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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10대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18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7월 27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민규동 감독 | 배우 이영진

진행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영지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인디스페이스와 서울프라이드영화제가 함께 개최한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2018’의 첫 상영작은 민규동, 김태용 감독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였다. 2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통과한 영화와 관객이 극장에서 만났고, 그 무엇도 변하지 않은 영화 속 풍광과 목소리와 표정들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벅찬 경험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민규동 감독, 이영진 배우와의 인디토크가 장성란 저널리스트의 진행으로 이어졌다.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장성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상영은 저에게도 의미가 남다른데요. 학교 다닐 때 교복을 입고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거든요. 당시 한국 영화에서 제가 다니던 여중, 여고의 교실 풍경을 이렇게 실감나게 그린 영화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서, 그 느낌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20년 만에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니 어떠셨나요?


민규동 감독 (이하 민규동):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는 것도 신기하고,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도대체 이게 무슨 영화지? 어쩌다가 이런 영화가 태어났을까? 영화여, 나에게 설명을 좀 해줘봐’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성적,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불균질하고 복잡한 에너지가 기적처럼 수많은 우연과 필연 속에서 이상하게 만들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긴 시간의 거리를 두고 다시 마주하니 너무 설레고, 한 편으로는 슬프기도 하고, 신기한 경험의 순간이었어요.


장성란: 이영진 배우님께서는 영화를 보신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영진 배우 (이하 이영진): 19991224, 서울극장, 당시 이 곳이었거든요.


민규동: , 이 곳이었어요. 개봉 날 이 건물에서 개봉 무대인사를 했어요.


이영진: 그 당시는 연기자가 무엇인지, 배우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나이였어요. 개봉 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3층 카페에 줄 서 있던 관객분들을 보며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던 걸 기억하고 있어요. 그게 1999년도입니다. 세기말이었어요, 여러분.(웃음) 그렇게 세기말에 영화가 개봉하고 19년이 흘렀네요.


민규동: 그 당시 이영진 배우는 정말 멋졌어요. 현실에 없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독특했어요.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여전히 눈을 떼기가 힘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미지가 느껴집니다. 이래서 깊이 반했었구나 생각이 드네요. 감격스럽습니다.

 




장성란: 저도 GV 준비를 위해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촌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사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가 민규동 감독님께는 첫 장편 영화 연출작, 이영진 배우님께는 연기 데뷔작이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인들이 채워 넣기 어려운 노하우로 만들어지는 것들, 신비한 이미지와 분위기가 영화를 채우고 있어요. 배우들의 연기 경력이 많지 않은데도 뿜어내는 아우라로 가득 차있더라고요.


민규동: 말씀드린 것처럼 우연과 필연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느낌인데요, 예를 들어 시은과 효신이 지붕에서 노는 장면 같은 경우, 복도에서 촬영을 하던 중 본 그날의 하늘이 너무 멋지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배우들을 지붕에 올려보내고 그냥 가서 자연스럽게 놀아보라고 이야기했어요. 카메라는 밑에 있었고요. 그렇게 해서 배우들이 알아서 놀았고, 그 본질적인 자연스러움이 남겨진 장면이라고 할까요? 제 기억은 그런데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영진: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옥상 장면은 시나리오에 없었고, 저희는 그것이 찍히고 있는지 몰랐어요. 촬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감독님들은 옥상에서 무언가를 찍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PD님은 찍어서는 안 된다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일단 올라가서 놀고 있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희가 이해한 것은 어른들끼리 이야기해야 하니까 너희는 올라가서 쉬어였어요.


민규동: 위험하니까, PD님은 못 올라가게 했죠.


이영진: 그러니까 저희는 어른들이 밑에서 이야기해야 하니까 너희는 올라가서 좀 쉬고 있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거죠. 사실 당시 이 영화 자체가 당시의 시스템에서는 찍힐 수 없는 영화였거든요. 저희가 시나리오대로 완성도 있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바뀌는 부분이 많았고, 애초에 시나리오 대로 촬영하지도 않았고요. 당일 아침마다 무엇을 찍을지 모르는 현장이었어요. 그래서 쉬어라는 말이 당연히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말인 줄 알고 그냥 옥상에서 놀고 있었던 거죠. 그 장면이 정말 연출이 아닌 것이, 박예진 배우가 극 중에서 굉장히 여린 캐릭터고 저는 그와 상반되는 이미지의 캐릭터였는데 실제로는 예진씨가 저보다 훨씬 힘이 셌어요. 그래서 그 장면을 보시면 예진 배우가 극 중 캐릭터와 다르게 이상한 춤을 추며 저를 때리기도 하거든요. 저희는 정말 평소대로 놀았던 거죠. 그렇게 한참 놀다가 내려오라고 하셔서 아 이제 촬영하나 보다하고 내려갔어요. 그 이후에 편집실에서 그 장면을 보고 저 장면이 왜 저기에 있나 싶었죠. 기자님께서는 캐릭터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제 입장에서는 과찬이고, 감독님들께서 캐릭터를 잘 잡고 인물에 맞는 컷들을 잘 배합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20년 동안 많은 분들께서 옥상신을 좋아해주실 때 저는 혼자 그 장면으로 이렇게까지 사랑받아도 되는 것인가?’하는 죄책감도 있었고요.(웃음) 20년이 지났으니까 저도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민규동: 아주 즉흥적인, 다큐멘터리 같은 이미지죠. 실제로 영화 촬영이나 편집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컷포인트에 대한 계산도 못했어요. 다시 찍을 때 쓸 장면인지 안 쓸 장면인지 소통하며 찍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이즈의 개념도 몰랐고요. 그래서 클로즈업 샷을 찍을 때 온몸으로 연기를 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계산되지 않은 이미지를 영화 안에 잘 담으려고 많이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이영진: 사실 그게 촬영 당시에는 그렇게 원망스럽더라고요. 그때는 풀샷, 바스트샷, 클로즈업의 개념이 없으니 풀샷을 찍고 ‘OK’가 나왔는데, 칭찬을 해주시고도 계속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촬영하시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계속 같은 연기를 주문하는 감독님들을 조금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민규동: 귀가 얼마나 간지럽던지요.(웃음)




 

