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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치열한 삶이 낳은 치열한 영화 <산다>인디토크(GV)

by indiespace_은 2015. 5. 29.

치열한 삶이 낳은 치열한 영화<산다>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5월 23일(토) 오후 2

참석: 박정범 감독, 이병헌 감독

진행: 허남웅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도경 님의 글입니다.


4년 전 스스로 배우로도 출연한 영화 <무산일기>가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던 박정범 감독. 그의 신작이 개봉했다. 소수자의 거친 삶을 다루는 영화의 주제 의식도, 주인공으로 나서서 그 힘겨운 삶을 연기하는 연출도 그대로였다. 근래 개봉한 <스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병헌 감독과 함께한 인디토크에서 완성본은 5시간에 달한다는 치열한 영화 <산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허남웅 평론가(이하 허): 이병헌 감독님은 <산다> 어떻게 보셨나요?


이병헌 감독(이하 이): 이번에 2번째 보는 거고요. 시사회 때 보고 지금 또 봤습니다. <산다>라는 제목 자체가 <무산일기> 영화에 갖다 붙여도 무관할 것 같아요.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서 치열한 감정을 느꼈고 영화를 보고 나서 온 몸에 상처가 난 듯한 느낌이었어요. 보기만 해도 춥잖아요.

 

허: <산다>라는 제목이 참 간략하지만 관객 분들은 앞뒤에 뭔가 덧붙이고 싶을 거예요. 처음부터 <산다>라는 제목을 생각하신 건지, 그리고 이 시나리오가 50고까지 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길게 갈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박정범 감독(이하 박):  같이 사는 배우 친구가 자살을 하고 나서 그 친구를 어떻게 떠나 보내야 하는지 생각했어요. 그 때 공황장애가 와서, 왜 그렇게 된 건지 스스로 찾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해서 만든 거예요. 원래 이야기는 자살하려고 하는 형을 말리는 동생의 이야기였습니다. 쓰다 보니 계속 바뀌는 거죠. ‘산다는 게 뭐지’라는 생각으로 가서 <산다>가 됐고요. 정확하게 50고는 아닌데 50번 정도 고쳤어요. 제목도 바뀌고. 그런데 주제는 비슷했어요.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해보는.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서 이렇게 길어진 것 같아요.


허:  이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는 3시간 15분이었잖아요, 지금은 줄어든 버전이죠. 물리적 시간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게, ‘산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나왔듯이 고통의 시간이 아닐까 하거든요. 감독님 입장에서는 상영 시간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영화를 찍기 전에 이미 쓴 시나리오가 너무 긴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게 만들어지는 게 가능할까 생각했어요. 몇 년간 기다린 이유는 투자사가 없어서고요. 다행히 전주 영화제에서 만들 수 있게 해주었어요. 그 기간 동안 계속 고친 거죠. 그렇다고 시간을 줄여서 고치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왜냐면 앞으로 이렇게 영화를 찍을 기회가 없다는 걸 저 역시 알고 있었어요. 원 영화는 5시간 정도 나오는데 그 정도 길이 영화를 평생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년간 고치면서 인물이 각자 살아남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거죠. 이 욕심이 사실 잘못된 거였어요. 아, 이게 과유불급이구나, 10년 후 감독판 DVD로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허: 이병헌 감독님은 연출자 입장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나요?


이: 박정범 감독님 영화에는 워낙 그런 장면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가볍게 엔딩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어요. 두 가지 설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로등하고 문을 마지막에 달아두는 부분이요. 저는 가로등에서 감독님이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지 대충은 알겠는데 문은 자기 돈 받았으니까 영화적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하신 건지, 그 지점이 궁금했어요.


