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는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을 계속해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1월 23일에 이어 지난 6월 25일,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 변경과 관련하여 2차 비공개사업설명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영진위가 공개한 사업안은 기존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운영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며 영진위의 정책비전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지향을 담아내기는커녕 지난 십여 년간 이어온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 제작, 배급, 개봉의 안정적인 지원확대를 위해 시행해온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을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은 영진위가 밝히듯이 ‘다양성영화 지원 및 공정환경조성을 통한 영화문화 융성’을 목표로 ‘다양성영화의 온/오프라인 유통과 배급지원으로 다양성영화의 선순환 구조 정착에 기여하고, 국민의 다양한 영화문화 향수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영진위가 내놓은 사업안은 이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예술영화전용관의 프로그램 자율성 침해와 관객의 영화선택기회가 박탈될 것이다.
기존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은 영진위가 선정하는 300~500여편의 예술영화를 연간 219일 동안 자율적으로 상영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영진위의 사업안은 위탁단체가 선정하는 24편의 영화를 매달 2편씩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하는 방식이다. 이 사업안이 시행될 경우, 전국의 예술영화관에서 같은 시기에 동일한 영화가 상영될 것이며 이는 획일화된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것이다. 또한 개별 예술영화전용관들의 고유성격과 지향성이 무시되어 프로그램 편성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며, 예술영화전용관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선택의 기회를 박탈 당하고 말 것이다. 이는 영화문화생태계에서 다양성을 제1의 가치로 삼아온 영진위의 정책지향을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선정된 24편의 영화만을 지원하게 됨으로써 독립·예술영화 다양성을 훼손시킬 것이다.
기존의 지원사업이 예술영화전용관의 운영과 프로그램 기획의 방향을 기준으로 극장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던 반면, 영진위의 사업안은 영진위가 선정한 영화를 상영하면 그 상영회차의 횟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는 방식이다. 이 사업안이 시행될 경우, 극장에서 개봉할 기회를 얻는 독립·예술영화는 개봉하기만 하면 대관료를 받을 수 있는 24편의 영화 이외에는 대폭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 사업안은 한국의 독립·예술영화의 활성화와 안정적인 개봉 그리고 관객의 다양한 영화선택권 보장에 있어서 어떠한 진흥도 불러올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불필요한 외부위탁단체를 통해 예산이 낭비될 것이며, 사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해칠 것이다.
새로운 사업안은 지원 사업 추진을 위해 외부위탁단체를 두고 있다. 영진위는 위부위탁의 필요성으로 ‘영진위가 독립·예술영화 유통과 관련하여 비전문가임’을 들었는데, 이는 지난 십여 년간 해당 사업을 집행해온 진흥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해왔다는 자기 고백일 뿐이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역할이 불명확한 위탁단체를 두겠다는 계획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업 추진 중 지원 작품 및 극장의 선정에 있어 특정영화나 극장을 배제하는 검열 논란이 되풀이될 것이며, 실제 현장에 집행되어야 할 예산을 축소시키는 예산 낭비가 될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영진위의 사업안은 진흥사업을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며, 영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기존의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예술영화관에 대한 지원 대신 '영진위가 선정한 위탁단체를 통해 배급사에게 예술영화의 상영관을 확보하게 하고 일정 P&A 비용을 보장․지원하겠다'는 새로운 사업 계획은 원칙적으로 국민의 다양한 영화문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독립예술영화관에 대한 공적 지원을 포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정한 영화를 상영할 경우에만 지원하겠다는 것은 지원 정책을 통해 상영되는 영화를 선별하는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일 뿐이다. 지원 정책이 통제의 수단이 될 경우 영화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한국영화의 근간이자 미래라 불리는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들은 최근 더욱 극심해지고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제작-배급-개봉의 수직계열화로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고 한국영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영진위는 그동안 독립·예술영화의 제작과 배급 그리고 개봉 등 전 과정에 걸쳐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쳐왔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혀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독립·예술영화가 안정적으로 개봉하여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영진위는 이 사업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개선하고, 발전시키기는커녕, 사업 자체를 폐기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영진위는 대전과 대구, 두 지역의 예술영화관 지원을 중단하고, 대신 멀티플렉스 극장을 지원하는 방안을 진행하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들과 독립·예술영화배급사 그리고 제작자들은 지난해부터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지원정책에 대한 개선을 촉구했으나 되돌아온 답변은 개선이 아닌 현행의 사업안이었다. 더불어 영화계와의 대화를 통해 기존 사업의 보완과 개선에 대해 협의할 것을 제안해왔으나 영진위는 지난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두 차례의 비공개사업설명회만을 개최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어떠한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오는 8월, 일방적인 사업시행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전국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은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의 폐지를 전제로 한 영진위의사업안 시행에 반대함을 천명한다.
올해 사업이 집행되어야 할 시기를 이미 수개월 넘기고도 여전히 구체적인 방안을 공식적으로 내놓지 못하는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 폐지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면 이는 올해가 아니라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인 내년에라도 늦지 않았다. 문화정책은 오랜 기간의 전문적 논의와 민관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영진위가 충분한 준비도, 검증도, 심지어 공개적인 논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사업 시행을 서둘러 진행하려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여, 다음과 같이 영진위에 제안한다.
첫째, 이미 집행되어야 할 시기를 놓친 올해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은 지난해와 같은 내용으로 속히 집행되어야 한다. 이미 진행해야 할 집행 시기를 이렇게 무작정 유보하는 것은 영진위의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둘째, 영진위는 기존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을 유지하면서 독립, 예술영화가 다양한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공개적 논의를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
2015년 6월 29일
전국독립예술영화전용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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