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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기획] 축 탄생! 우리 생애 첫 생리 도감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인터뷰

by indiespace_은 2018. 1. 18.

축 탄생! 우리 생애 첫 생리 도감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모두가 그 존재를 알지만, 누구도 많은 이 앞에서 그 이름을 크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마법’, ‘대자연’, ‘ㅅㄹ’까지. 생리는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우리의 입 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세상 절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생리에게는 언어가, 이야기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 불필요한 금기에 반기를 들고 나선 영화 <피의 연대기>는 생리를 다룬 한 편의 도감과도 같은 유쾌한 다큐멘터리다.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원을 찾아가보는 한편, 당장 여성이 직면해야 했던 문제들을 파고드는데, 시선이 생리 용품에서부터 무상 생리대 이슈로 이어지면서 자유로이 확장·전환된다. 김보람 감독의 네덜란드인 친구 샬롯과의 일화를 통해 왜 한국인들은 패드형 생리대를, 서양인들은 탐폰을 애용하는지 묻는 것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끝내 여성이 피 흘리는 자신의 몸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김보람 감독은 인터뷰 내내 ‘운이 좋았다’는 대답을 계속 했다. 운 좋게 좋은 기회들이 생겼다고, 좋은 스태프들을 만났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 끝에 운 좋은 관객들이 남은 게 아닐까? 드디어 생리의, 생리에 의한, 생리를 위한 한 편의 영화를 만나게 된 관객들에게 김보람 감독은 여러 뒷 이야기들을 전해왔다.







Q: 생리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어땠나요?


A: 친구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를 많이 했어요. 촬영 하면서 생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많이 이야기 해줬는데, 여자 친구들은 몰랐던 걸 알게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남자 분들 중에서도 지지해주시고 펀딩을 도와주신 분이 많아요. 택시 운전을 하시는 저희 아버지는 승객 분들에게 홍보도 한다고 합니다. 개봉한다고 하니 다들 설레며 좋아해주고 있어요.



Q: 다큐멘터리 영화의 형태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A: 극장은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공동의 경험을 하는 공간이잖아요. 생리라는 것이 공공의 영역에서, 문화의 영역에서, 서사의 한 형태를 갖춘 상태에서는 경험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야기가 타인과 함께 모여서 볼 수 있는 매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Q: 영화로 기획하고자 했을 때 처음 한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A: 피를 어떻게 보여줄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이었는데, 진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기획 초반부터 했고, 여성 감독님들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찾아보다가 김승희 감독님의 <심경>(2014)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김승희 감독님을 섭외해서 애니메이션을 부탁 드리게 되었습니다.



Q: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A: 단편이라도 감독한 경력이 있어야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연출 필모그래피가 전혀 없다 보니 펀딩을 받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마켓에서 피칭했을 때도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극장에 걸기 힘들 거라는, 90분짜리로 완성되기 쉽지 않을 거라는 반응도 있었고요.



Q: 그래도 이 영화를 궁금해하는 관객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아요. 생리를 하는 여성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요. 힘든 와중에도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계속해서 운이 많이 따라 준 게 힘이 됐어요. 한 번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뉴욕에 갈 일이 있었어요. 가는 김에 뉴욕시에서 무상 생리대 법안을 통과시킨 페미니스트 활동가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답이 오지 않길래 마음을 접어두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 연락이 온 거예요. 게다가 그 날이 뉴욕 시장이 해당 법안에 사인하는 기념식이 있는 날이었어요. 그렇게 며칠 더 머무르면서 뉴욕 촬영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답장을 보내준 활동가 분이 저희에게 ‘잭팟 터졌다’고 하셨을 정도로 운이 좋았던 거죠. 그런 순간순간들이 ‘결국 이 영화는 완성될 거야’라는 용기를 준 것 같아요.



Q: <피의 연대기>는 이야기하는 내용도 새롭지만 형식도 꽤나 새롭게 느껴지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애니메이션과 모션그래픽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빠른 리듬의 편집이 인상적이에요.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편하고 재미있어야 의미도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금기처럼 여겨져 왔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이야기하기 불편한 주제잖아요. 그런 생각을 깨기 위해서라도 남녀노소 함께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무겁지 않은, 경직되어서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상큼발랄한 음악도 너무 좋았거든요. <소셜포비아>(2014), <셔틀콕>(2013) 영화음악에 참여한 김해원 음악감독이 작업했는데, 감독님의 특별한 디렉션이 있었나요?


