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뭉클한 한 걸음 한 걸음 <걷기왕>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11월 5일(토) 오후 6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백승화 감독, 강민국 음악감독
진행: 김화범 인디스토리 제작기획팀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선천적 멀미증후군으로 어떠한 교통 수단도 탈 수 없는 만복이. 그런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걷기’이다. 장장 2시간의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는 만복이의 씩씩한 걸음 걸음이 우리를 뭉클하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인디토크에서는 <걷기왕>의 백승화 감독 그리고 통통 튀는 음악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강민국 음악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김화범 인디스토리 제작기획팀장(이하 진행): 안녕하세요. 오늘 <걷기왕>을 보러 와주신 관객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다들 영화는 재미있게 보셨나요? 백승화 감독님, 우선 ‘만복’이라는 캐릭터가 참 독특한데 그 캐릭터를 처음에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백승화 감독(이하 백): 먼저 <걷기왕>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말씀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원래는 쓸모 없는 것을 잘 하는 주인공이 스포츠의 세계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쓸모 없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걷기, 숨쉬기 이런 것들 중에 고민했고 걷기가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복이를 구상했죠. 만복이 같은 경우 눈치채신 분들이 많겠지만, 걸음 수를 세는 ‘만보기’에서 착안해 만복이라고 이름을 정했어요. 그런 것들을 좋아해요. 청소 잘하는 ‘정돈이’처럼요. 그리고 걷기를 잘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걷기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차를 못 타게 해야겠다, 그렇다면 차 멀미를 심하게 하는 것으로 설정을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진행: 영화 개봉 후에 만복이의 멀미에 많이들 공감을 해주시더라고요. 멀미가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심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강민국 음악감독님, 중간에 <타이타닉> 음악을 리코더로 연주하는 부분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이건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강민국 음악감독(이하 강): 리코더 연주에 대해서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슬픈 장면에 엉뚱한 연주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익숙한 노래였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과 이야기 했었어요. 어떤 곡으로 할지 고민하다 후반작업 마지막쯤에 타이타닉 곡으로 결정이 됐어요. 여러가지 곡으로 테스트를 해봤는데, 1위가 타이타닉이었어요. 그런데 기존 곡을 쓰면 저작권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데, 제작진 분들도 흔쾌히 허락해주셨죠. 후보 곡 중에는 개구리 왕눈이, 아리랑, 엘리제를 위하여 등이 있었어요. 저희들이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듣던 곡들이죠.
백: 처음에 타이타닉을 쓰고 싶었는데, 저작권료가 부담이 됐어요. 타이타닉 곡을 연주하는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이 있었는데, 그것을 나중에 쓰면 좋겠다 생각을 했었죠. 추후에 상의를 해보다가 타이타닉 곡을 돈을 내고 썼어요. 해외 버전은 베토벤의 곡을 썼어요. 저작권료가 안 나가는 곡이에요.(웃음)
진행: 감독님과 얘기했던 음악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었나요?
강: 처음에 경보를 할 때 쓸 음악에 대해서 논의를 했었는데, 유튜브에서 경보 영상을 찾아보고 그 영상에 여러가지 음악을 입혀보면서 음악을 골랐어요. 그런 영상물이 많지 않아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경보의 움직임이나 속도감, 모션이 재미있게 나올 수 있는 음악들을 구상하려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감독님은 기분 좋고 쉽고 가볍고 익숙해서 흥얼거릴 수 있는 곡을 원하셨어요. 실제 음악 작업을 할 때 그런 점에 가장 초점을 맞춰서 작업을 했죠.
진행: 시나리오에서 ‘엔딩송’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은 편집과정에서 생각을 하셨나요?
백: 네, 엔딩송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어요. 그런데 심은경 배우가 노래를 잘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어서 노래 한 곡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음악을 만들어보자 했어요. 원래 그 구간에 들어가는 음악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사를 넣어서 여행가는 가벼운 마음에 어울리도록 만들어봤어요. 그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에 쓰이는 음악들이 ‘무키무키만만수’의 노래처럼 헐렁한 느낌의 곡으로 간단하고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했어요.
