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비디오에서 버블경제로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5 21일(일)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마민지 감독, 천주희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저자

진행 박혜미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신나는 다큐모임, 찍는 페미, 인디스페이스가 함께한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기획전의 <버블 패밀리> 대담.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박혜미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마민지 감독, 그리고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의 천주희 작가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버블 패밀리> 발제문: 욕망의 교차로에서 태어난 http://indiespace.kr/3437








박혜미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박): 서울에서 첫 상영을 했습니다. 소감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가족의 이야기, 한국사회의 이야기까지 엮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민지 감독(이하 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보다 더 떨렸어요. 일요일 저녁에 시간 내서 와주신 관객 분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먼저 <버블 패밀리>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영화 안에도 들어가 있지만, 제가 사춘기부터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들이 있었어요. 아버지와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는데 종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죠. 그 이후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후 문화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리서치 작업을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직장사’가 사실은 정부의 도시개발 역사와 맞닿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다음 작업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찍게 되었어요. 



박: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마: 사실 아버지는 별로 신경을 안 썼어요. 어머니는 처음에 되게 협조적이었고요. 초반에는 부모님과 가족 이야기보다는 도시 개발, 부모님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 위주로 촬영을 진행했어요. 그러다 점점 카메라가 일상생활 속에서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 등을 찍게 되니 의심을 하시더라고요. 특히 화장을 안 했을 때 찍는 걸 되게 싫어하셨어요. 이번에 전주로 어머니가 영화를 보러 오셨어요.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기 전에 어머니 허락을 먼저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버지가 모르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요. 어머니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고 다음 상영 때는 친척 분들도 다 모시고 온다고 하셨어요.





박: 천주희 작가님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천주희 작가(이하 천): 처음에 의뢰를 받았을 때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이 텍스트를 분석해달라고 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보고 나니까 저와 되게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여성 감독이 오늘 날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서 거기서부터 분석을 하기 시작했어요. 영화를 보고 처음에는 심정적으로 동일시가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의 중산층 문화를 드라마나 책으로 배웠어요. 심정적 거리감이 있었지만, 만약 내가 그 위치에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어요. 이 영화에서 제가 관심을 가졌던 건 ‘버블 패밀리’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 그 역사를 추적해 가는 감독입니다. 감독에게 이입을 해서 봤어요. 어쨌건 역사라는 건 누가 어떤 관점으로 기록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독립한 딸, 그러나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는 ‘나’의 현실 상황과 불편하지만 만날 수밖에 없는 가족을 만나고 이 가족의 과거를 추적해 가면서 그것을 역사화 하는 과정을 봤습니다. 제가 ‘부채’를 연구하면서 이 시기 문헌들을 살펴보면 거칠게 도표화 되어 있어요. 저는 이 텍스트를 통해 다층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거품경제에 대해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계획과 'IMF'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추적하고 이것에 문헌을 병치하면서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는 세대적으로 황금기를 살았던 부모 세대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시대 이후를 살아가는 자녀 세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요, 이 텍스트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부모를 크게 설득하지 않는 자녀의 모습, 본인이 살아왔던 시간을 과감하게 비추는 부모의 모습이었어요. 자녀와 부모가 집이라는 욕망, ‘강남’과 돈이라는 욕망에 대해 서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갈등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저는 오히려 좋더라고요. 오늘날 ‘버블 패밀리’의 역사를 다시 쓰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현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위태로운 경제 상황 속 어머니와 딸의 극복 방식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엔 땅을 투기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마음, 이 돈으로 차라리 학자금 대출을 갚았으면 하는 딸의 욕망이 솔직히 들어나는 것이 굉장히 좋았어요. 가족의 서사를 통해서 거품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아요. 한국사회의 역사적 요소들이 어떻게 개인의 삶, 가족의 삶에 들어오고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텍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의 모습이 어떤가 생각을 해봤을 때 저는 두 가지가 보였습니다. 하나는 일상생활이 변화하는 것들이 보였어요. 어머니의 홈비디오에 드러나는 당시 중산층의 삶과 그때와는 다른 지금의 낡은 벽지, 고장한 싱크대, 보일러 같은 것들이죠. 일상의 내가 늘 마주하는 풍경이 달라지고 어머니의 언어가 달라지는 모습 등이 감독의 시선으로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경제를 말하는 주체는 늘 남성이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조연, 카메오처럼 등장합니다. IMF 이후 아버지의 부채 때문에 집이 몰락했을 때 수습은 어머니가 했잖아요. 이 가족의 사례가 특수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빚을 어머니가 갚는 구조, 그러면서 자식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비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이런 이야기가 한국의 보편적 가족이 부채를 극복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같아서 좋았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내’가 가장이 되어서 집으로 컴백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건 단순히 내 개인 서사로 머무는 게 아니라 가족이나 사회적 서사로 이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우는 장면은 없지만 절망이 느껴지는, 가족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힘들었을 것 같은데 꿋꿋하게 매듭을 지은 것처럼 보여서 굉장히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제 생각에도 영화에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돋보이는 것 같아요. 



마: 사실 천주희 작가님의 글을 받아서 보다가 좀 울었어요. 어떤 교수님 한 분이 20대인 너희 세대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고, 저는 IMF라고 대답을 했어요. 교수님이 잘 이해를 못하시더라고요. 너희까지 영향을 받았을 줄 몰랐다고요. 실질적으로 제 삶이 뒤집힌 때가 외환 위기였어요. 20대 중후반이 되어서 텍스트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없더라고요. 노동운동의 관점, 경제구조의 관점으로 쓰인 글은 굉장히 많았지만, 저나 제 친구들을 설명해줄 수 있는 텍스트가 없었어요. 그래서 더 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 부분을 영화 안에서 읽어내 언어화해주신 것을 읽으면서 제 자신도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단편 영화를 계속 찍어왔는데, 마지막으로 찍은 게 어머니와 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영화였어요. 거기에도 아버지는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이번 영화에서 아버지를 아예 배제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닌데, 찍고 나니까 아버지의 존재가 영화 안에 잘 안 보이더라고요. 분명히 편집 단계에서는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고 감정이입을 해서 작업을 했는데, 스크린으로 보니 어머니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관객 분들도 어머니 캐릭터에 호응을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놀라운 경험이에요. 왜 이렇게 되었나 싶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어머니의 캐릭터가 더 살아난 것 같습니다. 



