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애도와 용서는 없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신동석 감독은 <살아남은 아이>를 연출하기 전 세 번 정도, 죽음 이후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의 달라진 삶과 내면을 다루는 이야기를 썼지만,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동석 감독은 죽음은 매일 우리의 삶을 배회하는 일반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피하지 않았고 <살아남은 아이>를 통해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해 보인다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와 죽은 아들이 살려낸 아이의 만남이라는 딜레마를 시작점으로 삼은 <살아남은 아이>는 세 인물의 관계와 내면의 변화를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고 대단히 섬세하게 바라본다. 영화의 섬세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깊은 여운을 느끼는 동시에 완벽한 애도와 용서가 존재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내놓지 못하더라도, 고민을 하는 일 자체만으로 우리의 삶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단편영화 <가희와 BH>(2006)를 연출한 이후 오랜만에<살아남은 아이>라는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살아남은 아이>는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한데, 간단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일단 기쁘죠. 공공기관으로부터 제작지원을 받아서 만든 영화인데, 배급사나 개봉에 관한 사항들을 정해놓지 못한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에 사실 출연해주신 배우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항상 있었어요. 다행히 개봉하게 돼서 그 감사한 마음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기쁜 거 같아요.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를 포함한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상 쾌거까지 이루면서 많은 관객이 <살아남은 아이>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를 간단히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자식을 잃은 부부가 아들이 죽으면서 살려낸 아이를 만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주제적으로는 애도와 용서에 대해 다루는 영화입니다.


 

<살아남은 아이> 이전에 세 번 정도 주인공의 가족 중 누군가 죽은 이후에 시작되는 이야기를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 세상에 남겨진 자들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러게요. 사실은 모르겠어요. 저도 사별이라는 고통스러운 아픔에 대해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어렵죠. 실은 글을 쓰면서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물론 이 주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관심 있었고, 언젠가 한 번쯤은 다루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이런 주제를 다루면서도 제가 계속 이런 주제를 쓴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을 구상하고 이야기로 꺼낼 수밖에 없으니까 이상하게 계속 쓰게 되더라고요저도 주변에서 누군가 돌아가시는 일을 경험했고 그런 일들 앞에서 아픔이나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쓰고 나서 스스로도 좀 후련해지고 위안을 받는 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 쓰는 것 같아요.

 






20회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는 <살아남은 아이>를 향해 이창동과 키에슬로프스키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놉시스만 놓고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2008)가 생각이 났습니다. 남겨진 자들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낼 때 참고한 영화나 문학이 있나요?

 

어떤 작품이 생각날 수 있다, 혹은 기시감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어요. 자식을 잃은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은 굉장히 많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이야기가 어떻게 하면 신선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이 영화만의 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직접 어떠한 것을 참고하는 게 그다지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서경식 교수님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라는 책이 있어요. 쁘리모 레비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를 경험하고 살아남은 생존자인데, 이 사람이 수용소에서의 경험담을 증언문학으로 열심히 풀어냈어요. 그런데 수용소에서 풀려난 지 한 30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자살했어요. 이 책을 쓴 서경식 교수님은 보통 트라우마가 심하다고 하면 수용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있다가 자살했을 텐데 쁘리모 레비는 증언문학도 펴낸 뒤 한참 지나서야 자살을 하게 된 것에 의문점을 가졌고,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쓴 책이에요. 이 책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살아남은 아이>가 갖고 있는 질문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질문들이 쌓여서 이와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제목을 살아남은 아이라고 짓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소재적으로 기현이라는 인물이 성철미숙의 아들이 죽으면서 살려낸 아이라는 점에서, ‘살아남은 아이가 관객 분들한테 영화 시작 설정을 알려 주는 데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보시면 알겠지만, 기현이라는 인물에게 어떤 선택을 해서 진정으로 살아남게 되는지 질문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뜻을 담고 있어서 좋다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제가 김여진 배우님에게 시나리오를 처음에 보여드렸을 때 배우님께서 제목 때문에 시나리오를 한참 못 보셨대요. 살아남은 아이가 있다고 하면은 살아남지 않은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굉장히 마음이 아픈 이야기일 것 같아서 한참 동안 망설였다고 해요. 그래서 저한테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 좋아하겠지만, 보기 전에 제목 때문에 망설일 수도 있으니 제목을 다시 지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더 좋은 제목이 도무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이 제목이 만족스럽고 좋았어요. 제 사정을 이야기 드리니까 배우님도 연기를 직접 해보고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제목이 좋다고 말씀해주셨고 이해를 해주셨어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가 워낙 무겁다 보니 배우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배우 최무성, 김여진, 그리고 성유빈과 얽힌 캐스팅 비화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처음으로 캐스팅을 생각해 본 건 초고 작업을 마친 다음이었어요.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면 좋을지 리스트를 적어봤는데 그때 다이어리에 적어 놓은 배우 세 분이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배우였어요. 제일 첫 번째 리스트에 적어 놓은 배우 분들 전부 다 캐스팅에 성공했죠. 사실 저는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세 배우의 캐스팅이 다 완료되었을 때였어요. 굉장히 앙상블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중견 배우 분들이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게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나리오에 동의를 해주시고 흔쾌히 출연을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의 삶과 감정 기복을 연기하는 게 정말 힘든 일임에도 배우 세 분은 대단히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감독님께서 배우 세 분에게 어떤 연기 디렉팅을 했나요?

