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의 삶  <어머니> 5주기 추모상영회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9월 3일(토)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민종덕 『노동자의 어머니 - 이소선 평전』 작가

진행: 김화범 <어머니> 프로듀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9월 3일 이소선 어머니의 기일이 찾아왔다.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투쟁의 현장에서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평생을 살아오신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인디스페이스는 이소선 어머니의 삶을 담은 태준식 감독의 <어머니> 추모 상영회를 가졌다. 이날 인디토크에서는 최근 『노동자의 어머니 - 이소선 평전』을 출간한 민종덕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김화범 <어머니> 프로듀서(이하 김): 이소선 어머니의 평전을 출간하셨다. 어머니의 생을 옆에서 가까이 지켜보셨는데, 어머니를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나?


민종덕 작가(이하 민): 1953년에 태어나 60년대 말에 서울로 왔다. 당시 가난해서 진학이 어려웠고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러던 중 전태일 열사의 일기를 담은 책을 보게 되었고 그의 정신을 쫓아 살기로 결심했다. 책에 적혀있던 주소를 보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다.


김: 직접 평전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민: 1989년이 이소선 어머니의 환갑이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듬해에 환갑 잔치를 해드렸다. 그때 평생을 바쳐 노동운동을 하신 어머니를 위해서 글을 써야겠다 결심했지만, 내가 글 쓰는 사람이 아닌지라 다른 작가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감히 자신이 어떻게 어머니의 삶을 글로 쓰겠느냐는 반응들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직접 쓰게 되었다. 급하게 썼기 때문에 오탈자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정체성이 훼손될 것이 우려되었다. 그들의 정신을 생생히 규명을 해놓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작업을 하게 되었다.


김: 어머니가 타계하신 이후에도 우리는 어머니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소선 어머니의 정신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민: 어머니가 늘 강조하시던 말들이 있었다. 하나가 되어라, 죽지 말고 싸워라, 인간차별하지마라. 이 세 가지였다. 어머니는 식민지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 편부모가정에서 자라셨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인간차별에 묵인하지 않고 해결하려 애썼다. 어머니께서는 평등세상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사셨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단결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단결이 잘 되지 않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공동투쟁에 균열이 생긴 것에는 반드시 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단결과 야합을 구분 지어야 한다. 하나가 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단순히 표면적이고 관습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매년 기일에 추모 상영회를 해왔다. 올해는 영화를 어떻게 보았나?


민: 평생을 바쳐 싸워오신 어머니의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인간적으로 접근한 것이 좋다. 영화 속에서 소녀처럼 귀여우신 면모가 많이 보였는데, 실제로 그러셨다.(웃음) 



김: 어머니께서 대중가요를 잘 부르셨다고 들었다. 애창곡이 있었나? 


민: 어머니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아들이 그리울 때 ‘해운대 연가’를 부르시곤 했다. 노래 가사가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다짐한 내용이다. 또 찬송가도 즐겨 부르셨다. 전태일 열사는 ‘맨발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가사가 그의 삶과 닮은 점이 많다. 인간적인 사랑을 한 청년이었다. 


관객: 4년 전, 대구의 <어머니> 시사회에서 처음 보았다. 감회가 새롭다. 시사회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국회의원이나 고위급 직원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시겠냐는 질문에 어머니께서는 등짝을 때려버리겠다고 하셨다.(웃음) 어머니는 실제로 그런 상황에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다.


민: 어머니는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준엄하게 꾸짖곤 하셨다. 


관객: 개봉 당시 이 영화가 계기가 되어 적극적으로 운동에 뛰어들기로 마음을 먹고 시민운동에 몸을 담았다. 그런데 여성으로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여성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나 불쾌한 언행들이 많았다. 여성으로서 시민의 삶을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하는지 조언을 듣고 싶다.


민: 당시 노동운동 환경과는 많이 달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남녀 구분이 없이 함께 투쟁하는 분위기였다. 현재 그러한 문제점들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노동운동이 남성 위주로 굴러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시 청계노조 운동은 남성 위주였는데 노조 강제해산 이후 세대교체가 있었고 그 이후에 여성운동가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 위주였다. 관습적으로 그래왔다. 우리가 깨트려나가야 할 문제이다. 


『노동자의 어머니 - 이소선 평전』 편집장: 그런 문제들이 책 안에도 실려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여성으로서 겪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경찰이나 관으로부터 또는 노조 안에서도 그 일화가 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반드시 싸워나가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민: 이 자리에 계신 임미경 씨에게 말씀을 청하고 싶다. 1977년 노동 교실이 있었다. 투쟁과 배움과 연대의 장이었다. 임미경 씨는 그 당시 노동 교실의 실장이었다. 어머니를 구속하고 교실을 없앴던 국가에 맞서 어머니를 석방하라고 외쳤던 순간이 생생하다. 14살이었던 임미경 씨가 그 당시 얼마나 지독하게 싸웠는지 모른다.


