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되돌아 봐야만 할 우리들의 90년대, <논픽션 다이어리> 인디토크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_감독 정윤석
일시: 2014년 7월 19일
참석: 정윤석 감독, 박찬경 감독(<만신> 감독)
진행: 전상진 감독 (<주님의 학교>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윤상 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D
7월 19일 토요일 오후 인디스페이스에선 <주님의 학교>의 전상진 감독이 진행하고 <만신>의 박찬경 감독이 함께하는 <논픽션 다이어리>의 ‘사제썰전 상영회’가 있었다. 박찬경 감독은 정윤석 감독과 사제지간으로 <논픽션 다이어리>의 시작단계부터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었으며, 전상진 감독 또한 정감독과 <논픽션 다이어리>의 편집과정을 함께했다고 한다.
감독과 친분이 두텁고 이 영화에 대해 누구보다 애정을 가진 두 감독이 함께하는 자리라 훨씬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로 상영회가 진행되었다.
진행: 정윤석 감독님 지금 개봉 3일차 인데 어때요? 일주일 전부터 잠을 못자고 동네를 방황하시더라고요.(웃음) 작품 공개하고부터 개봉준비까지 1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그간의 과정을 간략히 말씀해주세요.
정윤석 감독(이하 정): 작년에 부산에서 프리미어 상영하고, 1년 동안 계속 개봉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개봉 날이 종영일 같더라고요.(웃음) 약간 진이 빠졌었는데 관객과의 대화(GV)하면서 컨디션이 다시 올라오고 있어요.
진행: 17일 개봉을 해서 지금 3일차 인데, 요새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밤마다 들어가서 내 영화 몇 명 봤나 체크하고 있죠?
정: 그거는 영화를 아직 개봉 안 해봐서 하는 소린데... 개봉하면 1분마다 체크해요(웃음).
진행: <논픽션 다이어리> 포스터와 예고편이 상당히 잘 나왔잖아요. 그리고 부산영화제에서 작년에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그리고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 영화상 이렇게 수상했어요. 그래도 지금 전국에 16개관, 그리고 첫날 관객이 400명이에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고 있어요. ‘내가 적극적으로 안 해도 잘 가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오히려 상황은 정말 어렵습니다. 영화의 수준을 떠나서 한국 영화 자본이 갖고 있는 문제점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개봉 3일차 된 이 작품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초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소개를 해 드려야겠죠? 일단 두 분이 어떻게 아시는 사이세요?
정: 저희는 10년차 교수와 제자 사이에요. 박찬경 선생님 캐릭터를 설명해드리자면,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일 잘 만드신다고 주장하는 분이고요. 저는 ‘아니다 내가 더 잘 만든다’고 주장하는 제자입니다(웃음).
진행: 여기 박찬경 감독님은 3월에 <만신>이라는 다큐멘터리로 개봉을 해서 지금까지는 올해 최고의 다큐멘터리 흥행작 감독으로서 유지하고 계시고요. 정윤석 감독은 이 뒤를 이어서 ‘내가 더 흥행작 감독이 될 것이다’ 하고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죠. 두 분이서 처음 만나게 된 건 언제고 어떤 인연으로 이 자리에 나오셨는지 선생님이 직접 설명을 해주세요.
박찬경 감독(이하 박):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수업을 오래 했었어요. 그중에서 기호학 수업시간에서 처음 만났고요.
지존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꽤 됐었습니다.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고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는데, 중간에 다른 작품 하느라 좀 지체 되길래 “어떻게 됐느냐” 그랬더니 촬영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는 사이사이 작품도 좀 보고 편집본도 보고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완성된 작품은 오늘 처음 봤습니다. 중간 중간 편집과정을 봤을 때 보다 굉장히 완성도도 높고 이야기를 잘 풀어 나간 것 같아요. 물론 저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에 잘 했겠지만(웃음), 상당히 놀라면서 봤습니다.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굉장히 새롭고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진행: 작품 초기에는 선생님이 많은 조언을 해주셨지만 2012년부터 정작 이 작품에 하루에 12시간 씩 붙어있던 사람이 누구였죠?