 

최무성 배우님은 극단을 운영해요. 소극장도 가지고 계실뿐더러 연극 연출을 오랫동안 하셔서 시나리오에 대한 해석력뿐만 아니라 연기와 연출에 대한 경험도 저보다 훨씬 많아요. 그래서 제가 어떤 연기 지도와 연출을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말이 안 돼요. 그런데 최무성 배우님이 처음 미팅 때부터 자기는 영화를 찍고 배우로서 참여할 때는 연출가를 믿고 간다고 말씀하시면서 낮은 자세를 취해 주셨어요. 배우님도 연출 일을 하니까 연출가를 더 믿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면서요. 연기 지도나 디렉팅을 드릴 게 많지 않았어요

김여진 배우님도 마찬가지였어요. 워낙 역할에 몰입해서 연기하시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 캐릭터에 대한 설명만 좀 드렸어요. 김여진 배우님께서 다 이해하고 나서는 따로 디렉팅을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제가 원하는 대로 해주셨어요. 근데 역할에 몰입해서 잘하고 계시다가 순간 정지한 사람처럼 잠깐 멈추실 때가 있어요. 이런 적이 현장에서 세 번 정도 있었는데, 시나리오대로 해보니까 감정이 덜그럭거려서 어떤 행동을 미리 하고 대사를 하면 훨씬 자연스러울 거 같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마치 감정이 자신의 육체를 관통했을 때처럼 덜그럭거리는 감정을 딱 캐치하신 다음 연기하셔서 저도 신기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선배님의 말씀대로 수정한 다음 촬영하면 굉장히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보였어요

성유빈 배우는 워낙에 연기력도 뛰어나고 시나리오에 대한 해석력이 좋고 이해력도 높아요. 그래도 좀 걱정을 했던 것은 비교적 어린 나이여서 정서적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을 촬영 전에 필요하다면 제가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을 했어요. 시나리오 상 기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은 성철과 미숙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보니 기현의 전사를 이야기해줬어요. 예를 들어 기현은 어렸을 때 이러한 에피소드를 겪었고, 엄마랑 아빠와는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지어내서 해줬어요. 그다음에 영화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김여진 배우와 성유빈 배우의 첫 번째 미팅 장소를 제가 알고 있는 인테리어 가게에서 주선을 했어요. 진짜 영화 속 장면처럼 성유빈 배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김여진 배우님이 앉아 있다가 유빈이를 바로 볼 수 있게요. 그리고 어색하지만 제가 성철인 것처럼 성유빈 배우와 함께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등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정서적 경험과 기억을 제가 보충해주려고 사전에 준비했어요. 세 분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연기 지도 및 연출 방식을 드리려고 노력을 한 것 같아요.

 






극 중 성철은 아내 미숙과 함께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면서 도배, 장판, 샷시 등 현장 일을 담당합니다.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더 나아가 새하얀 도배지를 바르는 작업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의식과 연관성이 있나요?