장성란: <여고괴담>(1998) 첫 편이 흥행을 한 뒤에 여자고등학교라는 한국적 공간 속 폭력이나 위태로움을 공포영화의 소재로 쓸 수 있다는 발견이 있었고,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았던 속편이 만들어진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야기가 이어지는 개념이 아니라 여고라는 공간의 특성을 공포영화로 연결한다는 컨셉만 이어가고 독자적인 이야기를 하는 시리즈죠한국 영화에 없었던 기획이었어요. 감독님께서 여고괴담이라는 시리즈 영화를 맡은 후 당대 여고생들이 느꼈던 불안이나 위태로움, 폭력을 공포영화로 끌어올 때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연인을 둘러싼 색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 사회의 획일성 같은 것을 어떻게 소재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민규동: 그 당시에는 공포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여고괴담>을 사실 재밌게 보지는 않았어요연출을 제안받았을 때도 PD님께 "1970년대 일본 괴담 시리즈를 카피한 영화가 한 번 흥행했다고 속편을 만드는 충무로의 안일한 기획그런 것 좀 그만두셨으면 좋겠다." 말씀드렸어요.(웃음) 영화감독으로 살 계획도 없었고, 관련된 꿈도 없었고, 그저 창작하는 것 자체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업영화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거죠. 데뷔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속편? 그릇이 너무 못생겼잖아.’하는 자만이 있었고요. 이후 일주일 정도 고민을 했어요그런데 그때 'Y2K'라고 2000년대는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속설, 브라질 엘니뇨 현상 등 세기말의 속설들이 많이 있었어요. 문득 죽을지도 모르는데 물질의 흔적을 남겨놓자는 생각이 들어 다시 PD님을 만났습니다. 두 가지 협상을 했어요. 첫째는 전편의 배우와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어요. 둘째는 영화의 제목을 여고괴담 2’가 아니라 두번째 이야기로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PD님은 이 부분을 받아들이면서 그래도 세 번은 무섭게 놀라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피아노 귀신이나 사물함 장면 같은 장치들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써 노력한 부분이었습니다

, <여고괴담>괴담에 방점을 찍었다면, 나는 여고’에 방점을 찍겠다고 말했어요. 더불어 그 당시 입시 위주로 학생을 괴롭히는 선생님이 얼마나 악의 축인지, 학생들은 얼마나 입시에 시달리는지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저는 이 영화에서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는 전제를 했어요. 제가 학생들을 바라볼 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저희의 화두는 아시아에서 10대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것을 첫 번째 시놉시스의 카피로 썼어요. 당시 청량리 아파트 18층에서 여중생 두명이 동반자살을 했는데 어른들은 원인을 학업 비관, 폭력, 가정문제처럼 맨날 존재하는 타이틀로밖에 이야기를 못했어요. 학생을 시혜적으로만 바라보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보니까 10대 여성으로 살아갈 때의 고민들을 포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을 여성으로 바라본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들은 무엇이 무서웠을까를 고민했어요. 두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랑을 할 때, 그리고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자신은 가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집단적 무의식의 폭력이 무서웠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보여주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 영화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낡은 학교, 밤에 일어난 죽음 같은 것을 보여줄 때 우리는 모던한 학교의 모습, 그리고 대낮, 모두가 목격한 죽음, 핸드헬드 기법 등을 통해 기존의 공포영화 문법을 전복적으로 바꾸어보고자 했어요. 그 당시, 20세기 말의 현실과 맞닿은 지점에서 공포를 찾아보자며 야심차게 시작했던 것이죠. 이 영화가 불균질적인 이유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함께 시작을 했지만 제작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키스신도 빼라는 말을 계속 들었어요. 지금도 상업영화를 할 때 부딪히는 많은 문제가 그때도 있었고, 이로 인해 시나리오도 75페이지에서 42페이지로 줄어들었어요. 그러니까 논리도 이상하고 정확한 이해도, 설명도 되지 않으니 촬영 중 어려움이 있었죠. 저는 콘티를 통해 잘린 시나리오를 계속 복원해나갔어요. 배우들 입장에서는 어른들의 비즈니스 상 발생한 문제들이 어떻게 정리되는지 모르는 채 어렵고 힘들게 촬영한 것이죠.

 




장성란: 이 영화를 20년 만에 다시 본 20세기 사람으로서 이런 느낌이 들어요. 이것은 1999년에 만들어진 이야기죠. 그 시절의 뉴스나 학생들의 고민이나 감성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잘 담고 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렇게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10대 여성의 이야기는 이전에도 없었고, 현재까지도 없는 듯이 느껴집니다. 소재적인 측면뿐 아니라 학교나 사회에서 그들이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이렇게 세련되고 담백하게 묘사한 영화가 한국 상업영화에 없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에도 동시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두 분께는 지금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영진사실 저에게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죄책감이 많은 작품이에요. 이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때는 모든 감독님들이 당연히 민규동, 김태용 감독님 같은 줄 알았어요. 그때는 감독님들도 어렸고 젊은이들이었는데 제겐 어른이었으니 당시 원망을 많이 했어요. 현장에서 대사를 만들 때도 예를 들자면 "자, 여기서 예진이랑 둘이 싸워봐."라고 말씀하시고 모르는 것을 여쭤보면 "네가 시은이잖아, 네가 더 잘 알지." 이런 식이였던 거죠. 그러다가 나온 대사 중 하나가 "난 네가 창피해"였어요. 19살 이영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말이었죠. 여담으로 시은과 효신이 결혼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서 케이크를 던지는 대목이 있어요. 저희는 그때 현장에서 누군가의 생일이어서 케이크가 있는 줄 알고 배우들끼리 그걸 몰래 먹었어요. 영화 소품 케이크 3개가 있었는데 몰래 먹겠다고 구석을 파먹은 거예요. 스태프분들한테 엄청 혼나고 감독님들은 한숨쉬고 계셨어요. 저희는 그게 소품이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무슨 내용인지를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제가 이런 장면이겠거니 예상하고 연기한 장면이 거의 없어요.(웃음) 제 입장에선 제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른 영화였고, 그래서 이 영화로 많은 사랑을 받을 때 너무 죄송한 거예요. 저 역시 미숙했고 은연중에 감독님들의 속을 많이 썩였을텐데 이런 사랑을 받는 게 타당하지 않다고 느꼈어요. 또 어린 마음에 나를 미워하기 힘드니까 상대를 미워한 거죠.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도 많다보니 세상이 저를 뒤틀어지게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 당시에는 좋은 감독님들과 좋은 현장에서 좋은 작품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스스로가 조금 밉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민규동: 놀이터를 잘 만들어 주고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지 배우들이 스스로 잘 알게끔, 그 방향으로 함께 가게끔 하는 것이 감독의 덕목인데, 저와 김태용 감독도 어렸고 상황도 좋지 않았고 예산도 적었죠. 말씀하신 장면도 케이크가 한번에 안 떨어지면 NG가 나잖아요. 제작부가 3번 만에 오케이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케이크 세 개를 사온 거예요. 그런데 일단 연출부 한 명이 연습하다가 하나를 망가트렸어요. 배우들이 그걸 파먹고 있었고, 한 번은 엔지가 났어요. 마지막 한 개를 가지고 한 번은 떨어지는 걸 받았고 마지막으로 시도하여 오케이가 났습니다. 이것이 말씀드린 우연과 필연이 만든 기적과도 같은 부분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박예진 배우가 외우는 시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는데요, 그런 시를 영화에서 읽는다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잖아요. 당시에는 더 그랬고요. 예진 배우가 장난인 줄 알고 안 외워온 거예요. 전날에 이영진 배우도 "에이, 감독님 이거 진짜 찍어요?"하고 장난을 쳤거든요.


