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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비평가들] 섹션 2. 어른이라 모르지만 모를 수만은 없다면 - 인디토크 기록: 비로소 딛게 되는 동력

indiespace_가람 2024. 3. 11. 10:10

비로소 딛게 되는 동력

 무명의 비평가들: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 

 섹션 2. 어른이라 모르지만 모를 수만은 없다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2월 25일 (일) 오후 1시 상영 후

상영 〈어른들은 몰라요〉(이환 감독)

참석 배새롬, 임유빈 비평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영은 님의 기록입니다.

 

 

조명이 꺼진 병실에 축 늘어진 세진이 보인다. 기어가는 힘으로 약을 삼키고 커터칼로 손목을 벤다. 관객은 그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다. 화면 보이는 것은 근원지를 모르는 불빛과 희미한 신체의 움직임이다.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눈에 띄었던 장면은 카메라가 때때로 바닥에 붙어서 뜬금없이 화면을 가로지르듯 역동적으로 변화할 때였다. 이질적인 이 장면들은 바로 이전의 장면들과 어색하게 충돌한다. 이로 인해 세진이 “완전히 무력해 보이지 않는” 힘을 갖는다면, 자학적이고 불화하는 영화 속 폭력은 부정되고 탈락되는 존재를 바라보는 내부적인 시선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배새롬 평론가의 말처럼, ‘이후’의 삶을 떠올려보는 일에 역시 공감한다. 보드에 올라탄 세진을 뒤에서 역동적으로 담아내던 카메라가 천천히 걷는 그를 앞에서 붙잡아 세운다. 영화는 “관음이나 스펙터클적 재미 외의 목적”으로 그의 살아내는 얼굴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임유빈 평론가(이하 임유빈): 안녕하세요. 저희는 인디스페이스 비평가 지원사업으로 모이게 된 무명의 비평가들입니다.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임유빈이라고 하고요. [무명의 비평가들: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한국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비평의 자리와 비평가의 자격에 관한 논의를 자유로이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무명의 비평가는 말 그대로 이름이 없는 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저희의 말과 글은 무게가 다소 가벼울지언정, 쉽게 규정도 정의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독립영화 담론과 공명하는데요. 저희는 이 기획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한국 독립영화를 상영하기로 했고 기존의 관객과의 대화보다 비평의 자리에 초점을 맞춰서 저희끼리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했습니다. 방금 보신 섹션은 배새롬 평론가가 기획한 ‘어른이라 모르지만 모를 수만은 없다면’ 이였습니다. 이번 섹션에서는 이환 감독의 〈어른들은 몰라요〉(2020)를 상영했는데요. 먼저 배새롬 평론가의 소개를 요청드리면서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배새롬 평론가(이하 배새롬): 안녕하세요. 저는 배새롬이고 현재 영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연구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1950년대 한국영화로 석사논문을 썼었고, 현재는 이만희 영화와 다른 것들을 가지고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임유빈: 저희가 기획전을 통해 각자 생각하는 한국 독립영화를 상영해 보자고 논의했었는데요. 새롬 님이 이환 감독의 〈어른들은 몰라요〉를 선택하셨을 때 의외라고 느껴지던 부분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넷플릭스에서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저희 기획 중에 가장 최신작이기도 하고요. 전작인 〈박화영〉(2017)이 한국 독립영화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불러일으킨 것에 비해, 이 영화는 코로나 기간에 개봉하기도 했고 관객 스코어나 평단의 측면에서도 많이 논의되지 못한 작품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배새롬: 제가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영화에서 한국 독립영화에 해당하는 작품이 ‘청소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수꾼〉(2010)부터 〈거인〉(2014), 〈꿈의 제인〉(2016), 〈죄 많은 소녀〉(2017), 그리고 말씀하신 〈박화영〉이 있고요. 〈어른들은 몰라요〉는 그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이야기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스틸컷

 

 

임유빈: 새롬 님의 기획글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이른바 ‘한국영화스러움’을 정의하는 폭력성에 관한 설명인데요, “폭력이 세계의 일부라면 영화에 담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방식과 목적, 그리고 효과일 것이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폭력의 존재와 재현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라고 하셨어요.  

 

배새롬: 주인공 세진의 입장에서 그가 경험한 폭력을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세진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세진이 되어보게 하는 영화 같아요. 우리가 폭력적인 한국영화를 언급할 때 많이 이야기하는 신체적인(‘유혈낭자’한) 폭력도 있지만, 이 영화는 폭력이 발생하는 관계의 종류나 양상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장 선생님이나 성교육 선생님과 만났을 때 학교의 제도 안에서 경험한 폭력, 재필과 준석으로 하여금 발생하는 남성적 위계에 대한 폭력이 있고요. 마지막에는 주영이 세진에게 폭력을 행하고 말잖아요. 서로 이렇게 아끼지만 취약한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 그리고 세진의 아이를 입양하려는 부부도 굉장히 친절하지만, 그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세진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영화가 끝났을 때 세진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 세진이 어떤 인간인지에 관해 쉬운 말이 안 나오거든요. 저는 이 영화가 폭력의 존재나 재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게 하는 영화라고 보았습니다. 