천: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게 타인의 입장일 때보다 어려울 수가 있죠. 너무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어머니가 몰래 사둔 땅과 학자금 사이에서 갈등을 했는데, 그 땅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웃음)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저희 어머니는 가족 한 명당 3, 4개씩, 보험을 많이 들어뒀어요. 그러다 일을 그만두게 되자 보험금을 내기 위해 빚을 졌더라고요. 아버지들과 달리 어머니들이 경험하는 경제적 불안감이 있습니다. 감독님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마: 첫 질문에 먼저 답변하자면, 아버지와 정말 친하지 않아서 일단 휴대전화 번호 교환을 했어야 했어요. 촬영을 하면서 부모님과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많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찍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니 가족으로서가 아닌 감독으로서 캐릭터에 대해 애정을 느끼게 되었고 인물들을 객관화하게 되었어요. 땅에 관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지난 GV 때 그 땅 근처에 사는 관객이 있었던 거예요. 그 근방이 ‘핫플레이스’라고 하더라고요. 영화 마지막에 제가 의도했던 건 개인의 욕망입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경제흐름과 거시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스템 안에 개인이 휘말리거나 놓였을 때 굉장히 쉽게 편승하고 휩쓸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자신이 부모와 다르다고 생각했고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 했는데, 편집하는 과정에서 보니 땅을 보러 간 현장에서 제가 시종일관 굉장히 즐거워하더라고요.(웃음)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어요. 막상 땅을 보고 나니까, 땅값이 오른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즐거워하게 되는 제 자신이요. 언젠가는 이 땅이 나에게 보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 저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요. 사실 개인의 욕망이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가정된 행복을 기다리는 데서 온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내레이션으로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건 미래에 담보된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내 기반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관객: 거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를 자전적 내레이션 형식으로 끌어간 이유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내레이션이 나오면서 대상과 작가의 거리가 확실히 최소화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도 가족을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낼 수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마: 내레이션은 처음 기획에서 잡고 간 가장 주요한 방법론이고, 미시사와 거시사를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가족 안에 들어있는 한국경제와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편집하면서 고민이 되게 많았습니다. 중간 중간 피드백을 받았는데 가족 이야기를 늘리면 너무 사적이라고, 푸티지 사용을 늘리면 너무 거시적이라고 그랬어요.(웃음) 이 밸런스를 잡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편집감독님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 분이 가족의 스토리를 잡았고 저는 거시적인 부분을 맡았어요. 그렇게 두 흐름을 접합시키는 방향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단순 해설자로서의 내레이션이 아니라 제가 경험한 도시, 제가 바라본 가족, 제 관점에서 본 경제 흐름을 제 목소리로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작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건 가족에 대한 제 감정적인 부분 보다는 영화적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기승전결이 뚜렷한 사건 위주의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되게 오래 걸렸어요. 그리고 언제 찍고 언제 찍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인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일단 찍고 윤리적 판단은 편집 과정에서 하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집요하게 촬영을 계속 했습니다.



박: 영화에서 아버지를 5년 동안 안 봤다는 내용이 굉장히 쿨하게 스쳐지나가요. 분명 이전에 가족에 대한 상처나 갈등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가족 다큐멘터리의 경우 이런 지점을 결국 해소하거나 보듬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이 없는 것 같아서 놀랍기도, 낯설기도 했어요. 



마: 그 점에 대해서 편집자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편집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 상처를 보듬고 해소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스태프들을 강력히 설득했어요. 왜냐하면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그래도 우리 가족은 극복했습니다’는 식의 이야기는 전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분명 관계가 나아진 부분은 있지만 이것이 진짜 회복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어요. 절대 웃으면서 끝나지 않았으면, 비판적인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스태프들과 상의를 굉장히 오랫동안 했어요.



천: 분명히 보통 가족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것 같아요. 감독이 외부인이었다면 더 극적으로 갔을 텐데, 감독님은 그 삶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덤덤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의 해결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았어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이 영화의 강점인 것 같아요.



마: 조금 더 덧붙이자면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했던 때는 오히려 영화를 찍기 전이에요. 아버지를 보지 않았을 때요. 촬영을 시작한 시점은 이미 어느 정도 부모님에 대한 격한 감정이 가라앉았을 때라서 크게 혼란이 없었던 것 같아요. 



관객: 89년생이고 서울에서 쭉 살아온 사람으로서 영화가 너무 제 이야기 같다고 느껴졌어요. 가족에 대한 징글징글함과 IMF 이후의 경험들이 굉장히 많이 와 닿았어요. 제 삶이 기록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셨는데, 5년을 안 본 아빠와 같이 사는 게 가능한지 물어보고 싶어요.



마: 감사합니다. 저도 89년생이고요, 비슷한 경험을 한,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버지와 같이 사는 것은 매우 힘들어요.(웃음) 집에 잘 안 들어갑니다. 다행인 건 아버지와 제가 생활패턴이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다는 거죠.





관객: 혹시 만들면서 참고한 작품이 있나요?



마: 처음에 참고로 한 것은 강유가람 감독의 <모래>(2011)였어요. 참고한 작품이 많지는 않은데 아슬라우그 홀름 감독의 <브라더스>(2015)를 재밌게 봤고 편집자 레퍼런스로 보여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박: 천주희 작가님을 통해 <버블 패밀리>를 페미니즘적 시각뿐만 아니라 부채, 청년세대와 연결하여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서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마지막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천: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대학을 권하는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가지만, 감독님과 저처럼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그러면서 점점 가난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제 책도 비슷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을 했어요. 공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을 왜 빚을 져가면서까지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으니 기회가 되면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었어요. 자신을 ‘아파트 키드’라고 소개를 하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파트 키드는 기존의 담론이에요. 한국 사회의 욕망이 아파트를 통해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에 대한 담론인데, 그것에 갇히지 않고 나아가서 ‘버블 패밀리’라는 개념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생각해요. 오늘날의 청년부채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결혼할 때, 차를 살 때 등 늘 빚을 지게 되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이름을 붙이는 일에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곳에 발을 딛고 있는지 질문하고, 드러내고, 공적인 이야기로 끌고나가는 좋은 사례가 된 영화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가 됩니다. 



박: 감독님은 인터뷰에서 도시라는 공간과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던데요,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작업을 할 생각인지, 현재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끝 인사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 주변에서 지금 타이밍에 잘 쉬는 게 중요하다고 말을 많이 해주셔서 일단 잘 쉬는 것이 목표인데 이미 틀린 것 같아요.(웃음) 내년에 단편 작업을 할까 생각중이고 아카이브 푸티지 작업에 관심이 많아서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여성 운동에 관한 이야기, 지역사 등을 다뤄볼까 아이디어를 내놓는 중입니다.






