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건져 올린 목소리
〈되살아나는 목소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11월 10일(일) 오후 5시 상영 후
참석 박수남, 박마의 감독
진행 정희진 여성학자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기록입니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발군의 기억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린다. 재일 2세 박수남 감독이 기억한 목소리는 그의 딸 박마의 감독의 손을 거쳐 현재의 관객에게 닿는다. ‘잊혔던’ 시간들은 필름에 새겨지고 지워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는다. 과거를 잘라내고 지우고 덮어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박수남, 박마의 감독은 ‘아직’ ‘여기에’ 수많은 목소리가 남아있다고 답한다.
정희진 여성학자(이하 정희진):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영화 즐겁게 보셨나요? 저는 〈되살아나는 목소리〉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여성학 공부하는 정희진이라고 합니다. 차례로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마의 감독(이하 박마의): 저는 〈되살아나는 목소리〉 박수남 감독 딸 박마의입니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 박수남 감독님, 인사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박수남 감독(이하 박수남):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습니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다 보니 일본에는 저를 아는 분들이 꽤 계신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저를 모르는 동포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이렇게 많은 동포에게 저의 영화를 보이게 되어서 너무 큰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정희진: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지난 100년간 한국과 일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두 나라 관계는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통찰하는 영화입니다. 50시간의 기억을 재조합해서 기억하려는 시도를 한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여러분께서 많은 질문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질문 있으신 분 손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관객: 네 안녕하세요. 지난 디아스포라 영화제 때 처음 영화를 보았고요. 오늘 두 번째로 보게 되었습니다. 1년 전에는 못 봤던 것들이 또 보이고 해서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영화에 나오는 ‘고마쓰가와 사건’을 보며, 크게 두 번 놀랐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당시에 일본의 재일조선인 커뮤니티에서 거의 건드리지 못했던 영역인데, 박수남 감독님께서 직접 이진우 씨를 찾아가고 왕복 서간을 하며, 만남을 이어가려 했다는 점이 놀라웠고요. 두 번째로 박수남 감독님이 일본인 피해자분의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어머니의 반응이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두 분께서 통찰력과 깊이를 가지고 피해와 가해의 맥락 안에서 교류했다고 느꼈습니다. 박수남 감독님이 작업을 이어가시는 데 있어 ‘고마쓰가와 사건’과 이진우 씨와의 만남이 중요한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영화에도 언급이 되기는 했지만, 이진우 씨와의 만남과 관련하여,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면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박수남: 네,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고마쓰가와 사건’이나 이진우에 관해 많이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 말도 많고요.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영화를 한 편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제가 처음 피해자분의 댁을 방문을 했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영화에도 나오듯이 피해자분의 부모님께서 이진우의 친척이시냐고 그렇게 경어를 쓰시면서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진우는 만난 적도 없다. 친척도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부모님께서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왔냐고, 왜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 사과하러 왔냐고 하시면서 굉장히 놀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우와 나이가 비슷했고요. 진우도 저처럼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 2세입니다. 진우의 친척이든 친척이 아니든 저희는 폭풍 속에서 한 배에 탄 고독한 동료 같은 느낌이었고요. 그래서 진우의 운명은 그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 2세로서, 당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비슷한 10대 또래의 재일 2세가 10만 명 정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진우 씨는 살인범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는데요. 저는 이 사건의 진정한 범인은 일본 사회와 일본이라는 국가가 아닌가 생각했고 그들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우는 일본 사회, 그리고 국가가 낳은 피해자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라고 처형을 받았지만, 어떤 면에서 역으로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일본에 계신 분들과 동포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정희진: 예, 훌륭한 답변 감사합니다. 또 질문 있으신가요?
관객: 네, 영화 잘 봤습니다. 저는 이 영화 편집 담당해 주신 박마의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영화가 재일 조선인이나 원폭 피해자분들 얘기를 다루며, 역사와 기록 위주로 흘러가는 것도 있지만 박수남 감독님이라는 한 분 또한 이 영화를 담당하는 하나의 축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당당하고 위엄 있는 한 분의 모습에서 굉장히 감명받았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영화를 구성함에 있어서 어떤 어느 기준을 두고 편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 초반부에 두 분이 카메라를 사이에서 두고 다투셨던 장면 때문에 더 궁금하고요.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자면, 엔딩 장면에서 암전 처리되면서 몇 마디 대사로 끝나잖아요. 시력은 거의 잃었지만 발군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안심하라고 말씀하시는 박수남 감독님이랑 거기에 대해 “요시! (일본어로 긍정을 표하는 감탄사)”를 외치는 박마의 감독님의 대사가 제가 지난 몇 년간 본 영화 중에 최고로 안심되고 행복한 엔딩이어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용기를 얻었습니다.
