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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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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운동하는 세계를 응시하는 일  인디포럼 월례비행 <박홍렬 촬영감독 단편선>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4월 25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홍렬 촬영감독

진행 변성찬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연 님의 글입니다.



모래사장 위에 더미가 놓여 있다. 하늘과 바다, 모래사장, 더미의 모습. 카메라는 동일한 장소를 분해해 요소 하나하나의 제각기 모습을 훑는다. 이처럼 영화는 영화만이 취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현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시선의 중심엔 카메라가 있다. 우리의 지각 여부와는 관계없이 세계는 움직임을 이어 나간다. 운동하는 세계 속에서 유의미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부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이다. 무궁무진한 운동의 연속에서 어떤 상황과 풍경을 마주할지 택하는 카메라인 만큼 변화에 민감해야만 한다. 미세한 손짓으로도 빛의 색채는 달라지곤 한다. 달라지는 삽시간을 정확히 응시해야만 관객도 그를 그대로 맞이할 수 있다. 변화하는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기, 촬영이라는 행위란 그런 것이다.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지긋이 카메라를 주시해 온 사람이 있다. 박홍렬 촬영 감독이 인디스페이스에 함께해 본인의 영화 세계를 나누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변성찬 평론가(이하 변성찬): 상영이 제작 순서로 이뤄지진 않았다. 2013년에 선보인 <더 바디>가 처음에, 그 다음으로 2017년 발표된 최근작 <산나물 처녀>, 그리고 2004년의 <빛과 계급>이 마지막으로 상영됐다. 세 영화의 촬영 감독. 박홍렬 감독님이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셨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출연해 창문을 열심히 닦기도 했다.(웃음) <하하하> 이후로 홍상수 감독님과 촬영을 꾸준히 함께 했다.

 

박홍렬 감독(이하 박홍렬): <하하하> 이전까지는 김형구 감독님이 촬영을 맡으셨다. 나는 필름에서 디지털로 촬영 방식이 변화하던 시기에 부탁을 받아 홍상수 감독님과 함께하게 됐다. 단편까지 포함해 11편을 같이 찍었다.

 

변성찬: 마지막에 상영된 <빛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실험영화이자 독립영화이다. <더 바디>는 미스테리이자 스릴러라는 컨셉을 잡은 대중영화에 가깝다. <산나물 처녀>는 선녀와 나무꾼을 귀엽게 비튼 우화이고. 각 영화의 톤 앤 매너가 굉장히 다채롭다. 박홍렬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왼쪽과 오른쪽 양쪽 끝을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촬영감독뿐만 아니라 시네아스트로서 직접 연출도 겸한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는 다큐멘터리까지 연출했다. 활동의 폭이 그만큼 크고 변화무쌍하다. <빛과 계급>2000년대 초의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급진적인 실험성을 보여준다. 마치 다른 시대를 보는 것마냥 느껴졌다. 근데 감독님은 앞서 말한 큰 활동 폭 때문인지 필모그라피를 카운트하기가 힘들다.

 

박홍렬: 카운트는 따로 못했다. 포털사이트에 이름이 올라간 영화는 50편이다. 현대미술 작품도 했었는데, 다 포함해서 추정한다면 200~300편까지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98년부터 20년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독립영화가 활발하던 시기에 촬영을 시작했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그를 감독님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 <빛과 계급>16mm로 촬영한 작품이다. 영화창작집단 곡사가 가장 활발히 활동할 때 찍은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작품에 녹일 수 있을까 논의를 많이 했다. 가령, 자본론 세미나를 두 달 동안 했었다. (웃음)


 



변성찬: <빛과 계급>에 대한 물음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빛과 계급>16mm 필름으로 촬영한 후 디지털라이팅을 한 작품이다

 

박홍렬: 필름으로 촬영은 했지만 상영은 HD로 전환될 시기였다. 다섯번째 챕터에서 속도가 빠르게 변한다. 근데 이걸 필름으로 찍으려면 비용이 꽤 든다. 김곡 감독님의 지향점은 영화 안에서의 간격을 표현하는 것이다. <빛과 계급>은 이런 작업을 위해 필름과 디지털이 적절히 잘 만난 영화이다. 김곡 감독님은 필름의 물성, 질감의 힘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최근 개봉한 <곤지암>에도 김곡 감독님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빛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빛보다 중요한 게 질감이었다. 디지털라이팅을 할 때 그 간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핵심이었다.

 

변성찬: <빛과 계급>은 촬영 감독과 연출 감독의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는 작업이다. <빛과 계급> 속에는 필름으로는 불가능한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장면 속 움직임이 카메라의 움직임인지 프레임의 움직임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런 장면들은 어떻게 작업했는가.

 

박홍렬: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졌다. 편집의 부분에서만 디지털에 의존했다.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빛이라는 물리적인 성질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요지였다. 빛이 자본이라는 세뇌를 감독이 두 달 동안 했다. (웃음) “빛이 자본이다라고 생각을 하면, 빛이 사람을 언제 비추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 영화에서는 거울과 유리상을 활용한다. 우리는 평면을 보고 있지만 그 평면 안에는 깊이가 있다. 거울과 유리로 인물과 인물이, 인물과 카메라가 마주보고 있다. 이 모든 장면은 CG가 사용되지 않았다. 모든 동선엔 의도가 있다. 영화는 고정되지 않았다. 나는 영화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고민을 많이 한다. 변화는 새로운 것을 만나게 해준다. 그 도구로써 거울과 유리가 활용됐다. 카메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타이밍을 맞춰가며 거울과 유리, 인물의 움직임을 조정했다.

 

변성찬: 감독과 세미나 외에 공유한 점은 없나. 그리고 챕터가 다섯 개로 나뉘어 있음이 영화 후반에 제시된다. 나머지 장면은 챕터의 구분도 모호하다. 엔딩 크레딧에 가서야 각 챕터의 제목이 등장한다. 이 모든 게 의도된 편집인가.

 

박홍렬: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김곡 감독님만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의도를 제작자가 말할 필요는 없다. 무책임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빛이 자본일 필요도 없다. 마지막 자막에 주어지는 내용이 이미지와 결부되었을 때가 중요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빛과 계급>이며 공산주의의 미래인가, 갑자기 생각하게 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게 영화의 의도이다.

 

변성찬마지막 장면의 구도는 인물을 횡축이 아니라 종축으로 배치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초점 이동이 미세하게 이뤄진다. <빛과 계급>뿐만 아니라 <산나물 처녀><더 바디>에서도 반복해서 드러난다. 우연인가, 아니면 감독이 선호하는 방식인가?

 

박홍렬: 영화에 대한 취향은 없다. <빛과 계급>의 초점 이동은 감독님의 완벽한 의도다. 여성의 몸이 흔들리고, 거울이 흔들리고 이동하는 것들 말이다. 밖에서 사람들이 직접 거울을 흔들었는데, 연습이 필요했었다. <빛과 계급>의 포커스 이동도 같은 개념으로 작용했다. 표현하는 단계에서 많이 논의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곡사의 경우는 영화를 위해 감독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 그를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이를 익숙하지 않은 서사의 틀로 다루길 원한다.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서사의 틀이 관객으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응시하길 어렵게 만든다. 그 틀에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서사의 틀에서 벗어날 때,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된다. 상업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는 카메라일 수도, 인물일 수도 있다. 촬영은 내 역할이다. 그리고 한 쇼트 안에 서 몽타주를 다룰 때 어떤 변화를 줄지 생각한다. 나는 심도를 가장 깊이 조절한다. 공간의 깊이를 관객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영화를 촬영할 때 나는 서사의 틀을 따라가면서도 그를 어떻게 위반할 수 있나를 고려한다. 어떻게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부단히 움직이면서 새로운 현상을 만나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프레임이 깨진다. 우리는 하늘을 볼 때 하늘다운 것을 연관 지어 의미를 유추해낸다. 그러나 새로운 것들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움직임이다. 배우의 움직임은 촬영 감독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포커스 같은 촬영 방식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오늘 상영한 세 영화는 그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서사에 종속되어 있으면 새로운 것을 만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론가가 언급한 촬영 방식은 취향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


 




변성찬: 평균적인 쇼트보다 롱테이크로 흐름을 길게 가져가느냐, 혹은 포커스를 종축으로 이동하며 두 개의 쇼트를 담을 것인가. 이는 배우 혹은 감독에게도 큰 문제이다. 촬영 감독의 지위가 어찌 보면 최상위에 있지는 않다. (웃음) 감독과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는가?

