없이 알기 때문에 저렇게 얘기하는 거였을 텐데.’라는 생각이 좀 들기는 하더라고요. 그래서 뒤편에 건우가 “난 널 위해서 다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원하는 걸 해 주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어요. 그래서 ‘이 관계에서 이 여자가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이유는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말하자면 그거를 자기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해서 파멸로 갈 것이라는 거를 본인의 내적 예민함 때문에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들이 되게 많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건우와의 관계에서도 조금 삐거덕거리는 부분이 있고, 본인이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도 사랑스럽게 봐준 건우를 또 많이 사랑했을 것 같았어요. 자신의 어떤 모습들을 숨기는 게 아니라 가감없이 보여 주는 편이잖아요, 재이는.

그리고 해인 씨 같은 경우는 제가 연기를 보면서 되게 놀랐던 게 ‘진짜 감각적으로 연기를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몸의 텐션이라든지, 아니면 그 사람이 아주 얇게 뱉는 숨이라든지 단전이 아니라 이 위에서 호흡하고 있는 느낌이더라고요. 그게 갖고 있는 불안과 떨림을 굉장히 잘 표현해 주고 있고, 뭔가 묘하게 바닥에서 0.1mm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울거나 호흡할 때 신체를 많이 쓰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동작이 뾰족하고 예리해 보이는 느낌들이 있었고, 그리고 두 사람이 오랫동안 싸우는 씬에서 호흡 정리를 못 하고 팔을 겨우 올리면서 눈을 만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너무 좋았어요. ‘이 사람 연기 너무 잘한다.’ 감탄하면서 봤던 장면입니다.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이은선: 그 장면에 대해서는 또다시 언급할 일이 아마 오늘 GV 중에 있을 것 같고요. 물론 배우들에게는 어떤 옷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그 옷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다양한 능력들이 있지만, ‘불안함, 히스테릭함, 주체가 안 되는 어떤 무언가’를 연기하는 해인 씨는 항상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끼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 그 능력치가 거의 최대한으로 터져요.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왜 태풍 오기 전에 창문이 가늘게 떨리는 거 있잖아요. 저는 해인 씨 연기 보면 항상 이런 톤의 무언가가 생각이 나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이 제목이 아니라 ‘Birth’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고, 이 영화에 한해인 배우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비슷한 무언가를 상상했던 것 같아요. ‘배우가 가지고 있는 기질, 또 배우로서의 자질 같은 것이 이 역할에 어떤 식으로든 아주 많은 영향을 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같이 작업하셨을 때 그 점이 어떤 식으로 캐릭터에 수용됐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유지영: 이것도 GV를 하다가 얼마 전에 깨달은 점인데요, 관객분이 (한해인 배우를) 어떻게 캐스팅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주셨어요. 그런데 그 질문 듣고 둘 다 ‘오잉?’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던 게, 제가 같이하자고 이야기를 한 적도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해인 씨를 떠올리면서 (해인 씨한테) 시나리오를 보내고 처음 미팅을 갔잖아요. 그 미팅 자리에서 그냥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많은 걸 나누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말을 나누기는 했지만, 평소처럼 “시나리오를 어떻게 보셨어요? 어떤 캐릭터로 해석되나요?” 이런 것들을 묻지도 않고, 또 배우들은 반대로 감독한테 글에 대해서 묻고 싶은 걸 묻고 하는 게 일반적인데 해인 배우와의 미팅은 이런 종류의 만남이 전혀 아니었던 거예요. 해인 씨를 만나서 그냥 어떤 책 좋아하고, 어떤 음악 좋아하는지 같은 사는 이야기 조금 하고 잠깐 나가서 아무 말 안 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그냥 들어오고 이러고 그날 헤어졌는데, 암묵적으로 서로 하기로 되어 있더라고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저는 해인 씨가 제 배우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이은선: 두 사람 다 말은 안 했지만 ‘오늘 만나는 건 이미 하기로 했기 때문에 만난 거야.’라는 식의 마인드가 있었던 걸까요?

