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도 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공간으로의 초대

 <삼례>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6월 26일(일) 오후 2 30분 상영 후

참석: 이현정 감독, 김보라 배우

진행: 김희정 감독 (<설행_눈길을 걷다>, <청포도 사탕>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혜 님의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를 법한 지역 ‘삼례’. 영화 <삼례> 역시 친절하게 그 공간을 설명해주기보다는 낯설고 스산한 기운을 계속해서 유지한다. 그렇게 영화 포스터의 절벽 지층처럼 궁금증이 쌓여만 가고 있을 때, 이현정 감독과 김보라 배우가 들려주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김희정 감독(이하 진행): 개봉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갖게 된 감독님과 배우님의 소감을 먼저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현정 감독(이하 이): 어제 다른 극장에서 GV를 하고 왔는데, 영화를 좋게 생각해 주신 분들도 계셨고 처음엔 불편하게 생각했다가 나중에 여운이 남았다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렇게 다양하게 각자의 의견을 말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시간에도 관객 분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보라 배우(이하 김): 영화를 찍기 전에 희인이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걱정과는 달리 잘 나온 거 같아서 다행이에요.(웃음) 저는 학생 역할로 많은 분들에게 보여졌는데, 전혀 색다른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진행: 정말 색다른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저는 김보라 배우와 이전에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1)이라는 영화로 같이 작업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중학생 역할이었는데, 여기선 성인 역할에다가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라서 반갑고 괜히 뿌듯하더라고요.(웃음) 전주국제영화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영화를 만드셨는데, 제목을 ‘삼례’라고 하면서까지 이 공간을 택한 이유를 많이들 질문하실 것 같아요. 어디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어왔는지요?


이: 저는 이번 작품이 장편으로 3번째인데 개봉은 <삼례>가 처음이에요. 첫 번째는 <원시림>(2012)이었고 두 번째 작품은 <용문>(2013)이었어요. 제목만 들어도 느낌이 오시죠? 저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한국적인 것들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어떤 날것들이나 잊히고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작업을 해왔습니다. 우연히 삼례에 갔다가 그 공간의 묘한 기운에 제가 빠져들었어요. 영화에서 개장에 닭머리 넣는 장면이 있는데, 일부러 설정한 장면이 아니에요. 그 동네에서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행위였어요. 그리고 그 작은 장터에 닭집이 정말 많았어요. 대한민국 어느 땅에서도 못 보았던 무언가 특이한 곳이란 생각에 더 알아보니 이곳이 예전에는 동학 의병들이 집결해서 싸우던 정신적인 공간이기도 했고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쌀을 저장해서 일본으로 싣고 가는 곳이어서 돈이 모이는 부유한 동네이기도 했어요. 지금은 아무도 모르고 잊혀져가는 이 공간에 다양한 결들이 있다고 느껴 영화의 공간으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행: 저도 영화를 보고 삼례를 군산과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포구가 생기고 일본에 보내지는 엄청난 양의 쌀들이 모이면서 엄청난 부자 동네가 되었고, 쌀 가지고 도박하는 미두가 성행하던 도시였다고 해요. 삼례도 그와 비슷한 곳이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이: 극 중 승우가 “여기 이렇게 좁은 곳에 어떻게 배가 들어오지?”라고 말하는데, 지금 그 곳에는 배가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에요. 새만금 사업으로 좁아졌어요. 


진행: 김보라 배우는 촬영할 때 감독님이랑 캐릭터의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하네요.


김: 차분하고 섬세하게 알려주셨어요. 연기를 자유롭게 하길 원하셔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촬영했어요. 사전에 리허설을 정말 많이 했는데, 전 정말 좋았어요. 리허설을 여러 번 하니까 연기도 다양한 면이 나왔고, 특히 제가 리허설 때 장난치면서 많이 했었거든요. 감독님이 오히려 그런 부분이 희인이 다운 것 같으니 장난치듯이 연기하는 걸 적극 추천해주셨어요. 닭집 앞에서 아줌마를 부르는 장면도 제가 처음에 리허설 때 약간 장난기를 넣어서 연기를 했던 건데, 그런 부분이 재밌으니 조금 더 살려보았으면 하셨어요.


