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이 되지 못한 명성의 명성을 위해 <명성, 그 6일의 기록>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6월 9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동원 감독
진행 조영각 프로듀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1987년 6월, 오랜 군부독재에 반발해 시민들이 일어났다. 이 날의 명성(命聲)은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고 새로운 공화국의 탄생이 예기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탄생한 제6공화국의 대통령은 다름 아닌 군인 노태우였다. 6월이 품은 명성(明星)은 그렇게 명성(名聲)이 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켠으로 가는 듯했다. 2017년 6월, 촛불 혁명을 이룬 지금, 그날의 ‘명성’을 기념하며 <명성, 그 6일의 기록> 특별상영회를 가졌다. 87학번부터 87년생까지 다양한 관객들과 함께한 대화를 전달하고자 한다. 6월의 명성(明聲)은 오늘의 6월에 이르러 다시금 울려 퍼질 수 있을까.
조영각 프로듀서(이하 조): 20년 전 작품이다. 그리고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30년이 지났다. 작년부터 올해는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87년에 뭘 하고 계셨는지?
김동원 감독(이하 김): 상계동 철거민들과 명동성당에서 지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카메라가 고장 나는 바람에 수리를 해야 할지 농성에 참여해야할지 고민했는데 결국 짱돌을 들었다.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 걱정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다.
조: 최근 촛불 시위에는 얼마나 참여했나?
김: 사실은 대여섯 번 밖에 못했다. 광장보다는 뒷골목에 주로 있었다. 보통 내 나이 또래 주변인들은 시위에 나간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가더라. 나름대로 술도 많이 먹고 뉴스도 보고 그랬다.
조: 87년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가 많이 변했다. 상당히 중요한 변곡점일 텐데 경험한 사람이 많지 않다. 지난 촛불과 87년의 민주항쟁이 어떻게 다른가?
김: 그때는 뭔가 정말 긴장감이 있었다. 잡혀갈 수 있다는 각오가 되어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슴없이 전진하는 비장함이 있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당시 사람들이 지지를 참 많이 해줬다. 수많은 시민들이 열성적으로 지원했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기조는 ‘6일 농성의 해산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이다. 그 말을 조금 전달하고 싶었다. 그때 만약 해산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역사적 가정이 사실 부질없지만, 해산하지 않았으면 보다 좋지 않았을까 했다. 나는 쓸데없이 나이가 많아서 4.19혁명도 목격을 한 사람이다.(웃음) 당시 그 주변에 살았다. 그때는 시청 앞이 중심이어서 데모하던 사람들이 덕수궁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총소리를 들은 것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공교롭게도 한 삼십 년 씩 차이가 난다. 아무튼 그렇게 발전되어나갔다고 볼 수 있는데, 4.19때는 학생들이 정말 용감히 죽어가면서 싸웠지만 끝나자마자 5.16으로 덮여버렸다. 사실 정치권도 시민들도 다들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약간의 무질서가 있었고 그 때를 틈타 박정희가 빌미를 마련했다. 87년의 6월은 조금 더 성숙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도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4.19의 잔해들이 조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열망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투쟁과 정치권의 대응이 고루 부족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한다.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번 촛불 혁명을 100퍼센트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거의 완전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87년은 절차적으로 직선제를 성취하긴 했어도 민중의 권리와 같은 내용들은 전혀 언급조차 안 되었던 반면 이번에는 그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지 않나.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하는 데에 어떤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6월 그때 해산하는 게 옳았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조: 10년 전 GV보다 많이 약해졌다.(웃음) 그때는 아주 단호하게 ‘아직도 해산해서는 안됐다고 생각한다’ 했는데. 영화를 보면 97년 6월의 명동성당이 나온다. 