박:  많은 사람들이 가로등에서 끝내지 왜 또 에필로그를 달아줬냐는 얘기를 꽤 하셨어요. 문을 다는 것을 앞으로 보내는 편집을 얘기하기도 하셨고요. 3시간 버전에서의 앞뒤 구조는 누군가의 문을 떼서 자기의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만 남의 행복을 빼앗아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이 남자의 며칠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이에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로등은 사람을 위해 다는 거잖아요. 빛을 달아 길이 보이게 하는 것이 저에겐 은유적인 느낌이었고, 그 길에 빛을 비추고 나서 깨달은 거죠. 내가 하나를 지켜주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다 보니 반성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문을 뗀 기억이 난 거죠. ‘그 친구는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서 문을 달아주게 되는 거죠. 저는 그런 순간이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잘못을 반성하는 것. 그 지점이 아주 중요하고 이 영화의 에필로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허: 이 영화가 주인공이 정철이지만 명훈이나 수연이라든지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아 보이는데요, 어떤 부분에서 눈물이 났고 어떤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됐는지 이병헌 감독님께 궁금하네요.


이: 저는 익숙한 감정이 하나에게 있었어요. 아빠라고 잘못 알고 찾아가는 지점에서 정철이와 하나의 뒷모습. 그리고 ‘삼촌 가자’ 했을 때의 목소리가 연기가 아닌 것 같았고 저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딸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를 두 번 보면서 그 장면에서 다 울었어요.


허: 그리고 하나에게 귀를 막으라고 계속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철이 욕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하나를 연기한 배우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궁금합니다.


박: 대본에는 귀 막으라는 대사가 없었는데, 촬영하면서 이 친구가 이 영화를 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이가 연기를 하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을까봐. 그래서 영화 내용은 설명 안하고, ‘지금 너의 아버지가 아프다고 생각해봐’ 하면서 다른 내용으로 장면을 연기하게 시켰어요. 폭력적인 장면에서도 귀를 막으라고 하는 게 툭 튀어나온 말이었어요. 귀 막으라는 건 제가 조카가 다섯 있는데 안 좋은 것은 안 보여주고 싶잖아요. 그런 감정이었죠.

 

허: <산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눈에 익지 않은 반면 상대적으로 박희본 배우는 익숙한 배우에요. 튄다는 느낌인데 어떤 목적으로 박희본 배우님을 캐스팅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박: 박희본 배우하고 이은우 배우는 많은 연기 경험이 있는 분이죠. 외에 배우 분들도 독립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분들입니다. 오디션을 안 보고 뽑는 분들은 그 분들의 작품을 다 봤기 때문인 거죠. ‘이 영화에 맞겠다’해서 뽑았어요. 그리고 희본 씨가 사실은 시트콤 류의 연기들을 많이 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이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희본 씨의 이미지는 차가움이었어요. 차가움과 발랄함의 이중성이 이 영화에 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현장에서도 편안하게 연기하셔서 NG가 안 난 배우들 중 한 분이었어요.


허: NG는 주로 어느 부분에서 나나요?


박: 감독의 욕심이죠. 제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있잖아요. 현장 가면 그 그림대로 나오는 경우는 없고 그 갭을 줄여나가는데 어느 선에서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근접한 것이 이건가 하고 테이크를 많이 가게 돼요. 사실 그렇게 한 20-30테이크 정도 가다 보면 모두가 쓰러질 것 같은 순간이 와요. 그것을 극복하면 이상한 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거기까지 갔던 컷들이 몇 개 있어요.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끝나고 생각을 해보니 이런 분들을 다시 못 만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 모든 감독님들이 영화를 찍고 나서 드는 감정인 것 같아요. 이병헌 감독님이 보기에 박정범 감독님의 연기는 어떤가요?


이: 저는 배우로서도 감독님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곡괭이질과 도끼질을 너무 잘하시잖아요. 뭐죠? (웃음) 밝혀주세요.


박: 단편 영화를 혼자 찍을 때, 아시겠지만 독립영화는 혼자 다해야 하잖아요. 적으면 1-2달, 길면 3-4달 막노동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 기술이 없으니까 닥치는 대로 가서 하는 거예요.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청소만 하고 짐만 나르고 이러면서 배우는 거죠. 문짝 들고 가는 건 자신 있는 게 주상복합 아파트들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갖다가 끼우는 거거든요. 그 일을 꽤 했었어요. 그래서 지고 걷는 것을 잘 할 줄 압니다. (웃음)


이: 그런 것들에 있어서 영화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직접 경험해 보시고 찍어서 영화의 깊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허:  감독님은 직접 연기를 하면서 매 장면을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현장에서 객관화할 수 있는 과정이 있었나요?