<버블 패밀리>는 늘 경제를 이야기할 때 소외되었던 엄마와 딸이 주인공이 되어 서사를 끌어간다. 이들의 불안감과 욕망에 대해서 정직하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성찰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영화가 무엇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 경제사라는 거시적 흐름을 가족이라는 미시적 집단으로 끌어오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이 인상적이다. 개인의 이야기는 늘 시스템과 얽혀있으며 때로는 시스템에 가려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시스템을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은 개인에게서 나온다. 그것이 욕망이든, 윤리의식이든. 그것을 깨달으면서 관객인 나는, 그렇다면 ‘나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고 말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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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제목 / 올 리브 올리브 All Live Olive

감독 / 김태일, 주로미 

제작 / 상구네 

장르 / 휴먼 다큐멘터리 

배급 / 시네마달 

개봉 / 2017년 7월 13일

관람등급 /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 92분 





 SYNOPSIS 


“우리가 꿈꾸는 행복은 이 곳에 있어요” 


지도 위에서 사라진 땅 팔레스타인에서 살고 있는 위즈단 가족의 일상은 고단하기 그지없다.  

올리브 농사를 지으며 고향 땅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마텔, 움딸 부부, 

세 명의 아들을 모두 잃고 난민촌에서 70여 년을 살아가고 있는 무함마드 할아버지, 

작은 평화를 위한 저항으로 친구들을 모두 잃은 청년 알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도 땅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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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제목 / 올 리브 올리브 All Live Olive

감독 / 김태일, 주로미 

제작 / 상구네 

장르 / 휴먼 다큐멘터리 

배급 / 시네마달 

개봉 / 2017년 7월 13일

관람등급 /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 92분 





 SYNOPSIS 


“우리가 꿈꾸는 행복은 이 곳에 있어요” 


지도 위에서 사라진 땅 팔레스타인에서 살고 있는 위즈단 가족의 일상은 고단하기 그지없다.  

올리브 농사를 지으며 고향 땅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마텔, 움딸 부부, 

세 명의 아들을 모두 잃고 난민촌에서 70여 년을 살아가고 있는 무함마드 할아버지, 

작은 평화를 위한 저항으로 친구들을 모두 잃은 청년 알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도 땅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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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우리들'이 될 때까지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그녀들의 점심시간>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5 20일(토) 오후 4 30분 상영 후

참석 구대희 감독,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기획전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첫 번째 작품으로 <그녀들의 점심시간>이 관객들을 만났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그녀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 영화가 가장 먼저 상영된 배경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을 앞둔 시간, 구대희 감독과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가 함께했다.



<그녀들의 점심시간> 발제문: 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접속하기  http://indiespace.kr/3434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소현): 이 영화는 가사노동을 비롯한 노동환경 속에서 여성성과 식사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어떻게 공동체적 가치를 지니며 연대의 의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이하 이지원): 이 영화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주목했다. 많은 출연자가 등장하는데 공통적으로 삶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보통 우리가 취업준비 기간을 단지 준비 혹은 허비의 시간으로만 치부하지 않나. 그러나 그런 시간들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시간들이다. 또한 육아, 가사, 돌봄 노동으로 분류되는 것들도 분명히 노동의 영역에 속하지만 ‘모성’이라는 신화 속에서 그 가치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부분들을 잘 짚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먹는’ 행위로부터의 공동체와 연대가 주는 느낌이 좋았던 영화이다. 출연자들의 식사시간에서 느껴지는 끈끈함, 힘든 일상의 시간들을 서로 견딜 수 있게끔 하는 부분들이 잘 전달된 것 같다.



안소현: 실제 이 영화는 많은 질문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의 식사를 세대별, 직업별로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구대희 감독(이하 구대희): 이 영화를 처음 기획했을 때가 벌써 2년 전이다. 당시 자취 10년 차였는데, 하려던 것들이 다 잘 안 돼서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다. 매일 밥을 챙겨먹는 것도 힘이 부치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문득 밥을 먹다가 그런 내 모습이 곧 인생으로 느껴졌다. 초라하게 자취방에서 대충 차려서는 밥상을 꺼내기도 귀찮아 바닥에 놓고 먹는 모습이 궁상맞으면서도 서글펐다. 그러던 찰나 누군가의 식사하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 혹은 삶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점심시간을 통해서 한국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안소현: 두 분 다 여성이라는 삶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계기가 궁금하다.



구대희: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에 따라 맺는 관계와 능력 발현이 달라질 것이고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들이 많다보니 그 책임감이 우리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출연자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힘 같은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지원: 여성주의 활동을 하면서 여성의 문제가 전면적 담론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가령 청년 문제가 ‘N포 세대’로 담론화될 때 여성의 입장에서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 얘기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중년층 여성 노동자들은 매우 고강도의 노동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찬값을 벌러 나왔다’는 인식 하에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 임신과 출산 이후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의 노동문제 같은 부분들이 사회적 담론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현실이 아쉬워서 활동으로 이어나가게 됐다.





안소현: 여성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지 않나.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이후 벌어진 여성들의 자발적 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스스로 목소리를 내게 됐다. <그녀들의 점심시간>은 다양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놀라운 점은 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한 기준과 영화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방점을 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구대희: 점심식사라는 행위로 한국의 다양한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전달하고자 했다. 최대한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을 다루고자 했고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기보다는 우선 인터뷰가 가능한 분들을 물색했다. 처음엔 지인들을 섭외하기도 했는데, 너무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들은 영화에 담기가 어려웠다. 여성이 많은 직업군인 식당, 환경 미화 종사자 분들을 꼭 섭외하고 싶었다. 



안소현: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식사하는 행위를 세세하게 쪼개어 보여줌으로써 그 사이 새롭게 재발견하게 되는 것들이다. 실제로 밥을 해서 먹(이)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라는 행위가 누군가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좀 더 이어가보고자 한다. 작년 페미니즘 운동을 재촉발 시키기도 한 사건이다.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명백히 드러났다. 사건의 범죄자가 ‘피해 여성이 자신을 무시해서 죽였다’라고 정확한 워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검찰은 ‘묻지마 살인’으로 한정지었다.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여성은 폭력 가까이에 놓여있는데, 언론과 사회 분위기는 이를 여성문제와 철저히 구분 짓고 있는듯하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이 가져다준 변화는 여성과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보편적으로 나아가게끔 한 점이다. 시위 현장 속 얼굴 노출의 위험 등 여러 제약적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꿋꿋이 동참했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작용했겠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불안을 느껴왔다는 것에 기반한다. 이런 목소리가 하나의 큰 움직임으로 터져 나온 데에 사회가 정상적으로 응답했다면 결코 정신질환자의 일탈로 치부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보편의 경험으로 문제의식이 터져 나온 것이라면 적어도 사회는 성실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우리 사회, 문화, 제도 등 전반에 도사린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는 단순히 성전쟁, 남녀갈등 조장 등으로만 몰아가는 점이 매우 아쉽다. 여성과 페미니즘의 이야기들을 보편의 영역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다.



