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풍경의 얼굴들  인디포럼 월례비행 <얼굴들>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3월 21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강현 감독ㅣ배우 박종환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마리솔 님의 글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얼굴은 현재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역사와 미래가 담겨있다. 인물들의 시간은 제각기 흐르지만 하나의 풍경으로서 연결된다. 3월의 월례비행은 이강현 감독과 박종환 배우 그리고 정지혜 평론가가 함께했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진행): <얼굴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존 카사베츠의 <얼굴들>(1968)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두 영화가 얼굴을 다루는 방식에 다름이 존재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극단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강현 감독의 <얼굴들>은 훨씬 인물의 얼굴 혹은 인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얼굴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강현 감독(이하 이강현): 존 카사베츠의 <얼굴들>과 같은 제목을 썼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그냥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카사베츠를 좋아하는데, 단지 제목이 같다는 것 말고는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상관없을 것 같았습니다. 얼굴이라는 것은 항상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영화는 사람과 얼굴을 담는 매체이고, 어떤 단어가 가질 수 있는 쓰임새는 무한합니다. <얼굴들>이라는 영화에서 제가 사람의 에너지를 담고자 한 방식은 카사베츠와는 특히 다른 부분입니다.

 

진행: <얼굴들>의 영문 제목은 <Possible faces>, 그러니까 가능한 얼굴들이라는 뜻인데, 국문 제목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국문 제목은 '얼굴들'이지만 영문 제목에서는 그 앞에 가능함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상상의 가능성들을 열어준 것 같은데요, ‘가능한 얼굴은 아직 우리가 확인하지 않은, 앞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미래의 얼굴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안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사가 있지만 영화가 전사(前史)를 계속 이야기하는 방식은 아니에요. ‘가능한 얼굴들이라는 말에서 미래가 숨어있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문 제목과 국문 제목의 차이가 영화의 방법론과도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강현: 영제가 처음부터 있던 건 아닙니다. 편집을 끝낼 무렵에 영제를 짓는데 가능한 얼굴들이라는 제목이 좀 후퇴한 느낌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편집을 마칠 무렵에 제가 이 후퇴한 느낌을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여러 관계들이 갖고 있는 한계들을 반영한 것 같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것에 있어 제가 느끼는 어려움도 반영한 것 같고요. ‘가능한이라는 것은 소극적으로는 한계 짓는 느낌이지만 동시에 희망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 이 영화의 한계가 있고 사람의 인생에도 한계가 있지만 그것들을 선언했을 때 갖게 되는 힘이 좋았습니다.

 

진행: 이 영화에는 중심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박종환 배우가 맡은 기선이라는 인물이 그렇습니다.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끈이 있는 인물이 기선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 혜진진수’, ‘현수는 사실상의 접점이 없고 각자의 시간이 병렬적으로 흐른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기선인데, 기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제작을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에서 샛길로 빠져 그 옆의 다른 인물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기선의 시작점을 한 줄로 요약해본다면 ‘처음에는 선생님이었던 학교직원. 어느 날 문득 수업 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을 궁금해 하게 된다.이 한 줄이었던 것 같아요. ‘얼굴들이라는 건 나의 외부에 있는 타인들인데, 타인에 대해 갖는 감정, 즉 미안함, 죄책감, 책임감 같은 것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이야기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다른 인물들이 나오긴 했지만 기선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감정들, 혹은 그것이 좌절된 이후의 행보들을 담으려 했습니다.

 






