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계속 회자될 한국적 애니메이션 <언더독>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2월 23일(토) 오후 4시 상영 후
참석 오성윤, 이춘백 감독
진행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언더독>은 영화제 상영 당시 9초 만에 매진이 된 기록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인디스페이스에서 2월 23일 진행한 ‘배우 유지태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 14번째 행사를 통해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언더독>이 먼 훗날 계속 회자될 한국적 애니메이션이라는 주장에 당연히 동의할 것이다. 이날 인디토크에 오성윤 감독과 이춘백 감독이 참석했으며, 어느 때보다 <언더독> 제작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모은영): 안녕하세요. 영화 재미있게 보셨죠? 두 감독님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겠습니다. 두 감독님의 인사 먼저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성윤 감독(이하 오성윤):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전용관이고, 유지태 배우님이 독립영화를 후원하는 취지에 따라 그동안 이런 행사를 진행해왔는데, 이번에 저희 영화를 선정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감사했어요.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힘겹게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젊은 영화인도 많은데 저희 영화가 상영되다 보니 송구스럽더라고요. 오늘 인디토크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이춘백 감독(이하 이춘백): 안녕하세요, 공동감독 이춘백입니다. 잘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처음에 워낙 영화 개봉 성적이 안 좋다 보니까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오늘 <언더독>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반갑습니다.
모은영: 두 감독님께서 힘들게 말씀하셨지만,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 자체가 아주 힘들게 만들어지고 있어요.
오성윤: 이 영화를 제작할 때 투자를 잘 받을 줄 알았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이후 성공 사례가 없다보니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이 심해졌어요. 투자를 받기 힘든 상황에서 적은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저희가 단독 제작을 하던 중 배급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배급사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은영: <마당을 나온 암탉>이 22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죠.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 부문 1위 성적인데, 아직도 그 기록이 안 깨지고 있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그리고 <언더독>이 개봉하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 또한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이 어렵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아요. 그에 더해서 오랜 제작기간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기간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8년이라는 긴 시간이 단순히 투자를 받기 위한 시간일 거라고 보이지는 않아요.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릴게요.
오성윤: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한국 극장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이 흥행할 수 있다는 게 검증되면서 유럽의 B급 만화가 들어오고,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1,000억 이상 돈을 들여 완성도를 높인 영화도 점점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은 주로 영·유아를 위한 애니메이션이 많이 제작되거든요. 해외 애니메이션이 많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오리지널 창작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봐요. 이를 위해서는 시나리오가 중요하고요. 저희는 온 연령대가 좋아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수 있어도 저희만의 차별화 전략이 있었어요. 저희는 2.5D라고 부르는데, 사람이 직접 손으로 그린 배경에 3D 애니메이션이 올라탄 거죠. 많은 가공을 거쳐서 일반적인 3D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2D 애니메이션 느낌을 살렸어요. 이런 전략으로 <언더독>을 만들었어요. 저희는 작업이 잘 됐다고 생각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측에서도 제 전작보다 훨씬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잘 안 됐어요. 왜 안 됐지?(관객 웃음) 저는 좋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200만 명은 넘기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모은영: 반성하고 있습니다. 오성윤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신 차별화 전략에서 이춘백 감독님이 특별히 더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춘백 감독님은 전작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참여하셨다가 이번에는 공동연출을 맡으셨어요.
이춘백: 저희 둘 다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하다 보니 사람이 손으로 그린 그림의 가치를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관객들이 이에 공감하기를 바랐고 일러스트레이션 풍으로 가고 싶었어요. 손으로 그린 그림을 큰 화면으로 보여줬을 때 관객들이 큰 감동을 느끼길 바랐어요. 배경은 연필로 세밀하게 드로잉하고, 그 다음 컴퓨터로 채색하며 효과를 입히는 과정을 거쳤어요.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경우 3D로 만들었는데, 어느 정도 2D처럼 보이고 싶었죠. 그래서 1년 동안 여러 리서치 과정을 통해 저희 스타일을 찾았어요. 다른 애니메이션과 달리 외곽이 살아있고, 소프트한 배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아트 스타일을 만들어냈죠.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 풍경에 신경을 썼고 답사도 많이 다녔어요. 영화에 나온 모든 배경을 답사한 다음 만들어냈어요. 최고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고 싶어서 많은 스태프의 노력과 열정이 투입되었고 마음이 안 들면 지체하지 않고 계속 수정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영화를 완성하는데 긴 시간이 걸렸어요.
