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시집이 탄생하는 영화  <한강에게>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4월 3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근영 감독배우 강진아, 강길우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승현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시인 진아. 진아는 시를 쓰면서 옛 애인 길우와 함께했던 시간의 흔적들을 쫓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아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시간을 거스르는 존재이기도 하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진아는 시간을 거슬러 시집을 기어코 완성한다. 시간을 거스르는 일은 자신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고자 하는 용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용기가 담겨 하나의 시집이 탄생하는 영화, <한강에게>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자.




 

김현민 영화 저널리스트(이하 김현민): 안녕하세요. 오늘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김현민입니다. 오늘은 개봉 전야인데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셔서 기쁩니다. 이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과 배우 두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박수로 환영 부탁드립니다.

 

강진아 배우(이하 강진아): 안녕하세요. <한강에게>의 강진아로 출연한 강진아입니다.

 

강길우 배우(이하 강길우): 안녕하세요. <한강에게>의 강길우로 출연한 강길우입니다.

 

박근영 감독(이하 박근영): 안녕하세요. <한강에게>를 만든 박근영입니다.

 

김현민: 내일 개봉이라 지금 복합적인 마음이 드실 것 같아요. 시작하기 전에 잠깐 여쭤봤더니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기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마음이 어떠신가요?

 

박근영: 일단은 얼떨떨하고요. 배우들하고 저만 모여서 영화를 찍는 동안에 영화를 상영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고요. 지금은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신기하고 기쁘기도 하지만 굉장히 두렵기도 한 날들인 것 같습니다.

 

김현민이해가 가는 감정이면서도 사실 영화를 만들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공감하지 못하겠네요.(웃음배우 분들은 심정이 어떠신가요?

 

강진아: 요새는 더 찡한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제에 초청받아서 갔을 때는 신나는 마음이 컸는데, 요즘에는 <한강에게>라는 영화를 흘려보낸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조금 찡해지는 것 같습니다.

 

강길우: 저는 영화의 팬이 된 것처럼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해 주실까’, ‘몇 분이 보러 오실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김현민: 영화의 팬이라고 하셨는데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좋으세요?

 

강길우: 영화 찍을 때와 영화가 상영될 때의 마음은 다른 것 같아요.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표현하는 방식들이 제 취향이라고 느꼈고, 또 생각보다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셨어요. 그래서 되게 신기합니다.

 





김현민: 저도 이 영화를 두 번 봤는데요, 말씀하셨다시피 유독 여파가 큽니다. 일상생활에서 이 영화가 문득문득 떠올라요. 진아가 세탁기를 돌리고 있는 모습도 떠오르고, 진아가 전철을 타고 가다가 한강이 나오니까 확 피해버리는 모습도 떠오르고요. 왜 이럴까 생각해봤는데 이 영화가 인과적인 서사가 존재하는 게 아니고 진아의 감정을 따라가서 그런 것 같아요. 이런 부분들이 시와 닮게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님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감독님의 연출 의도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박근영: 말씀하셨다시피 영화의 형식 자체가 시와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장면, 한 장면들이 시의 문장이 되고, 씬과 씬의 연결이 시의 행간의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에도 물론 서사가 있지만 강하진 않고 그보다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영화도 서사를 따라가기보다는 제가 보낸 과거의 시절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제가 경험한 일이라기보다 제가 겪은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김현민: 영화를 보다가 저는 처음에 인상적이었던 지점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대개 가만가만하다, 가만가만한 어조와 말씨를 쓴다는 느낌이었는데 오늘 뵈니까 감독님이 그러시네요.(웃음)

 

