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가난은 다르다는 깨달음과 ‘함께 산다’라는 믿음 

 인디돌잔치 <내 친구 정일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0월 30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동원 감독

진행 마민지 감독 (<버블 패밀리>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감독은 오로지 카메라 뒤에 서 있을지 아니면 때로는 카메라 앞에 나타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김동원 감독은 이와 같은 고민에서 자유로운 자신만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이 카메라에 담아내는 사람과 주변 사람의 삶을 단순히 살피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다. <내 친구 정일우>에서도 이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다. 정일우 신부님이 몸소 실천했던 가난과 가난에 관한 깨달음이 주변 사람과 감독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번 인디돌잔치에서 스크린 안팎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민지 감독(이하 마민지): 안녕하세요. 오늘 인디토크 진행을 맡은 마민지입니다. 선생님을 항상 학교에서 뵙다가 밖에서 뵈니까 조금 어색한데요,(웃음) 우선 <내 친구 정일우>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동원 감독(이하 김동원):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기획을 미리 하는 것보다 어쩌다 보니 찍는 경우가 많아요. 정일우 신부님이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자신이 죽은 후 장례식 때 틀 수 있는, 기억할만한 영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저한테 부탁하셨어요. 대략 10분짜리 영상을 만들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제가 모은 자료뿐만 아니라 다른 자료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의외로 많더라고요. 60년대 자료도 있었고요. 그래서 길이를 더 늘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편집하면서 점점 더 많은 자료가 쌓여 8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마민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정일우 신부님의 모습이 굉장히 다양해요. 신부님의 어떤 측면을 특별히 관객과 공유하고 싶으셨나요?

 

김동원: 저한테 신부님은 굉장히 재미있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리고 자유로운 분이셨어요. 사실 신부님의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궁금했어요. 이 영화를 편집하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정일우 신부님이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잠자리나 먹을 거리를 근심 없이 즐기셨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스스로 가난을 찾아 다닐 정도로 가난을 즐길 줄 아는 분이셨어요. 보통 가난을 두려워하잖아요. 하지만 정일우 신부님은 가난을 즐길 줄 아셨고, 그 태도에서 자유로운 모습이 묻어 나온 것 같아요.

 




마민지: 영화 속에서 가난에 대한 성찰, 도시 빈민 문제가 같이 묘사가 되고 있어요. 시간이 굉장히 많이 지났는데, 그 사이의 시간에 대한 내레이션이 나오더라고요어떤 고민으로 영화를 완성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동원: 사실은 1988년 <상계동 올림픽> 이후 뒷이야기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고, 저 자신도 뒷이야기를 다룰 계획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상계동 뒷이야기의 끝을 내는 게 어려웠어요. 공동체 정신이 시간이 흐른 후에 어떻게 체화되었는지, 그 당시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성장했는지 궁금했고 이를 주관적인 내레이션을 섞어서 다룰 생각이었어요. 근데,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공동체 정신이 자꾸만 얇아져 가는 거예요. 2007년 무렵만 해도 1년에 두세 번은 송년회와 경조사를 통해 만나곤 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그 당시를 잊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기고 있어요. '왜 그럴까?' 물음을 던지곤 했는데, 사람의 의지라는 게 한계가 있기도 하겠지만, 세상이 상계동뿐만 아니라 다 그런 것 같아요. 점점 기본적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제 자신도 공동체에 관한 관심이나 가난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영화를 찍었던 것 같아요.

 

마민지: 영화를 보면서 공동체에 대한 감독님의 묘사가 마음에 와 닿아서 감동했어요. 공동체를 고추장 비빔밥이라고 묘사하거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데, 그 부분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네 명의 내레이션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사실 영화를 보면서는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다른 자료를 확인하면서 네 분의 목소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 부분에 관해 설명을 조금 보태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동원: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구성을 구상하는 게 항상 어렵잖아요. 제가 2001년에 <한사람>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그때는 서 로베르토 신부의 일대기를 다뤘어요. 내레이션 없이 신부님에 대한 여러 요소를 인터뷰 자료를 통해 보여줬는데, 이렇게 하면 가장 쉽죠. <내 친구 정일우> 역시 이처럼 구성안을 짜다가 그래도 이번에는 다르게 찍자 싶었어요. 제가 상계동에서 목격한 신부님의 모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보다 신부님과 더 가까이 있었던 상계동 주민에게 부탁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탁을 드렸고 흔쾌히 승낙해주셨어요. 제 생각이 그분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어서 있는 자료를 기준으로 그분들이 가진 에피소드와 주관적인 생각을 거쳐서 3, 4번의 수정 작업을 통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관객: 좋은 영화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 친구 정일우>와 같은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저한테는 종교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가난이라는 화두로 다가왔습니다. 극 중에서 신부님이 이 가난뱅이들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 말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학교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고, 제 행복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당연히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낡으면 새것으로 바꾸고, 사는 곳이 좁으면 넓은 곳으로 이동하면서 그렇게 살아봤는데 여전히 마음에 자리 잡은 무언가가 해소가 안 되더라고요. 제가 40대인데, 40대는 왕성하게 무언가를 더 쌓아가는 나이이고 가난을 화두로 설정하지 않아요. 근데 정일우 신부님은 평생을 가난을 화두로 삼으시면서 생을 보냈던 분이잖아요. 저런 이야기를 누가 해주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와 제가 최근에 발견한 화두를 많은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도록 공론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동원: 말씀 감사합니다. 가난이라는 게, 가난이 뭐냐?’ 또는 어느 정도 가난해야 가난하다 할 거냐?’ 등을 따지고 들어가면 복잡한 문제이긴 한데, 방금 말씀해주신 것들은 저도 평소에 많이 생각하는 문제예요. 가난이라는 게 어떤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가치의 문제라고 볼 수 있죠.