임미경: 당시 주민번호 앞자리가 000000이었다. 미성년자였던 나와 다른 사람들을 구속시키기 위한 정부의 방식이었다. 어머니가 구속되고 우리는 일어섰다. 당시 다들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지 어머니를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줄 줄 알았다. 그래서 구치소 앞에서 밤마다 외쳤다. 당연히 소용이 없었다. 후에 나를 포함한 5명이 어머니가 있었던 구치소로 잡혀 들어갔다. 밥을 넣어주는 구멍으로 ‘어머니 어디에 계세요!’하고 외치면 ‘여기 있다’하고 대답을 해주셨다. 우리는 당당했다. 죄를 짓고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수들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재판을 가도 판검사가 놀랄 정도로 우리는 말을 참 잘했다. 있는 그대로의 정의를 말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도 ‘쟤들은 죄가 없다, 어린애들을 왜 구속하려고 하냐.’고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천 명만 길에 드러누워도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위대한 분이셨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아까 여성운동가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가 투쟁했던 그 당시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냥 동지였을 뿐이다. 지금처럼 성희롱이 있거나 여성 자체를 모욕하지 않았다. ‘너와 나는 동지다. 하나가 돼야 살 수 있다.’ 하는 생각뿐이었다. 한 방에서 같이 먹고 자고 굶었다. 그랬던 당시의 정신을 잃어가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야 하나가 되고 투쟁할 수 있다. 절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태삼(전태일 열사의 동생, 이하 전): 민종덕 저자와 한 사무실에서 함께 일했다. 수년간 함께 노동 운동을 해왔다. 위원장이 수시로 바뀌던 혼란의 시절과 지나온 파란만장한 시간이 민 작가에게 배어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희망적이었던 시간이 언제였나? 


민: 아무 잘못 없이 청계노동 운동 위원장 해임을 당했다. 강제로 쫓겨났다는 사실이 젊은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 때 많이 울었다. 가장 희망적이었던 순간은 단연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기쁜 순간이다. 수 십년 간의 노동운동 생활 속에서 이겼다는 기분이 들었던 순간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때는 노동계급 자체가 승리한 순간이었다. 그 감동이 앞으로 남은 생에 또 있을지 모르겠다.

 

전: 형(전태일 열사)과 함께 뛰어 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기를 희망한다. 


김: 마지막으로 청년 노동자로 살아갈 이 시대 젊은 노동자들에게 어머니의 삶을 비춰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민: 우리 아이들도 청년인데, 지금의 청년들을 보면 우리가 과거에 뭐했나, 이런 세상 물려주려고 그렇게 치열하게 투쟁했나 하는 자괴감이 가장 먼저 든다. 2002년 월드컵 때 생기발랄한 청년들을 보면 뿌듯했는데, 더 비참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을 보면 마음이 참 아프다. 뭘 제시해줘야 할까. 방법이 없다. 약한 놈들이 뭉쳐서 싸우는 방법밖에. 그들이 아무리 찢어 놓으려 해도 어떻게 하면 연대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끊임 없이 고민해야 한다.


김: 긴 시간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평전과 영화를 통해 어머니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얘기를 건넬 것 같다. 앞으로도 어머니와 우리들의 많은 대화가 오갔으면 좋겠다. 



‘저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뤄주십시오.’ 1970년 22살의 전태일은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질렀다. 아들 하나를 잃고 수천, 수만의 아들을 얻은 이소선 어머니.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내며 살아오셨다. 아들 전태일의 죽음 이후 그분의 삶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영정 사진 속 어머니는 여전히 마이크를 쥐고 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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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클릭하면 영화별 세부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16.09.01- 2016.09.07 인디스페이스 상영시간표 


<그림자들의 섬> 김정근 | 98분 | 다큐멘터리 | 15세이상관람가

<범죄의 여왕> 이요섭 | 103분 | 드라마 | 15세이상관람가

<최악의 하루> 김종관 | 93분 | 드라마 | 15세이상관람가

<서울역> 연상호 | 93분 | 애니메이션 | 15세이상관람가

<시발, 놈: 인류의 시작> 백승기 | 71분 | 드라마 | 15세이상관람가




예매 안내 (실시간 예매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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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 5주기 추모상영회


● 일시: 2016년 9월 3일(토) 오후 7시 30분

● 인디토크(GV) 참석자: 태준식 감독 외

● 관람료: 7,000원 (인디스페이스 후원/멤버십 회원 무료)








 Synopsis 

고맙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올곧은 당신,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창신동. 좁은 골목들 사이로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 곳에 한 할머니가 있다. 작은 선녀라는 뜻의 소선이란 이름을 지녔지만 그 누구보다 넓은 가슴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낸 분. 이소선 어머니는 큰 아들 전태일의 죽음 이후 이웃의 고통과 그들의 전쟁 같은 삶을 늘 함께 하며, 40여 년간 스스로의 힘으로 아름답고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 


인고의 시간이 만들어낸 올곧음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모든 이들의 어머니였던 그녀의 마지막 2년간의 이야기. 그리고 전태일이 분신하기 전, 어머니 이소선과의 마지막 날을 담은 젊은 예술가들의 연극 <엄마, 안녕>과의 만남. 가늠할 수 없는 그날의 고통을 힘겹지만 아름답게 승화시킨 그들에게 이소선의 삶은 어떤 의미이며, 이소선에게 아들 전태일과 이 땅의 노동자들은 어떤 의미일까. 