정: 그건 당신이죠.(웃음)
진행: 네, 제가 거의 2년 동안 이 작품이 나오는 산통의 과정을 매일 밤낮으로 지켜봤습니다. 참 작년에는 좋은 다큐멘터리로 회자되었던 작품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중에 세 작품을 뽑는다면 <만신>, <논픽션다이어리>, 그리고 <주님의 학교>라고.. 사실 이 세 작품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는데, 개봉을 아직 못하고 있네요. 잠깐 관심 가져주세요.(웃음)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지만, 이 작품을 구상한 시간은 꽤 오래전부터 였죠?
정: 네. 한 5년 됐죠, 아까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중간에 1년 정도 영화를 포기 했던 적이 있어요. 난지도에서 사람들이 시체를 찾는 장면 있잖아요. 제가 자료조사를 하면서 그 장면을 만나는 순간, 사랑하는 가족들의 시체를 찾겠다고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시체들을 난지도에서 찾아다니는 모습자체가 '아, 이게 90년대의 강력한 상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아, 내가 이걸 만들어야 하나. 하고 싶지 않다’하는 생각으로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피해있는 상태였는데, 그때 선생님과 우연찮게 술을 마셨어요.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그 작품 어떻게 돼 가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안하려고요” 하고 대답했어요. 그 때 선생님이 “그 작업 중요한데 왜 안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얘기를 듣고는 다시 생각을 다잡아 고 선생님을 섭외하기 시작했고,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법의 형평성 문제가 정치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셨는데, 이 말 자체가 영화를 만드는데 굉장히 중요한 맥락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주장이나 목소리를 앞세워서 설득하려고 하지만 그것보다 ‘이 영화가 가진 기본 자체를 질문하는 쪽으로 풀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박찬경 선생님이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형식이고 중요한 시도다’라는 표현을 해주셨어요. 두 분 다 미술을 베이스로 영상 작업을 하시고 선생님은 미술 평론도 오래 해오셨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이 어떻게 보이시고, 어떤 면에서 새로운 형식적 시도라고 생각하시나요?
박: 먼저 자료를 음악과 어울리게 배치하는 스킬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어요. 지금 <논픽션 다이어리>에서 보시는 정도까지는 굉장한 노력과 시간, 그리고 감각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눈에 띄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도 사실 최근 한국영화나 많은 할리우드영화에서도 범죄를 다루는 시각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잖아요. 보통 ‘악의 씨앗’, ‘이유를 알 수 없는 광기’ 이런 쪽으로 몰아가는 게 대세인 것 같아요. 특히 현대에 들어올수록 사회적으로 해석하는 건 촌스럽고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런데 이 영화는 악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을 과감하게 사회적으로 풀었잖아요. 그랬을 때 비로소 그 범죄들이 왜 만들어졌고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시선에 있어서도 굉장히 당대에 필요한 해석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그런데 시사회 때도 그렇고 관객들 표정이 좋지 않다는 말들이 있었어요.
박: 영화 주제 자체가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무거우면서, 한국사회를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쉽게 표정이 나오는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진행: 저는 이 영화가 어려운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순진하게 세상을 살아오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법의 형평성이나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을 당연히 알고 있고, 저는 한편으로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추기 때문에 사람들이 할 말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정: 제가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이런 현실을 다 알고 있고 여태까지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냐.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냐.” 이 두 가지에요. 사실 이 부분에서 제가 해드릴 말은 별로 없어요.
이 영화를 제가 첫 장편으로 선택한 자체가 세상을 바꾸겠다고는 주장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제 삶에 있어서 이 영화가 마지노선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거든요. 살면서 뭔가 유혹을 받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게 되는 때가 있을 텐데 그때마다 이 영화가 초심이 되도록 중요한 질문들을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관객 분들이 그런 질문을 해주실 때 마다 난감한 측면이 있어요.
동시에 재밌는 리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는 기자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 영화의 지존파, 삼풍백화점, 성수대교가 삼점 투시 되어 소실점으로 모이는 것이 5.18인 것 같다.” 저도 공감했던 것이 결국에는 90년대 5.18특별법이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면서 법의 형평성이 깨졌고, 그것이 제대로 처리되었다면 삼풍백화점이 세월호로 다시 돌아올 일도 없었을 거라고 저는 감히 생각해요. 만약에 90년대에 우리가 갖고 있던 기회를 제대로 활용했다면 오늘날의 이런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죠. 그래서 관객 분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우리의 몫이 생겼고, 우리가 상기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관객: 중간에 지존파의 김기환이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냐’ 는 질문을 받았을 때, ‘두려움 없이 살아라.’ 이런 말을 했잖아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는 심야토론에서 사회자분이 읽어준 편지의 내용은, 지존파 같은 사람들은 소수고 멀쩡한 다수의 청년들이 있다는 내용의 편지였는데, 제가 받아들이기엔 마지막 메시지가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느껴졌거든요. 오히려 지존파의 김기환이라는 사람이 한말이 더 와 닿았어요. 우리는 아직 희망적이라는 말이 별로 와 닿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그 장면을 넣으신 이유가 뭔가요?