박:  제가 ‘OK’를 말로 하긴 하지만 이미 현장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직관적으로 그 장면이 찍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OK가 나오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암묵적 동의가 계속 이뤄지는 거죠. 제가 연기하면서 OK가 아닌데 너무 힘들어서 OK를 주고 넘어간 게 몇 개 있어요. 부화기 던지고 알을 깨는 장면 있잖아요. 보시면 제가 대사를 잘못해요. 버벅거리면서 말을 돌리는데 다시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때릴 때는 진짜 때리잖아요. 연기를 하고 나면 컷하고 나서 심장이 막 뛰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 장면이랑 누나를 방에 가두는 장면. 이 두 장면들이 테이크를 3-4번 밖에 못 갔어요. 다른 장면들은 20번 정도 갔거든요. 이미 ‘컷’하고 촬영감독을 봤는데 정직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으면 다시 가라는 얘깁니다. (웃음) 그리고 씩 웃고 있으면 정말 좋구나, 그런 거죠. 스태프들도 알아요. 배우들도 자기가 모자라면 다시 가자고 하고, 그런 가족적인 분위기의 현장이었습니다.

   

관객: 강사장 캐릭터를 실제 아버님께서 연기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여기 나오는 캐릭터들이 다들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는데 강사장도 마찬가지로 비전문배우가 연기하기엔 어려운 감정들을 표현해야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를 캐스팅할 때 어떤 계기로 캐스팅하셨고 디렉팅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박: 제 단편영화 때부터 같이 하셨어요. <무산일기> 때도요. 저희 아버지가 강원도 된장공장에서 혼자 일을 해요. 전문 배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외모가 영화적으로 맞겠다고 생각해서 같이했습니다. <산다>에서는 의도적으로 분량이 많은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왜냐면 현장에 아버지가 있으면 여러모로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거든요. 그리고 아버지랑 같이 영화를 만드는 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도 짧은 연기라도 같이 연기하는 장면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허: 이병헌 감독님은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연기와 이미지 중에 어떤 점을 더 우선에 두시나요? <스물>이나 <힘내세요 병헌씨>에서는 어땠나요?


이: <힘내세요 병헌씨>와 <스물>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힘내세요 병헌씨> 때는 제가 뭘 몰라서 다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 때문에, 연기 말고 이미지만 봤던 것 같아요. ‘되게 개성 있다, 저 인물을 모셔다가 내가 원하는 연기 톤은 내가 입히면 되니까’ 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접근을 했다가 고생한 기억이 있어요. (웃음) <스물> 때는 완전히 연기 쪽으로 오디션을 많이 봤어요. 정치적으로 엮인 것도 있긴 있었지만. (웃음) 변해가는 것 같아요, 작품 할 때마다.

  

허: 이병헌 감독님, 본인의 영화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이야기를 함께 하셨는데 이 시간 어떠셨나요?


이: 저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의 역할이었어요. (웃음) 그 뒤에 한 시간 반짜리 영화가 속편으로 개봉하면 어떨까,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영화 많이 봐주시면 빨리 개봉할 수 있을 거예요.


허: 이 영화 관련해서 GV, 인터뷰 등으로 바쁘게 보내고 계신데 촬영 당시보다 3kg 찌셨대요. 지금이 영화 찍을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할 수 있는, 그렇지만 예민한 시기인 것도 같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박: 글 쓰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고요. 매년 새로운 영화로 찾아 뵀으면 좋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4-5년 걸리더라고요. (웃음) 저는 우울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게 직업이니까 꾸준히 열심히 잘 찍겠습니다.


허: 이병헌 감독님도 차기작 들어갔나요?


이: 저는 4-5년은 아니고 2-3년이면 돼요. (웃음) 지금 작업하고 있습니다.

 


5시간의 영화를 3시간으로 압축한 감독님의 애환과 영화에 대한 애정을 두텁게 느낄 수 있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살기 힘든 세상에서 더 많은 관객들이 <산다>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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