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하게 스쳐간 봄날의 꿈처럼 <춘몽>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10월 22일(토)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장률 감독
진행: 정성일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상효정 님의 글입니다.
한바탕 꾼 봄날의 꿈. 그 꿈에서 깨고 나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현실을 꾼 것일까? 영화 <춘몽>은 그 제목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는 ‘일장춘몽’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아련하게 스쳐간 봄날의 꿈같다. 봄날의 꿈은 다소 적막하고 씁쓸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여운을 준다. 지난 22일,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춘몽>의 장률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가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이하 정): 사전에 저는 장률 감독님과 인터뷰를 한 바가 있습니다. 그때 <춘몽>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질문을 드리자 감독님께서는 수색역에서 시작되었다고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수색역은 전철역의 이름이자 지역명으로 그 장소에 살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가기 불편한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감독님께서는 언제 수색역이라는 장소를 발견하였으며 무엇을 보았고 그때 어떤 기분을 느끼셨기에 수색역에서 출발하게 된 것인지 먼저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장률 감독(이하 장): 서울에 살게 된지 5년인데, 수색역 맞은편 DMC에서 처음부터 살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외국인 아파트 하나밖에 없는데,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몇 달 있다가 떠나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옵니다. 제가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주민인 것 같습니다. 그곳은 한국 동네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산책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동네 분위기가 나는 공간을 찾다보니 수색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 동네에서 터널을 넘어 15분 걸으면 수색에 갈 수 있는데, 그곳은 DMC와는 정반대로 시장도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그런 동네가 많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수색에 가면 조금 편안하고 안착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안착된다는 것은 고향과도 비슷한 정서 아니겠습니까. 일주일에 두세 번 혹은 매일 그곳을 찾는데, 고향에 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넘어갈 때 보통 갑작스럽지 않게 자연스러운 과도기가 있지만, 이곳은 터널하나만 지나면 완전 다릅니다. 꿈과 현실처럼 다른 느낌을 매번 받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주공간이 되지 않았나합니다.
정: 저는 연변을 가보질 못해서 장률 감독님께서 사셨던 곳의 공간적인 느낌을 갖지는 못하지만, 제 눈으로 확인해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성격이라서 일부러 DMC 한국영상자료원부터 수색역까지 걸어봤습니다. 가장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시간적인 점핑처럼 1970년대에 머물러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춘몽>은 20세기 남한과 21세기 남한이 공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절묘한 캐스팅, 즉 박정범, 양익준, 윤종빈 이 세 감독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연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배우로 출연했다는 점으로 그 영화 안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다른 배우로 대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감독들을 한데 모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무산일기>의 박정범, <똥파리>의 양익준,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은 자신들의 그 영화 속에서 걸어 나와 그 인물이 가졌던 성격을 고스란히 껴안고 <춘몽> 안으로 걸어온 다음 한 데 만났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범은 탈북자라는 성격 그대로, 익준은 양아치 역을 그대로 연기하고 있고 종빈은 이등병의 역할의 그대로 재현해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 편의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습니다.
장: 세 감독의 영화를 다 좋아합니다. 잘 찍었고 연기도 너무 잘했고. 그 캐릭터들이 설득력이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그 세 감독의 캐릭터들은 실제 감독들이 가진 질감과 비슷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 안의 캐릭터가 스크린에서 나와 지금의 삶을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텐데, 저 또한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세 편의 영화와 <춘몽>을 같이 보면 조금 재밌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 언젠가는 이 세 편의 영화와 <춘몽>이 동시에 상영되는 날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세 분이 본래 감독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지점과 동시에 불편했던 순간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장: 배우와 같이 찍을 때도 현장은 항상 서로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소화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스크린에서는 <춘몽>이 한 가지 버전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그 친구들의 마음속으로는 네 개의 버전으로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현장에서는 감독이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친구들도 많이 참아내고 최선을 다해서 완성된 것 같습니다. 실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영화라는 것은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질감으로 어떻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세 명을 다시 모이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웃음)
정: <춘몽>을 보고 있으면 이 세 감독들이 자신들의 영화에서 각자의 연기를 보여줬던 것처럼 종종 그 대목들은 시나리오의 대사들을 따라가고 있지만, 많은 순간에 즉흥 연기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즉흥연기를 어느 정도까지 허락해주셨고 이 세 사람의 배우 분들에게 어떤 원칙을 정하셨는지요.
