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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다큐멘터리가 나에게 걸어올 때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은 2017. 6. 26.


 다큐멘터리가 나에게 걸어올 때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6 4일(일) 오후 3 상영 후

참석 김소영 감독

진행 변영주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이하 <고려 아리랑>)는 잊혀진 여성 예술가를 찾아가는 영화이다. 카메라가 잊힌 대상을 찾아간다는 것은, 이미 현재의 시간 안에 녹아든 과거의 것을 찾아나서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기다리며 마침내 바늘을 찾은 김소영 감독을 만나보았다. 변영주 감독이 함께해주었다.







변영주 감독(이하 변): 많은 GV를 진행해봤지만, 오늘은 제 사부님의 영화이기 때문에 굉장히 떨립니다. 제가 꼬맹이였던 시절에 영화가 무엇인지 가르쳐준 선배이고 마음속의 스승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면서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한 편으로 엄청나게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신나는 마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만난 작품 중 최고로 지적인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아침드라마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울분을 바로 터뜨려주거나 눈물을 빨리 나게 해주거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다뤄 이상한 대리충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다큐멘터리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러한 다큐멘터리들이 많은 분들로 하여금 다큐멘터리를 향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긴 했으나 본연의 의무인 ‘어떻게 새로운 언어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다큐멘터리는 오랜만에 만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면 때문에 개인적으로 <고려 아리랑>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전반부에 과거의 기록 푸티지가 나오다가 현재 감독에 의해 촬영되어진 광야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장면에는 목적점이 없기 때문에 카메라의 포커스가 약간 흔들립니다. 그 포커스의 흔들림이 뭔가 부유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준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지평선이 익숙한 광경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산으로 둘러싸여있기 때문에 평야를 특별히 찾아가지 않는 이상 경험하기 힘든 풍경을 아주 파란 느낌으로 보여주니까 포커스가 왔다 갔다 하는 것과 맞물려 무언가 항해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장면들이 과거의 장면과 어울리며 과거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현재 카메라가 걸으며 그 이야기를 듣게 되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 다른 두 개를 구축한, 그 화학반응이 놀랍도록 좋았습니다. 요 근래 이렇게 정교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참 새로웠습니다. 


무엇보다 감독님께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왜 예술가였을까’하는 것입니다. 뻔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두 번의 이주를 경험한, 처음에 연해주로, 후에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으로 보내지는 이들의 이야기잖아요. 이 이야기만 따라가도 재미있고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 두 명의 예술가가 나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면, 그건 무엇이었나요?



김소영 감독(이하 김): 이 영화는 ‘망명 3부작’이라고 스스로 명명한 시리즈의 일환으로 제작되었고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2개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김 알렉스의 식당: 안산-타슈켄트>(2014)입니다. 한국에 이주 노동자로 와 안산에서 식당을 하는 인물의 이야기인데, 망명 3부작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기반으로 해서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2014)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고려극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그 극장 배우들의 사진이 쭉 걸려있었습니다. 거기에 ‘방 타마라’, ‘이함덕’ 선생님의 사진이 걸려있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아마 고려인 4세정도 되는, 그 극장에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 배우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노랫소리가 여성 디바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변: 고려극장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 같아요. 강제이주를 당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열차 안에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문화를 하는 사람들이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는 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쓸 데 없는 일이잖아요. 내 주변의 가족이 굶어죽고 있다는 건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되는 것일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고 그 노래를 들으며 울면서 박수를 치고. 이런 현장 자체가 엄청난 역사일 텐데, 실제로 방 타마라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합니다.