 

박홍렬: 영화는 정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관객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상업영화도 똑같다. 그래서 영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 시나리오 안에서 영화적이며 만드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려 한다. 감독들은 이에 많이 공감하는 편이다. 만드는 사람, 즉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중요하다. 만드는 이가 정성을 들여 새로운 것들을 만나면 실제 영화도 새로워진다. 필연을 기반으로 한 우연이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우연을 만날 가능성도 커진다.

 

변성찬: 가장 상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더 바디>의 박진성, 박진석 감독이 인터뷰에서 박홍렬 감독을 유순하고 고집이 세지만, 그만큼 부지런하다고 표현했다.

 

박홍렬: 내가 연출감독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독보다도 영화를 더 많이 본다. 어떤 감독을 만날지 모를테니까. <간>이라는 사극을 촬영하기 위해 2005년에서 2013년 사이의 모든 한국 사극을 숏 단위로 보았다. 중국에서 SF 영화를 촬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2008년도부터 2015년도에 사이의 SF 영화를 100편은 본 듯하다. 그러고 어떤 SF 영화를 만들 것일지에 대해 4시간 동안 발표를 했다. (웃음) 감각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려 노력한다. 가령 다른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 양자물리학 책을 3권 읽었다. 물론 영화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웃음) 이러니 감독들이 내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객: 오늘 상영한 영화 외에서 질문을 드리고 싶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대개 즉흥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들었다. 촬영 감독께서는 보편적인 방식과 홍상수 감독만의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준비하는지, 두 가지 방식 간에 차이가 있다면 어느 점이 다른지를 여쭤보고 싶다.

 

박홍렬: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홍상수 감독,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서사로만 보면 다른 영화가 맞다. 그러나 형식적, 매체적 특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산나물 처녀>의 콘티가 다르다 생각하지 않는다. 상업영화는 자본의 안, 그러니까 계량적 틀 속에서 편집을 거쳐 영화가 비슷해질지라도 현장에서 만들어진 소스는 모두 다르다. 촬영 감독이 할 몫은 어느 영화든 동일하다. 어떤 변화를 만날지 모르니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첫 테이크와 두번째 테이크 간 빛의 결이 다르다. 콘티가 있다면 미리 준비하지만 미리 준비해도 현장에선 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달라진 상황을 맞이하는 건 어느 촬영장이나 동일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보통 테스트 촬영도 없고, 성능이 좋지 않은 카메라를 사용한다. 밝기를 다루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니 카메라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건 다르지만 그 안의 맥락은 같게 표현하려 한다.

 

변성찬: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포커스가 아니라 줌을 사용하는데. 홍 감독의 고집과 박 감독의 고집이 만났을 때 어떨지 궁금하다. (웃음)

 

박홍렬: 나는 내가 고집스럽다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촬영장에서 나는 감독이 아니라 배우라고 생각한다. 홍 감독의 영화는 프레임이 이미 정해져있다. 촬영자의 몫은 그의 리듬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하하>부터 <밤의 해변에서 혼자>까지 줌이 다 다르다. 그 차이를 홍 감독님이 알고 찍는 게 아니다. 감독님은 리듬 안에서 줌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신다. 줌은 배우의 연기를 따라간다. 줌이 들어갈 때 내 어깨를 치시는데(웃음) 가끔 테이크가 길게 이어질 땐 다른 생각을 하다가 줌이 늦게 들어갈 때도 있다. 근데 홍 감독님은 그 예상치 못한 리듬을 마음에 들어하셨다.





관객: 극영화의 경우에는 다양한 시도가 보장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는 다를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현실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었나. 극영화와 차이가 있나?

 

박홍렬: <산나물 처녀>에서 산을 포착하는 장면이 여럿 있다. 동일한 산을 카메라만 돌려서 찍은 것이다. 그 뒤엔 바로 농장이 있다. 조금 내려가면 국도가 있다. <더 바디>에서도 똑같다. 다른 장소들로 인식되지만 실은 동일한 장소이다. 틀 안에서 보면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기지 못한다. 다큐멘터리도 똑같다. 다큐멘터리도 열려있는 상황을 포착해야만 한다. 작년에 <늑대부대를 찾아서>의 촬영을 위해 일본으로 갔었다. 1975년도에 반일운동 단체가 미쯔비시라는 기업을 상대로 무장테러를 행한 적이 있다. 테러의 주체는 자성하던 젊은 일본인들이었다. 그 사건을 이유로 작년까지도 독방에 갇혀 40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분이 자살한 동료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촬영했었다. 감옥에서 40년간 있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촬영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나는 카메라의 거리감과 같이 촬영 윤리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두 분이 만나러 가는 것을 찍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근데, 그 날은 나도 모르게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냥 들어간 것이다. 일본말을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주인공 분이 양해를 구한 후에는 울음을 터트리셨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웠다. 그런 변화를 찍는 행위가 폭력적으로 느껴질까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도 그 장면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순간에는 교감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변화의 순간을 어떻게 포착할지는 다큐에서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

 

변성찬: 다큐의 경우가 더 긴장될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를 오늘 상영에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기회가 된다면 볼 수 있는 건가?

 

박홍렬: 후속편을 만들고 있다.(웃음) 완성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영화는 목표가 아니라 도구다. <빛과 계급>이 그를 잘 드러내 선택한 것인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라는 구분에 상관없이 영화가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지 여전히 고민을 한다. 그래서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2>를 찍고 있는 중이다.

 

변성찬: <늑대부대를 찾아서>는 아마 내년에 신작 개념으로 선보여질 것 같다. 다들 한 번 봐주셨으면 좋겠다. <늑대부대를 찾아서>는 통역 없이 촬영을 한 것인가?

 

박홍렬: 김미례 감독님이 6년 만에 만들기로 결심한 영화가 <늑대부대를 찾아서>. 그러면서 일본을 다니는 와중에 일본어를 띄엄띄엄 배우셨다. 그 후 함께 촬영하게 됐다. 반일운동을 하는 분들 대부분이 반성하기 위해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말을 배우기도 한다. 그 분들의 도움으로 촬영이 순탄히 이뤄졌다. 그 중 한 분이 석탄을 외부로 실어 나르는 야적장을 소개해주셨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이 강제 징용을 당한 장소였다. 그 곳에서 여우를 만났다. 도시 한 가운데 바닷가였는데, 여우가 안개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선 사라졌다. 이처럼 믿음을 갖고 영화를 만들다 보면 신기한 경험을 맞이하게 된다.

 




변성찬: <더 바디>하고 <산나물 처녀>는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은 느낌이다. (웃음) 이 두 영화의 분위기가 상반됐다.