관객: 먹는 행위의 양상이 세대별로 다른 것 같다. 젊은 세대는 챙겨먹는 것도 힘든 것 같은데, 또 다른 세대에서는 먹는 것이 유일한 낙으로 기능하고 대화의 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구대희: 이 영화는 큰 갈등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의 배열순서가 매우 중요했다. 처음엔 그냥 쉽게 연령별로 배열했는데, 그렇게 하니 별로 재미가 없었다. 아무리 같은 점심식사라고 해도 각각의 점심마다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나 재미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이 재밌게 느낄 수 있도록 순서를 다시 배열할 필요가 있었다. 크게 보면 연령대별로 구성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딱 그 틀에 맞춰서 구성한 것은 아니다. 사이사이 장치들을 넣으려고 고민했다. 그리고 연령대보다는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듯하다. 가령 경마장 환경 미화원 분들은 워낙 일이 고되다보니 같이 모여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자 휴식인 거다.





관객: 제작기간, 그리고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 들인 시간 등이 궁금하다.



구대희: 총 제작기간은 2년 반에서 3년 정도이다.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 제대로 갖추고 난 다음 진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고 제대로 촬영한 기간은 약 1년 반 정도였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사실 엄청 많은 장면을 찍은 다음, 그중에서 아주 예쁘고 잘 나온 것들을 뽑아서 만드는 거다. 등장한 열 분 모두 다 인간극장을 찍을 수 있을 만큼 각자의 이야기가 많은데, 어쨌든 콘셉트가 있었고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에 많이 편집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쉽다.



이지원: 영화를 만들기 전에 기획 의도 등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작업에 들어가지 않나. 계획과 작품이 얼마나 부합하게 나왔는지가 궁금하다. 촬영한 결과물이 이전 의도와 달랐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구대희: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점심시간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설득을 하는 과정이었다. 제작 지원을 받아야 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작업물의 가치를 설득시켜야만 했다. 구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에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는 다소 오글거리는 안도 나왔다. 그런데 다 엎어지고 되게 담백하게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작업물이 완성됐다. 군더더기 없이 내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원: 영화가 끝으로 가면 갈수록 점심시간이라는 게 힘이 되는 시간 혹은 즐거운 시간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희망적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데, 맞는가?



구대희: 맞다.(웃음) 모두의 삶이 녹록치 않다. 무미건조하게 살기보다는 자기만의 꿈이나 희망 등을 품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 영화 속에서 경마장 점심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반찬을 싸와서 다 같이 먹고 당번으로 돌아가며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되게 보기 좋았다.



안소현: 개인적 성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지만, 여럿이 같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 매우 이상적이지 않았나 한다. 요즘은 SNS 상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모임을 찾는 경우도 있다.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닌 소통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식사가 우리 사회의 매우 중요한 담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대와 공동체의 가치는 여성으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로 확장해 가져가야 할 것이기도 하다.





관객: 촬영의 원칙, 현장에서 지키고자 했던 윤리, 찍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더 듣고 싶다. 그리고 영화를 희망적으로 보았다는 활동가님께 질문이 있다. 요즘 현실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데 활동의 동력을 무엇에서 찾고 있는지 궁금하다.



구대희: 몇 번이고 촬영이 가능한 소재다. 한 번에 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몇 번에 거쳐서 촬영을 했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촬영을 하니 같이 식사를 할 수 없었는데, 항상 같이 먹자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 노인정 촬영이 특히 그랬다.



이지원: 활동의 동력은 활동을 계속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인 듯하다. 돈도 시간도 많이 모자라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이 동력으로 작용한다.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롤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남자선배와 남자교수가 전부였다.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을 접하기 어려웠는데 이 활동을 하면서 많이 만나고 있다. 자극이 된다.



안소현: 이 작품은 대상들과의 거리감이 존재한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대상들과 가까워지려는 강박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관계를 맺지 않고 진행을 이어나간 배경이 궁금하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도 듣고 싶다.



구대희: 치밀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웃음) 사람 자체가 아직은 많이 조심스러운 편이다. 카메라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평생 불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출연자에게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실 이 영화는 그들이 소탈했던 탓에 완성될 수 있었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기본적으로 나를 찍지 않는 이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갖고 그 사람의 속마음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경지를 욕심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다가가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고 성격상 어려워하는 편이기도 하다. 출연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아직은 더 배워야 할 것도 있어서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은 미뤄두고 있다. 이제 막 이 영화에서 손을 뗀 기분이라 앞으로 차근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안소현: 인물들과의 거리감이 꾸준히 견지된 것이 이 영화를 빛나게 한 점이라 생각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단면이 영화에서 툭툭 튀어 오를 때 한 개인의 삶이 아닌 우리의 모습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활동가님의 계획도 묻고 싶다.



이지원: 강남역 10번 출구는 이제 일 년 정도 지났는데, 초기 멤버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앞으로는 퀴어-페미니즘 활동에 집중해 활동할 수 있도록 이름도 바꾸고 채비를 할 예정이다. 많이들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다양한 여성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점심시간을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구대희 감독의 말이 인상 깊다. 흔히 영화는 항상 특별한 것들, 특별한 이야기들, 특별한 사람들만을 담는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도리어 종종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들이 아닐까. 점심시간이라는 한 단면을 통해 마주한 그녀들의 삶은 혹여 전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면 스크린 위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게 아닐 지도 모른다. 역으로 ‘페미니즘’을 생소하게 느끼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극히 일상적인 여성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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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교차로에서 태어난 <버블 패밀리>




천주희 (문화연구자)



도시, 가족, 그리고 욕망의 교차로에서: 버블 패밀리 탄생기 

<버블 패밀리>는 한 가족의 늦둥이 딸이자, 감독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0년대 서울 강남에서 ‘아파트 키드’로 자란 감독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강남’은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장소이다. 문화, 자본이 응축된 도시랄까. 그러나 감독인 화자는 성장할수록 자신이 강남과 어울리지 않고,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결국 그녀는 독립과 함께 강남을 벗어났고, 몇 년 만에 “온전히 나만의 삶”을 꾸릴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삶에 안착하는 듯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1980년대 후반, 감독의 부모님은 경제성장과 건설업 부흥기에 소위 ‘집장사’라 불리는 중소건설업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다. 집을 짓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라 한 달에 억대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부모님은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했고, 중산층에 입성했다. 박정희, 노태우 정권에 부흥했던 부동산 시장은 부모에게 전성기를 선물했다. 화학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중소건설업 사장님이 되었고, 주부였던 어머니는 사모님이 되었다. 하지만 IMF 이후 몰락한 가족은 아파트 건너편 빌라로 이사했다. 부모는 15년 째 낡은 빌라에서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이미 부동산 붐은 끝났고, 더 이상 3저 호황의 행운이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건물을 분양받아 투자하면 다시 성공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를 바라보는 딸은 다른 세상에 산다. 학자금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고, 독립한 지 7년이 되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가 사는 강남에 집을 얻을 경제력은 없다. 겨우 얻은 집은 천장에서 물이 샌다. 부모가 거주하는 강남 집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집주인은 이사 갈 것을 권하고, 부모님은 다음 달 월세조차 버거워한다. 당장 이사를 하거나 대책을 세워야 함에도 아버지는 딸에게 제작비로 받은 돈 100만 원을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강남에 머물고자하는 욕망과 이를 비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딸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간다. <버블 패밀리>는 이런 간극의 지점에서 사회적 욕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위태로운 경제상황에서도 그 욕망이 지속될 수 있는지 포착한다. 