이영진: 정정할 것이 있습니다.(웃음) 당시에는 감독님도 어린 저희를 놀리는 재미가 있었던 거죠. "이거 찍을 거야"하고는 찍지 않은 것이 많았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면서요. 정말 찍는 줄 알고 준비하면 안 찍은 것들이 많았어요. 저희는 각자의 캐릭터도 잘 몰랐으니까 더 헷갈린 거죠. 그 시도 ‘누가 있고, 없고그런 이상한 시니까 저희끼리는 이거 안 찍을 것같다, 찍는다 해도 감독님도 못 외울 거다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외우지 않고 간 건데 찍는 바람에 예진 배우가 굉장히 속상해했죠.

 




관객: 교환일기를 어떻게 만들어낸 건지 궁금합니다. 또 영화에 나오는 시도 어떻게 만든 건지 궁금합니다.


민규동: 교환일기는 로케이션 헌팅 당시 교실에서 우연히 보고 발상을 하기 시작했고, 당시엔 현재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같은 개념이 없어서 미술담당 스태프분이 혼자서 다 만들어요. 일반적으로 교환일기로 그런 아트웍을 하지는 않죠.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교환일기는 효신 캐릭터의 사랑의 깊이나 집착의 정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특별한 방식, 사회화를 거부하지만 어른들보다 훨씬 깊은 세계가 있는 캐릭터의 특성 등을 바탕에 두고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자세히 살펴보면 시은이의 성의 없는 답장들도 있어요. 일반적인 교환일기 같은 답장이요.

영화 속에 나오는 시의 경우, 연안이의 시는 제가 헌팅 가서 본 교환일기에 실제로 있던 시를 응용한 것입니다. 효신이가 외우는 시는 제가 하이텔 동호회 친구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써 내려간 시인데, 그 시가 영화와 주제적으로 잘 맞아서 썼죠. 제작사 측의 반대로 삭제되었다가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다가 막바지에 겨우 복원한 시입니다. 그 시도 이런 세계에서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효신이라는 인물이 가진 특별함을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시는 학교 내의 괴담을 활용해서 만들었고, 헌팅을 갔을 때 실제로 고등학생들이 수다를 떨던 내용을 반영했습니다.

 


관객: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Ultimate Edition DVD를 너무 구하고 싶어서 중고 거래 사이트를 엄청나게 뒤져보았는데 구할 수 없어서 감독님께 한 번 여쭤보고 싶고요, 촬영 계획이 되어있던 여고 학생분들께 학교의 모습을 찍으라고 했다가 촬영이 중단될뻔한 적이 있었다고 하던데 정말인지 궁금합니다.


민규동개봉 당시에는 20세기라 DVD 개념이 없었어요Ultimate Edition DVD는 시간을 두고 나온 것이고, 제가 작품을 마치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당시 삭제판과 인터뷰를 모두 복원해서 만들었어요. 디스크 6개짜리 버전을 다시 작업해서 만들었죠. 순식간에 동났고 제게도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네요.


이영진: 저도 없습니다.


민규동: 기회가 된다면 더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촬영 관련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제가 시나리오 작업 이후, 보다 생생하게 여고의 모습을 그리려고 여고에 찾아가서 같이 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당시 경복여상의 연극반 친구들을 섭외해 카메라를 줄 테니 너희의 일상을 찍어서 스케치해봐, 수업시간에도 몰래 찍어보고.’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몰래 찍다가 걸린 거예요.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한바탕 뒤집어진 사례가 있었죠. 그 친구들과는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었지만 당시 만났던 친구들의 실제 이름인 연안, 지원을 감사의 의미로 영화 속 캐릭터의 이름으로 썼어요. 이름은 영원히 남아있으니까요.

 





관객: 김태용 감독님과 공동 연출을 했는데 부딪힌 지점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민규동: 김태용 감독과는 영화 아카데미 시절부터 작업을 함께 했어요. 저희가 여러 가지로 잘 맞았어요. '덤 앤 더머'라고 불렸고 서로 상대방이 더머라며 많이 싸웠거든요.(웃음) 저희가 암묵적으로 했던 역할분담은 김태용 감독이 거시적으로, 제가 미시적으로 보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김태용 감독이 망원경이라면 저는 현미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 극중 효신과 시은의 공기가 너무 좋았어요. 연기를 하면서 박예진 배우님과 연기 외적으로도 의지가 많이 되었을 것 같은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영진: , 그런 것들은 지금도 있어요. 예전처럼 안부를 자주 묻지는 않지만 제 배우 인생의 처음을 되돌아봤을 때 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에요. 언제나 응원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비단 박예진 배우뿐만이 아니라 김규리 배우도 그렇고 공효진 배우도 그렇고 김재인 배우도 그렇고, 모두 어디선가 본인의 삶을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관객: 이영진 배우님께서 촬영 당시에 생각했던 영화와 실제로 본 영화가 달랐다고 말씀하셨는데, 촬영을 할 때 어떤 영화를 상상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께 여쭙고 싶은 것은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개념이 없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당시의 포스터를 보고 너무 세련되고 신선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영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낸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영진: 우선 어떤 영화일 것이라고 상상을 한 것 조차 없었어요. 배우가 꿈인 적도 없었고 연기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라서 제가 화면에 어떻게 나올지도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주어지는 무언가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최선을 다할 생각만 있었던 것 같아요. 아까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지만 아무 것도 모르던 제가 지금까지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로 데뷔한 덕이였다고 생각해요. 그다음 작품부터는 시나리오 대로, 콘티북 대로 영화를 찍더라고요.(웃음)  이 영화는 필름으로 촬영했는데, 촬영한 필름의 양으로 보면 영화 두 편은 거뜬히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봤을 때 그 촬영본은 어떤 장르로도 편집이 가능했어요. 학원물도, 재난물도 나올 수 있었어요.(웃음) 그래서 편집실에서 처음 봤을 때 더 놀라웠던 것이고요.