 

박홍렬: <더 바디>의 경우 심도를 많이 조절했다. <산나물 처녀>는 심도를 깊게 가져간 영화이고. 뭘 먼저 보여줄지 결정을 한 후에 촬영자로서 감독님 몰래 영화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심도 조절이다.(웃음) 그래도 다들 좋아하시더라. 모든 영화에 똑같은 렌즈와 심도를 가져가려 한다. 나의 색깔을 보이는 게 싫다. 그래서 각 영화마다 다르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더 바디>의 경우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가 한꺼번에 드러나면 스릴러의 분위기가 사라진다. <산나물 처녀>는 우화다. 그를 공간 안에서 관객이 즐겨보게 하는 건 어떨까 싶었다.

 

변성찬: 차기 작품에 대한 질문인데, <이것은 다큐멘터리다2>는 시간 날 때마다 제작하는 프로젝트인가?

 

박홍렬: 데드라인이 있다. 황다은 감독과 함께 만들고 있다. 610일까지 만들어야 한다. 제작 지원을 받고 싶기도 하고. (웃음) 영화 제목은 중의적이다. 후속편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이것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라는 의미이다. 20년 만난 친구가 있는데 선거 때만 만난다.(웃음) 길 건너편에 사는데, 이번 구의원 선거에 친구가 출마한다. 그 홍보 동영상의 개념으로 제작 중이다. 영화보단 홍보 동영상의 느낌이 강하다.

 

변성찬: 대중 영화도 만들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개봉 시기는 어떻게 되는가?

 

박홍렬 감독: 8월에 크랭크인일 것 같다. 6월에는 <꼭두>라는 국립 국악원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순 감독님과도 함께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재현하는 부분에만 도움을 줄 듯하다.

 

변성찬이 답에서도 느끼시겠지만, 박 감독의 활동 스펙트럼이 넓다. 거짓말이 아님을 빼곡한 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넘나드는 시도를 여전히 하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셨다. 감사하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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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풍경의 얼굴들  인디포럼 월례비행 <얼굴들>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3월 21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강현 감독ㅣ배우 박종환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마리솔 님의 글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얼굴은 현재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역사와 미래가 담겨있다. 인물들의 시간은 제각기 흐르지만 하나의 풍경으로서 연결된다. 3월의 월례비행은 이강현 감독과 박종환 배우 그리고 정지혜 평론가가 함께했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진행): <얼굴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존 카사베츠의 <얼굴들>(1968)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두 영화가 얼굴을 다루는 방식에 다름이 존재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극단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강현 감독의 <얼굴들>은 훨씬 인물의 얼굴 혹은 인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얼굴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강현 감독(이하 이강현): 존 카사베츠의 <얼굴들>과 같은 제목을 썼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그냥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카사베츠를 좋아하는데, 단지 제목이 같다는 것 말고는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상관없을 것 같았습니다. 얼굴이라는 것은 항상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영화는 사람과 얼굴을 담는 매체이고, 어떤 단어가 가질 수 있는 쓰임새는 무한합니다. <얼굴들>이라는 영화에서 제가 사람의 에너지를 담고자 한 방식은 카사베츠와는 특히 다른 부분입니다.

 

진행: <얼굴들>의 영문 제목은 <Possible faces>, 그러니까 가능한 얼굴들이라는 뜻인데, 국문 제목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국문 제목은 '얼굴들'이지만 영문 제목에서는 그 앞에 가능함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상상의 가능성들을 열어준 것 같은데요, ‘가능한 얼굴은 아직 우리가 확인하지 않은, 앞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미래의 얼굴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안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사가 있지만 영화가 전사(前史)를 계속 이야기하는 방식은 아니에요. ‘가능한 얼굴들이라는 말에서 미래가 숨어있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문 제목과 국문 제목의 차이가 영화의 방법론과도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강현: 영제가 처음부터 있던 건 아닙니다. 편집을 끝낼 무렵에 영제를 짓는데 가능한 얼굴들이라는 제목이 좀 후퇴한 느낌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편집을 마칠 무렵에 제가 이 후퇴한 느낌을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여러 관계들이 갖고 있는 한계들을 반영한 것 같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것에 있어 제가 느끼는 어려움도 반영한 것 같고요. ‘가능한이라는 것은 소극적으로는 한계 짓는 느낌이지만 동시에 희망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 이 영화의 한계가 있고 사람의 인생에도 한계가 있지만 그것들을 선언했을 때 갖게 되는 힘이 좋았습니다.

 

진행: 이 영화에는 중심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박종환 배우가 맡은 기선이라는 인물이 그렇습니다.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끈이 있는 인물이 기선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 혜진진수’, ‘현수는 사실상의 접점이 없고 각자의 시간이 병렬적으로 흐른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기선인데, 기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제작을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에서 샛길로 빠져 그 옆의 다른 인물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기선의 시작점을 한 줄로 요약해본다면 ‘처음에는 선생님이었던 학교직원. 어느 날 문득 수업 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을 궁금해 하게 된다.이 한 줄이었던 것 같아요. ‘얼굴들이라는 건 나의 외부에 있는 타인들인데, 타인에 대해 갖는 감정, 즉 미안함, 죄책감, 책임감 같은 것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이야기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다른 인물들이 나오긴 했지만 기선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감정들, 혹은 그것이 좌절된 이후의 행보들을 담으려 했습니다.

 






진행: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의 영화는 아닌데요, 그 중심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박종환 배우님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박종환 배우(이하 박종환): 어렵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습니다. 기선이 가지고 있는 모습들이 처음엔 낯설게 다가왔는데, 결국 기선의 감정은 혜진과 헤어지고 나서 갑자기 밀려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기선이 가지는 컨디션이나 기조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렵다기보다는 새로웠고 새로운 감정을 알아가며 도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진행: 기선에게 다층적인 면모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마 명확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대사에 있어서 주어를 생략하는 등의 모습들이 주저하고 불안정한 감정을 다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인물에 대한 설정이 따로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비교적 다른 인물, 예컨대 혜진이나 진수, 현수 같은 경우는 주저주저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은 없죠. 기선이라는 인물은 자기 외부의 것들에 대해 판단하는 감정들을 어쩔 줄 몰라 하는 인물이 맞습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 어떻게 할 지 모르겠는감정을 다루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박종환 배우님과 시나리오를 앞에 두고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이야기한 것이 인상 깊었는데요,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영화 외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나는 아직 모르겠고,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다고 이야기 했을 때 박종환 배우님이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때의 제 마음을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고 난 이후부터는 이 영화의 에너지가 아닌 다른 삶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될게요.”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구체적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혹은 장면에 대한 이야기는 술술 넘어가며 했던 것 같고 주로 서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진행: 네 명의 중심적인 인물들이 각자의 시간을 대면하는 방식에서 수많은 얼굴들이 등장합니다. 의도적으로 주변의 인물들 혹은 익명의 거리의 사람들, 크고 작게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에게 장면을 할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강현: 의도적이거나 계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에서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진행: 그러면 전체의 큰 그림을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는지, 아니면 각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모아 완성해 가는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애초에 큰 틀 정도만 구상하고 나머지는 시나리오 쓸 때 즈음에 만났던 사람들이나 상태, 날씨에 영향을 받습니다. 특정한 시나리오와 무관하게 평소에 이런저런 기억들을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 관계를 다룬 드라마라고 하지만서스펙트적인 요소가 있어 계속 심장이 빨리 뛰었던 것 같습니다영화를 전개하면서 중요한 이벤트들은 보여주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엔딩은 무엇을 표현하려 한 건지 궁금합니다. 정지혜 평론가님은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움직인 장면으로 어떤 장면을 꼽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엔딩을 보았을 때 어떤 시청각적인 감정들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더 말씀 드리자면 혜진은 가게를 완성했고, 진수는 성장을 해서 자기 길을 잘 가고 있고, 현수는 어딘가에서 잘 살 것 같아요. 그런데 기선은 자기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상태이고 그 이상의 답을 못 찾은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엔딩 장면 직전의 동네 풍경들, 세상의 풍경에 대해 여전히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진행: 저는 “20년 뒤에는 퇴직하지 않았을까?”라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보며 촌철살인이라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관객: 종종 풀샷으로 공간을 담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오는데, 인물을 담는 장면에 비해 크고 독특한 시각이 보였습니다. 공간을 크게 잡을 때 어떤 것을 중점으로 촬영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또 기선 역할은 감정이 크게 드러나는 편이 아닌데 다른 인물들과의 호흡 속에서 역할에 몰입할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박종환 배우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강현: 처음부터 크게 의도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찍어놓고 편집하다 보니 저도 공간을 담은 풀샷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공간을 많이 찍자고 이야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촬영할 때의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보면, 카메라를 인물 앞에 두려고 할 때 은연 중에 거부감을 느끼고 ‘좀 멀리 빼야겠는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의문입니다. 이전의 작업들에도 공간을 많이 담기는 했습니다. 일단 다음 작품부터는 풍경을 찍지 않으려고 합니다.