김: 방 타마라 선생님은 사실 여러 후보 중에 한 명이었어요. 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노래를 잘 부르는 선생님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그 중에 한 분이 방 타마라 선생님이었을 뿐이었고요. 이 영화에서 주제가처럼 쓰고 있는 ‘세상의 끝에 있는 나를 찾아올 거야’라는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이 분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고려식당 사람들과 다음날 모두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어요. 그날이 여성의 날이었는데, 소비에트에서는 여성의 날이 굉장히 큰 행사 중에 하나여서 고려극장 사람들이 저를 초대한 거죠. 그래서 식당에 갔더니 이 분이 딱 계신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다른 분들은 다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제가 다른 분을 찍겠다고 마음을 먹었어도 찍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 분한테 고려극장 푸티지를 보여드리고 놀라시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어요. 더 놀라웠던 것은 그 분이 완전히 러시아말만 할 줄 아는데 ‘어머니의 노래’라는 곡을 한국어로 기억하고 계신 거예요. 근데 이 노래가 푸티지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발성되는 그 장면인 거죠. 다큐멘터리를 하다보면 ‘안 될 거 같은데...’ 하는 순간이 여러 번 와요. 괜히 만든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이걸 보는 순간 ‘아, 되겠구나’라는 느낌이 왔어요. 그리고 고려극장에 있던 자료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전에 이 자료에 접근해 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구해서 쓸 수 있었어요. 고려인들에 대해서 문학적으로 연구가 된 사례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 연구 사례들을 보면 울트라 민족주의적으로 재단된 시선들을 자주 볼 수 있어요. 고려인들이 한국만 그리워하는 식으로 묘사가 되어있는데, 이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신화에요. 영화를 만들면서 문자의 세계를 떠났어요. 그리고 여성의 소리로 접근하니까 자료들을 다루어야 하는 부분들이 의외로 쉽게 풀리더라고요. 



변: 사실 옭아매어지는 순간이죠.(웃음) 자료들을 모으면서 영화를 준비할 때,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두려움이 있거든요. ‘나한테 걸리지 마라’라는 거죠. 제작비 모을 것도 고민이 되고. 게다가 해외촬영은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에요.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것은 사실상 프로듀서의 역할을 같이 하기 때문에 제작비나 인건비 같은 부분들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자료들이 나한테 걸어오지 않을 때 마음이 되게 편하기도 해요. ‘아, 나는 아닌가 보다, 가서 사람들한테 대충 이런 식으로 하라고 이야기해야지.’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냥 얼굴이나 한 번 뵈러 가야지’ 했는데 갑자기 자료가 저한테 걸어오면 막 소름이 돋을 정도로 행복하면서도 집에 오는 발걸음이 대단히 무거워지죠.(웃음)


방 타마라 선생님의 따님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필요이상으로 감정이입을 하는 관객이 많았던 거 같아요. 이게 뭔가 노래를 불러야 하는 운명인 것 같은 거죠. 근데 그런 게 아니거든요. 이런 순간들이 영화 스스로 확장을 하는 순간들 같아요. 여성 예술가 2명으로 고려인 전체를 조망하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저는 이런 장면들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좋은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큰 태피스트리가 있다면 여기에서 감독이 어떤 씨줄과 날줄을 스윽 빼는 거예요. 올들을 풀다가 그들 전체를 감정으로 알 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어요. 


혹시 관객 분들 중에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2017년도에 여러분이 참고할만한 아주 좋은 텍스트가 하나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해외촬영은 위험합니다.(웃음) 돈이 많이 들어요. 전에 김소영 감독님이 이 영화에 대한 기획을 저한테 이야기해준 적이 있는데, 저는 그 때 속으로 ‘하지마라. 당신 삶의 계급이 바뀔 수도 있다.’라고 되뇌었거든요.(웃음) 지난 9년이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거지같은 9년이었잖아요. 이럴 때 사람들은 국외에 별 관심이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에 대한 의의가 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모두가 ‘탈조선’을 말하고 있는데 ‘헬조선’이 아닌, ‘조선’이라고 불리던 그 시절에 새로운 꿈을 찾아서 떠난 이들의 이야기잖아요. 이들이 그리워하는 곳은 한국이 아닌 연해주예요. 이들이 한국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건 우리가 만들어낸 아주 이상한 판타지거든요. 편한 적이 없었는데 뭘 어떻게 그리워해요. 이들이 처음으로 꿈을 꾸었던 그곳을 그리워 한다는 것, 강제로 해산된 공동체에 대한 기억 같기도 합니다.