언제부터 서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어긋남 사이에서 유일하게 가족을 잇는 건 ‘버블패밀리’라는 이름뿐이다. 버블 속에는 가족의 간극, 균열, 원망이 담겨있다. 엄마는 가족 몰래 딸 명의로 땅을 사두고, 딸은 그 돈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길 바라고, 아버지는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나지 않은 부채를 안고 산다. 하지만 감독은 이 어긋난 욕망을  ‘도시’, ‘가족’, ‘거품’이라는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새롭게 재구성한다. 가족은 아버지 명의로 경매에 넘어간 땅에서 조금이나마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기도 하고, 딸은 엄마가 자신의 명의로 사둔 땅을 보러 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태도가 부모의 관점이나 입장으로 전환한 것은 아니다. 과거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애쓰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경제위기를 봉합하려 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는 서로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존재하고, 긴장 속에서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여성의 시선으로 본 한국경제

한국의 경제사를 설명하는 데 <버블 패밀리>는 독특한 시선을 지닌다. 하나는 가족이라는 사적영역에서 출발해 거시적인 경제의 욕망과 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관점에서 버블경제를 조명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동안 한국의 버블경제를 논하는 자리에서 드러날 수 없었던 시선이었다. 경제란 늘 거대한 통계와 지표로 움직이는 것이라 맹신하는 집단을 통해 말해졌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여성의 서사와 가족의 서사는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버블 패밀리>에는 엄마의 기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엄마는 중산층 주부의 시선에서 딸과 가족의 일상을 홈비디오에 기록한다. 중산층의 단란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외동딸에게 공주님처럼 분홍 드레스를 입히고, 호화로운 생일파티를 해주고, 유원지와 바다 여행, 발레 공연과 노래하는 모습까지 담았다. 그곳에는 화목한 가정이 있다. 하지만 1997년, IMF와 함께 엄마의 기록은 멈춘다. 그 후로 다큐 감독이 된 딸은 2010년 이후 가족의 모습을 담는다. 기록되지 않은 가족의 몰락사를 현재 가족의 언어와 풍경으로 복구시킨다. 거품이 꺼진 이후, 가족의 이야기는 엄마의 시선과 대비된다. 낡아서 누렇게 변색된 벽지, 망가진 싱크대, 고장 난 보일러, 연체된 세금 고지서, 아버지의 부채까지. 어느 하나 멀쩡한 것 없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미소 지으며 빨리 나오라던 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20년 전과 전혀 다른 가족의 모습이다. 

한편 <버블 패밀리>에는 아버지의 시선이 없다. 아버지는 늘 조연처럼 등장한다. 엄마에게는 출근하는 남편이었고, 딸에게는 집이나 종로를 배회하는 아버지였다. 그동안 경제 담론에서 전성기는 남성들의 서사로 채워진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실제로 거품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 뒷수습은 늘 여성의 몫이었다. 남편의 빚을 몰래 갚는 엄마의 이야기는 IMF 이후 여성들이 가족경제의 붕괴와 부채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남편이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는 건 아내였고, 주부들은 대거 서비스직이나 노동시장으로 떠밀리듯 나갔다. 감독의 엄마도 그랬다.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부채와 생계를 책임져왔다. 그리고 이 가족의 또 다른 여성인 딸은 결국 어려워진 집안 경제를 다시 수습하고자 집에 들어와 가장 역할을 맡는다. 

경제에도 시간이 있다면, <버블 패밀리>는 여성의 시선에서 거품경제의 낮과 밤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보낸 시간이 낮이라면, 딸이 보내는 시간은 밤의 시간이다. 가족을 바라보는 둘의 다른 시간과 시점은 <버블 패밀리>에서 만난다. 고성장기에 사업수완으로 덕을 본 부모는 가족이 가장 찬란했던 때를,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자녀는 가족이 가장 힘겨운 때를 기록하고 지탱한다. 다큐 후반부에서 어머니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딸에게 묻는다. “밤에 나오니까 어떻습니까?”라고. 오히려 그 질문은 어머니가 스스로 묻고 싶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고요해 보이지만, 다시금 무엇인가 움트기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에 그녀는 딸과 함께 서로를 비춘다. 

<버블 패밀리>는 과거와 현재 달라진 가족사진을 배경으로 끝난다. 이 가족의 행보가 궁금한 이유는 수많은 버블패밀리들의 현재와 미래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욕망과 개인의 욕망 교차로에서 태어난 ‘버블패밀리’는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경제라는 것은 한낱 거품과도 같아서 큰 행운도 큰 몰락도 없다는 것을. 하루하루 서로 마주하고 살아가는 관계양식 그 자체가 경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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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개개(個個)의 역사

<개의 역사>


정경희 (세컨드 필름 매거진 에디터)


“그 개가 어떤 개인데 다큐를 찍어요?” 영화 초반 개를 산책시키는 아주머니가 감독에게 묻는다. 동네를 떠돌다 잡아먹힐뻔 한 걸 지금은 사라진 대관령 슈퍼 할아버지가 거둬 돌보았다는 개. 기구하지만 흔한 사연을 지녔다. 사회가 주목할 만한, 뉴스가 다룰 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감독은 이 개를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었다. 관객 역시 감독에게 묻고 싶어진다. 왜 이 영화를 보아야 하느냐고.