정희진: 예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도 마지막 장면이 발군의 라스트 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마의: 사실, 처음에 한국 사회가 이 사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절망했어요. 영화로 만들어서 한국의 동포들에게 보이고 또 이해를 얻기에는 너무 어려운 테마가 아닌가 많이 후회를 했어요. 그런데, 이진우 사건을 빼고는 지금의 일본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의 삶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도 나왔듯이, 재일동포를 향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가 여전히 일본 사회에 퍼져 있고 저희는 여전히 그런 자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진우의 이야기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10대의 이야기로서, 저희에게는 엄연한 현실의 문제입니다. 저희는 기본적인 생활권 자체를 억눌리고 뺏기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차별 문제가 아니고 인권 침해의 문제입니다. 저희는 여전히 일본 사회의 억압과 폭력 속에서 괴로움에서 시달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고마쓰가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자면요. 피해자의 부모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자리는 조선 사람이 많이 학살당한 자리이고, 간도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내 형제도 다 참가했다.”라고 말입니다. 이분들은 조선인 학살로 시냇가에 며칠 동안 핏물만 흐르는 잔혹한 광경을 목격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먼저 사건을 일으킨 것은 우리들이고 ‘고마쓰가와 사건’이 일어난 데는 일본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진우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 신문 기자가 그렇다면, 지금 이진우를 석방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지금 이진우가 일본 사회에 나가려고 해도 일본 사회에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이죠. 이진우가 만일 석방되어도 일본 사회에서는 살 수 없으니까, 자신이 진우를 받아주겠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신문 기자가 아버님 말씀에 너무 감동해서 그것을 기사로 신문에 냈는데, 그 기사를 읽은 일본 독자들이 집에 편지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너는 조선인에게 자기 딸을 잃고도 자기 집에서 받들겠다는 소리를 하냐고. 너는 일본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가?’라면서 죽으라고 칼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결국, 아버지는 그 해에 연말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수남: 이 ‘고마쓰가와 사건’과 관련해서는 영화에 나오는 책뿐만 아니라 감독님이 이진우와 나눈 왕복 서간과 재판 과정을 다룬 책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책을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영화만으로 표현하는 데 굉장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방금 감독님께서 말한 피해자분의 아버님께서 이진우가 석방되면 받아주겠다고 했던 이야기들은 영화 초반에는 넣었다가 ‘고마쓰가와 사건’ 부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편집하면서 빼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무척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측에서 이진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고 이 내용에 대해서 증언할 수 있는 사람도 박수남 감독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편집에서는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희진: 박수남 감독님과 박마의 감독님, 두 분이 작업을 하며 논쟁하셨던 장면과 작품의 편집 방향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마의: 영화 앞부분에 나온 저희 두 사람의 논쟁 장면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논쟁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고 그전에 어머님께서 1시간가량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화를 내신 그런 상황입니다. 편집과 관련해서 어떤 논쟁이 있었다기보다는 저는 항상 어머님의 분노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를 생각하는데요. 어머님께서는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실이 더 이상 어둠에 묻히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저는 어머님의 분노는 어떻게 보면 피해자분의 분노와 동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가면서 편집하고자 마음을 썼습니다. 저희 모녀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증언자의 분노나 슬픔을 어머니가 대변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존중하고 그것이 반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편집했습니다.
정희진: 사실 편집 과정에는 또 다른 판단과 선택이 있지만 최대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셨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논쟁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분 질문 있으신가요?