슬픈 약속으로 시작된 어머니의 삶의 자취가 기적 같은 희망의 이야기로 우리 곁을 찾아 온다.




 Information 

제목 어머니(Mother)

감독         태준식 

출연         이소선, 전태삼, 홍승이, 백대현 외

제작/제공       <어머니>제작위원회

배급/홍보마케팅 ㈜인디스토리 (www.indiestory.com)

장르 휴먼다큐멘터리

제작방식 HD/칼라

제작연도   2011년

상영시간   102분

관람등급   12세이상 관람가

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11

서울독립영화제2011

제16회 광주인권영화제 개막작

제14회 강릉인권영화제

제12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제작지원 2010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전제작지원

        2011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후반현물지원(녹음, D.I)

개봉일   2012년 4월 5일

공식블로그   blog.naver.com/docusosun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sosun.docu

공식트위터 @2012withmom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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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당신은 이 안에 있어요’

이소선 어머니 4주기 추모상영회<어머니>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5년 9월 3일(목) 오후 8시

참석: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진행: 주현숙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어머니를 추억하고 기리는 영화는 많다. 그러나 태준식 감독의 영화 <어머니> 속 ‘어머니’는 조금 특별하다. 그녀는 평화시장 앞 청계천 다리에서 분신 항거한 故 전태일의 어머니인 동시에 이 세상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다. 故 이소선 여사의 4주기를 맞이하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추모 상영회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했다. 



주현숙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이하 주): 안녕하세요. 저는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주현숙입니다. 오늘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바쁘셨죠, 이사장님?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하 이): 네. 오늘이 이소선 어머님 4주기여서 묘지에 가서 추모 행사도 하고 여러 가지로 좀 바쁘게 지냈습니다.


주: 누군가를 추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는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좋은 이야기도 하고, 뒷담화도 하고. (웃음) 제가 어느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이소선 어머님을 친어머니처럼 모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일화가 있으시면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대체로 아는 분들은 압니다만, 제가 전태일과 같은 나이에요. 지금 전태일이 얼마쯤 늙었을까 하면 잘 감이 안 잡히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 분은 이십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주: 이사장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저는 알고 있는데. (웃음)


이: 지금 벌써 68세가 됐죠. 저의 경우,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보다 훨씬 더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늘 전태일을 마음속에 담고 살았던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 돌아가시고 이소선 어머니가 정말 친어머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조금 더 자주 찾아 봬야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체 무심한 경상도 사람이라서 살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항상 어머니를 생각하곤 했죠. 오늘 영화를 또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새록새록 많이 드네요. 


주: 저도 이 영화를 여러 번 봤어요. 이소선 어머니하면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먼저 떠오르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어머니가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져요. 제목이 <어머니>인데 저는 처음에 보고 ‘할머니이신 것 같은데?’라는 이야기도 했었거든요. (웃음) 친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 같달까. 아마 여기 오신 분들 중에도 예전에 이소선 어머니를 뵀던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제작하고 있는 영화가 85년도에 있었던 구로 동맹 파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때 당시에도 이소선 어머니가 다녀가시곤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혹시 선배님, (객석을 가리키며) 옛날 일 기억나시는 거 없으세요? 


관객: 저는 구로 동맹 파업 관련해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쫓겨나고 갈 곳이 없어서 옮겨 다니던 중에 어머니께서 굉장히 푸근하게 품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떨리고, 살아 계셨을 때 찾아뵙지 못했던 게 가슴이 깊게 후회로 남네요.