A: 김해원 감독님께 편집본을 보여드리고 음악에 대해 처음 논의하면서 저희 둘이 통했던 게 있어요. 여성 목소리로 코러스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도 그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것 외에 따로 디렉션을 드린 건 없어요. 사실 저는 더 빠르고 강한 비트의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음악감독님 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조금 슬프게 느껴졌나봐요. 그래서 좀 더 정서적인 톤이 가미된 음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이 없는데, 저희는 정말 복이 많아요.







Q: 또 하나 이 영화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다양한 인터뷰이들의 참여예요. 엔딩 크레딧에 뜨는 인터뷰이 숫자를 세어봤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만 45명이고 영원중학교 2학년 4반 학생들까지 더하면 60명이 넘습니다. 인터뷰를 계획, 촬영, 편집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수고가 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부분이 어려웠나요?


A: 이미 페미니즘에 익숙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 보다는 크게 관심 없이 살아온 분들, 보수적인 집단에 있는 분들을 섭외하고 싶었어요. 육체 노동하는 분들도 인터뷰하고 싶었고요. 연령대별로, 직업별로 다양하게 여성 분들을 섭외하고 싶었죠. 그런데 100분께 부탁 드리면 10분 정도만이 응해주셨어요. 처음에 원했던 만큼 다양하게 인터뷰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Q: 제일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있다면?


A: 노동당 하윤정 후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언젠가 총선 후보들과 공약들을 소개해주는 시사팟캐스트 방송을 누워서 듣다가 ‘무상 생리대’라는 단어를 듣고 너무 놀라서 일어났어요. 근데 잠결에 듣는 바람에 그 공약을 건 후보의 소속을 ‘노동당’이 아니라 ‘정의당’이라고 들어버린 거예요. 한번 더 확인을 해봤어야 했는데, 총선 이틀 전이기도 했고 너무 흥분을 한 상태라 피디님께 당장 연락을 해서 그 다음 날 정의당 사무실에 가서 촬영을 하려고 했죠. 그런데 정의당에 그런 공약을 건 후보가 없다는 거예요. 그제서야 다시 확인을 해보니 노동당 하윤정 후보의 공약이었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에 저희 피디님이 운전을 하다 우연히 하윤정 후보를 길에서 본 거예요. 무작정 그 분을 쫓아가서 인터뷰를 부탁 드렸고, 결국 유세 장면도 찍고 인터뷰 장면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운이 좋아요.



Q: 중학교 교실 촬영 때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감독님의 예상과 달랐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A: 촬영하는 날 학교 복도가 모두 ‘초흥분’ 상태였어요. 영화 촬영 왔다고.(웃음) 사실 불편해하는 아이들이 많을까봐 걱정을 좀 했는데, 굉장히 적극적이었어요. 일단 생리컵을 보여주니 여자 아이들은 알고 있더라고요. 인터넷에서, 특히 유튜브에서 이미 다 정보를 얻었다고 했어요. 문제는 새로운 정보들 틈에 ‘성경험이 있어야만 생리컵을 쓸 수 있다’라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처녀막이 손상된다’라든지 하는 잘못된 정보들도 아이들에게 같이 들어와있다는 거예요. 그건 아예 정보가 없는 것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가진 정보를 제도가 못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이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도 충족시켜줄 기회가 적다고 느꼈어요. 남자 아이들 같은 경우는 이 시간을 통해 생리 중에 여자들이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해요. 혹시나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을 놀린다거나 장난스럽게 임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직접 생리 용품들을 보고 사례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더라고요. 질문도 많이 하고 굉장히 진지하게 임해줘서 좋았습니다.



Q: 영화에 감독님의 할머니와 어머니, 이모님들도 등장합니다. 가족들을 어떻게 섭외하게 됐나요?


A: 여성이 생리를 처리해온 역사를 담고 싶어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인터뷰 하려고 한 건데, 생각해보니 저희 이모님들이 40대부터 70대까지 다 있는 거예요.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원래는 다같이 모이기가 힘든데, 그 즈음에 해외에 거주 중인 삼촌이 한국에 와서 온 가족이 고향에 모이게 되었어요. 그 때 두 시간만 제게 달라고 부탁 드리고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리에 대해 세대 별로 이렇게 경험이 다르다니, 저도 신기했어요. 다들 너무 신나게 이야기 했고 재미있는 내용도 많이 나왔는데 영화에 다 못 담은 게 좀 아쉬워요.



Q: 감독님도 영화에 직접 등장 하는데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직접 인터뷰에 임할 생각이었나요?