 

유지영: 그러니까 저희가 배우들을 만나고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만나고 얘기를 나누어 봤을 때 생각했던 것과 다를 때가 있잖아요. 해인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낸 건 당연히 이 배우와 같이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보낸 것이지만, 만나 봤을 때는 또 모르는 거고요. 저도 그전에 (해인 배우를) 만나 본 적은 없고 영화로만 접했기 때문에 ‘한해인이라는 사람’을 만나 보는 일이 되게 중요했는데, 그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깊은 이야기 없이도 이 사람에게서 오는 그냥 ‘재이다!’ 이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이 작품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이 해 보아요.” 이런 말 없이 그냥 안녕 하고 헤어지고, 다음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이은선: 영화가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을 에두르고 있는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사실 저는 더 창작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중요한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고백하자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단 한 장면도 편안하지가 않았어요. 너무 불안하고, 공간 전체가 낯설게 세팅되어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거든요. 집이 낯선 공간처럼 느껴지는 순간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게 없는데,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랬던 것 같아요. 유일하게 마음이 편안했던 공간의 포착이라면 맨 초반에 아침 식사하는 장면 정도? 그 장면 빼놓고는 특히 밤 장면에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건우가 냉장고에서 우걱우걱 뭔가를 꺼내 먹고 있는 재이를 보고 방으로 들어갈 때에는 거의 공포 영화처럼 장면들이 찍혀 있잖아요. 그래서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고 포착하는 것 또한 어쩌면 이 영화의 중요한 목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인물을 떠나서 인물들을 가두고 있는 공간을 담고자 했을 때 어떤 목표가 있으셨어요?

 

유지영: 실제로 제가 살던 그 당시의 집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고양이들이 있고, 작업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체 모를 불편함이 늘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투영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고, 또 하나는 이 영화는 드라마지만 처음부터 ‘기저의 어떤 불안함들, 굉장히 불길한 기운들이 흐르고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비전이 있었거든요. 공간을 로케이팅 할 때부터 시작해서 미술 세팅, 또 하나는 카메라의 거리를 통해서 보여지는 공간뿐 아니라 때로는 배우들을 낯설게 보이게 하고 또 어떨 때는 지나치게 가까이 들어가서 더 불편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런 식의 여러 가지 방법들을 쓰면서 기저에만 있던 불안과 공포 같은 것들이 점점점 수면 위로 들어 올려지는 순간까지의 리듬감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러한 장치들 안에 이 로케이션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아요.

 

한예리: 식탁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출판이나 꿈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그 다음에 이제 출판을 하게 되잖아요. 축하를 한 이후에 두 사람이 같이 식탁에 앉아서 뭔가를 먹는 장면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식탁이 되게 어둡게 나오고, 집도 어둡게 계속 나와서 뭔가 ‘행복이 여기서 끝나는 건가?’ 하는 그런 느낌이 막 불안하게 오더라고요.

 

이은선: 지금 제가 언급하려고 하는 부분을 말씀해 주셨는데 공간을 담는 방식에 대한 성격을 느끼실 수 있는 영화의 구조를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면, 아까 제가 초반에 임신한 주체뿐만 아니라 그 곁에 서 있는 파트너의 성 역할까지도 동일한 비중으로 바라보려고 한다는 데서 이용한 어떤 버티는 힘 같은 게 느껴진다는 표현을 했었잖아요. 저는 그게 애초에 이 영화에 되게 중요한 설계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두 사람의 상황을 비슷한 비중으로 담는다는 거. 그리고 거기에 또 하나 조금 더 구체적인 안이라면, 둘을 비추던 카메라가 어느 순간부터 계속 둘을 (각각) 찍거든요? 각자의 상황을 보여 각자의 상황을 보여 주기 위한 의도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저는 그냥 그게 기본적인 영화의 구조처럼 느껴졌어요. 붙어 있던 것들이 서서히 갈라지고 균열이 생기고, 결과적으로는 각자의 프레임이 생기는 것. 이게 아주 명확하게 느껴졌던 게 교도소 장면인데, 이전에는 그냥 둘이 함께 있는 마스터 샷을 쓰거나 아니면 각자의 상황을 비추다가 둘이 한 공간에 있는데 계속 분리된 어떤 것들을 보여 주거든요. 이게 촬영상의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영화 안의 설계처럼 느껴진 부분도 있었는데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아 가는 과정에 대한 구조상의 고민들이 조금 궁금하기도 하네요.