진행: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의 영화는 아닌데요, 그 중심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박종환 배우님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박종환 배우(이하 박종환): 어렵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습니다. 기선이 가지고 있는 모습들이 처음엔 낯설게 다가왔는데, 결국 기선의 감정은 혜진과 헤어지고 나서 갑자기 밀려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기선이 가지는 컨디션이나 기조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렵다기보다는 새로웠고 새로운 감정을 알아가며 도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진행: 기선에게 다층적인 면모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마 명확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대사에 있어서 주어를 생략하는 등의 모습들이 주저하고 불안정한 감정을 다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인물에 대한 설정이 따로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비교적 다른 인물, 예컨대 혜진이나 진수, 현수 같은 경우는 주저주저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은 없죠. 기선이라는 인물은 자기 외부의 것들에 대해 판단하는 감정들을 어쩔 줄 몰라 하는 인물이 맞습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 어떻게 할 지 모르겠는감정을 다루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박종환 배우님과 시나리오를 앞에 두고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이야기한 것이 인상 깊었는데요,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영화 외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나는 아직 모르겠고,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다고 이야기 했을 때 박종환 배우님이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때의 제 마음을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고 난 이후부터는 이 영화의 에너지가 아닌 다른 삶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될게요.”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구체적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혹은 장면에 대한 이야기는 술술 넘어가며 했던 것 같고 주로 서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진행: 네 명의 중심적인 인물들이 각자의 시간을 대면하는 방식에서 수많은 얼굴들이 등장합니다. 의도적으로 주변의 인물들 혹은 익명의 거리의 사람들, 크고 작게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에게 장면을 할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강현: 의도적이거나 계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에서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진행: 그러면 전체의 큰 그림을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는지, 아니면 각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모아 완성해 가는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애초에 큰 틀 정도만 구상하고 나머지는 시나리오 쓸 때 즈음에 만났던 사람들이나 상태, 날씨에 영향을 받습니다. 특정한 시나리오와 무관하게 평소에 이런저런 기억들을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 관계를 다룬 드라마라고 하지만서스펙트적인 요소가 있어 계속 심장이 빨리 뛰었던 것 같습니다영화를 전개하면서 중요한 이벤트들은 보여주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엔딩은 무엇을 표현하려 한 건지 궁금합니다. 정지혜 평론가님은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움직인 장면으로 어떤 장면을 꼽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엔딩을 보았을 때 어떤 시청각적인 감정들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더 말씀 드리자면 혜진은 가게를 완성했고, 진수는 성장을 해서 자기 길을 잘 가고 있고, 현수는 어딘가에서 잘 살 것 같아요. 그런데 기선은 자기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상태이고 그 이상의 답을 못 찾은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엔딩 장면 직전의 동네 풍경들, 세상의 풍경에 대해 여전히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진행: 저는 “20년 뒤에는 퇴직하지 않았을까?”라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보며 촌철살인이라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관객: 종종 풀샷으로 공간을 담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오는데, 인물을 담는 장면에 비해 크고 독특한 시각이 보였습니다. 공간을 크게 잡을 때 어떤 것을 중점으로 촬영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또 기선 역할은 감정이 크게 드러나는 편이 아닌데 다른 인물들과의 호흡 속에서 역할에 몰입할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박종환 배우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강현: 처음부터 크게 의도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찍어놓고 편집하다 보니 저도 공간을 담은 풀샷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공간을 많이 찍자고 이야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촬영할 때의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보면, 카메라를 인물 앞에 두려고 할 때 은연 중에 거부감을 느끼고 ‘좀 멀리 빼야겠는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의문입니다. 이전의 작업들에도 공간을 많이 담기는 했습니다. 일단 다음 작품부터는 풍경을 찍지 않으려고 합니다.

 

박종환: 상대 배우들이 다 다른 역할인데도 비슷한 느낌으로 와 닿았습니다. 어느 장면을 촬영하더라도 그 장면이 갖고 있는 힘이 느껴져서 감독님께서 이런 말이나 상황을 실제로 겪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배우가 상대배우로 느껴지기 보다는 감독님이 바라 본 그때 그 상황 속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진행: 몇 번 서사가 바뀌는 순간이 있습니다. 물론 감독님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넣었겠지만, 사실 그 장면이 없더라도 전개가 가능했을 텐데, 혼란을 주는 방식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집에서도 일종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의도적인 착각, 혼란들이 병렬되어 있는 인물들의 시간을 보며 과거, 현재, 미래가 계속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우회해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방식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이강현특별히 명시적으로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현재의 감각, 느낌들이 과거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장면이 다른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개별 장면에서의 느낌과 감정들을 조합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은데, 개별 장면의 감정이 충실히 전달이 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지금 말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 같아요.

