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7주기 추모상영회: 국가폭력 특별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두 개의 문>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월 20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일란 감독, 이혁상 감독

진행: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시간은 흘러감과 동시에 그 위로 또 다른 숱한 시간들을 쌓아 올렸다. 그렇게 모든 것이 흐릿해져 갈 즈음 영화 <두 개의 문>은 그 때의 기억을 다시금 수면 위로 올려 놓았다. 용산참사 이후 어느덧 7년의 시간이 흘렀다. <두 개의 문>의 감독과 참사 당시 철거민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열린 7주기 추모상영회 현장을 전한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하 진행): 용산참사 7주기를 맞이해 이렇게 <두 개의 문>을 인디스페이스에서 다시금 상영하게 되었는데요, 김일란 감독님의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김일란 감독(이하 김): <두 개의 문> 마지막 GV를 인디스페이스에서 했었죠. 오늘 이렇게 보니까 정말 오래 전 일이구나 싶네요.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진행: 7주년을 추모하며 열린 이 [국가폭력 특별전]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혁상 감독님은 <두 개의 문>이 오랜만에 극장에서 상영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이혁상 감독(이하 이): 저는 지금도 영화를 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들어요. 조금 잘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지금 <두 개의 문> 속편을 만들고 있습니다. 1편을 뛰어넘는 2편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잠깐 들었어요. 


진행: 참 잘 만든 영화죠.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대박’인 7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IPTV 등 까지 합치면 10만명이 넘을 거 같아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2편으로는 어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까? 저도 여러 가지 재판 과정을 함께 참여했지만, 굉장히 편파적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두 개의 문>을 통해 그것들을 이야기하셨고요. 다시금 속편을 만들고 계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 2013년 1월 30일로 기억을 하는데, 그때가 출소자 분들이 나오신 날짜에요. 여전히 그 분들에게는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속편을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이혁상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자신도 없었고요. 근데 출소자 분들이 사시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니, 각자가 겪어오셨을 7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고, 아직 용산 참사는 끝나지 않았음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존자 분들 중에 5분께 부탁을 드려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었습니다. 


진행: 언제쯤 영화가 나올 것 같나요?


이: 저희가 이번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영화제는 9월 즈음 열리는데요, 거기서 최초 공개될 예정입니다. 



진행: 제목은 <두 개의 문 2>인가요?


이: 가제로는 그렇고요, 여러 후보들이 있습니다. 


진행: 속편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1편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진실의 실체를 밝혀내고 싶으셨나요? 마지막 기자가 했던 이야기가 감독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요. 


김: 100분이라는 시간 동안 재판에서 어떤 쟁점을 가지고 공방이 벌어졌는지, 25시간의 진압 과정이 어땠는지를 최대한 정교하게 보여드린 다음에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어요. 기자님이 말씀한 것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국가가 국민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는가’인 거죠. 100분의 시간은 결국 이 중요한 한 마디를 하기 위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무리하고 성급한 진압 작전을 해야 했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1편의 주된 이야기였다면, 2편은 생존자 분들의 경험이 왜 또 다시 중요해지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편은 생존자 분들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진행: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네요.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관객 여러분도 2편에 대해 기대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용산참사가 일어난 첫 날부터 순천향대학병원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시신을 두 눈으로 확인했던 사람인데요, 영화 속에는 유가족들이나 철거민들의 주장, 이야기가 거의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참사 이후의 진상 규명에 대한 처절한 모습도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의도나 방향이 개입된 건가요? 


