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우리’ <다시 태어나도 우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0월 19일(목)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문창용 감독, 전진 PD(공동 감독)
진행 엣나인필름 마켓팅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이번 인디토크에는 유난히도 ‘N차 관람객’이 많았다. 관객들은 처음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시 극장을 방문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무언가 잊지 않고 마음 쓴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 속에서 잔잔한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진행: 스승 우르갼과 앙뚜를 만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문창용 감독(이하 문): 굉장한 우연이었고 행운이었습니다. 2009년에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였습니다. 당시 동양 의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이었고 중국을 거쳐 인도의 라다크에 가게 되었어요. 섭외된 의사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촬영을 위해 수소문 했는데, 현지 택시기사 분께서 저기 작은 마을에 가면 스님이면서 의사인 분이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마을로 가서 우르갼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인상이 매우 좋았고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모습이 진중했어요. 그렇게 스님을 촬영하던 중에 계속 방해가 되는 인물이 한 명 있었어요. 바로 다섯 살 난 꼬마 앙뚜였는데 며칠 지켜보니 스님과 그 꼬마가 서로 눈빛 교환을 하더라고요. 처음 보는 광경이었어요. 스승과 동자승의 관계가 엄격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눈빛이 나올까 궁금했고 둘의 관계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과 피사체의 거리가 궁금했어요. 연출자는 철저하게 관찰자가 되거나 혹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요, 평소에 거리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이번에는 어떻게 작업했는지 궁금합니다.
문: 개인적으로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다큐멘터리PD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제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재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사실 촬영 스타일은 다큐멘터리 감독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개론 서적에는 적정 거리 유지가 되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고 설명하지만, 저는 거리 둠이 중요한 문제라 생각하지 않아요. 억지로 거리를 두려고 애를 쓴 적도 없고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촬영하는 방식이 친구를 사귀는 것과 똑같았던 것 같아요. 단 우르갼과 앙뚜의 경우 외국인이다 보니 문화가 달랐고 종교적으로도 거리감이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몇 년 동안 같이 생활하며 말씀을 듣고 행동을 지켜보면서 제 나름대로 티베트 불교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앙뚜와 친해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져주는 축구 경기’도 많이 했고요.(웃음)
전진 PD(이하 전): 저도 마찬가지로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2010년에 우연치 않게 앙뚜가 처음 린포체로 임명되었을 땐 촬영을 거부 당했지만 그동안의 관계를 통해 결국은 촬영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 우르갼 스님께서도 저희를 관찰하셨어요. 티베트에서는 아침마다 마시는 전통 차가 있는데, 어느 날 저에게만 커피를 주시더라고요. 제가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기억하고 어디서 커피를 구해 오신 거예요. 저희를 많이 배려했어요.
진행: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멈췄던, 혹은 자신도 모르게 달려나갔던 순간이 있나요?
문: 천만 다행인 게, 위험한 상황은 없었어요. 우르갼 스님이 넘어질 때는 정말 순간이라서 헉, 했어요. 저희가 좀 떨어져 있어서 바로 대처할 수 없었거든요. 앙뚜가 난롯불을 지피던 장면에서는 실제로 촬영을 멈추고 같이 불을 꺼야 하나 갈등이 있었어요. 근데 전진 감독이 말하길, 그 당시 앙뚜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오디오로 들렸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듣고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파악한 거죠.
전: 난로를 지피는 장면을 잘 보면 앙뚜가 웃느라 카메라가 흔들려요. 그 모습을 보고는 저희도 심각하지 않다는 판단을 해서 카메라에 잘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외에 같이 울고 웃었던 상황들이 많아요. 마지막 이별 장면에서는 저희도 같이 울었고요. 눈싸움을 하는 장면에서는 나중에 저희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같이 합류해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관객: 영화 막바지에 “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아이가 되어있을 거다”라는 스님의 대사가 있어요. 그 장면에서 순간 영화 제목이 떠오르더라고요. 제목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문: 첫 제목은 ‘앙뚜’였어요. 하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제목을 짓게 됐습니다. 제목의 의미만 답변 드리자면 둘의 관계가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실은 그 대사가 환생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누구나 나이가 들게 되면 타인의 보호가 필요하고 혼자의 힘으로는 살아가기 힘들잖아요. 때문에 스님이 ‘아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 같아요. 그래서 앙뚜는 “나중에는 제가 스승님을 모실게요”라는 대답을 한 거고요.
진행: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제목은 국내 개봉을 하면서 정해진 제목입니다. 원래는 ‘앙뚜’라는 제목으로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이 됐어요. 그 당시에 저는 왜 ‘우르갼과 앙뚜’가 아닌 ‘앙뚜’라는 제목을 지은 건지 궁금했어요.
