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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여자들>: 어느 계절의 책장을 넘기며

by indiespace_은 2017. 8. 18.




 <여자들한줄 관람평


송희원 | 창작의 능력과 무능력 사이의 긴장감과 설레임

이현재 | '그녀들' 대신에 '여자들'

이지윤 | 어느 계절의 책장을 넘기며

김은정 | 내가 가장 부자연스러웠어






 <여자들> 리뷰: 어느 계절의 책장을 넘기며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0. 낮은 여름이고, 밤은 가을이다.


영화는 여름과 가을의 어스름한 경계에서 시작된다. 저무는 여름의 공기 사이로 한 남자가 등장한다. 뒤이어 흐르는 남자의 내레이션은 그가 ‘시형’이라는 이름을 지닌 작가임을 드러낸다. 시형은 매달 연재하기로 약속한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나 그의 글은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옥상으로 올라간 시형은 고양이를 찾으러 온 ‘여빈’을 만난다. 고양이를 기다리며 둘은 함께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대화를 나눈다. 시간이 흘러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둘 사이에는 사랑 이전의, 말로 쉽게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찾아든다. 땅거미가 짙어지고 보랏빛 색감이 하늘을 완연히 물들이면 여빈은 가벼운 몸짓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시형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본다.


까만 밤이 오면 시형은 혼자 남는다. 여빈은 내일 이사를 떠날 것이다. 시형은 여빈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영감으로 좀처럼 써지지 않던 글을 완성시킨다. 만남과 이별로 어느 계절이 저문다. <여자들>은 조심스럽게 그 다음 책장을 넘긴다. 그 뒤로도 시형은 네 명의 여자들을 만난다.


 



1. 풀코스와 디저트, 그리고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


<여자들>은 독립적으로 보이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에피소드들은 영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포개지며 선명한 하나의 메시지로 완성된다. 여섯 개로 나뉜 에피소드들은 시형이 잡지에 달마다 연재하는 글을 닮았다. 에필로그를 제외한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는 다섯 여자들이 등장한다. 우연히 만난 다섯 명의 여자들은 시형에게 질문과 고민을 던지기도 하고, 때론 영감과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프롤로그인 ‘낮은 여름이고, 밤은 가을이다’ 이후 이어지는 두 에피소드 ‘풀코스와 디저트’,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엔 ‘서진’과 ‘수진’이라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시형의 대학 후배인 서진은 과거 시형이 쓴 미완의 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와의 대화는 시형에게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수진과 시형의 관계에서는 일종의 대립이 드러난다. 수진은 글을 쓰는 이유조차 모르는 것 같다며 시형에게 핀잔을 놓는다. 담담한 감정을 지닌 다른 인물들과 달리 수진은 대립을 통해 시형에게 불편하고 언짢은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한다. 수진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에서 카메라는 유난히 긴 호흡으로 둘의 대화를 담아낸다. 그리고 이는 둘의 대화에서 오가는 미묘한 감정 변화와 시형이 앓게 될 고민이 구체화되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2. 아름다움의 취향? 이게 다에요.


‘아름다움의 취향’과 ‘이게 다에요’에서는 시형이 성장으로 도약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아름다움의 취향’에서 돋보이는 것은 ‘이든’이란 인물의 매력이다. 시형은 이든과의 만남에서 가장 가벼워 보인다. 그의 고민이 이든과의 만남을 통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든의 경쾌함으로 인해 에피소드는 생기를 띠고, 에피소드가 가진 밝은 분위기는 시형이 어떻게든 성장이란 영역으로 한 발자국 더 도약할 것임을 암시한다.


<여자들>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감각적인 화면 연출과 색감이다. 작품은 평범한 중국 음식점마저도 풍부한 감성으로 담아낸다. 그런 감성적인 화면은 담담한 듯 많은 의미가 담긴 대사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여자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오키나와에서의 장면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한다. 시형은 우연히 만난 ‘소니’와 평범한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글을 쓰는 원동력을 발견한다. 그것이 기계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도 특유의 화면 연출 때문일지 모른다.


 




3. 오늘의 그는 어제와 다르다.


다섯 여자들 중 누구도 시형의 곁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시형의 표정은 밝고 몸짓은 가볍다. 그의 가벼운 몸짓은 프롤로그에 등장한 여빈의 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가지런히 정리된 책상 위에는 원고지가 놓여있다. 시형은 자리에 앉아 원고지 위에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내려간다. 글을 써내려가는 그의 주변으로 산뜻한 바람이 분다. 오늘의 그는 분명히 어제와 다르다. 시형은 춤을 추듯 가벼운 몸짓으로 그가 보내게 될 수많은 계절의 책장을 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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