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핀다 <흔들리는 물결>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10월 29일(토)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진도 감독 | 배우 심희섭, 고원희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다영 님의 글입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물결>을 보러온 관객들이 극장을 한자리 한자리 채웠다. 애틋하고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피워낸 영화 <흔들리는 물결> 상영 후 김진도 감독과 고원희, 심희섭 배우와의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이하 진행): 추운 날인데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물결> 보러 많은 분들이 자리해주셨어요. 먼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관객 분들의 질문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관객: 원희와 연우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나 말투에 변화가 있습니다. 원희의 경우에는 연우를 부르는 호칭이 ‘오빠’로 어느 순간 변하는데, 연우는 계속해서 원희를 ‘원희 씨’라고 부르고 존댓말을 씁니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김진도 감독(이하 김): ‘날씨가 따뜻하면 꽃이 핀다’는 그런 뉘앙스가 미세하게 나타나기를 원했고 그런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호칭을 오빠로 바꾸었습니다. 희섭 배우가 ‘오빠라고 하게 되면 말을 놓아야 하지 않나’라는 의견을 줘서 그렇게 해보았는데, 분위기상 어울리지 않아 희섭 배우는 계속 존댓말을 하는 설정을 유지했습니다.
관객: 단양이라는 장소를 원래부터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신 것인지, 아니면 시나리오를 먼저 쓰고 물이 나오는 지역을 찾다가 단양을 배경으로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 이 영화는 ‘연우가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의 방사선 사진을 본다’는 이미지로 출발을 했어요. 단양은 원래 제가 잘 아는 곳입니다. 강이라는 공간이 죽음과 재생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이에요. 처음에는 하나의 이미지로 시작을 했지만 이 장소가 영화의 테마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공간에서 받은 인상이 시나리오의 시작을 돕기도 했어요. 서로 주고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진행: 배우 분들께 질문 드리고 싶어요. 이 영화는 마냥 달달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조금은 무거운 면도 있고 한데, 그런 면에서 이 멜로 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고원희 배우(이하 고): 실제로도 심희섭 배우와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관계였던 것 같아요. 편한 관계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좋을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연기에서 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더욱 천천히 다가갔고 그게 녹아서 영화속에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심희섭 배우(이하 심): 처한 상황이 극단적이기도 하고 감독님께서도 추구하시는 것들과 맞물려 절제된 감정을 연기를 하려니까 어려웠어요. 힘들었고.
김: 덧붙이자면 이 영화가 별 사건도 없고 감정의 큰 경위도 없어서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핸디캡이 있긴 한 것 같아요. 구조적으로는 약간 통속극 구조라서 신파로 갈 수도 있다는 위험한 지점이 있었고요. 또 네거티브 한 캐릭터들이잖아요. 말도 없고 사람들과 대면도 없고. 그걸 실제로 연기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우울한 인물이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미세한 변화로 계속 극을 움직여야 하니까 배우의 입장에서는 연기를 하기가 조금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원희라는 캐릭터가 부산에서 이모와 살다가 갑자기 나가게 된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는데, 그 이유 혹은 전사가 궁금합니다.
김: 전사는 원희 배우와도 나눴던 이야기인데, 원희는 고등학생 때 이모 집에서 나왔어요. 왜냐하면 이모가 아무리 잘해줘도 얹혀사는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독립적으로 사는 인물로 설정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병을 얻게 된 것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기 싫어하는 독립적인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시나리오상에서는 원희 단독의 분량이 꽤 있었는데, 중간에 많이 생략이 되어서 아쉽습니다.
진행: 생략된 부분 중에 특히 아쉽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무엇이 있나요?
고: 원희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장면인데요, 원희와 연우가 비를 맞고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기서 원희가 젖은 옷을 털면서 거울을 보는데 속옷이 살짝 비쳐요. 그리고 다음번에 연우와 만나는 것을 상상하면서 속옷을 갈아입는 장면이에요. 이것저것 속옷을 바꿔 입어보다가 울음이 터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빠져서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습니다.
관객: 극 중 자주 등장하는 ‘그대 내 품에’라는 노래의 어떻게 고른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 둘 사이 감정의 하이라이트에서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노래를 고르는 과정이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여러 곡을 들어보았지만 잘 와닿지 않았는데, 전철에서 우연히 유재하의 노래가 생각이 났어요.
심: 바닷가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을 찍을 때 춥기도 하고 제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서 어려웠어요. 정말 많이 연습을 했는데, 파도소리가 너무 컸고 주변 소음이 심해 나중에 따로 녹음을 해서 영화에 넣었습니다.
관객: 연우와 원희가 부산에 갔을 때 이모님이 원희에게 참기름을 한 숟가락 떠먹여주시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 이 사람이 삶을 마감하기 전에 가족을 만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설정이라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밥을 먹을까? 뭘 할까? 생각을 하다가 TV에서 참기름을 들고 다니면서 먹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어요. 죽어가는 조카에게 힘내라고 참기름을 한 숟가락 떠먹여주는 것이 아이러니하고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 장면을 넣게 되었습니다.
관객: 감독의 입장에서 독립영화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습니다.