A: 아니에요. 1년 째 찍을 때 까지도 제가 직접 등장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관객이 이 많은 정보를 따라가려면 화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지적을 받았고, 처음에는 화자 역할을 해줄 일반인 여성 분을 섭외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영화가 수많은 경로로 남겨지게 될 테고 시간이 지나면 출연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는 건데,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위해 계속 실험하고 취재해온 제가 하는 게 제일 자연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Q: 역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김독님이 직접 머리에 카메라를 착용하고 생리컵에 찬 피를 버리는 장면이에요. 이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나요?


A: 사실 머리에 고프로 카메라를 달고 찍겠다고 했을 때 영화적으로 화면이 예쁘지 않을 거라고 말리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촬영감독님이 저를 찍는 것도 너무 보여 주기 식일 것 같았어요. 생리는 온전히 여자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거니까요. 물론 다큐멘터리에도 연출이 있기 마련이지만 생리혈을 작위적으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재미있게,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 장면 또한 그냥 제가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고프로를 머리 맡에 두고 자고 일어나서 착용했고요,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 상태로 커피도 내리고 옷도 갈아입었어요. 그 이후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생리컵을 빼고 생리혈을 확인한 거죠. 촬영 실패도 했고 피를 다 쏟기도 했기 때문에 그 장면은 세 번의 주기에 걸쳐서 힘들게 건진 장면이에요.



Q: 그때 내레이션으로 “흐르는 피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왠지 모를 쾌감과 희열을 느꼈다”고 하죠. 이 쾌감, 이 희열은 어떤 감정일까요?


A: 아주 옛날 남자들은 여자들이 한 시기에 피를 많이 흘리고도 죽지 않는 것을 보고 여자들에게 초월적인 힘, 초자연적인 힘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대요. 실제로 생리혈을 약으로 쓴 역사도 있어요. 그런데 그 시기를 넘어서면, 여자가 특별해지면 안 되니 그 피를 폄하하는 역사로 이어지죠. 저는 한 번도 제 피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고 제 자신을 피 흘리는 존재로 생각해보지도 못했어요. 그때 컵에 가득 찬 피를 보니까 이렇게 피를 흘려도 건강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게 기특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내 몸에서 나온 피가 고스란히 모여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되게 시원했어요. 벅차는 감정을 느꼈달까요?







Q: 사소한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느껴진 부분이 있습니다. 인터뷰이들의 프로필에 이름이 모두 성을 뗀 채로 등장해요. 이재명 성남 시장까지 ‘재명’으로 자막이 뜰 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사실 저희 할머니 때문에 그렇게 하게 되었어요. 할머니나 어머니의 이름을 부를 일이 거의 없잖아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라는 영화 제목이 있듯이 한 사람을 고유한 인간으로, 단독적인 캐릭터로 비추고 싶었습니다. 인터뷰이가 많다 보니까 관객이 한 명 한 명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Q: 인터뷰이들의 직업이나 신분을 표현하는 프로필 자막으로 ‘가사노동은퇴’, ‘공부노동자’와 같은 문구도 등장해요.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A: 제게는 여성이 노동을 하면서 피를 흘린다는 것이 중요했어요. 저희 할머니의 경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추를 따서 말리고, 빻고, 보관하고, 주말이면 뒷산 가서 식재료도 구해오고, 옷도 다 만들어 입는 노동을 해오셨어요. 그 와중에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서 썼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할머니의 직업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이제는 그 노동으로부터 은퇴했으니까 ‘가사노동은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Q: 그런데 자칫 이런 톡톡 튀는 문구들이나 편집 요소들이 시선을 빼앗지는 않을까 고민하지는 않았나요?  ‘생리 축하합니다’, ‘아 씨발 존나 귀찮아’ 같은 표현은 넣기까지 고민이 좀 있었을 것 같거든요.


A: 여성이 어떤 캐릭터로 등장할 것인가가 중요했기 때문에 프로필 자막은 연출의 한 요소였어요. 관객들이 인터뷰이를 한 명 한 명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결국 영화를 통해서 그들에 대한 어떤 인상을 갖게 될 텐데, 긍정적인 인상이 남아야 좋을 것 같았고 그런 문구들이 재미있는 요소로 역할 하기를 바랐어요. ‘씨발 존나 귀찮아’의 경우는 유목 생활하던 옛날 여자들은 어땠을까 상상하다가 나온 말이에요. 생리를 경이로운 일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엄청 귀찮은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때의 감정을 날것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서 넣었습니다.



