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의 시간에서 벗어나 영화적 감각으로 짜여진 세계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꿈의 제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1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조현훈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꿈의 제인>의 시간은 불친절하게 흘러간다사라져버린 사람이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극 중 인물들의 관계가 뒤엉키기도 한다하지만 시간의 선형적 질서에서 벗어나 시청각적으로 표현된 영화적 언어를 받아들인다면 치밀하게 짜여진 <꿈의 제인>의 세계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많은 궁금증과 단서들이 오갔던 지난 밤의 기록이 나름의 이해와 해석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진행): 감독님과 GV 시작 전에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요기분이 센티멘탈해지셨대요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요.

 

조현훈 감독 (이하 감독): 아마 오늘이 마지막 <꿈의 제인> GV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진행: 저는 마지막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요인디스페이스에서 조만간 또 기회가 있을 거라 믿어요사실 지금쯤이면 감독님이 <꿈의 제인>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근데 말씀을 들으니 아직까지는 감정적으로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했나봐요.

 

감독사실 전까지는 감사한 마음이 구체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감사한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시기고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저번 주부터는 무엇이 감사한지에 대한 일기도 쓰고 있고요.

 

진행: 어떤 점이 감사한지 조금 공개를 해줄 수 있나요?

 

감독: 요즘 독립영화가 참 관객이 없어요우리 영화는 운 좋게도 많은 분들께서 봐주셨지만요관객 분들이 개봉 시기에 챙겨봐주셨다는 점과 지금까지도 꾸준히 지지를 보내주신다는 점이 정말 감사해요최근에는 또 스태프 분들이 생각나더라고요촬영감독님과 PD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떠올랐어요분위기가 약간 눈물의 GV로 흘러가는 것 같네요.

 


진행: 오늘 오신 관객 분들께 이따가 말씀을 또 드리겠지만어떤 마음으로 오셨는지가 궁금해요영화를 한 번 더 극장에서 보자는 취지도 있을 것 같고아직 감독님께 궁금한 점들도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요. 개봉 이후에 우연히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저는 이번 GV를 준비하면서 <꿈의 제인>을 또 봤는데정말 고심을 많이 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영화가 주는 매혹이라던가 압박감에 눌려있었는데그 감정에서 벗어나니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를 보게 됐어요. <꿈의 제인>은 굉장히 많은 사건들로 짜여진 복잡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복잡한 구조 안에서 컷 하나까지도 촘촘하게 설계된 영화예요감독님이 어떤 태도로 이 영화를 대했는지가 궁금해요.

 

감독: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과거를 추측하게 돼요작업을 하는 방식과 연결시켜 보자면 저는 스스로 먼저 꺼낼 수 없는 이야기나 믿지 않는 주제들로는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꿈의 제인>을 만들 때는 ‘아이들에게 스스로가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이 제 마음속에 남아있었어요그 점이 가장 중요했고요지금도 여전히 작업을 하기 위해서 고민할 때는 적어도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작업에 담으려고 해요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거예요때문에 다음 작업이 좀 오래 걸리겠구나 생각도 들고요.

 

진행: 감독님은 어미 하나까지 언어를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지고 어투가 주는 뉘앙스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그래서 '소현'의 내레이션이 풍부한 울림을 가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요좀 느닷없는 질문이긴 한데감독님은 일기를 어떤 투로 쓰는지가 궁금해졌어요본인만의 글은 어떤 형식으로 쓰나요?

 

감독일단 반말로 쓰고요, 반성문처럼 써요주로 뭘 잘못하고 있고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사실은 거의 맨날 같은 말만 써요누가 만약 제 일기를 주워서 읽는다면 '이 사람은 왜 매일 똑같은 말만 하지?' 생각 할 정도로요똑같은 일상을 보내기 때문에 특별한 내용을 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진행: 영화를 본 분들 각자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이 다 다르더라고요보편적으로 처음에는 '제인'을 위주로 많이 보는 것 같고반복 관람하는 분들은 주변 아이들을 하나씩 보는 것 같아요저는 개인적으로 소현에게 이입을 많이 했고 감독님 또한 소현에게 가장 마음을 주면서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실제로는 어땠나요?

 

감독: '병욱'에게 시선이 가기도 하고 또 '대포'에게 마음이 가기도 해요캐릭터 하나 하나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극중에서 주장 혹은 토론할 수 있도록 신경 썼는데소현이 기본적으로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아이였지만 병욱이나 대포 같은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그런 면이 있어요반면에 유독 제가 감정을 주지 않았던 인물은 '정호'였어요정호만 멀찍이 떨어져서 봤던 것 같아요정호한테까지 이입을 해서 왜곡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그래서인지 영화는 정호 이야기를 유독 아껴서 보여주고 있어요불필요한 이야기들은 최대한 덜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정호의 컷들도 궁금합니다.

 

감독: 소현과 제인의 입장에서 정호에 대한 낭만적인 기억들 혹은 향수 같은 것들이 시나리오 상에는 담겨있었어요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들어내야 된다고 판단했던 거죠왜나면 제가 정호 얘기를 하는 것이 창작자의 나르시즘 같다고 느꼈어요아름답게 포장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부정적인 쪽이라고 판단했거든요정호라는 인물을 냉정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또 대변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진행감독님이 어떤 면에서는 결벽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태도를 중시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정말 빈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요그래서 이 영화가 어떤 분들에게는 굉장히 무섭고 차갑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하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행복이나 희망에 대한 견해그리고 세상의 절망을 바라보는 시선이 저에게는 한없이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어요지금도 여전히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혹은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감독영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어요순전히 제 생각인데사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이 영화를 봤을 거라 믿거든요비슷한 사람들끼리 생각을 공유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어요그렇다고 해서 제 생활이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런 조금의 차이들이 제가 앞으로 만들 영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했고요


진행: 감독님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관객이 비단 저만은 아닌 것 같아요물론 이른 애기일 수도 있겠지만 감독님이 방금 차기작에 대한 단서를 던졌잖아요염치 불구하고 여쭤보겠습니다차기작 계획이 있나요?

 

감독: 일단 장편 시나리오는 계속 쓰고 있는 상태고요,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중요하게 잡아둔 부분은 있어요이 또한 가족의 관계 같은 것인데장편과 함께 그 내용과 연계된 단편을 촬영할 것 같아요. 각각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이런 방식을 프리퀄이나 스핀오프라 하나요아무튼 단편은 전사(前史)를 드러내는 정도로 작업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진행: 이렇게까지 주인공의 안 좋고 감추고 싶은 부분을 막 드러내는 작가는 드물거든요소현의 비겁하고 치사한 부분주인공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도 인물과 거리를 유지해버리는 카메라의 태도가 인상 깊어요그래서 저는 감독님이 소현에게 가장 이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거고요새로운 주인공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는 어떨까 궁금해졌어요지금 쓰고 있신 주인공에게는 조금 덜 가혹한가요?

 

감독: <꿈의 제인>을 쓰던 당시에 저의 세계관이라 해야 할까요? 그땐 결국 희망이나 긍정적인 상황은 없다는 전제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지금 쓰는 시나리오도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가 될 것 같은데말씀하신 것처럼 <꿈의 제인>보다는 따뜻한 면들이 있겠죠

 

진행: 편집하며 컷을 붙이거나 넘어갈 때 가장 고심했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감독: 현장에서 촬영한 분량은 다 사용했어요여력이 안되고 시간도 부족해서 촬영 단계에서 편집을 하면서 찍어가야 했거든요. 찍은 건 다 썼지만, 찍을 때 없앤 부분이 있어요. 때마다 고심했던 부분은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 했던 고민들과 굉장히 유사했어요. '소현에게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시하는가?'라는 부분이에요. 가령 삭제된 장면 중 하나인데제인이 아이들 사이에서 소현이를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 얘기하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있었어요그런 장면이 저에게는 좀 불편했던 것 같아요환상 혹은 판타지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인데굳이 이 장면들까지 넣어서 이 아이의 낙차를 크게 하려는 연출자의 의도가 무엇인가,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삭제했던 것 같아요.

 

진행: 저에게 <꿈의 제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잔상이 또렷해지는 영화예요심리적이고 시각적인 모티브를 통해서 마음속에 깊게 들어가는 체험을 선사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거실에서 제인이 소현에게 휘파람을 불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그 장면의 공간이나 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처음에 제인이 휘파람을 불러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 공간에는 그 둘만 존재하는 것 같잖아요하지만 카메라가 뒤로 빠지고 프레임이 점차 커지니까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있어요저는 그 순간 아이들이 유령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어요미동조차 하지 않고 어떤 의식처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는데소현의 깊은 고독이나 감정들이 한 순간 너무나 크게 다가왔어요작년 6월 GV에서 이 장면에 대해 감독님은 소현이 마치 숲에 둘러싸여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했어요다음 장면은 제인이 투신해서 떨어져 있는 장면이죠. 그 다음은 다시 어두워진 가운데 미러볼이 돌아가고 침대에 누워있는 제인을 소현이 지켜보고 그 후경에 아이들이 미동 없이 앉아있는 장면이에요이 장면에 대한 감독님의 의도도 들어보고 싶어요.

 

감독: 일단 언급하신 장면들은 같은 방식으로 연출하진 않았어요휘파람을 부는 장면은 리허설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갔는데그 때 당시의 분위기가 우리가 보는 장면과 흡사했어요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소리를 듣고 있는가에 집중했고 그 감정들이 담겨야 된다는 것이 최우선이었어요유령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결국엔 초현실적으로 보여야 했고 그 공간이 이질적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아요그런 장면들이 영화 내에서 힌트나 열쇠가 돼야 하잖아요마치 숲 속에서 한 사람이 동물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듯한 이미지에서 시작을 했어요제인의 시신을 보고 있는 소현과 아이들 장면에서 명백하게 의도를 뒀던 지점은 죄책감이나 죄의식이었어요그 장면에서 '지수'는 드러나지 않거든요. '왜 지수를 숨기고 있는가? 제인의 죽음이 결국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나름의 원칙을 갖고 촬영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고요.

 

진행: 대포가 지수인 척 하고 나온 소현과 터널에서 대면할 때검정 비닐봉지를 씌우기 직전에 카메라가 한 번 터널 밖으로 빠졌다가 다시 들어가는 순간이 있어요터널 속의 대사처리는 사운드로만 들리고요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중간에 넣은 의도는 뭘까요?

 

감독: 어떤 의도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저 역시도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이 부분에서 감정적으로 동요가 많이 됐거든요소현의 말이 대포에게 전달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대포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애당초 소현의 말을 거의 듣고 있지 않았던 거죠사람들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대포는 조금 다른 아이인 것 같아요대포를 연기한 박강섭 배우가 제 학교 후배인데, 박강섭 배우는 정말 단순한 친구고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에요본인도 스스로가 의리 있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친구인데그런 면들이 저는 단순하다고 느꼈고 배우의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 반영됐어요. 대포의 행동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섬세하진 못 한거죠그 장면은 대포의 사고방식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해요.

 






관객: 영화 속 각각의 캐릭터들이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모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어요캐릭터에 대한 감독님의 감상을 들어보고 싶어요.

 

감독: 이제 겨우 한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고, 영화 작업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제 나름대로 인물에게 양면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어요. 창작론은 아니고 제가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중 하나인 것 같아요실제로 더욱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요인간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방식이 내 세계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고민을 해요일부러 원칙들을 신경 쓰면서 이야기를 구상하진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자연스레 담긴 것 같아요.

 

진행: 아무래도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의 등장인물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캐릭터의 풍부성이 곧 감독님의 태도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요? 함부로 단정짓지 않는 조심스러운 태도와 거리를 두려는 자세가 보여서 좋았어요. 

 


관객영화를 보는 내내 꿈을 꾸는 것처럼 기억들이 조각나 있다고 느꼈어요그렇게 느낀 이유 중 하나가 뒤죽박죽인 순서 때문인데이야기가 순서대로 정렬된 건지 궁금해요소현의 내레이션이 반복되는데, 영화 전후의 이야기를 분리해서 봐야 하는지아니면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서로 연관시켜서 봐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또 딸기케이크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케이크가 가진 상징적인 의미도 궁금합니다.

