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교차로에서 태어난 <버블 패밀리>




천주희 (문화연구자)



도시, 가족, 그리고 욕망의 교차로에서: 버블 패밀리 탄생기 

<버블 패밀리>는 한 가족의 늦둥이 딸이자, 감독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0년대 서울 강남에서 ‘아파트 키드’로 자란 감독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강남’은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장소이다. 문화, 자본이 응축된 도시랄까. 그러나 감독인 화자는 성장할수록 자신이 강남과 어울리지 않고,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결국 그녀는 독립과 함께 강남을 벗어났고, 몇 년 만에 “온전히 나만의 삶”을 꾸릴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삶에 안착하는 듯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1980년대 후반, 감독의 부모님은 경제성장과 건설업 부흥기에 소위 ‘집장사’라 불리는 중소건설업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다. 집을 짓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라 한 달에 억대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부모님은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했고, 중산층에 입성했다. 박정희, 노태우 정권에 부흥했던 부동산 시장은 부모에게 전성기를 선물했다. 화학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중소건설업 사장님이 되었고, 주부였던 어머니는 사모님이 되었다. 하지만 IMF 이후 몰락한 가족은 아파트 건너편 빌라로 이사했다. 부모는 15년 째 낡은 빌라에서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이미 부동산 붐은 끝났고, 더 이상 3저 호황의 행운이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건물을 분양받아 투자하면 다시 성공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를 바라보는 딸은 다른 세상에 산다. 학자금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고, 독립한 지 7년이 되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가 사는 강남에 집을 얻을 경제력은 없다. 겨우 얻은 집은 천장에서 물이 샌다. 부모가 거주하는 강남 집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집주인은 이사 갈 것을 권하고, 부모님은 다음 달 월세조차 버거워한다. 당장 이사를 하거나 대책을 세워야 함에도 아버지는 딸에게 제작비로 받은 돈 100만 원을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강남에 머물고자하는 욕망과 이를 비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딸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간다. <버블 패밀리>는 이런 간극의 지점에서 사회적 욕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위태로운 경제상황에서도 그 욕망이 지속될 수 있는지 포착한다. 

언제부터 서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어긋남 사이에서 유일하게 가족을 잇는 건 ‘버블패밀리’라는 이름뿐이다. 버블 속에는 가족의 간극, 균열, 원망이 담겨있다. 엄마는 가족 몰래 딸 명의로 땅을 사두고, 딸은 그 돈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길 바라고, 아버지는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나지 않은 부채를 안고 산다. 하지만 감독은 이 어긋난 욕망을  ‘도시’, ‘가족’, ‘거품’이라는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새롭게 재구성한다. 가족은 아버지 명의로 경매에 넘어간 땅에서 조금이나마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기도 하고, 딸은 엄마가 자신의 명의로 사둔 땅을 보러 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태도가 부모의 관점이나 입장으로 전환한 것은 아니다. 과거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애쓰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경제위기를 봉합하려 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는 서로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존재하고, 긴장 속에서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여성의 시선으로 본 한국경제

한국의 경제사를 설명하는 데 <버블 패밀리>는 독특한 시선을 지닌다. 하나는 가족이라는 사적영역에서 출발해 거시적인 경제의 욕망과 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관점에서 버블경제를 조명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동안 한국의 버블경제를 논하는 자리에서 드러날 수 없었던 시선이었다. 경제란 늘 거대한 통계와 지표로 움직이는 것이라 맹신하는 집단을 통해 말해졌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여성의 서사와 가족의 서사는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버블 패밀리>에는 엄마의 기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엄마는 중산층 주부의 시선에서 딸과 가족의 일상을 홈비디오에 기록한다. 중산층의 단란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외동딸에게 공주님처럼 분홍 드레스를 입히고, 호화로운 생일파티를 해주고, 유원지와 바다 여행, 발레 공연과 노래하는 모습까지 담았다. 그곳에는 화목한 가정이 있다. 하지만 1997년, IMF와 함께 엄마의 기록은 멈춘다. 그 후로 다큐 감독이 된 딸은 2010년 이후 가족의 모습을 담는다. 기록되지 않은 가족의 몰락사를 현재 가족의 언어와 풍경으로 복구시킨다. 거품이 꺼진 이후, 가족의 이야기는 엄마의 시선과 대비된다. 낡아서 누렇게 변색된 벽지, 망가진 싱크대, 고장 난 보일러, 연체된 세금 고지서, 아버지의 부채까지. 어느 하나 멀쩡한 것 없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미소 지으며 빨리 나오라던 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20년 전과 전혀 다른 가족의 모습이다. 

한편 <버블 패밀리>에는 아버지의 시선이 없다. 아버지는 늘 조연처럼 등장한다. 엄마에게는 출근하는 남편이었고, 딸에게는 집이나 종로를 배회하는 아버지였다. 그동안 경제 담론에서 전성기는 남성들의 서사로 채워진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실제로 거품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 뒷수습은 늘 여성의 몫이었다. 남편의 빚을 몰래 갚는 엄마의 이야기는 IMF 이후 여성들이 가족경제의 붕괴와 부채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남편이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는 건 아내였고, 주부들은 대거 서비스직이나 노동시장으로 떠밀리듯 나갔다. 감독의 엄마도 그랬다.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부채와 생계를 책임져왔다. 그리고 이 가족의 또 다른 여성인 딸은 결국 어려워진 집안 경제를 다시 수습하고자 집에 들어와 가장 역할을 맡는다. 

경제에도 시간이 있다면, <버블 패밀리>는 여성의 시선에서 거품경제의 낮과 밤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보낸 시간이 낮이라면, 딸이 보내는 시간은 밤의 시간이다. 가족을 바라보는 둘의 다른 시간과 시점은 <버블 패밀리>에서 만난다. 고성장기에 사업수완으로 덕을 본 부모는 가족이 가장 찬란했던 때를,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자녀는 가족이 가장 힘겨운 때를 기록하고 지탱한다. 다큐 후반부에서 어머니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딸에게 묻는다. “밤에 나오니까 어떻습니까?”라고. 오히려 그 질문은 어머니가 스스로 묻고 싶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고요해 보이지만, 다시금 무엇인가 움트기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에 그녀는 딸과 함께 서로를 비춘다. 

<버블 패밀리>는 과거와 현재 달라진 가족사진을 배경으로 끝난다. 이 가족의 행보가 궁금한 이유는 수많은 버블패밀리들의 현재와 미래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욕망과 개인의 욕망 교차로에서 태어난 ‘버블패밀리’는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경제라는 것은 한낱 거품과도 같아서 큰 행운도 큰 몰락도 없다는 것을. 하루하루 서로 마주하고 살아가는 관계양식 그 자체가 경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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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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