민규동: 당시 제게 레퍼런스는 있었어요.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1997)였습니다. 시놉시스를 쓰던 당시에 이 영화의 부제를 해피 투게더라고 잡았었고요.  그 당시에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가 제겐 마스터였기 때문에 <세 가지 색: 블루>(1993)의 줄리엣 비노쉬를 보라고 부탁을 많이 했습니다. <메이드 인 홍콩>(1997)이라는 폭발할 것 같은 10대의 살아있는 에너지를 담은 영화도 참고를 했습니다. 키에슬로브스키 영화의 정서에 밀착하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심리적 미장센을 레퍼런스로 많이 삼았고, 당시에는 끝없이 이미지와 사진과 그림을 천착했습니다. 서사나 드라마가 불규칙적이고 이미지가 더욱 강렬히 남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동성 키스신으로 인해 여론이 안 좋았던 것으로 기억을 해요. 어찌 보면 퀴어 코드에 대해 사회가 불편한 시각을 많이 보이고 있는데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가 개봉했을 때 주위의 우려나 좋지 않은 반응은 없었나요?


민규동당연히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유니텔을 쓰고 있었는데 공포영화에 자도 모르는 민규동은 자폭하라는 보내주신 메시지가 너무 감사해서 캡처를 했습니다.(웃음) ‘영화 아카데미 해체해라라는 항의 메일을 받기도 했고요. 당시는 입소문이나 반응을 극장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에서 확인했는데, 두 부류의 관객이 있었습니다. 영화가 12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을 했고 <러브레터>와 함께 극장에 걸려 있었어요. ‘공포영화 싫어. 다른 거 보자.’는 부류와 이 영화 하나도 안 무섭대. 다른 거 보자.’는 두 부류가 있었어요.(웃음) 그래서 전편에 비해서 관객이 많이 들지는 않았죠. 전편을 능가하는 공포라고 마케팅을 했었거든요.(웃음) 하지만 놀라운 경험의 순간도 있었어요. 당시 처음으로 영화의 홈페이지가 생겼어요. 익명으로 영화 감상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온 거죠. 혁명적이었습니다. 게시물도 많이 올라왔고 N차 관람 인증도 있고. 게시물이 많이 쌓여서 그것을 제본해서 책이 3권 나오기도 했어요.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박예진 배우가 읊었던 시를 암송하는 대회도 있었어요. 개봉 3주년까지 그들과 만났던 기억이 있네요.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은 제 대학 후배분인데 영화를 보고 저를 찾아왔어요. 결혼을 앞둔 친구였는데 파혼하고 커뮤니티에서 만난 레즈비언 친구와 함께 살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결심을 했어요. ‘영화감독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하고요. 그전까지는 스스로를 감독이라고 칭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연출을 하는 사람이라고, 그 행위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어요. ‘영화가 어떤 사람의 삶을 조금은 다르게 할 수 있구나. 영화를 함부로 만들면 안 되겠다. 어떤 종류의 인생의 자양분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프랑스로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갔어요. 저는 당시 호모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것에 대한 반응 자체가 너무 좋았고, 오히려 제작 과정 중에 이 화두를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이 더 컸어요. 키스했다가 퇴학당한 레즈비언 여고생의 실화를 가지고 95년에 만든 <허스토리> 단편이 있었기에 지금 이 시대에 이 화두가 왜 필요한지, 특히 여고생을 통해 어른들의 방식의 성장을 거부하는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 확신이 있었기에 그것을 뚫고 나가고 싶었어요. 이런 것을 제작사나 배우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이 더욱 어려웠어요.


이영진: 저는 패션모델로 데뷔를 했잖아요. 데뷔하자마자 싱가포르에서 활동을 1년 정도 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갖기 이전에 이미 생활 속에 그들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물음표가 없었거든요. 이 영화를 촬영할 때 키스신도 있고, 대사들을 보면 레즈비언이 맞는 것 같은데, 동성애 맞는 것 같은데, 감독님께 여쭤보면 늘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우정보다 훨씬 더 깊은거라고 말씀하시니까 오히려 의문이 있었어요.(웃음) 감정적으로 제가 이해를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죠.

 


관객: 영화 속에 나오는 거북이 소녀의 장치와 거북이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민규동: 영화 속에 동물이 많이 나오죠. 사슴도 나오고 죽은 새도 나오고요. 물을 양수의 이미지로 잡고 그 이미지를 활용하려고 했어요. 계속 갇힌 채로 학대당하는 동물의 이미지를 갇힌 학생들, 답답한 학교 시스템을 표현하는 데에 활용을 했어요. 당시에 이지메’, 왕따 당하는 학생의 캐릭터를 넣고 싶었어요. 그 친구를 유일하게 효신이를 바라볼 수 있는 친구로 활용을 했고요. 자료조사를 하던 중에 학교에서 거북이를 키우다가 선생님께 야단맞은 학생의 이야기를 보고,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거북이와 대화하는 인물을 만들었어요. 거북이가 밟힐 것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탈출하는데 효신이가 모두를 가둬놓고 괴롭힐 때 그 친구는 유일하게 탈출하는 맥락으로 사용했습니다.

 




관객: 90년대의 영화를 보면 지금으로써는 이해가 되지 않는 감성이나 맥락들이 많은데,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는 그런 지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때의 고민들이 현재에도 유효한 느낌이 있어요.