오성윤: <마당을 나온 암탉>도 어떻게 보면 거의 공동연출을 한 셈이에요. 애니메이션 연기를 체크하다 보면 한계에 부딪히게 되거든요. 사람이 일일이 종이에 그려서 연출했기 때문에 애니메이터에게 리테이크(retake, 재촬영)를 부탁하는 게 어려워요. 그동안 그린 걸 다 버리고 새로 그려야 하니까 어렵죠. 그렇게 애니메이터에게 부탁을 드렸는데도 만족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경쟁력이 있고 어른들을 만족시키려면 캐릭터 연기가 굉장히 수준 있게 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 작업 때는 그 작업을 잘하자고 결심했어요. 이번 영화에 3D 애니메이션을 잘 도입한 것 같아요. 3D를 도입한 덕에 첫 작업을 갖고 오면 경우에 따라 리테이크를 계속 요청할 수 있었어요. 극영화를 찍을 때도 힘든 리테이크 작업을 13번까지도 했으니까요. 덕분에 캐릭터의 감정 연기에 많은 신경을 쓸 수 있었어요. 작년 말에 잠깐 일본에 시사를 하러 갔어요. 일본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이 저희 영화를 보고나서 조금 놀란 눈치더라고요. 그날 시사회에 오신 분 중에 한 애니메이션 감독이 저희에게 개 캐릭터를 구축할 때 모션 캡처(motion capture)를 한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캐릭터가 인간이 아닌 동물이다 보니까 모션 캡처를 할 수 없어서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고 하니까 굉장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그리고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에 출품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언더독>을 출품했는데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아서 3월 초에 영화제 참석을 해야 해요.(관객 박수)
모은영: <언더독>이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에 초청을 받았고, 중국에서도 상을 받았어요. 보통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애니메이션 기법에 대해 이야기를 덜 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오늘은 자리에 맞게 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봤고요. 캐릭터 연기를 언급하셨는데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 연기를 어떻게 작업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면서 눈에 띈 특징이 모든 개의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있더라고요. 사람이 아닌 개의 시선을 잡는 섬세한 설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이춘백: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행동을 조금 더 과장을 해야 하고, 더 빨리 해야 해요. 죽어있는 그림이 살아있게 보이려면 실제 액션보다 과장을 해야 움직이더라고요. 이번에는 개가 주인공이니까 관찰을 더 많이 해야 했어요. 보통은 거울을 갖다 놓고 자기 얼굴을 보면서 그려요. 근데 이번에는 주인공이 개인데 사람이 거울을 보면서 연기를 할 수 없잖아요. 저는 개를 키우고 있는데, 사람을 따르는 개들이 하는 기본적인 행동은 큰 개나 작은 개나 똑같아요. 그래서 제가 키우는 개를 참고해서, 특히 사람들이 귀여워하는 행동을 담아냈죠.
오성윤: <마당을 나온 암탉> 때는 100분짜리 콘티를 짜서 동영상으로 편집을 했어요. 배우 분들과 저희가 먼저 잡은 골격에 따라 선녹음을 했더니 목소리 연기자들이 본인 연기를 못하더라고요. 원래 선녹음은 목소리 연기자의 자유로운 연기를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죠. 그래서 이번에는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따라 배우들은 시나리오만 보고 그림 없이 자기 연기를 했어요. 저희는 연기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다음 콘티를 짰어요. 콘티를 짤 때 각색을 했고요. 필요에 따라 보충 녹음도 했어요. 전작보다 1.5배 혹은 2배 더 노력을 부었어요.
모은영: 덕분에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났네요. 보통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거론할 때 입 모양과 목소리의 일치 여부를 따지는데 <언더독>은 캐릭터의 입 모양과 목소리가 일치해 놀랐어요.
오성윤: 이게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숙원이거든요. 이번 영화에서 목표치의 80%를 달성한 것 같아요.
모은영: 캐스팅 과정도 궁금한데요. 목소리 연기자를 캐스팅할 때 전문 성우를 캐스팅할지 아니면 배우를 캐스팅할지에 대한 문제가 흔히 이야기되죠. 근데 이 작품은 그런 이슈가 거의 없었어요. 어떻게 캐릭터에 맞게 캐스팅을 하셨나요?
오성윤: 제가 주로 캐스팅 담당을 맡았는데 영화 <카트>(2014)를 볼 때 도경수 배우 연기가 정말 인상 깊더라고요. 툭툭 던진 몇 마디 안에 감정이 다 들어가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도경수 배우를 염두에 뒀거든요.
이춘백: 도경수 씨 같은 경우 첫 회 녹음 때에는 캐릭터에 맞지 않게 너무 진지했어요. 그래도 굉장히 빨리 습득을 하더라고요. 과장해야 하는 목소리 연기에 금방 적응을 해서 놀랐어요. 박소담 씨는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톤이었어요.
