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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구덩이에서 나온 라이츄의 영원한 테마 '인디피크닉 2017' <구덩이> <라이츄의 입시지옥> <인류의 영원한 테마> 인디토크

by indiespace_은 2017. 4. 26.

구덩이에서 나온 라이츄의 영원한 테마

 인디피크닉 2017 <구덩이> <라이츄의 입시지옥> <인류의 영원한 테마>  인디토크


일시 2017년 4 8일(토) 오후 1 상영 후

참석 <구덩이> 강산 감독, 윤정로 배우, 김수현 배우, 박선영 배우 /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내바다 배우, 김영세 배우 /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 장영준 배우

진행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영화의 본령 중 하나는 카메라를 돌리면 그대로 찍힌다는 것이다. 그 말에선 무거운 고뇌와 힘겨운 노동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조악하고 게으르다고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조력은 언제나 누군가가 욕하는 조악하고 게으른 자들에게서 나온다. 훗카이도 대학의 하세가와 에이스케 교수는 일하지 않는 개미가 종족의 장기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근면한 개미만 모인 집단은 종족의 존속에 반드시 필요한 알의 뒷바라지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알을 위해 카메라를 돌리는 개미들을 ‘인디피크닉’에서 만나보았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하 김동현): 이렇게 따뜻한 봄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또는 왜 이렇게 만들게 됐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배우 분들은 캐스팅까지의 과정, 또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의 느낌이나 본인의 캐릭터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구덩이> 강산 감독: 처음에는 관계에 대해서 다뤄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관계의 대표적인 형태가 결혼이어서 그 주제를 다루기로 했어요. 그래서 대중영화의 경향을 조금 정리해봤어요. 이혼 해주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차라리 찢어서 죽였으면 죽였지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하냐, 그런 사연이 많았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의 작품들은 되게 무겁고 우울한 게 많아서 재미있는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찍었습니다.

 

<구덩이> 윤정로 배우: 박선영 배우님과 전에 작업해본 적이 있어서 편하고 좋았습니다. 감독님도 이 점을 미리 생각해 둔 거고요. 그리고 ‘미선’역을 고민하던 감독님이 “주변에 카리스마 있는 사람 없냐”고 해서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다 다음날, “잘 모르는 데 한 명 있다”고 김수현 배우를 추천했습니다. 건너 알던 배우분인데, 감독님이 한 번 보고는 바로 캐스팅해서 이렇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구덩이> 김수현 배우: 조금 오래돼서 기억은 잘 안 납니다. 근데 되게 재밌었어요. 그래서 하기로 했고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의 모델은 저희 엄마에요.(웃음) 말투 등 엄마를 형상화하면서 연기를 했습니다.

 

<구덩이> 박선영 배우: 시나리오를 너무 잘 쓰셔서 잘 읽혔어요. 캐릭터에 대해서 감독님과 되게 많이 이야기했어요. 영화에서 제가 좀 과하게 귀여운 면이 있죠.(웃음) 감독님이 그런 연기를 펼칠 수 있게 많이 도와줬어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시나리오를 쓴 건 15년 4, 5월 즈음이에요. 남들이 별로 말하지 않은 것을 다뤄보자고 '박근혜 아웃' 같은 말을 쓰고 그랬어요. 그리고 ‘피카츄는 꾸준히 인기가 있으니까 라이츄 정도?’ 생각했는데, 이걸 찍고 나니까 진짜로 박근혜 아웃되고 포켓몬 고 유행하고 이러더라고요. 오늘 와서 보니 유행이 이미 다 지난 퇴물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아직도 약간 당황스럽긴 한데 처음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영화를 찍자는 생각으로 작업했습니다.


<라이츄의 입시지옥> 내바다 배우: 이거 정말 다 한국말로 해야 돼요? 그 정도로 잘하는 사람 아니에요. 아무튼 에이전시한테 연락을 받아서 나갔는데 콘텍스트 이해 안 됐지만 웃겼어요. It was funny. 그래서 연기 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지금 긴장해서 생각이 안나요. Hello 여러분.(웃음)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영세 배우: 피카츄, 라이츄 역할을 맡았습니다. 연기 지망생은 아니고 그냥 감독님 대학교 동기에요.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출연을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근데 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삭발을 하잖아요. 저는 촬영에 삭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촬영 이틀 전에 알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찍자는 취지여서 그냥 하기로 했어요. 이런 영화가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 봐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 자퇴하기 전에 추억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찍었어요.(웃음) 다섯 캐릭터가 나오는데 다 제 친구들이에요. 제 눈에 느낌이 좋은 친구들에게 시나리오를 주면서 “같이하지 않을래? 나 이제 곧 자퇴하니까 너희들 못 본다. 마지막으로 추억이나 남기자”하면서 찍게 된 영화에요.


<인류의 영원한 테마> 장영준 배우: 저도 그냥 찍었습니다.(웃음) 감독님과 형 동생 사이였어요. 



김동현: 몇 회차로 촬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또 촬영장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 회차는 기억이 안 나요. 그 때 별로 돈이 없었고 제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장비 빌려서 여느 학생들과 같이 찍었습니다. 아마 스무 번 넘게 만났을 거예요. 촬영감독님이 스케줄이 안 되면 제가 카메라를 드는 날도 있었고요. 다섯 명의 배우들이 각자 스케줄이 있고 되게 바빠서 술집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찍은 것 같아요. 다 같이 만나기가 힘들어서요. 