장: 저보다 연기에 대해서 더 잘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연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나왔으니까요.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자유를 많이 줬습니다. 원칙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오버는 하지 말라’.(웃음)
정: 가장 힘들어했던 대목은 어느 부분이었나요?
장: 모든 장면이 다 힘든 것 같습니다.(웃음) 제 마음에 들 때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노래방 장면은 어떻게 보면 영화 속에서 제일 좁은 공간에서 찍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래를 3곡 해야 되고 춤을 춰야 되고 그 안에 예리와 종빈의 미묘한 감정 흐름도 있어야 하고 4명이 끌어안고 노래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연기해야겠다’라는 생각들이 다 달랐습니다. 그래서 선을 넘지 말라고 엄격하게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그 공간에서 찍은 씬이 실제로 토론이 제일 적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해서 찍을 때 배우들이 조금 불편했을 것입니다.
정: 장률 감독님의 영화 제목을 듣고 제가 느꼈던 점은 건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춘몽>은 의외라는 느낌마저도 들었습니다. 영화 연출을 하기 이전에 소설가이셨던 장률 감독님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문학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춘몽, 봄의 꿈은 사람마다 다른 뉘앙스로 다가올 터인데, 제목을 짓게 된 연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장: 앞의 제목들이 딱딱했나요? 늙어서 그런가.(웃음) ‘춘몽’이라 하면 정서상에서 소설보다는 시와 가깝지 않겠는가 합니다. 소설과 영화의 관계를 싫어하는 쪽입니다. 영화와 시는 항상 애인 같으면 좋겠고 영화와 소설은 사돈처럼 멀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소설은 스토리로 끌고 가기 때문에 그 힘이 커서 영화가 스토리에 묻혀버릴 수 있는데, 시는 리듬으로 가지 않습니까. 중국에서는 춘몽을 봄날의 꿈이라고 그 글자처럼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야한 꿈이라고 이해합니다. ‘일장춘몽’이라 해야 한국의 춘몽과 같은 뜻이 됩니다. 중국에서 개봉하면 이상하게 영화가 잘 될 수도 있습니다.(웃음)
정: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흑백으로 찍혀있습니다. 장률 감독님의 영화 중에서 전체 영화를 흑백으로 찍었던 것은 이 춘몽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리가 살았던 시간을 모두 흑백으로 진행하고 예리가 죽고 나자 영화가 색을 얻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조금 더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면 예리가 죽고 산 시간을 가운데다 놓고 영정사진을 기점으로 누군가가 죽은 시간을 회고하고 기억하는 흑백으로서의 시간, 영화 전체의 흑백을 예리가 죽었던 시간을 회고하는 시간으로 둔 다음 컬러를 예리가 죽고 난 다음 죽은 예리가 꾸는 꿈과 같은 느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컬러의 장면들은 색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정사진을 보여준 다음 화면은 갑자기 처음으로 초점이 나간 것처럼 흐릿하게 보입니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세 사람을 본 다음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는데, 누군가의 환상이거나 꿈처럼 보입니다. 주영이 고양이와 함께 집 앞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수색역 옆의 고압 철탑의 익준과 종빈을 보여주고 종범을 찾으러 가자며 끝납니다. 예리가 꾸는 꿈처럼 보이게 합니다. 현실과 꿈이라 나누기도, 시간으로 나누기도 애매합니다. 질감도 매우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적어도 이 영화의 전체를 흑백으로 찍은 의도, 어떤 감정을 전달하기를 원한 것인지 질문 드려보고자 합니다.
장: 어디서부터 꿈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지 각자의 해석이 다 다릅니다. 색은 연출의 한 부분인데, 흑백으로 찍자고 처음부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고 수색역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면 칼라로 생각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공간의 질감이 흑백과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정서상으로 흑백이 더 맞는다고 봅니다.
