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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물비늘〉: 마지막 인사는 계속된다

by indiespace_가람 2023. 12. 18.

 

〈물비늘〉 리뷰: 마지막 인사는 계속된다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인사는 건네고 받으며 나눠진다. 인사를 나누는 순간은 다시 처음과 마지막으로 구분 지어진다. 그 순간들은 지나고 나서야 알아 차릴 수 있는 탓에 우리는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을 지각한 채 인사를 나눌 수 없어 자주 슬프다. 마지막 인사는 더욱이 어렵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사실에 괴롭고, 마지막 순간이 마지막 인사가 되리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했음에 고통받는 ‘마지막 인사’라는 일. 홀로 남은 내가 기억하는 너와 나의 마지막 장면이 우리의 마지막 인사였다는 점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괴롭고 고통스러워 이내 곧 가장 큰 후회로 남아 나 자신을 괴롭힌다. 그 마지막 순간이자 너와 내가 나눈 마지막 인사는 우리가 함께 했던 마지막 날의 날씨일 수도, 내가 너를 어루만지던 손길이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마지막들이 한데 모여 너와 나의 이야기를 매듭 지으려 하고, 우리는 그 매듭을 때때로 풀고 잘라내어 너와 내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영화 〈물비늘〉 스틸컷

 

 

  강물이 겹겹이 흐르는 소리와 금속 탐지기 소리가 생경하게 섞이며 〈물비늘〉의 오프닝이 시작된다. 강 하류 한 편에 금속 탐지기를 들고 손녀, 수정(설시연)의 흔적을 찾는 예분(김자영)을 중심으로 들려오는 소리들이다. 이 소리의 뒤섞임은 영화 곳곳에 가장 자주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그 소리와 함께 예분의 행동 또한 반복된다. 계속해서 리듬적으로 곳곳에 반복하는 이 장면에는 하나 둘 갈등이 침입하여 소리의 주체인 예분의 행동을 자극한다. 다리 공사 용역 인부들과의 갈등, 그로 인해 출동한 경찰 종철(장준희)과의 갈등, 차갑고 아린 물살을 버텨내는 예분 자신과의 갈등 그리고 그 공간에는 예분 혼자가 아닌 지윤(홍예서)도 있었다는 사실은 후회와 슬픔, 분노와 고통으로 가득 찬 예분의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여러 외부적 침입과 예분 자신의 내적인 갈등이 극에 달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강의 하류는 반복과 증폭의 공간이 되고, 영화가 왜 수정과 예분, 수정과 지윤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보다 예분과 지윤의 관계에 집중하는지, 왜 이들이 서로 함께 마주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가 된다. 〈물비늘〉은 이 공간을 떠나지 못하는, 그러다 함께 마주하게 된 예분과 지윤의 이야기이다.

 

 

영화 〈물비늘〉 스틸컷

 

 

  문득 예분의 이름이 궁금해진다. 예분의 ‘예’는 ‘예도 예(禮)’였을까. 예분의 직업은 염습사로, 마지막이 되는 순간에 예를 갖추어 수의를 입히고 잘 매듭짓는다. 고이 매듭을 지어내는 예분의 손을 지켜보다 영화가 잠시 보여주었던 수정을 어루만지던 예분의 손이 떠오른다. 예분은 긴 머리를 하고 있던 수정의 머리칼을 만지다 집게 핀을 가져와 수정의 머리숱을 쓸어내고 정돈하여 잘 꽂아주었다. 따스한 햇살이 집안에 들어오던 그날 예분과 수정, 지윤은 함께였다. 예분과 수정의 관계 그리고 예분과 지윤의 관계를 보여주는 찰나의 순간이다. 영화는 영화가 취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강가에서의 예분의 행동과 물 안팎에서 두려움 섞인 지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과거 시점을 중간중간 끌어오지만, 그 삽입은 보는 이의 예상보다도 드물게 행해진다. 플래시백으로 지윤과 예분이 가진 수정에 대한 기억을 끌어내어 세세히 이들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기를 택한 채, 영화는 이들이 수정과 했던 마지막 인사만큼은 그 매듭을 세세히 헤쳐놓고 다시 그들 스스로 묶어내기를 바라고 있다. 수정의 머리칼을 고이 매만지던 예분이라는 사람은 술을 먹으면 쓰는 단어와 말투,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이다. 술에 취해 수정에게 소리를 치고, 욕설을 퍼붓던 예분의 말, 목소리, 표정은 예분의 기억 속에도 있는 수정과의 마지막 인사이다. 지윤은 그런 수정을 위로하기 위해 래프팅을 제안했다. 래프팅 보트에 올라탄 수정이 지윤에게 구명조끼가 답답하다고 하자 지윤은 조끼 끈을 느슨하게 풀어내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지윤과 예분의 기억 속 수정과의 마지막 순간이자 마지막 인사들은 그렇게 풀어 헤쳐진 채 여전히 그들의 몫이 되어 남겨져 있다. 그날의 목소리, 대화, 날씨 그리고 너와 나의 맞닿음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 몰랐던 예분과 지윤은 수정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하며 마지막 순간 주위에 머무른다. 이들의 마지막 순간은 그렇게 그들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그들을 그날로 붙잡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상처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예분과 지윤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이윽고 그들은 함께 예분의 친구이자 지윤의 할머니인 옥임(정애화)의 장례를 치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또 건네는 시간을 통해 수정과의 마지막 인사를 각자 그리고 또 함께 시작해본다.

 

 

영화 〈물비늘〉 스틸컷

 

 

  누군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는 건 스스로 알 수 없어 괴롭고, 그 인사는 완벽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흘러간 시간 앞에 우리는 어떤 장면을 우리의 마지막 인사라고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 각자의 기억 속에서 돌이켜보니 마지막이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우리는 충분히 아파하고 필연적으로 후회한다. 그 모든 마음을 느끼며 마지막 인사를 다시 행하는 일은 며칠에 걸쳐 이뤄지고, 특히나 그 며칠의 마지막 날은 공간을 이동하며 이곳저곳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내려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또다시 내려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를 반복한다. 이제는 나눌 수 없이 건넬 수밖에 없는 인사임에도 마지막임을 알아 온 마음을 다해 건네고, 또 건넨다. 계속되는 마지막 인사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계속된다. 그게 우리 모두가 겪는 상실 앞에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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