 

 

 

관객: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서 손을 들었습니다. 저도 성당을 다니던 신자였는데, 신부님의 영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데 오늘 영화에서 가난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실제로 제가 많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데, 돈이라는 게 무엇인지 고민도 많이 해봤어요. 막연하게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어떤 날에는 한탄도 했어요. 그 동안 상업영화만 많이 봤어요. 그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웃고 떠들고 그랬는데, 요즘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소중한 책 한 권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오늘 이 영화를 보고 가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영화 속 기도하는 장면에서 아무것도 주지 말고, 대신 용기만 달라는 장면에서 감동했고, 그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순간 기도를 했어요. 너무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김동원: 오히려 제가 감동했어요. 신부님은 가난하게 사셨지만, 가난이 옳아서 가난하게 산 게 아니에요. 가난의 부정적인 의미를 빈곤이라고 표현을 한다면, 이 가난은 맞서 싸워야죠. 그러므로 신부님이 가난이 꼭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함께 산다'라는 도움을 주기 위해 가난한 사람과 사회 구조에 의해 희생당하시는 분들의 편으로 가셨잖아요. 신부님이 청계천에 가서 자신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는지 깨달았다고 말씀하셨고요. 신부님이 거기서 얻은 깨달음과 파생되는 충격을 통해 가난에 대해 통찰하기 시작하신 것 같아요.

 

 

관객: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작년에 보고 1년 만에 보니까 새롭게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오늘은 생각하면서 봤어요. 신부님의 죽음으로 영화는 끝이 나지만, 남은 사람들이 49제를 굉장히 유쾌하게 지내시는 모습에서 궁금증이 생겼어요. 감독님께서 엔딩이 기획안에 없었다고 하지만, 촬영본을 편집하면서 영화를 어떻게 끝을 낼지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끝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동원신부님이 농담 삼아 이야기를 하셨지만, 본인이 죽으면 무덤에 와서 같이 잔치를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사실 저는 49제 때 잔치를 하러 간 게 아니에요. 그런데 49제를 같이 지내는 분들은 정일우 신부님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좋아 모인 분들이에요. 죽음조차도 어떻게 보면 삶에 비해 가난한 것이지만, 죽음을 가난의 형태라고 본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신부님 옆에서 소주를 마시다 보니 어쩌다 춤을 추게 되었어요. 저는 참 그런 게 좋아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자유스러운 것이라고 해야 할까? 죽음은 두렵고 슬픈 환경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자신감인 것 같아요.

 

마민지저도 엔딩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정의할 수 없다는 장면 이후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미묘한 감정을 느꼈어요.

 

김동원: 한마디 덧붙이자면 춤을 추는 장면이 엔딩이 되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신부님 강의록 중에서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하지만 캄캄하다고 말씀을 남긴 테이프를 발견한 거예요. 그걸 본 후 지금의 엔딩 장면을 붙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신부님이 훌륭하고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런 분조차도 나랑 똑같이 나약함과 신비함으로 물든 인물이라는 점에서 묘한 위안을 얻었어요.

 




마민지: 소스를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새롭게 촬영한 분량이 있는 것 같은데 4:3으로 화면비율을 잡으셨어요. 그 이유와 이후 촬영 과정, 그리고 소스를 다시 찾을 때에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동원: 60, 70년대부터 많은 자료가 있었고 화면비율이 4:3인 자료가 훨씬 많아서 이 영화 역시 화면비율을 4:3으로 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주로 인터뷰인 보충자료는 16:9로 했다가 4:3으로 줄였고요. 그렇지만 상계동 장면이나 용산 장면처럼 중요한 부분이라고 판단되는 장면일 경우 화면비율을 16:9로 환원했어요. 엔딩도 마찬가지고요.

 

마민지: 향후 작업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동원: 2000년도에 돌아가지 못한, 전향한 장기수들에 대한 작업을 2005년부터 찍고 있는데, 이제는 송환될 희망이 거의 없어졌어요. 2005년에 송환될 큰 가능성이 있었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희망이 사라졌어요. 이후 상황을 조금씩 찍고 있어요. 저도 그분들을 촬영하면서 낙담한 기분을 같이 느끼고 있지만, 그 동안 찍은 것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편집을 하고 있는데 언제 작업이 끝날지 몰라요. 가능한 한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요

 

마민지: 준비한 케이크를 같이 자르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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