 

유지영: 우선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사실 이런 구조가 익숙하지는 않잖아요. 저는 주인공이 한 명이기를 바라는 관객들의 마음을 알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끝까지 평행선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제가 재이나 건우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재이에게는 건우가 있어야 성립되고, 건우에게는 재이가 있어야 성립이 되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가 처음에서부터 어떻게 보여지고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 주는 게 이 영화의 목표였어요. 거기에서 오는 각자의 깨달음이 제가 관객분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들이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부터 애초에 그런 구조로 쓰여 있었고, 촬영 콘티 단계에서도 초반에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담는 그런 방식을 취하다가 임신이라는 사건이 촉발되고 나서는 가급적 그들이 웬만하면 한 화면에 잡히지 않도록 했어요. 건우는 건우대로 완전 단독이고, 재이는 재이대로 이렇게 말씀해 주신 것처럼 찢어질 수밖에 없는 형식을 취했던 것이고요. 그리고 이제 마지막의 교도소 장면은 사실은 죄를 짓고 들어가서 나오면 그만인 공간이라면 그 교도소 벽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벽이겠어요? 그런데 더 큰 무게나 어둠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이 두 사람 사이의 진짜 벽은 (교도소 벽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을 겪고 나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둘은 봉합될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안타깝게 여기고 마음이 아프지만 위로해 줄 수 있는 순간은 아니라는 셔터가 확 셧다운되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고, 그 장면은 그래서 대사를 되게 중요시하면서 쓰기도 했어요.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이은선: 일반적인 영화 상영을 볼 때는 사실 이런 구조까지 내가 생각하면서 볼 이유는 전혀 없어요. 그런데 이런 감각을 느끼셨다면 ‘사실은 이런 설계 때문이었지 않았을까요?’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관객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구조, 설계 이런 표현을 썼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잘 몰라도 영화가 나를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고, 결국에는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사실은 영화 만들기의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아주 잘된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나마 드리고 싶었고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장면 중에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이라면 아까 한예리 배우가 언급해 주셨던 아주 날이 선 채로 싸우는 그 장면일 텐데 ‘그때 대사들을 나라면 어떻게 써야 했을까.’가 정말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그 대사 가운데 저는 너무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말들이 “이놈의 임신 때문에.”라고 말하는 그 장면부터 시작해서 “너무 지친다.”라는 말에 “니가 왜 지쳐!”라고 하잖아요. 나는 이제 시작인데, 지치지 말라고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는 저 마음의 동력도 나라면 하지 않을 말이겠지만 너무 뭔지 알 것 같은 대사들이어서 ‘어떤 과정의 상상 끝에 이런 대사들이 나왔을까.’가 가장 궁금했고, 그 장면에 또 하나 궁금했던 건 카메라의 태도였어요. 이 카메라가 전체적으로 인물들에게 되게 조심스러워요. 그 장면에서는 저는 어떤 것까지 느껴졌냐면 ‘이들의 일에 절대 개입할 수 없다.’라는 인상으로 카메라가 서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 대사를 써 내려 간 과정과 카메라의 위치, 혹은 태도를 어떻게 고민하셨는지 두 가지 여쭈어보고 싶었습니다.

 

