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질문들을 엮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유은정 단편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8월 31일(일) 오후 4시 상영 후

참석 유은정 감독

진행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종우 님의 글입니다.


 

지난여름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개봉을 맞이해 유은정 감독의 궤적을 짚어보는 행사가 열렸다. ‘유은정 단편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상영회에서는 그의 단편영화 낮과 밤, 싫어, 캐치볼그리고 밀실을 작품을 제작한 순서에 맞추어 만날 수 있었다. 낮과 밤에서 일상적인 불안과 그것을 깨뜨리는 미세한 희망이나 균열을 보여주었다면 싫어는 문제를 드러내는 방법이 보다 대담하고 도발적이다. 캐치볼에서는 추리 장르의 언어를 단편영화의 프로덕션 안에서 촘촘하게 실현했고, 밀실에서는 장르 구현과 영화적 실험의 경계를 넘나든다. 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는 유은정 감독이 게스트로 참석했다. 진행은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이 맡았다.





유은정 감독(이하 유은정):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개봉한 독립장편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와 앞서 보신 단편영화들을 연출한 유은정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용언 편집장(이하 김용언): 안녕하세요, 저는 미스테리아라는 잡지를 만드는 김용언입니다. 오늘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아 영광입니다. 궁금한 점들을 정리해왔는데요. 우선 감독님께 네 편의 단편영화를 구상한 계기를 여쭤보고 싶어요.

 

유은정: 작품을 공개할 때 그해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적은 있는데, 이렇게 네 편을 연달아 상영한 경험은 처음이네요.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지금 보신 순서가 실제로 제가 영화를 제작한 순서이기도 하고요. 낮과 밤은 제가 다녔던 영화학교 2학년 실습작품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실습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저는 스스로 공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제가 시도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제가 강렬하게 느꼈던 감정들을 담으려 했어요. 실습작품이다 보니 쓸 수 있는 회차가 정해져 있었어요. ‘내 속도에 맞춰 하루에 12컷에서 15컷 정도 찍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60컷 안에 담아야겠다는 형식적인 시도도 이루어졌고 내용면에서는 절제하고 필요한 장면들만 보여주자는 생각을 했어요. 이야기는 낡은 인도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한 여자 아이의 모습에서 시작했던 기억이 나고요.

싫어는 그로부터 2년이 지나고 찍었는데요. 그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았어요.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영화를 시작했을 때 제 자신이 낯설고 내가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더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낮과 밤에서 시도하지 못했건 것들을 해보자는 마음이 하나 있었고요. 낮과 밤에서 주인공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금 지켜보거나 그것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데 싫어에서는 인물이 답답한 감정을 더 드러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려보려 했어요. 싫어는 버스에서 낯선 사람에게 뽀뽀하는 장면에서 시작했어요.

캐치볼은 제가 당시 관심이 있었던 장르를 시도한 작품이에요. 그때 추리영화에 푹 빠졌었거든요. 추리물을 보면서 사회에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깊숙이 숨겨져 있는 것들이 있고 사람들은 내가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을 내면에 가지고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르가 추리물이지 않나 싶었고요. 캐치볼은 공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2014년 작품이지만 2014년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캐치볼까지는 학교에서 만든 영화인데 밀실은 학교 바깥에서 만든 첫 영화에요. 영화학교에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 과정 안에서 선생님이나 주변인에게 굉장히 많은 리뷰를 받는 일이기도 한데요. 밀실은 그런 구조에서 떨어져나와 개인적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밀실은 부모를 다룬다는 점에서 앞 세 작품과 다른데 왜 나는 이런 소재를 다루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고 제가 느끼는 작은 공포를 극대화하면 호러로서는 미미하더라도 결국에는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시도의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용언: 장편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까지 보면서 저는 감독님께서는 자매 관계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영화가 보여주는 자매에게 부모의 영향력이 잘 미치지 않거나 마치 있어도 없는 것처럼 재현된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전화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든지요. 동시에 영화 속 자매는 굉장한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고요. 감독님이 자매 관계에 강한 끌림을 느끼는 이유가 있을까요?