 

감독: 첫 번째 질문이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에요항상 하는 대답은 있는데요즘 생각과 연결시켜 답하자면, 제가 단편영화를 찍는 꿈을 계속 꿔요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고통스러워 하면서 준비도 안 되어있는데 뛰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꿈에 나와요걱정하는 것들 혹은 희망하는 것들이 꿈에 반영된다고 생각해요긍정적인 관점에서 소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또 이 친구가 가장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영화적으로 표현해야 했어요. 소현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무엇을 이루지 못했는지어떤 것을 가장 후회하는지에 집중할 수 있게끔 순서를 구상한 것 같아요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엉키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반복되는 편집, 내레이션, 공간들은 나름대로 이야기를 풀어갈 열쇠나 힌트를 드리고 싶었던 것이고 케이크 또한 같은 의미를 가진 소품이죠많이 못 보시는 장면인데, 처음에 소현이 편지를 쓰는 모텔 방에서 천천히 카메라가 들어갈 때 먹다 남은 케이크가 보여요이 장면은 사실상 이후에 나오는 소현이 딸기 하나를 케이크에서 떼 먹는 장면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어요실제 시간이라기보다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원칙이나 방식을 제시한 것이고그런 것들을 단서로 삼아 본인 방식으로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영화를 통해서 권유한 거였어요.

 

진행: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정말 기대하고 있었어요개봉 당시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 방식으로 하거나 안 하려고 피했거든요저는 이 영화에 나름의 엄청난 원칙들이 있다고 생각해요굉장히 첨예하게 만들어 놓은 연결고리들이 있어요크게는 음악빛의 활용이 있죠소품 하나 대사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계산돼 있어요때문에 저는 영화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는 순간이 많았어요.

 


관객: 제인이 미러볼이나 공 같이 둥그스름한 것에 집착해요그 소품들에 담긴 의도가 궁금합니다.

 

감독미러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이 말을 하는 게 민망한데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밝아진다는 주제의식을 반영하는 소품이에요소품의 특징을 제인과 연결시킴으로써 제인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고요미러볼과 공처럼 둥그스름한 것이 제인 그 자체다, 라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진행: 구교환 배우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일 년 전쯤에 이런 답변을 했어요그 때 굉장히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동그라면 좋지 않냐고 하면서 동그랗기 때문에 모서리도모난 부분도 없이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제인과 닮았다고 이야기했어요.

 






관객: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제인의 매력에 빠졌는데그 다음에 볼 때는 모든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어요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 저의 모습과 많이 겹쳐 보였어요때문에 감독님이 각각의 캐릭터를 단정짓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가 좋게 와 닿았고요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갔는지누구를 먼저 만들어냈는지 궁금해요.

 

감독아무래도 소현이란 인물이 제일 중요했고 그 다음으로 지수란 인물도 중요했죠원래 단편이 시초였는데단편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였어요지수가 팸의 가장이라는 설정이었고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는 내용이었어요그런 이야기를 쓰다가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로 가는 것 같아서 조금씩 수정해나갔어요인물들을 만들 때는 제인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며 쓰지는 않았어요. 제인이라는 인물 한 명만 방향성을 잡고 만들어 낸 캐릭터예요. 제인은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면서 약간 촌스럽기도 해요이런 부분이 분명히 필요한 특징이라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넣었어요.

 


관객: 영화에 트랜스젠더나 청소년들이 많이 등장해요하지만 대중들은 성적소수자나 소외계층의 삶을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쉽게 관심을 주지도 않잖아요이런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감독: 결국 영화를 왜 만들고, 어떻게 만드는가로 생각이 이르는 것 같아요저는 홀로 남겨진 사람의 마음에 이입을 해요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해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에요그런 마음들이 이야기를 만들게 해요그렇게 시작을 하다 보니 인물의 곁에 두고 싶은 인물들이 하나 둘씩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죠그래서 제인을 만들어냈고 가출팸 아이들도 만나게 됐죠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소현 같은 인물이에요.

 

진행: 왜 그런지는 보는 사람들이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제가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영화에서 환지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환지증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감독: 두 가지 면을 생각했어요당사자가 아니라면 우리들이 판단할 수 없는 범위가 있어요그런 관점에서 편견이나 오해동정을 이야기하고 싶었고또 한편으로는 소현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소현이는 비뚤어진 시선들을 개의치 않아한다는 부분이물론 주제적으로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편견을 대하는 제 개인의 태도와 소현이의 태도가 많은 다른 사람들과도 닮아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환지증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진행: 지난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꿈의 제인>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동료 선후배 감독들이 준 상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클 것 같아요마찬가지로 저 또한 <꿈의 제인>이라는 영화가 영화계 안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값진 자극을 준 영화라고 생각해요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관객도 모으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또 독립영화가 독립영화답게 존재하는 것 조차 힘든 세상에서 몇 줄로 정리되지 않는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어요이 영화는 소리와 이미지가 하나의 덩어리로 운동하듯 다가왔고 영화적인 경험을 안겨준 좋은 영화였어요앞으로도 계속 이런 영화를 찍어주셨으면 좋겠어요감독님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감독: 긍정적인 희망이나 목표를 두고 영화 작업을 하진 않을 것 같아요하지만 분명 그런 시기도 있겠죠이 일은 공격적으로 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를 좀 오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산업이니까요그렇지만 정확하게 어떤 원칙을 갖고 이렇게 작업하겠다고 얘기할 순 없어요단지 고민이 많고, 조금은 침울한 상태로 작업에 임하고 싶다는 게 제 개인적인 목표예요못보고 지나치지 않도록또 놓치고 있는 것들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행: ‘침울한 상태로 있어야겠다라는 말이 굉장히 반갑네요무슨 의미인지 다 아실 거라 생각해요늦은 밤까지 자리해주신 관객 분들에게 마지막 인사 부탁드릴게요.

 

감독: 사실 오늘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고 그걸 목표로 이 자리에 왔어요개봉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에서 영화를 다시 보러 와주시고 또 늦은 시간까지 영화관에 남아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마법 같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이 영화를 택한 것 자체가 우연이라 할지라도요하지만 저에게 오늘은 절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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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다음 삶의 현장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살아남은 아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9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신동석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생명에게 있어 살아남다라는 동사는 시간적으로 유한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살아남다라는 말에는 죽음을 모면하여 남아 있게 된다는 뜻이 있는데, 생명은 언젠가 기어코 온몸으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남는다는 표현은 오묘하다. 우리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한편 찰나의 안도를 선사한다. 그것이 죽음 바로 옆에서 숨 쉴 때 더욱 그렇다.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의 죽음 이후, 아들이 죽어가며 살려낸 아이와 설명하기 힘든 관계를 맺게 된 부부의 이야기다. 관계가 나고 자라는 동안 영화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까지 세 사람이 각각 상실을 마주하는 서로 다른 태도에 주목하여 인물 간의 간극을 때로는 분명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조절해나간다. 차이가 분명할 때엔 타인과 같을 수 없다는 허무를, 희미할 때엔 고통을 함께 녹일 수 있다는 위안을 준다. 관객은 그 과정에서 세 인물을 차례로 통과하게 된다. 그렇게 위로와 애도의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여운이 남은 자리,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와 신동석 감독이 함께 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김현민) :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부터 가볍게 들어보고 싶어요.

 

신동석 감독 (이하 신동석) : 주변에서 이른 나이부터 죽음을 경험하는 경우를 봐왔어요. 그래서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어요. 가족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몇 차례 썼어요. 그 이야기들이 다 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 쓴 <살아남은 아이>는 괜찮다 싶었습니다. 이건 영화로 꼭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살아남은 아이>가 맘에 들었던 이유는 뭘까요?

 

신동석: 힘든 이야기를 할 때, 나도 쓰면서 아프기 싫으니까 아픔을 이상한 방식으로 돌려서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제게 불만이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이나 정서를 잘 녹여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김현민: 돌려서 표현하게 됐다는 게 이해가 되는 게,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나 하는 고민도 했을 것 같아요.

 

신동석: 그런 고민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영화를 볼 때 불편할 때가 있거든요. 조금 더 진중하게 아픔을 안아주면 좋을 텐데, 너무 가학적으로 그린다거나 냉정하게 바라보는 영화를 볼 때요. 그래서 이야기를 빠르게 만들었지만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에서 영화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스태프들에게도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김현민: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세 인물에게 차례로 이입을 하게 됐어요. 남편 '성철', 소년 '기현', 아내 '미숙' 순으로 제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게 되더라고요. 감독님이 관객에게 세 인물을 동일한 거리를 두고 경험하게 한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두 번째 봤을 때는 자칫하면 이런 구도가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 배우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신동석: 초고를 쓰고 나서 캐스팅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일순위 배우들이 그 세 명이었습니다. 제가 원했던 대로 캐스팅이 돼서 좋은데, 이 세 사람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성철, 기현, 미숙의 캐릭터가 있으니 그에 대입해서 뽑은 건데, 세 사람의 앙상블이 괜찮겠다고 짐작만 했지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거든요. 제가 기대한 것 보다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김현민: 특히 최무성 배우의 무감한 표정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거든요. 성유빈 배우는 경력이 길지 않고 나이도 어리지만, 큰 표정 없이도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스크린에 어울리는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여진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감독님의 기대보다 좋았다고 했는데, 특히 배우 분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해낸 장면은 무엇이 있을까요?

 

신동석: 최무성 배우가 생각보다 장난기가 많아요. 현장에서 재미있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요. 처음에는 그런 장난기가 성철의 캐릭터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점들이 오히려 세 명의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좋게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성철의 약간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세 사람을 유사 가족처럼 보이게 하는데 크게 한 몫 했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저도 놀라웠던 장면은 기현이 미숙에게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과 이후에 미숙이 기현의 원룸에 다시 찾아갔을 때의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이 연기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모니터를 보면서 한동안 컷을 못 했습니다. 배우들의 아우라에 압도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김현민: 영화에서 유독 눈길이 갔던 부분은 도배를 하는 밝은 대낮 장면이에요.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잖아요. 원룸에서의 장면도 밝고요. 이런 지점이 조금은 의외인 느낌을 줬습니다. 어두울 수 있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밝기 때문에 인물들이 더 숨을 곳이 없다는 적나라한 느낌까지 줬고요.

 

신동석: 몇몇 특정 장면들이 밝다는 건 생각을 못 했네요. 역광이기를 바랐던 장면은 있어요. 창가를 등지고 기현과 미숙이 이야기하는 장면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주변이 밝더라도 표정은 어두울 수 있고, 그런 부분이 진실이 뭔지 헷갈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이렇다 해서 일부러 어두운 환경을 설정하는 게 더 작위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김현민: 전체적으로 영화가 빛을 활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초반에 성철이 아내의 침실 문을 열자 침대에 앉아있던 아내가 약을 먹고 스탠드를 꺼 버려요. 이후 어둠 속에 성철이 우두커니 서있는 장면이 너무 좋았거든요.

 

신동석: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굉장히 현실적인 영화고 장르적인 설정을 넣기도 어려운 영환데, 자연스러운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영화적 변화들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거든요. 영화적으로 무언가를 구현해내는 데 있어서 제약도 있고 해서 조심스러웠던 와중에 그런 장면이 하나 정도 있었던 것 같네요.