유지영: 대사 같은 경우는 아마도 제가 장기 연애를 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대사가 아닐까 생각하고요, 이 영화에 나오는 많은 대사들이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거든요. 이를테면 꿈 이야기라든지 하는 것들이요. 이번 영화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말이 굉장한 위로도 되지만 동시에 굉장한 상처도 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사를 많이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수정한 끝에 나온 대사들이고, 그 장면 같은 경우는 실제로 두 테이크를 갔어요. 두 번째 걸 오케이 해서 썼는데, 첫 번째 테이크를 보고 ‘이거는 됐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두 번째 때에는 “이번에는 마음껏 한번 해 봐라.” 해서 나온 결과물인데 그때 나왔던 중간중간의 호흡들이나 애드리브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합쳐지면서 저 역시도 제가 썼지만 스크린으로 보니까 더욱 객관화가 안 될 때가 있더라고요. 아무튼 대본에서 대사는 참 중요하잖아요, 배우의 입을 통해 발화가 되면서 우리가 믿게끔 해야 되니까. 늘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썼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메라의 태도는 정말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느낌이었나 봐요, 저희가 원래는 그 쇼트를 투 샷을 찍고 (한 번씩) 잘라서 갈 계획이었어요. 대사도 꽤 길기 때문에 몸도 풀 겸 처음에 쓸 투 샷 쇼트를 먼저 찍자 해서 갔는데, 첫 번째 테이크 때 제가 그걸 보는데 다가가지도 못할 정도로 숨이 멎을 것 같은 거예요. 아마 현장의 공기도 그랬던 것 같아요. 누구 하나 소리 낼 수 없을 만큼 에너지가 굉장히 강조되었던 씬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민했던 건 감정이 이어지는데 자를 이유는 없다고 늘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서 잘라 들어갈 틈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자를 때는 자름으로써 그 연기들을 더 빛나게 하고, 감정들을 살리고, 때로는 더 거리를 두게 하기 위함인데, 지금 이 장면에서는 내가 감히 치고 들어가서 인위적으로 이들의 상황을 앞서 잘라낼 수가 없는 그런 에너지가 있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촬영 감독님하고 논의헤서 결정된 장면인데. 만약에 촬영 감독님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었던 장면이죠. 여러 컷이 있는데 딱 한 컷으로 제가 확신을 가지고 승부를 보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두 번째 테이크 때 찍힌 걸 보고 ‘그냥 이거는 확실히 좋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예리: 배우들도 그랬을 것 같아요. 그 느낌을 본인들도 하면서 알았을 거예요. 지금의 이 에너지가 좋고, 이 감정을 감독님이 오케이 할 때까지는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되게 컸을 것 같은데, 어쨌건 감독님이 빠른 판단으로 ‘한 컷만 찍는 것이 더 유리하다.’라는 걸 빨리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그 장면을 저희도 보고 그 중압감과 에너지를 같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그 장면을 보면서 누구 하나 더 편을 들거나 이 사람한테 더 마음을 주거나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두 사람이 나란히 서로를 보면서 팽팽하게 그 아픈 대사들을 할 때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더 마음이 기울었다면 영화가 조금 더 달라 보였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장면의 두 사람이 정말 서로를 바짝 당기고 있는 실처럼 느껴져서 ‘조금만이라도 건드리면 아주 빠르게 끊어지겠다.’라는 느낌을 그 장면을 보면서 더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은선: 저도 감독님 얘기하시는 거 들으면서 ‘역시 현장에서 연출자의 제1 덕목은 적합하고 빠른 판단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듣고 있었고요, 영화 안에 되게 날카로운 대사들이 많은데, 가장 날카로운 말을 꼽으라고 하면 ‘무책임, 이기적’ 이런 말들일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재이는 글을 쓰지만, 글이 아닌 다른 창작 활동, 그러니까 ‘자신의 재능이 곧 자기의 정체성이자 어떤 활동의 동력이 되는 사람들’한테는 모두 똑같은 고민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예리 배우도 분명히 나의 책임이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고, ‘내가 관계 안에서 이렇게 나의 재능만을 쫓아가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 무언가일까.’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었을 것 같은데요. 스스로 관계 안에서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는다든가 아니면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 어떻게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 편인가요? 여기서 재이는 그 중심을 잡는 데 어느 면에서 실패한 사람이기도 하죠.

 

한예리: 모르겠어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도 나름 사회적인 동물로 잘 큰 것 같기는 하거든요. 오히려 영화라는 작업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이기적일 수가 없더라고요. 특히 배우라는 사람들은요, 물론 이기적이게 작업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부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혀 연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혼자서 그걸 갈고닦기 위해 많이 노력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거나 할 때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그 시간은 무조건 끝나기 때문에 그 시간이 끝나면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 제가 그 두 배에서 세 배의 노력을 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고, 그건 한편으로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들을 저도 포기할 수 없거든요. 또 그건 배우 아닌 저라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동력이기 때문에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저도 더 배려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재이를 보면서 느꼈던 게, 저는 재이라는 사람이 되게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지금의 저는 저의 재능으로 무언가를 해낼 때 되게 많은 생각들을 해요. 그런데 아주 어렸을 때 무용을 할 때는 그런 생각들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약간 미쳐 있는 상태였거든요. 그게 아니면 안 됐었고, 그리고 뭔가 그 일을 못 하게 될까 봐 갖는 두려움도 엄청 컸고요. 그때는 진짜 친구들하고 우스갯소리로 막 “그래, 우리는 죽을 때 무대에서 죽는 거야. 무대에서 자신을 불태우다 죽는 거야.”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 들으면 너무 웃기죠. ‘미친 거 아니야?’ 이렇게 되는데. (웃음) 그때만 해도 그게 너무 중요했고, 나라는 사람, 나라는 사람의 자아나 나라는 사람의 성숙도보다 오늘 가서 두 바퀴 더 돌고, 세 바퀴 더 도는 게 더 중요했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제가 생각해 보니까 재이의 상태가 아주 순수하게 ‘그 재능과 열정, 그리고 쓰는 즐거움에 너무 심도 있게 빠진 사람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이렇게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은선: ‘쓰는 즐거움이란 뭘까, 죽기 전까지 그걸 깨달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잠깐 머릿속으로 하고 있고요. 여기서 재이의 상황이 이런 거라면 한편으로는 건우의 상황도 만만치 않잖아요. 이거는 사회적으로 본인이 책임을 갖는 위치에 있어 본 사람이라면 너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거든요. 그리고 이 사람에게도 사실은 서포트가 지금 너무 필요해요. 그런데 재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무언가 때문에 이 사람의 상황을 전혀 보지 못하는 이런 안타까운 전개들이 좀 이어지는데, 거기서 독특하다고 느꼈던 건 이게 건우의 회사 생활 안에서의 성장담인 것과 동시에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세대의 인식이 묘하게 깔려 있는 그 흐름이었어요. 원장님이 과거에 노동 운동을 했던 이야기가 굳이 그 캐릭터에 첨가가 되거나,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박가영 배우가 연기하는, 사실은 권고사직에 가깝지만 이 모든 합당함의 불합리함을 참지 못하고 회사를 나가 버리는 캐릭터를 통해 이런 노동 문제가 애매하게, 혹은 은은하게 바탕에 있는 게 되게 독특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만약에 이 시나리오에서 무언가가 빠져야 한다는 피드백이 있었다면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동일한 비중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강조될 수 있었을까.’ 하는 어떤 시대 상황에 따른 노동에의 입장 차이 같은 게 흥미롭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것들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건우의 상황에 세대별로 좀 다르게 들어간 이유는 뭘까요?