오성윤: 논란이 아예 없지는 않았어요. 근데 저희 영화에 맞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저희 영화가 사실주의 애니메이션이라서 어린 캐릭터는 실제 그 나이에 맞는 아역 배우가 했어요. 보통은 젊은 여성 성우가 가성으로 연기하죠. 개코 역은 환갑이 넘으신 강석 선생님이 진성으로 연기하셨어요. 물론 배우만을 캐스팅하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단 하에 성우를 캐스팅도 했고요.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게, 주류 애니메이션도 여러 분류가 있잖아요. 주로 관객은 미국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한국의 영·유아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데, <언더독>은 그런 결의 영화와는 다른 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찾아보기 힘든 계열의 영화이지 않을까 싶어요.
모은영: 그래서 저희가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했죠. 전작도 그랬고, 이 작품은 어딘가를 탈출해서 자신을 찾아가는 로드무비이자 성장영화잖아요. 처음에는 뭉치가 목줄에서 자유로워졌음에도 소리를 내지 못 하지만, 공을 놓으면서 이를 계기로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고요. 이런 성장 이야기를 선호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오성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원작이 있고 <언더독>은 없지만 테마는 비슷하죠. 제가 나이는 있지만 여전히 자유에 대한 갈망을 끝없이 갖고 있어요. 과연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지, 누리고 있는지에 대한 제 스스로의 이야기가 영화를 만들다 보면 많이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DMZ 설정을 넣은 건 하나의 프레임이 있다고 느껴져서예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지 못하는 생각이나 표현이 많다고 느끼거든요. 그런 중의적인 의미에서라도 DMZ라는 억압적인 프레임을 확 넘어가고 싶은 욕구가 있고, 이를 영화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제가 계속해서 밀고 있는 표현이 있어요. DMZ를 ‘닫혀 있는 성장판’처럼 느낀다고 말해요. 이게 열리는 순간 경제적 효과도 굉장히 크겠지만, 알고 모르게 억눌린 우리의 자유, 가치관이나 행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봐요.
모은영: 이 영화가 8년 전에 기획된 것이지만, 이야기가 딱 지금의 상황이잖아요. 반려동물 논란도 담겨져 있고요. 개농장에 대한 이야기, 로드킬 문제 등 우리 사회에서 현재 두드러지게 이야기되는 문제들이 여기에 다 내재되어 있어요. 어떻게 현재 화두가 되는 사회문제를 담아냈는지 궁금합니다.
오성윤: 8년 전에 시나리오를 썼고, 2017년에 이 영화를 개봉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래서 DMZ를 배경으로 하는 결말을 만들면서 되게 센세이셔널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전 정권 때 개봉했어야 했는데 개봉이 늦어지고 시대가 바뀌니까 센세이셔널함이 반감되었네요. 심지어 저희가 예상했던 댓글도 올라오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왜 개들이 북으로 가냐는 흔한 댓글도 올라오지 않았어요.(웃음) 그래서 아쉬웠고요.
모은영: 공을 물고 있던 뭉치가 공을 버리는 장면과 DMZ에서 수류탄을 물고 있는 후반 장면이 엮이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 장면을 통해 하고 싶으셨던 말씀이 있었나요?
이춘백: 수류탄 터지는 장면에서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자칫하면 뭉치가 죽은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노란 꽃도 공중에 날리다 보니 저희 의도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봤어요. 사실 처음에는 꽃을 뭉치 주변에 날리려는 생각을 안 했어요. 근데 꽃이 없으면 무리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들국화 꽃이 뭉치를 보호하듯이 떠받쳐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아이디어를 잘 낸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은 만발한 꽃이 온 화면을 메우기를 원했지만 꽃 하나하나 집어넣다 보면 제작비가 비싸져서 어쩔 수 없이 만족할 만큼은 못 넣었어요.
오성윤: 공중에 있는 뭉치 장면은 시뮬레이션으로 돌리면서 만들었는데, 꽃을 더 넣을수록 만들기가 어렵고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해서 원했던 만큼 꽃을 넣지 못했죠. 아쉽죠. 테니스 공은 주인이 뭉치를 데리고 놀 때 쓰다가 버리는 도구고, 뭉치가 이 공을 버림으로써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데요. 수류탄은 뭉치가 당연히 수류탄이라고 인식을 못했겠지만, 인간이 공에 집착하니까 이번에 뭉치가 역으로 인간을 끌고 다니는, 반대 현상을 일으킨 거죠. 재밌는 게 병사들이 수십 명 나오잖아요? 원래 병사들이 몸에 달고 있는 게 많잖아요. 근데 총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장면에 담아내면 돈이 많이 든대요. 그래서 총을 다 뺐어요.(웃음) 이것도 어떻게 보면 잘했죠. 왜냐하면 현재 남북한이 비무장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잖아요.(웃음) 공뿐만 아니라 철망의 이미지도 중요해요. 철망의 이미지가 계속 커져요. 초반 울타리와 작은 철망에서 염소농장의 철망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DMZ 철망을 넘어가는 프레임까지 설계를 했죠.