박근영: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가만가만한 사람들을 좋아해서 제가 아는 사람들 혹은 제가 만나는 배우들도 그런 것 같아요. 제 오랜 친구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길우와 진아가 다 저 같다고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김현민: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영화 초반에 세월호 집회에서 진아가 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서 진아가 운명이 거기까지였다, 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오버랩으로 나오는 다음 장면이 죽음처럼 어두운 방 안에 혼자 누워있는 진아의 모습이에요. 또 진아의 친구가 길우 병문안 가보자하면서 나오는 다음 장면이 한때 즐겁게 자전거를 탔던 모습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진아가 마음의 내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된 채로 영화가 시작하기 때문에 저는 진아가 늘 불편해 보이는 거예요. 웃어도 원래 저렇게 웃는 사람인지, 아니면 지금 애써서 웃고 있는 건지 관객으로서 보려고 노력했는데요. 이 영화를 연기하시는 강진아 배우님은 진아의 마음에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강진아: 연인의 부재에 대해서 저희끼리 오랫동안 얘기를 해왔는데, 저는 감히 진아를 이해한다거나 알 것 같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고요. 제가 겪었던 상실의 기억들을 많이 떠올리긴 했지만, 막상 영화를 찍을 때는 이 영화의 애인 길우를 자연스럽게 떠올렸고요. 영화의 과정들이 제가 느끼기엔 자연스럽게 흘러갔기 때문에 길우가 누워있고, 길우와 싸우고, 길우와 연애하는 장면들이 감정들로 쌓이더라고요. 진짜 나에게 일어났던 일처럼요. 진아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신경 쓰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잡고 연기를 했어요.

 




김현민: 진아가 시를 내야 하는데 마음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그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길우의 것이기도 한데, 그것이 창작자로서의 죄책감이 되고 족쇄처럼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 딜레마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강진아: 저는 사실 연기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종종 하거든요. 이 영화 찍을 때 제 안에서 가지고 온 상실의 기억들이 꽤 있어요. 그것을 여기에 넣어도 될 것인가. 그런데 제가 그것을 막는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박근영: 이 영화가 자전적인 요소가 많다 보니 처음 영화를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자고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리고 영화를 준비하면서 시인들을 많이 만났어요. 매번 만나는 시인들마다 물어봤던 것이 마감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겪었던 큰 아픔을 시로 써야 하지 않냐는 것이었어요. 혹은 개인적인 아픔을 겪은 것을 시로 쓴다면 그것은 언제쯤 가능할까, 그때는 언제일까, 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것이 저에게도 화두였고 강진아 배우님에게도 화두였던 것 같아요.

 

김현민강길우 배우님에게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이 영화에서 길우는 어떻게 보면 파편처럼 등장하는 인물이잖아요. 진아의 기억 속에서 한정되는 존재로 등장을 하고, 현재의 길우는 뜻밖의 사고로 누워있어요. 그래서 진아는 현재의 길우를 마치 별개의 사람인 양 피하고 밀어내는데요. 관객 입장에서는 길우를 만나려면 결국 진아를 통해야 해요. 강길우 배우님은 이 연기를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강길우: 촬영할 때는 과거의 길우로서 연기했기 때문에 현재의 길우의 마음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누워있으면 됐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완성이 되고 관객으로서 영화를 봤을 때는 진아의 시점으로 길우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었어요. 촬영할 때는 철저하게 진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길우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를 생각했고, 기왕이면 행복한 기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현민: 화장실에서 길우가 진아를 염색해줄 때 주문해라는 길우의 농담 있잖아요.(웃음저는 재밌었어요. 다큐멘터리 장면처럼 사실적이기도 하고 실제 연인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박근영: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어요. 영화를 찍을 때 대체로 촬영을 어느 한 공간에서 하루씩 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날은 그 집에서 촬영을 하기로 했고 그 전에 이런 것들을 찍자, 예를 들면 침대에 누워서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이 발톱을 깎다가 싸우고, 다투다가 금방 또 화해하고, 이런 것들을 찍자고 그런 식으로 약속을 했었어요. 또 뭘 찍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강진아 배우가 주기적으로 염색을 한다고 해서 그래서 염색을 한 거예요.(웃음그 장면에서 어떤 대화를 나눌까 고민하다가 제가 연애할 때 자주 하던 농담이 있었거든요. 무슨 얘기만 하면 무엇이든 내가 사주겠다고 주문하라고 하는 농담인데요. 그래서 처음에 진아의 컴퓨터가 고장난 것 같다, 그래서 길우가 주문하라고 한다, 거기까지는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고 그 뒤로는 진아가 무슨 말을 하든 길우가 주문하라고 말한다는 식으로 촬영한 거예요. 컴퓨터 이후 부분은 즉흥적이었던 거죠. 주문하라는 큰 작전만 가지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배우들이 소화한 거죠. 보통 이런 식으로 작전을 세워놓고 대사를 넣었다 빼는 방식으로 촬영을 했어요. 이 장면 같은 경우에는 딱 두 번 찍었거든요. 너무 재밌었어요. 저희끼리는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으면서 찍었고 웃긴 장면이 나왔다고 좋아했어요.

