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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Playing/정기상영 | 기획전

12월 인디포럼 월례비행 '뉴타입, 어쩌면 오래된 새로움' 비평

by indiespace_은 2020. 1. 2.






<신림> (박우성, 2018)


글/손시내(영화평론가)


침대와 컴퓨터만 놓여있는 작은 방, 우성과 현우는 영화 시간에 늦겠다며 중얼대다가 우산을 챙겨 방을 나선다. 피우던 담배를 들고 우산을 함께 쓰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둘의 뒷모습은 아마도 언제나처럼 이어져 오던 별 탈 없는 풍경인 것 같다. 역시나, 이윽고 들려오는 산울림의 노래(‘기대어 잠든 아이처럼’)와 저화질의 추억들. 방과 골목에 묻어있는 그 추억들이 우리를 슬며시 웃음 짓게 한다. <신림>(박우성 연출, 2018)에는 그처럼 친구와 나누는 잡담, 좁은 방과 동네의 풍경에서 새어 나오는 가볍고 편안한 기운이 빼곡하다. 재수 시절을 마친 현우가 방을 나가고 나면, 스무 살의 친구들은 이제 각자의 학교와 일터로 흩어지게 될 것이다. 영화는 어느덧 마지막 밤이 되어버린 어느 밤의 우성과 현우, 그리고 잠시 찾아온 친구 호철과 우성의 만남을 담는다.

이 영화는 ‘고시촌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데, 영화제 측의 설명을 살펴보면 ‘자유로운 창작 정신과 발칙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넘치는 영화’를 소개하는 곳, 영화를 꿈꾸는 모두가 도전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신림>에서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러한 자유로움과 솔직함이다. 티격태격하고 복닥거리는 아무 말들 속에 친밀함과 아쉬움이 떠오르고, 돈 없고 즐거운 순간들은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저 정답다. 그 자유로움과 솔직함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화 속 친구들을 따라 무심코 웃으며 산울림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감자> (김정민, 2018)


글/조한기(영화평론가)


 <감자>는 엉큼한 매력을 지닌 영화다. 특히 영화가 전달하는 팽팽한 긴장감은 일견 거칠어 보이는 영화의 만듦새를 압도한다. 여기서 긴장은 서사무대 속 예측 불가능한 상황,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 감자냐? 고구마냐? 밭의 정체를 두고 벌이던 실랑이는 순식간에 상식과 도덕을 위협하는 긴박한 순간으로 나아간다. 이 같은 비약은 점진적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편 영화와 유다른 단편 영화만의 묘미이기도 하다. 

 <감자>의 이러한 영화적 미감은 무엇보다 15분간의 롱테이크를 통해 구축된다. 멀리서 시작된 카메라의 시선은 관객을 염탐꾼의 자리로 내몰고, 프레임 밖에서 짓쳐 드는 돌발적인 상황들은 긴장을 유발한다. 극적 전개와 서스펜스 모두 롱테이크에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감자>는 형식이 주제를 이끄는 흥미로운 영화다.




<춘분> (석진혁, 2018)


글/조한기(영화평론가)


 실험적인 영화의 오랜 미덕 중 하나는 일상을 낯설게 재현하는 일이다. 이러한 작업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곤 한다. <춘분>에선 네 가지 사건이 교차한다. 태준은 아파트에 틀어박혀 어설픈 인터넷 방송을 한다. 숙은 떴다방에서 아파트 분양권을 긁어모은다. 중학생인 혜진은 춘분에는 계란이 선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파트를 나선다. 수천만 마리의 닭은 살처분될 위기에 있다. 사후적으로 보면 느슨하게 이어진 네 가지 사건은 우리가 무감해진 어떤 임계점을 알리는 표지가 된다.

 그렇기에 <춘분>은 이야기의 개연성보다 이미지의 연쇄가 중요한 영화다. 닭(계란)과 인간, 닭장(계란판)과 아파트, 반복 교차하는 이미지들은 미묘하게 중첩되며 의미를 점증해 나아간다. <춘분>은 이미지와 함께 이야기를 곱씹을 때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다.




<링링>(윤다영, 2019)


글/손시내(영화평론가)


때로는 고요하고 때로는 위협적인 물가 앞에 선 인물들의 뒷모습, 그들을 문득 휘감는 바람, 화면을 가득 채우는 알 수 없는 표정의 얼굴, 어둠과 빛뿐인 술집과 영안실처럼 현실성이 최소화된 기묘한 공간, 욕조 안을 헤엄치는 물고기와 집안을 과도하게 가득 채운 화초들까지. <링링>(윤다영 연출, 2019)은 이미지로 말하고 이미지로 기억되는 영화다. 기이한 명암의 대비나 이미지 자체에 내장된 아이러니, 성적인 불안과 긴장이 비릿한 유머를 만들어내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인물들을 따돌린 채 이미지만을 과시하는 건 아니다. <링링>의 이야기와 감각은 과감하고도 세심한 방식으로 얽혀 영화를 구성한다.

여기선 ‘바람’이 중요하다. 태풍이 점차 다가오는 어느 여름날, 중학생 진아(김주아)는 아빠의 바람을 의심하고 다른 가족들은 서로에게 별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진아가 아빠 수첩에서 찾아낸 ‘링링’에 대해 상상력을 어둑어둑하게 키워갈수록, 현실엔 물기와 바람이 엄습한다. 가족의 붕괴에 대한 어렴풋한 불안은 기어이 실체를 갖춰 진아의 세계를 찾아온다. 거센 태풍 속에서 성욕을 분출하던 아빠가 죽고, 남은 가족은 다시 고요한 물가에 선다. 불길하고 위태롭고 거칠고 괴이한 이미지들이 진아의 얼굴과 마주 볼 때, 여기엔 한마디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관객 각자가 충분히 공감할 법한 사춘기 시절의 복잡한 감정이 고인다. 모호하게 멈춰서지 않는 지속의 힘으로 영화를 밀고 가는 뚝심이 느껴지는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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