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레즈비언 욕망을 승인하는가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18 <금욕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7월 29일(일) 오후 3시 상영 후

해설 조혜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마리솔 님의 글입니다. 







<금욕>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15년 전에 상영한 적이 있는 작품입니다. 그 사이에 여성들 간의 사랑을 재현하는 데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맥락들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무엇이 레즈비언 욕망을 승인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많은 분들이 그런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아무리 70년대 에로영화 느낌이 난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 시대에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지? 독립영화도 아니고 실험영화도 아닌 상업영화에 어떻게 등장할 수 있지?” 당시 사회적인 맥락을 모르면 이 영화를 너무나도 신기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여자들 간의 사랑을 너무 축소시켜서 암시적인 것으로만 해석할 수도 있고요. 혹은 이 영화가 재밌는 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과도하게 진보적이거나 급진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지나치게 몰역사적으로 보는 거거든요. 두 가지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당시의 여성들 간의 사랑 혹은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 잠깐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70년대 당시의 '동성연애' 혹은 '여자들 간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는 않을지언정 대중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용어 중 하나였습니다. 1931415일 조선일보에 실린 한 기사는 최초의 여성들 간의 정사 사건이라고 말하며 어떤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여기서 정사 사건이란 사랑하던 연인이 같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건이었냐면, 홍난파의 조카인 홍옥임이라는 여성과 유명한 서점이었던 종로서점 점주의 딸인 김용주라는 여성이 영등포역에서 함께 줄을 묶고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했습니다유서를 보면 자기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어 자살을 한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했고요. 조선일보는 당시 이 사건을 최초의 '동성연애' 자살이라고 보도했지만 사실 최초는 아니었어요. 이미 20년대에 두 젊은 여성이 함께 철도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30년대까지 그런 사건들이 왕왕 있었어요. 대부분은 여성이었지만 간혹 남성도 있었고요


여성들 간의 '동성연애'는 남성들 간의 '동성연애'보다는 용인되는 편이었습니다. 20, 30년대에 실린 신여성에 대한 기사를 보면 동성연애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식의 직접적인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동성연애'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신여성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여학교에서 남성을 매개하지 않고 서로의 지식과 감정을 공유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면서 성애적 관계도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여성들 간의 '동성연애'가 보다 용인되었던 것은 여성성이라고 하는 것이 친밀함, 감정적인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여성 간의 관계는 아직은 성숙하지 않은, 20대로 넘어가기 전에 자연스럽게 겪을 수 있는 성장통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소녀들의 단계에서는 남성이 없기 때문에 서로 순결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여성들끼리의 동성애적 관계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이성애 관계를 통해 순결을 잃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대체재 같은 역할로 봤다는 거죠. 이 소녀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정상적인, 규범적인 성인 여성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용인될 수 있는 것이라고 봤던 거예요. 그렇지만 20대 이후에도 이런 관계가 지속될 경우에는 비규범적이고, 당시에 쓰였던 말로는 변태성욕적이라고 하면서 처벌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나이와 공간에 따라 여성들의 관계를 용인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여러 가지 담론들이 존재했다는 거죠





