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범 님의 글입니다.
독립영화의 안정적인 상영과 표현의 자유를 지켜온 인디스페이스는 후원캠페인 ‘Save Our Story, Save Our Space’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인디스페이스에 대한 독립 영화인들의 추억과 인디스페이스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는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야간비행>, <백야>, <후회하지 않아> 등의 완성도 있는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자 영화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는 독립영화인, 이송희일 감독님에게 인디스페이스에서의 기억과 독립영화전용관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들어봤습니다.
- 영화제 '인디포럼' 의장 제도를 변화하고, 올해 의장을 새롭게 박홍준 감독이 맡았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9년간 인디포럼 의장직을 수행해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변화를 갖게 되었는지와 소감이 궁금합니다.
원래 오래 동안 할 생각도 없었고, 장기 임기가 회칙에 규정돼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몇 번 의장직을 다른 감독에게 양도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잘 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자기 작품 들어가면 바쁘다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올해까지 해서 10년을 넘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인디포럼 작가회의 감독 층이 두터워졌습니다. 그래서 1년씩 순번으로 돌아가면서 조금 더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자고 제안하게 됐습니다. 더불어 1년 순번제로 임기를 정하게 되면, 골고루 작가회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생깁니다. 첫 번째 스타트를 오래 동안 인디포럼에서 일해 온 박홍준 감독이 끊게 된 겁니다.
- 처음으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된 감독님의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고, 상영될 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인디스페이스 개관이 2007년도이니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됐던 <탈주>(2010)가 첫 번째 영화인 것 같습니다.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첫 장편영화인 <후회하지 않아>(2006)는 개봉 당시 독립영화전용관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아트하우스 CGV 몇 개관과 지역 예술영화관에서만 상영됐었습니다. 이제 서울에 독립영화전용관이 드디어 생겼구나, 하는 소회가 들었습니다.
- 인디스페이스는 명동 중앙시네마에서 시작해서, 광화문의 미로스페이스를 거쳐 현재 종로3가에 위치한 서울극장으로 이전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각각의 인상은 어땠는지, 방문하시면 주로 들르던 곳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명동 시절이 제일 좋았습니다. 인디포럼 영화제를 당시 명동 인디스페이스에서 열었는데, 근처에 술집들이 많아서 영화제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광화문 시절에는 제 개봉영화 GV 때문에 뻔질나게 들락거렸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옆쪽 상가의 술집들을 많이 이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주변에서 영화 관객들과 파티를 가끔 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이사 온 종로는, 뭐 다들 아시겠지만, 술집이 많지 않습니까. 인디포럼뿐만 아니라 제 영화 상영할 때도 놀 수 있는 곳이 많아서 행복합니다.
- 명동에서 첫 개관할 때, 감독님과 고수희 배우가 같이 사회를 보셨습니다. 어떻게 해서 사회를 보게 되었는지, 재밌는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인디스페이스 측에서 그냥 사회 보라고 해서 봤습니다. 고수희 배우와는 단편영화를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어서 친한 사이였는데, 함께 사회를 보게 돼서 편했었습니다. 그때 사회를 보면서 빵 터진 게 인디스페이스 로고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콘돔’과 닮지 않았냐고 했고, 앞줄에 앉아 있던 김동원 감독님이 저질이라고 해서 다들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광화문에서 두 번째로 개관할 때도 변영주 감독님과 함께 사회를 보셨는데, 개관식 때마다 사회를 볼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두 번째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죠. 뭐, 그게 다 제 미모가 뛰어나서 그런 거겠지만. 변영주 감독이야 워낙 오래 동안 잘 알고 지냈던 사이라 사회 보는 게 편하고 좋았습니다. 또 변영주 감독이 워낙에 사회도 잘 보고 말발도 좋아서 잘 리드했습니다. 또, 세 번째 개관하게 되면 다시 불러주실 거죠?
- 서울극장으로 이사 온 인디스페이스의 첫 인디토크 역시 이송희일 감독님의 영화였습니다. 인디스페이스와 인연이 깊은데 감독님에게 인디스페이스는 개인적으로 혹은 독립영화인으로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인디스페이스는 나고 자란 친정집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입니다. 다른 곳에서 영화 GV를 할 때와는 기분이 많이 다릅니다. 그만큼 기대고 있는 게 많은 곳입니다.
- 서울에 많은 독립예술영화관이 있지만, 독립영화전용관으로는 인디스페이스가 유일합니다. 인디스페이스에 대해서 자랑 혹은 칭찬을 해주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다 중요한 공간들이지만, ‘독립영화전용관’으로서의 인디스페이스는 할 일이 많은 곳입니다. 다른 예술영화관들은 극장 수익을 고려해 해외 영화 상영들을 상영하고, 관객이 드는 영화들을 전면에 배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인디스페이스는 한국 독립영화들을 위주로 상영합니다. 그래서 가장 근원적으로 한국에서 “독립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지속하는 곳입니다. 독립영화의 철학적 기지인 셈입니다.
- <백야>(2012), <지난여름, 갑자기>(2012), <남쪽으로 간다>(2012)를 합친 ‘백.지.남’이 인디스페이스에서 가장 많은 인디토크를 한 영화로 꼽혔습니다. 수많은 인디토크 중 기억에 남는 인디토크 혹은 관객 질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백.지.남>이 가장 많이 인디토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후회하지 않아>가 개봉했을 때 인디스페이스가 있었다면 그 영화가 이미 그 기록을 깼을 것 같습니다. 인디스페이스에서 했던 인디토크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야간비행>(2014) 개봉했을 때였습니다. <야간비행>은 두 가지 실화를 바탕으로 픽션화한 영화였는데, 어느 날 그 실화의 실제 주인공이 영화를 보러 와서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게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랄까.
- 인디스페이스가 힘든 상황에 있고, 독립영화계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한 감독으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독립영화계는 공적 지원의 축소, 정치권력의 압력 등 사면초가에 놓인 형국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한국 독립영화 역사가 길게는 30년, 적게는 20년 동안 흘러오는 동안 언제는 그렇게 태평성대 한 시절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 차기작 혹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시나리오 작업 중입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펼쳐놓고 준비 중입니다. 인디포럼 작가회의를 이제 후배들이 맡게 되었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영화 일에만 매진할 생각입니다.
- 마지막으로 인디스페이스에 대한 응원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디스페이스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공간입니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꼭 버텨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디스페이스가 생긴 지 딱 10년이 되는 해. 10년이라는 상징성은 중요합니다. 올해는 독립영화 역사에 추가될 한 해입니다.
인디스페이스 개관식의 고정 사회이자 최다 GV의 기록을 가진 이송희일 감독님의 추억에 대해 듣고, 인디스페이스가 단순한 상영관을 넘어 독립영화진영에서 철학적 기지임을 확인했습니다. 녹록하지 않은 영화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인디스페이스와 이송희일 감독님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후의 보루’는 무너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공간이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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