주: 아까 밖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오늘 전태일에 대한 책을 읽고 온 학생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고개 숙이고 있는 저 분들일 것 같은데, (웃음) 대표로 한 분이 영화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 저는 전태일 평전, 전태일 관련 영화, 또 『태일이』라는 다섯 권짜리 만화책으로 전태일 열사를 접한 바 있습니다. 또 이소선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도 읽어봤는데요. 이렇게 영화로 어머니를 뵙게 되니까 굉장히 색다른 기분이 들었어요. 그저 전태일 열사 사진 안고 계시는 사진 외에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이렇게 소탈한 모습을 뵙게 되니까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주: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가 전태일 열사가 가졌던 정신에 대해서도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이소선 어머니가 갖고 계셨던 정신 역시 따로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인데요. 어떠신가요? 그리고 더불어 올해로 어머니 4주기, 그리고 전태일 열사 45주기를 맞이해서 다양한 추모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오늘 영화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시면서 이소선 어머니께  아주 큰 소리로 본인의 말을 다시 반복하게 하셨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니께 뒷일을 부탁하는 거죠. 그것은 어떻게 보면 전태일 열사가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와 한 약속 때문에, 정말 돌아가실 때까지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매 시기에 따른 어머니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면, 인간인 동시에 한 자식의 어머니이면서 또 노동자들을 위한 삶을 사는 한 시대의 운동가의 모습 등 정말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올해가 전태일 45주기에요. 그래서 저희 전태일재단에서는 45주기 행사를 크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재단이 직접 무언가를 제작하는 비중은 줄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다른 단체에서 이미 전태일이나 어머니, 그리고 그 분들의 삶을 기리는 작품들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연극, 뮤지컬, 합창 그리고 심지어 판소리까지요. 전태일 열사께서 돌아가신 11월 13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이런 행사들을 모아 시연을 하려고 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 평화시장 앞 전태일 열사가 분신 항거 하신 전태일 다리에서 행사가 시작됩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행사들이 쭉 이어질 예정이고요. 더불어 어머니에 대해서는 내년 5주기에 맞춰서 평전을 작가님께 부탁드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로서 이소선도 있지만, 한 여성 노동운동가 그리고 시대를 살아간 여인으로서 이소선 여사의 독특한 모습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것을 찾아보려 합니다. 전태일 어머니로서의 이소선 뿐만 아니라, 전태일 열사와도 대등한 관계로서의 이소선 어머님의 사상과 삶을 찾고 이를 함께 기념하며 삶의 모범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하려고 생각 중에 있습니다.


주: 오늘 영화 보면서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는데요, 영화에서 쌍용 자동차 해고자 분들이 하늘색 티셔츠 입고 어머니를 운구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최근에 그곳 지부장님이 단식 들어가셨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이 나면서, ‘세상 되게 안 변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45주년이라는 숫자 때문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시 한 번 전태일 정신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태일 정신이란 무엇일까요? 


이: 전태일 열사 돌아가실 때, 사실은 근로 기준법 항거식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근로 기준법이라는 법이 노동자를 위해서 있는데 아무 쓰임이 없는 거예요. 당시 노동자들은 읽지 못할 정도로 한자투성이고. 이런 근로 기준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항거 였죠. 근데 최근에 우리 노동자들이 고공농성도 시작하고 처절하게 길거리에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는 일도 생기는 것들을 보면 아직도 근로 기준법에 대해 그 때와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는 거죠. 특히 노동자의 삶이 그렇습니다. 사회는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노동의 가치나 조건들이 얼마나 낮게 대우받고 있습니까. 오늘 영화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만, 어머니는 항상 시대에 맞게 싸워오신 분입니다. 연세가 드시는 동안에도 쭉 상황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싸워오신 거죠.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이미 상당히 연세가 드셨을 때이지만, 또 그 연세에 맞는 마음가짐으로 투쟁해오셨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당신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찾아가진 못하셨지만, 늘 걱정을 하셨죠. 그렇게 시기에 따르며 적절한 삶을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때에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대가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 때마다 우리가 할 일이 있으며 그것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시대에서 전태일 정신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를 제시하기 위해 재단에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옛날에는 없었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안고 있지요. 흔히 이주 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 그 분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노동자 가운데에서 가장 열악한 상태에서 처절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외국인 이주 노동자 분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어떻게든 함께 하려는 노력 역시 시대에 따른 전태일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 자신이 힘들어 봐야 다른 사람이 힘든 것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재단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활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께서 겪으셨던 자식을 잃은 아픔이란 참 그 어떤 아픔보다 큰 것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아픔을 승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세월호 집회 행진에 다녀왔는데,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다들 멈추더라고요. 그 위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분들이 올라가 계셔서 서로 인사도 하고요. 그 때 제가 아이를 데리고 갔었는데, 세월호 유가족 분이 저희 아이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시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이렇게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그 때 느꼈어요. 그리고 이소선 어머니의 정신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사장님은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보셨죠. 어머니는 계속 현장에 나가셨잖아요. 저는 그게 참 놀랍더라고요. 


이: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연세가 많이 드셔서 아프신 곳도 많아 실제로 가고 싶어도 못가는 곳이 참 많으셨어요. 그럼에도 어머니는 무슨 일이 생기면 우선 뛰어가고 보는 분이셨습니다. 아픔을 함께하는 분이셨다는 것, 이게 굉장히 중요한 어머니의 모습이고 전태일 열사가 보여줬던 행동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어머니께서 대단하신 것은 그런 노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셨다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편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끝까지 가난하게 사셨어요. 더 좋은 집으로 모신다거나, 편하게 해드리겠다는 것도 거부하시고 우리 노동자들과 똑같은 삶을 스스로 택하시고 끝까지 연대하셨다는 것이 참 위대한 겁니다. 지금 전태일재단이 건물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다 이소선 여사께서 힘써주신 덕분입니다. 전태일재단은 그렇게 생긴 거예요. 재단에는 재산이 없는데 어머니께서 본인 재산을 재단 재산으로 마련해주고 가신 거예요. 저희가 이런 운동들을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죠. 이소선 어머니는 너무나도 지혜로우시고 꼿꼿하신, 그리고 용기가 있으셨던 분입니다. 