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힘든 작업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끝없이 포기해야할 상황이 생기고 그런 포기의 과정이 고통스럽기도 하고 그 안에서 또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동시에 상업영화 작업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 안에서도 끝없이 관객이 좋아할 취향이나 기호들을 생각하고 고려해서 영화 속에 심어넣어야 하는 일이 조금 어렵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가족적인 분위기, 같이 성장하는 과정은 독립영화만이 가지는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관객: 초반 두 주인공 개인의 잔잔한 장면이 많이 기억에 남는데, 그 장면들을 찍을 때 느꼈던 두 배우분들 각자의 감정이 궁금합니다.
고: 그때는 저도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원희가 기적을 바라는 친구에요.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시골에 내려와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기적적으로 병이 낫기를 바라죠. 약을 하나하나씩 먹기보다 한번에 다 털어넣는 것도 하나의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렇게 연기를 했습니다.
심: 캐릭터 자체가 말이 많이 없고 소극적이니까 외적인 것을 배제하고 연우의 감정과 상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았어요. ‘무엇을 할까?’보다는 ‘왜 그럴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관객: 원희가 어떤 부분에서 연우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 원희가 아프고 외로운 사람인데, 연우라는 친구가 알게모르게 베푼 친절과 호의가 약하고 외로운 원희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고: 연우의 표현이 굉장히 어린데, 그런 모습들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고, 원희는 몸이 아프지만, 연우는 마음이 아프다는 점에서 약간의 동질감이나 연민을 느끼기도 했을 거에요. 나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데,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연우의 모습을 보며 가지는 호기심과 관심이 사랑으로 발전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 사고가 난 후 연우가 집에 왔을 때 주무시던 아버지가 깨는데, 연우가 아버지에게 여기는 우리 고향도 아닌데 왜 여기서 사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 그것은 제가 항상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해요. ‘왜 살지?’라는 질문을 항상 하면서 살고 있고 연우라는 캐릭터가 여동생의 사고 이후로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연우가 더욱 괴로운 이유는 그것에 대한 어떠한 답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장면은 연우가 그 누구에게도 툭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그 고질적인 질문을 처음으로 아버지께 던지는 장면이었지요. 또 원희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질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이 작품 찍으면서 감독님과 배우 분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 저에게는 죽음의 느낌이 내부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해 워낙 많이 생각하기도 하고 죽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하기도 하고, 이상한 강박증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희섭 배우와 원희 배우가 그 이미지를 잡는 것을 조금은 어려워했습니다.
고: 죽음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무겁고 누구에게나 무섭고 슬프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고요. 근데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는데, 죽음 다음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지 못하니까 그 알 수 없는 영역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적 암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신 이모 생각이 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모도 원희처럼 아픈 것을 티 내지 않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셨던 것 같아요. 그 생각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더 잘 연기해낼 수 있었습니다.
심: 실은 저는 죽음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때문에 제가 언제든 죽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어요. 슬픈 감정에 대해서는 알겠지만.
진행: <흔들리는 물결>의 영어제목은 피어난다는 뜻의 <Blossom>이에요. 삶에 대한 암시가 강한 제목인데, 어떻게 지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제목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생각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각이 나야 하는 것 같고요.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핀다’라는 테마를 좀 더 부각시키고 싶어서 영제를 ‘Blossom’으로 지었습니다.
관객: 마지막에 연우가 물에 빠져 머리까지 잠길 때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시 헤엄을 쳐요. 그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김: 연우는 두 가지가 공존하는 친구에요. 살기 싫어하면서도 계속해서 왜 살아야 하는지를 절박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시나리오 상에서 연우는 원래 마음 속에 뜨거움을 간직한 캐릭터에요. 어느 날 갑자기 원희가 너무 보고싶어서 물 안으로 들어간 것이고 자기 안의 뜨거운 어떤 것들이 그를 수영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 장면은 희망도 존재하지만 고독해 보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행: 두 배우의 전작들을 보면 전혀 다른 이미지를 연기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고정된 이미지랄 게 없기도 한데, 혹시 다음 작품에서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고: 다음주부터 새롭게 촬영하는 작품이 있는데요, 그 캐릭터가 이 작품과는 다르게 또 감정적으로 많이 힘듭니다. 아마 촬영하는 내내 저와의 싸움일 것 같아요. 하지만 기대도 많이 됩니다.
심: 갑자기 생각났는데, 다른 세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성장하는, 그런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습니다.
관객: 원희가 150년 된 나무를 끌어안지 않고 끙끙대며 밀어내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고 연우가 여동생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장면이 조금 연인처럼 그려지기도 하는데, 의도된 연출인지 궁금합니다.
김: 나무를 미는 장면은 원희가 속에서 절박하게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하다가 나무를 보게 되었는데, 150년이라는 시간이 자신의 삶에 비해 너무도 크게 느껴져 만져보다가 시간을 밀고 싶어하는 그녀의 바람을 형상화 해봤습니다. 그리고 손잡고 걷는 장면은 이 남매가 유난히 애틋한 관계였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찍은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핀다. 마치 순환하는 자연처럼 우리의 삶은 거듭 상실과 재생을 경험 한다. 죽음에 대한 질문을 잔잔한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그려내며 쓸쓸한 이들을 위로하는 <흔들리는 물결> 인디토크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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