 

김현민: 결과적으로 그 장면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고 어떻게 보면 길우 배우님의 역할이 컸네요. 그 대사를 잘 살려주셨네요.

 

강길우: 아뇨.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고요.(웃음감독님이 평소에 재밌는 농담을 했던 게 가장 큰 이유고, 촬영이 인물들이 즉흥적으로 호흡을 맞추는 방식이었는데 매번 강진아 배우님이 잘 받아주셨고 리드해주셨어요. 진아가 영화의 중심인물이었고, 저는 옆에서 흐름을 깨진 않을까 조심했는데 제가 자유롭게 연기한 부분을 강진아 배우님이 자연스럽게 흡수해주셔서 그 장면도 잘 산 것 같아요.


김현민: 이 영화에 사실적인 공기가 들어갈 수 있었던 까닭이 큰 가이드 안에서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감독님이 열어주신 것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촬영 방식이 어떠셨어요?

 

강진아: 이 작품이 박근영 감독님과 세 번째 작품이었는데, <한강에게>는 첫 장편이어서 긴장감 있게 촬영했지만 타이트한 촬영은 아니었기 때문에 신나는 기분으로 촬영했고, 촬영장에 놀러 간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찍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끝나고 나서 이 장면이 과연 어떻게 나올까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강길우: 저도 즐거웠던 기억이었어요. 오늘은 어떤 장면을 찍는지 몰랐던 날도 많았어요.(웃음매번 놀러 가는 느낌이었어요. 감독님이 디렉션과 작전을 내려주시면 저는 그 안에서 놀면 되는 거라서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찍는지 잘 생각 안하고 갔던 적도 있었어요.

 




김현민이 영화가 현재와 과거의 톤이 확실히 달라요. 현재는 푸르고 선명한 느낌인데, 과거는 상대적으로 아늑해 보이잖아요. 이런 현장 분위기가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박근영: , 아마 그랬을 것 같은데, 현재 장면은 현장에 진아 배우가 혼자 있었던 경우가 많았고요. 그래서 현장에서 훨씬 고독했을 것 같아요. 과거 장면에서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안하게 모여있는 아늑함이 있었으니까. 소규모로 작업할 땐 그런 게 좋더라고요. 촬영 사이사이 산만해지는 게 없어서 몰입감과 분위기가 쭉 유지되는 게 좋았어요.

 

김현민시인이라는 역할이 평범한 역할은 아니죠. 딱히 어떤 스테레오 타입이 떠오르지도 않고요. 영화를 준비할 때 박시하 시인과 안희연 시인을 모델로 해서 이들의 문장을 닮은 스타일과 인물을 떠올리고 영감을 받아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배우 입장에서는 접근하기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강진아: 일단 진아는 젊은 시인이라는 설정이 있었고요. 시인들을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느꼈던 것은 업으로서 시를 치열하게 쓰는 모습들이, 정말 시를 쓰는 사람 같다는 거예요. 제가 연기하는 것이 글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원래 가지고 있었던 생각만큼이나 시인들이 확실히 존경스럽더라고요.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이잖아요. 안희연 시인은 길에서 파는 사과를 보고 저에게 여러 얘기를 해주셨는데, 지나갈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보고, 멈추어 서서 발견하고, 그것들을 글로 쓰면서 지금을 보여주고 이 시대를 증언하는 듯한 존재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존경심이 들었어요. 단 발이 붕 떠 있는 어떤 상상이나 판타지에 근거한 인물보다는 땅에 발이 붙어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디 멀리 있지 않고 내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시를 좋아하고 시를 쓰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인이라는 이름이 크게 거부감이 든다거나 단지 멋있다는 생각을 가지진 않게 됐어요.