진행: 그래서 상당히 살아있는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리허설 덕분인 것 같기도 하고 김보라 배우가 가지고 있는 청량함 같기도 해요. 



관객: 기차에서 할머니가 달걀을 먹는 장면을 넣은 의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전주국제영화제 때도 나온 질문이에요. 그 당시 질문하셨던 분은 자신의 해석도 같이 곁들여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저는 솔직히 기차 안에서 할머니들께서 삶은 달걀을 많이 드시니까 그게 일상적인 풍경 중에 하나란 생각에 넣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질문하셨던 분께서는 영화에서 알이나 달걀이 많이 등장하고 ‘데미안’에서도 ‘알을 깨고 궁극적인 이상으로 가자’는 내용이 나오니 할머니가 삶은 달걀을 먹는 순간 그 전까지의 몽환적인 삼례의 이야기가 할머니의 입 속으로 쏙 들어갔다고 보셨더라고요. 우리나라에는 마고할미 설화가 있는데, 그와 연상해서 해석하신 분도 계셨어요. 이렇게 좋은 해석이 있다고 스태프에게 얘기하니까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을 하시더라고요.


진행: 아무래도 그 장면이 감정이 굉장히 고조된 장면이다 보니 질문이 나올 법 했어요. 승우가 울 것 같은 표정 다음에 바로 그 장면이 나오는데, 달걀을 먹는 컷이 정말 평화로워보였거든요. 정말 다큐적이면서도 리얼한 컷인데, 극적인 장면과 다큐적인 장면이 충돌하는 지점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처음에 검은 차가 따라가다 멈추다가 하는데 영화에서는 그 검은 차가 무엇인지 제대로 명확히 설명이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이: 승우는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이잖아요. 서울 사람이 어떤 날것의 고장에 가면 자기도 모르게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불확실함을 느껴요. 모르는 곳을 걷는다는 의식이 있었을 텐데, 거기다 검은 차가 뒤에 따라오니깐 더 불안함을 느끼게 되죠. 저 역시 삼례에 처음 내렸을 때 낯선 곳이라 정말 불안했었고 실제로 검은 차가 따라왔었어요. 뉴스를 보면 작은 마을이 범죄의 소굴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를테면 삼례에서도 ‘나라슈퍼’ 사건이 있었어요. 무의식 속에 들어있는 우리들의 두려움이 있잖아요. 꼭 위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관객: 영화에서 희인의 직업이나 나이가 구체적으로 안 나와서 20대 초반인지 10대 후반인지 짐작만 했어요. 그리고 엔딩을 미루어 보았을 때,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신 건지 아니면 단지 삼례에서 겪었던 상황을 그리워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이: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로 설정 자체도 막연하게 잡았어요. 사람마다 변화의 시기가 각기 다르잖아요. 청소년과 성인을 구분 짓는 법적인 연령 기준에 맞춰 변화하기 보다는 사람마다 어른이 되는 나이가 있고 변화의 시점이 있으니 희인이 역시 그런 변화의 시기를 겪는 나이로 설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감정이 사랑보다는 그리움에 더 가깝다고 느껴요. 


진행: 공간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영화뿐만 아니라 포스터의 배경이기도 한 저 곳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디였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그곳은 변산반도 바닷가 앞에 붙어있는 절벽이에요. 이태백이 술 마시던 강의 이름 ‘채석강’을 땄다고 해요. 아름답지만, 정말 위험한 곳이기도 해요. 허가를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양경찰이 워낙 위험한 곳이라고 막아서 못 찍을 때도 있었어요. 촬영한 동굴 같은 공간은 파도가 만들어 낸 움푹 파인 곳이에요. 자궁 같은 느낌도 들어서 희인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나의 아픔을 처음으로 아저씨에게 솔직하게 보여준 곳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관객: 희인이는 왜 휴대전화가 없는 건가요?


