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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8일 금요일] 실험영화 상영회:아이우치 케이지 기획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4. 3.
                              실험영화 상영회 with 다이애고날 필름 아카이브                          
아이우치 케이지 기획전

❚ 일시 : 2008년 4월 18일(금) 저녁 8시 30분
❚ 장소 : 인디스페이스 (중앙시네마 3관)
❚ 입장료 : 5,000원
❚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습니다.
❚ 감독과의 대화를 위해 이번 상영회는 금요일에 열립니다.


     아이우치 케이지 Biography    

1949년 홋카이도 출생

전문영역: 영상,조형표현 영상론/표상문화론
교토세이카대학예술학부미디어조형학과교수,일본대학예술학부강사,와세다대학강사
동경예술대학미술학부회화과졸업,방송대학대학원문화과학연구과수료.(석사)
동경대학대학원종합문화연구과박사후기과정초역문화과학전공단위취득퇴학
일본영상학회이사,표상문화론학회회원,일본애니메이션협회회원.
동경국제Video Biennale exhibition심사원특별상(1986)
"AImage Forum Festival입상(1988)
"ACanon Image land Forum contest금상(1990)
"A가나가와현예술제영상Competition최우수상(1992)
"APersonal Vision심사원특별상(2001) 외 다수 



     아이우치케이지의 작품에 대하여      

지금까지 제작해 온 자신의 작품과 그 제작과정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줄곧 관심을 가져 온 어떤 공통적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항상"세계가 이마주를 수반한 현상으로서 나타난다(현전하다)"에 대한 소박한 놀라움이다. 세계는 시선 안에 항상 이마주(=光景)로서 나타나지만, 그것은 시간과 함께 변화해 공간의 이동과 함께 사라진다. 우리의 의식은 그러한 이마주의 부분적 인상을 기억으로서 정지시켜, 때로는 그 기억을 되새겨 추체험하게한다. 그러나 그런 기억의 반복은 불완전한 것이며, 그 당시의 의식 상태와 감정적인 요소에 의해서 재구성되어서 심리적 긴장 상태가 기억에 대한 인상을 좌우한다고 할수 있다. 이 의미에서는 이전에 봤던 세계의 이마주(=光景/視覺像))와 기억(=회상)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상은 그 어느 쪽과도 또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세계의 이마주의 현전이 시간적이며 공간적으로 경계가 없고 무한의 깊이와 확장성을 가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영상은 그러한 확장과 깊이의 극히 얼마 안 되는 부분만을 한정적으로 잘라내, 그 이외의 모든 것을 프레임의 밖으로 배제해 버린다. 또, 그 이마주의 단편을 각각 성능이 다른 카메라나, 필름, 비디오, 디스크 등의 불완전한 미디어 포맷에 기록해, 스크린이나 디스플레이상에 재현한다. 그 때, 세계의 이마주는 3 차원에서 2 차원화 되는 것뿐만 아니라, 영상이 움직임의 인상을 동반하기 위해서는, 프레임과 프레임의 사이에 어둠(=불가시)이 필요하다. 즉 어둠과 이마주의 단편에 있어서의 명멸이 운동의 인상을 낳는(=가현운동) 것이며, 그것이 지속됨에 의해서, 일련의 움직이는 영상(=운동·이미지)이라고 하는 시각적 인상을 낳게 한다. 이와 같이 기록된 영상은 메카니즘 상의 특성으로부터, 세계의 이마주 그 자체와 다를 뿐 아니라, 벌써 촬영자라고 하는 타자의 시선의 욕망에 점철되고 절단되어 버려진 세계의 이마주의 단편이며, 주관적으로 구성되는 기억과도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영상 미디어를 개입시켜 그 어떤 표현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이러한 3개의 서로 다른 위상 즉 "세계의 현전으로서의 이마주" "기억" "영상"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 거기에 다양한 망상을 섞어 넣는 것이 포함되어져 간다.

서두의 "u세계가 이마주을 수반한 현상으로서 나타난다(현전) "v에 대한 소박한 놀라움이란, "존재(=세계)와 그 지각 상으로서 이마주(=영상)는, 그것을 계속 응시하려고 하는 의식이 어떻게 구성되어나가는 것일까 "라고 하는 막연한 물음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것은 예정되어진 죽음으로 끊임없이 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의식에 있어서 그때 그 당시의 세계를 놀라움으로 받아들이고, 세계와 공존한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마주(=光景)로서 열리는(=현전) 세계는, 우리들의 한계 되어진 생(生)과는 관계없으며, 예전과 그렇듯이 계속해서 존재하며 더욱 더 연장되리라 추측할 수 있다. 세계의 현상(현전) 자체는 우리의 지각이나 개념에 의한 인식능력과는 완전히 관계없이, 그 자체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으로서 전개되고 있다. 지각을 통해 나의 의식에 나타나는 것은 그러한 세계의 그저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 세계의 현상(현전)을 한 묶음의 윤곽을 가진 이미지로서 지각할 수밖에 없지만,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이미지네이션은 <나>라고 하는 의식이나 존재를 넘은 것으로서 의식화 될 것이며, 동시에 세계와 그 무언가에 불가사의을 느끼게 하는 것도<나>라는 존재 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식이, 나를 영상제작이나 사색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응시(凝視)와 이마주(=영상(映像))의 유희(遊戱)

1983~2002(Animation/Video) 71min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위바위보 · JANKEN PLAY] Video Installation, 3min, 1983