 

유지영: 일단 이 영화 안에서의 건우는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건우에게 일은 말 그대로 그 학원에서의 모든 일이죠. 크게 보면 이 영화는 집과 학원이라는 두 공간을 오가면서 재이와 건우를 보여 주고 있는데, 굳이 제가 이 영화를 통해 노동 문제의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건우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직업과 직장 안에서의 갈등이 일어나야지만이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자들의 바깥일처럼 보여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재이는 안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바깥일에서 문제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힘든 것들을 집에 와서 나누거나 표현하는 것이 되게 나약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그런 환경 속에 놓여지는 것 같아요. 감정 표현을 여자보다 남자들이 훨씬 더 억압받는 느낌이 있거든요. 이를테면 저도 남동생이 있는데, 남동생이 어릴 때 크게 웃거나 하면 “왜 이렇게 오두방정 떠냐.” 그런 식으로 남자들은 좀 참아야 되고, 억눌러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건우의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로 갈등을 만들어야 했고, 이 일들은 건우가 재이에게 말해 봤자 ‘재이는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하는 갈등들이어야 했거든요. 제가 학원에서 학생들 가르쳐 본 경험도 있고, 학원에서의 갈등을 생각하다 보니 가장 흔한 문제가 사실 이 영화에 나오는 그런 결의 문제들이어서 아마 자연스럽게 적용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예리: 저는 두 사람이 굉장히 안과 밖에서 치열하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어떤 생존의 위협을 계속 받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리고 어찌 됐건 건우는 본인도 ‘나는 평범해.’라고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사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드디어 꿈을 갖게 되면서 조금 더 달라지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데 그게 막 꺾이는 모습을 보니까 진짜 너무 속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었고, ‘왜 이런 상황에서 재이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을까.’ 이런 생각도 들기는 하더라고요.

 

이은선: 약간 빗나간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사람의 인생이 너무 짧아서 생기는 문제 같아요. 무슨 이야기냐면, 예를 들면 이삼십 대까지는 사람이 성숙해지기 위한 준비만 하고, 사오십 대 직장 생활에서 안정되어야 한다거나 그때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거나 하면 사실 이런 문제들이 안 일어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삼십 대라는 짧은 시간 안에 생물학적인 임신이든 사회적으로 자리 잡는 것이든 모든 걸 다 읽어야 하는 시기처럼 포장되어 있는 시기이기도 하잖아요. 사람이 어떻게 10년, 15년 만에 그렇게 성숙해지고 아기도 낳고, 엄마도 되고, 아빠도 되고 하겠어요. 이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 것 같기도 한데 ‘인간이 삶이 너무 짧고 유한하다 보니 그 안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어야 해서 생기는 비극이구나.’ 이런 생각도 지금 잠깐 들었어요.

 

한예리: 이것도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니 ‘올해 뭐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뭘 했는지 생각이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도 이렇게 40년 살면 끝나네.’ 이런 생각이 갑자기 불현듯 들어요.