 

박종환: 상대 배우들이 다 다른 역할인데도 비슷한 느낌으로 와 닿았습니다. 어느 장면을 촬영하더라도 그 장면이 갖고 있는 힘이 느껴져서 감독님께서 이런 말이나 상황을 실제로 겪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배우가 상대배우로 느껴지기 보다는 감독님이 바라 본 그때 그 상황 속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진행: 몇 번 서사가 바뀌는 순간이 있습니다. 물론 감독님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넣었겠지만, 사실 그 장면이 없더라도 전개가 가능했을 텐데, 혼란을 주는 방식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집에서도 일종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의도적인 착각, 혼란들이 병렬되어 있는 인물들의 시간을 보며 과거, 현재, 미래가 계속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우회해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방식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이강현특별히 명시적으로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현재의 감각, 느낌들이 과거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장면이 다른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개별 장면에서의 느낌과 감정들을 조합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은데, 개별 장면의 감정이 충실히 전달이 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지금 말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 같아요.

 






진행: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가 현수가 누군가의 일기장 혹은 메모를 읽는 장면이었습니다. 특히나 마지막에 현상수배범과 남편의 얼굴이 비슷하다고 하는 장면은 저에게 해석의 가능성을 남겼습니다. 이 영화가 초반에 지역이나 공간이나 사람의 인상을 만들고는정형화된 인상이랄까요그 인상이 집단의 인상이 되는 것에 대해 계속 의심하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유형이나 틀을 깨뜨리거나 헤집어 놓으려고 하는 욕망이 느껴졌습니다

 

이강현: 그런 부분을 찍거나 쓸 때는 오히려 직관적이게 됩니다. 다른 부분들은 머리를 굴리고 어떻게 끼워 맞출지 고민하는데, 말씀하신 장면 같은 부분은 감정의 덩어리로 다가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말씀하셨듯이 삽입된, 빗대자면 영화 속에서 '괄호 쳐진' 부분들은 제가 주로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들, 가령 라디오 사연, 시청률 안 나올 때 하는 TV휴먼다큐, 아니면 SNS 같이 많이 볼 수 있는 것들이고, 거기서 받는 감정들이 작업할 때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평균적인 감성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균이 주는 이중적인 느낌들이 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제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들입니다. 지역마다 환경이 다르고 계급 차이도 있을 거고 여러 가지 편견들도 있을 테지만 일반적인 편견을 깨려는 의도보다는 사람살이의 평균치에 대한 감각들, 그것들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의 측면들, ‘일반적인 사람 사는 모습으로 재현되어온 것들에 대한 의심이기도 합니다. 의심이지만 진실이기도 한, 그런 부분들을 작업하면서 염두에 두었습니다.

 


관객: 현수가 꽃시장에서 생화나 조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나 혜진이 생중계를 보는 장면들에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작업과 비교했을 때 새롭다거나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이강현: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한테는 극영화 작업이 첫 작업이고 같은 영화라고 하더라도 매체적 특성이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이번에 영화를 찍으며 최초의 구상들이 무너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았다 혹은 싫었다고 판단하긴 어렵고 다만 힘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극영화를 찍으면서 좋았던 점은 좋았던 배우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입 바른 소리 아니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요즘에도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어야 할 텐데그런 생각을 해요. 그때 배우들을 섭외하며 했던 거짓말들이 조금이라도 덜 거짓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입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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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순간  인디포럼 월례비행 <빨간 벽돌>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2월 28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주현숙 감독ㅣ주연 성훈화 

진행 백재호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기 님의 글입니다.




구로동맹파업은 여성과 연대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지금 이 시기에 새롭게 읽을만한 텍스트처럼 보인다. 여성들의 용기와 선택이 모여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요즘, 30년 전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연대했던 구로동맹파업을 다룬 <빨간 벽돌>이 인디포럼 월례비행에서 상영되었다. 그 현장에 두 발 딛고 서 있던 민주 인사들이 참석했고 그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과 공간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백재호 감독(이하 백재호) : 오늘 진행을 맡은 인디포럼 소속의 백재호입니다. 주현숙 감독님과 성훈화 님 모시고 대담을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간단한 인사 한 마디씩 부탁드리겠습니다.

 

주현숙 감독(이하 주현숙) : 날도 궂은데 오시고 봐주셔서 감사하고요, <빨간 벽돌> 만든 주현숙입니다. 반갑습니다.

 

성훈화 주연 (이하 성훈화) : 안녕하세요. 구로동맹 파업 때 가리봉전자에 근무했던 성훈화입니다.



백재호 : 먼저 <빨간 벽돌>을 어떻게 기획하고 만들게 되었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주현숙 : 의도를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영화예요. 오늘은 자학을 안 해야지 마음을 다지고 왔는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이 영화 만들 때 내가 염세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획할 때 많이 우울했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잊어버렸을 수도 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을 보내면서 앞으로 30년은 이런 보수적인 정부안에서 살아야 하나 보다이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서 많이 우울했어요. 괴롭기도 하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 때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결정적인 순간의 마음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어요. 드라마틱한 선택의 순간에 대해서 몰두하다가 구로동맹파업을 한번 얘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0살 초반의 여성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노동운동사에서도 아주 특이한 일이거든요. 물론 60, 70년대 노동운동의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선택에서 봤을 때 연대 파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사건 직후 보다는 한 30년 정도 지나서 그때는 어땠지하면서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제가 그 시기에 갱년기 같은 것이 왔는데 오히려 그분들을 만나면서 많이 위로 받았어요. 그렇게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를 거창하고 멋지게 표현 안 해도 쿨하게 받아 주실 거 같았어요.(웃음)

 






백재호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좋은 영화를 많이 탄생시킨 거 같습니다. 성훈화 님께 여쭤볼게요. 인상 깊었던 것이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였어요. 서울대 학생이 와서 노동운동을 하는 걸 보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데 학생들이 와서 하는구나여러 가지 감정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성훈화 : 중학교 졸업하고 구로공단에 들어갔어요. 도자기로 인형을 만드는 공장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산업체 특별학급 고등학교를 다녔어요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졸업의 차이가 엄청나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굉장히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구로공단에서 벗어나려고 회사를 그만뒀죠. 그러고 나서 시골에 내려가 있는데 일할 곳이 없는 거예요. 저랑 같이 고등학교 다녔던 친구가 공단에 조건이 좋은 회사가 있는데 같이 들어가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공단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서 며칠을 버텼는데 갈 데가 없더라고요. 결국 회사에 가게 됐어요. 84년에 구로공단 가리봉전자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조건이 다른 회사들과는 달랐어요. 공장도 새로 지어서 깨끗했고 직원도 고졸 이상을 뽑았어요. 그리고 잔업이 없는 거예요. 다른 데는 일이 끝나면 기본적으로 잔업을 서너 시간은 해야 했어요. 근데 가리봉전자는 그런 게 없었어요. 8시간, 3교대로 꼭 돌아가기 때문에 근무조건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공단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그때도 야간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가리봉전자가 1년이 막 돼 가는 시기였고 노조가 생겨났어요. 같이 하자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바빠서 안 된다며 항상 빠져나갔던 거예요. 관심도 별로 없었고요.