 





김현민: 아무래도 시인들과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시인이 시대의 아픔을 조금 더 지긋이 느끼는 사람들이고, 이런 측면에서 영화의 시작도 진아가 광화문에서 시를 낭독하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 장면에 대해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박근영: 우리 영화 속에 담긴 시인들이 선입견 없는 시인들의 실제 모습에 가까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을 모델로 삼기도 하고, 그래서 강진아 배우님에게도 실제 시인들의 모습이 이렇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같이 많이 만난 거예요. 시인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평범하고 생활인의 감각도 강하다, 길에서 떨어지는 낙엽만 보는 존재가 아니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시집 끼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다,(웃음이런 것들이 중점에 있었어요. 당시가 2016년이었는데, 젊은 여성 시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시인들을 생각하면서 공동체의 아픔을 노래했던 것들을 우리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것처럼, 지금 우리 바로 옆에도 이렇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여전히 행동하는 시인들이 있다는 것이 영화 속에 담기고 사람들이 보고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현민: 전고운, 이요섭 감독님 부부가 나오는 장면도 좋았어요. 영화가 갑자기 탁 변주되는 지점인데, 이 전까지는 진아가 사람들 속에 섞여서 불편하게 웃거나 웃고 있지만 눈이 슬퍼 보이는 느낌이었다가, 이 장면에서는 진아가 어떤 상태인지 조금 더 보여주는데요. 11분 정도 되는 롱테이크 장면이죠. 사실 그 장면의 이야기들이 너무 생동감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강진아 배우님과 전고운 감독님이 실제로 상당히 가까운 관계인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두 분이서 초창기에 단편 작업도 같이 하셨고요. 어떻게 촬영에 임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강진아: 실제로 둘이서 즉흥극을 하면서 많이 놀아요.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얘기를 하면서 많이 노는데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됐던 장면이었고요. 그 장면에서도 실제로 전고운 감독님이 주제를 던져주셨고 연기에 임해주셨어요. 픽션도 있지만 진짜 자기고백을 꺼내놓기도 했고요. 박근영 감독님과의 간단한 약속만으로도 너무나 똑똑하게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이끌어주셨어요. 저는 속으로 와 너무 잘하는데하면서 전고운 감독님에게 기대어서 연기했습니다.

 

김현민: 전고운 감독님이 연출력만 뛰어나신 줄 알았는데 연기 천재셨군요.

 




관객: 저는 오늘 영화를 보러 왔다기보다 놀러 왔고, 영화 속 등장하는 마지막 시를 들으러 왔는데요. 지금까지 영화를 세 번 보았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마지막 시가 기존 시인의 작품을 빌려온 것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두 번째 보고 세 번째 볼 때 감독님이 직접 쓰신 거구나, 하고 느꼈거든요. 그 시가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은데요. 감독님은 그 시를 쓰실 때 어떤 감정이셨나요? 또 시 쓰실 때 수정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박근영: 감사합니다. 시를 쓰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제가 국문과 다니면서 시를 열심히 쓰던 시절과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방식이 굉장히 달라졌어요. 시를 쓰던 시절에는 뭔가를 상상할 때 문장과 어휘를 떠올렸는데, 지금은 오히려 장면을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다시 시를 쓰기 위해 문장과 어휘를 떠올리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시를 쓰는 과정이 굉장히 고됐습니다. 처음 시나리오엔 시가 없었어요. ‘진아의 목소리로 '한강에게'라는 시가 낭독된다라고만 쓰여있었어요. 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주변 시인에게도 물어봤는데, 박준 시인에게 제가 물어봤어요. 영화를 위해 어떤 시를 의뢰하면 시인에게는 어떨 것 같냐고. 그때 박준 시인이 물론 시인들이 쓸 수는 있을 텐데, 시 자체가 좋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저보고 직접 쓰는 게 좋을 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결국 내가 써야겠구나, 라고 결심했죠. 영화의 모델로서 박시하 시인과 안희연 시인이 있었듯이, 제가 생각하는 영화 속에 강진아 시인의 시 또한 박시하 시인과 안희연 시인의 문장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의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나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는 강진아 시인의 감정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의 제 감정도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담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지막에 시를 썼어요. 한 달, 두 달 정도 걸려 마지막 시를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시하 시인의 '영원히 안녕'이라는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최종적으로 몇 달간의 수정을 거쳐서 완성했습니다.