민규동: 당시 배우들에게 키스신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해줄 수 없었던 것도 제작사에서 계속 반대했기 때문이었어요. 그것이 지금은 엄청난 탄압 속에 삭제될만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큰 맥락에서는 소수자가 살아갈 때 부딪히는 현실의 벽, 집단적으로 누군가를 따돌리는 행태, 그리고 가해자들의 뻔뻔함,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 또 고독을 맞이했을 때 믿었던 단 한 명에게 외면당할 때의 감정, 몸무게와 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성장과 같은 화두는 지금도 청소년들이 맞닥뜨리는 것이겠죠. 저항하고 싶은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답답함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니까요. 영화 속에 흐르는 화두가 아주 느린 진보 속에 천천히 발전되고 있으니까 동시대의 접점들이 계속 보이는 것 같습니다.

 


관객: 20년 만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영화 속에 교환일기를 회수하는 손이 있더라고요. 누가 회수를 한 것이고, 회수를 한다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민규동: 그 손은 ‘어린 효신입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어린 효신이 있어요. 크레딧에도 있고요. 촬영은 했는데 모든 장면이 편집된 것인데요, 효신이는 과거사가 있어요. 어린 효신의 설정 중 저지레라는 설정이 있었고, 계속 주변에 나쁜 일이 일어나서 그것이 자기 탓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캐릭터예요. 숨바꼭질을 하다가 첫 생리를 하는데, 충격에 움직이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은 채 밤이 흘러가는 어린 효신의 이미지가 있었고, 영화 속에서 그 아이가 나타나서 민아를 괴롭히는 맥락이 있었어요. 민아를 통해 내 죽음을 상징적으로 기억해달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는 것이었어요. 감독판에는 이렇듯 굉장히 복잡한 감정선들이 많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더 엉키더라도요.


 

관객: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선생님이 자살을 하는데, 선생님과 효신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한 건지, 어째서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민규동: 임신을 했을 수도 있고 사귀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관심은 그 부분에 집중되어 있을수도 있지만,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정답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고요. 사실 그 부분은 저에게 맥거핀에 불과했어요. 영화에서 선생님은 억압적이지 않고 소통이 되는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고, 그래서 학교 밖에서 효신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죠. 외로운 사람들끼리 친구가 된다는 맥락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선생님 역할의 백종학 배우님은 사실 프로듀서예요. 그 역할의 후보가 당시 두 분이었어요. 백종학 프로듀서와 설경구 배우님이요. 당시 설경구 배우는 영화 <박하사탕>(1999)을 준비 중일 때였죠. 매력적인 배우였지만 강하고 섹시한 이미지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백종학 배우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관객: 저는 개봉 당시 8살이었어요. 혹시 저 같은 어린 연령의 관객들을 위해 재개봉이라던지 블루레이 출시 예정은 없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민규동: 블루레이에 관련해서 제작사분들께 여쭤볼 순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살 분들이 많아야 하니까요, 수요 조사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1000장 정도 사주실 수 있는지요.(웃음) '씨네2000' 대표님께 메일을 좀 많이 보내주세요.(웃음)



 



관객: 삭제된 내용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았을 때 감독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끝을 맺게 될지 궁금합니다.


민규동: 돌이켜보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싸움들이 있었고, 신인감독으로 유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10년 넘게 제 가슴을 굉장히 아프게 했는데요, 결국 지금의 영화가 감독판인 것 같아요. 그 많은 조건과 선택 중 이것이 최선이었던 것 같고요. 삭제된 장면들이 확장판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감독판이라고 정리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아요. 내가 낳은 아이인데 내 아이 같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많은 것처럼 이것을 내 영화, 내 인생과 맞닿아있는 영화라고 인정하기까지는 사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10년 정도가 지나고 조금 거리가 생긴 이후부터는 관객으로써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오늘 다시 영화를 볼 때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서울우유를 들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저희 크레딧에 보시면 PPL에 남양유업이 뜨거든요.(웃음)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어떤 상처의 적산이 엄청난 영화인데,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지점들이 저에게 아직도 영화가 뭐지?’하고 질문해준다는 것이 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래서 질문을 던져주는 지금 버전이 최선인 것 같아요. <끝과 시작>(2013)이라는 영화가 있었죠. ‘효신과 시은이 만약 죽지 않고 살아서 나중에 다시 만났다면?’이라는 느낌으로 만들어본 영화가 <끝과 시작>이라는 영화였어요. 그 영화를 찍고 완전히 이 영화를 놓아주고 후회나 미련이 없이 지금을 최선으로 간직하게 된 것 같아요.


이영진: 개봉 이후로 오늘 영화를 처음 봤어요. 모두 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영화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묘한 마음인데, 스크린 안에 있는 시은이가 저이면서 제가 아닌 것 같았어요. '20년이 지난 이영진을 박제된 19살의 이영진이 응원해주는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영화를 하고 나서 한 4,5년간은 내가 왜 배우를 해야 하는지 의문점이 많았어요. 시작할 땐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만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 이런저런 부침이 많이 있더라고요. 연기만 생각해야 하는 바닥도 아니고요. 마음고생을 조금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피한 것도 있어요. ‘나를 왜 이렇게 힘든 시장에 내던져놨지?’하면서요. 그런데 저도 한 10년 정도 지나니까 당시의 저는 최선을 다했고, 물론 부족하고 미흡했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저 때 이상 잘 할 자신이 없어요. 19살의 이영진을 몰래 보고는 싶었지만 공개하기는 조금 창피했어요.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이상하게 창피하면서도 응원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고 좋네요.


민규동: 잘 살아남았구나 생각이 들어요. 영화의 영어 제목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잖아요. 17세기 수도사들이 아침마다 하던 인사인데, 당신도 곧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이에요. 언제든지 죽을 유한한 생명이기 때문에 우린 지금 이 순간 무조건 행복해야 하고,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관습과 선입견과 억압적인 시스템에 저항해야 우리가 더욱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맥락의 말인데요, 20년 동안 살아서 이런 순간이 왔다는 것이 상당히 감격스럽습니다. 시간 내서 이 먼지 묻은 영화를 보러 와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고, 우연히 영화감독을 선택해서 꾸역꾸역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제게도 너무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선들을 보니 영화를 더 잘 만들어야겠다고, 더 정진해야겠다고, 더 열심히 살아남아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서 보답해드려야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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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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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극장을 들여다 볼 때, 나를 들여다보는 극장  <너와 극장에서>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6월 30일(토)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유지영, 정가영, 김태진 감독 | 배우 김예은, 문혜인, 이태경, 박현영, 우지현