 

유은정저에게 언니가 있고 서로 친하게 지낸다는 개인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저에게 한국사회의 부모 세대가 몸은 컸지만 아직 마음이 어린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큰 것 같아요. 어렸을 때나 젊었던 시절에 받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그래서 타인과 대화하는 법 자체가 굉장히 서툰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짤 때 섣불리 부모에게 기댈 수 있는 인물을 만들지 못하겠어요. 대신 그보다 조금 더 가깝고 어른 같은 존재인 언니를 영화 안에 세우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만약 한국영화에서 자기 자식의 고민을 충분히 들어주고 그것에 대해 책임감 있고 현명한 부모의 모습이 나오면 저런 부모가 어디 있어?’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김용언저는 싫어속 두 자매와 밤의 문이 열린다에 나오는 지연과 효연 자매가 닮았다고 느꼈어요. 직업도 유사하고요. 마치 싫어의 주인공이 성장해 밤의 문이 열린다의 자매가 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거든요. 감독님 생각은 어떠세요.

 

유은정: 직업에 대해 얘기하자면, 돌이켜 보니 싫어밤의 문이 열린다속 인물이 마트에서 일한다는 공통점이 보였어요. 싫어의 민숙도 마트에서 일하고 밤의 문이 열린다의 지연도 마트 직원이죠. 아마도 저를 포함해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럴싸한 학벌이나 스펙을 가지지 못했고, 실제로 많은 여성 지인이 마트와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걸 이어가면서 자기 직업으로 삼는 것을 보아서 민숙과 지연의 삶이 자연스럽거나 일반적인 삶으로 느껴졌나 봐요.

 

김용언대부분의 영상매체가 젊은 여성을 다룰 때 대부분 사무직의 모습으로 재현하잖아요. 반면 감독님의 영화는 몸을 많이 움직이면서 일하는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캐치볼의 경우 경찰관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요. 네 편의 영화 속에서 이 젊은 여성들이 몸을 쓰는 모습들에 대해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은정: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 주변의 여성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업계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사무직에 있기보다는 좀 더 몸을 쓰면서 일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저에게 사무직은 여전히 낯설고, 미스테리하고, 궁금한 세계예요. 저와 같이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단기적으로 일하는 곳은 주로 공장이거나 물류센터와 같은 데거든요. 취직을 위한 스펙을 쌓지 못한 사람들이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싶어도 회사에 진입하기 어렵고요. 그리고 회사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겐 오랜 시간 준비해서 들어가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반복하건대 저에게는 몸을 쓰는 여성들의 모습이 더 친숙한 것 같아요. 그리고 지적해주신 것처럼 영상매체가 그들을 잘 보여주지 않아 저라도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김용언: 예전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면 감독님 영화의 변화상에 대한 질문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바뀌고 작품의 방향이 달라지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가 바뀌거나 영화의 톤이 변한다는 것은 영화 만들기 자체에 대한 생각이 전환되는 과정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고요. 그래서 다시 질문하고 싶은 것은 초기 두 편(낮과 밤싫어)와 다음 두 편(캐치볼밀실) 사이의 간극입니다. 장르적인 선택을 얘기하지 않더라고 인물을 그리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낮과 밤이후로 카메라의 움직임이 보다 적극적으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그리고 영화 속 인물이 경험하는 일련의 폭력을 낮과 밤이 마주하는 방식과 캐치볼이나 밀실이 취하는 방식은 굉장히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공포를 반추하는 방법에 있어 감독님께 본질적인 차원의 생각의 변화가 있었을까요?

 