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사실에 대한 입증이나 표현들을 담는 것은 이전에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충분히 다뤄줬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가해자라고 이야기되는 경찰의 입장에서 참사를 재구성하고 바라보고, 가해자조차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인지한 상태에서 투입이 됐다는 사실이 더욱 그 비극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국가 폭력의 밑바닥에 있는 경찰 특공대원들의 입장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조차도 공포에 휩싸여 지금쯤 많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 않을까 싶고요. 이런 구도로 풀어낸다면 오히려 철거민, 투쟁에 함께 하셨던 분들의 입장이 잘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진행: 상영회 직전 용산참사 참배에서 지난 12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쓰러지신 백남기 어르신의 따님 백도라지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근데 거기서 용산 유가족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더라고요. 용산참사 때 그 못된 공권력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혼을 내줬어야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았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입니다. 그 분들 역시 피해자임에도 그런 마음이 들어서 따님을 만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용산참사가 단순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얼마나 큰 트라우마로 남았느냐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관객(파란집 용산참사동지회 소속): 저는 망루 밑에 있었던 동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실제 망루에서 생사를 오고 갔던 당사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오늘 7주기를 맞이해 두 감독님과 김덕진 국장님께서 용산참사 식구들을 위해 노력해준 것에 대해 굉장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서민을 외곽으로 모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잘못된 일들이 횡행하기 때문에 동지들은 살기 위해 망루 위로 올라 갔고, 죽어서 내려왔고, 엉뚱하게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 썼습니다. 여전히 믿을 수 없고,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어요. 아직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감독님들이 노력해준 덕분에 항상 감사하다고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진행: 감독님들께 부담감이 더 생기셨겠네요.(웃음) 오는 23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신용산역 남일당 현장에서 추모대회를 엽니다. 철거된 장면 보셨죠? 6년 동안 그곳은 공터로 남아있습니다. 유료 주차장으로 활용해서 쓰고 있었는데요, 공전상태에 있다가 기업에 의한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름 즈음에는 착공이 들어가기 때문에 현장에서 추모 대회를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올해 7주기를 그렇게 준비했고요, 백서 발간도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 이혁상 감독님께 다시 여쭤보고자 합니다. 속편에 다시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 김일란 감독과 홍지유 감독이 편집과 완성의 과정에서 저 역시 큰 역할을 했다고 이름을 올려야겠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저는 사실 어떤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용산참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책임, 연대 활동가로서의 책임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책임과 욕심을 모아서, 이름을 올린 만큼 잘 만들어 보겠습니다. 


관객(파란집 용산참사동지회 소속): 남들하고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살아나왔는가를 이야기한 적도 없습니다. 지금처럼 눈물을 흘리게 될까봐 였습니다. 저는 용산참사 당시에 망루 4층에서 시커먼 연기 하얀 연기를 못 참아서 망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뛰어내릴 당시 기절을 했습니다. 망루 바닥에 떨어졌고. 아무도 저를 구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차장 옆에 30~40초 정도의 시간 동안 거꾸로 엎어져 있었습니다. 그 망루가 다 탈 때까지 저는 기절해있었습니다. 불길이 휘어지고 나서야 저는 깨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깨어나면서 제 얼굴은 다 망가졌고 다리는 걷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라도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그 불을 끄던 소방관한테 애원을 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저는 그 뜨거운 화염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꿈이었으면. 그제서야 경찰특공대가 두 명이 올라왔습니다. 경찰 특공대가 올라와서 한다는 말이 ‘걸을 수 있냐, 걸어라.’였습니다. 제 오른쪽 다리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용산참사는 살인진압이 맞습니다. 철거민이 몇 명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이제서야 드리는 것은 아무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지라는 이름을 함부로 파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7년째가 됐습니다. 마음을 주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믿음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감독님들이 마음을 열어 줬습니다. 철거민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살아남아 증언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고 마이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김 국장님은 제가 원래 팬이고요.


진행: 김 국장은 저를 말합니다.(웃음)


관객: 이 분들을 빨리 믿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감독님들이 소중한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뿌듯합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들께서 7주기를 맞은 소회를 간단히 말씀해주시면 인디토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오늘 오랜만에 영화로 여러분을 뵈니까 후속작에 대한 책임감이 들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감사를 표현해주셨는데 사실 저희 후속편에 나오셔서 지금의 삶이 어떠한지 알려주시는 주인공 분들이야말로 저희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분들인 것 같아요. 주인공 네 분께서 와 계신데 박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시는 많은 철거민 분들이야 말로 정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잘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김: 비슷한 이야기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두 개의 문> 두 번째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참사의 경험이라는 게, 공간이 없어지면 그것을 두고 기억할 만한 것이 없어지게 된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인데요. 남일당 터가 없어진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 현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정말이구나 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곳에 원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했던 공터,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있었던 공터에 빌딩이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기억의 의미들을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관객 분들과 철거민 분들과 모든 분들께 조금만 같이 힘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인터뷰에 지치셨을 테지만 조금만 힘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생존자 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느냐가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그 고통을 우리의 경험으로 잘 소화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참사 이후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우리가 겪어온 사회를 되짚어 보자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용산참사의 비극이 여전히 각기 다른 모양새로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그 상한 뿌리를 뽑아야 함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를 위한 독립영화계의 노력 역시 올해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아픔이 끝날 때까지.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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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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