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역사에 대한 진득한 기록  <그림자들의 섬>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8월 27일(토) 오후 3 상영 후

참석: 김정근 감독 | 주인공 박희찬, 정태훈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님의 글입니다.


영화는 영도의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일어난 노동조합 투쟁의 역사를 다룬다. 현재까지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대한민국의 노동과 사회를 담았다. 이날 <그림자들의 섬> 인디토크에서는 김정근 감독과 영화 속 주인공 박희찬, 정태훈 한진 노동자들이 직접 나와 함께 얘기를 나눴다.  



진행: 개봉을 하고 일반 관객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 많이 떨릴 것 같다. 감독님은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주인공 분들은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김정근 감독(이하 김): 희망버스를 다룬 전작 <버스를 타라>(2012) 이후, 사태가 끝난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분들이 어떻게 이렇게 지치지 않고 싸우시는지 궁금해졌고 그 얘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정태훈(이하 정): 영화 봐주셔서 감사하다. 보신 대로 조선업은 열악한 상황이다.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어안이 벙벙하다. 내용이 이해가 되는 분도 있고 안 되는 분도 있을 거다. 배를 만드는 일과 노동조합과 역사를 담은 이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하다. 


박희찬(이하 박):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어색했고 먹먹했다. 한진의 아픈 역사가 나오는 영화이기에 유쾌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즉 회사에게는 대단히 불편할 영화일 거고 누군가에겐 마음이 아픈 영화일 것이다. 노동조합 선배들은 마음이 아팠겠지만, 노동조합을 앞으로 이끌어 나갈 후배에게는 자극이 될 것이다. 나 역시도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다. 잊고 싶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노동조합의 역사다. 개인적으로는 용기와 자극이 되었다.


관객: 영화 보면서 오랜만에 울었다. 촬영 기간이 궁금하다. 또 인터뷰를 하루에 진행한 건지, 여러 날 나누어 했는지가 궁금하다. 


김: 2010년 10월경에 정리해고 발표되고 12월에 시청집회를 처음 하셨는데, 그때부터 죽 촬영했다. 희망버스 전후로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기록을 했다. 현장 중심의 기록은 <버스를 타라>에 충분히 나온다. 주인공들이 인터뷰할 당시는 복직 전이라 외부 아르바이트 중이어서 잠깐씩 짬을 내 3시간정도 인터뷰를 했다. 작품이 인터뷰 중심이기 때문에 맥이 끊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힘들어 하셔도 최대한 한 번에 물어보고 진행했다. 


진행: 출연자 분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점, 그리고 인터뷰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셨는지? 


정: 처음에 감독님이 한진에 들어왔을 때 많이 서먹했다. 왜 찍는지, 외부에 유출하는 거 아닌지, 회사에서 보낸 사람이 아닌지 의심도 됐다. (웃음) 장기간 촬영하며 많은 자리를 함께 했고 술잔도 함께 기울였다. 인터뷰를 요구하기에 성심껏 했다. 


박: 김정근 감독과 현장에서 함께 먹고 자고 아픔을 같이 나누고 즐거운 일엔 같이 웃었기 때문에, 조금 피하다(웃음) 지회장 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에서 5명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부담감이 생기는 이유는 어쨌거나 본인이 얘기한 것이 진실이 돼버리는 것이었다. 내 자신이 그런 자격이 되는지, 부담감이 컸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쉽게 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터뷰가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부담감이 커서 분량을 조절해 달라 요구했지만, 이렇게 나와서 유감스럽다. (웃음) 



관객: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형이 대기업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근무 중이고 가끔 어용노조 얘기를 듣긴 했지만, 내 일하고 상관이 없어서 항상 흘려 들었다. 한진에 대해서는 가끔 신문기사를 보는 정도였는데, 이 영화를 통해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고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업계 상황이 좋지 않아 대량 해고 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앞으로의 투쟁 방향이 궁금하다. 


박: 앞서 12일에 있었던 언론/배급 시사회에서도 같은 질문에 답했었다. 조선업의 위기가 장난이 아니다. 이 위기에 대해 정부, 금융당국, 채권단 등 누구 하나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노동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작년부터 조선 big3(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를 포함해 모든 중소 사업장이 하나의 연대를 만들었다. 그 조선연대 속에서 위기관련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25일 국회의원 면담도 진행했고 여의도 앞에서 천막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언론은 조선업 위기가 소강상태라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서 뭔가를 해내겠다는 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다같이 투쟁을 해야 조선업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관객: 아버지가 조선업 종사자여서 감정 이입이 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연대는 무엇이 있을지, 그 연대 중에서 가장 힘이 되는 게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정: 2000년대 초반에 큰 싸움이 있었고 힘이 있는 금속노조가 밀어붙여 이긴 적이 있다. 그 후 노동조합이 많이 무력화되다 다시 힘을 받았던 게 희망버스였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위에서 대화를 하고자 트위터를 시작했을 때 1차 희망버스가 온다고 했다. 그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올 줄 몰랐다. SNS의 글을 보고 오는 사람들의 수, 버스의 수가 늘어나는 소식을 들으며 운동을 몇 십 년 해온 본인도 이런 광경에 어찌 할 지를 몰랐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함께 하는 게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김: 제일 희소한 가치는 금과 은이 아닌 관심이고 그게 지금 우리에게 없다고 생각한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도 중요하고, SNS 등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매체들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관객: 오랫동안 한진 내에서 투쟁이 이어져왔다. 열사 분들이 나와야만 활발해지고 장기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살고자 하는 투쟁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만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마음이 많이 아팠다. 장기화되는 투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여쭤보고 싶다. 


