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반성하지 못한 과거가 또 다른 희생이 되지 않도록, <논픽션 다이어리> 리뷰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감독: 정윤석
장르: 다큐멘터리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윤상 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D
◈ [인디즈] 한 줄 관람평
윤정희: 실화인걸 알기에 더 서늘한 다큐멘터리.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관통한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김은혜: 거친 편집 사이에 보여지는 사회모순의 밀도있는 비판.
이윤상: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제대로 반성해야한다. 반성하기 위해선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전유진: 90년대에서 날아온 질문, 현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 믿기 힘든 사고가 일어났다. 5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태운 여객선이 진도에서 침몰했다. 우리는 그 사고로 294명을 잃었다. 한명이라도 더 무사히 구조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기도하고 위로해도 비통함으로 잠 못 드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 구조되지 못한 10명의 실종자들을 가족들은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사고와 관련된 수많은 의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남아있으며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유가족들과 특별법을 반대하는 보수단체의 맞불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도대체 이런 사고가 왜 이렇게 어이없이 터져버렸는지, 또 이런 큰 희생으로 커져버렸는지에 대해 나 역시 큰 답답함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논픽션 다이어리>를 보며 한국사회의 현재 모습이 우연히 닥친 불행이 아니라 90년대를 제대로 마주하고 반성하지 못한 결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4년 지존파 사건 그리고 뒤이어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영화는 이 참극들을 새로운 방향에서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가 어떤 태도로 참극을 마주했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보여준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90년대는 이전까지 남아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이 완전히 무너짐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논리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간 시대이다. 한편으로는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그동안 억눌려있던 민주화와 자유에 대한 열망이 사회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성됐다.
지존파 사건은 그 당시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악의 씨앗’, ‘악마의 대리자’로 피의자들을 규정하지 않고는 이 사건을 어떤 이론이나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세상에 대한 분노만을 쌓아왔던 그들은 사형을 선고 받은 지 1년 1개월 만에 사형을 집행당했다. 그 시대의 여론은 그들을 ‘악의 씨앗’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봐주지 않았다. 당시 언론과 정치적 분위기속에서 순식간에 사형이 집행됐고 이러한 단죄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500명이 넘는 희생자와 1000명에 달하는 부상자를 낳은 삼풍백화점 사건의 책임자 삼풍그룹 회장 이준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여 징역 7년 6개월이 확정되었다.
고속 성장에 대한 강박 속에서 기초를 제대로 하지 않고 허술하게 지어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은 그 시대의 특징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구조물이며, 이는 우리들의 마음에 큰 상처와 충격을 남겼다. 그러나 이 사고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은 전혀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했고, 우리들은 분노를 엉뚱한 곳에 발산하며 제대로 반성하지 못했다.
지존파의 일당들은 우리 사회에서 철저히 타자화 되어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해석은 결국 우리에게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못했고, 사건은 그저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과거로만 남았다.
제대로 처리되고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은 사회 내부에서 그대로 곪아가며 더욱 더 병리적이고 험악한 사회를 예고했다.
영화는 90년대 우리의 상처를 돌아보며 우리가 그냥 흘려보낸 과거를 붙잡아 기록한다. 얼마나 모순적이었고, 얼마나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했는지, 또 한국사회가 얼마나 진보하지 못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삼풍백화점이, 성수대교가 지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섬뜩했다.
‘잘못은 했는데 할 말은 없고 내 운명이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영화 중간에 피의자가 한 말이라며 나오는 대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말이 잊혀 지지가 않았다.
흉악 범죄자들을 하루빨리 단죄해야한다고 주장하기 전에 우리들도 그 사회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임을 자각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사회문제를 철저히 외부의 일로 배척했을 때 우리는 그러한 참사들로부터 어떠한 공포도 책임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지존파의 젊은이들을 빼앗지 않고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삭막한 사회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우리들이다.
타자화가 위험한 것은 비단 사회문제를 바라볼 때만이 아니다. 자신을 완벽한 세계에 가두고 타인을 그 외부의 존재로 보는 것, 세상을 모두 선과 악으로 나누고 다른 범주로 분류된 사람들을 그저 그 카테고리의 이름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모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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