 

김현민: 정말 초반이잖아요, 그 장면이. 영화가 성철로 시작하기 때문에 성철이 초반에 관객이 이입돼서 따라갈 수 있는 주체잖아요.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아내를 바라보는 컷에서 성철이 가진 무게감이 확 느껴졌어요. 거기서 관객은 그가 가진 상실감을 짐작하게 되는 거죠. 현재를 살아가보려고 노력하는 것까지 느낄 수 있고요. 상실에 대처하는 자세에 있어서 성철과 아내 미숙의 대비가 크게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신동석: 미숙은 현재를 살아나가기 보다는 죽음을 느끼고 죽음과 함께 하면서 고통을 품을 수 있는 현재를 찾는다면, 성철은 현재를 유지시키면서 헤쳐 나가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대비를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이야기의 굴곡도 좋았어요. 처음에는 원만하게 나아가다가 진실을 밝혔을 때 급 커브한 후 상승해나가는 이야기의 굴곡이 있습니다. 과정 과정에서의 인물들의 감정선이 이야기의 굴곡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설계할 때는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동석: 저는 이야기의 뼈대를 세워 놓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으니 기현이 언젠가 사실을 고백할 거라는 걸 알았겠죠? 그러다 보니 저한테는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간의 감정을 쌓아가다가 그것 때문에 기현이 자기가 알고 있는 진실을 고백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의 굴곡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순서처럼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었던 거죠. 영화제에서 몇 차례 틀고 보니 어떤 분들은 이 영화가 2부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고, 또 어떤 분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인물을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처음부터 죽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타인이 어떤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생긴 이야기라 그런지 주제가 애도와 윤리, 이런 식으로 이야기 구도가 전환되면서 쪼개지기 보다는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김현민: 저에게는 엄청나게 느껴졌던 장면이 성철, 기현, 미숙 세 사람이 소풍을 가는 장면입니다. 그 행복의 전시가 너무 인위적이고, 나아가 가증스러워 보였다고 할까요? 이 상황이 말이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소풍 이후 혼자 남은 기현이 갑자기 구토를 하잖아요. 그때 저는 기현의 감정에 이입하면서 기현이 두 부부의 자식인 '은찬' 덕분에 살게 된 아이인데 너무 큰 짐을 진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소풍 이전에 기현이 자격증을 따고 과일을 사서 오잖아요. 미숙이 주스를 주고 거실로 안내하는데, 그때가 처음으로 이 집에서의 밝은 씬입니다. 그때부터 소풍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졌어요. 그 시퀀스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신동석: 기현이 미숙에게 사실을 고백하기 전까지는 기현이 자격증을 따고 미숙에게 과일을 사서 찾아가는 장면이 기현을 위한 거의 유일한 시퀀스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부부를 담는 데 할애됐기 때문에 그 장면들은 어떻게 보면 기현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처럼 느껴져요. 물론 제가 고집스럽게 이 영화를 최대한 부부의 관점으로 끌고 나가려 했지만, 기현의 시퀀스가 없다면 관객이 기현에 대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니까 서사적으로 용납할 수밖에 없는 시퀀스기도 했어요. 그때 기현이 이 부부에게 어떤 식으로든 사랑 받고 싶지 않았을까,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사실을 어떻게든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들 탓에 소풍까지 함께 가는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현민: 세 배우 모두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슬픔 속에 들어가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니까요. 특히 기현은 다른 인물들이나 관객을 교란시키는 비밀을 가진 캐릭터잖아요. 성유빈 배우와는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눴나요?

 

신동석: 기현 역할 같은 경우에는 이 사건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설명이 안 돼요. 그래서 유빈 배우에게 기현의 전사 같은 걸 많이 얘기해줄 필요가 있었어요. 기현이라는 인물이 다섯 살, 일곱 살 때부터 이런 일을 겪었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열일곱 살이 됐고, 여덟 살에는 이런 경험, 열 살에는 이런 경험을 했을 거다, 이런 걸 쭉 얘기해준 적이 있어요. 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을 수도 있는, 제가 구상한 기현의 이야기를요. 그리고 시나리오의 이 부분까지는 네가 죄책감이 전혀 없는 거야. 여기서부터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라면서 감정이 분별되는 지점들을 확실히 정리해서 설명해줬고 유빈 배우는 그에 따라 준비를 해줬습니다.

 

김현민: 이 부분이 기현의 감정의 분별점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기현이 처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던 지점이 있습니다. 기현과 성철이 자격증 공부 이야기를 하다가 기현이 성철에게 자신이 자격증을 따면 가게에서 쫓아낼 거냐고 묻는 장면입니다. 이 아이의 감정 상태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신동석: 그 장면에 대해서도 어떤 감정이어야 하는지 얘기했던 것 같아요. 이때부터 기현이 성철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김현민: 성철은 인테리어 일을 하는데, 인물의 직업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신동석: 부부가 같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플롯 상 같이 일하면서 마주쳐야 하기 때문에요. 그런 직업에 대해서 알아보니까 인테리어 가게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무, 회계, 실측은 부부 중에 여성이 하고, 공사 같은 경우는 남성이 하는 운영 방식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자료 조사를 하면서 보게 된 도배 장면이 되게 정서적으로 다가왔어요. 벽지를 거칠게 잡아 뜯을 때도 있고 매끈하게 발라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 모습이 상처를 치유하거나 죄책감을 씻어내는 행위로 보였습니다. 그걸 살려서 인물들을 표현하는 데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김현민: 그래서인지 안간힘을 다해 벽지를 뜯어내는 성철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해요. 뜯어내고 바라보고 낡은 것들을 들어내고. 이런 장면들이 굉장히 은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기현이 하얀색 액체를 휘저을 때도요. 이 아이가 속죄하고 구원을 꿈꾸고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좋았던 것 같아요.

 

신동석: 아쉬운 장면 중 하나예요. 저는 노력했던 것들이 무위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뭔가 어설프게 나왔습니다. 풀죽이 원을 그리다 흩어지는 게 좀 더 선명하게 보였어야 했는데…….

 

김현민: 제가 그러면 감독님의 의도를 잘 캐치하지 못했네요. 클로즈업으로 찍었으면 더 좋았을까요?

 

신동석: 모르겠어요. 풀죽 양이 더 많았어야 했나? 점성이 더 좋았어야 했나?(웃음)


 


 



관객: 영화를 보면서 왜 과거의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커다란 사건 이후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대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조각조각이라도 회상하거나 관객에게만이라도 진실을 보여주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 영화가 끝난 지금도 기현이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한 의도가 있나요?

 

신동석: 부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다 보니 과거 장면을 넣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부는 은찬의 죽음을 상상해낼 수 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잖아요. 물론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회상 장면을 넣었다면 시각적으로 이해하기는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래도 부부의 관점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숙도 기현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혼란이 많았을 거라고 느껴요. 그 다음 날 저녁에야 성철에게 얘기를 하고 경찰서로 가잖아요. 그런 미숙의 감정과 동일하게 관객이 혼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영화를 본 분들에게 기현의 고백 내용이 사실 같은지 아닌지 물었을 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사실인 것 같긴 하다는 답이 많이 나왔고, 제가 원했던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인 것 같습니다.

 

김현민: 회상 장면이 있었다면 그냥 너무나 편해졌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진실과 사실의 폭로나 해명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애도하고 위로해야 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는 영화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관객: 후반부에 세 명이 차를 타고 산으로 소풍 가는 장면이 있는데, 맨 처음에 룸미러로 기현 얼굴 한 번 보여주고 성철의 얼굴을 옆에서 보여주고 미숙의 얼굴을 보여준 후에 기현의 손과 가슴의 핀을 보여줍니다. 기현 같은 경우는 거울에 투영된 모습인데 성철과 미숙은 실제의 모습이 나옵니다. 저는 이게 기현의 죄책감이 반영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카메라워킹에는 어떤 의도가 있나요?

 

신동석: 부부가 기현을 보려면 룸미러로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일종의 부부의 시점 샷입니다. 기현 그 자체보다는 부부가 바라보는 기현을 보여주고 싶었고 부부가 은밀하게 기현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정면으로 기현을 바라볼 수 없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기현을 바로 비춘다면 그 복잡 미묘함이 사라지고 단순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찍은 것 같습니다. 기현의 옷핀은 성철과 기현의 연결고리입니다. 성철이 일하던 현장에서 옷핀을 사용하는 걸 보고 따라 한 거고, 손을 비춘 건 거칠어 보이는 손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고요.

 

김현민: 옷핀은 실제로 현장에서 보고 인상적이었던 단면을 쓴 건가요?

 

신동석: 취재를 하다가 인테리어 일 하는 분들이 그렇게 작업하는 걸 보고 그대로 썼습니다.

 

김현민: 그게 유독 인상에 남았던 이유가 뭘까요?

 

신동석: 일단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작업복마다 옷핀이 달려있고, 옷핀이 달린 작업복만 입는 사장님이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성철이 무뚝뚝해도 귀여운 모습을 갖고 있다는 걸 그걸 통해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관객: 제목은 어떻게 정한 건지 궁금합니다. 혹시 후보 제목이 더 있었나요?

 

신동석: 다른 후보를 고민해본 적이 있긴 합니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이 너무 딱딱하거나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국 더 좋은 제목을 못 찾았고요, 초고부터 썼던 제목이라 제가 그냥 계속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웃음) 영화의 설정을 알려주는 제목이기도 하고, 기현이 진정한 의미로 다시 살아남은 아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제목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되새김할 수 있는 제목이라고 자부하는데, 관객들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김현민: 영어 제목은 <Last Child>예요. 그 이유는 뭔가요?

 

신동석: <살아남은 아이>를 직역해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너무 서바이버(Survivor)’ 이런 식의 단어가 돼서 생존 경쟁에서 이겨낸 느낌이 들고 중의적인 느낌이 사라지더라고요. <Last Child>라고 하면 중의적인 설정을 좀 지킬 수가 있어요. 부부 곁은 지키는 아이라는 느낌도 있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이라는 느낌도 주고요.

 


관객: 부부가 기현에게 복수하려는 내용이 초고부터 있었나요?


신동석: 네, 있었습니다.

 

김현민: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단순히 목 조르는 것 대신 직업적 특성에 맞는 어떤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성철만의 방법이요.

 

신동석: 저도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철한테 그 행위가 계획적인 것인지 우발적인 것인지에 대해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적어도 그것에 대해서 성철도 불투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적으로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방식을 처음부터 고수했습니다.

 






김현민: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았는데요, 심정이 어떤가요?

 

신동석: 모르겠어요. 일단 너무 좋은 일이고요, 베를린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도 됩니다. 그런데 저는 좀 소박하게 기뻐하는 중이에요. 오늘처럼 이렇게 영화를 트는 것도 좋은 일이고 감사하거든요. 너무나 오랜만에 영화를 만든 거라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즐거웠어요. 게다가 여러 영화제에 가니 그것만으로도 즐거워요.

 

김현민: 오늘 끝까지 진지한 영화, 진지한 이야기와 함께 해준 관객 분들께 한 마디를 하면서 마무리 할까요?

 

신동석: 긴 영화, 긴 GV였는데 다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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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돌잔치 2017년 11 상영작 <연애담>



디돌잔치는 매달 마지막 화요일에 진행되는 인디스페이스의 프로그램으로, 1년 전 개봉한 독립영화의 1주년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스크린을 통해 그 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세요!


인디돌잔치 2017년 11월 상영작 <연애담>

● 일시: 2017년 11월 28일(화) 오후 7시 30분

● 관람료: 7,000원 / 후원회원, 멤버십 무료

● 인디토크 

   참석: 이현주 감독 | 배우 이상희, 류선영, 박근록, 박주환, 임성미, 한근섭 (참석자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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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7.11.24 00: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현장예매만 되는 건가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바캉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 단편2: 다섯 번째 계절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7 29일(토) 오후 2 상영 후

참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이태경 배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영선 감독, <바캉스> 이현주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기획전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의 두 번째 섹션, ‘다섯 번째 계절들’. 퀴어 영화라는 범주를 달지 않아도 웰메이드 영화라는 데에 고개를 끄덕일만한 극영화 네 편이 모였다. 진행을 맡은 김현민 영화 저널리스트와 기발한 소재와 영상미가 돋보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의 정지윤 감독, 이태경 배우, 잔잔한 여운이 감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장영선 감독 그리고 유쾌한 가족이야기 <바캉스>의 이현주 감독이 함께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진행): 감독님과 배우님도 오늘 함께 영화를 봤다. 어땠나?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이태경 배우: 몇 번을 봐도 똑같은 장면에서 웃음이 난다. 아쉬운 부분은 더더욱 아쉬운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저도 아쉬운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함께 상영한 다른 작품들도 재미있게 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영선 감독: 오랜만에 내 영화를 봤다. 다른 작품들도 재밌었다.