관객: 이번에 시민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활동을 하면서 ‘우먼 파워’를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역사에서 잊혀진 여성들이 나오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잊힌 여성 예술가를 발굴해낼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이 영화를 작업하면서 여성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겨서 ‘주세죽’에 관한 실험적인 다큐를 하나 만들고 있습니다. 여력이 된다면 ‘김알렉산드라’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회주의운동가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분은 33살에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 이후 주변에 있던 40여명의 사람들이 이 분의 생애를 재구성했습니다. 변영주 감독 말대로 계속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건가 싶습니다.(웃음) 그래도 계속 시도는 해볼 거 같아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0월부터 ‘신여성 도착하다’라는 전시를 해요. 거기에서 주세죽 선생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전시의 형태로 상영할 예정입니다. 



관객: 신기해 보이는 푸티지나 자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혹시 정보들을 수집할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김: 잘난 척하는 건 아니고, 다큐멘터리를 배우는 학생들한테 하는 조언 하나가 있어요. 미셸 푸코가 한 말이에요. “모든 걸 다 봐라”. 그냥 무조건 하는 게 원칙인 거 같아요. 그래도 하나 이야기 드리자면, 제게 온 영상자료들이 몇 개 있었는데 전혀 사용할 수 없는 퀄리티였어요. 비슷한 걸 찾아 헤매다가 조금 나아보이는 자료를 찾아서 블랙&화이트로 변환을 시켰습니다. 유사한 자료를 찾아 컨버팅을 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다큐멘터리라는 건 대상이 자신을 찾아와야 해요. 영화에서 송 라브렌티 감독의 <고려사람>(1992)이라는 작품이 저에게 굉장히 영감을 주었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것 때문에 우슈토베에 갔는데, 거기에서 주인공의 딸을 만나죠. 이런 식으로 자료가 저에게 걸어와야 해요. 이 부분이 다큐멘터리의 굉장히 이상한 부분인데요, 집단적인 소원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 작품은 고려인들이 저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지 않았으면 만들 수 없었어요. 그만 두려고 할 때마다 자료들이 저에게 걸어서 온 거예요. 나타난 거죠.



관객: 현재 고려극장은 어떤 공연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이함덕 선생 때부터 있었던 레퍼토리인 홍범도 장군 공연을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한류의 영향을 받아서 국내 가요 공연도 하더라고요. 찍었는데 영화에 사용하진 않았어요. 



변: 다큐멘터리는 정말 물질적인 일 같아요. 머릿속으로 이렇게 저렇게 계획을 짜기도 하죠. 하지만 그게 존재 해야만 영화로 찍을 수 있고, 그것이 나타야지만 화면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면 때문에 다큐멘터리 본연의 의무 중 하나는 문화인류학적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푸티지가 현재와 만나서 어떻게 물질의 역사로 보이게 될까, 라는 고민이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저는 <고려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이 고민에 아름답게 답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감독님의 작품을 모두 모아 이 곳에서 상영을 할 수 있다면 굉장히 벅차지 않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 자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김: 지금 고려인과 관련해서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 있어요. 고려인 4세들이 이제 성인이 돼서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권위주의 국가라 돌아가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고려인 4세 추방방지법’과 <고려 아리랑>이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기사 등을 보고 고려인 4세들이 돌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힘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간은 머문 이를 잊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다시 현재로 회귀한다. 우리가 과거를 잊더라도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완벽히 똑같이 재현할 수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카메라라는 기록기계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영매와 같고, 과거를 기억하고 흔적을 찾는 일이 카메라 본연의 의무일지 모른다. 본인이 어디에서 서 있는지 안다는 것은 나를 기억하고 있는 공간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려 아리랑>의 가치는 이러한 카메라 본연의 의무를 져버리지 않는 데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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