주: 저는 이 영화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어요. 남성분들이 어머니를 호명하는 모습이 뭐랄까, 희생을 강요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거든요. 차라리 딸이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어머니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어 하는 모습 역시 희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머니가 줄 수 있는 위안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까 살짝 힌트를 얻었는데요. <어머니>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시간을 내서 오시는 분이 관객 분들 중에 계시다고 들었어요. 열 번 이상을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그 분이 이 영화가 주는 위안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위안을 받으시기에 이렇게 매번 <어머니>를 관람하시나요? 궁금합니다. 


관객: 시간이 참 많이 지났는데 <어머니> 쇼케이스를 할 때 처음 보게 되었어요. 예전부터 ‘어머니’라는 제목이 참 와 닿았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에는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에 대한 생각들을 떠올렸지만, 결국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어머니의 존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들의 어떤 염원을 실현하신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의 어머니들이 다 그렇게 살고 계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 영화를 통해 위안을 받고 싶어서 DVD도 구입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어머니는 힘들게 사셨지만 그 과정을 유쾌하게 풀었다는 점 때문이에요.  


이: 어머니께서 굉장히 좋아하셨을 만한 이야기네요.


주: 저는 사실 제작에 들어가지 않은 촬영본도 자주 접했어요. 보니까 어머니가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시더라고요. 잘 삐지시고. (웃음)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면 하나만 이야기해주세요. 


이: 어머니는 굉장히 인간적인 분이십니다. 명석한 분이시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까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습니다만, 고스톱 치는 데에 있어서는 이소선 어머니를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 돈을 끌어 모으는 탁월한 실력가이셨습니다. (웃음)


주: 타짜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머님에 관한 예전 이야기들을 죽 읽어봤어요. 어머니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역시 안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모르는 거다, 라는 말이 맞더라고요. 국면마다 정확한 판단을 하시고 어떨 때는 앞서나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씀은 ‘하나가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규명하려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함께 가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이: 그것이야말로 어머님의 일관된 메시지죠. 그리고 그 뒤에 덧붙이면 ‘하나가 되면 다 이루어진다’가 되는 거고, 앞에 덧붙이면 ‘노동자가 하나가 되라’가 됩니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노동자인데, 노동자들은 왜 그렇게 억압을 받을까요. 그건 단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주 원칙적인 이야기이지만 절실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최근 분열 사태가 참 많이 발생합니다. 크게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갈라져 있죠. 내부적으로 다른 점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어머님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부분은, 서로 잘났다고 싸우지 말고 뭉쳐서 하나가 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언제나 그런 당부를 하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과제로 남겨두고 가셨죠. 단순해보이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지표를 분명하게 제시해주신 것 같습니다. 


주: 벌써 4주기를 맞았지만, 그냥 친한 할머니 한 분 뵈러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의 메시지가 와 닿습니다. 혼자 있으면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약한 존재이지만, 몇 명만 모여도 무언가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잖아요. 어머니를 보면서 그 생각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45주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가 그런 정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네요. 내년에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5일부터 죽 행사가 진행되더라고요. 전태일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행사 일정이 올라와 있죠?


이: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청계천 평화시장 전태일 다리 위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고 뜻 깊은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많이들 오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젊은 분들도 이 자리를 찾아주시고, 상당히 무거울 수 있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그리고 어머니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사실에 참 기분이 좋습니다. 노동 운동이라고 하지만, 사실 전태일 열사의 전체 노동자 생활은 5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정신이 가능했던 것은 ‘젊음’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청년 전태일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그 정신을 확인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주: 저 역시 오늘 왜 ‘청년 전태일인가’에 대해 다시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전태일 정신에는 전태일도 있지만 청년도 있다는 사실. 최근에 제가 했던 인터뷰 중에서 ‘역사의 주인공이 누굴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 분께서 ‘아이들’이라고 답하시더라고요. 그 때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었는데, 오늘 이사장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늦은 시간임에도 잊지 않고 함께 해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전태일다리에서 뵙겠습니다. 