정: 말하자면 수색역이라는 장소가 주는 기분이 흑백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예리를 중심으로 하여 세 남자와 주영이 주막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영화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다시 이 영화를 생각하면 예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범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범이 인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익준과 종빈이 어딘가 가버린 정범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예리에서 시작하지 않고 어딘가 가버린 정범으로 끝날 때에 그냥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북한에서 먼 길을 거쳐 남한에 도착한 사람이라 생각을 한다면 이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범으로 시작해서 정범으로 끝나는 데에 어떠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 이 세 사람이 어떻게 보면 공동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크게 말하면 예리까지도 포함해서요. 그런데 그 세 사람들은 모두 수색역이 고향이 아니지만, 정범을 제외한 두 명은 거리상 가깝습니다. 정범은 3·8선을 넘어온 제일 먼 관계입니다. 항상 영화 안에서 그 친구는 혼자 행동하지 않습니까. 이 두 사람(익준, 종빈)은 항상 이 친구(정범)를 찾고. 그런 점에서 제일 먼 거리의 사람부터 시작하면 어떻겠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리는 항상 이 세 사람을 같이 찾지 않습니까. 그런 관계에서 편집이 그렇게 나왔고 제 스스로도 조금 슬프지만, 지리적으로 멀고 혼자 행동하기에 더 찾아야하고 더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 영화를 보면 예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머니가 어떤 병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어떤 연유로 남한에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빈은 익준이나 종범보다도 더 외곽에 있는 듯한 느낌이고, 덜 설명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종빈에 대해서 설명을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장: 설정을 할 때 부모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굳이 그것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대사 안에 사람을 넣었습니다. 실제 윤종빈 배우의 아버지가 경찰이고 일찍 돌아가셨고요. 그래서 그 설정으로 가는 것이 어떤가했고 그 설정 안에서 어리바리한 종빈의 캐릭터가 자기의 출신을 그렇게 진실하게 이야기하겠는가 해서 그렇게 처리했습니다.
정: 영화 속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은 주영일 것입니다. 백두산 이야기를 하면서 무슨 이유에서 인지 자살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시종일관 축구공을 차면서 길을 돌아다니고 예리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또한 그녀는 시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컬러 장면을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주영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매우 괴리합니다. 오토바이를 산 위까지 끌고 올라간 다음 알 수 없는 미소를 남기고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정보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하게 남는 주영을 통해서 예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 무슨 영화를 그렇게 자세히 봅니까.(웃음) 실제로 삶에서 주영과 같은 사람들이 꽤 있고 알아보려고 해도 계속 궁금해집니다. 그런 주영이 춘몽에 들어오게 되는 계기는 간단합니다. 세 명의 친구만 있으면 예리가 너무 막막할 테니 주영과 같은 시인 친구가 등장하면 어떻겠는가 생각했습니다. 보통 시인이라 하면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들은 독특한 행동이나 취미를 갖고 있는데, 20대 전후의 여학생이 축구를 하고 다니는 것도 실생활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주영이라는 배우가 축구를 아주 잘 하기도 하고 오토바이도 그 친구 오토바이입니다. 현장에 올 때도 그 오토바이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동성애가 있는데, 사람은 똑같은 것이지 않습니까. 시인을 보는 것처럼 저쪽인지 궁금해지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이 친구의 등장으로 예리란 캐릭터가 조금 더 풍부해질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예리에게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되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물어보니 이왕이면 주영을 선택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정: 예리 주변에 계속 세 남자가 머물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 세 남자의 애인이라기보다는 어머니 같고 그들을 보살핀다는 생각이 큽니다. 겉보기에는 예리가 마음에 들어 포장마차에 계속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주막의 이름이 고향인 것을 감안한다면 고향처럼 계속 다시 오고 싶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 남자에게 예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장: 예리는 예리입니다.(웃음) 어떤 정서냐고 물어보면 동네의 정서이자 점점 없어지는 기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관심을 갖고 서로 도와주는 정서가 점점 이 사회에서 없어지는 것 같은데, 수색에는 아직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정서가 공간의 지배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친구들은 고향이 없는 친구들로 고향 주막에 항상 찾아오지 않습니까. 예리도 연기할 때 어머니 정서로 연기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률 감독님께서 중국에서 만든 영화와 남한에서 만든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중국에서 만든 영화의 카메라는 모두 요지부동인 것처럼 서있는 반면에 남한에 와서 찍은 영화는 카메라가 시종일관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주>(2014)에서는 그것이 분명하지 않았는데, <춘몽>에서는 목욕탕 씬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장면은 핸드헬드 방식의 방식으로 찍었습니다. 