그러다가 노동조합에서 나오는 노고(勞稿)’라는 게 있는데 어느 날 거기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그 친구 글씨가 있더라고요.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편집부에서 일하는데 굉장히 괜찮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독서모임에 들어와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독서모임에 들어가게 됐어요. 사람들이 교대 근무를 하고 부서도 다 다르기 때문에 만나기가 어려운데 이 안에서 다 만날 수가 있었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같은 기계를 쓰는 친구가 모임을 이끌고 있었어요. 그 친구가 그냥 너무 좋았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무언가 생산할 때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만약 다른 사람이 10개를 했으면 저는 12개를 해야 하는 거예요. 이기기 위해서 늘 더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하루는 저한테 쪽지를 남겼어요.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내가 너무 힘들다.’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내가 혼자 이렇게 열심히 하면 안 되나 보다 싶었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자기가 서울대학교 나와서 수학 선생을 하다가 공장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했는데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되었어요.

노동조합 활동을 두 달도 안 하고 동맹파업에 들어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대의원이 됐어요. 사람들이 하라니까 한다고 그랬던 거 같아요. 동맹파업에 사람들이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짧은 기간에 70년대 노동운동했던 사람들이 각개 격파되고 민주노조가 깨졌던 부분들이 학습이 돼 있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동맹파업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백재호 이 자리에 영화에 출연한 분들이 몇 분 오셨어요. 감독님, 소개 부탁드릴게요.

 

주현숙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장면인 마지막 장면에서 노래 불러주신 권영자 님 와 계시고요, 그 옆에는 같이 투쟁한 정영인 님 계십니다. 계속 일하시느라 작품을 못 보셨는데 오늘 마침 와주셨습니다.

 

 




 

관객 : 극 후반부에 젊은 사람들이 가상 토론을 하고 결과를 안 보여주잖아요, 그 결과 내용이 궁금해요. 감독님이 의도한 바가 있었는지, 의도한 대로 흘러갔는지 궁금합니다.

 

주현숙 논쟁적으로 만들려고 한 게 아닌데 논쟁적으로 되어버린 게 있어요. 기본적으로 제 역사관은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 따로 있지는 않다는 거예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지도 않고,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한 선택이 있더라도 이후에는 그 선택에 반하는, 자기 선택을 책임지지 못하는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투쟁이라는 선택은 고민이 되더라고요. ‘투쟁하면 블랙리스트가 되고 먹고 살 데도 없고 당장 취직도 못하는데 왜 투쟁을 할까?’ 생존권 투쟁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빨리 관두고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게 더 자기 생존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다면 투쟁을 한다는 건 이타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선택을 하는 어떤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그 선택의 순간을 눈으로 직면하고 싶었어요. 그런 조건을 만들어서 선택의 순간을 담아보겠다는 욕망이었던 거죠. 말씀하신 장면은 처음부터 기획안에 있었는데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봤어요. 여러 안들을 생각했는데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자는 게 저희의 기본 원칙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더 곤란한 상황이 연출이 된 거예요. 저 사람이 나쁘게 보이면 안 되는데, 그러려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고민을 하면서 모니터링을 많이 했어요. 저보다는 청년 세대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했는데 콧방귀를 뀌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척박한데 저 정도 가지고 못됐다 그러냐고요.

실제로 몇 번 안 만난 사이에 누군가를 위해 그만두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저는 그게 좋고 어떤 '순간'처럼 느껴졌어요. 일부러 한 사업장의 노조가 아닌 각각 다른 곳에서 참여자 분들을 데리고 왔고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 고민했지만 넣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 때 많이 배웠어요. 청년들의 현실, 객관적인 삶의 조건 같은 것들이요. 그것까지 구구절절 넣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약간 위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은 청년에게 맡기고 단호하게 이 부분만 보여주자는 내부적인 판단이 있었습니다.

 

백재호 : 그럼 토론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섭외를 했나요?

 

주현숙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만나서 우선 기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흥미로워하는 분들을 섭외했어요. 한 번 더 하자고 한 분도 있었어요. 저는 힘들어서 못하겠는데 되게 재미있어하시더라고요. 조합을 잘 구성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어떤 사람은 수용적인 사람, 어떤 사람은 까칠한 사람, 어떤 사람은 조용하더라도 묵직한 사람. 사람을 범주화하면 안 되는데 작업을 하다 보면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어요.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백재호 성훈화 님이 그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어쨌든 30년 전에 그런 비슷한, 혹은 더 어려운 선택의 순간에 있었던 분인데 젊은 친구들이 이걸 가지고 토론하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성훈화 :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저만 보였어요. 다른 사람들이 안보이더라고요. 구로동맹파업에 나왔던 사람들은 보이는데 젊은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입은 잘 안됐어요근데 오늘 다시 보면서 이 사람들에게서 연대 의식이 만들어지길 바랐던 거 같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관객 : 일주일 동안 파업을 하다가 경찰에 강제로 해산된 이후에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걸로 표현이 돼 있는데요, 살아오면서 본인들의 가치관 등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치하는 분들 중에 보면 노동운동을 하다가 변절해서 악독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50세 이상의 연배에는 태극기 부대에 가까운 분들이 많잖아요. 주변에서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본인의 가치관과 주변의 가치관의 충돌이 상당히 많았을 거 같아요.

 