진행 변영주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채영 님의 글입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 극장이란 공간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독립영화일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전국에 얼마 있지도 않은 전용관 중 한 곳에 찾아간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극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하루 끝에 지친 몸을 이끌고 극장을 찾은 적도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찾은 적도 있었다. 극장에 얽힌 많은 추억이 있는 만큼, 그 모든 순간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극장은 어쩌면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를 누구와 어디서 보았는지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생각보다 금방 떠오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좌석과 조명,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옆 사람까지 극장이 갖는 요소들이 영화 관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영화를 관람하고자 할 때 우리는 여러가지 경험적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고르듯 관람할 극장을 고르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극장으로 찾아가는 과정까지도 영화 감상이라는 총체적인 경험의 일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작이었던 <너와 극장에서>가 개봉했다. 6월 30일, 인디스페이스에서 변영주 감독의 진행으로 <너와 극장에서>의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변영주 감독(이하 변영주): 영화 재밌으셨죠. 영화를 이루는 세 편의 단편을 연출하고 출연한 감독과 배우 분들이 나와 계신데요, 인사 말씀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지영 감독(이하 유지영): 안녕하세요. 첫 번째 에피소드 <극장 쪽으로>를 연출한 유지영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김예은이라는 배우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고요.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예은 배우(이하 김예은): 저는 <극장 쪽으로>의 선미 역을 맡은 김예은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감독님처럼 되게 궁금하네요.

 

문혜인 배우(이하 문혜인): 안녕하세요, <극장 쪽으로>에서 수영 역을 맡은 배우 문혜인입니다.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온 유지영 감독님께서 같이 하자고 해주시고, 또 좋아하는 동료배우가 함께한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하루 동안 소풍처럼 대구에서 촬영하고 돌아왔는데, 관객들과 만나는 기회로 이어져서 굉장히 뿌듯하고 좋습니다.

 

정가영 감독(이하 정가영): 두 번째 에피소드 <극장에서 한 생각> 연출한 정가영입니다. 작년 이맘 때쯤에 영화 찍을 준비 했었던 거 같은데 이렇게 1년이 지나서 개봉을 하고 이렇게 관객분들도 만나게 되어서 기분 좋고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이태경 배우(이하 이태경): 안녕하세요, <극장에서 한 생각> 감독 역을 맡은 이태경입니다. 오늘 이 영화를 오랜만에 보니까 되게 재밌더라고요. 같이 보신 분들이 재밌게 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진 감독(이하 김태진): 세 번째 에피소드 <우리들의 낙원>을 만든 김태진입니다. 감회가 남다르네요. 이렇게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함께 만나서 얘기를 한다는 게 뜻 깊은 일인 것 같아요.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현영 배우(이하 박현영): <우리들의 낙원>에서 은정 역을 맡은 박현영입니다. 그저께 개봉해서 관객분들 만나고 있는데 모두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오늘도 어떤 만남이 될지 궁금한데요, 재밌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지현 배우(이하 우지현): <우리들의 낙원> 출연한 우지현이라고 합니다. 오늘 같이 영화를 봐서 떨리네요. 사실 저는 오늘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바로 가려고 했는데 잡혀버렸어요(웃음). 좋은 얘기 많이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변영주: 저는 <너와 극장에서>를 보면서 선언문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 독립영화가 이렇게 재능 있는 감독들과 훌륭한 배우들을 가지고 있다는 선언문이요. 물론 그 재능과 훌륭함을 통해 상업영화로 가버리면 그들은 이곳을 잊을 수도 있겠지만,(웃음) 배우와 감독들이 낯설지가 않죠. 독립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이라면 , 그 영화 속 배우구나’, 혹은 그 영화의 감독이구나하고 알아보셨을 것 같습니다. 2018년 한국 독립영화가 갖고 있는 힘을 확인시켜준 영화여서 개인적으로 정말 즐겁게 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극장과 자신보다는 독립영화와 자신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먼저 질문을 드려 볼게요. 세 작품이 모두 감독들의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해요. <극장 쪽으로>는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려고 스스로 결심한 것처럼 보이는 여성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 속 주인공이 극장으로 들어갔을 때 영화가 화면은 나오지 않고 사운드만 나오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지영: 어떤 영화가 되던 간에 관객 중 누군가는 영화를 알아보실 거라고 생각을 했고, 그러면 스토리상 개입을 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극장에서 나오는 영화를 보여주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다만 깨알같은 재미로 <극장 쪽으로>라는 영화와 연결할 수 있는 작품을 사운드만 넣어놓는다면 찾아낸 분들이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Cleo From 5 To 7, 1962)라고 한 여성이 배회하는 영화를 넣었어요. 초반부에 선미가 집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는 <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를 보고 있는 걸 정확하게 보여줘요. 창문 밖에 있는 남자의 공포스러운 느낌과 연관성도 있고요.

 


변영주: <극장에서 한 생각>은 연출자가 정가영 감독이라는 걸 듣고 영화 시작 1분 만에 , 누구 하나 죽고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권총으로 죽일지는 몰랐어요.(웃음) 먼저 배우님께 질문을 던지고 싶은데, 실제 정가영 감독을 연기한 건가요? 극 중에서 정가영이라고 나오지만, 실제 정가영 감독하고 똑같이 연기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이태경: 그렇죠. 처음에는 정가영 감독님을 따라하려고 많이 노력을 했는데 테스트 촬영 때 촬영감독님들이 지적을 해주셨어요. 정가영 감독님은 제가 차마 따라할 수 없는 감독님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서 감독님과 똑같이 해버리면 영화에 해를 끼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할 때는 정가영 감독님처럼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고요, 다만 저의 원래 말투를 최대한 버리고 평소 해왔던 연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변영주: <극장에서 한 생각>은 영화가 두 부분으로 나뉘잖아요. 한 부분에서는 감독님이 직접 연기를 했는데, 둘 중에 어떤 걸 먼저 찍으셨나요? 또 어느 파트가 먼저 구상되었는지도 궁금해요.

 

정가영: 이태경 배우 나오는 GV 파트를 먼저 찍고, 마지막 촬영 때 제 부분을 찍었어요. 처음엔 앞부분만 생각하고 GV에서 제가 갖고 있었던 긴장과 충동을 시나리오에 담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영화가 끝나기는 애매해서 어떻게 이 느낌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뒷부분을 쓰게 됐어요.