중국에서의 멈춰선 카메라가 경직된 느낌과 안정된 느낌을 동시에 들게 한다면 남한의 핸드헬드 방식은 자유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무언가 기댈 때가 없어서 불안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장: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은 당연히 그 공간과 그 인물에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 감독의 삶이 변한 것과 같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었고요. 카메라가 고정해 있으면 엄숙하고 고집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들고 찍으면 그 인물과 공간에 따라가고 녹아들어야 합니다. 교만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중국에서 자라왔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중국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은 이 사회, 이 나라, 이 땅의 정서를 찾는 것입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조금 더 다가가고 불안하면 멀리 가는 것처럼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정서가 카메라와 같았습니다. 5년만 시간을 더 준다면 한번 고정해서 찍어보겠습니다.
정: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많은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시종일관 웃음을 짓게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문득 돌아서면 이 영화 전체가 예리가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춘몽>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한 젊은 여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여자의 일장춘몽과도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도 죽음을 많이 다뤄왔던 장률 감독님께 죽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장: 그렇게 말씀하니 저도 왜 그렇게 많이 죽음을 생각했는지... 오래 살고 싶은 쪽입니다.(웃음) 살고 싶으면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떤 나이가 되면 죽음이 피부로 다가오게 됩니다. 한명 한명 다 떠나지 않습니까. 감정이 깊어지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죽음은 일상입니다. 그 일상을 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예리가 이 세상을 떠난 다는 것을 앞에서 많이 심어줬는데, 전봇대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으려 하는 것은 계속 살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어차피 가는 방향은 죽음이지 않습니까. 살아있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살지 않습니까. 끈질기게 생명의 끈을 쥐는 모습을 볼 때면 감동이 옵니다. 그래서 죽음을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합니다. 예리의 대사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그냥 이렇게 삽시다, 하하.
관객: 중간에 말을 못하시던 아버지가 종빈하고 예리에게 말을 하게 되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장: 환청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거나 말을 못하고 있어도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정: 감독님께서 생각이 그러하다면 제 생각을 덧붙여보겠습니다. 환청은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자기가 하는 대답입니다. 그래서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종빈이 한편으로 ‘내가 예리에게 어울릴 리가 없구나’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합니다.
관객: 저는 의상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세 남자의 의상이 바뀌지 않고 동일한데, 다른 날에 찍은 씬인데도 이 세 남자만큼은 비슷한 의상으로 입혀도 괜찮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장: 조금씩 변화는 있습니다. 많은 영화들처럼 의상을 많이 바꾸지는 않았는데, 왜 그런가하면 어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의상을 많이 바꾸지 않고 거의 며칠씩 입기 때문입니다.
정: 역시 제 생각을 덧붙이자면, 저는 그것이 가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옷을 바꿔 입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난하다는 것이지요. 풍요로움을 갖지 못해서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관객: 주영이 예리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동선이 너무 아름다워서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거울 속으로 보이는 컷이 다음에 바로 장난감 총 컷으로 이어지는데, 그 사이에 무언가 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나리오 상으로는 어떻게 되어있었는지 실제로 그 사이에 찍은 장면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장: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지 않았고 편집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주영의 사랑고백은 아름다운 감정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 현실 공간 안에 거울이 있습니다. 거울 안에서는 현실과 똑같은 또 하나가 더 발생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거울에서 찍으면 현실에서 찍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정서상으로 더 다가옵니다. 거울은 현실을 비춰주는 것이고 그 안에서는 우리의 정서가 복합적으로 옵니다. 그리고 거울에서 거울로 컷을 넘긴 것은 아름다운 리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총도 있는데, 이것을 대조하면서 거울이 우리 안의 일상을 다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경주는 어떤 느낌인지 수색역은 어떤 느낌인지 가봤는데, 영화와 잘 매치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외적인 질문인데, 다음 영화는 어느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싶으신지,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장: 실제 계획은 크게 없습니다. 날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사람이라.(웃음) 다만 조건이 된다면 끝까지 논의하다가 제 감정이 든 공간을 이야기 안에다 넣습니다. 공간이 제게는 너무 중요하고 어떤 배우와 그 공간의 질감이 맞다하면 그때 찾지 않겠는가 합니다.