성훈화 : 가리봉전자에서 해고되고 90년에 결혼할 때까지, 지쳐서 운동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까지 계속 운동권에 있었어요. 원래 일하던 도자기 회사에 노조를 만들려고 다시 들어갔다가 해고되기도 하고 블랙리스트 때문에 취직이 안 되기도 했어요. 이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한 거 같아요. 저는 저를 자생적 사회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운동권이 무너지면서 제가 꿈꾸던 사회주의가 무너졌어요. 갈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어요. 이정표로 삼고 갔던 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혼하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그때 굉장히 선명한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말을 아예 안 했어요. 저랑 의식적으로 맞지 않는 친구하고는 안 만났어요. 왜냐하면 만나서 말해봐야 싸움만 하니까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런데 결혼을 했고, 집에서 어울려 살아야 하는데 어울리지를 못했어요. 정치 이야기만 하면 눈에 불을 켜니까 사람들이 다 저를 피했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아이 친구들 엄마하고 정치 얘기는 안 하고 살았던 거 같아요. 구로동맹파업 20주년 행사할 때 앞에 패널로 나갔는데 제가 너무 울어서 말을 못 했어요. 제 안에 풀어지지 않은 응어리 같은 게 남았던 거 같아요. 후회도 하고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20주년 행사하면서 다시 운동권 사람들하고 어울리게 되었어요. 구로동맹파업도 민주유공자법이 만들어지면서 유공자 인증서를 받았거든요. 그거 받고 마치 제가 문익환 목사라도 된 것처럼 감격했어요. 민주인사로 당당하게 살아야겠다, 정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항상 옆에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주현숙 흥미로웠던 것은 구로동맹파업이 대우어패럴의 지도부 3명이 잡혀가면서 벌어진 연대투쟁이었거든요. 근데 대우어패럴의 위원장님은 지금 자유한국당에 있어요. 박종철 열사가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박종훈 씨인데 그 사람도 자유한국당에 있거든요.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사는 게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계속 투쟁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자기 삶 안에서 그 기준들을 지켜가려고 하는 거요.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방식 같은 것이 있겠죠. 그런 방식으로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사는 게 되게 어렵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들의 선택을 모두 이해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누가 변절했다고 얘기할 때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백재호 권영자 님과 정영인 님께도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영인 : 그 투쟁이 우리들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달랐지만 같이 합숙을 하면서 운동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노조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같이 논의도 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대우어패럴의 세 동지들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은 노조를 파괴하려는 음모라고 생각을 했어요. 대우어패럴부터 쳤지만 우리 회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고 같이 동맹파업을 한 것이죠.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한데 영화로 만들 정도로 큰일이라고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그때는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가 만들어진 건 참 뜻밖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영자 : 사실은 주현숙 감독이 저를 2년 동안 쫓아다녔는데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어요. 2년 동안 도망 다녔어요구로동맹파업의 구술 작업이나 기록 작업이 많았는데 결과를 보면 화가 나는 일들도 있어서 나는 안 하고 싶다고 했어요. 대우어패럴 나와서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라는 걸 하기도 하고 경찰서에도 몇 번 가고 계속 싸우다가 서울노동연합으로 이어지면서 조직생활을 했어요. 여성단체에서도 일했어요. 계속 이렇게 살아온 거 같아요. 최근은 아파서 집에 있다 보니까 너무 무기력하고 힘들었는데, 분명한 건 내가 잘 살아왔기 때문에 무기력해도 잠깐만 무기력한 거다라는 힘이 있어요. 앞으로도 참여할 수 있는 곳에 함께 하며 그렇게 살 거라고 믿습니다.

 

주현숙 권영자 님이 2년간 촬영을 거부하면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자기가 이 사회에 책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서지 않으신 분들도 많이 있고요. 영화에 담고 싶었지만 못 담은 것 중 하나가 경찰 혹은 그 주변 사람들이 노동운동하는 분들께 너네 다 학생 출신들한테 이용당한 거야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그것 때문에 많이 상처받은 분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때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냐고 물어보면 모두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시거든요. 사람이 살다 보면 계산 없이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라고 마음먹게 되는 순간이 한 번 정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잘 안되기는 했지만 그런 게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실제로 이 분들이 상처도 받고 여러 이유 때문에 관두기도 했지만 일상이 권태로워도 잘 영위하며 자기가 선택했던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그래서 주인공 분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거고요. 학출(학생 출신)과 노출(노동자 출신)간에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사이 좋게 살아온 분들도 있거든요. 실제로 어떤 연구자 분들은 구로동맹파업은 아름다운 연대이고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이야기해요.



 



백재호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현숙 이 영화와 비슷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어느 포지션에서 싸워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올해가 세월호 참사 4주기잖아요. 4주기 정도 되면 새로이 할 수 있는 말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세월호 참사를 사회적 참사로 바라보고 이 사회가 겪은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진행한 4주기 프로젝트를 3월 말쯤에 상영합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훈화 : 구로동맹파업이 30년 전의 일인데 기억해주시고 영화로 기록해주셔서 주현숙 감독님한테 감사드려요. 저도 처음에 안 나오려고 했는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있다는 것이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구로동맹파업이나 70, 80년대 노동운동했던 사람들 중 변절해서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민의식을 가지고 사회 저변에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재호 아까 별 것 아닌, 며칠 안 되는 파업이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노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그때 하셨던 선택들이 지금 저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제목이 왜 빨간 벽돌일까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가 빨간 벽돌 같네요.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자리를 하나하나 채워주시고 경청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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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션에 대한 야심찬 열망  인디포럼 월례비행 <뿔을 가진 소년>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1월 31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휘근 감독

진행 정지혜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김휘근 감독의 <뿔을 가진 소년속 등장인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의문스러운 질병에 걸린다.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서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모두 헛헛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전문 의학의 손길 바깥에서 인간 녹용이라는 도시 괴담의 진원지를 찾아 헤맨다는 형편을 공유한다. 추격전과 스릴러라는 야심찬 시도를 선보이고 있지만, 두드러지는 상징을 통해 소비자본주의가 만연한 세정을 다소 직설적으로 환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도권 지역을 선회하는 2030세대의 고달픈 삶을 묘사해온 독립영화들의 경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다만 프로덕션의 전 과정을 홀로 작업하며 규모 있는 서사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고 있는 이 호기로운 감독의 행보에는 주목할만한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김휘근 감독, 정지혜 영화평론가가 함께한 대담은 그의 차기 행보에 관한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이하 정지혜) :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게 된 정지혜입니다. 지난해 부산독립영화제 대상수상작인 <뿔을 가진 소년>에 대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휘근 감독 (이하 김휘근) : 안녕하세요. 김휘근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참석해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정지혜 : 이 영화는 편집과 촬영, 시나리오까지 많은 부분을 거의 다 감독님이 도맡아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은 고등학생 때부터 동아리를 만들어 영화 작업을 해왔고 대학을 진학하지 않으면서 제도권 바깥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뿔을 가진 소년>은 굉장히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고 느꼈는데요, 그 점에서 대다수의 독립영화들이 주로 다루는 소재와 다른 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요약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휘근 :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입대를 했어요. 그 전까지는 부산에서 청소년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얀색은 더럽다>(2014)를 작업 했는데요, 군대 안에 있었기 때문에 편집을 하거나 배급을 하는 데 부담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군대 안에 있던 2년 동안 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으면 감이 무뎌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시달렸기에 틈틈이 작업을 했었습니다. 제대가 가까이 오면서부터 <뿔을 가진 소년>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정지혜 : 이야기는 건강원이라는 한국적인 보신 문화와 그를 둘러싼 욕망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이런 소재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이전부터 뿔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싶기도 했고, 군대 안에서 자연이나 생로병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많이 보면서 영향을 받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정지혜 :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이 자신의 작업에 관한 생각이 굉장히 뚜렷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상징이나 화법이 다소 직설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는 창작자들이 종종 피해가려는 방식이기도 하기에 오히려 눈에 띄었습니다.

 

김휘근 :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소품이나 배경에 특정한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요소들의 상징성이 서로 부딪치면서 빚어내는 에너지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에 불상이 자주 나오는데, 제가 이전부터 종교적인 상징물에 관심이나 애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소들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상징을 벗고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찍었을 때 어떤 방식의 결과물이 나올지에 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혜 : 영화에서 스릴러와 같은 장르영화에 대한 열망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많은 영화들을 레퍼런스로 참고하며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을까 지레짐작을 해봤습니다.