영화를 6월에 상영해야하는데 그때까지도 촬영을 하고 있었던 거다.(웃음) 당시 7월 초 ‘인디포럼’에서 상영했다. 부랴부랴 편집을 마치고 상영을 했던 기억이 있다. 6월 항쟁에 관한 영화라고 하니 가슴 벅찬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하는데 막상 보고나면 기운이 쭉 빠지는 영화다.(웃음) 처음의 기획 의도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 97년 그 즈음엔 ‘푸른영상’(다큐멘터리 제작 집단)처럼 구멍가게에서 어떤 작품을 하려면, 기획한 사업을 가지고 가 제작비를 부탁하는 방식으로 가능했다. 사실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렇다. 그때 마침 6월항쟁기념사업회에서 천만 원을 걸고 다큐멘터리 공모전을 냈다. 그때 당선이 돼서 제작하게 됐다. 그때는 구체적인 기획안이 없었고 띄엄띄엄 사건들을 추려서 가져갔다. 이렇게 만들면 재미없을 텐데 생각하고 갔는데 회측에서 기획안이 좋다며 이야기를 조금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한 기억이 하나 있다. 당시 조그마한 여학생 두 명이 최루탄 자욱한 명동성당 한 가운데서 어깨동무하고 전경들이 쭉 서있는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런 이미지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5박 6일을 다루면 너무 범위가 좁아 지원을 못한다고 했다.(웃음) 아무튼 이 작품은 당시 2-300만 원쯤 들었다.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부채의식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시점에서 본 농성을 다뤄볼까 했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주관적 다큐멘터리에 서툴렀다. 내 개인적 소견들이 별로 중요치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최초의 6월 항쟁에 관한 영화에 내 얘기를 넣는 게 조금 무리인 듯해서 객관적으로만 갔다.
조: 구성이 만만치가 않다. 87년의 상황들, 뉴스들, 6월 항쟁에 참여한 분들의 인터뷰도 들어가 있고 감독님의 의견을 반영한 전지적 목소리가 있다. 또 카메라가 재현의 기능을 한다. 그런 구성들을 어떻게 고안해냈는지? 요즘의 탐사프로그램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법이지만 명동성당 내부만을 촬영하고 그 위에 사람들의 목소리를 재연해 덧입히는 작업이 그 당시엔 되게 파격적인 연출이었다.
김: 자료가 없으니까 그랬다.(웃음) 두 번 이상 쓰인 화면도 있다. 내가 못찍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자료를 얼마나 모으느냐가 관건이었다. 힘들었다. 회의 기록 같은 것들은 문서로만 남아있었고 문서를 다큐멘터리에서 계속 보여줄 수는 없었다. 명동성당에 취재를 하러 갔는데 문이 잠겨있어서 지인을 통해 몰래 열쇠를 받아 열고 들어갔다. 촬영 가능한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그래서 느린 화면으로 재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연출에 대해 고민을 하면 할수록 좋은 것들이 나오는 것 같다.
조: 감독님 영화의 특이한 점이 있다. 인터뷰이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말을 한다. 추궁의 결과는 아닐 텐데 그분들의 인터뷰는 어떻게 취재할 수 있었는지, 나중에 영화를 보고나서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 여기 나온 분들은 다들 천주교가 배경이다. 그래서 신부님들은 쉽게 섭외가 됐고 시민군은 기념사업회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 사람을 소개받으면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소개받는 방식이 가능했다. 언젠가 시사회를 할 때 영화의 모든 분들을 초대했다. 다들 더 많은 얘기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대체로는 만족한 것 같다.
조: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따라가고 그려내고 보여주는 작품들은 있는데, 상당히 심오하게 반성하고 평가, 지적한 작품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1987>이라는 극영화도 지금 제작 중이다. 중요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신들이 의아하게 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성, 그 6일의 기록>이 더 소중하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김: 사실 87년엔 카메라도,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여기 나오는 대부분의 자료들은 방송국 자료이다. 사진들은 명동성당 안 아카이브 같은 곳에서 가져오거나 신문사의 협조를 받았다. 듣기로는 6월 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이 작품 말고는 전혀 없다고 한다. 광주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꽤 있다. 6월 항쟁의 10년 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87년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찍은 특정한 자료는 없지만, 전반에 관한 자료는 굉장히 많은 편이다. 그런 자료들을 적절히 잘 활용한다면 6월 항쟁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조: 왜 안 만들어졌을까?