문: ‘나의 린포체’도 생각했었는데 주변에서 아이를 소유하는 듯한 뉘앙스라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제시한 제목은 다 거절당했어요.(웃음) 그래서 단순하게 ‘앙뚜’로 짓게 됐죠. 영화 속에서 우르갼 스님은 앙뚜 곁을 그림자처럼, 거울처럼 항상 함께 동행하는 인물이니까 굳이 스님에 대한 제목이 아니어도 의미전달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영화가 다큐멘터리보다는 극영화처럼 연출된 느낌을 받았어요. 왜 이별로 끝을 맺었는지, 이후의 이야기를 다룰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문: 당연히 연출의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 촬영기간 동안 영화 속 인물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고 저희가 카메라에 담고 싶은 순간을 기다렸어요. 예를 들면 앙뚜가 어떤 할아버지에게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있는데, 저희도 그 순간을 목격했거든요. 카메라와 오디오가 돌아가는 상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단지 앙뚜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만 할 뿐이었어요. 나중에 통역을 통해 알았고 앙뚜가 그 상황을 우르갼 스님께 털어 놓을까 생각하면서 기다렸어요. 결국엔 앙뚜가 얘기했고 영화에도 담을 수 있었죠. 촬영기간이 굉장히 길었고 그 중에서 선택된 컷이다 보니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점이 확실히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저런 상황을 포착했을까?’ 의문을 가지시는 것 같아요. 편집 자체도 연출이라면 연출이라 할 수 있어요. 이왕이면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점을 염두하고 편집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자면, 앙뚜가 티베트 캄을 찾아가서 사원을 바라보는 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어요. 저희도 기다릴 수 있었고요. 하지만 전생에 존재하는 티베트 캄, 즉 노스텔지어 같은 곳은 우르갼 스님을 통해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둘의 이별이 많은 여운을 주기도 했고요.
관객: 훌륭한 린포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문: 린포체란 ‘고귀한 존재’, ’스승님’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결국 삶의 지혜나 위로가 필요한 분들, 혹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대함을 의미해요. 이런 린포체의 역할은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수많은 제자와 큰 사원이 있어야만 가능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공부만 열심히 할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해요. 인도에서 다른 린포체들을 만나보았는데, 그 중 좋은 차를 타고 많은 사제들을 거느리는 한 린포체의 얼굴에서는 연민이란 것을 찾아 볼 수 없었어요. 실제로 앙뚜가 갈등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르갼 스님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구나 느낀 지점이 있어요. 여정 도중 어려운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을 때 어린 앙뚜 입장에서는 겁도 났을 텐데 주머니에 있던 사탕이나 동전들을 일일이 나눠주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스승의 가르침이 이제서야 빛을 발하는 건가? 아니면 전생의 기본적인 선한 마음이 드러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 영화는 관객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감독님 입장에서 투명하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문: 오랫동안 촬영하고 수많은 편집본을 만들면서 과연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 줄로 요약하자면 ‘척박한 환경에도 고귀한 영혼이 존재한다’에요. 어리고 여린 앙뚜와 그 옆을 우직하게 지켜주는 스승님, 두 사람이 주고 받는 소중한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상처받기도 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한걸음씩 극복해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영화에 옮기려 노력했습니다.
관객: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기획프로젝트라는 점이 놀라웠어요. 촬영 기간을 계획한 건지, 아니면 원하는 스토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 건지 궁금합니다.
문: 스토리에 대한 결론은 전혀 없었어요. 각본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았고요. 앙뚜가 린포체가 될 줄도 몰랐을뿐더러 매번 스토리 방향의 갈피를 못 잡았어요. 하지만 매 순간 같이 호흡하고 변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끝까지 오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단 한 가지, 두 분이 언젠가는 이별을 겪어야 했고 그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뚝심 있게 자리를 지키고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완성한 것 같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참 지지고 볶고 서로 다투기도 하면서 나온 스토리입니다.
관객: 앙뚜와 우르갼이 종교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순수한 관계를 유지했을까요?.
문: 제가 생각하기에 우르갼 스님은 린포체라서 앙뚜를 사랑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종교를 떠나 분명히 두 사람이 통했던 게 있어요. 이별할 때 우르갼은 앙뚜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요. 앙뚜는 스승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말하고요. 앙뚜도 마찬가지지만 우르갼 또한 앙뚜에게 가르침 그 이상의 것을 받았던 것이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처럼요.
관객: 긴 촬영기간 동안 언제 가장 행복했나요?
문: 긴 시간 중 한 순간을 꼽아서 답하자니 이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네요. 촬영 도중 전진 감독과 제가 쓰려져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빨리 촬영 나가야 한다는 걱정에 서로 산소마스크를 막 나눠 썼던 기억이 납니다. 또 여정 도중 목이 너무 말라서 설산의 눈을 퍼먹으며 “팥만 있으면 팥빙수다”라며 농담하던 순간, 힘든 일로 속이 상해 술 먹고 울던 저를 위로해 준 우르갼 스승님의 모습. 그런 순간들이 생각나요. 때문에 더 애정이 가고 사소한 것에도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영화를 또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디토크가 진행되는 내내 감독과 관객 서로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말들이 자주 오고 갔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물론이거니와 영화를 기억하려는 관객들의 마음이 감동스러웠다. 이번 기회로 영화의 존재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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