유은정: 이번에 네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며 새롭게 돌이켜본 게 있어요. 각 작품은 개별적으로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어떤 과정이기도 해요. 제작하면서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것을 남겨두고 그 다음 작품에 그 고민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싫어다음에 캐치볼을 준비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캐릭터에게 더 들어가자고 생각했고요. 밀실이 저에겐 가장 큰 시도였는데요. 사실 저는 영상에서 누군가 우는 것을 잘 보지 못해요. 당시 왜 나는 사람을 정면으로 보지 못할까정면으로 사람을 마주하고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일을 어려워할까, 이런 부분을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밀실은 감정을 정제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른 세 편보다 조금 노골적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조금 더 들어가고 더 많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한편, 밤의 문이 열린다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서야 이 안에 제가 만들었던 네 편의 단편영화가 들어있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은 이렇게 한 바퀴를 돌아왔구나 싶어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김용언밤의 문이 열린다에서 주인공은 초반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죽게 되고 이 유령이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요. 사실 그 여성은 유령이 아니었더라도 유령 같은존재였어요. 생각해보면 감독님의 단편영화 속 여성들도 그렇습니다. 낮과 밤에서 좀도둑들은 주인공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고 싫어의 민아는 너무나 쉽게 대학교 도서관에서 쫓겨나요. 캐치볼의 주인공은 오빠의 과잉보호 속에서 끊임없이 집으로 돌려보내지고요. 밀실의 경우 주인공이 사무실에 들어와도 아무도 그를 의식하지 않아요. 인애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여성들이 가시화되지 않고 투명인간이 되어 있구나 싶었어요. 이러한 여성들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유은정: 낮과 밤, 싫어, 밀실에서는 주류사회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그려야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 캐치볼만들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질문을 받고 캐치볼의 민영도 역시 아직 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이고, 오빠에게는 한 명의 온전한 존재로 인정받지 않고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도구적인 인물로 위치되어 있었구나 새삼 깨달았어요. 지속적으로 공간으로든 인물로든 아웃사이더나 외곽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김용언: 낮과 밤을 보면 왜 이곳에 왔냐는 질문에 주인공은 가장 싼 곳이라 왔다고 대답해요. 제일 싼 곳이라는 건 외롭고, 위험하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공간들, 다시 말해 약자가 밀려나는 공간들이죠. 감독님의 영화에서는 그런 공간에 여성이 있어요. 감독님께서 이러한 성격을 가진 공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은정: 저에게 친숙한 공간은 아닐 수도 있겠어요. 저는 스무 살에 처음 서울로 올라왔는데요. 그때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광화문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그곳을 구경했던 기억이 있어요. ‘나도 저기 가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지방 소도시의 아이로 자라 서울에 와서 광화문을 봤을 때 이런 풍경이 있구나 싶었는데요. 한편 동시에 내가 광화문에 앉아 이 풍경을 지켜볼 수는 있어도 광화문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내가 지방에서 서울로 왔지만, 물론 지방에서 사는 것과 서울에서 사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별로 달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의 경험이 제 작품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사무직이 저에게 아주 낯선 세계인 것처럼 어떤 중심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캐치볼에서 주인공이 자기 오빠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버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중심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고 그래서 공간적으로도 지속해서 외곽을 그리나 봅니다.


김용언앞서 드린 질문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캐치볼밤의 문이 열린다를 보고 생각한 것인데, 돈에 대해 감독님이 가지고 계시는 생각이 궁금했어요. 미스터리나 스릴러 장르에서 모든 갈등의 핵심은 돈과 권력이죠. 한편 두 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마어마한 재력가는 아니잖아요. 캐치볼에서 오빠는 그저 작은 인력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에 불과해요. 밤의 문이 열린다가 재현하는 일종의 권력자도 사채업자, 돈이 부족한 젊은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사람이고요.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 일으키는 갈등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영화들이 취하고 있는데요. 감독님의 영화는 돈이 있어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핵심인물로 나오는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 돈의 문제를 말하는 것을 두고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유은정: 주변을 보면 돈의 문제가 개입할 때 인간성이 버려지는 것 같아요. 저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할 수 있다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가능하다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까요. 누구나 그런 욕망이 있는데 그 마음을 막는 것이 대체로 돈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돈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이 사회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상황, 누군가 어떤 나쁜 일을 하고 그 원인이 돈이었을 때 돈 때문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게 되는 공통적인 감각이 존재하는 것 같고요. 범죄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평범한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선택으로 끌어가는 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돈이지 않나 싶어요.

 




김용언영화 밀실의 마지막 선택, 엔딩을 보면서 저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어요. 인애가 한참 아버지와 실랑이하고 갈등을 빚은 후 돌아왔을 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어머니는 계속 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 이야기를 해요. 정작 옆에서 보살피는 사람은 두 명의 딸인데도 불구하고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봤을 때 인애에게 가장 큰 극복의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밀실에 이르러 가족 이야기를 갈등의 핵심으로 드러내셨다고 말씀하셨죠.