<바캉스> 이현주 감독: <바캉스>는 부모님의 집에서 찍은 영화다. 이 영화가 부모님이 내가 영화를 한다는 것을 본 첫 작업이었다. 여전히 잘 풀리지 않았던 부분, 고민했던 것들이 떠올라서 보기 괴로웠다.



진행: 이현주 감독의 경우 부모님이 사는 집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과수원도 부모님이 직접 운영하는 거라 들었다. 그 장소를 영화적 공간으로 선택한 배경이 궁금하다.



<바캉스> 이현주 감독: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다. 과수원이 애초에 설정되어있긴 했지만, 원래는 두 여성 커플이 아니라 결혼을 앞둔 남녀 커플의 이야기였다. 코미디적 요소를 추가하다가 캐릭터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부모님 댁에서 찍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서울 근교에서부터 여러 군데 장소를 물색해봤는데, 결국 제작비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웃음)



진행: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인상 깊게 봤다. 주인공 ‘진태’가 마흔다섯의 중년 남성이고 곧 결혼을 앞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으로 설정되어있다. 그런 캐릭터 설정의 배경이 궁금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영선 감독: 실제로 그럴 수 있나 의문이 들 수 있을법한 인물 설정을 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규범적으로 행동하게끔 여겨지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택했고, 그 중에서도 승리자들의 이야기로만 구성된 역사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것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야기가 더욱 명확해지지 않을까 했다.



진행: 나체를 본다는 설정을 하게 된 의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영선 감독: 아닐 것이라고 계속 외면해왔던 게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는 설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다. 갑자기 나체로 인물이 등장한다면 관객들도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진행: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는 두 주인공이 각기 다른 곳에서 동시에 화장을 하는 클로즈업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 장면을 첫 장면으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첫 장면을 두고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궁극적으로 영화의 제목을 잘 전달하려면 서로 닮은 얼굴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거울을 많이 보지 않나. 그런 점에서 착안하게 되었다.





진행: 이태경 배우는 처음 이 시나리오를 받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이태경 배우: 아주 아름다운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선택할 즈음에 로맨스 장르를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꼼꼼하게 읽었다기보다 가볍게 훑고 바로 하겠다고 정했다.



진행: 정지윤 감독은 이태경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뭔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정민’ 역의 안선영 배우는 전에 했던 작품부터 알고 지냈고 학교 선후배 사이기도 해서 어려움이 없었는데, ‘윤성’ 역을 캐스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많은 배우들에게서 프로필을 받았다. 이태경 배우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다. 미팅 때 윤성 역에 너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선택하게 되었다. 일주일 뒤 연락을 준다고 해놓고 놓칠까봐 바로 그날 저녁에 연락을 했다.



진행: 어떤 점이 그렇게 윤성 역에 딱 맞았나?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이미지가 딱 맞았고, 전작들을 다 찾아봤는데 연기도 좋았다. 그리고 안선영 배우와의 케미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진행: 이태경 배우의 블로그를 찾아봤다. 이 영화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더라.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이태경 배우: 그렇다. 일 년 동안 계절 별로 촬영을 이어간 것, 그리고 인물도 인물이지만 시나리오 자체에 너무 빠져버렸다. 감독님이 촬영 중간 중간에 영화의 진행 상황이나 가편집본 등을 자세히 일러주며 연기를 하는 데에 도움을 많이 줬다. 그리고 정말 많이 만났다. 이렇게 리딩을 많이 하는 작품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자주 만났다. 그러다보니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선영 배우와도 친해질 수 있었고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어쩌면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두 여성이 사랑하는 모습을 과연 잘 담아낼 수 있을까 겁이 많이 났다. 그래서 자꾸 만나고 싶었고 함께 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주연 배우가 우선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진행: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보면서 감독이 진태라는 인물에 대해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태에 이입해 영화를 보다보면 한편으로 그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마음에서 그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영선 감독: 외면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외면하게 되는 순간을 떠올렸다. 인생에서 모든 것은 결국 되돌아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망설이고 외면하고 모른 척 했던 것들을 피할 수 없는 지점이 어느 순간 온다. 만약 그 지점에서 잘못을 한다면 결코 끝나지 않고 계속 따라 다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그렇게 외면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 이야기는 그런 순간들의 연장선에서 가장 극단에 처한 인물을 그려놓고 항상 떠올리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진행: 그래서 진태에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웃음) 진태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감옥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영선 감독: 연속성의 이미지를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리셰일지도 모르겠으나 양쪽에 거울이 달린 엘리베이터를 선택하게 되었다. 





진행: <바캉스>는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영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퀴어물들은 다소 어둡고 무겁다. 그러나 이 영화는 대다수의 영화들과 구별되는 분위기를 띄고 있어서 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인 것 같다. 한편 이 영화는 가족 코미디 장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바캉스> 이현주 감독: 이 영화를 기획할 때 제목은 ‘바캉스’가 아니라 ‘휴가’였다. 서로 굉장히 결이 다르다. 장편 영화 중에는 경쾌한 가족 코미디가 많지만 단편에서는 별로 접해보지 못했다. 나도 계속 무겁고 우울한 영화만 해와서 이런 류의 밝고 경쾌한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 이런 느낌의 영화를 해본 적이 없다보니 작업을 하는 와중에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고 고민도 많이 했다.



진행: 개인적으로 코미디가 가장 만들기 어려운 장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배경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목소리가 어우러진다. 마치 카메라를 그냥 켜두고 배우들이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만들어낸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분명 그들의 연기가 큰 역할을 했을 장면일 텐데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



<바캉스> 이현주 감독: 이전에는 여러 인물이 나와서 부딪히는 장면을 찍어본 적이 없었다. 특히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은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힘들었다. 사실 마지막 장면의 경우 찍지 못할 것이라고 아예 버려두었다. 배우들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의 구상을 전달하는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꼭 찍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각자의 스케줄을 어렵게 조정해가며 완성했다.



진행: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는 관객들이 두 주인공의 계획을 언제 알게 되느냐가 매우 중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취한 방식은 두 인물의 계획을 관객들이 모두 알고 나서 이후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편집을 의도한 바가 궁금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은 현재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진행하기보다는 관객에게 하나씩 실마리를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며 사랑이 확인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후의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했다. 편집의 경우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과 편집 기사님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 어떤 방식이 더 재미있을지 고민했다. 촬영이 계절을 반영해 오랜 시간에 거쳐 진행되었기 때문에 틈틈이 어떤 방식으로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진행: 와중에 더욱 돋보인 건 바로 이태경 배우의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두 주인공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또 합의된 것 같아 보이지만 한편으로 이별을 암시하나 싶은 긴장감이 서려있기도 하다. 특히 웨딩드레스를 입은 정민을 바라보는 연기를 할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이태경 배우: 그 장면을 찍는 날 아침부터 감정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윤성이 귀여운 게, 정민이 뭘 제안하면 싫다고 거절하면서도 또 혹해서 따라간다. 분명히 윤성에겐 힘든 일이었겠지만 정민을 사랑하기 때문에 따라가 주는 것이었을 테다. 



진행: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서 정말 중요한 장면은 업는 행위가 나오는 지점일 것이다. 상대를 업고 동네를 걸어가는 어린 진태의 모습이 물리적으로도 매우 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영선 감독: 그 장면은 진태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는 장면이다. 마음을 고백하지는 못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업어주겠다고 말하며 걷는 장면인데, 아무래도 그 마음의 깊이를 표현하려면 물리적으로도 길어야 전달이 잘 될 것이라 판단했다. 사실 더 길었는데 주변에서 너무 말이 많아서 조금 줄인 것이다.



관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너무 재밌게 봤다. 마지막 장면에 인물들을 모두 그림자로 처리하는데, 어떻게 그러한 연출을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끝까지 고민이 많았다. 그 장면이 없어도 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꼭 넣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그 장면을 꼭 실제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환상의 연장선상에 위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 인물들을 실루엣으로 처리하면 더욱 모호해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운이 오래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알아챈 분들도 있겠지만 윤성도 임신을 한 것처럼 연출이 되었다.



관객: <바캉스> ‘영미’의 직업이 궁금하다.



<바캉스> 이현주 감독: ‘수영’은 선생님이고 영미는 뚜렷한 직업보다는 수영과의 관계, 성격만 구상했던 것 같다. 영미로 바뀌기 전의 경우에는 흔히 영화에 나오는 직업 없는 남성 캐릭터의 전형으로 설정되어있었다. 





관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의 윤성은 이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이태경 배우: 정민과 다르게 줄곧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정민과 계획을 세웠어도 쉽게 남성들에게 마음을 열지는 못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저도 윤성의 결혼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관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의 소재가 굉장히 특이한데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소재와 현재의 이야기만 있는 초고를 같이 영화하는 친구에게 건네받았다. 처음엔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였으나 소재만큼은 정말 좋았고 끝까지 밀어붙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과거의 이야기를 삽입한다면 이후의 이야기들을 조금 더 납득할 수 있게 푸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각색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관객: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진태는 이후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영선 감독: 아마 진태는 그 학생에 대한 마음을 스스로 인정해야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 학생 역을 맡은 배우에게 선생님의 마음을 이미 알아챈 듯이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자세히 보면 살짝 웃음을 짓는 듯하다. 물론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상황은 매우 어렵게 진행되겠지만, 암튼 그렇다.



관객: <바캉스>에서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캉스> 이현주 감독: “아빠, 이 아저씨가 엄마 친구야? 영미도 내 친구야!”(웃음) 아마 가장 귀여운 커밍아웃이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장면은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이다. 각자 갈등관계를 지니고 있는 인물들을 한 프레임 안에 모두 담는 게 무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오랜 시간 함께한 가족들이 쉽게 해체될 것이란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들을 꼭 한 번에 다 담고 싶었다.


 

관객: 아무래도 결혼은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의 정민은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고 그 부분을 많은 분들이 지적하기도 한다. 사기결혼이다, 이용을 당했다 등. 작업을 하는 도중에 안선영 배우가 똑같이 물어보기도 했다. 정민은 이 남성을 사랑하는 것이냐고. 그때 나는 사랑해달라고 말했다. 윤성은 처음부터 동성애자였지만 정민은 윤성을 만나고 동성에게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니까. 물론 많은 분들이 불편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이태경 배우님께 질문이 있다. 저의 경우,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엄청 속이 상할 것 같은데, 배우님이라면 어땠을 것 같은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이태경 배우: 사실 제가 윤성과 성격이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공감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마 힘들어하면서도 정민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았을까.




 

독특한 소재와 분위기가 인상적인 섹션이었다. 이번 기획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 영화들이 한국 퀴어 영화에 어떤 자극이 되길 바란다.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인디토크를 기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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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미경의 작은 우주 '인디돌잔치' <우리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6 27일(화)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윤가은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누구나 한 번 거치게 된다. 그러나 그 세계가 어떠했는지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억은 마치 편집 전의 영상조각들 같아서 어떻게 편집하는가에 따라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계는 종종 너무 낙관적으로 그려지거나 비관적으로 그려진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이러한 아이들의 세계에 관한 현미경이다. 전체를 볼 수 없지만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들>이 개봉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윤가은 감독 본인의 영화가 이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들어보았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김): 감독님께 오늘 참여하게 된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윤가은 감독(이하 윤): 이 영화를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았습니다. 개봉 전 시사회 이후에 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아직 기억해주시고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저도 오늘 이렇게 많이 찾아오실 줄 몰랐는데, 오히려 제가 더 감동받은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보라고 많이 권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본인의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 두려웠나요?