강: 소풍이나 수학여행 가서 둘러 앉아 편히 부를 수 있는 느낌을 원했죠. 은경 씨에게 곡을 전달하기 전에 가이드 녹음한 것을 보내줬는데, 그때 즉흥적으로 가사를 보완한 것이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넣을까 생각하다가 ‘영화는 잘 보셨나요’ ‘가방, 지갑, 핸드폰 잊지 말고’ ‘콜라 팝콘’ 등등 이런 가사가 즉흥적으로 만들어졌어요.
백: <걷기왕> 엔딩송으로 음원이 나와있어요. 집에 가서 다시 한 번 들어보시면 즐거울 것 같아요. 가사는 처음엔 만복이가 걸어가면서 보는 풍경들에 대해 썼다가 후반부에서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하는 말들로 만들어봤어요. 보통 관객 분들이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안 보고 가는 것이 아쉬웠는데, 시사회 날 엔딩송 가사를 듣고 다시 돌아오시는 걸 보고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웃음)
관객: 주인공을 남성이 아니라 여성으로 쓰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또 소가 주인공의 깊은 속마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인상깊었어요.
백: 처음에는 ‘데굴데굴 볼링왕’이라는 내용을 먼저 썼어요. 그 시나리오는 백수인 여성이 주인공이었어요. 쓰다가 잘 안 풀려서 ‘오목소녀’라고 오목을 두는 여성 이야기를 썼어요. 그러다 보니 <걷기왕>도 자연스럽게 여성이 주인공이 된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여성이 잘 맞았어요. 소 같은 경우, 영화 전체적으로 누군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소가 되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시골 배경이고, 만복의 가까이에 있을 것, 마음과 소의 목소리가 중저음의 무거운 목소리였으면 했어요. 크게 고민한 것은 아니고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저는 몰랐는데 <워낭소리>(2008)를 배급했던 제작사 인디스토리에서 매우 반가워하시더라고요.(웃음)
진행: 시나리오 기획, 발전 단계에서 소가 내레이션을 하는 부분이 큰 쟁점이었어요. 상의를 많이 했는데, 감독님이 계속 하고 싶어했죠.
강: 소 얘기 잠깐 하면, 처음 편집본에서는 ‘소순이’ 목소리가 감독님 목소리였어요. 너무 잘 어울려서 계속 권했는데, 아쉬워요. 소순이랑 감독님 평상시 목소리랑 너무 잘 어울려요.(웃음)
관객: 마지막에 경보 대회에서 다같이 넘어진 상황이 있었는데, 만복이가 혼자 일어나 일등을 할거라고 예상했었어요. 그런데 만복이가 그냥 누워있더라고요. 그 장면에 대해서 더 듣고 싶어요.
백: 그 장면은 영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장 잘 들어간 장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만복이라는 친구가 영화에서 딱히 잘 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친구잖아요. 경보를 시작한 것도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었어요. 사실 <걷기왕>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은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압박이 있었는데, 요즘 친구들에게는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하나같이 꿈을 가지고 열정을 다하라고 강요를 하는 것 같아요. 텔레비전에서 많은 연사들이 젊은이들에게 꿈과 열정을 가지고 도전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무책임해 보였어요. 그래서 만복이도 스스로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서든 완주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미덕, 젊음의 열정처럼 보이는데, 그런 것에 대해 의심이 있었죠. 만복이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경쟁의 레인에서도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만약 만복이가 완주를 했다면 영화 내내 했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결말이 될 것 같았어요. 만복이는 그냥 잘 걸으면 되는 건데, 선생님이 굳이 선수로 만들려고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영화의 큰 메시지랑 닿아있어요. 관객 분들은 만복이의 완주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텐데, 허무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더러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진행: 일등은 아니더라도 관객들의 기대치도 있으니까 완주를 하는게 어떨지 제안을 많이 했는데, 감독님이 확고하셨어요. 주제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셨어요. 혹여 관객들에게 불친절하게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죠.
