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 한줄 관람평
이지윤 | 언제나 처음으로 가는 길, 어디로 가든 함께 걸을 당신이 있다면
조휴연 | 공고한 구조의 안에서 성실하게 방황하다
최대한 | 올해 느낀 가장 위대한 경이로움. 삶과 감정을 영화에 그대로 담아내다.
이가영 | 관조적 태도로 대상을 비추어보는 진지함
김신 | 아직은 조금 헤매도 괜찮아
남선우 | 그러나 어딘가에 우리의 식탁도 있었으면 하니까
<초행> 리뷰: 아직은 조금 헤매도 괜찮아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엄혹한 세상과 모진 시련 앞에서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1991)의 주인공은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는 외마디를 내뱉고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같은 곳에서(대만) 유사한 시기에 영화를 만들었던 차이밍 량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세상의 내일을 걱정하면 상업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영화다.”라고 대답했다.
한 때 우리도 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영화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며 우리는 깨닫는다. 영미권 백인남성집단으로만 이뤄진 과학자들이 운석 충돌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거나 현실에는 존재할 리 없는 슈퍼 히어로의 전능한 살상능력이 외계 생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광경 앞에서 우리는 현실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지 않기 위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는 장르영화의 소품으로 전락해버린 귀여운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위험보다 제 때에 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월세에 대한 버거움이 오늘을 짓누른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좋은 영화는 세상이 바뀐다는 섣부른 낙관을 시각적 페티시즘으로 번안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 '바뀌지 않는 세상'의 오늘을 직시하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일 것이다. 지지부진했던 2017년의 한국영화계의 끄트머리에 선물처럼 찾아온 <초행>은 명백히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일 것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얼마 전 개봉한 임대형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또한 그런 영화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전하는 감흥을 잊기 어렵다. 영화 내내 시종 폐쇄된 공간에서 미래를 더듬던 '수현'과 '지영'은 처음으로 탁 트인 광장 밖으로 나가 시민들의 대열을 마주한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는 상투구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 장면의 온기 어린 감동을 형용하기 어렵다. 바로 전 시퀀스에서 영화는 만취하고 주정을 부리는 수현의 아버지로 인해 갈등한 주인공들이 자동차 바깥으로 나가 기적 같은 화해를 겪는 장면을 보여준 바 있다. 자동차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가 유리창을 통해 이들이 화해하는 광경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이 장면이 너무나도 감동적이라면, 그것은 마침내 답답한 공간 바깥으로 나간 이들 앞에 아련하게 명멸하는 여명의 경치와 자동차 내부를 갈라놓는 장방형의 유리창이 영화의 외부와 내부의 층위를 갈라놓는 영화스크린에 대한 은유로 기능하기 때문이었다. <녹색 광선>(1986)과 <클로즈 업>(1990)에 동시에 오마주를 바치는 듯한 이 장면은 명백히 영화가 현실에 대한 답을 제공해줄 수 없다는 겸양에 연원을 둔 감동이다. 이는 ‘너와 나’를 갈라놓을 수 밖에 없는 카메라라는 도구의 근원적 제약을 숙고해야 하는 자의 영원한 숙명이자 윤리다.
광화문 장면의 감동은 조금 색다르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화한다는 대전제는 공유되지만, 여기에서는 광장이라는 사회사적 함의를 짙게 지닌 공간이 틈입하며 그 경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와해되고 있으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저기로 가야하는 건가? 여기로 가야하는 건가?"라고 중얼거리며 헤매는 수현과 지영의 발걸음을, 거기에 뒤따르는 카메라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 동안 한국독립영화계에서 많은 경우에 카메라의 트래블링 숏은 인물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거리감과 불가지함을 형성하는 대신 인물들이 겪는 통각을 증축시키기 위한 가학적 페티시즘의 도구로 남용되어왔다. <초행>의 마지막 트래블링 숏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겨울 바람을 맞으며 운동하는 카메라의 분방한 기운이 시종일관 영화에 누적되어온 폐소공포의 증상을 사진적 존재론의 불가측한 감흥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소할 뿐 아니라 그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인물들의 불안감을 불가해한 영화적 감각의 아름다움으로 변환하는 데 성공해냈기 때문이다. 이를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이후 한국영화계에서 잠시 동안 사라져버렸던 트래블링 숏의 아름다움을 복권하는 영화사적 사건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카메라의 수사학적 표현이 읽히기 이전에 이 장면은 2017년의 한국에서만 출몰할 수 있는 익숙한 장면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전(前)언어적 감흥을 전한다. 언젠가 우리는 고단했던 2017년의 한 해를 기억하며 <초행>이라는 한 편의 영화가 우리와 시대를 함께했다는 우정 어린 추억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에드워드 양과 차이밍 량의 영화가 대만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거리의 누군가에게 <초행>은 앞으로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소박한 위로와 함께 "아직은 조금 헤매도 괜찮아."라고 나지막이 속삭여주고 있다. 여전히 영화가 공동체의 예술일 수 있을까. <초행>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의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초행>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영화계 외곽 어딘가에서 촛불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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