한편으로는 이 자살 사건을 굉장히 낭만적인 것으로 보기도 했어요. <금욕>도 그런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여성 간의 동성애 관계를 가부장제 억압 혹은 남성의 폭력에 대한 리액션 혹은 대안으로 삼는다는 담론들이 20, 30년대도 고스란히 존재했어요. 홍옥임과 김용주를 다루는 어떤 기사들은 팩트만을 드러내기도 했고, 어떤 기사들은 이 여성 두 명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또 학교에서는 어떤 평판을 받았는지 미주알고주알 선정적으로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홍옥임은 아버지가 세브란스 병원의 교수였어요. 서구적이고, 개방적이고김용주라는 여성 이전에도 수많은 여자들하고도 사귀었다고 합니다. 언론은 홍옥임을 예쁜 여자를 보면 먼저 사귀자고 이야기하는, 말하자면 굉장히 적극적이고 욕망을 주체적으로 드러내는 여성으로 표현했고 심지어는 남성적인 여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규범을 넘어선 여성으로 묘사가 되는 거죠. 반면에 김용주는 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아버지의 강요로 1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고 해요. 김용주는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가부장제의 억압이 순종적이고 규범적인 여성을 이러한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는 피해자 서사를 갖게 되었죠. 이렇게 두 여성을 다루는 시선은 달라요. 홍옥임은 처벌을 해야 하는 여성, 김용주는 억압을 피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가련한 여성.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건 이 담론들이 70, 80년대의 레즈비언을 묘사하는 담론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또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이 함께 실을 묶고 동반자살하는 사건 중 20년대에 두 여성이 함께 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어요. 두 여성은 중산층 계급 여성이 아니었어요. 일반적인 농민으로, 농촌에서 일하다가 도시로 올라온 건데요. 당시에 단신으로만 실렸는데, 중산층 계급이 아닌 하류층 계급은 비정상적인 사랑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케이스라고 생각하여 크게 회자되지 않았어요. 반면에 홍옥임과 김용주의 사건이 계속 회자되는 것은 어떻게 지식인, 신여성 혹은 유복한 부르주아 계층의 여성들이 어떻게 이런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지식인 남성들의 시각 때문이었던 거죠<금욕>을 포함한 80년대 레즈비언 영화의 큰 흐름으로 중산층 이상의 여성이 가부장제 억압 때문에 레즈비언 관계를 선택하는 유형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한편으로는 홍옥임과 김용주의 사건이 원형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금욕>같은 영화를 보면서 유념해야하는 것은결국 언론에 드러난 것에 대한 재현이라는 거죠. 말하자면 실제와는 다른, 혹은 실제의 일부인 거죠. 언론에 레즈비언, 혹은 동성애는 특정한 경우에만 가시화됩니다. 여성 간의 사랑, 혹은 동성애적인 행위와 관계가 분명 존재했을 테지만 그 중 언론에 재현되는 것은 자살이나 범죄의 경우예요. 30년대 크게 회자가 됐던 사건 중에 하나는 두 여성이 부부로 함께 살다가 한 명이 결혼을 하자 다른 여성이 이 여성을 살해하고 자신은 양잿물을 먹고 자살한 범죄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범죄 유형이 앞서 말씀드린 가부장 억압에 시달린 여성들의 동성애 관계와 함께 레즈비언을 재현하는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언급하는 영화들은 이처럼 언론에 재현된 선정적인 내용만을 포착하였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라고 하면 한형모 감독의 <질투>라는 영화를 꼽습니다.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시나리오만 남아있는 상태예요. 그래서 어떤 영화의 형태로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고요. 당시 포스터를 보면 서로 의붓자매인 언니와 동생 사이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언니가 남성적인 폭력이나 가부장제 억압 때문에 남성을 싫어하는,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이에요. 동생하고 돈독하게 지내다가 그게 사랑으로 발전을 하게 되고요. 그런데 동생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에 대해 엄청나게 분노하게 돼요. 그러면서 남편이 될 남자를 엄청나게 증오하고 증오심이 정신병의 단계로 발전했다고 묘사하고 있어요. 마지막에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 것이 엔딩이고요. 이번에도 주인공은 전형적으로 가부장제의 억압 때문에 남성을 사랑할 수 없는 여성으로 묘사되는 거죠<금욕>도 마찬가지로, 남성을 사랑할 수 없어서 여성을 선택하게 되는, 그런 부차적인 관계로서 사랑이 묘사되지만 '동성연애'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죠. 성애적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게 레즈비언이라는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설명하는 세계적인 담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성과학담론 혹은 성심리 담론이 일본을 통해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오게 되고 지식인인 감독들은 이런 담론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세계적인 풍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서구적인 것이다, 특별한 것이다, 일반적인 관계는 아니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리스크를 감소시켰고요. 동시에 이국적인 것임을 강조하며 흥미로움을 배가시키는 마케팅을 사용했습니다.

 




1960년대에 어떻게 저런 영화가 나왔을까 생각하지만 실제 1960년대에 이미 여운회라는 것이 결성이 되었어요. 여운회는 여성운전기사들의 모임이기도 했지만 레즈비언, 트렌스젠더 모임이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가 혼용됐어요. 당시의 용어로는 '바지씨'들의 모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지씨들이 치마씨, 자신의 와이프를 데리고 함께 소풍도 하고 모임도 하는 것이 여운회 모임이었다고 할 수 있고요. 1970년대는 여성전용 카페인 샤넬 다방이라든가 레즈비언들이 많이 가던 클럽 'PJ’ 같은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PJ’는 여성전용 클럽이거나 레즈비언 전용 클럽은 아닌데 레즈비언이 많이 가는 장소였어요. 그러다 주인이 레즈비언 금지, 여성 커플 금지를 내걸었던 거죠. 그래서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들이 이 공간을 완전히 점령했던 것이 ‘PJ다방 사건입니다. 인터넷에 친구사이끼리끼리같은 사이트에서 검색해보시면 인터뷰를 했던 기록들이 남아있어요. 생생한 이야기들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1960년대 그런 배경 속에서 <질투>같은 영화도 나올 수 있었던 거죠.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니라 충분히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을만한, 그래서 오히려 선정적일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고요. <금욕>이라는 영화는 프린트가 남아있는 최초의 레즈비언 주인공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성애적인 영화들의 붐이 있었고요. 60년대에 검열이 다소 느슨해지면서 주류 상업영화를 포함해서 저예산 영화들까지도 에로영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어요. <금욕> 역시 80년대 에로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클리셰들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삐뚤어진 앵글이라든가 과잉된 표현주의적 모티프라든가, 오르가즘인지 고통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얼굴 클로즈업이라든가. 이런 건 성애적인 약호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그리고 정말 끊임없이 울려대는 영화 음악, 슬로우모션, . 이런 기법들은 저예산 에로영화에 등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요. <금욕>을 만든 김수형 감독 역시 이후에 <산딸기>라는 에로영화를 시리즈로 만들었던 감독입니다.