정: 사실은 그 말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말이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마지막에 넣었어요. 느끼신 게 맞는 것 같고요. ‘우리는 지존파가 아니다. 우리는 예의범절을 잘 지킨다.’ 예를 들면 이 말에서 ‘지존파’를 ‘비정규직’으로 바꿔도 말이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말을 ‘빨갱이’라고 바꿔도 말이 되고요. 그 말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이나 비 논리성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다 맥락화 되어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블랙코미디 식으로 다시 한 번 상기시킨 장면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진행: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개봉하는 과정에서 조금 마음이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생각으로 힘드셨던 건가요?
정: 1년 동안 개봉을 준비하다 보니 세월호 이전과 이후 반응이 다르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나오는 얘기도 다르고요. 세월호 이전엔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했어요. 세월호 이후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에 더 초점을 맞춰 국가의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삼풍백화점 사건을 편집하면서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 사건 자체가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끔찍한 사건이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겁이 났어요. 사람들이 어쨌든 분노를 하고 있고 그 분노라는 건 희생양을 찾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결국엔 분노를 소비시키려고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슬픔을 강요하지도 않는 가운데서 ‘내가 관객들을 만나 어떤 얘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하는 심적 부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진행: 선생님이 보시기에 최근 한국 사회, 특히 세월호 사건에 이 영화가 메시지를 던져준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은가요?
박: 일단 제가 영화에서 재밌게 본 것은 종교인들의 태도나 말인데요. 우리가 지금 여러가지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저는 영화의 전체적 주제를 굳이 말로 하자면 ‘용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용서가 이해를 통한 용서인거죠. 영화에서 설명을 해주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이런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어떤 조건들이 있었고, 절대적인 악이란 없다. 그러면서 풀어가지 않습니까.
근래 세월호를 겪으면서 용서라는 말을 쓰기 어려워졌죠. 말하자면 이제 정확히 문제점을 찾아서 해결하고 단죄해야 한다는 거죠. 세월호 이후에 우리가 사로잡혔던 감정은 단죄잖아요. ‘나쁜 놈들은 다 잡아 가둬야한다. 대통령이 문제다. 해경이 문제다’ 등등..
종교적이나 윤리적 차원의 용서의 범주와 단죄의 범주가 있는데, 하나는 굉장히 근대적인 사고이고 하나는 굉장히 오래된 종교적 사고일 텐데 이 사이의 충돌을 여러 가지 차원에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도 세월호 이후에 우리가 느껴왔던 용서와 단죄 사이의, 또는 더 나은 근대화, 더 철저한 근대성, 더 나은 민주주의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 사이의 문제는 없는가. 그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 2012년쯤 선생님께 만신 이후에 어떤 작품을 하시고 싶으신지 여쭤봤더니 “결국에는 유토피아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하셨거든요. 선생님은 ‘결국에는 좋은 세상에 대한 염원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요즘 ‘염원보다는 염원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지존파 일원이 사형되기 전에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까 옆에 교도관이 “떨지 마라. 금방 끝난다”고 말했더니, “제가 지금 죽는 것 때문에 두려워서 떠는 게 아니라 내 영혼이 죽고 나서 심판받을까봐 그게 두려워서 떤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그때 그 사람이 한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가장 큰 자존감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결국 ‘나쁜 사람에서 착한사람이 됐으니 용서하자’가 아니라 원래 누구나 다 인간이라면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악마라고 불렸던 사람도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어요.
진행: 선생님 마지막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대관을 하셔서 <논픽션 다이어리> 상영회를 하신건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사실 제가 <만신>을 개봉했을 때 유지태 씨가 전석 구매 후 초대 이벤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힘도 받게 되고, 굉장히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상영회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영화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논픽션 다이어리>를 선택할 수 있었죠.
진행: 정윤석 감독님도 이후 이런 좋은 취지의 상영회를 꼭 이어나가길 바랍니다.(웃음) 오늘 이 자리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이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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