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적응자와 그를 만든 사람들 <프레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2월 7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최정민 감독 | 배우 진용욱, 목규리
진행 오동진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영어 사전에 ‘press’를 검색하면 명사로만 아홉 개의 정의가 등장한다. 언론, 언론인, 인쇄, 출판, 압축 기계. 그리고 동사로는 누르다, 찍다, 강조하다의 의미까지. 물론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압축 기계인 프레스를 제일 먼저 보여주기 때문에 제목의 의미가 분명하긴 하지만, 영화 <프레스>는 그 제목을 처음 보는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은 이야기 내내 모습을 달리하며 지속된다. 인물에 대해서, 전사에 대해서, 결말에 대해서 <프레스>는 무엇이 정답이라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관객이 오롯이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관객만의 답을 만들어가길 기다려준다. 이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쉽지 않았을 관객들을 위해 <프레스>의 최정민 감독과 진용욱, 목규리 배우가 인디토크에 함께 했다.
오동진: 이 영화는 중반까지 이 남자(주인공 영일)가 도대체 누군지,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계속 의문부호를 가지고 갑니다. 감독님이 어디서부터 이런 이야기를 생성하고 인물을 창조한 건지 궁금합니다.
최정민: 처음에는 세대 간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나이 든 사람과 어린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프레스 기계를 보게 됐어요. 기계 하나가 공장을 꽉 채울 만큼 큰 기계였는데, 그걸 카메라로 찍을 때의 느낌이 굉장히 강하게 다가왔어요. 기계가 작동되듯, 외부의 압박에 의해 변화되는 남자의 움직임을 이야기로 만들면 흥미로울 것 같았습니다.
오동진: 그렇다면 20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 재소자라는 설정은 어디서 가져온 건가요?
최정민: 단순히 사회생활을 꾸준히 했을 때보다 고립된 삶을 살다가 어린 친구를 만날 때 생길 감정이 더 깊고 크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가 어떻게 고립된 것일까를 고민하다가 우연히 교회에서 운영하는 재소자 적응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이런 이야기라면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남자의 변화도 다양하게 펼쳐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오동진: 영일이 교회 안으로 들어갈 때 울면서 헤매는 모습이 있습니다. 세상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남자가 그를 부적응자로 만든 사회의 벽에 부딪혀서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정민: 네. 그래서 일부러 영일이 담을 넘을 때 다리를 다치는 설정도 넣은 것입니다. 고립되었던 남자가 사회의 일원으로 들어갈 때의 장벽들이 굉장히 두껍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오동진: 그 장면에서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보라의 모습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요.
최정민: 그 장면에서는 영일의 감정을 더 진하게 담고 싶었습니다. 영일이 보라가 좋아했던 십자가를 보라에게 주고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오동진: 사람한테 다가설 때 진정성 있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잖아요. 보라의 그 이중적인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목규리 배우가 생각하기에 보라는 어떤 사람입니까?
목규리: 전주국제영화제에서부터 많은 관객 분들이 보라에 대해 질문해주셨습니다. 정말 영일에게 마음이 없었던 건지 묻는 관객 분도 있었어요.(웃음) 저 같은 경우는 보라가 독실한 크리스천인 동시에 직업적인 정신이 투철한, 그리고 20대 초반이기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다가가면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교만함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동진: 중간에 등장하는 사장의 기도문처럼 교만하지 않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그걸 실천하기가 참 어려운 거잖아요. 개인의 잘못만으로 몰아세우기도 어려운 것 같고요. 그래서 전 보라가 우리가 이해 못할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일 역의 진용욱 배우가 혼자 느꼈을 압박감도 굉장히 심했을 것 같습니다. 내밀한 고통을 다 끌어와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진용욱: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정말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반면에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영화의 99%를 채우는 역할을 해보겠냐 싶었습니다. 이 기회에 감사하면서 연기하지 말고 그냥 영일이가 되어보자,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자기가 다 감내하는 영일이라는 사람이 되어보자 했습니다. 영일에게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하면서 그 인물이 되어보려고 했습니다.
관객: 감독님께서 이야기를 너무 잘 풀어내셔서 영화적인 해석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기 보다는 촬영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인공이 사람을 만날 때 주인공 단독 숏으로 가다가 약간 지체한 후 상대방을 보여주는 장면을 여러 차례 쓰셨잖아요. 어떤 의도인 건지 궁금합니다.
오동진: 원 숏으로 가다가 나중에 프레임 바깥에 있던 사람을 안으로 불러들인다는 거죠?
최정민: 네, 맞습니다. 그런데 보라 같은 경우는 영일과 있을 때 대부분 투 숏으로 잡았고요, 영일과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서부터 단독으로 잡았습니다. 콘티가 없었기 때문에 촬영감독님과 현장에서 결정하면서 찍었습니다. 그 날 그 날 시나리오를 보고 체크하면서 결정한 겁니다. 외부 인물이 등장할 때 우선 관객들의 시선에 맞춰서 영일만 보여주다가 외부의 목소리가 들릴 때 관객이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고 나중에 보여준 거죠. 관객 분들께 더 흥미롭게 보여드리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관객: 결말 부분에 영일이 사건명을 대고 자신이 집에 들어가는 걸 봤냐고 사장에게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혹시 남자 주인공이 누명을 썼던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사장이 거짓 증언을 해서 영일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건 아닌지요?