 




<금욕>에 등장하는 그물이라든가 새장. 그리고 계단의 프레임은 갇혀있다는 전형적 상징을 보여주고요. 세 번이나 등장하는 강간 장면, 사디즘에 대한 표피적이지만 선정적인 묘사들을 통해 가부장제 억압 서사를 그럴듯하게 만듭니다. 여성동성애가 왜 생기는지 대중들을 설득하고 성애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바탕을 까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미애라고 하는 여성을 굉장히 주체적인 욕망을 가진 여성으로 보여주고 있죠. 초반에는 가부장제의 억압에 대해 도피 혹은 회피의 반응으로 영희에 대한 사랑을 품게 되지만 후반에 가서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죠. 초반에는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모티프가 많았다면 점차 성애적인 것이 강조되다보니 끝으로 갈수록 이 모티프들이 벽장의 상징으로 느껴져요.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성이 주체적으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상징물로 나타나죠.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레즈비언의 욕망을 가시화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는 선정적인 범죄, 가부장제의 억압, 이성애의 대체가 있습니다. 특히 오래된 레즈비언 영화의 대표적인 클리셰들이 있어요. 바로 여성들만의 공간입니다.  당시에 등장했던 사적인 공간과도 관계가 있어요. 70, 80년대 넘어가게 되면 아파트 혹은 현대적인 가정주택이 보급되며 여자들에게 자신만의 방이 생기게 됩니다. 부르주아 혹은 중산층 여성 이야기를 가져오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러한 자기만의 공간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을 통해 그들의 사적 욕망을 보여줄 수 있거든요. <금욕>에서는 마사지하는 장면, 영희의 몸에 그림 그리는 장면, 또는 치료 목적으로 사디즘적 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전형적으로 성애적인 장면이죠. 이후 영희와 준이 정사를 하는 장면에서 영희의 얼굴 표정은 노미애가 영희에게 마사지를 해줄 때의 표정과 똑같은데 그걸 클로즈업으로 보여주거든요. 그 배치가 노미애와 영희 간의 마사지가 성애적 행위였다는 것을 보여주죠. 이런 사적인, 비밀스러운 욕망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은 모두 서구적인, 이국적인 곳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까 말씀드린 이성애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 그려지거나남자를 만나기 전의 전단계로 묘사되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동성애관계가 성장통으로 여겨지는 거죠. 10대 소녀들이 이성애로 가기 전에 연습해보는 과정으로 묘사가 되죠여성으로서의 친밀성 속에서 여성 동성애를 승인해주는 거죠. 30년대에 남성지식인들의 칼럼처럼, ‘설마 여자들끼리 섹스를 하냐남성은 비위가 좋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 단순한 감정교류 혹은 우정이다.’, ‘원래 여성은 감정적이고 친밀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실 그것은 성애적섹슈얼한 욕망의 주체로서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이 친밀성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인데, <금욕>에서도 역시 둘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돌봄의 개념을 통해서예요. 노미애가 영희에게 동생처럼 여긴다.’, ‘너를 치료해주겠다.’라고 말하는 방식의 친밀함이 여성성으로 묘사가 되면서 여성동성애가 승인되는 거죠. 물론 <금욕>에 그것을 넘어서는 부분이 있지만 사실상 그러한 안전한 약호들 내에서만 서사가 진행된다고 보실 수 있어요. 한국 영화사내에서 레즈비언 재현은 왜 자꾸 관습적으로 반복되고 있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러한 역사적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성 동성애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노미애를 죽여버리는 거죠. 영희는 이성애나 가부장제에 비교적 순응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노미애는 욕망의 주체로 살려고 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자신의 권력과 나이, 재력을 통해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훨씬 더 위험한 존재인 거죠. 당시 많은 에로 영화들은 대중심리학을 굉장히 신봉했는데, 특히 융과 프로이트를 가지고 왔어요. ‘왜 이 여자들은 아직도 이렇게 성욕이 강한가?’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대중심리학을 가져왔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런 부분이 드러나죠. 앞에 쓸데없이 남성의사가 권위 있는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하면서 일종의 프레임을 만들어주는 거죠. ‘이것은 병이다.’라고 낙인을 찍고 들어가는, 사실상 이 틀 안에서만 너희들의 욕망을 승인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치료가 되지 않는 노미애는 죽게 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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