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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김복동〉: '인권 운동가'로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by indiespace_한솔 2019. 8. 27.







 〈김복동  한줄 관람평


오윤주 피해자가 아닌 인권 운동가로서의 김복동의 삶

최승현 역사의 무게를 등에 짊어진 자의 박력

송은지 지금의 분노가 절대 놓치지 않을 기억과 연대의 끈이 되기를

승문보 김복동 할머니의 27년의 투쟁을 극영화적으로 정리한 아카이브

김윤정 ‘인권 운동가’로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김복동  리뷰: '인권 운동가'로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일본군은 군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1990년부터 2019년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맞서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록하기기억하기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다큐멘터리 〈에움길〉, 〈주전장〉에 이어 개봉한 〈김복동〉은 두 영화와는 다르게 김복동이라는 한 인물의 역사를 따라간다19918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을 시작으로 많은 피해 여성들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화 〈김복동〉의 주인공 김복동 할머니는 국제사회에 일본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더 나아가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방지를 위해 힘써온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 운동가이다. 〈김복동〉은 인권운동가 김복동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제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과정까지, 김복동 할머니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떳떳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위안부 피해자임을 숨기고 살았던 세월은 할머니 자신을 숨기고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를 찾기 위해 피해 사실을 알리기로 다짐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리고 피해자이라는 것을 밝힌 이후에 김복동 할머니의 가족(큰 언니의 가족)은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은 만연한 가부장제 문화로 인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피해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급급했다. 국가가, 사회가, 우리가 침묵해온 역사 속에 '위안부' 여성들은 긴 세월을 고통 속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2010년 김복동 할머니는 고향인 부산 다대포를 떠나 서울로 향한다. "다시는 또 다른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힘닿는 데까지 끝까지 싸워보리라 다짐한다. 나눔의 집에서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어 할머니는 전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증거가 살아있는데, 증거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2012년 일본의 아베 내각은 전범국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역사수정주의를 내세우며 일본 식민주의와 전쟁 책임에 대해 부정한다. 그리고 증거가 없다, 자발적 참여다라는 주장으로 위안부 피해 문제를 부정하며 전 세계에 가해자 중심의 합리화된 역사를 알리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행동에 대항하여 김복동 할머니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의 수요시위를 시작으로 미국, 독일, 일본, 전 세계로 나가 목소리를 냈다그리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진행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에 맞서 피해자로서 겪은 역사의 진실에 대해 고령의 나이에도, 몸이 안 좋더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 외친다. 김복동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세 가지를 요구한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법적 배상, 역사 교육.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인정과 반성,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1970년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사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독일이 전범국가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듯, 고령의 나이에 김복동 할머니가 전 세계를 누비며 피해 사실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앞으로 반복하지 않기를바라기 때문이다. 피해 사실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살아온 김복동 할머니의 삶은 인권운동가로서 위대하지만, 평생 자신의 아픈 기억과 마주하며 살았다는 사실에서 가슴 아프다. 일본의 한 역사 수정주의자는 말한다. "국가는 사죄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거 역사를 반성하는 독일의 움직임은 무엇을 뜻하는가?




 

남겨진 우리의 숙제


역사의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김복동 할머니가 1020 세대와 마주한 것은 남겨진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일본 정부의 무상교육에서 제외되어 또 다른 차별을 받고 있는 재일조선인학교의 학생들에게 김복동 장학금을 만들어 차별 없는 교육을 받게 만들고 '평화나비' 학생들과 연대하여 함께 목소리를 내는 김복동 할머니의 걸음을 보며 김복동 할머니가 미래를 살아갈 우리와 과거를 이어주는 연결 다리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인권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일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김복동 할머니는 본인의 일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누군가는 '위안부' 피해자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당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말하는 누군가에게 영화 〈김복동〉을 추천한다. 김복동 할머니가 피해자로 수동적인 삶을 산 것이 아닌인권 운동가로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해 영화 〈김복동〉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의 평균 나이는 91세이며 생존자는 21명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이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지만 현 시국을 보았을 때 쉽게 해결되지만은 않을 것 같아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증거를 앞세우는 누군가에게 대항하기 위해 남겨진 우리는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많은 관객들이 〈김복동〉을 보며 앞으로 세상을 만들어나갈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지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합쳐져 우리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으며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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