 

이은선: 끔찍하시죠, 여러분? 올해가 거의 다 끝났어요. 계속 치열하고 날카로운 이 영화 안에서 제가 유일하게 애수를 느끼는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가로등이었어요. 그게 영화를 좀 은은하게 감싸 주고 있는 디테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건우가 계속 민원을 넣잖아요. 마지막 장면에서 건우가 넣은 민원인지도 모른 채 꺼진 가로등 불이 켜지면서 재이가 뒤를 돌아보는 장면이 이 영화에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지만 되게 애수 어린 무언가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아주 작지만 소중한 디테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가로등이 이 각본 안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의 흐름도 궁금하더라고요.

 

유지영: 애수라는 단어 너무 마음에 드네요. 가로등의 이미지가 아마 제가 이 영화를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떠오르는 키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건우와 재이가 매일 다녔을 그 가로등을 어느 순간 더 이상 걸어갈 일이 없게 되는 게 한때 인연인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시절 인연이라고 말하듯이, 그 길에서 어느 날 가로등이 꺼지면서 사건은 시작되고 다시 가로등이 켜지면서 둘이었던 사람은 이제 각자 하나가 되어 그 길을 걸어오죠. 이 영화를 다소 비극적으로 보실 수도 있고, 갑갑하고 괴롭게 감상하셨을 수도 있지만, 시작은 재이와 건우의 관계를 떨어져서 바라봤을 때 느껴지는 애수 어린 감성이 바로 그 가로등인 것 같거든요. 그게 그들의 관계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건우는 아주 자잘한 것들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고, 굳이 두 사람 다 ‘사랑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아도, 그런 가로등 하나를 고치기 위해서 재이가 늘 다니는 이 길에 꺼진 가로등이 불안하니까 끊임없이 민원을 넣는 그게 건우라는 사람이고, 마지막에 재이는 가로등이 꺼졌던 줄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당연히 이 가로등은 건우가 그렇게 켜 달라고 얘기했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죠. 아마 이 두 사람은 나중에 할아버지랑 할머니 되고, 친구가 되어서 만나면 그때는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지 않고 헤어졌을 때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채로 둘은 헤어진 거겠죠. 그런데 저는 그게 이들의 관계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재이가 건우를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만약에 재이가 건우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이 길을 걷지 않았겠죠. “나만 믿어 줘.” 하는 그 순간에 재이가 “나는 작가가 되고 싶지 엄마 되기 싫어.” 하면서도 임신을 유지시켜 나가고, “보호자 있으세요?” 할 때 그녀를 멈추게 하는 것은 나에게 있는 이 건우 때문이었어요. ‘이 아이는 나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지.’ 생각하게 되는 데에는 재이에게 건우가 늘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보여지기에는 건우는 되게 희생하고 착해 보이기 때문에 훨씬 더 재이를 사랑하는 것 같겠지만, 사실은 재이도 재이 방식대로 건우를 믿고 따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까 초반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관계에 있어서의 재이의 이기적인 모습, 그 부분에 대한 어떤 딜레마들이 저에게는 아직도 있는 것 같아요. 굳이 말하자면 제 있는 그대로를 봐 줄 수 있는? 그녀가 욕망하는 것들을 같이 나누려고 하지 않고도 각자가 욕망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그 욕망들을 ‘어느 정도 아름다운 거리감을 지키면서 갈 수는 없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을 때 재이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정말 자기와 글은 동일시고, 글이 안 써지면 무너지고 내 존재가 휘발되어 버리는 그런 사람의 사랑은 어쩌면 이게 최선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과연 이기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녀가 마지막에 혼자가 되었을 때 들여다본 그 길은 아득하고 굉장히 애잔하기도 하면서 내가 이 사건을 통과했지만 우리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아직까지 차마 깨달음은 없는 그런 상태의 세상의 미스터리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고, 그 장면의 내용도 그렇지만 보여지는 것도 이 가로등 장면들이 앞뒤로 관객분들에게 좀 묘하고 신비로운 그런 무드로 다가가기를 감각적으로는 또 바랐던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이은선: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자신의 사랑으로 만나면 너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니까 저희가 맨날 애인이랑 싸우고, 울고 “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비극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관객석으로 마이크 넘겨서 이야기 같이 나눠 보겠습니다.