박: 저희 한진중공업지회 역사가 상당히 길다. 어용노조 시절도 있었고, 어용노조를 무너트리고 민주노조를 다시 세우는 역사가 있었다. 영화 속에도 나오듯 열사들의 투쟁 뒤에 상당한 힘이 생겼다. 목숨으로 생긴 힘이라 할 수 있다. 아시다시피 아무리 강성노조, 강성집행부가 이끈다 해도 자본 앞에서는 약자일 수 밖에 없다. 노사상생 등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도 뒤에서는 항상 준비를 하고 있다. 정리해고 관련해서도 사측은 상당한 준비기간이 있었다. 노동조합도 조직을 탄탄히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었지만, 약자이다 보니 회사가 한번 밀어 붙이면 쉽사리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정리해고가 시작되면 최고 중요한 게 조직이다. 흔들리지 않고 단결되는 모습이 무기이다. 주체가 흔들리지 않아야 연대가 생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단단히 만들어 놔도 시간이 지나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조직원들은 빠져나가고 회사는 계속 흔들고. 어찌되었든 지도부 지침 안에서 서로 손을 잡고 희망버스라는 새로운 연대가 생겨나면서 우리에겐 정리해고를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투쟁이 이어져오다 최강서 열사가 소중한 목숨을 내려놓았다. 최강서 열사는 누가 죽였는가? 역시 사측이다. 사측은 복수노조 등으로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부적으로 갈라치기를 해놨다. 정리해고 끝내자마자 크레인을 분해하고 담벼락을 높이 세웠다. 최강서 열사가 목숨을 바친 노동조합 사무실에서도 나오게 됐다. 조남호 회장은 청문회를 통해 사과인사를 했지만, 그것은 보여주기 식밖에 안 되고 자기 자존심을 찾으려 한 것뿐이다. 어쨌든 최고로 중요한 건 조직, 그리고 다독거리며 버텨낸 기억들이다. 



관객: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이전 살던 곳이 김해였다. 2013년 최강서 열사 투쟁 때 사람들과 같이 갔던 기억이 난다. 정태훈 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다. 영화 속에서 인터뷰 할 때 복수노조의 34명을 용서를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김진숙 지도위원은 어쩔 수 없게 만드는, 객관적인 상황을 이해한다고 했다. 정태훈 님은 그 이후에 생각이 달라지셨는지, 아직 인터뷰 때와 마음이 같은지 궁금하다. 


정: 복수노조란 상당히 무서운 것이다. 노동조합을 말살하기 위한 대책이고, 자본은 복수노조에 엄청난 자원을 댄다. 금속노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의식이 있는 것이다. 그 34명에 대해선 지금도 용납할 수 없다. 복귀했지만, 출근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그 자체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분들은 예전에 투쟁할 때 대의원과 간부를 했던, 같이 밥을 먹던 사람들인데, 배신하고 그렇게 넘어갔다는 건 지금도 용납이 안 된다. 복수노조 조합원들이 오는 건 상관이 없지만, 함께 발기했던 그 사람들은 모두의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받아줄 수 없다.  


김: 첨언을 하자면, 형님들이 상처가 크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말씀을 하시지만, 복수노조에 갔다가 다시 오시는 분들이 있다. 인간의 삶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양심에 빚져 다시 넘어오는 것이다. 복수노조로 넘어간 이들 중 꽤 많은 비율이 고연령이고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들이 퇴직하면 복수노조와 민주노조의 비율이 대등해질 것이다. 기다리며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관객: 희망버스에 3번 올랐고 비정규직 노동조합으로 일하고 있다.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 민주노조에서 어떤 마음으로 간부활동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끝까지 연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영화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다. 제목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최강서 열사 투쟁 이후 지금의 관점은 어떠한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김: 형님들이 삼사십 년 조선소에서 일을 하며 한국 경제를 떠받혔다고 생각한다. 성장 지표는 올라가는데, 노동자는 그림자처럼 머물러 있고 섬 같은 주변부로 외따로 떨어지는 것 같다는 의미로 <그림자들의 섬>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애초에 영도라는 지명이 ‘그림자 영’에 ‘섬 도’자이기도 해 거기서 빌려온 것도 많다. 한진 투쟁을 겪으면서 형님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여전하다. 이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도 여전하다. 이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음 영화도 노동자에 대한 영화일 것 같다. 


진행: 개봉 1주차이다. 제작부터 개봉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개봉의 소회를 밝혀주신다면? 


김: 이렇게 귀한 주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 개봉까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많이 홍보해주셨으면 좋겠다. 꼭 얘기를 듣고 싶은 분이 여기에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 정영신 님께서 오셨다. 늘 함께 연대해주시는 분이다.  


정영신: 2009년 용산참사 이후 숨어 지내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버스를 탔었다. 가서 울고만 왔다. 그 이후에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세상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고 자본은 여전히 억압하고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잠깐 잊고 지냈다. 그러다 <그림자들의 섬>을 보면서, 지금 저렇게 투쟁을 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내 일, 내 싸움에만 집중을 하고 있던 건 아닌가 반성이 된다. 열사 분들을 떠나 보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자리를 계속 지켜온 모든 조합원 분들께 무한한 존경심이 들었다.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게 이기는 거라 생각하고 우리도 여전히 싸우고 있다. 멀리 있지만, 마음으로 늘 함께 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3자의 입장으로 지켜만 봐야 했으니 감독님께는 이 영화가 힘든 작업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  



인디토크 내용처럼 최근 국내 경기를 떠받치던 조선업의 위기가 국가적 문제로 떠올랐다. ‘경영상'의 위기 앞에서 또다시 가장 먼저 막대한 희생을 강요당할 노동자들에게 역설적으로 진득한 희망을 본다. 지리멸렬한 세상임은 변함이 없겠지만, 우리의 투쟁도, 의지도 변함 없을 거라는 희망.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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