감독은 애매하게 답을 유보한 채 개에 관한 주민들의 기억을 수집하려 동네를 돌아다닌다. 주민들의 기억은 대체로 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언제부터 있었고 어떻게 사는지는 모른다는 식이다. 오히려 개에 관한 헐거운 기억의 틈 사이로 동네에 얽힌 각자의 기억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개를 알고자 한 감독의 카메라에는 개와 주민들의 얼굴, 가파른 계단, 학교 앞, 비둘기, 고양이, 골목 모퉁이, 감독이 열 세 번째로 이사한 집이 담긴다. 십 년도 더 전 이 동네에 살았다는 친구의 목소리가 그 위를 흐르고, 오래 함께한 개가 죽었던 감독의 기억이 끼어든다. 여전히 왜 이 개인지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한 채 대상과 어긋난 카메라의 시선, 카메라의 시선과 어긋난 사운드가 얼기설기 이어 붙여져 교차한다. 감독의 시선도 주민의 증언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힘을 행사하지 못한 채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심에서 멀어져 언저리를 맴도는 영화 <개의 역사>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힘을 분산시키고 주변부를 끌어들인다. 개에 관한 각자의 느슨한 기억들이 그에 얽힌 주민들 자신의 역사와 후암동의 이곳과 저곳, 예전과 지금을 드러낸다. 감독이 이사를 가며 비슷한 결의 다른 시공간이 새롭게 개입되고 그곳에 사는 얼굴들과 발생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한 데 모인다.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에 의도치 않은 얼굴들이 들어왔다가 사라지고 관객은 그 난데없음에 카메라 밖 세계를 의식한다. “동시에 일어났던 다른 중요한 어떤 일들”이 있음을 고려한 감독의 연출, 편집 방식은 중심을 해체하고 주변을 수집해 조명한다. 개의 역사를 알고자 했던 영화는 개개의 역사들을 건드리고 교차시켜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 하찮다 여겨지는 것들로 쓰인 이 새로운 서사는 도무지 하잖아 보이지 않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지워져 가는 시간들”을 보여준다.

영화의 말미 감독은 “백구의 역사를 알아내는 데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백구뿐만이 아니다. 이사 간 홍은동 집 이웃 할머니의 역사도, 정자에 모인 할머니들의 역사도 감독은 결국 알아내는 데에 실패한다. 이는 그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분”이기 때문도, 그래서 “그동안에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도 아니다. 누군가를 제대로 완벽히 다 안다는 것은 필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파악할 수도 없는 수많은 개개의 역사가 새로 쓰이고 쉽게 묻혀버린다. 앎의 필연적인 실패는 알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의문을 던진다. 어차피 무엇 하나 제대로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왜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개의 역사를 알아내는 일이 애초에 실패할 것이었다면, 감독의 노력은 무의미했던 것일까.

역시 영화의 말미 감독은 “삶을 사랑하는 법을 찾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삶을 사랑하고자 찍게 된 <개의 역사>는 무언가를 알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다. 백구라는 개에, 이웃들에, 동네 구석구석에 관심을 가지고 살핀다. 무관심 속에 방치되지 않은 앎의 대상은 하나의 존재가 되어 다가왔고 촬영자와 피사체는 존재 대 존재로 관계를 맺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며 오디션 지원을 돕기도, 개를 같이 묻으러 가기도 한다. 대상이 아닌 존재를 담는 카메라는 먼발치에서 뒤따르거나 지켜볼 뿐 알려달라고 강요하지도, 원하지 않는 걸 공개하지도 않는다. 결국에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알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관계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보살피며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삶을 함께한 기억은 소중한 이의 마지막을 지키는 힘이 되고 “사라져가는 것들의 지워져 가는 시간들”을 지연시킨다. 감독이 <개의 역사>에서 수행한 사랑의 방식은 삶을 소중한 관계와 기억들로 채워 사랑하는 것이었다.

중심을 해체하고 주변을 조명해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 이성을 맹신한 채 안다고 믿으며 쉽게 정의 내리지 않는 것, 하나의 관점이 아닌 개개의 상황을 고려해 보살피는 것 모두 페미니즘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취하는 중요한 방식들이다. 흔히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로 오해 받는다.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 세상의 구도를 옮겨 오자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요는 무언가를 중심에 두는 구도 자체를 타파하는 데에 있다. 만일 중심이 있더라도 이분법적 구도 하의 하나의 중심이 아닌 다원화된 중심을 추구한다. 이 영화는 여성의 권리를 전면에서 외치는, 흔히 떠올리는 페미니즘 영화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름 없는 것들의 찾지 못한 이름들”을 발굴해 호명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페미니즘과 닿아있다. 그러면서도 여성 특유의 시선이라 단정 지을 수만은 없는 감독 자신만의 언어로 삶에 대한 고유한 통찰을 제시하며 작가적 성취를 이루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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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잎과 칼의 변증법적 동행을 느끼고 사유하다  

<난잎으로 칼을 얻다>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영화 <난잎으로 칼을 얻다>를 처음 볼 때 내 지각은 역사와 정치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보면서 나는 이북출신 실향민/이주민이었던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삶 이야기가 어렴풋이 함께 들리고 보이는 것을 느꼈다. 특히 아버지의 딸이었던 나는 정다훈 씨가 아버지와 나누는 모든 것들에 깊은 공감과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 내가 이북을, 만주를, 중국을 함께 여행했다면 아버지는 그곳을 내게 어떻게 설명하셨을까. 

이 영화는 딸이 오랫동안 불화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아버지가 남한의 지식인으로 성장하면서 품었던 신념과 꿈, 세계관을 이해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여성주의 인식론은 지식체계가 특정 언어주체들(현실 속에서는 남성들, 그 남성들 사이에서도 물론 더 많은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펼친 ‘자기만의 리그’였음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입장’과 ‘상황’에 입각한 상호교차적 지식 생산을 제안해왔다. 여성이 언어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늘 ‘남성 멘토들’의 허가와 승인이 필요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다시 읽으며 애드리안 리치는 행간에 깃들어있는 울프의 불안과 주저함에 한숨을 내쉰다. 서구에서 많은 여성 작가들은 아버지와의 복잡한 관계를 추적해왔다. 불화와 갈등의 사적· 공적 맥락들과 정황들, 정신분석의 도움을 받는 심층 분석, 그리고 이해와 화해 등으로 그 추적의 서사는 이어진다. 한국 텍스트의 역사에서 나는 치밀한 부녀 관계 추적을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근 40여년에 이르는 한국 여성주의 이론, 담론, 운동의 역사는 모성 이데올로기나 ‘어머니 역할’,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집중해서 괄목할 만한 결과들을 내놓았다. 천지에 깔려 있는 게 ‘아버지 목소리’ 아닌가. 귀를 틀어막아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 목소리를 깊이 ‘듣고 싶어 할’ 열정도 시간도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목소리도 복수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환기시킨다. 장녀에게 자신의 꿈과 신념, 역사관을 ‘전승’하고 싶어 하는, 딸이 속한 세대에게 지킬 가치가 있는 관점이나 삶의 태도 하나를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 하는 영화 속 아버지는 학자로서, 선배세대로서, 한 남성 개인으로서 진심을 다한다. <난잎으로 칼을 얻다>에서 사적 차원과 공적 차원의 분리는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딸이 강력한 언어주체로 등장하면서 아버지/아버지 세대의 해석 위치의 유동성을 명백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딸 정다훈씨가 말하는 아버지와의 불화는 딸이 부족함 없는 언어주체가 되어 ‘가부장적 상징질서 체계’ 속에서 당당히 제 몫을 하도록 이끌려는 멘토의 의지에서(‘평생 지도교수님 파파’!) 기인한다. 딸은 저항하면서 아버지와는 다른 가치관과 해석적 시각을 얻으려 고군분투했고, 그 다른 가치관과 해석적 시각은 명료한 민족주의적 가치관이나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읽고 쓰고 발표하는 국제적’ 지식인의 위치를 넘어선다. 딸이 이해하는 ‘국제’정치의 현장에는 상이한 역사관이나 가치관을 두고 논쟁하는 구체적 사람, 장소, 윤리, ‘진실’을 질문하기 등이 있다. 윤동주의 국적이 무엇이냐를 두고 (가부장적 국가/민족인) 중국과 한국이 힘겨루기를 할 동안 2015년 32세인 한국여성지식인 딸은 ‘열린 민족주의’를 제안한다. <아리랑>에 묘사된 독립운동가 김산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 딸은 조용히, 그러나 매우 명료하게 아버지와 자신의 입장 차이를 밝힌다. 아버지는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연도가 중요했고, 딸은 독립운동가 김산의 ‘개인 인격’에 주목한다. 아리랑 자체에 민족주의적 본질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펄펄 뛰는 혁명의 열정을 품고 국제적으로 행동하던 개인 김산에게 아리랑은 어떤 의미였으며, 탈제국주의적 탈영토화의 혁명 추구에 어떤 효과를 발생시켰는가가 관건이라고 보는 것이다. 