이: 휴대전화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웃음) 희인이는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로 만들려고 했어요. 승우가 삼례에 내려가면서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그 환상 속에서 희인이를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의도도 잠시 생각했거든요. 이 사람이 진짜 실존인물인가 아닌가, 그런 의미로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희인이는 휴대폰과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승우의 내재된 의식에서 자주 개기일식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이유를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김보라 배우는 극 중에서 통기타를 들고 ‘라구요’를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다소 어설퍼 보였는데, 의도한 건지 실제로는 노래를 잘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개기일식 장면은 삼례가 작은 공간이지만, 그 공간을 빌어 사람들 전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작은 공간에서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 같고 위험이 도사리는 것 같고. 승우는 조금 배운 사람으로 나오잖아요. 그렇지만 사람은 배우면 배울수록 날것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어떤 근원적인 에너지를 상실해가면서 점점 나약해지는 것 같아요. 배워서 더 잘해보려는 욕심들이 생기잖아요. 승우가 5일장을 막 돌아다니면서 접하려고 담으려고 하나 실상은 서울에도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에 들어가듯이 그곳에 같이 어울리지 못하죠.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라고 폭넓게 확장을 시키고 싶었고 시간의 결이나 시간이 굉장히 뒤틀려 있는 삼례라는 공간에서 그걸 들여다보며 느낄 수 있길 바랐어요. 시간과 공간을 무효화 시킬 수 있는 어떤 우주적인 이미지로 달걀을 사용했어요. 노란 달걀과 태양계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변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우주라는 게 우리가 100% 다 알 수 없지만, 시간과 공간이 지구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곳이잖아요. 하지만 그게 상상도 아니고 SF도 아니고 당장 우주선 타고 나가면 바로 느낄 수 있는 곳이죠. 그래서 차용해서 영화에 여러 가지 결 중의 하나로 넣었습니다.


김: 시나리오 상에도 그 장면은 ‘어설프게 노래한다’라고 나와 있었어요. 사실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작품을 통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열심히 배웠는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깐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냥 안 되겠다 딩가딩가 쳤는데, 오히려 희인이는 실수해도 더 당당하게 칠 것 같아서 부끄럼 없이 더 당당하게 쳤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노래를 잘 못해요.(웃음)


진행: 외국에 나가도 익숙한 패스트푸드점에 가듯이 먹거리에 관련해서는 보수적인 것들도 많고 사실 용기가 없는 거죠. 다른 문화권에 바로 진입하기 보다는 내가 익숙한 것으로 거쳐 가게 되는 건데, 사실 승우가 백숙을 파는 식당에 가게 되는 것도 희인이를 통해서인데, 또 그 곳으로만 가죠.(웃음)


관객: 남자 주인공이 모텔에서 간혹 밖을 쳐다보면 건너편이 보이는데, 그 장면이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장면을 넣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그 모텔이 삼례역에서 내리면 딱 보이는 곳이에요. 네온사인 불이 1초마다 번쩍번쩍 바뀌고 되게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사실 영화에서 뜬금없는 곳과 장소들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저는 그 뜬금없음과 우연과 실수 등 그런 것을 옹호하는 사람이에요. 그것들이 사람들의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일종의 키라고 생각해요. 프로파일러나 경찰이 조사할 때 사람들의 눈빛이나 손짓 등 부수적인 요소를 보고 진실을 더 이해할 때가 있잖아요. 제가 언론사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런 일들이 우연 같은데, 실제로 일어나거든요. 어떤 분은 승우의 성적 심리를 묘사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 건너편에 그런 서비스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진행: 사실 그렇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시나리오로 쓰면 ‘말이 안 된다’고 하거든요. 현실이 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긴 하죠.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렇게 좋은 질문들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시니까 그러길 바라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중1 때 데미안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과제를 받고 그 당시에 정말 어려워했던 기억이 나요. 중1은 이거 다 알 수 있다는 건가, 하며 고민 끝에 모르겠다고 한 줄 써서 냈어요. 그런데 그 뒤로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자꾸 그 순간이 생각나고 저를 괴롭히더라고요. 그러다 내용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지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더라도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를 수가 있어요.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 궁금증을 자아내고 호기심을 강하게 유발시키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 분들께서 내가 본 <삼례>는 이러했다고 본인의 생각과 함께 주변 분들에게 <삼례>를 많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끊임없는 관객의 질문은 아마 영화를 더욱 이해하고자 각자가 느꼈던 감정을 서슴없이 말하는 과정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낯선 곳으로의 초대를 이끌어준 <삼례>처럼 우리들도 각자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낯선 두려움에 한 번 다가가 보는 시도를 해보았으면 한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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