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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Review] <혼자> : 분열된 자아의 실험적 기호들

by indiespace_은 2016. 12. 8.



 <혼자한줄 관람평

이다영 | 무한반복의 괴로움

상효정 | 현실이 이따위면 꿈은 얼마나 나아질까, 털어버리고 싶은 머릿속의 롱테이크 재현

이형주 | 결코 철거하지 못한 트라우마의 지도를 구현하다

최미선 | 분열된 자아의 실험적 기호들

홍수지 | 죄의식의 미로가 만들어낸 출구 없는 답답함



 <혼자리뷰: 분열된 자아의 실험적 기호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피 범벅이 된 살해 현장에 한 남자가 있다. 바닥에 흘린 피를 닦으려 하지만 잘 되지 않자 그만둔다. 그리고 손을 씻다가 옷에 뭍은 피에 짜증을 느낀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죄책감이나 두려움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 남자의 머리에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1인칭 시점으로 설치된 카메라는 마치 남자의 시선을 따라 함께 움직이고 있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 후로 남자는 여러 차례 꿈을 꾼다. 영화는 꿈과 현실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한 남자의 정신 세계를 빠른 속도로 추적한다.



첫 번째 꿈 

‘수민’은 자신의 작업실이 마주한 달동네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날이 맑은 날 작업실 옥상에서 살해 현장을 목격하고 마침 들고 있던 카메라로 그 장면을 촬영한다. 복면을 쓴 괴한에게 정체를 들킨 수민은 도망치지만 그들에게 쫓기다 결국 자신의 작업실에서 살해를 당한다. 이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오프닝 장면과 연결 지어 아주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곧 꿈에서 깨어난다.  


두 번째 꿈 

수민은 동네의 한 정자에서 알몸으로 잠에서 깨어난다. 집을 찾아 돌아가는 길에 한쪽 계단에선 울고있는 아이, 다른 쪽 계단에선 고개 숙인 여자를 만난다. 모르는 사람들이고 알몸인 자신의 처지 때문인지 재빨리 지나쳐간다. 우여곡절 끝에 작업실로 돌아왔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다. 창문을 깨고 들어간 작업실에서 피가 흐르는 욕실과 목이 잘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곧 복면을 쓴 남자가 다시 나타나 또 다시 살해당한다. 이처럼 비슷하지만 조금씩 정보가 더해진 장면들이 나온다. 두 번이나 살해 당하는 꿈을 꾼 것과 알몸인 채로 괴로워하는 수민의 모습은 현실에서 그가 어떤 불안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로 인해 큰 혼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계단에서 울고 있던 두 사람과도 어떤 관련이 있음을 조금은 예측이 가능하다.  



세 번째 꿈 

같은 장소에서 이번엔 알몸이 아닌 옷을 입고 잠에서 깬다. 같은 계단에 두 번째 꿈에서 보았던 아이가 도움을 청하고 있다. 아이의 손에는 칼이 들려져 있고, 뒤쫓아온 아이의 아버지와 몸싸움을 벌이던 중 아이가 칼로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리고 수민은 다시 옆 계단에 있던 여자친구 ‘지연’을 만난다. 울면서 헤어지자고 하는 지연에게 미안하다고 그러지 말라고 하다가도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는 누구나 그랬듯 너도 가버리라며 되려 화를 낸다.  

이 꿈은 한층 높은 차원의 정보를 담고 있다. 울고 있는 아이, 칼을 들고 무서워하는 아이, 도움을 청하는 아이,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은 아이의 존재가 수민의 어린 시절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수민은 폭력으로부터 어린 자신을 지키려 한다. 지금의 수민은 어린 자신에게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을 건네지만 다시 나타난 어린 수민은 되려 지금의 수민에게 ‘다 네 탓이야’라고 말한다. 수민은 과거의 어떤 기억이 초래한 현재의 처지에 대해 ‘내 잘못이 아니야’와 ‘다 내 탓이야’라는 명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아 왔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나쁜 꿈을 꿨어요. 꿈에서 아버지를 죽였어요.’ 라고 말하는 어린 수민의 모습에서 현재의 분열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 되어온 고질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수민이 두려움 속 양 손에 들고 있던 칼처럼 날카로워진 기억은 벗어나려 할수록 자신을 향하고 그렇다고 끌어안을 수도 없는 그런 것이다. ‘오빠 안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잖아’라는 지연의 말처럼 그는 그 기억으로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네 번째 꿈 

수민의 엄마가 등장한다. 아버지를 그만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가고 받지 않는 전화를 통해서 엄마의 자살을 예측할 수 있다. 이어서 옥상에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최초로 언급된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필사적으로 경멸한다. 그러니 그것을 깨닫게 하는 외부의 어떤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태도와 말들을 통해 그의 본 모습이 까발려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렇게 반복되는 꿈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거대한 분열을 강렬하게 이끌어낸 연출 방식은 신선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러닝타임이 90분인 이 영화는 총 37컷으로 만들어졌다. 그만큼 대부분의 장면이 롱테이크 방식으로 촬영이 되었다. 한 남자의 의식의 줄기를 따라가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선사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서사의 흐름을 예측하기 힘든 장면들의 배치나 마치 방금 꾸었던 꿈을 기억하는 것 마냥 뒤죽박죽인 대사들, 종종 등장하는 1인칭 시점의 카메라처럼 실험적인 기법들로 나열한 기호들이 인상깊다.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 요소 중 하나는 주인공이 관객과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양의 정보를 얻는 데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이 겪는 혼란을 주인공도 함께 공유하는 식이다. 꿈이 계속될수록 조금씩 정보를 파악하게 되는 구조는 주인공과 관객의 연결을 끈끈하게 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이며 나아가 공감도 불러일으킨다. 다만, 정보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몇 장면들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앞서 여러 꿈에서 꽁꽁 숨겨두었다 조금씩 풀어놓는 정보의 양에 비해 옥상 인터뷰 장면, 어머니의 전화,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대화 장면에서 통째로 던져주는 정보는 약간의 허무감이 들게도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억’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모든 분열의 기원은 어떤 기억이다. 기억은 지우고 싶은 조각일수록 더 날카로운 것이 되어 돌아온다. 영화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한 남자의 해체된 자아를 따라가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고립의 구렁텅이에 한없이 미끄러지는 남자를 보았을 때 묘한 불안이 덮친다. 어떤 기억으로부터 나의 무의식이 고통받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이 말을 깨닫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수반되어야 하나. 깨달은 이후에는 차라리 끌어안을 수 있긴 한 걸까.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영화는 치유적 속성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서사 속에서도 조금의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다. 수민의 머리 위로 밝는 ‘새벽’이라는 시간적 의미와, 더불어 이 모든 것을 ‘용서’의 영역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감독의 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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