 






진행: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가 현수가 누군가의 일기장 혹은 메모를 읽는 장면이었습니다. 특히나 마지막에 현상수배범과 남편의 얼굴이 비슷하다고 하는 장면은 저에게 해석의 가능성을 남겼습니다. 이 영화가 초반에 지역이나 공간이나 사람의 인상을 만들고는정형화된 인상이랄까요그 인상이 집단의 인상이 되는 것에 대해 계속 의심하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유형이나 틀을 깨뜨리거나 헤집어 놓으려고 하는 욕망이 느껴졌습니다

 

이강현: 그런 부분을 찍거나 쓸 때는 오히려 직관적이게 됩니다. 다른 부분들은 머리를 굴리고 어떻게 끼워 맞출지 고민하는데, 말씀하신 장면 같은 부분은 감정의 덩어리로 다가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말씀하셨듯이 삽입된, 빗대자면 영화 속에서 '괄호 쳐진' 부분들은 제가 주로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들, 가령 라디오 사연, 시청률 안 나올 때 하는 TV휴먼다큐, 아니면 SNS 같이 많이 볼 수 있는 것들이고, 거기서 받는 감정들이 작업할 때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평균적인 감성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균이 주는 이중적인 느낌들이 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제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들입니다. 지역마다 환경이 다르고 계급 차이도 있을 거고 여러 가지 편견들도 있을 테지만 일반적인 편견을 깨려는 의도보다는 사람살이의 평균치에 대한 감각들, 그것들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의 측면들, ‘일반적인 사람 사는 모습으로 재현되어온 것들에 대한 의심이기도 합니다. 의심이지만 진실이기도 한, 그런 부분들을 작업하면서 염두에 두었습니다.

 


관객: 현수가 꽃시장에서 생화나 조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나 혜진이 생중계를 보는 장면들에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작업과 비교했을 때 새롭다거나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한테는 극영화 작업이 첫 작업이고 같은 영화라고 하더라도 매체적 특성이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이번에 영화를 찍으며 최초의 구상들이 무너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았다 혹은 싫었다고 판단하긴 어렵고 다만 힘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극영화를 찍으면서 좋았던 점은 좋았던 배우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입 바른 소리 아니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요즘에도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어야 할 텐데그런 생각을 해요. 그때 배우들을 섭외하며 했던 거짓말들이 조금이라도 덜 거짓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입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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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개봉으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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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1604







<보라> 리뷰: 이 멍을 보라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영화 <보라>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해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현장보건관리 실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을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법률이다. 영화는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산업 근로자의 모습을 기록하는 한편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할머니와 인터넷데이터센터 관리자와 하드디스크 데이터 복구 전문가, 사진동호회 사람들을 보여준다. 감독은 언뜻 연관성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풍경을 직조하며 현대 사회의 노동과 여가에 대해 고찰한다.





영화는 전반부 보건기관 직원과 전문의가 사업장을 방문하여 작업환경을 측정하고 근로자를 진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업환경측정이란 작업환경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해당 근로자 또는 작업장에 대하여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도루코 칼, 마네킹, 피아노, 타이어, 채석장 노동자들은 전문의에게 원인불명의 두드러기, 기계소음으로 인한 난청, 고혈압, 근육통 등의 고통을 호소한다. 노동자들의 멍 자국은 건강검진 후에야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이 멍 자국은 매일 노동의 강도가 축적되어 신체에 서서히 새겨진 것이며 지우려면 그 발생의 원인일 생계의 동작을 중지해야 한다. 노동자의 신체적 고통은 의사에게 전문적 용어의 병명으로 진단되지만, 금주와 금연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처방이 내려질 뿐이다. 진찰하는 의사도 고통의 원인이 노동 과정에서 발생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생계가 끊기는 것은 노동자에게는 죽음의 선고와도 같다는 것을 알기에 일하지 말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다. 설령 당장 일을 그만둔다 할지라도 멍은 잠복해 있다가 언제 다시 표면 위로 드러날지 모른다. 과거 2년 동안 석면 작업을 했다가 몇 십 년 뒤에서야 후유증이 발병한 노동자처럼 말이다.


“전반부는 육신이 거하는 공간으로서의 공장을, 후반부는 정신이 거하는 네트워크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전반부가 산업재해로 인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보랏빛 멍을 보여줬다면, 후반부는 인터넷데이터센터와 하드디스크 복구 기술자를 보여주며 디지털 시대에 현대인이 느끼는 쓸쓸함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어느 한 인터넷데이터센터 야간 교대 근무 노동자는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한다.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남는 시간에 디엠비로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메신저로 친구와 대화하고 관처럼 생긴 박스에 들어가 쪽잠을 잔다. 하드디스크 데이터를 복구하는 다른 한 노동자는 하드가 높게 쌓인 어둡고 좁은 방에서 홀로 작업한다. 그러다가 잠깐 게임을 하며 온라인상에서 사람들과 접속한다. 기계 소음과 분진이 날리는 앞의 작업장 환경에 비하면, 정보화 기기가 들어선 사무실은 조용하고 신체에 치명적인 유해요인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 환경을 관리하고, 우주라고 표현되는 하드 속 데이터를 복원해내는 노동자들은 고독해 보인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자신이 어딘가 접속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정서적인 허기를 달랜다.  