 

김휘근 : 전 사실 영화를 많이 안 보는 편에 속합니다. 영화를 치열하게 보는 것보다는 다른 취미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주변 분들은 앞으로 영화를 보고 많이 공부를 해보는 것도 어떠냐는 조언을 해주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서사보다는 이미지에 관심이 많아서 이전부터 영상이나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보다는 뮤직비디오나 CF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정지혜 : 영화가 촬영 로케이션도 많고 인물도 많습니다. 촬영 회차도 40회차가 넘는다고 들었는데 이 거대한 규모를 홀로 짊어지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작 여건이 영화의 내적 요소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프리프로덕션 과정이나 스토리 보드 제작을 거의 하지 않고 현장의 즉각적인 기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행과정이 부족해서 스스로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 있어 이제 아카데미에서 프로덕션을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합니다. 다음 영화인 <불발탄>은 전쟁에 관한 영화인데, 전쟁영화의 규모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거나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정지혜 : 영화 속에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편집을 통해 엮는 과정에서 고충을 겪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원래 제가 이야기나 인물들의 감정선에 집중을 하기 보다는 이 장면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와야 박자에 맞을지, 혹은 박력이 있을지 고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 영화인 <불발탄>6.25 전쟁 때 묻혀있던 폭탄이 새로 발굴된다는 내용의 작품인데요, 이 작품에서도 플롯이 세 가지로 갈라지고, 나뉜 플롯이 엔딩에서 같은 느낌을 공유하게 되는 방식의 작품일 것 같습니다.






관객 : 차기작인 <불발탄>을 위해 전쟁영화를 많이 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영감을 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거의 모든 전쟁영화를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틈틈이 작품들을 찾아보고 있고요, 전쟁을 다루는 게임도 많이 플레이하고 있습니다.(웃음) 전쟁 속에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6.25와 관련된 사진들도 찾아봅니다. 전장을 촬영했던 기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을지 생각하면서요.


 

관객 : 영화의 결말부에서 해석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휘근 : 원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개인이 자본주의 안에서 겪을 수 있는 아픔, 그리고 그것이 계속 윤회된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려고 했기에 마지막 장면도 그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정지혜 : 영화의 결말에서 인물들이 한강에 결집한다는 게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한강은 그간 한국영화에서 상징성을 가진 장소로 활용되어 왔어요.

 

김휘근 : 영화를 구상하면서 한강이라는 장소보다는 잠실에 있는 커다란 빌딩에 유념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항상 그런 커다란 빌딩이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는데, 그 건물이 잘 보이는 장소가 잠실대교 남단 정도라고 생각을 해서 그 곳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정지혜 : 배우 분들과도 전작부터 계속 같이 작업을 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휘근 : 꾸준히 작업을 같이 해온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작업을 진행할 때 스태프가 적어서 고생을 했는데 그런 시기마다 배우 분들에게 의지한 점도 있습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많이 와주셨는데 배우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유쾌한 상황 속에서 작업을 하려고 노력을 해도 영화 작업이 고된 만큼 힘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그런 상황 속에서 제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저를 알고 있고 제 성장과정을 지켜본 배우 분들이 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늘 와주신 관객 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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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출, 연기  인디포럼 월례비행 <어딘가의 경계 : 연출 그리고 연기>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12월 27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은선 감독, 정가영 감독, 김보람 감독, 박현영 감독

진행 송효정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여성 감독들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4편의 영화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한 데 묶여 관객들을 찾아온 이유는 있지 않을까.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머리를 떠나지 않던 고민이다. 영화가 끝난 뒤 긴 시간동안 진행된 인디토크에서는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송효정: 연출도 하시고 연기도 하시는 네 분의 감독님들 모시고 이 자리를 마련해 봤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3편의 극영화, 1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는데요, 모두 어떻게 영화를 만드시게 됐는지 긍금합니다.

 

김은선: 원래 배우를 하고싶었습니다. 연기를 배웠고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연락이 안 왔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전시회 검표 알바를 실제로 했는데, 전시회의 작품들을 보면서 '나라고 작품을 못 만들겠냐'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송효정: 정가영 감독님은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력도 화려합니다. 처음에 영화는 어떻게 시작했는지, 만들어 온 영화들은 어떤 영화들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정가영: 처음 <중고나라>라는 작품을 보고 좋은 느낌을 받아서 김은선 감독님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장편 찍을때도 김은선 감독님이 많이 도와줬고, 실제로 친한 사이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함께 영화작업을 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다른 꿈들에 매진하다가 다시 영화를 찍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장편은 두 편, 단편은 열 편 정도가 됩니다. 한 해에 세네 개 정도 작업하는 것 같습니다.

 

송효정: 김보람 감독님은 <개의 역사>라는 다큐를 찍으셨습니다. 작품들이 대부분 사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인데요. 다큐멘터리에 입문했던 계기가 궁금합니다. 본인의 작품들을 엮어서 설명해주시면 자기소개가 될 것 같은데, 작품들의 내용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보람: 대학교 졸업하고 2년 반정도 취업을 못 했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극장에 많이 갔습니다. 혼자 가도 어색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독립영화를 많이 봤는데요, 당시 봤던 다큐멘터리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잡지사에 취업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좀 힘들었는데, 회사 생활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미디액트에서 다큐멘터리 만들기 수업을 들었습니다. 영상을 찍다보니까 막혀있던 내 문제점들을 해소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하려고 했던 문제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도 있었고, 다큐를 찍으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 다큐를 찍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독립의 조건>이라는 50분 짜리 작품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독립을 하기 위해 했던 생각을 담은 작품입니다. 당시가 서른 즈음이었습니다. 성인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왜 그게 안 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했던 걸 담으려고 했습니다. <독립의 조건>을 찍을 때는 독립을 못 한 상태였는데 <개의 역사>를 찍을 때는 독립을 했습니다. 그 때 살던 동네에서 사람들과 백구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송효정: 감독의 인생이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박현영 감독님은 배우를 오래 하셨습니다. 지금도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기도 하고요. 어떻게 영화를 찍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출연이력도 말씀해주세요.

 

박현영: 대학생 때인데요, 이 얘기 하면 너무 시조새라고 하는데. (웃음) 영화잡지 '키노'가 창간되고 이랬던 때에는 잡지들이 나오면 가판대로 달려가서 사고, 포스터 사고 이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낙원상가 가서 영화 보고요. 영화는 좋아해서 영화와 관련된 뭔가를 하고 싶은데 뭘 해야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때 신문 공고를 보게 됐습니다. ‘홍상수 감독 두 번째 영화 여주인공 공개 오디션이라는 단신을 봤습니다. 그 당시엔 한국영화가 지금처럼 대세가 아니었는데, 홍상수 감독의 첫 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빌려 봤습니다. 보면서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그 뒤로 연기 오디션을 오랫동안 봤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캐스팅 된 듯해요.

 

 




송효정: 관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겨보겠습니다. 궁금하신 점 있으면 손 들어주시면 됩니다.

 

관객 : <결혼전, 투> 김보람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대본이 없이 찍은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김보람: 대본이 없었습니다. 7가지 정도 주제를 가지고 하루에 하나씩 이야기를 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중간에 싸워서, 그 중 2번인가 3번 정도 촬영을 하다 그만둔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7가지의 주제는 영화 안에 대부분 다뤄져 있어요.


송효정: 본인의 이야기를 찍기 때문에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찍게 되는데, 예상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면 편집할 때 고민이 생기진 않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람: 이런 작업을 하다보면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찍으면서 내내 그랬던 것 같은데요, 이 작품을 만들 때는 예상치 못한 바보같은 부분을 최대한 넣으려고 했습니다.

 

송효정: 자학과 긴장 사이의 균형이 잘 맞춰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결혼전,투>의 촬영이 서로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나요?