관객: 네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건이어서 이렇게 또 직접 감독님께서 말씀해 주시니까 한편으로는 참담한 기분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좀 드는 것 같은데요.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에도 언급되는 감독님의 다른 작품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한국에서 〈또 하나의 히로시마 - 아리랑의 노래〉(이하 〈또 하나의 히로시마〉)를 비롯한 감독님의 전작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박마의: 있어요. ‘시네마달’에 공동체 상영을 신청하셔도 되고, 지금은 ‘퍼플레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침묵〉 꼭 보세요. 이옥선 할머니가 주인공이십니다. 〈또 하나의 히로시마〉하고 〈누치가후 - 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이하〈누치가후〉) 같은 경우에는 일본어 자막밖에 없기는 하지만, 일본어 검색 사이트에서 검색하시면 ‘Vimeo(비메오)’에서도 보실 수 있고요. 지금 DVD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 영상자료원 가시면 일본어 자막이기는 하지만, 〈누치가후〉를 보실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히로시마〉 관련하여 꼭 말씀드리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되살아나는 목소리〉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을 때, 〈또 하나의 히로시마〉도 특별 상영을 했습니다. 베를린에 가서 베를린에 사는 일본 사람들하고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는데요. 베를린에서 〈또 하나의 히로시마〉를 본 20대 일본 여자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일본에 일시 귀국하셔서 일본에서 일본인과 함께 〈또 하나의 히로시마〉를 꼭 보고 싶다고 자주상영을 기획하셨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그런 젊은 분들의 운동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말씀드리고 싶었고 그런 흐름에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희진: 예, 감사합니다. 저는 〈침묵〉을 꼭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됐고 한국 사회에서 재현되지 않은 방식의 굉장히 소중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질문 있으신 분 계실까요?
관객: 안녕하세요. 영화 아주 잘 봤고요. 모든 감독은 일생일대의 주제를 계속 가지고 작업을 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박수남 감독님께서는 피해자의 기억을 담아내는 작업을 해오셨고 박마의 감독님도 최근 몇 년 동안 같이 작업을 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박마의 감독님께서 감독 개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일생일대의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박마의: 사실 영화 속에 나오는 그 50시간 분량의 필름이 10시간 정도 분량밖에 복원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남은 40시간 부분을 복원하고 어머님과 함께 확인을 거친 뒤 그 필름을 모두에게 보이고 싶어서 지금 서두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작업과 별개로 이제 미완성 작품이 하나가 있는데요. 그것은 오키나와의 집단 자결을 다룬 것으로 3시간짜리 가편은 끝난 상태입니다. 빠르게 완성해서 공개하는 것이 또 목표고요. 사실 저는 제가 누군가를 취재하려는 계획 같은 것보다도 지금 시간과의 승부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어서 이 축적된 기록을 세상에 내놓는 게 우선입니다.
정희진: 네,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굉장히 기다려지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질문하실 분 손 들어주세요.
관객: 영화 너무 감사하게 잘 봤습니다. 저는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거의 모른 채로 왔기 때문에 더 놀라운 점이 많았는데요. 이 영화를 처음 제가 알게 되었다는 점에 굉장히 놀랐고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해 주신 점에 대해서 무척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아까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지만, 이진우 씨와 교류하고 관련된 활동을 하시면서 ‘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협회)’과의 마찰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도 긴 세월 동안 이런 여러 가지 작업을 하시면서 재일조선 사회와 어떤 관계를 이후에 갖고 가셨는지, 이러한 작업의 동력으로서 민족적인 정체성이 무척 중요하셨을 것 같은데 재일조선인 사회에서는 감독님의 작업에 대해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무척 궁금하고요. 또 취재 과정에서 아까 잠깐 군함도 장면에서 언급이 되기도 했지만, 같은 식민 지배에 피해를 당했던 중국이나 대만의 시민들과 혹시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박마의: 재일동포 사회와의 관계는 한마디로 말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조국 분단과 함께 재일동포 사회에도 분단이 있었고 ‘총련’ 쪽 ‘민단’ 쪽 다 방해가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고립돼서 혼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군함도 부분에 나오는 중국인 강제 노동 피해자와 관련해서는 그 화면 필름을 찍었던 그때 당시에는 취재하지는 않았던 상태였고요. 이번에 다시 가서 나가사키 시민들이 함께했던 재판 투쟁을 통해 저희도 처음으로 미츠비시와 관련한 중국인 피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객: 네,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봤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한 매체라는 내용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는데요. 그래서 저는 영상과 글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요. 구체적으로는 감독님께서 기자로서 글을 쓰실 때와 또 감독으로서 영상을 찍을 때 어떻게 마음가짐이 달라지시는지 또 기록 범위나 기록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어떻게 달라지시는지 궁금해서 질문드렸습니다.
박수남: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에 통감합니다. 게다가 저는 눈에 병이 있기 때문에 지필도 어려워져 있는 단계입니다. 저는 나이도 있고 영화를 하는 데는 돈도 많이 들고 또 제가 에너지가 점점 줄어갑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글씨 쓰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걸 보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잘 쓰신다고 놀랐습니다. 앞으로는 펜으로 다시 돌아가서 표현하는 것에 힘쓰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희진: 질문이 굉장히 많은 관객과의 대화입니다. 제가 한마디 보태자면 제가 생각하는 박마의 감독님이나 박수남 감독님은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1990년대 아침마당이었습니다. 김학순 님의 증언이 91년, 그다음 해였죠.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셨고 너무나 용기 있는 여성이 거침없이 나와서 얘기를 하니 방청객들의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또 다른 분들 질문도 받아볼까요?