 

관객: 재이가 글을 쓸 때의 루틴이 대단히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루틴들이 저렇게 세세한 건 경험이나 주변에서 누군가를 보고 만든 루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고한 부분이 있으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지영: 일단 많은 창작자들 중에 재이를 소설가로 선택한 이유부터 짧게 설명을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제가 많이 투영되어 있는 인물이고, 그래서 제가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어요. 그런데 재이를 영화 감독으로 만들어 버리면 제가 이 영화를 객관화해서 볼 수가 없고, 재이라는 인물도 객관화시키기 어려울 것 같아서 제가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이 뭘까를 생각했을 때 소설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들은 현장에 있는 몇 달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이나 작업실이나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보내거든요. 한 줄도 못 쓰는 날이 있더라도 그냥 마치 모니터랑 싸우기라도 하듯이 앞에 놓고 앉아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직업군이 소설가였고, 그래서 소설가들의 작업실이나 루틴들을 많이 참고하려고 인터뷰도 하고, 리서치도 했는데 사실은 별로 우리가 아는 극적으로 묘사되는 예술가의 면모들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그냥 제 책상과 제 노트를 그대로 영화에 가지고 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쓸 때 늘 그 초를 켜고, 거기 나오는 소품들도 다 제 소품들이고 제 책상에 있는 것들이에요. 저는 글을 두 장을 썼으면 두 장을 바로 뽑아서 봐야 되는 사람이거든요. 물성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으로 보는 거랑 종이로 보는 거랑 모니터로 보는 거랑 다르게 느껴져요. 그래서 항상 프린터는 책상 위에 있고 그런 설정들이 다 저에게서 온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은선: 그 작은 초는 실제로 되게 빨리 타잖아요. 그러면 하루에 몇 개의 초가 탈 동안 작업 시간을 설정한다 이런 디테일이 혹시 있으세요?

 

유지영: 그렇지는 않고요. 나중에 진이 빠져서 ‘오늘은 이 정도 해야겠다.’ 하고 보면 알 수는 있죠. 양적이든 질적이든 ‘내가 오늘 어느 정도의 작업을 했구나.’ 하는 인식이 초의 개수로 수치화될 때는 있는 것 같아요.

 

한예리: 그러면 감독님께서도 글을 쓰실 때 8시에 시작하시나요?

 

유지영: 그랬던 시기가 있었고요. 제가 생각보다 되게 일찍 일어나거든요. 일찍 일어나고 다시 자요. 전날에 늦은 술 약속이 있거나 그런 일이 없으면 보통은 7시에서 8시 사이에 일어나서 책상에 앉고 뭐든 그날 해야 될 것들을 정리를 하고요. 그리고 4시간에서 5시간 정도는 작업 시간을 반드시 가지고 나서 다시 자요. 그리고 일어나서 밥을 먹고 조금 더 작업할 에너지가 있으면 쓰고,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집에서 고양이들하고 놀거나 그런 루틴들을 쭉 오래 이어 온 시기가 있었죠.

 

관객: 영화 내내 재희와 건우가 서로 고립된다고 느껴졌습니다. 한예리 배우님은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라는 작품을 하셨는데, 건우와 재이를 어떻게 구하시겠습니까?

 

한예리: 저는 저 둘을 구한다면, 우와.... (웃음)

 

이은선: 재이를 어떻게 구할지를 이야기해 주세요. 만약에 저런 동생이 있다, 혹은 언니가 있다. 그것도 아니면 만약에 저다, 이러면요. (웃음)

 

한예리: 일단은 ‘재이가 저 모든 일을 겪고 난 뒤다.’라고 한다면, 빨리 재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거나 제가 재이가 있는 집으로 가서 밥을 차려 줄 것 같아요. 저 사람이 잘 먹고 있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고 이런 상황에 계속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건우가 그거를 간신히 좀 붙여 주고 있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기 때문에 ‘저 사람한테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밥이나 식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먼저는 밥을 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관객: 저는 영화를 볼 때 소품에 집중해서 보는 편인데 가장 눈에 띄는 소품이 연필이었거든요. 이 영화의 뾰족함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도 계속 연필을 보는 모습이 나오고, 학원에 연필 자체가 엄청 많더라고요. 그게 마지막에는 원장을 해치는 도구가 되는데 연필을 이용한 것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유지영: 연필이 학원에서 늘 등장하는 소품이잖아요. 그런데 재이와 건우를 떠올렸을 때 뭔가 심상적으로 이어지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재이는 연필로 글을 쓰지 않지만 재이 역시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고, 건우도 늘 연필로 어떤 면에서는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잖아요. 그것 역시 쓰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 둘이 굉장히 달라 보이지만, 두 사람의 어떤 연결 고리 같은 것을 주고 싶었던 게 그 연필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런 의도로 시작했던 게 학원에서 어떤 아이가 건우한테 “선생님은 평범하잖아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예술가나 소설가라고 하면 누군가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재이도 건우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정말 노동처럼 쓰는 일을 하고, 동일하게 건우도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둘은 특별히 다르지 않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결국 뒤에 갔을 때는 재이가 ‘더 이상 글을 세상에 내놓지 않겠다. 만족스럽지 않다.’하고 완전히 무너져 버리잖아요. 그때 꺾여 버린 게 만약 재이의 연필이라면,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분노와 붕괴, 어떤 참을 수 없는 화 같은 것들이 마치 안테나처럼 건우에게 전달이 되고, 그때 사람을 해하게 하는 것이 연필이었으면 좋겠다. 거기서 이제 이 둘은 완전히 다르게 보였으면 좋겠다라는 의도들이 있긴 했어요.