김동현: 후반작업 기간도 꽤 길었을 거 같아요. 여러 효과들이 많고 색감도 좋잖아요.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 오히려 편집은 당일로 끝났어요. 다른 감독님들도 아시겠지만 영상을 찍으면 빨리 만들고 싶잖아요. 빨리 편집하고 싶고. 그래서 한 씬을 찍으면 그날 바로 편집하고 음악도 넣어보고 그랬어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집과 집 앞에서 찍어서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어요. 대신 집 안에서 기물파손이 많았죠.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장면까지 약 3일 정도 찍은 거 같아요.


<구덩이> 강산 감독: 역시 영화는 현명하게 효율적인 공간에서 찍어야 하는데. 저는 4, 5회차로 찍었어요. 땅을 팔 수 있는 곳을 찾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창고처럼 보이는 그 장면에서 실제로 집을 한 채 빌렸어요. 그리고 큰 구덩이는 마사토로 채워져 있어서 쉽게 팔 수 있는 곳이라고 주변 분들과 부동산 업자들이 이야기해서 시작했는데 중간에 도저히 못 파겠더라고요. 그래서 기계로 뚫다가 암반 지대가 나왔어요. 굴삭기를 구했는데 결국 굴삭기도 못 팠어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학교 주변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학교 뒷산 의릉이 유네스코로 지정되어서 함부로 팔 수가 없었어요. 영유권 분쟁이 없는 중간지대에서 다행히 삽으로 팠습니다. 그 때는 정말 돈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전에 굴삭기가 들어오다가 남의 밭을 다 훑었더라고요. 촬영하느라 모르고 있었는데 밭주인이 배상하라고 해서 저의 아이맥을 팔았습니다.


관객: <구덩이>에 <싸이코> 음악을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치정 관계에 있는 역할의 이름이 ‘나타샤’인데 그 이름을 쓴 이유도 궁금합니다.


<구덩이> 강산 감독: 전부터 그 음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아직 저작권이 살아있어요. 그래서 ‘제 3세계에 사는 학생인데 쓰면 안 되겠냐’고 메일을 보내서 허락을 맡았어요.(웃음) ‘나타샤’는 저희가 리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름이에요. 백석의 시 중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있어요. 시인이 흠모하는 사람을 ‘나타샤’라고 칭해서 그렇게 지었어요. 



관객: <라이츄의 입시지옥>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노래의 가사가 너무 인상적입니다.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마지막 음악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여성 락밴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게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쓰고 제가 불렀습니다. 


김동현: 그리고 이 작품에는 감독님이 카메오로 여러 번 출연해요. 어느 부분에 나왔는지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아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처음에 철학적인 척 할 때 컴퓨터 모니터에서 MGM 로고가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거기서 사자 대신 제가 나와요. 엔딩 크레딧에서 '영화는 내 인생, 내 인생은 영화처럼' 이 부분에서도 제가 나오는 게 좋겠다 싶어서 넣어봤어요. 넣어보긴 했는데...(웃음)


관객: <구덩이> 캐릭터 세 명이 다 굉장히 독특하고 영악해요.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구덩이> 강산 감독: 남성 캐릭터에 약하고 우유부단한 부분을 넣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남성을 데리고 사니까 여성은 굉장히 강해야 할 것 같았고요. 그리고 내연관계에 있는 캐릭터는 또 다른 면모가 있어야겠다 정도로 잡고 시작했어요. 나머지는 배우 분들 만나면서 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수현 배우의 사투리는 전부 배우님이 직접 만든 거예요.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은 ‘네이트 판’을 되게 좋아해서,(웃음) 거기에서 참고를 많이 했습니다.


김동현: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영세 배우님은 전문 배우가 아니라고 했는데 감독님으로부터 디렉션을 받았나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영세 배우: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 힘들었어요. 같이 살던 사이라 촬영하기 두 달 전부터 매일 밤마다 검사를 맡았어요. 강약, 호흡, 악센트, 톤 등을 일일이 다 교정을 해줬어요. 모든 부분이 다 설계된 거예요. 너무 힘들었어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지금은 따로 살고 있습니다.(웃음)



김동현: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님은 어떻게 디렉션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인류의 영원한 테마> 장영준 배우: 감독님이 워낙 유능해서 배우들을 잘 케어했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시피 다 아는 사이여서 현장이 굉장히 편안했어요. 그래서 서로 배려했고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어서 힘든 점은 따로 없었습니다.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 감독: 배우 분들이 워낙 끼가 많아요. 그래서 딱히 디렉션 할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많이 관찰했어요. 색깔이 각기 다른 배우들이에요. 부분부분 되게 재미있게 묘사하더라고요. 


관객: <구덩이>와 <인류의 영원한 테마>는 그래도 중심에 스토리가 있는데 <라이츄의 입시지옥>은 내내 ‘이게 뭐지?’하면서 봤어요. 연출 의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사실 놀라실 수 있지만,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보면서 쓴 시나리오에요.(웃음) 웹툰에서는 ‘병맛’이 굉장히 큰 장르가 되어서 산업화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특히 한국에서는 영화에서 병맛을 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부분적인 요소로 쓰는 것은 종종 보지만 전반에 걸쳐서 쓰이진 않는 것 같아요. 단편영화는 자본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잖아요. ‘진짜 아무렇게나 찍어도 되는 건데 왜 이런 게 없을까?’라는 저만의 고민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더 이상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던 생각이 납니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는 여러 가지 층위가 있다. 그 중에서도 영화의 가장 기본적이고 솔직한 재미는 무작정, 원초적인 재미이다. 여기에는 누군가가 카메라를 작동시키면 그저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절대적인 웃음이 있다. 이러한 웃음은 대중매체로 존재하고 있는 영화의 존재를 존속시키고 나아가 성실한 영화들은 미처 하지 못했던 영화의 알을 뒷바라지 한다. 누군가가 게으르다 욕하는 개미들에게도 각자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 영화는 이런 다양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존속이 가능한 재미있는 복합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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