 

시나리오 구조를 짜다 보니까 성철과 미숙이 한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하는 설정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했어요. 한국에서 실제로 인테리어 가게를 부부가 함께 운영하면서 남편이 주로 공사를 맡고 부인이 실측, 회계, 상담 등을 맡아 분업을 해서 운영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래서 주요 배경을 인테리어 가게로 설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아는 지인을 통해서 실제로 부부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가게에 가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같이 보냈어요. 기현처럼 공사하는 사장님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짐도 나르면서 도배나 장판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 옆에서 지켜봤어요. 그렇게 보다보니까 도배 작업이 특히 눈에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헌 벽지를 뜯어낼 때는 사람이 막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금이 간 콘크리트 벽 위에 새하얀 벽지를 바르는 게 성철 입장에서는 자신의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행동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기현의 입장에서는 죄책감을 새하얀 벽지로 덮으려는 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도배라는 작업을 영화 속에 잘 표현한다면 관객 분들도 캐릭터에 맞게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도배 작업을 영화 속에서 중점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정삼각형이 생각났어요. 그 정도로 인물의 관계나 감정이 끝까지 균형을 잃지 않아서 놀라웠어요. 이런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시나리오, 연출, 편집 등 영화를 만들면서 모든 측면에서 엄청 많은 공을 들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세 사람의 감정의 축을 균형 있게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큰 틀 안에서 조금만 바꾸면 이 균형의 축이 무너지면서 한 인물한테 이야기가 가버리는 경험을 많이 겪었어요. 균형을 맞추는 데 굉장히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쓰다가 세 명 다 균형감 있게 드러난다는 판단을 내린 뒤 영화를 찍기 시작했죠. 근데 편집하는데 아까 말한 문제가 또 발생하더라고요. 그래서 프로덕션부터 편집까지 미세하고 정교하게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고 가장 많은 신경을 쓴 부분이었어요. 그렇게 계속 노력을 해서 균형이 표현되는 결과물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수미상관을 이루는 장소의 이동 역시 눈에 띄었습니다.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강에서 시작해 성철이 기현을 대면한 도로 위, 세 사람이 함께 얽히게 된 작업 현장과 인테리어 가게, 사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각자의 집, 그리고 다시 강으로 이동합니다. 이와 같은 장소의 이동이 복수와 속죄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하나요?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성철이 처음에 천장 누수를 확인한 뒤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옥상에서 기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잖아요. 그 장면이 자기 눈에는 마치 강처럼 보였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물론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성철이 천장 누수를 발견한 후 옥상으로 갔을 때 기현을 바라보는 모습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좋은 오프닝 시퀀스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구성을 했어요. 근데 공간 위주로 봐주시는 관객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렇게 관찰해주는 관객 분들이 놀라웠고 예리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 영화가 세 사람이 각자의 강에 이미 빠진 채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진짜 강에서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제가 혼자서 비유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 공간적으로 드러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로케이션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쓴 공간은 강이죠. 애들이 놀러 갈 만한 현실적인 장소이지만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환상적인 느낌이 있는 공간을 원해서 굉장히 어렵게 찾았어요.

 






세 사람이 관계를 형성하게 된 시작점이 아들 은찬의 죽음이지만, 스크린 밖에서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그 사건의 내막을 드러내기 위해 플래시백 장면을 활용했을 텐데 <살아남은 아이>에서는 과거 회상 장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과거 장면을 삽입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관객들이 세 인물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부부의 관점에서 보기를 바랐어요. 부부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경험한다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영영 알 수 없는 거잖아요. 더군다나 기현이 아들의 죽음에 관련된 진실을 이야기했을 때 현실적으로 부부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아이의 표정을 보면 사실인 것 같지만, 그래도 기현이 말한 게 과연 사실일까?’라고 의심해 볼 수 있죠. 그런 혼란스러움도 관객 분들이 고스란히 느껴주시길 바랐어요. 근데 그런 장면에서 과거를 재현한 플래시백을 넣었다면 부부의 관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단 한 장면도 넣지 않았습니다. 연출적으로 제가 고집을 많이 부렸죠.