이춘백: 뭉치에게 공이 인간과 개를 이어주는 매개체인 반면, 짱아의 경우 인형이 그런 역할을 했죠. 뭉치 같은 경우 성장하면서 공을 버리지만, 짱아는 계속 인형에 집착해요. 그만큼 인간의 끈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개였음을 보여줘요. 그래서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집에서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데, 이를 통해 개들이 추구하는 행복이 여러 가지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개는 늑대가 아니니까 사람과 같이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 생각을 짱아에 투영했고요. 덕분에 내용이 더 풍부해진 것 같아요.
오성윤: 원래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반려견의 다수 의견일 텐데, 뭉치의 무리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나아가는 게 공동 목표가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짱아의 생각은 소수 의견이 되어버렸죠. 원래 짱아가 조금 더 강하게 나오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모은영: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두세 분 정도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성윤: 벌써요? <마당을 나온 암탉> 때는 GV를 많이 했는데. GV가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어요.(관객 웃음)
관객: 저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고 있어요. 전작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주인공 잎싹이 “배고프지? 날 먹어”라고 하는 부분이 충격적이었어요. 방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개는 인간친화적으로 탈바꿈한 동물인데, 캐릭터들이 인간과의 삶을 포기하고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잖아요. 감독님이 이번 영화에서도 자연 친화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으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오성윤: 보시다시피 저는 도시형 인간이긴 한데요, <마당을 나온 암탉> 때 아쉬운 게, 원작과 달리 애니메이션에서 잎싹이 그 말을 내뱉을 수 있게 되기까지, 온전히 자신을 이해할 정도의 깨달음이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야만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어요. 그런 후회가 있어서 그런지 <언더독>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본질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계속 캐묻다보면 개에게 어떤 자유의 본질이 있을지 궁금했어요. 또 제 스스로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하면서 영화를 계속해서 만든 것 같아요.
관객: 전작에서 마지막에 족제비의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족제비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셨잖아요. 애니메이션이 캐릭터의 입체적인 모습을 표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이번 <언더독>에서는 개장수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느껴져요. 어떤 의도로 캐릭터를 묘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오성윤: 아픈 지적이에요. 시나리오를 완성한 다음 주변에서부터 모니터링을 시작했는데, 제 아내가 시나리오를 보고 지금 관객 분과 같은 지적을 했어요. 개장수도 시야를 넓혀서 보면 그런 직업을 갖게 된 원천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시나리오에서는 개장수의 인상이 너무 평면적이라는 대답을 했어요.
모은영: 그래도 이 영화에는 제주도에 계신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인물도 나오고, 개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외국인 노동자도 나오고, 되게 많은 유형의 인물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개별적인 인물보다 그룹으로 엮어서 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오성윤: 그렇게 인간군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 인물은 평면적이었으나 이 영화가 인간 대 개의 이야기니까 그렇게 본다면 다양하고 입체적인 인간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춘백: 맞아요. 인간이 개에게 가하는 악의 총체를 상징적인 인물인 개장수로 표현했어요. 사실 특정 캐릭터의 평면적인 문제를 해결을 못했어요.
오성윤: 저희가 원래 후반부에 나오는 부부 목소리 연기를 이효리 씨와 이상순 씨에게 부탁하려고 했어요. 근데 제주도로 내려간 지 얼마 안 돼서 두 분을 캐스팅하지 못했어요. 다른 분에게 목소리 연기를 부탁드렸죠. 근데 나중에 내부적으로 기술 시사회를 할 때 다 알아보시더라고요.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과 오버랩되는 모습이 많다 보니까 금방 아시더라고요. 그래서 효리네 민박 PD님에게 연락을 드려서 해당 장면을 보여드린 다음 허락을 받았죠. 응원도 받고요.
관객: 질문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다른 영화는 촬영을 하고도 나중에 버리는 장면이 있다고 하는데 애니메이션에도 그런 경우가 궁금하고요.