관객: 감독의 손을 떠난 다음에는 관객의 몫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어떻게 보면 영화가 블랙 코미디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감독님께서는 의도하지 않으셨으나 합니다.
장: 영화는 감독의 취향으로 만들게 됩니다. 관객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실생활에서 웃는 사람이 있고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을 다 맞출 순 없고 감독의 정서로 성실하게 앞으로 가다보면 어떤 관객은 받아들이고 어떤 관객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모든 관객이 똑같은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코미디 쪽으로 말씀해주니 기쁘고요. 이번 영화는 재밌게 만들자는 생각보다는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말과 언행을 따라 그 공간에서 품어 나오는 정서들인 것 같습니다. 거칠게 큰 소리로 웃고 울고 하는 것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 동네의 적막과 슬픔이 그 공간에 흐르는 것 같습니다. 웃음과 거친 것과 적막과 슬픔이 섞여 있으니 그것이 제게 매력이 있었습니다.
관객: 배우의 이름을 배역의 이름으로 끌고 오셨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장: <춘몽>은 제가 찍은 영화들 중에서도 인물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에는 이름을 만드는데, 제가 원래 이름을 잘 못 짓습니다. 그래서 저 편하자고 본명으로 할 수 있는지 배우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 친구들 입장에서 자기 이름으로 부르면 감정이 더 진실합니다. 배우 자신과 배우의 역할이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과정을 조금 수월한 방법으로 한 것입니다.
정: 주영은 예리를 찾아와서 갑자기 ‘시에요, 언니가.’ 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이 두 가지 맥락으로 읽혔습니다. 하나는 예리라는 인물에 대해서 장률 감독님께서 가져온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리가 이 영화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시 같은 ‘인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시 같은 인물, 시로서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연변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약간 과장한다면 연변에서 남한으로 온 중년의 남자인 장률 감독님께서 남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시처럼 읽혔습니다. 시는 가냘프지만, 종종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죠. 혹은 감독님께서 오늘도 몇 번 시는 리듬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장률 감독님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담백하고 직접적으로 즉 연변사람으로서 자신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가장 투명하게 투영된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이 <춘몽>이라는 영화는 감독님 자신에게 어떤 영화였습니까?
장: 한글로 좋아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립다’입니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앞의 방향을 보면서 다가가지만, ‘그립다’ 이 단어가 너무 와 닿았습니다. 수색역도 지금은 절반정도 허물어져 가고 있는데, 그런 동네들은 몇 년 지나면 없어집니다. 장소 헌팅을 할 때 허물어지는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도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서가 더 있는 것이 어떻겠는 가해서 카메라를 절대 허물어지는 곳으로 대지 말자고 정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술 창작이라는 것은 다 수단이지 않습니까. 한국의 윤동주 시인 시 중에 제일 좋아하는 한 구절은 ‘서시’의 ‘별들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입니다. 별과 죽어가는, 사라지는 것. 별의 감정은 사라지는데, 우리의 시선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더 두고 싶었습니다.
정: 이 영화를 다시금 느껴보는 것은 물론 한 번 더 보는 것이겠지만, 오기 전에 수색역을 한 번 더 들려보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귀한 말씀을 들려주신 장률 감독님께 박수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인디토크를 마치면서 장률 감독의 <춘몽>이 우리내의 삶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수식이나 복잡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유유히 흘러가는 우리들의 삶처럼 오늘의 한 조각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사라져가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것을 바라보고자 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기억들로 이 ‘춘몽’을 채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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