 


아들의 죽음 이후 주변 사람들은 성철과 미숙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되레 마음의 상처를 건드립니다. 부족한 공감 능력이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애도 및 위로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나요?

 

사실은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철과 미숙은 아들을 잃었다는 같은 고통을 공유하지만, 서로가 죽음에 대처하는, 애도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성철과 미숙한테 어떤 위로를 전하려고 하지만, 그냥 우리가 기존에 해오던 그대로 상투적이거나 진부한 방식으로 전한다면 상처가 쉽게 덧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위로는 어렵지만 어쨌든 우리가 같이 함께 아픔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이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해야 진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같이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느꼈고 찍을 때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성철과 미숙이 보여준 애도의 정도나 깊이가 예상치 못한 기현의 고백을 기점으로 엇갈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담긴 애도라는 감정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방금 말했지만 위로가 어렵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성철과 미숙이 보이는 애도는 깊이가 아니라 방식에서 차이가 드러날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성철은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아들의 무덤을 꾸며주면서 극복하려는 사람이에요. 아들의 무덤 옆에 비석도 세워주는 등 훌륭하게 꾸며주면서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사람이죠. 반면 미숙은 아들을 잃은 고통을 함께하면서 아들을 계속 상기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려고 노력해요. 동생을 갖는 게 은찬의 소원이었기에 미숙은 둘째를 가짐으로써 은찬을 떠올리고 싶었던 거죠. 기현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것의 연장선에 놓여있다고 봤어요. 기현과 함께 있으면 아들을 잃었다는 고통 때문에 아파하면서도 이 아이와 삶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더 아프고, 누구의 애도가 더 깊이가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방식이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기현의 고백 이후 진실을 알고 나서 두 사람의 행동이나 방식이 교차하고 달라지는 부분도 성철과 미숙이 각자 지닌 성격을 이어가다보니 이와 같은 선택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살아남은 아이>를 보다가 중후반이 되어서야 이전까지 영화에 음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뒤늦게 궁금해집니다. 김해원 음악감독님과 함께 어떤 음악 컨셉을 잡았나요?

 

김해원 음악감독님과 첫 미팅 때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음악이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몰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사실 그게 음악감독님 입장에서는 굉장히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거든요. 당연히 음악이 영화에서 어떠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음악감독님은 흔쾌히 그 컨셉을 받아들여 주시더라고요. 김해원 음악감독님이 영화과 출신이다 보니 연출가의 마음을 더 이해해주셨고, 도전해볼 만한 컨셉으로 받아들여 주셨어요. 저는 음악이 인물의 감정보다 좀 늦게, 즉 인물의 감정이 지나가고 난 자리를 어루만져주는 듯한 방식으로 존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음악이 굉장히 미묘하더라고요. 바이올린 선율이 조금만 더 강해져도 어떤 경우에는 음악이 인물의 감정보다 앞서나가는 일이 발생해서 음악감독님과 그런 부분들을 조절해가면서 작업을 했어요.

 


영화제와 시사회에서 영화를 미리 만난 많은 관객들이 명장면으로 엔딩 시퀀스를 손꼽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확실하게 완벽한 용서나 화해를 말하고 있지는 않죠. 하지만 세 사람은 허우적거리다가 서로를 구해내죠.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구해내기보다 세 사람이 서로를 구해내는 과정이라고 봤어요. 그랬을 때 세 사람의 노력이 완벽한 용서나 화해가 아닐지언정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거기까지 이야기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라고 보았어요. 만약 확실히 용서하거나 화해하는 결말을 짓는다면 거짓말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살아남은 아이> 이후에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혹은 쓸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어요. 여성 형사가 살인범을 추적하는 이야기인데, 전형적인 장르보다는 여성 형사의 내밀한 심리와 내면의 변화 등에 더 집중해서 다뤄보고 싶어요. 지금 개봉 준비 때문에 바빠서 보류 중이지만 그 시나리오를 계속 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인디스페이스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저도 인디스페이스에 자주 가서 영화를 보는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디스페이스에 자주 온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으시겠지만, 저희 영화 역시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살아남은 아이>의 배우들이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배우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이 분들을 보아주시는 일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를 통해 관객 분들을 만나고자 하고, 관객으로도 자주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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