윤: 이 영화를 편집할 때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게 좋았을 텐데’ 같은 후회만 남더라고요. 그리고 관객 분들이 좋아해줄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김: 오늘은 어땠나요?



윤: 이 영화의 조감독이자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이 와줬는데 계속 제대로 안 된, 실수한 것만 보였습니다.



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제일 거슬렸던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윤: 모두 밤샘 촬영을 해서 정신없던 장면인데, 사랑분식에 다들 앉아서 학원을 보내니 마니 하는 장면이 있어요. 거기에서 할머니가 지아 소풍날 싸갈 김밥을 받아가야 하는데, 그 김밥 케이스에 아무것도 안 들어있었어요. 무게감이 없는 게 너무 잘 보여서 부끄러웠습니다. 관객들이 웃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속에서 봤어요.



김: 지난 1년의 시간이 감독님에겐 어떤 시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윤: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 정식 개봉을 할 거라는 기대가 없었습니다. 해외에서 상을 타게 되면 기념 삼아서 1-2주 정도 상영해야겠다는 생각정도만 가지고 있었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찍을 때는 스태프들과 좋은 기억을 가져간다는 의의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연찮게 좋은 배급사를 만나 개봉을 한 덕에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김: 이 영화와 함께 영화제를 통해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습니다. 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윤: 슬로베니아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하는 영화제에 초청된 적이 있어요. 그 곳에서 만난 관객분이 “이거 내 이야기에요”라고 말씀해주실 때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딜 가나 어린이 관객을 만나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어린이 관객들이 있는 곳에서 질의응답을 하면 엉뚱한 질문들이 나와요. “한국에서도 ‘포켓몬 고’ 하나요?” 같은 질문이 나와서 그 시간 내내 관객들과 게임 이야기만 한 경우도 있어요.





김: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실팔찌, 봉숭아, 김치볶음밥 같은 다양한 오브제들이 떠올랐습니다. 감독님에게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윤: 쉽게 찍은 장면이 없어서 그런지 장면보다는 그걸 찍었던 현장이 떠올라요. 그럼에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김치볶음밥 장면이에요. 그 장면은 정말 제가 한 게 없어요. 약간의 아동학대를 했어요.(웃음) 배우들의 저녁을 굶긴 상태에서 찍은 장면이거든요. 연출은 윤이한테 “지아 누나가 손님이니까 지아 누나가 먼저 먹는 거야. 그 다음에 네가 다 먹을 수 있어.”라고 이야기 한 것 밖에 없어요. 강민준 배우는 그 전까지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나있던 상황인데, 미술감독님이 해준 김치볶음밥이 정말 맛있었나 봐요. 배우들이 정말 맛있게 먹더라고요. 그래서 인서트로 들어갈 2컷만 찍고 나머지는 롱테이크로 돌린 것 중에서 편집자가 골라낸 장면으로 만든 장면이에요. 이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거의 다 애드리브였어요. 윤이가 “우리 엄마가 이런 식으로 김치볶음밥을 해준다”라고 입을 트기 시작하니까 방언 터지듯이 막 대사들이 나오더라고요. 배우들이 만들어낸 장면이에요. 그래서인지 관객 분들이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해주시고, 저도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아져요. 학원에서 싸우는 장면을 제외한 아이들이 싸우는 장면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어요. 싸우는 장면을 찍어야 할 때마다 상황을 주고 배우들이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게 했어요. 그랬더니 “시치미 떼지 마”라고 하고 “시치미는 너잖아” 같은 말도 안 되는 대사들이 나오는데, 말이 되더라고요.



김: 이런 연출법에 장단점이 있을 거 같아요.



윤: 배우들이 즉흥연기를 할 때 가장 재미있어 한 건 저였어요. 아이들이 자기 말을 하는 게 재밌어서 5분 넘게 컷을 외치지 않은 적도 많았어요. 상시 투 캠을 돌렸는데, 그 때마다 촬영감독님 허리가 나가는 줄도 모르고 지켜봤어요. 투 캠을 돌린 이유는 한 배우가 좋은 연기를 하면 상대도 좋은 연기가 나오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이렇게 찍으면 정확한 조명과 동선을 디자인할 수 없어서 앵글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그걸 커버하기 위해서 스태프 분들이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김: 배우들을 조금 독특한 방법으로 캐스팅했어요.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요?



윤: 아역배우들을 오디션하다보면 조금 무서워요. 20분 동안 개인기를 하고 주어진 상황을 연기하는데, 감정이 격한 장면이 들어가 있으면 아이들이 막 웃었다가 울었다가 해요. 혼자 원맨쇼를 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상황이 무섭고 좀 폭력적인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1차에는 1대1로 저와 그냥 수다를 떨었어요. 그러다보면 이야기가 되는 친구들을 만나요. 예를 들면 웃기려고 한 이야기에 굳이 안 웃어주더라도 반응이 편한 친구들이 있어요. 리액션이 있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죠. 그 다음에 연극놀이 같이 즉흥극을 했어요. 그러면 뽑혀야겠다는 생각 없이 다들 즐기면서 연기를 해요. 자기 행동과 말로 솔직하게 반응하는 배우를 찾아서 캐스팅을 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다 뽑고 나서 보니까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친구들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을 데리고 리허설을 많이 거쳤어요. 저와 그 친구들 모두 처음이니까 함께 만들어가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어간 것 같아요.



김: 이 영화의 오프닝을 굉장히 좋아해요. 아이들이 피구를 하기 위해서 한 명 한 명 편을 뽑아가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피구를 아주 싫어했어요. 플레이어들을 무대 위로 밀어 넣고 공을 맞춰서 나가라고 하는 게 아주 굴욕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보며 피구를 사용해서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 리뷰 등에서 피구에 대해 정말 다양한 해석이 있더라고요. 저 어릴 때 인기 종목이 피구였어요. 요즘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피구는 여전히 인기 종목이더라고요. 자율 체육을 하면 보통 피구를 한대요. 단순한 룰을 가진 게임 속에서 굉장히 많은 감정의 교환과 권력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 안에 굉장히 치열한 아이들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피구를 사용했어요.



관객: 아이들 이야기를 쓰기 위해 어떤 조사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윤: 처음엔 저의 자전적인 부분을 많이 가지고 왔어요. 원래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2년 동안 시나리오를 잡고 있으면서 제가 설정한 부분은 다 날아갔어요. 그렇다보니 제가 저를 믿을 수 없어서 인터넷으로 조사를 했어요. 초등학생들 가는 카페에 가입하고 채팅도 많이 했어요. 놀랍게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네이버 지식인 같은 곳에 자신이 겪은 일을 질문으로 올리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거의 A4 한 장 분량으로 상세하게 서술을 해놓은 경우도 여러 번 봤어요. 그 사건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이 친구들한테는 우주 같은 일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2년을 보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넣기도 했어요. 그렇다보니 이 시나리오는 저 혼자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관객: 오랜만에 다시 <우리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전에는 안 보였는데 오늘 다시 보니 선이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왜 들어갔는지 굉장히 궁금하더라고요. 



윤: 할아버지 이야기는 제가 한편으로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서브플롯인데요, 원래는 더 많은 장면이 있는데 찍고서 뺀 이야기에요. 저는 선이와 지아가 함께 미워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만나고 반복하는 게 처음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선이 아빠는 그 대상이 아버지였을 거고, 그에겐 이 관계가 평생의 숙제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애매한 관계였을 거 같아요. 그래서 선이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고 그것에 대한 반영으로 무엇을 느끼길 바란 거 같아요.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풀지 못하고 계속 안고 간다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구나 알길 바란 것 같아요. 원래는 선이가 아버지의 괴로움을 보고 그와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한 장치로 넣었어요. 그런데 뭔가 착 달라붙질 않아서 편집 때 뺐어요. 아쉬움이 남는 서브플롯이에요.





관객: 보라를 비롯한 세 명의 아이들에 대해 어떤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선이가 밤에 봉숭아를 혼자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는지 궁금해요.



윤: 세 명의 아이들 다 사랑해요. 그렇지만 보라는...너무 나빠요.(웃음) 원래 이서연 배우가 엄청 착해요. 맏이처럼 계속 무언가를 챙겨요. 자기 손이 안 가면 안 되는 스타일이거든요. 연기를 너무 잘했어요. 어떻게 저런 눈빛으로, 저런 재수 없는 대사를 막 하는지.(웃음) 원래 시나리오 초고는 선이에게 집중된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지아의 서브플롯이 있어서 다른 캐릭터들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탈고를 하면서 다 빠지고 선이의 이야기로 집중되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스태프나 관객 분들로부터 “보라는 어떻게 할 건가요?”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어요. 관객 분 중에 한 분이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보라에 대한 단죄를 요구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제가 “사실 보라에게도 아픔이 있습니다”라고 변명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선이와 보라의 모습이 둘 다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들었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해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근데 보라는 그런 부분이 표현이 잘 안 된 거 같아요. 부모님의 아주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가치들을 내면화해서 살아온 아픔이 있는 아이인데 정작 이서현 배우한테 돌아오는 질문은 “악역을 한 소감은?” 같은 질문이었어요. 그래서 배우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 <우리들>에 대한 속편을 만들어야 한다면 보라외전을 만들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저도 봉숭아 장면 굉장히 좋아해요. 최수인 배우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그런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는 좀 더 서늘한 장면이었어요. 선이의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지아와의 관계를 극복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해보는, 그런 장면이 되어서 좋아합니다. 선이가 베란다 턱에 앉아 있잖아요. 그래서 아까 보면서는 아픈 곳에 오래앉아 있었구나 하는 생각, 모기가 너무 많았던 기억이 났어요.



관객: 저는 오늘 영화를 처음 봤어요. 선이가 돈을 가져다가 선물을 사는데 그 선물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윤: 물어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선물을 거절당하는 장면과 엄마한테 혼나는 장면 사이에 장면 하나가 있었는데 현장에서 바로 삭제를 했어요. 선이가 혼자 그걸 풀어보고 다시 닫는 장면이었습니다. 근데 엄마한테 혼나는 장면이랑 겹치는 것 같더라고요. 선물을 뭘 살까 연출부 회의를 통해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오갔어요. 되게 어렵게 결정을 했는데 사용을 안 했죠. 원래 선물은 헤드폰이었어요. 당시의 선이 생각으로는 비싼 것을 사주면 지아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거죠. 지아는 항상 헤드폰을 쓰고 다니잖아요. 영국국기가 그려진 헤드폰이었어요. 나중에 보니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 빼게 되었어요.



관객: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매니큐어가 소재로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아무도 모른다>(2004)가 생각나더라고요. 레퍼런스한 영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럼 언제 놀아”라는 대사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윤: <아무도 모른다>는 저의 인생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들 때 특별한 레퍼런스로 잡기는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많고 특징도 전부 달라요. 카메라 워크도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더라고요. 제 영화는 말이 엄청 많고 사건이 쌓여서 감정이 올라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를 레퍼런스로 삼긴 어려웠어요. 참고할 수 있는 영화는 다 참고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다르덴 형제나 안드레아 아놀드의 영화를 많이 참고 한 것 같아요.


“그럼 언제 놀아”는 제가 이것저것 적어놓은 노트에서 가져왔어요. 제 지인 분을 통해서 실제로 들은 말이에요. 제 지인의 아이가 유치원에서 맨날 맞고 오기에 가서 그 친구를 때리고 했대요. 그래도 맨날 맞고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의기양양해서 집에 오더래요. 드디어 그 친구를 때린 거죠. 근데 “걔도 때렸어”라고 말하더래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고 하니 “같이 놀았어”라고 대답한 거죠. 영화에서 나온 거랑 똑같이요. 그러면서 ‘왜 부모님은 자꾸 때리라고 하지? 같이 놀아야 되는데’ 식으로 되게 한심하게 쳐다보더래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20대 초반이었는데 당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던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되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미움을 가지고 있는 게 용서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미움을 멈추고 내가 잘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써놓은 거였는데 딱 윤이가 할 법한 대사겠구나 해서 넣었어요.