‘이소(小)선’. 태어났을 당시 워낙에 작은 몸집 때문에 붙여졌다는 어머니의 이름 세 글자. 하지만 그녀가 생에서 보여주었던 투쟁에 대한 열정과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품었던 그 사랑만큼은 결코 작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해야 하는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일 것이다. 격동하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혜안을 가졌던 어머니의 푸근한 미소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영화 <어머니>를 올해에도 만날 수 있어 기쁜 시간이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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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 4주기 추모상영회 | <어머니> 상영 


● 일시: 2015년 9월 3일(목) 오후 8시

● 인디토크(GV) 참석자: 태준식 감독,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 관람료: 6,000원 (인디스페이스 후원회원·멤버십 무료)








 Synopsis 

고맙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올곧은 당신,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창신동. 좁은 골목들 사이로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 곳에 한 할머니가 있다. 작은 선녀라는 뜻의 소선이란 이름을 지녔지만 그 누구보다 넓은 가슴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낸 분. 이소선 어머니는 큰 아들 전태일의 죽음 이후 이웃의 고통과 그들의 전쟁 같은 삶을 늘 함께 하며, 40여 년간 스스로의 힘으로 아름답고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 


인고의 시간이 만들어낸 올곧음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모든 이들의 어머니였던 그녀의 마지막 2년간의 이야기. 그리고 전태일이 분신하기 전, 어머니 이소선과의 마지막 날을 담은 젊은 예술가들의 연극 <엄마, 안녕>과의 만남. 가늠할 수 없는 그날의 고통을 힘겹지만 아름답게 승화시킨 그들에게 이소선의 삶은 어떤 의미이며, 이소선에게 아들 전태일과 이 땅의 노동자들은 어떤 의미일까. 


슬픈 약속으로 시작된 어머니의 삶의 자취가 기적 같은 희망의 이야기로 우리 곁을 찾아 온다.




 Information 

제목 어머니(Mother)

감독        태준식 

출연        이소선, 전태삼, 홍승이, 백대현 외

제작/제공       <어머니>제작위원회

배급/홍보마케팅 ㈜인디스토리 (www.indiestory.com)

장르 휴먼다큐멘터리

제작방식 HD/칼라

제작연도   2011년

상영시간   102분

관람등급   12세이상 관람가

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11

서울독립영화제2011

제16회 광주인권영화제 개막작

제14회 강릉인권영화제

제12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제작지원 2010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전제작지원

       2011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후반현물지원(녹음, D.I)

개봉일   2012년 4월 5일

공식블로그   blog.naver.com/docusosun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sosun.docu

공식트위터 @2012withmom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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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 3주기 추모 상영회 인디토크

영화: <어머니>_감독 태준식

일시: 2014년 9월 3일

참석: 태준식 감독, 한석호 민주노총 사무부총장/전태일 재단 기획실장, 윤수영 열혈관객

진행: 이현희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신효진 님의 글입니다 :D






우리는 모두 한 어머니의 자식들입니다. 이 세상 모든 노동자들이 형제에요.” - 막심 고리끼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는 옛날에 읽었던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분이었다. “내가 정말 노동자의 어머니인데 뭐..” 라며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그 무거워 보이는 수식어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시며 이야기하시던 어머니.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여전히 광화문 광장이 북적이는 가운데 이소선 어머님이 더욱더 그립다.

그리운 어머니를 영화를 통해서나마 다시 뵙기 위해 인디스페이스에서 <어머니> 3주기 추모 상영회가 열렸다. 이번 인디토크에는 한석호 민주노총 사무부총장님, 태준식 감독님, 그리고 영화 <어머니>를 극장에서 7번이나 봤다는 열혈 관객 윤수영씨가 참석했다. 생전의 이소선 어머님의 모습과 영화 속 모습, 영화에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모든 모습까지 인디토크를 통해서 이소선 어머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껴보자.

 



진행: 감독님은 오랜만에 영화를 보신 느낌이 어떠세요?

 

태준식 감독 (이하 태): 개봉을 하고 나서는 제대로 영화를 본 적이 없었고, 2년이 지나고 나서야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네요.(웃음) 어머니는 이제 하늘에서 전태일 열사와 잘 지내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면서 지금 남아서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머니를 어떻게 추모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작품을 보게 되면 조급증이 생겨요.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요. 이 작품은 어머니의 그 크고 넒은 마음, 그리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진행: 제목이 어머니잖아요. 영화를 보면 항상 밥을 챙기시고 살갑게 주변사람들을 챙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좋은 느낌이 들었는데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의 어떤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셨는지 궁금해요.

 

윤수영 씨 (이하 윤): 어머니께서는 본인 스스로 삶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보여주신 것 같아요. 하시는 말씀 중에나, 어린 아이에게나 어른들에게 똑같이 대하는 모습.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그런 예의 있잖아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잊고 사는 것들을 채워주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진행: 왜 어머니를 그 시기에 영화에 담게 되셨나요?

