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진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있던 젊음. 그 유예의 시간들 <경복> 인디토크
영화: <경복>
일시: 2014년 7월 29일
참석: 최시형 감독
진행: 이난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유진 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D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 1주년 인디돌잔치 상영작으로 최시형 감독의 <경복>이 선정되었다.
영화 <경복>에서의 형석과 동환은 이제 막 수능이 끝난 스무 살이다. 그들은 독립을 꿈꾸고, 이 동네를 떠나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하지만 막상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겠다. 터널과 동굴을 지나 그들은 어디론가 갈 수 있을까?
진행에는 영화 <평범한 날들>의 이난 감독이 함께했으며, 최시형 감독과 ‘7월의 인디돌잔치‘ 인디토크에서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진행: 개봉 1년 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감독: 별로입니다.(웃음) 영화가 복잡한 것 같아요.
진행: 저는 경복을 네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많이 바뀌었어요. 자라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낯설기도 하고 보고나면 기분이 항상 새로우면서 신기한 영화입니다. 여기 계신 관객 분들은 영화를 처음 보시나요? 두 번 이상 보셨나요? 반반 정도 되시는 것 같네요. 처음 보시는 분들도 계시니 언제부터 계획된 이야기인지,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감독님이 중간에 군대를 다녀오셨는데, 정확히 언제 끝난 영화인지 궁금합니다.
감독: 2009년에 촬영을 하고 1차 편집까지 마쳤는데, 2010년에 영장이 나와서 군대에 갔습니다. 그리고 2012년 말년 휴가 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위해 편집하느라 죽을 뻔 했죠.(웃음) 그 다음 해에 개봉 준비를 하면서 영화가 많이 바뀌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음악저작권 문제 때문입니다. 저작권료가 너무 비싼 노래들 이었죠. 음악 말고도 여러 가지 생각이 바뀐 것들이 있었는데, 저는 바뀐 영화가 좋은 것 같습니다. 내부관계자들은 예전 것을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진행: 감독이 25세쯤에 20대를 추억하며 만드신 영화였죠. 그때는 보통 영화를 칼라로 찍을 생각을 많이 하실텐데, 굳이 흑백으로 찍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감독: 2003년에서 2006년 쯤이 한창 필름에서 디지털로 완전히 바뀌던 시기였는데요. <전국노래자랑>, <도리화가>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과 신이수 감독, <숨바꼭질>을 연출한 허정감독, 배우 한예리 씨 와 거의 가족처럼 친했어요. 이틀에 한 번은 보는 사이였죠. 10년 정도 알면서도 반말하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영화를 보니까 반말을 해서 어색하더라고요. 어쨌든 그 시기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한 시기였고 지금 다시 보니 마지막 컬러부분에 ‘Canon 5D Mark2’ 카메라로 찍은 부분 빼고는 구질구한 느낌이 드네요. 그런 것들이 필름 영화를 따라한 것도 있어요. 그 당시에 흑백을 쓴 이유도 xl2 의 흑백필름 느낌이 나지 않나 싶어서 썼었고요. 흉내 내기죠.
진행: 그 당시 최시형 감독은 꾸준히 연기를 하셨는데, 군대를 다녀오면서 연기를 거의 안 하더라고요. 저는 <경복>을 보면서 배우의 가능성도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공교롭게도 경복 이후 출연을 거의 안하고 계시죠.
감독: 배우는 연출만큼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것도 있고, 스펙트럼이 있는 작품을 하려면 회사 혹은 매니저 등이 필요한데 그런 상황에서 연출을 하는 것이 애매할 것 같아요.
진행: 경복을 볼 때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감독: 그 이후에 쓴 것이 있는데 구질구질해서요.(웃음) 재매있지만, ‘이런 영화는 한 번 하면 됐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외촬영이 한 번도 안 나오잖아요. 이후에는 야외로 나가 신선한 장면을 찍어야죠.
진행: 인물들이 이동하는 것도 실내잖아요. 유일한 야외 장면이 졸업식 장면이고 그 외 대부분의 장소는 방안, 집안, 터널 안으로 의도가 다분했던 거 같아요.
감독: 각자만 알고 있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때 제 인생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예감하고 있었어요. 제가 원래 연출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온 사람들을 시나리오에 참여하게끔 했어요. 다들 각자의 길을 걷기 위해, 떠나기 전의 의식 같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관객: 마지막 장면에 한예리 씨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감독: 그 당시 심정이 복잡하던 시기라 과잉된 감정이었을 수도 있는데, 제가 서울에 오래 살면서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사를 다니면서 서로가 그 집안에 있었던 일들은 모른 채 어떤 좋은 기운이 있다면 살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을 이사 온 사람들이 이어받아 잘 살면 되지 않을까? 그런 재밌는 생각을 해봤어요.
관객: 가택침입 아닌가요?
감독: 가택침입 맞죠. 그리고 거짓말도 하잖아요. 혼자 산다면서 셋이 살고. 거짓말 하는 여자입니다. 그래서 한예리 씨가 지금 배우를 하고 있겠죠.(웃음)
관객: 친구가 중간에 화상채팅을 하잖아요, 그게 어떤 시기였고 누구랑 했는지 궁금하고요. 주인공이 술 마시다가 울었는데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감독: 제일 마지막에 추가촬영을 했습니다. 그 당시 모든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데 저는 군대에 있었거든요. 우는 장면과도 연관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것이 ‘어떤 사이이건 간에 옆에 있는 사람이 떠나는 일이 가장 슬프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플래시포워드 느낌으로 넣었는데,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이 떠나면 어떡하지?’라는 상상이었습니다.
