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폴로지한줄 관람평

송희원 | 더 늦기 전에 사과를 요구한다

이현재 | 발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동행한다. 앞서나가지 않는 것의 미덕.

박영농 | 위안부 문제에 대한 주목할 만한 접근법. 박수를 보냅니다.

이지윤 |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영화, 간직해야할 책임.

최지원 |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멈춘 적 없는 목소리

김은정 | 아픔으로 연대하는 우리 모두의 가족의 이야기




 <어폴로지> 리뷰: 더 늦기 전에 사과를 요구한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어폴로지>는 캐나다 국적의 여성 감독 티파니 슝이 6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된 길원옥 할머니(한국), 차오 할머니(중국), 아델라 할머니(필리핀)의 현재 모습과 증언을 가까이에서 담는다.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수치스럽다며 가족에게까지 함구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가족에게 용기 내어 고백한다.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극우 혐한 시위대에게 “수치스러운 한국 할망구들”, “꺼져, 한국 매춘부들” 같은 갖은 모욕을 들으면서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세계 방방곡곡을 다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이다. ‘너무 늦기 전에’ 받아내려는 사과(사죄)는 어떤 의미인 걸까?  


‘어폴로지’(apology)는 사과(謝過), 사죄(謝罪)를 의미한다. 사과에는 사과를 받는(또는 요구하는) 주체와 사과를 하는 주체가 있다. 사과를 요구하는 주체는 역사의 증언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고 사과를 해야 할 주체는 당연하게도 일본 정부이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들은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일본이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버티며 오히려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것을 보면 사과해야 할 사람과 받아야 할 사람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착각마저 든다.  



영화에서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기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2011년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1,000차 수요시위(1992년부터 시작된 시민단체와 시민들과 피해 할머니들이 함께하는 정기 시위)에서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역사적인 진실을 밝히길 촉구한다. 2013년에는 “전시에 성노예가 필요하다”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규탄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다. 2014년에는 스위스 유엔인권이사회 공식 석상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증언하며 천오백만 명의 서명을 전달한다. ‘위안부’ 피해자의 범위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여러 국가 및 네덜란드 여성들에게까지 이른다. 이 문제가 비단 한일양국으로 축소될 사안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것이 길원옥 할머니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세계 시민을 대상으로 역사의 증언을 반복하고 전 세계의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일본의 법적 배상은 마무리가 아니라 출발일 뿐이고 공식적인 사과를 통해 앞으로 미래의 후손들에게는 이런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흘린다. 


김욱 교수는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에서 정치적 사과는 개인적 사과와 다르며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의 원인이며, 끊임없이 진화·진보하는 현재의 투쟁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정치적 사과는 진정성 없는 사과라 할지라도 일단 역사적 전투에서 승리한 승자의 전리품이며 미래의 역사를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정치적 사과는 “개인이 아닌 집단적인 차원에서, 자발성보다는 강요에 의해서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한국 정부는 일본에게 ‘정치적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정치적 사과가 개인이 아닌 집단적인 차원에서 얻어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폴로지>에서 한국 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2013년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규탄하기 위해 일본 공항으로 떠나는 길원옥 할머니를 따라간다. 한 언론사는 그를 인터뷰하며 온 국민이 기대하고 있다고 그에게 각오 한마디를 요청한다. 공항에서는 수많은 취재진이 할머니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할머니는 휠체어를 탄 채 탑승구 앞에 홀로 있다. 취재진과 한국 정부의 마중은 딱 거기까지이다. 가상의 포토라인이 처져있는 것처럼 그들은 그곳에 서서 할머니를 떠나보낸다. 과거에 그들이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을 때처럼 말이다. 정부(국가)가 아닌 할머니(개인)가 자력으로 사과를 받으러 떠난다. 길원옥 할머니는 말한다.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라고. 영화 속 그녀의 작은 뒷모습, 작은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되었다. 그 이후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계속 이어져 왔다. 그들의 증언이 가능했던 것은 그 말을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증언에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관심을 가졌기에 공식적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다. 차오 할머니, 아델라 할머니는 오랫동안 사랑하는 가족에게조차 증언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홀로 아픔을 묻어놓았다. 그들이 증언하지 못한 이유는 사람들이 무관심했고 그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 귀를 닫아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파니 슝 감독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단체와 시민들, 양심 있는 학자들이 그들의 증언에 귀 기울였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진실 해명은 그것을 추구고자 하는 이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가능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빛을 보기 위해서는 상처를 공유하고, 그 아픔을 치유해 주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서울독립영화제, 『21세기의 독립영화』, p.114) 


<어폴로지>는 시종일관 성치 않은 몸으로 많은 국가를 방문하며 피해 사실을 알리고 증언하는 길원옥 할머니와 그 곁의 사람들을 비춘다. 먼 곳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며 지지와 연대의 힘을 보내는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 그리고 영화에서 항상 그의 곁을 지키는 정대협 윤미향 대표와 수요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할머니들의 지속적인 활동은 연대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티파니 슝 감독은 할머니에게 자신을 카메라로 찍어 달라고 한다. 이 장면처럼 <어폴로지>는 끝났지만 이제 카메라는 우리의 모습을 찍게 될 것이다.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할머니들이 길거리에 서지 않아도 우리의 목소리로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게 촉구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들이 고통스러운 상처의 기억에서 조금이라도 놓여날 수 있게,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어폴로지> 포스터에 클로즈업된 소녀상의 두 주먹처럼 이제 우리의 두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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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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