최정민: 영화상으로는 약간의 모호성이 있습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명확했죠. 영일의 성격을 봤을 때 그 친구가 범죄를 저지를 성격은 못 되죠. 그리고 영일이 출소하고 공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사장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드러나는데, 결국 사장이 거짓진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겠죠. 그 일에 대해 영일은 사장에게 꼭 묻고 싶었지만 직접적으로 묻지는 못하다가 마지막에 확실하게 마음을 먹고 물어봤을 것입니다.
오동진: 명쾌하게 보여주지 않는 부분입니다만, (거짓 증언에 대한) 사장의 죄의식으로 영일을 취직시켜준 것일 수 있겠죠.
최정민: 사장의 기도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사장이 가진 응어리도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기도 장면에서 사장의 심정에 대한 조금의 개연성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동진: 그런데 (사장이 영일에게) 택시비는 너무 적게 주던데요? 천 원짜리 다섯 장인가?
진용욱: 4천원이었습니다.(웃음)
관객: 제가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이 영일과 보라가 교회의 센터 사무실에서 언쟁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그때 보라가 영일에게 “너는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말하잖아요. 그 발언이 큰 사건을 겪은 보라에게 생긴 변화를 설명해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영일 중심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보라의 뒷이야기도 많이 궁금한데요, 이후에도 출소자들을 대해야 했을 보라가 직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어떻게 변화했을지 궁금합니다.
목규리: 저도 많이 상상하고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보라가 일에 대해 회의감도 가졌겠지만, 영일이라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더 크게 가졌을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자신이 100% 피해자라고 여겼을 것이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영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을 것 같습니다. 자신만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도 가해했고 교만했다는 걸 받아들일 것 같고, 보라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 일을 계속 해나갈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최정민: 이 이야기가 영일 중심이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많이 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영일도 주변에 의해 변하지만, 개개인의 외부인들도 영일에 의한 변화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사장도, 보라도, 다른 사람들도. 결국 외부인들의 입장이 우리의 입장이죠. 보라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좋게 말하면 나름대로의 성숙의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직업적으로는 (영일에게 했던 것처럼) 사적으로 엮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의 의식을 키우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오동진: 이 질문은 영일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굉장히 조마조마했거든요. 기계가 고장 난 상태니 사고가 날 것도 같고 영일이 자해를 할 것도 같은 상황에서 이야기가 끝으로 가는데, 마지막 장면 이후 영일은 어떤 변화를 맞았을까요?
진용욱: 자살했을 거라고 생각한 분도 계셨고 견디면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분도 계셨어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일이 누명 때문에 복역을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영일은 고아로 쭉 살아오다가 누명을 쓴 거고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외로운 삶을 산 사람이에요. 내가 뭘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이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냥 버티면서 살아갔을 것 같습니다.
오동진: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 앞서 첫 번째 질문해주신 관객 분께서 이 텍스트가 난해해지지 않게 감독님이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고 하셨는데, 사실 주제 자체는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잖아요? 구원의 주체, 용서의 주체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상대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요. 신실한 신자가 봤을 때, 무신론자가 봤을 때, 사회적 활동을 하는 분이 봤을 때 매우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해석할 수 있는 영화는 또 아닙니다.
관객: 진용욱 배우님이 영일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영일이라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진용욱: 처음 출연 제의를 받은 게 2015년 4월이었고요, 처음 촬영을 들어간 게 2015년 7월이었어요. 저는 그때 시나리오를 보면서 살을 빼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일은 배가 나오면 안 될 것 같아서 77kg에서 67kg까지 살을 열심히 뺐습니다.
오동진: 그리고 대사나 행동보다는 표정 속에서 많은 걸 읽어낼 수 있게 연기하지 않았나 싶어요.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표정을 만들어낸 건지도 관객 분들이 궁금할 것 같아요.
진용욱: 감독님하고 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이 저한테 많이 맡겨주셨어요. 그래서 좀 더 편하게 제가 느끼는 대로 표정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가 남자 주인공의 전사를 처음부터 알려주었다면 관객이 이야기를 이해하기엔 더 쉬웠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정민: 이 이야기를 감독의 설명을 통해서 관객이 이해하기보다는, 영일을 보고 따라가면서 하나하나 이해해나가는 게 더 흥미로울 것이고 나중에 느끼는 바도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진행했습니다. 시나리오 쓸 때는 당연히 전사를 많이 썼죠.
오동진: 오늘 한 분 한 분의 관객들과 이야기하니까 훨씬 재미있네요. <프레스> 함께 관람해주시고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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