관객: 영화를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윤: 최근에 드는 생각은 관객을 만나고 싶어서 만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더 격렬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부드러운 터치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살다보면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미워하고 오해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관계로 남는 사람들이 생기잖아요. 그런 과정을 계속 겪다보니까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이야기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고 싶어서 만든 거 같아요. 저는 당시에 선이처럼 행동하지 못했어요. 어떤 관계가 부서지면 회복하려고 했지만 그냥 그러다가 끝났어요. 그렇게 영영 회복할 수 없는 관계들을 많이 지나왔어요. 하지만 선이는 저랑 다른 사람이니까 현실에서 용기를 가져주길 바랐어요. 그리고 그런 선이를 보면서 제가 스스로 느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런 마음들과 결심들을 관객 분들과 나누고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김: 감독님이 요새 제일 비중을 두고 있는 일은 뭔가요?



윤: 그동안 영화를 정말 하나도 안 봤어요. 이제 이 영화와 멀어지고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새 작품에 대한 초고는 나왔는데 이 길이 아닌 거 같아서 새롭게 고쳐보려고 하고 있어요. 사람이 이 정도 나이를 먹으면 바뀔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제가 가진 것 내에서 어떤 걸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 감독님의 새로운 이야기가 굉장히 기대됩니다.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늘 관객 분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윤: 영화를 보는 거 자체가 하나의 일인데 이렇게 극장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꼭 좋은 영화 만들어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우리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아이들이 멈춰서 어떤 움직임도 없이 카메라에 온전히 잡히는 순간들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선이와 지아는 딱 1년의 시간만큼 자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본인이 견뎌야 하는 1인분의 총량이 늘었을 것이다.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총량이 늘어난 만큼 동네는 작게 느껴질 것이고 그들이 느끼던 세계의 스케일은 1년만큼 작아졌을 것이다. 아이들이 멈춰서 어떤 움직임도 없이 카메라에 온전히 잡히는 순간들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보고 있을 대상이다. 대신 그들이 그것을 보고 있던 모습만이 담겨있다. 훗날 그들도 우리들처럼 그 대상을 궁금해 할 날이 오길 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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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밖으로 나온 노래  <위켄즈>  디토크 기


일시: 2016년 12월 24일(토)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이동하 감독 | G_Voice 현식, 샌더, 재우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홍수지 님의 글입니다.


<위켄즈>는 국내 최초의 게이코러스 'G_Vocie'의 이야기와 그들 각자의 사정을 세심하게 담은 영화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위켄즈> 상영 후, G_Voice의 공연이 있었다. 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온, 레인보우 페미니스트 비혼여성 코러스 ‘아는 언니들’의 공연과 마지막으로 이어진 두 단체의 합창이 상영관을 가득 메웠다. 공연으로 훈훈하게 달궈진 분위기는 인디토크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날 인디토크는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가 진행을 맡고, 이동하 감독과 G_Voice의 현식, 샌더, 재우가 게스트로 참석하였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김): 이전에 영화를 몇 번 봤고 지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새롭게 편집된 개봉 버전은 처음 본다. 뒷부분을 많이 만졌다고 들었는데, 훨씬 매끄럽고 밝아진 느낌이 든다.


이동하 감독(이하 이): 뒤쪽에 무거운 내용이 많이 몰려있어서 좀 더 밝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김: 영화를 보다 보면 매주 일요일 연습을 나가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어떤 분은 ‘썸 타는 나쁜 남자’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현식: 매주 종교 활동을 하러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종교 활동에 어떠한 신념이 필요하다면, G_Voice에 매주 나가는 것은 자기와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다. 모임에 빠진다고 해서 누가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나온다고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요일마저 쉬지 못하고 몇 년씩 매번 나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연습도 연습이지만, 마치고 나면 새벽까지 술을 마셔야 한다.(웃음)  


김: 영화를 보고 감독님께 “제가 크리스천인데, G_Voice가 교회랑 비슷한 것 같다”라는 말씀을 드렸다. 가기는 싫은데 가고나면 무조건 좋아지고 또 사람들과 만나는 게 좋다. 샌더 님은 영화를 찍을 때 단장이었고 지금은 현식 님이 단장이다. 단장이 아닌 단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어떠한가?


샌더: 너무 좋다.(웃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요즘은 즐거운 마음으로 연습에 나간다.


김: 재우 님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나는 장면들이 있었다. 음악감독님은 어떤 노래를 제일 좋아하는지?


재우: 다 좋은데, 단원들이 좋아해주는 노래를 따라가게 된다.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북아현동 가는 길’ 같은 노래들은 감정을 많이 이입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계속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김: 가사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생동감 있는 이유도 그것인 것 같다. 가식적이거나 미화하는 느낌이 없었는데, 감독님이 이 단체에 오래 있었고 또 사랑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이: 처음에는 원래 10주년 공연을 기록하기 위해 찍기 시작했다. 보통 정기공연을 앞두고 다들 예민해지기 때문에 많이들 싸운다. 그런 과정들을 찍고 싶었는데,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니까 단원들이 아무도 화를 안내고 싸우지도 않았다.(웃음) 10주년 공연이 무사히 잘 끝나는 바람에 2년 정도 더 걸렸다. 원래 준비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구성이 되고, 추가로 촬영을 더 해야겠다고 결정했던 것이 가장 큰 일이었던 것 같다.


김: 지난번 서울독립영화제 GV 때는 세 명의 G_Voice 단원 분들이 오셨는데,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을 “내 얼굴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라고 똑같이 말씀하셨다.(웃음) 현식 님은 영화를 본 소감이 어떠한지?


현식: 이전에 내부적으로 상영을 한 번 했다. 출연동의를 받을 때 나는 다 된다고 했는데, 영화에 내가 나오지 않았다.(웃음) 그런데 단장이 됐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몇 장면 넣어주셨더라.(웃음) 아마 여러분은 영화에서 나를 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


이: 연령별, 캐릭터별로 인물을 추렸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현식 님이 속해있는 연령대에서 현식 님의 미모가 밀렸을 것이다.(웃음) 그때 현식 님이 바빠서 연습에 잘 못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샌더: 당시에 현식 님은 신입 단원이었기 때문에 동의를 얻고 출연을 하는 과정이 어려울까봐 배려를 한 것 같다.


재우: 현식 님이 10주년 공연 연습에 잘 안 왔다. 이렇게 열심히 안 나올 거면 공연에서 빠지라고 말도 했었던 것 같다.(웃음)


김: 샌더 님은 영화 속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가장 많이 털어놓으신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나니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샌더: 찍으면서 편해졌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가 개봉할 무렵까진 편안했다. 그런데 막상 개봉을 하니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사적인 이야기가 이렇게 상영되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어머니 교회 지인들이 혹시 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개봉하면 숨어 다니려는 생각도 했다.



김: 어머니는 영화를 보셨는지?


샌더: 개봉하신지도 모를 것 같다. 그래도 보시면 좋을 것 같다.


김: 다큐멘터리이기는 하지만, 뮤지컬 같은 장면이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다. 그 부분에서 연기지도나 캐스팅 과정이 있었다면?


재우: 다들 다른 일상이 있는 사람들이다. 일정이 갑자기 잡히면 그 때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일단 다 모인다. 근데 어설프게 하면 감독님이 “왜 연기가 그것밖에 안 되느냐”고 나무라고, 연기를 좀 하려고 하면 “왜 자꾸 오바를 하느냐”고 했다.(웃음) 


이: 급하게 소집된 것은 맞고, 기획은 이전부터 되어있었다. 노래 몇 곡을 뮤직비디오나 뮤지컬처럼 연출하려고 했다. 프로가 아니어서 쉽지 않은 과정이었는데, 다들 끼들이 많아서 쉽게 촬영한 것 같다. 


관객: G_Voice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이다. 시사회 때 봤던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힘든 일을 겪은 배에 같이 타도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봤다.


현식: 순탄치 않을 거다. 영화가 다가 아니다.(웃음)


관객: 영화 속 노래를 선정한 기준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 좋은 노래가 많아서 고르는 데도 오래 걸렸다. 음원과 비디오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골라야 했고 극의 흐름에 맞는 곡이어야 했다. 서정적인 곡들을 다 쓰면 영화가 너무 무거워질까봐 균형을 맞췄다.

 


관객: 다른 퀴어 커뮤니티에도 활동의 역사가 있다. 그것들이 기록되지 못하고, 분명히 있는데 없는 이야기가 된 것을 다들 안타깝게 생각할 것 같다. G_Voice가 이렇게 기록 되었다는 것에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이: G_Voice도 지금까지는 정기공연 위주로 기록을 해왔고 이번에 특별히 이렇게 기록하게 된 것이다.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소수자의 삶은 사는 것 자체가 운동이다. 그런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소중하지만,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에게도 소중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 음반을 구매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재우: 상업적인 음반은 따로 없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영화에 나왔던 음악을 모아 편집한 CD를 판매하고 있다. ‘종로의 기적’과 'Congratulation'은 검색하면 음원이 있다. 아마추어이다 보니까 자랑스럽게 보이기는 민망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100번 정도 들어주시면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웃음)


김: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현식: <위켄즈>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 같기도 하다.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성애자든 성소수자든 영화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분들에게 홍보 부탁드린다.


샌더: 개인적으로 거의 이별하는 느낌으로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출연에 동의하기까지 많은 용기를 냈다. 다들 전문 배우가 아니라 촬영하는 데 힘들었을 것이다. 이 고생들이 헛되지 않게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다. 


재우: 연말이라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들이 많이 개봉했다. <라라랜드> 같은 경우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씽>은 꿈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코알라의 이야기, <위켄즈>는 꿈을 나누기위해 노력하는 G_Voice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즐겁게 본 이 영화를 생각하면서 힘내셨으면 좋겠다.


이: 연말에는 혼자 지내지 말고 누군가와 같이 보내셨음 좋겠다. 시간이 남으면 다시 한 번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매주 일요일, 자신, 그리고 단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꼬박꼬박 연습에 나간다는 G_Voice 단원들의 원동력은 아마도 자신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더욱 멀리까지 들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감추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만드는 G_Voice의 에너지는 영화 너머의 관객들을 웃기고 또 감동하게 한다. 이동하 감독의 말처럼 살아가는 것이 운동인 그들의 모습은 너무 과장되지도, 생략되지도 않은 채 <위켄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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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출중한 여자들  멀티채널 시대의 독립영화 <출중한 여자>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1월 12일(토) 오후 8 상영 후

참석: 박현진, 전효정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세리 님의 글입니다.


<출중한 여자> 상영 후 박현진, 전효정 두 감독과 대담을 가졌다. 패션 잡지 ‘싱글즈’ 에디터 ‘우희’의 발랄하고 솔직한 일상. 작품 캐릭터에서 여성 담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여성을 말한다. 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사태를 비롯해 여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진행):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분량이 짧은 콘텐츠에 저도 익숙해졌는지 그 정도의 길이와 분량이 딱 좋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웹드라마가 잡지 ‘싱글즈’ 10주년 기획이라고 들었어요. 주인공의 직업부터 여러 가지 제약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박현진 감독(이하 박): 저희가 컨셉을 잡아서 5개 에피소드로 묶어보자 생각을 했고요, 싱글즈 측에서 주인공이 꼭 에디터여야 한다는 제약을 걸지는 않았어요. 요즘 셀럽 문화 같은 게 SNS를 통해 공유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여성 캐릭터를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윤성호 감독님과 백승빈 감독님까지 넷이 모여서 중구난방으로 이야기를 던졌어요. 에디터가 아니어도 되지만, 나쁘지 않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죠. 윤성호 감독님과 저는 전 시리즈인 <출출한 여자>를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음식과 같은 공통의 주제가 이 작품을 관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전에는 '출출’, ‘결핍'이었다면 이번에는 '출중'이잖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알고 보면 꽉 차있지는 않은 모습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진행: 주인공이 29살이더라고요. 로맨스물을 볼 때 여자 주인공이 항상 29살이어서 못마땅했어요.(웃음) 너무 어려요. 