가끔 멍을 세게 눌렀을 때 너무 아파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보라>는 어떤 장면들에서 내게 지독한 농담을 던지는 것 같았다. 장면 하나, 소음으로 청력을 손실한 노동자가 “지금 약 드시는 거 없으세요?”라는 전문의의 질문에 “그니까 소주 두 병이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산업재해 교육 현장에서 재생되고, 그걸 본 노동자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시차를 갖고 발생하는 웃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에게 웃음을 터뜨리는 이 역설적인 상황이 자못 씁쓸하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은 영화 후반부 사진동호회 사람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다시 발생한다. 감독은 청소년 야구단, 수영강습 장면을 짧게 보여주며 연이어 사진동호회의 한 남자를 인터뷰한다. 카메라 기능을 낱낱이 외우며 새로운 기종이 나올 때마다 종류별로 기기를 산다는 남자는 자신의 활동에 “즐거움은 없어요. 결과물 하나 보려고 찍는 거죠”라고 고백한다. 장시간 노동으로 소진되는 삶은 정서적인 불안과 공허함을 불러오고 스포츠나 취미활동에 집착하게 만든다. 현대인들은 여가마저도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소진하는 강박적인 노동으로 대체해 가는 것이다. 





<보라>는 여러 면에서 기존 고발 형식의 다큐멘터리 문법을 비껴간다.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의도로 수렴되지 않고 이질적인 장면들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설명 없이 전개되는 화면들이 언뜻 당혹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멍을 가까이에서 들춰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의 성과는 분명해 보인다. 이는 공장 기계 소음에 묻히는 노동자의 말을 담기 위해 화면 안에 잡힐 정도로 가깝게 다가가는 영화 속 붐오퍼레이터의 태도처럼, 감독의 치열하고 끈질긴 응시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영화는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포착한 이것을 관객에게 보라 한다. 그리고 이 멍을 이미지의 잔영으로 관객에게 오랫동안 남겨 놓는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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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의 기술記述> 리뷰: 먼지 너머의 풍경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먼지


“소름이 끼친다. 영화 속 먼지를 들이쉰 것만 같다. 콜록 콜록 헛기침을 해본다. 당연히 이미 들이마신 먼지가 나올 리 없다. - p386” 이강현 감독의 2006년 작 <파산의 기술>은 사회의 미세한 먼지를 포착하면서 그간 먼지처럼 취급되었던 존재를 다시 보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감독은 영화 도입부에 ‘미세먼지’를 언급한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볼 수 없는 먼지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사람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위험물질은 또 있다. 바로 인간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든 두려움이다. 2006년 ‘고의적 자해에 의한 사망’, 즉 자살이 전체 사망원인의 4위를 기록했다. 10년이 흐른 지금은 어떠한가? 통계에 따르면 현재 10대~30대의 자살은 전체 사망원인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느덧 OECD 국가 중 자살률은 가장 높고, 행복지수는 가장 낮은 불행한 땅이 되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삶이 공포로 다가오는 미세먼지를 매일 마시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10년 전은 어땠나? <파산의 기술>은 어떤 얼굴들을 마주하며 보이지 않은 사회의 공기를 포착한다.



첫 번째 얼굴 


“저는 누구입니다” 차례로 본인을 소개하게 한 뒤, 감독은 이들에게 현재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물론 감독의 목소리는 깔끔히 제거되어 들을 수 없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계약직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재계약 시기마다 직장을 옮겨온 이도, 그렇지 않고 한 직장에서 계약을 연장한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늦은 밤까지 야근 근무를 하는 환경에서 일하기도 한다. 당연히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들의 다음 응답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불안하지 않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낙심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다른 곳에서 일하면 된다”, “실직하면 다른 자리가 있다는 막연한 희망은 있다”. 시종일관 이들은 감독의 질문을 놀리는 듯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 있게 답한다. 불안정한 노동 환경이 정말 괜찮은가? 현재를 관통하는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노력해도 안 되는 사회,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사회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지금의 관점에선 영화 속 이들이 터무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만 같다. 나아가 10년 전에는 왜 이렇게 희망적이었지 하는 의아함이 생긴다. 이들만의 희망이었나? 아니면 당시 사회가 공유하는 묘한 정서였나? 