 



변영주: <우리들의 낙원>은 이 영화를 기획한 서울독립영화제가 가장 원했던 영화일거라고 생각을 해요. 왜 삽입작품으로 프랭크 카프라 영화를 선택하셨나요? 프랭크 카프라 영화는 저도 되게 좋아하고, 영화를 하고자 하는 지망생은 누구나 보지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독립영화 감독이 카프라를 인용한다는 것, 가장 미국적이고 상업적인 할리우드 감독의 영화를 선택한다는 지점이 되게 재밌었거든요.

 

김태진: 극장을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것에 대해서 여쭤보실 줄 알았는데 프랭크 카프라로 귀결되니까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답변을 쓸 수가 없게 되었네요.(웃음) 처음에는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틀 지에 대해서 정해두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생산직 반장 여성이 사라진 사원을 찾으러 가는 소동극을 쓰자는 생각이었고, 그럴 때 어떤 영화가 가장 좋을지 고민해보았습니다. 해당 영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겠지만 언급되었을 때 나름대로 이 영화 전체의 주제나 감상에 일조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독립영화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여러 영화들을 떠올려봤어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를 가장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말이 가장 미국적이다라는 말이에요. 할리우드 엔딩처럼 엄청나게 많은 이항 대립 문제들이 마지막에 가서는 마법처럼 하나가 되어서 유토피아를 그리면서 끝나기 때문에요, 어떤 면에서 봤을 때는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시절의 추억들, 낭만들에 향수를 느끼기 때문에 또 마음이 애틋한 영화라는 생각도 해요. 저도 한동안 굉장히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영화들을 좋아하다가 이 영화를 만들기 직전에 우연히 카프라의 영화를 극장에 와서 보게 되었어요. 그 때 영화를 새롭게 보게 되더라고요. 영화라는 게 현실세계 안에서 대항하고 저항하는 역할도 하지만,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극장에 와서 만났던 순수도 영화의 한 부분이 되지 않을까, 특히 그런 영화들이 민철이라는 아이에게는 굉장히 감명 깊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관객: 김태진 감독님께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서현우 배우가 맡은 정우의 캐릭터 설정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극중에서 혼모노라고 일본어로 말을 하는데요. 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개그 캐릭터로 기용을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혹시 서현우 배우님이 어떤 생각으로 연기를 하셨는지 알고 계신다면 그것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태진기본적으로 이 영화를 소동극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영화 속 각자의 역할들을 두었어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유머를 담당하는 역할로 정우라는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구요. 하지만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많은 생각들을 했어요. 직업이나 성별, 나이를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었는데 특히 게임에 빠져 심취한 BJ라는 설정을 가지게 된 것은, 정우도 말마따나 혼모노잖아요? 한 분야에 굉장히 미쳐있는, 영화인에게는 시네필이라는 말과 동일한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은 게임에 심취해 있으면서 영화에 심취한 사람에게는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 부분이 재미있는 요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현우 배우님과는 첫 미팅 때 무려 18시간정도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한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밥도 먹고 공연도 보고 술도 마시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서현우 배우님이 좀 숨기셨지만 게임 덕후시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조언을 해주셨어요. 캐릭터의 현실적인 요소나 유머의 상당수를 배우님이 준비해주셔서 저는 메소드 연기라고 생각해봅니다.

 


관객: 유지영 감독님께 질문이 있는데요. 영화가 전체적으로 고전 공포영화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영화 시작이랑 끝에서 현관 구멍으로 우유를 집어가는 장면이 웃기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장면이라고 느껴졌거든요. 연출하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유지영이 영화의 주제와 맞물린 키 이미지 같은 건데, 처음에 손이 나와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갈망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마지막에는 그게 변주가 되어서 다 그렇게 누군가를 찾고 있지만 각자의 생활공간에 갇혀있는 느낌이고요. 선미가 극장에 들어갔을 때 다들 혼자 있잖아요. 그것도 섬처럼 외로이 앉아 있는 이미지인 것 같아요.

 

 



관객: 영화 속 극장들을 어떻게 선정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유지영저는 사실 영화광이 아니고, 어릴 때도 거의 영화를 안 봤어요. 대학교 들어가서 어머니가 좀 많이 아프셨는데,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무기력한 상태에서 2년 정도 탐욕스럽게 영화를 봤어요. 평생 살면서 멀티플렉스에서 본 것보다 그 시절에 대구의 동성아트홀이라는 예술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횟수가 몇 배는 많기 때문에 저한테 극장이란 이미지는 동성아트홀이거든요. 전 대구 토박이이기 때문에 사실 거기서 찍고 싶었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내려와보니 40년 가까이 극장을 운영하셨던 사장님은 그만두시고 완전히 리모델링이 된 거에요. 선택지는 오오극장밖에 없었어요. 멀티플렉스는 저에게 극장으로서의 무드를 전혀 주지 못하고, 변해버린 동성아트홀은 찍을 수가 없고요. 요새 복합에무시네마나 오오극장처럼 카페를 겸한 복합문화공간 같은 곳들이 많잖아요. 현대적인 느낌도 반영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해서 오오극장을 선택했습니다.

 

정가영: 저는 강남구 신사 쪽에 위치한 이봄시어터 라는 극장에서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요. 제 데뷔작 <비치 온 더 비치>를 개봉하고 이봄시어터에서도 GV를 했어요. 그날 배급사 직원 분이랑 같이 갔는데 관객이 한 분 계시다는 거예요. 그 한 분 마저도 GV가 있는지 모르셨는지 영화가 끝나고 나가시려는 걸 저희가 붙잡아 가지고 1:1 GV를 했거든요. 그런 각별한 기억이 있고, 지금은 관객이 많은 것 같은데 그 당시만 해도 관객이 더 없었어요. 어떻게 운영이 되는 걸까 궁금할 정도로, 그래서 촬영하기에 가장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가 촬영을 하려고 장소섭외를 할 때 대관료를 되게 싸게 해 주시더라고요. 촬영에도 협조적이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음 주에 이봄시어터에서 <너와 극장에서> GV를 해요. 그때도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변영주: 저도 동성아트홀에 대한 기억이 있는데, 20세기 일이에요.(웃음) <낮은 목소리>를 동성아트홀에서 틀어서 서울에서 간 거예요. GV를 하러 간 건 아니고 그때만 해도 필름으로 상영할 때니까 영사기랑 다 들고가서 상영을 했는데 관객이 딱 한 분 오셨어요. 그래서 저도 영화 끝나고 직접 커피를 타서 주면서 GV를 한 10분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아마 독립영화를 만들어서 GV를 하는 감독들이라면 무대에 있는 사람보다 앉아 계시는 관객분이 더 적은 경험들은 한 번씩은 하니까요.