백: 그것이 편집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만복이가 왜 그만두는지에 대해서 읽힐 수 있을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어요. 참,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저에게 리코더를 불어줬음 좋겠다고 하셨는데, 혹시 몰라서 연습은 하긴 했습니다. 한 구절 정도 연주를 해드려도 될까요?(웃음)
진행: 영화랑 똑같은데요?(웃음)
강: 실제 영화의 리코더 연주자는 전문적으로 악기를 많이 다루는 친구에요. 엔딩송의 하모니카도 연주해줬죠. 원래 잘 하는 사람이 못 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어요. 이 곡은 잘 부르려고 해도 리코더로는 잘 불 수가 없는 곡이기도 했습니다. 재미있게 음 이탈이 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녹음을 했어요. 그런데 녹음을 마치고 뭔가 계속 아쉬움이 남아서 다음날 감독님에게 부탁을 드리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해보니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관객: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평범하게 묘사돼서 참 좋았어요. 떡볶이를 먹는다든지 수업시간에 잠을 잔다든지 다 제가 했던 것들이라 공감이 많이 됐어요. 엔딩크레딧에서 다른 인물들은 미래가 어떻게 됐는지 보여주었는데, 정작 만복이의 미래는 잘 보여지지 않은 것 같아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만복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백: 굳이 어떤 사람이 됐는지 말하기보다는, 결말을 열어두고 싶었어요. 만복이가 더 달리지 않고 그만두는 선택을 했는데, 그런 선택을 한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를 제가 결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뭐가 됐을 것 같나요? 꿈이긴 하지만 먼 미래엔 러시아를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서 훌륭한 사람이 됐다거나 낙오자가 됐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죠.
관객: 마지막에 소순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부분이 충격적이면서도 재미있었어요. 사실은 암컷이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불가능은 없다는 것인가요?
백: 원래는 수컷이었는데, 만복이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식으로 생각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의외로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수컷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새끼를 낳았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웃음)
관객: 영화에서 주인공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정작 그 인물들 간의 갈등은 없었어요. 천진하게 웃지만 가장 위험한 인물이 담임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인물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과 극적인 장면이 없어서 좀 아쉬웠어요.
백: 담임 선생님 역할을 맡은 김새벽 배우가 부담을 많이 느꼈어요.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코믹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낯설다고 했어요.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소위 ‘악역’이죠. 본인은 선의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말을 하는데, 선의가 아니었죠.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강요했는데, 후반부에선 그것에 의구심을 가지면서 스스로도 일종의 성장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관객: 영화에 감독님 경험이 들어 있다면 듣고 싶어요.
백: 만복이처럼 자고, 지각했던 경험이 많아요. 그리고 떡볶이를 거의 매일 먹었죠. 멀미도 조금 있었고요. 저도 고등학생 때 두 시간씩 걸어 다니기도 했어요.
진행: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백: 영화가 개봉한지 꽤 됐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배우 분들과 GV를 많이 했는데 같이 작업한 분들과도 많이 하고 싶었어요. 오늘 음악감독님과 이런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엔딩송 음원이 나와있으니 들어보시면 저희에게 도움이, 저작권료가 작게나마 들어올 수 있습니다.(웃음) 다들 조심히 돌아가시고 영화 재미있게 보셨다면 많이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
강: 그 동안 영화 작업을 많이 했지만, 이 작품은 유난히 음악이 좋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의 음악적 능력에서 특별히 힘을 주거나 힘들었던 작업은 아니었는데, 영화와 잘 어우러지고 감독님과 소통이 잘 된 것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고민할 때마다 감독님의 아이디어가 참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걷기왕>은 저에게 고마운 작품이에요. 보통 영화의 정서에 빠져들 때면 몸이 힘들 때도 있는데, 이 작품은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작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즐거움을 많이 느꼈어요. 이 영화가 보는 분들이나 만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하게 살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열정’만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들의 숨을 턱 막히게만 한다. 유쾌하고 씩씩한 만복이의 한 걸음 한 걸음에 뭉클했다면, 뛰는 것에 지친 나 자신과 다른 누군가에게 ‘걸어도 괜찮아’라고 위로의 말을 한번씩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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