박: 저도 29살로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 전형성에서 출발을 해보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더 많은 나이를 설정하기를 좋아하지만, 10주년 기념인 것도 있고 스물아홉이 아직은 기대가 더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능성이 많은 시기이고 자신의 욕망을 전시하고 싶어할 나이죠. 그래서 상징적으로 29살이라는 나이를, 조금 뻔하지만, 큰 불만 없이 설정하게 된 것 같아요.


진행: 판타지적인 부분, 2-30대 여성들이 동경할만한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은근 빈정대는 스킬이 탁월하다고 느꼈어요. 그 톤을 굉장히 잘 잡은 것 같아요. 노하우나 어려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전효정 감독(이하 전): 아까 박 감독님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출중한 여자>는 안이 조금 공허한 대신 겉이 화려하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캐릭터를 구축하고부터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기획 회의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진행: 천우희 배우는 처음부터 캐스팅이 되어 있었나요? 


박: 저희가 1순위로 원했던 배우였어요. 싱글즈나 제작사로부터 다른 배우들을 추천 받기도 했지만, 그대로 진행이 되어서 참 좋았죠.


진행: 역할과 찰떡궁합인 것 같아요. 이전만 해도 진지한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런 트렌디한 이미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박: 본인도 연기로는 인정 받았지만, 성격 강한 캐릭터만 하다 보니 아쉬움이 컸던 것 같아요. 웹드라마는 들여야 하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다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아서 즐겁게 작업했어요. 


진행: <출출한 여자>, <출중한 여자> 외에도 다른 웹드라마 작업을 하신 바 있어요. 웹드라마의 장점이 무엇인가요? 


박: 웹드라마의 좋은 점은 진행이 빠르다는 것이에요.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부터 투자, 캐스팅까지 지난한 과정이 많잖아요. 따끈따끈한 이슈나 기획 회의의 즐거웠던 기운을 바로 가져가서 제작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영화는 사그라드는 부분이 있어요. 영화에 맞는 이야기가 있을 테죠. 웹드라마에 맞는 이야기들은 빠른 시간 안에 완결되어야 해요. 영화만 바라보기에는 틈틈이 비는 시간이 꽤 길어요. 웹드라마는 빠르게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 좋고 피드백도 빨리 오는 즐거움이 커요. 


전: 저도 박 감독님 말씀처럼 반응이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게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진행: 아쉬운 점이나 한계는 없나요?


전: 러닝타임을 더 늘리지 말자는 엄한 룰이 있었어요. 


진행: 사실은 로맨스 장르야말로 가장 트렌디하잖아요. 영화는 제작 기간이 너무 길고, TV 드라마보다도 오히려 웹드라마가 유행을 온전히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출중한 여자> 는 직장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어떤 것들을 담으려고 노력했나요? 


박: 주인공은 잡지 에디터이고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어쨌든 직장인이에요. 월급 받는 직장인이니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마스터셰프 코리아’를 패러디 한 '미스터셰프 코리아’가 나와요. 한창 케이블 채널에 출연하던 사람들이 SNS를 통해 스타가 되기도 했죠. 방송에도 전문가가 필요해지기 시작했고 그런 전문가들이 일종의 셀럽의 권력을 갖게 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무렵이었죠. 에디터는 동경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뭐 하나만 제대로 하면 유명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느끼게 하고요. 열려 있는 무대라고 생각을 하죠. 요새 다들 재능 있고 외모도 출중하잖아요. 요즘 친구들이 그런 매체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욕망을 다뤄보고자 했던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전: 수난을 당하고 엎어져도 신나게 다시 일어나 맛있는 것 먹으며 어깨 춤을 출 수 있는, 그런 재미있는 여성 캐릭터가 되었으면 했어요. 이것이 <출중한 여자>의 장점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진행: 연애의 부분에 있어 여성들의 로망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해요. 1화에 안재홍 배우가 나와서 10주년 기념으로 고백을 하고 천우희 배우 얼굴에 손을 갖다 대잖아요. 그런 것들이 약간 로망이지 않나요?(웃음) 


박: 그런 것 또한 그 나이 대를 전형적으로 그리는 요소이기는 하잖아요.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가 일궈온 것들을 굳이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10년 뒤에도 혼자이면 그때는 결혼하자, 같은 흔한 말들을 일부러 넣기도 했고요. 안재홍 배우 말고 다른 배우들도 그 역할 후보에 있었어요. 스케줄 문제도 있었지만, 29살의 여성 입장에서 당장 결혼하기는 싫은데, 놓친다면 후회할 스타일은 안재홍이 최고다(웃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재홍 배우에게 표를 던졌어요. 덕분에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진행: 박 감독님은 <좋아해줘>(2015)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드라마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뭔가요? 


박: TV 드라마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너무 좋은 퀄리티의 무료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어요. 요즘은 전형적이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반면 영화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더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인 것 같고요. 조금 덜 전형적인 부분으로 가자는 설득을 해야 할 때 어려워요. 최대한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해요. 로맨틱 코미디는 그 시대의 일하는 여성을 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려고 합니다.

 

진행: 공감합니다. 로맨틱 코미디만큼 유행을 잘 담는 장르도 없다고 생각해요. 왜 제대로 현실을 그린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목말라 있었는데, 오히려 웹드라마를 통해 그런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 여성들의 애환과 실질적인 고민들이 잘 드러나 있고요. 그런 캐릭터들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전: 주변을 둘러보았던 것 같아요. 학자금 대출, 다 그만 두고 여행 가고 싶어도 다음 달 카드 값 때문에 일을 하는 그런 부분들을 기억하거나 메모를 해둬요.

 

진행: 이 시리즈의 남성 캐릭터들은 찌질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여성 입장에서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일부러 그렇게 남성 캐릭터를 설정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그려졌네요. 우리가 만난 남성들이 여기까지인 것으로. 더 좋은 남자들을 만났으면 좋겠네요.(웃음)


진행: 감독님 두 분은 여성이고, 나머지 감독 두 분은 남성이에요. 이 작품에서 보통의 남성은 반박할 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윤성호 감독님이 기획하신 웹드라마를 보면 전반적으로 여성이 더 좋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의도가 있는 것이겠죠?


박: 두 분 다 전형적인 ‘마초’ 캐릭터가 아니에요. 그리고 남성으로 인해 우희가 무언가를 찾는 결론이 아니었죠. 우희 눈에 적합한 남자가 없는 현재를 그리다 보니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진행: 최근의 한국 영화는 여성 캐릭터가 정말 부재해요.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도 잘 제작되지 않죠. 남성 배우들만 앙상블로 나오는 영화들이 많은데, 이런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아요. 


전: 여성 작가나 감독의 부재로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잘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데, 입지가 좁다 보니 균형이 깨지는 것 같습니다. 


박: 최근 성폭력 이슈 때문에 여성 감독들이 모여 ‘씨네21’에서 대담을 진행했어요. 성폭력으로 시작했지만,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죠. 결국 이것은 권력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더 예민한 영역의 문제이자 필드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에요. 현 사회에 그렇지 않은 분야는 없지만, 비교적 진보적이고 평등하다고 믿었던 분야도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공론화되지 않았어요. 너무 터무니 없게 여성 작가와 감독이 적죠. 그것은 여성의 능력이 출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권력층이 남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나 남성들과 작업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행이 되어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 위주의 영화가 인기가 많은 이유 중 하나를 여성 관객이 남성 배우가 나오는 작품을 선호해서라는 분석을 보았는데, 정말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만 해도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가 있었고 잡지에 매주 심은하, 고소영 등 여배우들이 등장했죠. 뿐만 아니라 여배우의 영화를 기다리는 남성 관객들이 많았고요. 결과물만 가져다 붙이는 것이죠. 그런 영화들이 많이 개봉하니 관객이 많은 것인데, 남성 영화여서 흥행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렇게 이야기를 할 것이라면 여성 영화를 틀어준 뒤에 비교를 해야 공정한 것이에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먹히지가 않아요. 시장이 이상적인 것을 이야기 할 만큼 유연하지가 않고요. 당장은 남성 영화가 잘 되니까요.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가 흥행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사실 그 장르는 TV로 하는 것이 더 나아요. 한류 등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점점 나빠지는 영화 시장에서 굳이 로맨틱 코미디를 택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남성 배우들이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은 무게도 있어 보이고 결국 흥행도 더 잘 되고요. 따라서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는 더욱 낄 수가 없게 된 것 같아요. 이런 이유들로 불균형이 심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진행: 감독님의 발언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요. 왜냐하면 저도 최근 이 이슈 관련해서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업계 사람들 인터뷰를 해보면 다들 똑같이 이야기해요. 데이터가 있고, 남성들이 나온 영화를 관객들이 선호한다고요. 따지고 보면 이는 여성 영화에 대한 데이터는 현저히 부족하다는 말이에요. 남성 영화들은 투자가 많이 되고 마케팅 비용 또한 그에 따라 큰 규모로 소요가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객이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남성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의 경우 여성의 입지가 적어요. 대체로 간호사, 누워 있는 엄마, 민폐를 끼치는 딸 같은 캐릭터로 기능하죠. 제 주변에도 연기 잘하고 의지도 강한데, 출연할 작품이 없는 여배우들이 많아요. 두 감독님들은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것이라 생각했어요. 요즘 페미니즘이 이슈고 화두인데, 제 자신 또한 어떤 타성에 젖어 있어 헷갈릴 때가 많아요. 공부할 수밖에 없지요. 의식이 점차 깨어나고 있지만, 어디까지 개입하고 구분해야 할 지는 스스로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박: 맞습니다. 제가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을 이상적으로 그린다는 보장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도 그렇고 영화계도 그렇고 저도 모르게 학습되고 내면화 된 남성의 시선에 젖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각이 중요합니다. 이 시대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점이라면 갱신하고 공부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행: 씨네21에서 진행한 대담이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피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박: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끝나고 나서 놓친 말이 있는지 많이 생각했어요. 스태프 시기 제가 겪은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해서도요. 감독을 하면서부터는 작품에 전념하게 되었는데,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물론 이야기 하지만, 내가 못 본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 찝찝함이 밀려왔어요. 저 말고 다른 감독님들도 공감하셨어요. 여성은 발언을 하고서도 이중으로 시달리는 거예요. 남성들은 과연 이만큼의 고민을 거칠까요? 저 또한 감독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권력이 있는 것이고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자각이 오니 더 아프더라고요. 


관객: 여성 캐릭터가 메인인 작품을 만들 때, 특별히 설정하는 부분이 있나요?

 

전: 특별히 정하는 것은 없지만, 대중이 잘 모르는 모습의 여성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여전히 찾고 있어요. 지금까지 보여진 여성의 모습은 국밥 집 아주머니, 희생하는 아내나 어머니, 순종적인 애인 같은 것이 많았잖아요. 이런 모습들 외에도 더 많은 모습을 작품에서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여성이 재미있을지 찾는 과정에 있습니다. 


박: 여성 캐릭터가 굳이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야망 있는, 잘 나가는 여성에 대한 시샘 어린 시선들 때문에 여성은 어느 선까지만 허용 되는, 그런 캐릭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출중한 여자>가 참 마음에 들지만, 고군분투해야 하고 삐끗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야 했던 것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해요. 남성 캐릭터는 그렇게 그리지 않아도 멋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여성 캐릭터는 왜 이런 빈틈을 보여주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같은 역할이어도 성별 전환을 했을 때 달라지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기도 해요. 헐리우드에서는 이미 그런 시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식의 접근을 생각해요. 멋있는 것은 다 남성들이 하죠. 여성도 할 수 있는데. 요새 유행하는 남성 위주의 느와르 작품들도 여성들이 하면 달라질 수 있잖아요? 최근 뭉클한 글을 보았는데,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태어난 미국의 아이들은 대통령을 그릴 때 흑인으로 그린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매체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리부트 된 <고스트 버스터즈>의 주인공들이 여성으로 설정 된 바 있죠. 남성만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와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진행: 저는 그래도 천우희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커리어 중심형이고 욕망이 계속 드러나는 캐릭터여서 좋게 보았습니다. 공감이 갔고요. 요즘 여성들의 커리어에 대한 욕망은 남성 못지 않으니까요. 