Q: 비슷한 선상에서 댓글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특히 부정적인 인식을 비출 때 댓글을 보여주는 방식을 많이 썼어요. 다 감독님이 직접 읽어보고 선별한 것들인가요?


A: 네. 댓글은 지금 한국 사회의 이슈에 대한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댓글 수집을 정말 많이 했고요, 욕설이나 패륜적인 표현들은 최대한 걸러서 영화에 넣었습니다.



Q: 아무래도 그런 말을 얼굴 들고 해줄 인터뷰이가 없었던 탓일까요? 혹시 그런 댓글 속 생각을 말로 할만한 사람을 찾아가 인터뷰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는지요?


A: 사실 남자 분들 인터뷰를 좀 했어요. 그런데 막상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까 날것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익명의 댓글들을 넣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영화가 이야기를 전환하고 확장해가는 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리에 대한 고대부터의 인식을 이야기하다가 ‘그게 어떠하든 간에 여성들에게는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있다. 흐르는 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본격적인 생리용품 이야기로 들어가거든요. 어떻게 이야기를 맺고 끊을까 고민을 많이 헀을 것 같아요.


A: 처음에는 ‘내가 왜 생리대만 썼을까? 다른 용품은 뭐가 있을까? 그것들에 대해 왜 알 기회가 없었을까? 시장은 왜 한 가지만 유통했을까?’에 대해서 궁금했던 거예요. 그걸 취재하다가 우리나라에서 생리 용품이 획일화된 이유가 이에 대한 논의가 안 됐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었고 관심도 없었다는 걸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 금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쉬쉬하고 있다는 건 다 알지만, 왜 쉬쉬하게 됐는지 기원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서양의 종교가 생리를 죄악시했던 역사를 영화에 넣어야 했고 혐오하는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지하철 이야기도 넣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잖아요? 어쨌든 현실을 이야기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내레이션을 써서 이야기를 전환한 거죠. 그렇게 다양한 생리 용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많은 선택지들이 과연 누구에게나 있는 선택지일까 물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무상생리대 이슈까지 끌고 오게 된 것입니다.



Q: 끝에 가서는 생리용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여성 스스로의 몸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끔 이끈 예시를 보여줘요. 작은 가슴이 콤플렉스로 느껴지다가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감독님 내레이션이 나오면서요. 사회가 제시하는 프레임에 맞서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처음부터 이런 의미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나요?


A: 그렇게 이야기가 확장되리라고는 예상 못했어요. 제가 그런 인터뷰를 한 것도 기억을 못하고 있었어요. 찍어둔 영상을 다시 보다가 발견한 거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생리라는 행위와 여성의 몸에 대해서 긍정하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여성의 몸에 대한)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춰가려고 노력했던 사람인데, 영화를 찍으면서 그 기준이 개인의 행복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나를 불행하게 만든 그 기준들이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몸을 긍정하기도 전에 외부에서 끊임없이 좋지 않은 정보들이 들어왔던 거라고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청소년들, 20대 초반의 여성 분들이 많이 보고 몸에 대한 긍정의 기운을 받아가길 바라요.







Q: 남자 형제도 없고, 여자가 많은 예술중학교, 대학교 학과를 다니면서 여초 사회만 경험하다가 방송과 영화 일을 하면서 남성만의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거기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이제 막 사회를 경험하기 시작한, 조금씩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A: 제가 감히 어떤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느꼈던 걸 말씀 드려볼게요. 여전히 미디어는 남성 중심적이에요. 특히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남자 연예인들은 글래머러스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되게 쉽게 해요. 그런데 만약 여자 연예인이 남성을 두고 비슷한 의미를 담은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큰 논란이 된단 말이죠. 이건 여성의 언어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남성의 몸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문화 자체가 없는 것이잖아요. 저도 이런 점들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와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봤을 때도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여성성을 다루는 콘텐츠가 현저히 부족해요. 그래서 저는 여성 분들이 기존의 매체들을 볼 때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라요. 결국 미디어가 많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감독님이 인상 깊게 본 여성 중심의 콘텐츠들을 소개해주세요.


A: 넷플릭스를 비롯한 미국 드라마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라는 드라마는 ‘위즈’라는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했던 여성 작가이자 제작자인 젠지 코한의 작품이에요. 저는 여성을 다룬다고 해서 여성이 항상 영웅이거나 긍정의 이미지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드라마에는 여성들간의 배신이나 권력 다툼이 날 것 그대로 나오고 정신 나간 여자, 인종주의자, 종교에 미친 여자 등등 정말 무궁무진한 캐릭터들이 나와요. 그리고 일단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그레이스 앤 프랭키’라는 드라마도 추천하고 싶어요. 노년의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가능할까 잘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굉장히 재미있고 세련되고 긍정적인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데, 이 시트콤을 보면서 좋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팍스 앤 레크리에이션’도 추천하고 싶어요. 저는 젠더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재미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 훌륭한 작품들이에요.