 

김현민어떻게 보면 이 영화가 하나의 시가 탄생하는 이야기로도 볼 수도 있겠네요

 




관객: 저는 전주국제영화제부터 지금까지 <한강에게>를 많이 봤습니다. 평소 문학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한강에게>를 보고 나서 시를 좋아하게 됐어요. 감독님과 배우님들에게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나만의 시가 있나요?

 

강진아: 저에게 시는 음악하고 되게 비슷한 것 같아요. 시와 음악으로부터 굉장히 치유를 많이 받았어요. 한 음악을 거의 몇백 번 이상 들은 적도 있어요. 시도 그래요. 오늘 제가 예전에 저장해두었던 시를 다시 읽었는데, 신미나 시인의 '무르다는 말'이라는 시에요. 시가 굉장히 짧아요. 한때 외우고 다녔지만 지금은 정확하게는 생각나지 않는데, 이런 내용이에요. 내가 꺾은 꽃이 너무 예뻐서 계속 쥐고 있었고, 줄기가 미지근하도록 이렇게 쥐고 있었는데, 그걸 왜 버리지 않고 무르도록 쥐고 있었냐고 묻는 시에요. 이미 시든 꽃인데 그걸 왜 계속 쥐고 있었냐는 거죠. 그 시가 제 연기 생활과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제가 무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든 시였어요. 그 시를 좋아해요.

 

강길우: 앞의 대답에 이어서 하려니 부담스럽네요. 저는 '한강에게'를 좋아합니다. 평소에 제가 시를 잘 읽지 않아요.(웃음이 시가 강진아의 '한강에게'인지, 박근영의 '한강에게'인지 조금 아리송하지만 시 입문서 같은 느낌이에요. <한강에게>는 시의 해설 같은 영화에요.

 


관객: 영화 속에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요, 그런 점에서 사운드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영화의 사운드를 대하는 태도가 궁금합니다.

 

박근영: 원칙적으로 생각한 게 있었어요. 제가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촬영을 했던 것도 있고, 영화를 만들 때 사실적인 요소를 중점으로 두었어요.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 촬영할 때 주변의 소음을 통제하지 않는 것,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끄러운 상황에서는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굳이 사운드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후시녹음을 하면 이 영화가 부자연스러워진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와 느낌, 그리고 진아의 감정이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에 대사들이 정확히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명적인 것보다 분위기와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어요.





김현민: 아쉽지만 이제는 마무리할 시간인데요, 오늘 영화를 보신 관객 분들과 내일부터 이 영화를 만나실 관객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박근영사실 영화가 개봉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개봉한다고 해도 이 영화의 존재를 아시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오늘 보러 오신 분들에게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개봉 전날이고 <한강에게>는 첫 시집 같은 영화여서 저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밤인데 그 밤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나리오 밑에 이렇게 썼었어요. “이 시나리오에는 여백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여백을 배우들과 연출자가 현장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촬영하려고 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저 혼자 한 셈이었지만, 영화의 여백들을 배우들이 잘 채워주셔서 영화가 완성되었던 것 같고, 이 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끔 채워주신 분들, 도와주신 분들, 응원해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완성된 영화에도 여백이 많듯이, 앞으로도 관객 분들이 영화의 여백을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 분들에게도 언젠가 다시 한 번 생각나는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라오스> 특별상영

4월 13일(토) 17:00

4월 18일(목) 20:00


<라오스> 인디토크

● 일시: 2019년 4월 13일(토) 오후 5시

● 참석: 임정환 감독 | 배우 임철

● 진행: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라오스 Laos : In the Warmest Country> 임정환 | 2014 | 드라마 | 71min

원식과 현철은 마침내 졸업영화를 엎어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영화 찍으려던 돈을 들고 라오스로 날아간다. 한때 그들과 함께 영화를 공부했던 정환이, 그들을 맞이한다. 셋은 라오스에서 종합비타민을 팔아 돈을 벌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죽이는 장편시나리오를 완성해 고국으로 돌아가자 말한다. 그렇게 셋의 동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머지않아 정체불명의 택시기사와 북한사람이 일에 끼어든다. 이들의 이야기는 산으로 향해간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