인터랙티브적인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의 기록. 사이타마 현립 근대 미술관에서 행해진「애니메이션 퍼포먼스 」의 이벤트로 제작한 인스톨레이션의 기록. 1980년대 전반, 비디오 아트는 싱글 채널이나 인스톨레이션으로써, 모니터로 전시되는 것이 주류였다. 인터랙티브적인 작품은 보기 드물어서 ,비디오는 TV와 마찬가지로 보는 것 이었다. 그러한 수동적 관계를 비틀어, 반대로 보여지는 영상의 관계를 인터랙티브인 환경을 만들 수 없을까하고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다. SEG(특수 효과 장치)와 연동한 테롭(문자 합성 기능), 비디오 카메라를 개입시키고, 리얼 타임의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구성했다. 미디어를 개입시켜 타인他人끼리가 대화하는 게임 감각의 작품. 이 작품은 단지 기록으로서가 아니고, 영상 작품으로서 편집되어 있다. 서로가 상당히 진지하게 되거나 호기심을 갖기도 하고 , 그 장치에 개입하여 애정을 나타내는 등, 인간들이 이루어내는 반응의 다채로움이 재미있다.

[동(動) · MOVE] 16mm Movie Animation, 7min, 1986

사진과 사진의 사이(間) =촬영되지 않은 시간을 이미지로 그리며 기록과 픽션을 왕래한다.사진에 있어서의 <보다>라는 의식에 대한 작품.사진은 보여진 세계를 담지만, 사진과 사진의 사이(間)에는 기록되지 않은 시공간과 일들이 무한히 퍼져간다. 이 작품은 그런 시공간과 일에의 망상을 수작업手作業에 의해 구축해 나가고 있다.

[MARIA MARIA MARIA - the annunciation] 16mm Film/Video Animation, 10min, 1992

15세기의 이 회화는 서술적 시간과 의미를 암시하며, 마치 기록사진처럼 그려져 있다. 그 장면 장면들은 영원히 반복되며 지금도 살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들이 회화를 볼 때에는 그 안에 구성되어 있는 정지된 시간과 의미를 감상하는 것은 아니며, 수태고지라는 극적순간을 떠 올리며 마리아가 받았을 충격이나 그 신비적 사건에 생각을 느끼는 것만도 아니다 .회화 공간의 깊이 속에서 순간적으로 동결된 화상을 거점으로 해서, 거기에 이르는 이야기가 생성될 때까지의 긴 시간을 상상하며, 현재로 부터 나와 다시 미래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로써 초월된 세계의 현상을 추측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 작품은 종교화라는 회화 형식 안에 동결된 에피소드의 순간과 거기에 나타난 종교적인 의미의 위상에 생각을 순환시켜, 영상적인 시간과 의미로써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랑게르한스섬의 오후
· ON THE AFTERNOON IN LANGEL HANS ISLAND] 
      Video/Animation, 13min, 1993-2000

고대 유적 스톤헨지와 원자력 발전소에서 느껴지는, 인간과 우주적 에너지와의 대화. 그리고 그것을 파악하려고 하는 시스템적인 발상. 이 작품은 60명을 넘는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과 나의 무의식이 교착하는 백일몽과 같은 콜라버레이션이다. 소르즈베리의 언덕에 잠시 멈춰서는 스톤헨지와의 만남, 런던 교외의 어떤 역에 인접하는 원자로의, 마치 고대 유적과 같은 냉각탑과의 만남이 이 백일몽의 시작이다. 우주의 운행에 신비성과 의미를 부여하려 유적을 건조한 고대 사람들의 욕망과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를 제어하려고 하는 현대인의 욕망의 사이에는 그런 무의식의 유사성이 느껴진다. 메일 아트, 애니메이션, 오브제, 인스톨레이션으로 전개한 작품의 일부. 새롭게 재편집한 2000년도 판 작품 .

「UNDRINKABLE WATER · 마실 수 없는 물」Video, 20min, 2002

「그림의 떡」라는 말과 같이, 영상안의 물은 마실 수 없다. 따라서, 이 타이틀의「마실 수 없는 물」이란 영상의 메타파로서 나타나고 있다. 6개의 씬 중에는, 각각 물에 관련 테마가 선택되어 있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니다 」에서는 르네·마그릿트의 회화「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 나타나고 있는 이미지와 언어의 지시기능과의 엇갈림의 구조를 인용하였고, 「미속 전진」에서는 9.11의 비행기의 옆에서 본〈응시凝視〉의 욕망을 이미지화한 영상으로 나타내, 마지막 컷에서는 쟝 뤽 고다르의「미치광이 피에로」의 라스트 씬을 인용해, 그 이미지를 모방한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에 인용이나 비유에 의해서 물의 이마주(映像)나 개념을 연상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And I see you see me see you」Video, 18min, 1994

「THE art FOR SALE 」라고 하는 인스톨레이션에서 전시된 작품. 「 나는 당신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당신을 본다」라고 하는 시선의 반복, 혹은, 「당신은 나를 보고 있는 당신을 보고 있는 나를 본다」와 같이 대치자對峙者의 대치자에 대한 의식의 의사적 반복적 구조를 본다는 것이 이 작품의 표면적 의미이다. 말은 강박적이다. 말로서의 반복되는「당신」과「 나」가 교환 가능한, 단순한 전환자와 같이 들리기 때문일까. 등장하는 여성(후쿠하라 마리씨)에게는 내적 감정이나 사고를 방향 짓는 몇개의 지시가 주어져 있다. 이로써 내적 감정이나 사고의 변화가 어떻게 그녀의 표정으로서 나타나는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로부터 정말로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보는 나를 보는 당신을 본다. 당신은 나를 보는 당신을 보는 나를 본다. 나는 나 자신을 보는 나를 본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보는 당신을 본다. 나와 당신은 교환 가능한 전환자이다.
나는 당신을 보는 나를 보는 당신을 보는 나를 보는 당신을 보는 나를 보는 당신을····.
나와 당신의 관계는 무한하게 계속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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