 

: 노동 운동하면 보통 일반 시민들은 비호감이고, 길 막히게 하고, 빨갛고, 너무나도 이기적인 이미지를 많이 생각해요. 저는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순수한 마음과 굉장한 진정성을 가지고 좋은 세상,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이소선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진행: 어머니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 어머니가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웃음) 왜 자꾸 오느냐고. 그래도 자주 가서 들이대니까 어머니도 어쩌실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결국에는 자기를 찍어서 뭘 어떻게 하려고 하나하는 측은지심이 드셨는지 잘 대해주셨어요. 초반에는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너무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진행: 부총장님은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한석호: 저는 주로 어머니가 계셨던 길거리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어떻게 평하지는 못하겠고요. ‘태 감독이 어머니의 삶에 대해 큰 기록을 남겼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태일 30주기를 보내면서 그런 고민이 있었거든요. 전태일 열사라고 우리가 흔히 부르는데요. 어머니가 생전에 태일이를 열사라고 하지 말아라. 태일이도 인간이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었어요. 저희가 전태일 다리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전태일을 단지 열사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가깝게 느끼도록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전태일 캐릭터를 만들기도 하고, 태일이 오빠, 태일이 형이라고 부르자고 하기도 했었죠. 이 영화도 그것과 같은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 계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일반인들이 보기에 뭔가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느껴지는데요. 태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전태일의 어머니라고 하는, 길거리에서 평생 싸워온 사람이 아니라 옆집 할머니 같은 어머니를 잘 담아낸 것 같아요. 이소선 어머니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진행: 감독님이 영화를 찍기 시작할 때는 어머니의 죽음까지 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셨을 텐데요. 어머니의 죽음을 대하시면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 주인공이 자신이 나온 작품을 보지 못 한다는건 참 마음이 아프죠. 그래서 제겐 아직도 마음의 빚이 있어요. 이때만 되면 어머니가 꼭 떠오르고요. 매 기일 날에는 어머니가 내려오셔서 영화를 보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꼭 상영하고 싶어요. 특히 요새 어머니가 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노동 운동의 상징인 어머니의 부재로써 생기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머니께서 살아 계셔서 지금 함께 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그건 욕심이겠죠.

 

진행: 영화 속에 나온 연극이 한 맥락을 차지하는데요. 영화를 기획하면서 연극을 고려해고 담으신 건지, 우연히 담게 되신 건지 궁금했어요.

 

: 영화를 찍다가 우연치 않게 연극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전태일 열사 추모 40주기에 여러 행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전태일 열사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준비하고 있는 연극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촬영을 하던 중간에 결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촬영을 하면서도 넣을까말까 고민을 하면서 촬영을 했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때가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행: 이 영화는 어머니의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투쟁적인 모습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한 편 정도 더 있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 사실 영화를 상영하면서 그런 지적은 많이 받았어요. 지금 저 역시도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정말 한 분의 일생 자체에 집중하여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요. 길거리에서 운동하다 감옥에도 갔다 오고 하신 어머니가 노동운동에서 이뤄내신 업적들을 잘 정리한 다큐멘터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다른 방향으로 어머니를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기획했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을 다 담아내지는 못했죠. 또 작업을 하라고 하면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웃음)

 

한석호: 제가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태일 생각을 할 때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죽은 것을 많이 생각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는 기껏해야 26개월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참 꿈도 많았고 나름대로 소설도 쓰고 싶어 하고 현재로 보면 사회적 기업도 만들고 싶어 했던 22살짜리 청년이, 당시 사진을 보면 참 멋있기도 하고, 마음에 품은 여성도 있던 평범했던 그 청년이, 어느 순간 몸을 던져야겠다고 생각 했을 때 실제 내면은 어땠을까? 그 날 그 집회가 막히고 혼자 평화시장 어디선가 몸에 휘발유를 뿌리면서 그 마음은 어땠을까? 불을 붙이고 뛰어나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잘못된 세상에 경종을 울려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겠지만, 또 한편에서는 다른 마음을 갖지는 않았을까? 살고 싶지 않았을까? 몸에 휘발유를 뿌리면서도 누가 옆에서 말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불을 붙이고 뛰어나오면서 빨리 친구들이 그 불을 꺼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저는 22살 청년이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전태일 책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이소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극의 펭귄들이 한겨울 영하 60도의 시속 160km의 눈보라를 견디기 위해 허들링이라는 행동을 합니다. 서로 둥글게 원을 만들어 안에 있는 펭귄들을 따뜻하게 해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안에 있는 펭귄이 밖으로 나와 다른 펭귄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행동이지요. 어머니는 그런 펭귄들 중 가운데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바깥을 고집하면서 사신 분입니다. 길거리에서 운동을 하시는 모습을 찍어놓은 영상은 많아요. 그런데 태 감독님은 그런 모습의 이면에 있는 인간 이소선의 모습을 잘 담아내신 것 같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아들과 오손도손 살았을 어머니의 내면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투사로서의 이소선 모습은 이미 존재하는 기록들만 모아놓아도 많아요. 오히려 저는 태 감독님의 영화가 한 인간으로서의 어머니 모습들을 담아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살아왔던 길이 특별한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평범한 나도 옆에서 힘들고 눈물 흘리는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진행: 만약에 수영씨가 어머니를 직접 만나 뵐 수 있었다면 어머니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 듣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 저는 아무 말 없이 가서 안아달라고 하고 싶어요. 어머니는 이런 거 저런 거 묻지 않고 저의 힘든 마음을 다 받아주실 것만 같거든요. 저는 처음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담았는데 왜 영화의 제목은 단순히 어머니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서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정말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시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반했던 것 같아요.