영화는 종종 멘토인 아버지가 묻고 멘티인 딸이 대답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견해와 관점을 존중하면서도 조금씩 수정하거나 자신의 견해와 만나게 하는 딸의 후배지식인 위치를 드러내는 식으로 장면들은 이어진다. 아버지와 딸 모두 제3의 통찰에 이르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이제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힘’을 지닌 딸/딸 세대의 정치적 역량이 돋보인다. 더 이상 무조건 참거나 피하거나 고통당하지 않는 딸들의 이야기.   
(아주 개인적인 지각 하나. <아리랑>을 두고 부녀간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장면에서 시지각에 문제가 있는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딸의 무릎 위로 다리를 얹고 있다. 살갑고 다정한 이 장면 전에 아버지는 혼자 눈을 감고 소파에 누워있다. 붉은 소파는 내게 순간적으로 자기 분석이 이뤄지곤 하는 ‘붉은 소파’를 떠올렸고, 딸의 도움을 받아 ‘자기’를 분석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 다음 장면이 읽혔다.)              

마지막으로 나는 ‘동북아와 전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이 영화가 조명하고 있는 한 아버지/지식인/역사가/여행자/집필자/아픈 사람의 모습이 소중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이 아버지는 안중근과 그의 일본인 적 이토 히로부미와의 운명적 조우를 소개할 때도, 전 재산을 다 털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66세에 거사를 꾀하다 붙잡힌 이회영을 소개할 때도, ‘선구자’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연유를 소개할 때도 뛰어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인다. 그에게 역사는 ‘추구하고 느끼고 열망하며 자신을 기투하는 인격들의 삶 이야기’다. 민족의 비극이라는 거대 서사의 주제가 경직된 민족주의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체화된 역사이해 덕분일 것이다. 선구자 노래 한 소절만 부르려 해도 눈물이 나는 ‘아버지’를 15년 전과 달리 이제 이해하게 된 딸의 눈에서도 눈물이 배어날 때 ‘우리’도 잠시 ‘우리임’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열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민족/민족주의란 오로지 정체성이 부인될 때 정치적 저항으로 내세워질 수 있을 뿐, 국가(혹은 여타의 승인된 정체성)가 건설된 이후라면 더 이상 주장될 수 없음을 가르치려들지 않으면서 느끼게 해주는 정동의 장면이랄까. 한반도, ‘통일’, 독립운동, 민족, 압록강, 두만강, 삼천리, 삼천만, 동포, 그리운 금강산, 비둘기, 조선, 선구자 등의 용어들이 정동적 흐름으로 용해되어 어떤 하나의 정치적 평화 미래 비전의 몸체를 얻게 되는 2시간 여. 이 시간 동안 ‘우리’는 ‘현재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 세대 윤리관이(물론 어떤 목소리로 전해지는가가 관건이다) ‘기록이 아닌 기억을 통해 미래를 마련하겠다’는 딸 세대의 윤리관과 어떻게 행복하게 만날 수 있는지 경험하며 기억하기의 방식들을 같이 고민해보자고 고개를 끄덕인다. 극장을 나선 뒤엔? 이 답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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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접속하기

<그녀들의 점심시간>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 이지원


영화 <그녀들의 점심시간>에는 총 열 명의 여성들이 출연한다. 카메라는 별다른 사건이나 반전 없이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취업준비에 지쳐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모습, 직장에서 상사에게 지적받는 모습, 사람 없는 경로당에 누워 잠든 모습……. 우리는 연령도, 직업군도 모두 다른 그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포착해낸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는 은밀하게 접속된다.

직업이 배우인 ‘그녀’는 임신 이후 난생처음으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삶에서 일이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미뤄왔던 임신을 한 그녀는 때로는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기도 했던 임신의 경험이 배우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녀에게 임신은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뤄왔던 것이지만 지금은 어머니로서의 행복과 배우로서의 자원, 양쪽 모두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어머니로서의 행복 이면에 있는 육아노동을 동시에 조명한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의 하루는 아이들을 깨워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빵으로 늦은 아침을 때우다가도 아이가 깨어 엄마를 찾으면 먹던 빵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달려가 아이를 얼러 안아야 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난 뒤 식사를 준비할 때에도, 아이들에게 밥을 다 먹이고 본인의 식사를 챙길 때에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다. 보기만 해도 엄청난 강도의 노동임을 짐작할 수 있으나, 그녀의 정신없는 식사시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부터 질문해보아야 한다.

사회는 ‘그녀’의 하루에 노동이 있다고 이야기할 것인가? 육아는 어째서 ‘그녀’의 몫인가? ‘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노동임을 주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보자. 모성애 없는 여자, 비정한 모정의 낙인이 찍힐 것이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집에서 놀고 먹으며, 떼로 몰려다니며 카페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고 아이 단속도 하지 않는 엄마”를 지칭하는 ‘맘충’ 서사가 대중화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한국사회에서의 모성신화는 여성의 영역을 가정으로 규정하고, ‘육아’라는 엄청난 노동을 어머니로서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으로 포장해왔다. 이는 비단 육아 뿐 아니라 가사노동에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빛 좋은 개살구”, 골드미스인 ‘그녀’가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다고 느끼면서도 “가정에서의 ‘나’가 되는 것은 밥을 차린다는 것”이라고 통찰하듯이 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밥 차리는 것’이야말로 젠더화된 노동이다. 누군가에게 식사시간은 휴식의 시간일 수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특히 여성에게는 식사시간이란 으레 노동의 시간인 것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그녀’는 타인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동안 “전쟁을 치른다.” 뒷정리까지 모두 마친 그녀는 늦은 시간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그 와중에도 손님맞이는 계속된다. 그녀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여유로운 점심시간은 사실상 그녀의 노동 위에 서있는 셈이다.