제 인생 소설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예요. 근미래에 불모지가 된 미국 땅에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기계로 취급되는 사회의 이야기를 다뤘어요. SF소설로 분류되지만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에요.



Q: 감독님께서도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책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려요.


A: ‘생리공감’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생리 이야기만 담았다기 보다는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점들을 많이 썼어요. 특히 우리가 서로의 몸에 대해 너무 모르는 상태로 어른이 돼서 성폭행 문제, 단톡방 문제 같은 사건들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정선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합의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거라고 느꼈달까요. 이런 사회와 관련해서 제가 느낀 점들을 담은 책입니다.



Q: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시선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서 베스트 러프컷 프로젝트상을 수상했어요. 영화제에서 <피의 연대기>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늘 뜨거웠습니다. 기억에 남는 영화제에서의 경험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서울독립영화제 GV 대기 중에 한 자원활동가 분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되게 뭉클했는데 쑥스럽기도 하고 경황도 없어서 반응을 잘 못해드렸어요. 이렇게나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어딜 가든 자원활동가 분들이 많은 용기를 주셨습니다.



Q: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마지막 영화제 버전을 상영했고 개봉을 준비하면서 또 편집을 거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봉 버전으로 편집하면서 바뀌거나 추가된 부분이 있나요? 영화제에서 관람한 분들도 극장을 다시 찾을지 모르니까요.


A: 미공개컷들이 많이 들어갔어요. 그리고 영화제 버전을 본 분들 사이에서 생리컵 홍보 영화 아니냐는 반응이 좀 있었어요. 저도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있어서 생리컵 이야기를 좀 줄이면서 면 생리대, 탐폰 등 다양한 생리용품 이야기를 보완했어요. 그리고 영화제가 끝나고 나서야 어떤 기회를 통해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앓고 계신 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분의 생리와 관련된 경험도 인터뷰에 담았습니다. 음악도 엄청 좋아졌습니다.(웃음)



Q: <피의 연대기>가 첫 연출작인데, 전에는 어떤 일을 해왔는지 궁금합니다.


A: 원래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등단을 못했어요.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취직과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다 학교 선배로부터 시나리오 쓰는 일을 소개 받았는데, 그 영화가 다큐멘터리로 기획이 되어서 그 작품에 작가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일을 하면서 우포늪에서 일 년 정도 살았어요. 늪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분들을 만나면서 그 동안 제 문제에만 천착해있었다는 걸 느꼈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소설로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다큐멘터리가 좋아졌어요. 그렇지만 연출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피의 연대기>를 처음 구상할 때만 해도 제가 프로듀서를 하고 따로 감독님을 구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수소문한 감독님들이 다 작업을 하고 있었고 더 늦어지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제가 연출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Q: 결과적으로 하길 잘했다고 느끼나요?


A: 무엇보다 재미있었어요. 영화는 글과 달리 공동 작업이잖아요.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제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실력 있는 스태프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운이 좋게도 제 역량보다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기작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안 하려고요.(웃음)



Q: 스태프 분들께 100% 인건비 지급이 완료됐다고 들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바 있고 서울독립영화제 GV에서도 감독님이 직접 이야기해서 관객들이 박수를 많이 쳤거든요. 이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A: 제가 작가로 일할 때 그런 문제와 관련해서 불편해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 작품에 임했느냐를 떠나서 그 사람이 한 작업, 고민, 자기개발을 포함한 모든 것이 작품이 되는 거잖아요. 그에 걸맞은 인건비를 주자고 처음부터 멋모르고 피디님과 약속했어요. 물론 제가 자신 있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더 드리고 싶었음에도 못 챙겨드린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돈이 있어야 차기작 하겠다는 말을 한 거예요. 인터뷰나 GV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강조한 건, 사실 정말 기뻐서예요.(웃음) 지급이 잘 완료된 게 영화와 관련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자랑 중에 하나입니다.







Q: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


A: 많은 분들이 편하게 즐겁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길 바라요. 이미 이 이슈에 대해 민감한, 고민해온 분들에게는 평이한 영화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리 이슈와 관련해서 <피의 연대기>가 초입이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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