김: 글쎄. 본인이 직접 참여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당시 나이가 어려서 기억이 희미하거나 직접적 관련이 없어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조금 약할 수도 있겠고. 그렇지만 부모세대가 386, 486 세대라면 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80년대를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관객: 87학번이다. 영화를 보면서 벌써 30년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영화 속 장면들보다 조금 겸손하게 투쟁을 했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현재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 감독님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조: 당시 김부겸, 이인영, 황인성 씨 같은 경우, 지도부였는데 운동을 방해해 인식이 좋지 않았던 정치권으로 빨리 넘어갔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나?
김: 여기 나오는 사람들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그들 같은 경우는 괜찮지 않나 생각을 한다. 어떤 방향으로 활동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정치권에 갔다고 해서 비난을 할 필요는 없다. 어떻게 보면 학생운동을 하다가 취직도 못하고 장사도 못하고 공무원도 못하면 결국 갈 곳이 정치권밖에 없는 게 아닌가.(웃음) 격려해주고 밀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관객: 농성 해산에 대해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지난 십년 간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나 배경이 있을까?
김: 10년 사이에 인생관이 바뀐 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 한 종편 방송에서 87년과 촛불을 비교하더라. 어떠한 발전 단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다른 나라에서도 시민혁명이 있었고 대부분 성공했다. 왜 우리는 못하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필리핀이 마르코스를 쫓아냈다고 해도 지금 민주화가 된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당장 완전한 혁명을 이룬다고 했을 때, 물론 일시적으로 좋겠지만 혹여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 촛불 혁명까지 세 번의 혁명을 경험하지 않았나. 요즘 뉴스를 보면 언제 촛불로 혁명을 이뤘냐는 듯 장관 임명권조차도 정치적 싸움으로 비춰지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김: 희망적이라는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대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 참여정부시절의 시행착오를 아주 꼼꼼히 복기하고 준비를 한 것 같다. 또 종편 방송 얘긴데,(웃음) 거기서 노무현과 문재인을 비교했다. 노무현은 활달하고 유쾌한 활화산 같은 사람이었다면 문재인은 물러서지 않는, 보다 깊은 호수나 거대한 빙산 같은 사람이라 설명하더라. 당시 시민사회에서 그를 너무 쉽게 내쳤고, 노무현 대통령도 소통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경향이 있다. 정말 얄궂게도 양쪽에서 고립된 상태니까 좀 외로웠을 것 같다. 그런데 문재인은 그렇지 않지 않나. 많은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달라진 것 같다. 공부를 많이들 한 것 같단 생각이 들고.
관객: 넥타이 부대를 비판적으로 본 게 기억에 남는다. 6월 항쟁 때 가려진 싸움들이 많지 않나. 이번 촛불 혁명도 마찬가지로 어떤 부족함이 있는 듯하다. 이것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오늘날의 청년세대로서 비판지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생각할 때 우리가 지금 고민할 필요가 있는 지점들은 무엇일까?
김: 지금이 희망적이라고 하긴 했지만 온전히 희망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올라간다면 반드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이상향을 상정하고 거기로 가려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개인적으론 가장 관심이 있는 부분은 정말로 경제적 불평등, 민생에 있어 이러한 문제들이 어느 정도까지 해결될 수 있을까다. 비정규직이 과연 없어질까? 비정규직이 없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에 정규직 노조의 갑질도 없지 않아 있다.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기 위해서 모두가 조금씩 자기의 이해관계를 내어놓아야 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내 놓을 수 있을까, 조정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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