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한줄 관람평
권소연 | 인스턴트여도 괜찮아, 우리가 이렇게 같이 먹고 있다면
이수연 | 작은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임종우 | 가족의 의미를 ‘다시’ 고백하다
김민기 | 소년이 느끼는 삶의 적막이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윤영지 | 멀리서 보고 그린 정밀화
<홈> 리뷰 : 작은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연 님의 글입니다.
아이가 있다. 아이의 이름은 준호다. 축구를 하는 찰나의 아이는 웃음을 짓는다. 그렇지만 공은 아이에게 오지 않는다. 억지로 공을 찾아 달려보지만 다른 아이의 욕지거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괜찮다. 맞잡은 어린 동생과 함께 돌아갈 공간이 있으니까. 협소하지만 그 공간엔 엄마와 동생 성호, 그리고 준호가 마주 누울 자리가 있으니까. 아이에겐 ‘집’이 있으니까. 엄마를 빼앗긴 순간에도, 배다른 동생에게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낄 때에도 아이의 시선은 올곧게 한 곳을 향해 있다. 집으로. 처음부터 준호의 소망은 거창하지 않았다.
집이라는 단순한 한 음절의 단어가 애틋함을 자아내는 건 그와 필연적으로 결부되는 가족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그 집에서 함께 자란, 부대끼며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온기들 말이다. 가족은 태어남과 동시에 획득되는 관계다. 보편적으로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이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관계이다. 태생적인 안정감, 그건 가족이라는 관계를 표상한 집이기도 하기에 준호에겐 집과 가족이 절박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애정을 쏟아주는 보호자의 존재, 보호자와 한 공간에서 자라고 있다는 안온감은 준호에게 마땅하지 않았으므로. 소년의 세계엔 가족과 집이 근원적이지 않다.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안온감이 외부에 의해 박탈되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집은 아이에게 치열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간신히 붙잡아도 손에 들어오지 않는 두 존재를 소년은 마음 속으로 소중히, 그렇지만 절박히 품어 낸다.
영화는 계속해서 준호의 뒷모습을 추적해 나간다. 처연하게 굽은 아이의 조그마한 어깨는 언제나 묵묵히 “나를 껴안아주세요, 나를 알아봐 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아이는 어느 한 문장도 쉬이 내뱉지 않는다. 그렇기에 음울하게 가라앉은 아이의 눈동자는 초라하면서도 아울러 묵직한 무게감을 발산한다. 어렵게나마 “저도 할 수 있어요”, “저도 같이 살게 해 주세요”라고 울부짖는 아이의 심정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그럼에도, 그토록 갈망함에도, 아이는 성취해내지 못한다. 집을. 가족을. 사랑 받는 그대로를 베풀 수 있을 관계를. 절박한 뜀걸음의 끝에 당도한 풍경엔 준호가 없다. 주전으로 나선 경기, 자신이 넣은 골, 이긴 팀. 주인공이어야만 했을 준호가 본인이 엑스트라임을 깨닫는 순간, 아이의 눈동자엔 기쁨 대신에 주변인으로서의 거리감이 선연히 물들고 만다. 가장 경쾌해야 할 발걸음이 현실의 무게에 포옥, 젖어 버렸다. 지켜보는 관객마저 체념에 가까울 눈동자에 압도되고 만다. 어떤 말로 아이를 위로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노력한 아이에게 조언은 무의미하다. 아이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다사로울 햇볕이 들길 바라는 막연한 절망감만이 스크린 주위를 맴돈다.
감독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의 카메라의 워킹과 영화의 톤이 주는 호소력은 감탄할 만하다. 다만 성인에게도 벅찰 상실과 가난을 아이에게 부여하는 영화의 방법론엔 다소 의문이 든다. 아이는 결과와는 무관하게 욕망하는 바를 향해 시도하고, 쟁취하거나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게 형성된 아이의 세계는 엉성하지만 그 자체로도 온전하다. 중요한 건 아이의 노력을 존중하는 태도다. 너의 세계는 완벽하다고, 너는 그 속의 주인공이라고. 학교폭력까지 가담해 아이의 불행을 조성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다소 불편한 지점도 존재한다. 집이라는 소재를 다루기 위해 아이에게 이만큼의 고통을 부여해도 괜찮은 걸까? 필요 이상의 폭력이 아이에게 가해지지 않았을까? 좀 더 덜어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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