진행: ‘플래시포워드’는 앞에 일어날 미리 넣는 것을 말하고요, 보통 영화에서는 ‘플래시백’이라고 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재연하는 기법이 있죠.
채팅을 하고 있는 동환이 실제로 외국에 있을 때 한국에 있는 형과 채팅했다고 합니다. 터널에서 혼자만 남아있습니다. 사진에서도 혼자 남겨져 있고요. 전체적인 형식으로는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 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우는 장면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초반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동네 형 역할인 신이수씨지만 형근이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죠. 보면서 기분이 정말 이상해졌었어요.
감독: 예전에는 저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생활이었거든요. 엄마 아빠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였어요.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것들이 변했어요. 의미를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진행: 영화가 크게 세 개의 덩어리로 구성되어있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상태,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벗어난 순간 새로 등장하는 사람들, 전체적인 구성은 어떻게 생각하신 건가요?
감독: 제 영화의 느낌은 곡선을 흐르면서 가지 않나 생각했어요. 시나리오가 확실한 영화는 분명히 보이지만, 제 영화는 구조가 조금 복잡하죠. 그 당시 저는 카메라 옆, 뒤에 관심이 많았어요. 장난을 많이 친거죠. 보면서 ‘제 성격이 진짜 삐뚤어졌구나’ 많이 느꼈어요. 유치하게 카메라의 컷을 끊어야 될 타이밍에 나눈다든지, 미학적인 이유와 상관없이 그냥 그 당시 제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행: 2013년에 개봉하고 1년이 지났네요. 이 사람들의 행보는 여기서 더 나가지 않는 건가요?
감독: 그 이후의 이야기는 사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같아서요.
진행: 영화 속 동환은 해답을 찾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남아있는 형근은 아직 답이 없는 상태 같아요.
감독: 20대 내내 가장 많은 고민을 했어요. TV 프로그램 중에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이명세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조용한 방에서 불을 다 끄고 ‘영화가 아니면 살 수 있나 없나’ 스스로 물어 보라고요. ‘살 수 있을 것 같으면 영화를 안 하는 것이 낫다’ 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확신을 올해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 당시의 고민은 영화가 괜찮고, 좋기도 하지만 잘 알지 못해 질문 투성이 였던 시기였어요. 20대 내내요.
관객: 영화 속 동환이 기타를 되게 못 치는데 왜 굳이 음악을 하려고 하는거죠?
감독: 기타는 지금도 못 칩니다. 캐릭터 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재능 같은 것을 다 떠나서 배우로서 노력을 잘 안 해요. 하려고 해도 못해요. 연출은 못하더라도 발전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그게 사실은 그 사람의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대기만성 보다 어릴 때 성공적으로 뭔가 터뜨리는 걸 좋아하잖아요. 저는 어릴 때 잘하는 것보다 장인처럼 꾸준히 묵묵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의미로 넣었던 것 같아요.
진행: 실제로 동환이란 친구가 영화처럼 음악을 하려고 했던 거죠?
감독: 꼭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얼마 전에 스카웃되어 지금은 영화 음악 팀에 있습니다.
관객: 영화 속에서 동환이란 친구를 좋아하다 못해 맹신하는 설정으로 되어있는데 어머니가 여행가면서 친구 들이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집안 살림을 거덜 낼 정도로 그 친구와 짐을 싸고 함께 움직이면서 어떤 자유로움을 얻게 되는건지 궁금합니다.
감독: 사실은 친하긴 하지만 저 당시에 믿음이 강렬하던 시기는 아니었어요. 최근에서야 확신을 가지게 되었는데, 저 때는 연기를 잘 한거죠. 저 친구와는 확실히 음악적으로 묶여있는 것 같아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친구인데, 이제서야 저는 연출을 꿈꾸고 있고 저 친구도 영화 음악감독의 꿈이 있어요. 음악을 만들 때 설레고 꿈꾸는 듯한 기분이 느끼는 것 같아요. 확실하게 음악적으로 묶여있는 것 같습니다.
진행: 경복이란 영화가 그런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도 묘한 끈으로 묶여있는 것 아닐까. 감독님은 최근에 어떻게 지내세요?
감독: 이사도 갔고, 요즘엔 영화제 심사를 하고 있어요. 외국영화 많이 보고,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후년 여름 터널 밖으로 나가는 목표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겨울에 느와르와 멜로가 합쳐진 영화를 찍을 예정이에요. 그리고 9월 즈음 <서울연애>라는 영화가 개봉합니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었는데, <영시>라는 첫 번째 에피소드를 제가 연출했습니다.
진행: 사랑, 서울, 20대 라는 주제로 단편이 묶인 옴니버스 영화죠. 최시형 감독은 꿈이 뭐에요?
감독: 좋은 꿈을 사는 것이 꿈입니다. 만화책에 나온 대사인데 멋있더라고요. 영화를 생각하면 설레고 좋은데 진행하고 있는 영화를 무사히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낙으로 살아요.
진행: 저는 최시형 감독에게 기대가 큰 사람이기 때문에 더 좋은 영화, 좋은 꿈을 잘 이뤄가며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 요즘에서야 조금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믿어주는 분들이 계시니 다음 영화는 더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짝반짝 빛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한때의 젊은 시절은 있다. 그런 젊은 시절을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해낸 영화 <경복>이었다. 인디토크에 참석한 관객 모두 자신만의 한때의 시절을 추억하는 듯 마치 영화처럼 묘하지만 따뜻했던 인디토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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