 

관객: 재이는 유명해지지 않고 싶다고 말했는데 또 잊혀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서 특이하게 느껴졌는데요. 마지막에 사인회까지 가졌다는 것은 결국 유명해졌다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혹시 감독님께서 그렇게 배치하신 이유가 있나요?

 

유지영: 재이는 한결같이 자기의 만족을 향해서 나아가는 창작자로 설정했고요. 그때 건우에게 나도 그렇게 잊혀질까 두렵다고 말한 건 그 맥락 안에서 ‘그렇게 아이를 낳고 결혼하고 사라져 간 그 선배들처럼 내가 그렇게 잊혀질까 봐 무섭다.’는 뜻이고, ‘지금은 유명한데 지나고 나서 덜 유명해질까 두렵다.’ 이런 의미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도 사람들이 그 장면을 봤을 때 ‘이제 세 번째 책을 냈으니 더 유명해졌겠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장면을 또 다르게 읽으면 ‘재이가 기어코 이제야 글을 써 냈구나.’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결국은 만족할 만한 글을 썼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한예리: 진짜 그런 것 같기는 해요. ‘재이는 일단 글 쓰는 행위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집착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활동을 중단하면 정말 자신이 없어질 것 같다는 위협을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은선: 어떤 점에서 저는 그게 욕망의 정확한 지점인 것 같아요. 어느 순간은 이루고 싶었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정반대되는 무언가를 꿈꾸기도 하잖아요. 유명해지는 건 더 그런 것 같아요.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그 유명한 짤 같은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이게 저는 어쩌면 욕망의 정확한 실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예리: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그 날 사인회가 끝나고 술자리를 안 하고 들어가잖아요. ‘혹시 그게 아이가 죽은 기일일까.’라는 생각도 잠깐 했었거든요.

 

유지영: 그렇게 했었어야 되는데 너무 멋있네요. 그렇게 못했네. (웃음) 관객분들이 알아채셔도 좋고, 모르셔도 좋은 부분인데 그건 재이가 술을 끊었다는 걸 의미해요. 그리고 재이의 혼자 사는 조그마한 방의 책상 위에는 더 이상 술이 없고, 재이가 술을 끊었다. 그런 의미를 좀 주면서 그것이 이제 재이가 앞으로 가져올 변화들을 좀 건강하게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은선: 그렇죠. 그전에 ‘술 없으면 글 못 쓰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작가이기 때문에 그 변화가 좀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하겠죠.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 영화고 긴 러닝 타임만큼이나 보여 주고, 던져 주는 질문도 많기 때문에 사실은 더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지만 시간 관계상 마무리해야 될 것 같고요. 한예리 배우님부터 오늘 오신 관객 여러분께 끝인사 한 말씀씩 부탁드릴게요.

 

한예리: 오늘 이 영화 보시면서 되게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추천해 주고 싶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음에 또 극장 찾아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고요. 오늘 이렇게 먼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지영: 이 영화는 수많은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나인 자체로,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사실은 그렇게 행동하면 내가 이기적인 거 아닌가 죄스럽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 그리고 그런 딜레마들이 결코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지금 이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라는 제목을 선물로 주신 김병종 화백, 그러니까 소설가 고 정미경 작가님이라고 해야겠네요. 작가님 책의 내용과 이 영화는 다르지만,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떠올리시면 어떤 식으로든 각자 다르게 보셨겠지만 재이가 꼭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은선: 마지막에 자기만의 공간에서 이야기가 끝난다는 표현을 써 주셨는데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는 건 오래되었지만 되게 여전하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텍스트인 것 같아요. 그 라스트 씬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고, 또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런 질문을 받잖아요. “요즈음 작가님의 마음이 어디로 닿아 있는가.” 관계든, 아니면 개인의 바람이든 욕망이든 그걸 고민하느냐와 아니냐의 경로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모두가 내 마음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이 영화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있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신 두 분께 큰 박수 부탁드리고요, 안녕하게 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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