 




관객: 저는 영화의 배경음악 선정이유가 궁금하고, 연극을 보면 대만 연출가가 연극을 연출하던데요. 왜 대만 사람이 연출을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 배경음악은 일단 팬심이 강했습니다. 이아립씨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으로요.(웃음) 전략적으로 어머니의 괄괄한 목소리를 중화시켜줄 수 있는 목소리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대만 연출가와 두 연극배우가 만나게 된 이야기는 많이 깁니다. 왕모림 선생님(대만 연출가)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신데요. 두 분이 서로 마음이 맞아 만나서 계속 기도를 하셨대요. 그러다 왕모림 선생님이 전태일 열사가 죽으러 가던 날 그 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연극을 연출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진행: 아마도 이소선이라는 분은 세 분 모두에게 너무나도 큰 의미인 것 같아요. 한 분에게는 항상 위로가 되시는 분이고, 한 분에게는 의지가 되는 분이시고요. 이렇게 언제나 마음속에 남아계신 분이신데요. 지금은 안계시지만, 어머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혹은 관객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 어머니, 천국에서 편안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관객 분들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내년에 또 봬요.(웃음) 이소선 어머니는 용기가 많으신 분이셨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민이 많으신 분이셨어요. 이 영화를 보시고 1년 동안 여러분들이 그런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1년 후 뜨거운 더위가 사그라들 때 다시 한 번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상황이 너무 답답하죠, 이소선 어머니처럼 되려고 노력하면 좋은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을까요? 그런 말씀도 남기고 싶네요.

 

한석호: 40주기 행사 마치고 어머니께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어머니가 고생했다고 모두에게 밥을 사셨는데요. 그때 모였던 사람들이 45주기 때 전태일 기념관을 만들테니 그때까지 꼭 살아 계셔달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태일 기념관을 만들어서 사회적으로 노동이라는 가치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싸우면서 못 이룬 꿈이 그것이고요. 45주기가 내년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전태일 기념관을 만들기 위한 범국민 운동을 만들어갈테니 그때 꼭 여기 계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길거리에서도, 삶 속에서도 사랑을 실천하셨던 어머니는 여전히 모두의 마음속에 큰 별이 되어 남아계신다. ‘연민을 용기로 실천하셨던 분이라는 태준식 감독님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그녀의 연민을 본받아 우리도 용기 있게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어머니>를 통해 그리운 어머니를 다시 만난 관객들에게 막심 고리끼의 한 구절을 당부하고 싶다.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 막심 고리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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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선 어머니 3주기 추모상영회_<어머니> 상영 


● 일시: 2014년 9월 3일 오후 7시 30분

● 인디토크(GV) 참석자 : 한석호(민주노총 사무부총장) , 윤수영(열혈관객), 태준식 (감독)

※ 참석자는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

● 관람료: 6,000원 (인디스페이스 후원회원/멤버십 무료)



Synopsis 


고맙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올곧은 당신,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창신동. 좁은 골목들 사이로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 곳에 한 할머니가 있다. 작은 선녀라는 뜻의 소선이란 이름을 지녔지만 그 누구보다 넓은 가슴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낸 분. 이소선 어머니는 큰 아들 전태일의 죽음 이후 이웃의 고통과 그들의 전쟁 같은 삶을 늘 함께 하며, 40여 년간 스스로의 힘으로 아름답고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

인고의 시간이 만들어낸 올곧음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모든 이들의 어머니였던 그녀의 마지막 2년간의 이야기. 그리고 전태일이 분신하기 전, 어머니 이소선과의 마지막 날을 담은 젊은 예술가들의 연극 <엄마, 안녕>과의 만남. 가늠할 수 없는 그날의 고통을 힘겹지만 아름답게 승화시킨 그들에게 이소선의 삶은 어떤 의미이며, 이소선에게 아들 전태일과 이 땅의 노동자들은 어떤 의미일까.

슬픈 약속으로 시작된 어머니의 삶의 자취가 기적 같은 희망의 이야기로 우리 곁을 찾아 온다.




Information


제목 어머니(Mother)
감독        태준식
출연        이소선, 전태삼, 홍승이, 백대현 외
제작/제공       <어머니>제작위원회
배급/홍보마케팅 ㈜인디스토리 (www.indiestory.com)
장르 휴먼다큐멘터리
제작방식 HD/칼라
제작연도   2011년
상영시간   102분
관람등급   12세이상 관람가
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11
서울독립영화제2011
제16회 광주인권영화제 개막작
제14회 강릉인권영화제
제12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제작지원 2010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전제작지원
       2011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후반현물지원(녹음, D.I)
개봉일   2012년 4월 5일
공식블로그   blog.naver.com/docusosun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sosun.docu
공식트위터 @2012with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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