관객: 우선 박수남 감독님 알게 돼서 너무 감사하고요. 어찌 보면 재일 조선인 사회에 대한 영화가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었는데 주로 일본인 감독들이 만들었거나 아니면 서경식 선생님을 비롯한 남성 학자 선생님을 통해서 재일 조선인 사회에 대해서 듣고 있었는데 여성 감독님이 계신다는 걸 제가 처음 알아서 너무 감사하고 또 죄송한 마음도 들고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중간에 그 내용이 되게 인상적이었거든요. 이제 “나 자신을 계속 찾아가겠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데, 지금까지 해오신 작업 과정과 삶을 통해 ‘내’가 찾은 ‘나’에 대해서 좀 얘기해 주시면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수남: 말씀해 주신 ‘나’에 대한 생각은 아직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고요.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 봐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정희진: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두 분 감독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저는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어려웠다”라는 얘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압도적인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평생 들어오셨는데 그게 힘이 들지 않으셨냐?” 이렇게 여쭤봤어요. 우리에게는 타인의 고통에 관해서 얘기를 들은 후 갖게 되는 책임감과 윤리의 문제에서부터 어떤 감정적인 정동의 문제까지 여러 문제가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놀라운 답변을 들었습니다. 박수남 감독님께서 뭐라고 하셨냐면 피해자분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오히려 힘이 나셨대요. 그래서 굉장히 놀랐고 또 감독님의 인생과 삶, 세상에 대한 수용력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
박수남: 제가 어떤 수용력이나 포용력이 좋다기보다는 저에게 얘기해 주신 증언자분들의 삶이 언제나 현실에 지지 않고 앞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 저에게 큰 격려이자, 힘이 되었고요. 저도 그분들처럼 항상 앞을 내다보고 살겠다고 다짐했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이 일을 해왔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자신의 삶, 그리고 자신의 역사를 이야기해 준 분들의 힘이었고요. 그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정희진: 선생님의 답변도 굉장히 감격적이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한 분만 더 질문을 받아볼까요?
관객: 네, 영화 잘 봤습니다. 감독님께서 하시마섬에 두 번 가셨잖아요. 첫 번째는 폐허가 됐을 때 가셨고 두 번째는 관광지로 개발됐을 때 가셨는데, 유네스코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구체적으로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박마의: 필름 복원을 시작했던 2015년 정도에 군함도 유네스코 등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한국 정부에서 조선인 강제노동과 관련된 내용을 넣는 조건을 제시했고 유네스코에서도 군함도의 역사 전체를 넣으라는 권고를 하였습니다만 일본 정부는 아직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일본 정부가 1억 원을 들여서 군함도에 조선인 강제 노역은 없었다는 내용을 담은 ‘산업 유산 노동센터’라는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서정우 씨의 영상이 복원됐잖아요. 저와 어머니는 그 보강된 영상을 어떻게 일본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영화 편집 중에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주장 그리고 일본 우파나 역사 수정주의자의 주장도 있기 때문에 그 주장에 대해서 굉장히 조사를 많이 했고요. 책, 영상, 증언 이런 것들을 저희 둘이서 다 검증을 마친 뒤에, 군함도에 갔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크루즈선을 타고 군함도에 가서 굉장히 놀란 게 안에서 녹음도 할 수 없고 사진도 찍을 수 없고 가이드들은 언론 통제, 그러니까 말을 제대로 못 하게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나가사키 시민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분들께 이 관광지가 된 군함도의 현실을 듣고 저희가 엄청 쇼크를 받았습니다. 조선인 피해와 관련한 간판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이드조차 조선인이나 중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되는 상황으로서 철저히 관광업이 유지되고 관리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들여서 거기에 가보시라고 추천까지는 하지 못하겠지만, 어떻게 역사가 수정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지 확인차 한번 크루즈를 타고 가보시는 것도 체험이 아닐까. 이 영화에 나오는 것과 실제 일본에서 군함도에 대해서 전하는 것들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한번 실감을 해보시는 것도 이 영화와 관련된 체험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정희진: 네, 감사합니다. 좀 아쉬운 시간이네요. 좋은 말씀해 주신 두 분 감독님, 통역가 선생님 너무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주신 관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서 관객과의 대화는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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