바야흐로 미디어 빅뱅 시대. 대중과 가까이 하는 장치가 늘고 있다. 각 장치가 보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고 유행을 담는 것은 웹드라마와 같은 빠른 제작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장치들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제작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리 천장은 여전히 두껍다고 느꼈다. 박현진 감독이 참여한 씨네21 대담을 통해 더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과 그들 중심의 서사가 더 많아지기를 함께 염원하는 자리였다. 든든한 이야기가 오간 가운데, GV 당일에는 민중총궐기가 있었다. 100만이 모였다. 여성이 대통령임에도 유리 천장 지수는 OECD 꼴찌인 국가. 그리고 여성의 사생활 운운하며 여성을 욕보인 대통령.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여성은 있는 그대로 출중하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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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의 고단한 하루가 건네는 위로  <최악의 하루>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9월 10일(토) 오후 2 상영 후

참석: 김종관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세리 님의 글입니다. (사진 제공: 김은혜 님)


어느 가을 문턱, 서촌과 남산. 하루에 세 남자를 만난 한 여자의 이야기. 그녀의 하루를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하여. 김종관 감독,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와 함께 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진행): 안녕하세요, 감독님. 영화 개봉 후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가요? 


김종관 감독(이하 김): 개봉 2주차까지는 GV, 그리고 주말마다 무대 인사를 했어요. 그런 것들이 정리 되어가고 있고, 다음 영화 찍은 거 후반 작업하고 있습니다.


진행: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 같은데, 차기작이 ‘지나가는 마음들: 더 테이블’이라는 옴니버스 영화죠?


김: 네, 옴니버스 구성인데, 제목은 <더 테이블>로 확정하고 ‘지나가는 마음들’은 떼버렸어요. <최악의 하루>가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담았듯 그 작품도 마찬가지로 한정된 공간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카페의 한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에요.


진행: 감독님은 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두세요?   


김: 한정적인 공간에 시간을 쓰는 장르를 좋아해요. 뿐만 아니라 두 작품 다 저예산, 작은 사이즈의 영화인데, 촬영 시 용이한 점이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저의 취향인 것 같아요. 


진행: 영화를 처음 관람한 분도 있고, 여러 번 반복해서 본 분도 이 자리에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최악의 하루>를 극장에서 두 번 봤는데, 이희준 배우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거의 자지러지더라고요. 예상하신 반응인가요?


김: 네, 저는 운철 역이 처음부터 재미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캐스팅이 잘 안 되더라고요. 이희준 배우와는 원래 인연이 없었고 한예리 배우를 통해서 캐스팅하게 되었어요. 겨우 캐스팅했는데, 캐릭터의 재미를 잘 알더라고요. 매우 즐겁게 작업했죠.



진행: 이희준 배우와 한예리 배우는 <환상속의 그대>(2013)에서 애틋한 로맨스를 보여준 적이 있지요. 그 잔상이 남아서 그런지 둘의 회상신이 되게 애틋하더라고요. 


김: 아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때문에 캐스팅에서 오는 재미가 많아요. 이와세 료 배우도 시나리오를 써놓고 영화를 진행하는 중에 캐스팅했어요.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에서의 느낌이 좋았어요. 그 영화에서는 고조 시에 머무는 한 남자였잖아요. 우연히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어떤 연계가 생기죠. 이희준 배우와 한예리 배우는 둘이 세 편째 함께 작업을 했어요. 단편까지 하면 더 많을 텐데, <환상속의 그대>, <해무>(2014) 등의 영화를 했기 때문에 팀워크가 맞아요. 서로 관계가 다져진 사람들끼리의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진행: 두 배우가 함께한 장면은 밀도 있고 팽팽한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할까요? 카페신에서 희대의 명대사들이 터져 나왔잖아요. “저 행복해지지 않으려고요”, “진실이 어떻게 진심을 이겨요?” 등의.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는 그 시퀀스 구성이 재미있었던 게, 사운드가 좋았어요. 잔잔한 노래가 분위기와 잘 맞았고. 진심을 보이기 전 운철이 구구절절 이야기 할 때는 카메라가 앞에서 모습을 비추는데, 은희를 보여줄 때는 오버 숄더로 보여주더라고요. 운철이 진심을 얘기해야 할 때 앵글은 은희 어깨를 걸고 앞모습을 비추거든요. 무섭기도 했어요. 정면을 보는 순간이잖아요. 저 사람의 진심을 만나야 하는 순간인가 싶어 그 앵글이 좋더라고요. 


김: 적은 회차로 영화를 찍었어요. 16회 차로 장편을 찍었으니, 16일 동안 찍었다는 거예요. 보통 상업 영화는 4-50회 하죠. 이희준 배우는 특별출연이에요. 특별출연 의향도 원래 있었지만, 3일 찍었으니 특별 출연이 맞지 않냐고 말씀하셔서 그렇게 하게 됐죠. 그럼에도 출연 분량이 굉장히 많아요. 어쨌든 그 카페 장면도 하루 동안 찍었어요. 빨리 찍으면서 작전을 잘 짜야 했어요. 대화신이 길기 때문에 앵글의 방향을 감정에 맞추어 배우마다 포인트를 줬어요. 편집할 때도 집중했고요. 


진행: 미묘하게 회상하는 장면이 있지요. 그 회상신은 여름이고, 현재는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톤이 다른데, 그 톤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김: 하루 동안의 일을 그리지만, 그 장면만 유일하게 플래시백이죠. 그 플래시백 삽입이 운철과 은희 사이의 통속적, 비극적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것 같아요. 나이 들며 관계에서 종종 느껴요, 욕하지 않고도 자기를 포장하는 비겁함 같은 것. 그런 것에 대한 쓸쓸함이 있는데, 정작 좋았던 모습을 보여주면 비극이 재미있게 잘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장면을 통해 세 남자에 따라 바뀌는 은희의 성격이 입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겠다 생각했고요. 남산의 어떤 숲길을 걸어가며 좋았던 일을 회상하기 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진행: 굉장히 섹슈얼한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덩치 차이가 큰 데서 오는 긴장감도 있고. 다들 감상이 다를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이 영화가 편안하게 따라가는 영화인가 싶다가 무서워졌어요. 인터뷰 장면에서 현경(기자)은 료헤이에게 왜 주인공들을 괴롭히느냐 물어보죠. 그러나 료헤이가 각성 된 듯 정신을 차려보니 자리에 현경이 없고요. 그리고 료헤이는 어딘가로 향하는데, 그것이 은희가 있는 남산이에요.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한 눈빛으로 은희를 마주치죠. 저는 이것이 작가가 자신의 등장인물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곤경에 처한 주인공을 만나 그를 위로하려고 하는 작가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이 하루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어주고 은희는 결국 이름을 이야기하고 춤까지 보여줘요. 그 장면들이 인상 깊었어요. 이 영화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구나 생각했어요. 


김: 두 가지 관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 의도는 했죠. 은희의 관점에서 흘러가는 것과 료헤이 자체의 이야기. 연기를 하는 배우와, 창작을 하는 작가라는 ‘허구’라는 테마. 은희가 거짓말을 하지만, 보편적인 어떤 성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관계에 따라 성격을 바꾸는 부분이 저에게도 있고. 사람들마다 관계에 처한 위치가 다르죠. 그리고 한예리 배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어요. “은희는 만나는 사람마다 원하는 역할을 연기해주는 것 같다. 자기가 없는 사람 같다.”라고. 저는 그게 일면 맞다 생각해요. 나 또한 관계에 솔직한 사람일까 생각했어요. 제가 사람 관계에는 미숙해도 작업을 통해서는 솔직하고자 노력했어요. 경험을 투영하는 솔직함이 아니라 창작 작업 안에는 저보다 더 솔직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까지 범주를 확장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은희 이야기로 읽힐 수 있고, 또는 료헤이의 자전일 수 있고. 확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의도하려 했죠. 


진행: 초고를 2014년 겨울에 4일 만에 쓰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상태가 궁금해요.

 

김: 주인공 가운데 누구와 가깝냐 물어보면 은희라고 해요. 사람들은 관계마다 성격을 바꾸고 끝없는 방황을 하며 살잖아요. 이것을 쓸 때는 은희처럼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모티프를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일상의 패턴들을 가지고 그 안에 등장인물을 넣고 이야기하다 보니 금방 써졌죠. 



진행: 감독님은 단순한 일을 간단하게 쓰고 싶다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복잡한 층위를 가진 영화가 된 것 같아요. 그런 작품들은 오히려 쓸 때는 빨리 써진다고 생각해요. 힘을 빼고 쓰면 심오한 층위들이 쌓이는 것 같고요. 은희가 모습을 바꾸고 거짓말까지 하는 건 사랑 받기 위함인 것 같아요. 은희가 남자친구 만나러 갈 때는 머리를 풀고 운철 앞에서는 묶고 있는데, 그것에도 의도가 있나요?


김: 은희의 심리를 따라가는 거에요. 은희가 미묘한 톤으로 성격을 바꾸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강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행: 이야기는 크게 료헤이와 은희를 따라가요.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는 정서가 연민 같아요. 그 연민은 둘 다 온종일 밥을 먹지 않는데서 나오는 것 같고요. 그들이 차만 마시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정보 때문에 더욱 고단하다 생각돼요. 


관객: <조금만 더 가까이>(2010)의 주연도 운철과 은희로 이름이 같아 흥미롭습니다. 그에 대한 의도가 있나요? 


김: 제가 이름 짓는 것을 싫어해요. 근데 은희라는 이름에는 무언가 있는 것 같아요. 정유미 배우가 맡은 은희와 지금의 은희는 달라졌는데, 비슷한 점은 있어요. <더 테이블>에서 한예리 배우가 은희로 나오고 거기서는 그냥 거짓이 아니라 전문적인 사기를 쳐요. 개봉은 내년 봄일 것 같아요.


관객: 영화 카피는 ‘폭발직전의 여름로맨스’인데, 해피엔딩을 겨울로 설정하신 이유가 뭔가요? 은희는 여름을 싫어한다고도 했는데. 


김: 폭발직전의 여름로맨스라고는 하지만, 작년 오늘이 크랭크인 날이었어요. 9월 말까지 찍었고 초가을 배경이었죠. 배우들도 후드티를 입고 있잖아요. 개봉 시점이 여름이어서 여름이라고 한 거죠. 바람도 좋고 햇빛도 좋은 가을의 느낌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은희는 다양한 감정으로 걸어요. 눈 내리는 길을 걷는, 끝도 없이 가는, 방황하는 한 여자. 어딘가 외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해피엔딩을 바라는 긍정이 있되, 그 속에는 쓸쓸한 한 인간으로서의 심리가 있어요. 그것이 겨울의 느낌과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시나리오 외에 다른 글도 쓰시잖아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깊은 애정이 있으신 것 같아요. 행복과 슬픔, 밝음과 어둠이 함께 가는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욱 작가에 대한 영화 같아요. 마지막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김: 많은 사람들이 보게끔 하고 싶었어요. 오신 분들이 전파자가 되기를 바라며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지만 영화는 영화이고, 영화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와 친구가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계의 복잡다단한 층위부터 창작자의 태도까지. 그 고민의 시간을 오롯이 아우르고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관객은 은희가 맺은 관계에 어떤 서늘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 담백한 초연함이 때로는 나를 더욱 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관객은 온종일 은희의 긴장을 따라가지만, 그 하루의 끝에는 이완 되는 감정이 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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