두 번째 얼굴


소개도 하지 않은 채 이들은 갑자기 등장한다. 얼굴 전체를 보여주지도 않고, 말하고 있는 입만 크게 확대해 얼굴을 조각내 비추고 있다. 사실 이들은 카드빚을 갚지 못해 자신을 당당히 드러낼 수 없다. 계속해서 “카드를 잘 쓰지 못한 내 책임”이라며, “내가 쓴 돈을 끝까지 갚아나가겠다”고 이들은 다짐한다. 그런데 감독은 이와 다르게 가계대출을 주선하는 전문가의 인터뷰와 세계 경제 포럼 연회장의 풍경을 함께 보여준다. 이 상이한 풍경을 교차하면서 감독은 관객에게 어떤 물음을 던진다. 왜 파산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는가? 파산하는 이들은 구조 안에 어떻게 위치하나? 결국, 큰 틀의 변화가 파산한 이들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특정한 시기에 국가가 가계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면서 ‘파산의 기술’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불만은 없다, 자기 노력에 따라 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라고 말한 파산한 이는 노력하지 않은 자기를 탓할 뿐이다. 지금은 어떤가? 10년 전과 다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는 이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보이지 않은 힘에 대해 직시하고 있다.



세 번째 얼굴


감독은 오래된 전단지가 겹겹이 붙여진 한 벽에 주목한다. 그 벽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전단지에 의해 계속 앞으로 자라고 있다. 앞에 붙여진 전단지는 볼 수 있지만, 뒤에 붙여진 전단지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채 결국 잊힌다. 이런 방식으로 과거에 살았던 얼굴들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산업화의 주역’ 혹은 ‘3만 달러 달성의 주역’으로 이름 붙여 호명하면서 단순화하고 객체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오래된 흑백 화면에서 보이는 많은 노동자의 얼굴을, 그들의 희로애락을 제대로 살펴본 적이 있는가. 영화 후반부에 감독은 70년대의 푸티지를 여러 방식으로 교차하며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게 한다. 한편, 2006년 영화에 나오는 얼굴은 당시 앞에 있는 전단지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얼굴은 과거에 붙여진 전단지로 여겨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새로운 전단지가 벽에 붙여진다. 그렇다면 과거로 흘러가 버린 얼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미세먼지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2016년, 어쩌면 먼지 너머의 풍경을 과거의 얼굴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들어 가계 빚이 1200조 원을 넘어서며 역사상 정점을 찍었다. 지금까지 먼지는 걷히지 않았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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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Posted by indie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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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를 횡단하는 네 가지 키워드_독립영화와 정치]

파산의 기술記述
이강현 | 2006 | DV | Color | 60분 | 다큐멘터리

     ★ 11월 10일(토), 11:00 상영    
     ★ 11월 20일(화), 18:10 상영 [감독과의 대화]

○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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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의 기술記述
The Description Of Bankruptcy


이강현 | 2006 | DV | Color | 60분 | 다큐멘터리

<시놉시스>
매일같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그러나 아무리 끔찍한 사건과 사고라도 그것이 일상적이라면 내성이 생긴다. 2000년을 전후로, 한국의 조간신문과 저녁뉴스시간엔 범인도, 용의자도 없는 사회적 타살의 소식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통곡의 소리로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그 소식들은 그러나, 그 건조한 단신기사처럼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더욱 더 절망적인 것은 범인을 잡으려는 노력도, 단죄하려는 시도도, 냉소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순치시켜버린 것일까.

<연출의도>
세상은 여전히, 신파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은, 이 세계의 작동방식이라는 것이 아직도 여전히 공고하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린 신파의 소재들 중에서 근 10여 년간 이곳 사람들의 삶을 규정했던 파산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이 소재 속에는 의심할 나위 없이 보편적인 고통의 신음과 통곡이 넘쳐났으며, 지난 10여 년간의 한국사회를 규정할 수 있는 요소들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단계, 혁명적 단절 없이 몰락한 한 세대, 등등- 이 요점정리 노트처럼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소재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영화는 소재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야만 이 고통이, 특정 정책의 잘못이나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 앞에서 으르렁대고 있는 싸움의 대상 그 자체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osted by ame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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