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판타지아>
SYNOPSIS
“이 마을의 옛날 이야기, 아무거나 좋아요”
영화감독 ‘태훈’은 새 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의 지방 소도시인 나라현 고조시를 방문한다. 조감독 ‘미정’과 함께 쇠락해가는 마을 곳곳을 누비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답한다. 떠나기 전날 밤, 이상한 꿈에서 깨어난 ‘태훈’은 이제 막 불꽃놀이가 시작된 밤하늘을 조용히 올려다보는데…
“오늘 밤, 불꽃놀이 축제에 같이 갈래요?”
한국에서 혼자 여행 온 ‘혜정’은 역전 안내소에서 아버지의 고향, 고조시에 정착해 감을 재배하며 사는 청년 ‘유스케’를 우연히 만난다. 가이드를 자처한 그와 함께 걸으며 길 위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어느새 해가 지고 별이 뜨는 밤, ‘유스케’는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하는데…
<한여름의 판타지아>한줄 관람평
양지모 | 영화는 환상이라는 진실로부터 감성을 재구성한다. 정적인 카메라가 추구하는 공간의 여백, 그리고 음미.
김민범 | 뜨겁지만 성가시지 않던 햇빛과 진하지 않은 밤공기
이도경 | 우리는 만남을, 우연을, 운명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전지애 | 사람과 사랑 사이에서 생기는 것들
<한여름의 판타지아>리뷰
<한여름의 판타지아> : 우리는 ‘우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도경 님의 글입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드라마, 영화, 소설에서 운명은 쉽다. ‘주인공이 만난 이 사람이 알고 보니 그 사람이었다’로 정리될 수 있는 서사가 어디에나 있다. 우연히 악연으로 만난 사람을 필연적으로 다시 만나 인연이 되고 결국 운명이 된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 그런 낭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만나는 ‘이 사람’은 알고 봐도 ‘이 사람’일 뿐이고 운명의 ‘그 사람’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여전히 우연에 대한 갈망은 일상에서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청소하다 우연히 다시 찾은 동전이 반갑고, 로또를 한 번 사볼까 가끔 고민하고 우연히 다시 만난 첫사랑에게 설렌다. 이렇듯 우연이 반가운 이유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도 우리는 여전히 설렐 수 있을까?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보면 그렇다. 그것도 굉장히.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1부와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고조시를 돌아다니며 동네의 사람들에 대해 감독 ‘태훈’이 인터뷰를 따는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구성되어있다. 2부는 그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바탕으로 태훈이 찍은 영화로 구성된다. 즉,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가 있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2부의 제작 과정을 1부에서 미리 스포일러 당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관객은 영화의 제작 과정을 1부에서 미리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다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감독 김태훈이 직조해놓은, 더 나아가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장건재 감독이 만들어놓은 ‘판타지아’와도 같은 구성 때문이다.
1부에는 고조시의 여러 인물들이 인터뷰된다. 배우를 하고 싶었으나 재능 때문에 꿈을 접고 고조시의 공무원이 된 ‘유스케’, 초등학생 때의 첫사랑을 아직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겐지’, 노인이 되도록 고조시의 한 시골마을 시노하라를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40년이 되도록 카페 주리에서 첫사랑이었던 마담과의 친분 유지를 하고 있는 이야기들까지 고조시에 대한 애정이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이 천천히 흑백의 빛깔로 나열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현실의 경계를 넘어가면서 폭죽이 터지며 영화는 2부로 넘어간다. 태훈은 통역사 미정을 통해 고조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2부의 영화로그 세계를 재편한다. 2부의 주인공은 고조시에 여행 온 한국인 여성 ‘혜정’이다. 그녀에게 1부에 등장했던 유스케가 동일한 배우(이와세 료)의 얼굴로, 그렇지만 이번에는 감 농사를 하는 순수한 시골 청년의 캐릭터를 입고 불쑥 등장한다. 마치 1부의 추억을 고스란히 안고 온 듯이. 유스케는 혜정에게 반해 그녀에게 고조시를 함께 여행할 것을 제안하고 혜정은 이를 받아들인다.
2부는 1부와 동일한 시공간적 배경이지만 그 추억을 선명한 색채와 함께 녹여낸다. 겐지씨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가서 보았던 사진을 유스케가 동일하게 보며 ‘내 아버지다’라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하며 1부에 종종 등장했던 시노하라의 한적한 공간에서 둘은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고조시라는 공간은 동일하지만 태훈이 인물과 시간의 재구성을 통해 고조시의 추억을 통역하는 셈이다. 이는 2부의 제목이기도 한 ‘벚꽃 우물’에 압축되어 나타난다. 고조시의 관광지이기도 한 벚꽃 우물의 전설을 유스케가 우스꽝스럽게 지어내고 이를 통해 혜정에 대한 마음이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관객은 이를 보며 고조시라는, 물리적으로는 낯설지만 1부 덕분에 심리적으로는 익숙한 공간에서 둘의 설레는 미래를 예상하기도 한다. 유스케가 혜정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때, 불꽃놀이에 함께 가자고 할 때 관객들은 혜정의 마음처럼 설레기 시작한다.
영화의 구성 때문에 2부의 유스케와 혜정이 가상 인물이라는 점은 다른 극영화보다 훨씬 선명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관객은 유스케와 혜정이 불꽃놀이를 각각 보며 끝내 따로 있게 되는 장면을 다른 영화보다도 더 아쉽게 느낄 것이다. 이는 직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우연’에 끌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1부의 이야기의 여러 요소들이 2부의 낯선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아까 봤던 곳이다’, ‘아까 봤던 사람이다’를 연발하며 ‘우연인가?’하고 우연적 만남에 이입하게 된다. 나아가 혜정과 유스케가 우연히 만나 고조시를 여행하는 장면들을 통해 1부의 제목이자 지배적인 이미지였던 ‘첫사랑 유시코’가 중첩되면서 자연스럽게 둘의 운명적 사랑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이는 1부가 논리적으로 2부에서 혜정과 유스케의 사랑의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아니다. 1부의 이야기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맞춰져 결국 2부에서 거대한 우연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것이 운명으로 이어져가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서사임을 말하는 것이다. 몇 분 남짓 되지 않는 영화의 엔딩 씬인 불꽃놀이를 보며 관객들은 아마도 유스케와 혜정이 달려 나와 서로 만나기를 바랄 것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이 장면에 영화의 1부와 2부를 집약해 관객들에게 아름답고, 낭만적이게 말한다. 우리는 만남을, 우연을, 운명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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