오성윤: 질문 두 개를 동시에 받으면 항상 까먹어서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릴게요. 저희는 우선 콘티부터 짜요. 그 콘티를 갖고 계속 수정을 해요, 마음에 들 때까지. <언더독>의 경우 콘티를 1년 동안 짰어요. 그래서 PD한테 혼났어요. 그 후 완성된 콘티를 갖고 그대로 찍어요. 애니메이션의 경우 편집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버리는 장면이 많이 없어요. 버리는 게 없다 보니 저희는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편집해서 붙여 보고, 녹음도 넣어보고, 믹싱도 해보는 등 영화 한 편을 다 만들어요. 그런 다음 극장에서 시사회를 하고 편집해요. 그때 아니면 나중에 뒤에 가서 편집을 못해요. 그리고 장면이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요. 자신이 키운 나무라서, 가지치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과수원 주인처럼 장면을 저희 손으로 버리는 건 힘들더라고요.
관객: 두 번째 질문은 봉지라는 개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데 잡혀가면서 사라지잖아요. 이후 장면에서 뭉치랑 밤이가 탈출할 때 철장에 갇힌 개들을 꺼내줄 때 봉지도 같이 탈출했을 거라 기대했어요. 그 모습이 나오지 않지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춘백: 의외로 봉지에 매력을 느끼는 관객이 많더라고요. 원래 이 영화가 성공하면 2탄에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봉지는 죽지 않고 탈출한 걸로 설정하려고 했고요. 그런데 2편을 만들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뢰를 밟은 개장수 앞에 봉지가 나타나 오줌을 갈기고 가는 쿠키 영상을 만들려고 했다가 시간과 돈 때문에 못했어요.
오성윤: 2탄을 제작한다면 봉지를 등장시킬게요.
모은영: 이 영화는 여러 번 관람해야 할 정도로 디테일한 요소가 많아요. 맨 처음 나오는 사료에 ‘언더독’이 적혀있고, 인형도 <마당에 나온 암탉>에 나온 인형이고요. 이외에 이 영화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스터 에그가 많거든요. 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성윤: 아까 짱아 이야기를 했는데, 짱아의 아지트가 원래 짱아가 자신과 함께 살던 가족의 집이었어요. 재개발하면서 가족이 짱아를 버렸죠. 그래서 아지트 안 장식장 뒤에 보면 짱아와 그 가족이 찍은 사진이 걸려있어요. 그 사진은 짱아와 인간 간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음을 보여줘요. 또 숨어 있는 게 뭐가 있죠? 우리 별로 숨긴 게 없는데.(관객 웃음)
이춘백: 관객들이 찾아내라고 넣었다기 보단 배경을 그리는 스태프나 다른 스태프들이 작업을 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걸 많이 집어넣었어요. 한 스태프는 수입 맥주를 좋아해서 골목에 뒹구는 수입 맥주 박스를 그려 넣었어요.
오성윤: 에필로그에 뭉치랑 밤이가 새끼를 낳잖아요. 원래는 극 중에서 밤이가 갈대숲에서 낳는 설정이었어요. 근데 그렇게 하려면 그때부터 밤이의 캐릭터성이 줄어들고 활동 반경도 줄어들어서 불만족스러웠어요. 그래서 에필로그에 뭉치와 밤이, 그리고 새끼의 모습을 넣었어요.
모은영: 정말 아쉬운데 마무리 인사와 함께 이제 슬슬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영화는 한 번 보면 계속 생각이 나는 작품이고, 다행히 인디스페이스에서 계속 상영을 해준다고 하시니까 또 보러 오시면 좋겠고요.
오성윤: 개봉이 늦어져서 아쉽지만, 요즘 정세를 고려했을 때 나중에 대중 예술 교류를 통해 북한에도 저희 영화를 소개하고 싶어요. 북한에서도 <언더독>을 보면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모은영: 관객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춘백: 저희 영화는 행복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사실 소시민들은 주어진 조건에서 살 수밖에 없죠. 그런 상황에도 행복을 꿈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반려동물을 버리지 않는 문화와 사회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은영: 박수로 오늘 이 자리 마무리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한강을 마주하다 '인디포럼 월례비행' <한강에게> 대담 기록 (0) | 2019.03.13 |
---|---|
[인디즈 Review] <국경의 왕>: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0) | 2019.03.12 |
[인디즈] 대한민국 군대의 '기억' '2019 으랏차차 독립영화' <군대> 인디토크 기록 (0) | 2019.03.11 |
[인디즈] 투쟁하는 삶에 대한 치열한 기록 '2019 으랏차차 독립영화' <사수> 인디토크 기록 (0) | 2019.03.10 |
[인디즈 기획] 익숙함과 낯섦, 우연과 인연의 모호한 경계 속을 여행하다 <국경의 왕> 임정환 감독 인터뷰 (0) | 2019.03.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