 

김보람: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정확히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을 찍으면서 많이 싸웠어요. 작품을 찍고 한 달 정도 편집을 하는데 편집하는 내내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말도 당시 기분에 따라 바뀌었던 것 같은 기분이고요. 관계가 작업 과정에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만들고 같이 보면서, 당시에 만나던 분은 자기의 뜻이 온전히 반영된 편집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의했던 건 서로 얼마나 바보같은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나 하는 지점입니다. 실제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가영: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헤어진 상태에서 전남자친구 3명을 찾아가서 다큐를 찍은 적이 있는데요. 찍을때는 모두 동의했어요. 어디든 작품 내고 잘 쓰라고. 그런데 찍고 나서 편집본을 보내줬더니 말이 바뀌었습니다.

 

송효정: 다큐라서 사실이고, 극영화라서 허구고, 하는 구분법이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정가영 감독님의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는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많은 분들이 헷갈리실 것 같습니다.

 

정가영: 모두 붙여서, 끝을 내려 읽어야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조인성이었습니다.(웃음) 시나리오에서부터 조인성만 생각하면서 작업했습니다. 실제로 <더 킹>을 본 뒤에 꿈에 조인성씨가 몇 번 나왔습니다. 장편영화를 준비하면서 기계처럼 움직이는 게 답답해서 충동적으로 이 시나리오를 만들고 조인성씨의 소속사에 연락을 해서 시나리오를 보냈습니다. 보내고 나서야 왜 또 사고를 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밤 11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감독님 저 조인성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렸고요(웃음). 그렇게 실제로 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이야기가 애매하게 돼서 다음날 또 통화를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 이야기를 하다가,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영화 재미있는거 뭐 봤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송효정: 김은선 감독님의 <문화와 생활>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하루입니다. 주인공이 별 일 없이 생활하다가 저녁에 갑자기 학원을 찾아가는데, 그 계기는 뭐였을까요.

 

김은선: 별 건 아닌데, 예를 들어 같이 일하는 직원과의 대화 속에서 뭔가를 느꼈을 수도 있고, 팜플렛 같은 것들을 모아 보다가 느꼈을 수도 있고, 지나가다 구경한 발레 공연 같은 것들에서 느꼈을 지도 모르는.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주인공을 움직이게 했을 것 같습니다.

 

정가영: <문화와 생활>을 따로 봤습니다. 실제로 엄마가 편의점을 오픈했는데, 주인공이 영화 안에서 3만원 환불하는 거 보고 '어떻게 저런 디테일을 넣을 수가 있지' 라고 생각했어요.

 

김은선: 주인공의 하루 안에 사소한 아쉬움들을 더 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취하고 싶었지만 친구가 취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지만 못 만났고그런 작은 비극들을 겪게 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박현영 감독에게 궁금했던 점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연기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 찍었다고 하셨습니다. 연출 작업을 해 보니까 연기와 연출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박현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못했습니다.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릴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특히 주로 스스로의 모습이 장면을 차지하니까, 내가 생각한 대로 스스로 혼자 하면 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아요. 다만 감독일 때는 모니터 뒤에 있어야 되고 배우일떄는 카메라 앞에 있어야 되는데, 오가는 게 잘 안돼서 모니터 앞에 계속 있으니 스탭들이 힘들어했습니다. 연기 하면서 모니터를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연출도 하면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니까 좀 힘들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스스로가 카메라에 찍힌다는 경험 자체가 충격적이었는데, 이젠 편집하고 그러는 과정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생경하진 않습니다. 감독이 배우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조금 더 생긴 것 같습니다.

 

송효정: 정가영 감독도 스스로가 많이 출연하지 않았으셨나요?

 

정가영: 반 정도 출연했어요.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는 실제의 나를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편하고 즐거웠습니다.

 

송효정: 시나리오는 실제로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정가영: 실제로 썼습니다. 다만 시나리오 상에서는 조인성과의 통화가 실제로 그렇게 길진 않았습니다. 촬영 과정에서 4번정도 테이크를 갔는데 조인성씨가 애드립을 많이 준비해줘서, 소스가 많아 편했습니다. 조인성씨가 영화를 아직 보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같이 술을 한 번 마셨는데, 1차에서 끝났습니다. 더 훌륭한 감독이 돼서 23차 갈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웃음)

 


관객: 감독분들 모두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이번 작품 뿐 아니라 혹은 평소에라도, 어떤 영화나 다른 감독들에게 영향을 받은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은선: 영화보다 연극을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서정적이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영화들을 좋아했습니다. 화가 마크 루스코나 니체에게 영향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김보람: <결혼전, 투>를 찍을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아녜스 바르다입니다.

 

정가영: 홍상수를 사랑하고 좋아해요. <더 킹>의 한재림 감독도. 아무래도 제 영화에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물들이 나오다 보니까 주변에서 캐릭터들을 더 많이 넣으라고 하는데, 그런 조언을 들으면 오히려 더 한정된 공간에서 더 한정된 캐릭터를 쓰려고 합니다. 이런 주변의 말들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박현영: 딱히 어떤 한 작품을 이야기하긴 힘든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고전영화를 좋아하고 흑백영화에 나오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흑백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여러 이유로 힘들게 돼서 차선책으로 색채를 많이 뺐어요. 신비주의 사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송효정: <정화된 밤>은 많은 알레고리로 가득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전작인 <탈리타쿰>과 이어지는 작품이라고 느껴졌고, 이어지는 한 편이 더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관객: 김은선 감독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는데, 영화를 만듦으로써 연기 철학에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연기를 하는 입장이랑 영화를 만드는 입장은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또 지금은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도 여쭤봅니다.

 

김은선: 이 영화를 찍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똑같은 장면들을 가지고 다르게 편집하면서 위로가 됐습니다. 뭔가를 했다는 것 그 자체, 그 시간만으로도요. 어딘가에서 상영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고 이 과정 자체가 힘이 많이 됐습니다. 이 시기 이후로 욕구를 얼마간 해소한 느낌이 듭니다. 연기가 아니더라도 어떻게 인생을 채울지도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연출은 너무 겁 없이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출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송효정: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은선: 추운날 따뜻한 차 드시면서 행복한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김보람: 다른 작업물들 보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가영: 조심히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조인성 배우님이 <안시성> 촬영중이라고 하는데요.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박현영: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도와준 인디스페이스, 인디포럼에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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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것  인디포럼 월례비행 <우경>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11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응수 감독, 유운성 평론가

진행 변성찬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월례비행의 11월 작품은 김응수 감독의 <우경>이었다. 10년 전에 이미 촬영을 마쳤지만 이제서야 뒤늦게 관객들을 방문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경>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한겨울에 영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상영이 끝나고 김응수 감독, 유운성 평론가와 변성찬 평론가의 대담이 있었다.

 

 





변성찬 평론가(이하 ) : 영화에 제작연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는데요, 올해 공개된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촬영된 영화라고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언제 촬영했는지, 어떤 계기로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응수 감독(이하 ) : 제작연도를 써넣지 않는 태도는 앞으로도 유지하려고 합니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항상 써놓으면 바꾸고 그래야 하더라고요. 실제로 찍은 건 10년 전입니다. 영화를 제작한 배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 할 같은데, 전작인 <과거는 낯선 나라다> 찍고 나서 후반작업을 진행할  유운성 평론가가 사적으로 후반작업을 돕고 싶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때는 마다했는데, <우경> 찍고 싶어졌을  연락을 했죠. 보내주겠다던 돈, 지금 주면 안되겠냐고.(웃음당시에 정말 사적인 동기로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영화는 사실상 유운성 씨가 제작의 실비를 대주신 영화입니다. 자막에 기재되어있죠. 그런데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몰려서 최종 작업이 늦어졌고 10년 만에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 그런 과정이 있었군요. 제가 영화를 처음 알게 계기도 유운성 평론가를 통해서였는데요, 당시에 마디를 하시더라고요. “좋아요.” 그래서 궁금합니다. 영화에 대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