 

유은정: 시기상 밀실밤의 문이 열린다를 같이 구상했어요. 영화들을 보면 아버지라는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많았다고 봐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아버지가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추적하고 결과적으로 그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는 많은데, 왜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어머니는 대체로 아버지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자녀들에게 어머니가 이해해야 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안쓰러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머니로 불리는 중년 여성들도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상처와 역사를 가지고 있을 텐데 자신을 반추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만큼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했나 질문하고 싶었고요. 그 질문의 과정 안에서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어머니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지금 밀실의 엔딩이 만들어졌어요.

 

김용언: 저는 주인공이 힘없는 상태로 종료되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요. 느와르 장르의 상업영화에서 보여주는 너가 발버둥쳐도 달라지는 것 없다며 소리 지르는 식의 엔딩이 대표적이에요. 주인공의 좌절을 과도하게 표현하는 것에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데, 감독님의 영화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 우울한 현실을 마주함에도 불구하고 그 끝에서 주인공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인물은 멈추지 않는 상태에 둔다는 것은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유은정: 사실 이야기를 쓰다 보면 희망적인 엔딩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그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기도 하고, 영화가 관객에게 보내는 어떤 편지라고 한다면, 저 역시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받고 싶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저 스스로 용기를 북돋고 싶은 마음과 용기를 주고자 해요. 그래서 너무 힘이 없는 엔딩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관객: 캐치볼의 경우 이야기가 명확하고 헷갈릴 것이 없는 반면 밀실은 비교적 모호하고 하려는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촬영과 편집 단계에서 그런 방향성이 선명해진 건지 궁금합니다. 밀실이라는 제목을 짓게 된 이유도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유은정: 맞아요. 캐치볼을 만들 때는 어떻게 해야 이야기답게 만들 수 있을까고민하면서 좀 더 구조를 갖추거나 기승전결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결하는 서사를 만드는 데 신경을 썼다면, 밀실때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뚜렷한 어떤 것을 세우지 않았어요. 캐치볼은 명확한 사건을 끌어가는 작품이지만 밀실에는 사실 사건이란 게 없어요. 인애 혼자만의 망상일 수도 있고, 산을 다녀왔지만 바뀌는 건 인애의 마음뿐이거든요. 그래서 혼란스럽고 파편적인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요. ‘밀실이라는 제목은 가족에 대해 생각하다가 지은 거예요. 경찰이 와도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게 가족 문제라 집이라는 공간이 밀실처럼 느껴졌어요. 가족과 집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관객: 캐치볼밀실을 보며 든 생각인데, 사실 두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목표였다면 누군가를 데려와야 현실적으로 성립될 수 있었을 텐데 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홀로 꾸역꾸역 사건을 이끌어가는 것일까 궁금했고 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반면 밤의 문이 열린다에서 드디어 주인공이 다른 존재(수양)에게 도움을 청하잖아요. 이런 차이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한 감독님의 심리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은정: 말씀해주신 부분이 사실 캐치볼을 만들고, 상영을 하고, 관객과의 만남을 마무리하는 중에 깨달은 아쉬운 점이었어요. 왜 민영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왜 나는 한 여성이 혼자 사건을 추적하려 할 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질문하게 됐어요. 실수라고 생각하고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다시 추리영화를 만든다면 주인공이 도움을 받으며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싶어요.

 


관객: 낮과 밤에서 시작해 밤의 문이 열린다에 도착하고 나서 감독님께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나 깨달은 것이 있을까요?

 

유은정: 낮과 밤은 저에게 특별한 구석이 있는 영화입니다. 제대로 스태프를 꾸려 찍은 첫 작품이고요. 첫 번째 작품은 앞서 이루어진 모든 시간을 담은 영화고 두 번째 작품은 대부분 첫 작품은 그것 사이의 시간을 반영하는 게 일반적이죠. 그래서 첫 번째 영화가 새롭거나 재미있는 경우가 많은가 봐요. 하지만 그래도 영화는 자기가 살면서 그때그때 느끼는 어떤 접점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를 만드는 일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에요. 이전에 하지 못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다음에 그것을 보완하면서 다시 시도하고, 나의 삶 속에서 느끼는 고민과 영화의 접점을 만드는 시간을 보내려 했던 것 같아요.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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