신발가게를 하는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식사할 때와 혼자 식사하는 지금을 비교하며 “그때는 반찬도 신경 써서 준비하고, 예쁘게 차려 먹”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남은 반찬으로 점심을 먹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여자는 가족을 먹이기 위해 요리”하는 것인데, 이것이 비단 그녀만의 생각인지 질문해보아야 한다.

취업준비생 ‘그녀’는 혼자 식사하는 또 다른 출연자다. PD의 꿈을 꾸고 있는 그녀는 강의를 듣는 등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되고 싶은 욕구만 남아있고, 실패한 기억 뿐”인 그녀에게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과정은 녹록치 않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돌아올지를 확신하기 어려운 채로 기약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취업준비생에게 식사다운 식사란 어쩌다 친구와 만났을 때에야 겨우 가능한 것이다. “이게 7일째 된 밥인가? 괜찮아. 먹고 소화하면 돼.” 되고 싶은 모습과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의 외로움과 불안함은 그러나 그 되고 싶은 모습이 된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의 행복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택시기사인 ‘그녀’는 “택시는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차 안에서 김밥으로 식사를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얼른 먹던 것을 멈춘다. 그러나 “운전하는 것도, 손님과 이야기 나나누는 것도,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아하는 그녀는 택시운전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여성 운전자로서 겪어야 하는 부당한 대접에도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린다.

한편, 함께하는 점심시간을 통해 노동의 고단함을 잠시 잊어내는 경우도 있다. 경마장 청소노동자인 ‘그녀들’은 돈을 잃은 경마꾼들의 예민함에 힘든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 관리자는 청소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불을 꺼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서는 맛이 없”던 밥도 “여럿이 먹으니 맛있다.”는 그녀들은 서로 반찬을 나누고, 너무 적게 먹는다며 핀잔을 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챙겨주고 의지한다. ‘식구’의 뜻이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임을 비춰봤을 때, 그녀들에게 점심시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식구인 시간이다.

경로당의 ‘그녀’ 역시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아침도 못 먹고 온” 노인들의 식사를 챙긴다. 이틀 안 나오면 궁금해서 전화를 한다는 그녀는 그 이유를 “식구니까”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경로당의 할머니들은 같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모여앉아 식재료를 다듬는다. 경로당이라는 공간에서 모두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음으로서 그들은 혼자가 아닌 그들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간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과 노동 속에서 그녀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또래 여성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하드록, 블루스록 같은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고, 누군가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저녁만이라도 맛있는 식사를 찾아 먹기도 한다. 또 함께 먹는 시간을 통해 서로에게 든든한 식구가 되는 ‘그녀들’이 있는가 하면, 고된 취업준비의 시간 속에서 간간히 친구를 만나 “밥다운 밥”을 먹는 ‘그녀’가, 자신의 일을 온 몸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그녀’가 있다.

영화는 “점심시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생활의 기본적인 영역인 식사를 조명함으로서 여성들의 삶과 노동에 진하게 접속한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점심시간”을 통해 만나는 그녀들의 삶과 노동이 각자 분리된 듯 연결되어 있고, 어쩌면 ‘그녀들’을 바라보는 ‘나’의 그것과도 닮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맛있기만 한 것은 아닌, ‘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솔하게 와 닿는다.

영화 속 ‘그녀들’, 그리고 영화 밖의 ‘그녀들’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매일 먹는 밥을 짓고, 먹고, 나누며 ‘우리’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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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민주항쟁 30주년 특별상영회 <명성, 그 6일의 기록> 


일시 2017년 6월 9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인디토크)

관람료 무료





<명성, 그 6일의 기록 The Six Day Fight in Myong Dong Cathedral>

김동원 | 1997 | 다큐멘터리 | 74분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6일 간의 명동성당 농성투쟁에 관한 기록이다. 6월 10일 밤,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에 우연히 모인 농성대의 갈등과 희망, 농성대를 둘러싼 당시 정치적 상황들이 풍부한 자료 화면과 증언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6월 항쟁의 가능성과 한계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현재 우리의 희망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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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목) 11:00

6월 9일(금) 13:00

6월 10일(토) 15:00 인디토크

6월 11일(일) 17:40

6월 12일(월) 13:20

6월 13일(화) 10:40

6월 14일(수) 15:10

6월 15일(목) 13:10

6월 16일(금) 10:40

6월 17일(토) 19:40

6월 18일(일) 15:10

6월 19일(월) 12:30

6월 20일(화) 18:00

6월 21일(수) 11:00

6월 23일(금) 12:30

6월 25일(일) 19:40

6월 26일(월) 11:00

6월 28일(수) 15:10 종영


 






 예매하기 

● 맥스무비 http://bit.ly/9BCgci

● 예스이십사 http://bit.ly/an5zh9

● 다음 http://bit.ly/2qtAcPS

● 네이버 http://bit.ly/OVY1Mk





 인디토크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인디토크

● 일시: 2017년 6월 10일(토) 오후 3시 상영 후

● 참석: 김소영 감독

● 진행: 정한석 평론가


● 일시: 2017년 6월 4일(일) 오후 3시 상영 후

● 참석: 김소영 감독

● 진행: 변영주 감독





 예매이벤트 



















도서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1860년대 연해주 이주부터 오늘날 '역사적 조국' 한국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잊힌 역사의 진실을 복원한 책이다.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50만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개괄하여 살펴보고 있다.


김호준 지음 | 주류성




온라인 예매 후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를 관람하시면 추첨을 통해 도서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14명) 을 드립니다.


● 기간: - 6/13(화) 예매분까지 (온라인 예매 시 자동 응모)

● 발표: 6/14(수) 개별 연락







 INFORMATION 


제목: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 Sound of Nomad: Koryo Arirang

장르: 음악 다큐멘터리 

출연: 방 타마라, 이함덕 

감독: 김소영 

제작: 822 필름  

배급: ㈜시네마달

상영시간: 96min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17년 5월 25일 






 SYNOPSIS 


“우리는 곳곳에 다니면서 

부끄러운 적 없는 공연을 했어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모스크바…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이들에게 ‘고려극장’이 찾아오는 날은 유일한 잔칫날이었다.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만난 듯,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러시아인 어머니, 고려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 받았던 ‘방 타마라’,  

100여 가지의 배역을 소화했던 무대의 여왕 ‘이함덕’, 


시베리아 벌판을 무대 삼아 위로의 무대를 선사했던 

두 디바의 경이로운 삶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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