 

김태진사실 저도 개인적인 극장들을 먼저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가 좋아한 극장들이 다 없어졌거든요. 그래서 남아있는 곳들 중에 생각해보니 서울아트시네마는 일단 한국에서 유일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현재 여건도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면으로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낙원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위치가 서울극장 내부 3층에, 인디스페이스라는 비슷한 성격의 극장 옆에 있다보니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영화를 찍고 GV를 하면서도 느꼈는데 사람들은 서울아트시네마라는 곳이 서울극장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CGV 아트하우스같은 극장이라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운영하는 독립된 주체가 있는 극장이 아니라요. 그런 정체성이 제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에 장치가 되었고,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도 이유입니다.

 

변영주: 결국 이 영화의 기획주체는 서울독립영화제이고 한국독립영화협회인데 아무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촬영하지 않았다는 거.(웃음)

 




관객: 유지영 감독님께 질문하고 싶은데 영화를 흑백으로 하신 이유가 따로 있나요?

 

유지영그냥 시나리오 쓸 때부터 제 머릿속 이미지가 흑백이였어요. 직관적인 것에 의존해서 판단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플랫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단조로움을 살리기 위해서 흑백이 맞다고 생각을 했어요. 촬영 감독님 역시 동의했기 때문에 찍을 때부터 흑백으로 찍었습니다.

 


관객: 저는 김예은 배우님께 여쭙고 싶은데요. 영화를 보면 미로처럼 되어있는 골목에 갇혀서 계속 빙빙도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 장면을 보다 보니 관객인 저도 답답하고 때론 단절감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촬영 시간이 어느 정도였는지, 촬영할 때 배우님이 느꼈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 지 궁금합니다.

 

김예은: 하루 만에 찍었고요, 아마 관객 분들도 비슷하게 느끼실 텐데 찍으면서 구간마다 감정이 달랐어요. 제가 길치여서 실제로 길을 잘 잃어버리거든요. 상상만 해도 미치겠는데 정말 짜증나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감정으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관객: 김태진 감독님께 민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데요. 글을 쓰고싶어 하지만 현실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결국 작품이 당선되었는데 사라졌잖아요. 꿈과 현실에 대해 갈팡질팡 하다가 도망친 것 같은데, 이유가 궁금해요.

 

김태진민철이라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저를 바탕에 두고 만들었지만,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를 만들거나 다양하게 향유하는 법은 잘 모르는 사람으로 상상을 하고 시작을 했어요. 나름대로 노력하고 영화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부터 영화를 시작해야하는지 몰라서 방황하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썼어요. 민철은 영화잡지에서 비평가를 모집하는 공모에 도전했고 이번에는 당선이 된 거에요. 근데 이 사실을 본인은 모른 채로 시간이 가니까 결국에는 그 사람을 찾겠다고 사람들이 직접 이 극장까지 당도하게 된 거죠. 민철이 그 모든 사실과 사람들을 한 번에 알게 되면서 일종의 충격을 넘어선 공포를 마주하는 장르적인 상상을 한 것 같습니다.

 




변영주: 저 역시도 세 분의 감독, 배우님들의 팬으로서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한데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지영저는 <수성못>을 개봉 후 한 일주일 쉬다가 <너와 극장에서>를 개봉했어요. 일단 바쁘게 홍보활동을 할거고요. 사실은 하기로 한 시나리오 작업아 있는데, 제가 너무 소진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받아서 잠시 저만의 휴가를 떠나려고 하고 있고요. 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더불어 <내가 사는 세상>이라는 내년에 개봉하는데 제가 배우로 잠깐 나와요. 정가영 감독님 못지않게 몇 편 출연하고 있습니다.(웃음) 봐주시길 바랍니다.

 

김예은: 미장센단편영화제와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라는 제목의 단편영화를 하나 상영할 것 같고요. 시간 되신다면 오셔서 영화를 재밌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요즘 열심히 이것저것 계발을 하고 있어요. 춤도 추고 노래도 듣고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고 운동도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제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건강한 모습으로 앞으로도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혜인: 저는 일단 준비 중인 영화가 있고 다가오는 것들을 하나하나 잘 맞이하려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고요. <혜영>이라고 작년에 찍었던 단편이 있는데, 오래된 연인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작품의 프리퀄이 될 영화 촬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완성되면 관심 가지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가영: <너와 극장에서> 개봉했으니까 열심히 홍보활동도 하고 관객 분들 많이 만났으면 좋겠고요. 하반기에 <밤치기>라는 저의 두 번째 장편이 개봉을 할 예정이에요.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에너지 넘칠 때 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 중이고, 빨리 찍고 싶습니다. ‘가영정이라는 제 유투브 채널이 있는데요. 제가 찍은 단편영화들을 쭉 올려놨어요. 많이 구독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감사했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태경저도 <너와 극장에서> 개봉 홍보에 최대한 참여하면서 지낼 것 같고요. 하반기에 <죄 많은 소녀>라는 작품이 개봉하게 되었어요. 일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어서 뭘 한다고는 못하겠지만 들어오는 대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진저도 <너와 극장에서> 홍보 열심히 할 계획이고요. 새로운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전혀 찍어본 적 없는 주제와 장르에 빠져있어서 정신이 좀 오락가락한데, 빠른 시일 내로 영화를 찍어서 다른 자리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현영: 저는 월드컵을 시청할 거고요. 촬영이 연기되었던 단편들 몇 개를 하반기에 촬영할 것 같고, 작년 말에 찍었던 장편이 곧 상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고, 저희 영화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지현: 저는 9월쯤에 장우진 감독님과 같이했던 <춘천 춘천><새출발>이라는 영화가 각각 2년과 4년의 시간을 돌아서 개봉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그때 또 인사드릴게요, 성실하게 해서 좋은 작품에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더워진다고 하니까 물 많이 드시고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오늘 끝까지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영주이 영화를 한국 독립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잘난 척의 프리퀄 같은 느낌으로 봐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영화제에서 지원을 해서 옴니버스로 만든 영화가 이정도로 짜임새가 있을 수 있을까요. 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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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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