 

임유빈: 세진의 폭력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 얽혀 있는 폭력적인 측면들을 단순한 것 같지만 복잡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 영화가 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박화영〉 때문이기도 했어요. 2017년에 부산국제영화제 공개 이후에 몇 개월간 극장에서 개봉을 거부당하기도 했고요. 관객 스코어는 한 5,800명 정도로 마무리되었고, 극장 상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화채널 고몽에 〈박화영〉이 소개되면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급상승을 하고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때 영화를 보게 되었고요. 채널을 다시 들어가 보니까 댓글에 아직도 많은 분이 감상을 남기고 있더라고요. 당시에는 조회수가 1,100만 정도였는데 이번 주에 제가 찾아보니까 1,300만이에요. 사람들이 ‘이거 비공식적인 천만영화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고몽의 구독자 수도 236만 명이고요. 이런 경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약 두 시간 분량의 영화를 십 분에서 십오분 내지로 요약해서 다루고, 이른바 유튜브로 ‘영화를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시작점에 〈박화영〉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방식의 영화 소비나 관람에 대해서도 또 저희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영화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가출팸 청소년을 다루잖아요. 주인공 화영이 가출팸에서 엄마를 담당하고 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영화이기도 해요. 이환 감독이 이 영화를 설명할 때 “가출 청소년의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이야기하던데요. 욕설이나 강간, 성매매 이런 현실이 지극히 ‘현실’이라고 말해지지만, 사실 〈박화영〉의 현실은 누가 보는 현실인지 꽤 모호했던 것 같거든요.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중요한 영화지만 ‘나쁜 재현’의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어른들은 몰라요〉는 되게 달랐던 것 같아요. 〈박화영〉에서 제기되었던 재현의 문제를 많이 수용하고자 고심했던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새롬 님은 두 영화를 연결해서 생각하신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배새롬: 사실 저는 〈박화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영화인지도 모르고 봤어요. 나중에 어쩌다가 유튜브에서 천만이 넘는 조회수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확실히 그런 식으로 ‘영화를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관람 경험이 꽤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비공식 천만영화”라는 말이 재미있으면서도 확실히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과 다르구나 싶은 게, 만약 그게 정말 천만이었으면 〈어른들은 몰라요〉가 조금 더 이야기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웃음) 어쨌든 〈박화영〉과 동시에 떠올리지 않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일단 감독이 같고, 소재도 굉장히 비슷하고, 〈박화영〉에서 이미 세진이 나오잖아요. 감독은 이름과 배우만 같고 캐릭터는 다르다고 했지만 관객으로서 일단 떠올릴 수밖에 없죠. 그리고 감독의 문제의식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두 영화에서 폭력의 현실성을 생각할 때 저는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간접적으로 (연구나 책을 통해) 알게 된 바로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기는 하거든요. 그러니까 한사람이 겪는 일을 두 시간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면 관객으로서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일어나는 일인 거죠. 이걸 항상 같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폭력의 재현이 좋은지 나쁜지의 일정 부분은 관객의 시각 책임도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시각을 취하게 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관객의 태도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저는 두 영화를 지지하고 싶은 편이긴 합니다. 그런데 확실히 〈어른들은 몰라요〉가 달라진 점이 있기도 해요. 화영과 세진이 친밀한 관계에서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부분에서 조금 다른데, 화영은 되게 일방적이잖아요.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친구들에게 일방적인 짝사랑을 쏟고 있고 그걸 돌려받지 못해요. 근데 세진은 그것보다 다이나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주영과 되게 친밀했다가 먼저 관계를 끝내자고 하기도 하고요. 두 주인공이 관계를 형성하는 양상이 다른 게 두 영화를 달리 보게 하는 점인 것 같습니다.  

 

임유빈: 맞아요. 이환 감독이 〈박화영〉의 하이퍼리얼리즘을 탈피하기 위한 시도로서 시네마틱한 요소들을 많이 선택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명이라든가 힙합음악, 롱보드 이런 장면을 사용하고요. 〈박화영〉에서는 카메라가 많이 흔들리고 뒤에서 가깝게 촬영하는 반면, 〈어른들은 몰라요〉는 고정된 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드라마처럼 세진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풀어내는 경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관객분들의 질문도 받아보려고 하는데요. 영화 이야기뿐만 아니라 소감이나 기획전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스틸컷

 

 

관객: 저도 〈박화영〉을 떠올리면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요. 굉장히 다양한 폭력의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이 ‘어른들’인데, 상대적으로 청소년문화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지 않다고 느꼈어요. 주인공이 청소년으로서 받는 고통이 분명하지만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이것들이 반복되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주인공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이 문제들이 해결되는가?’ 생각해 보면 오히려 빈곤이나 여성으로서의 폭력 여러 부분들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배새롬: 이 영화가 청소년 문화를 얼마나 보여주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측면 같아요. 저는 오히려 고등학생들이 자기가 얼마나 잔인한지도 모르고 무지하게 행동할 때가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어요. 또래 문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재현이 풍부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되는 문제는 꽤 깊이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른들이 조금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이 영화가 자기 삶에 있는 존재와 맞닿아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관객: 여성 청소년이 임신중절수술을 받으려는 과정이 주요 내용인데 남성 감독의 작품이다 보니 아무래도 여성 관객분이 영화를 봤을 때 남성 연출자가 여성 캐릭터를 연출하는 부분에 있어서 조금 거부감이 든다거나, 가학적인 시선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봤습니다. 근데 두 평론가님께서 이 영화로 선정하신 이유는 그래도 연출자가 주인공을 잘 다뤘다고 판단하셨다고 느껴지는데요. 혹시 남성 연출자이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라고 느껴졌던 장면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배새롬: 저는 재필의 존재가 크다고 느껴졌어요. 이환 감독 자신이 직접 연기한 이유가, 배우를 쓰면 배역을 좀 더 줘야 하는데 재필의 문제가 커지니까 그렇게 가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거든요. 근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저한테는 재필의 존재가 좀 큰 거예요. 남성 감독이 여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여성을 재현하는 것 자체는 굉장히 신경 쓰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너무 남성적인 시선이라고 느껴지는 영화도 있지만, 그 비판을 강하게 의식하는 감독은 노력한 흔적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눈에 아쉬운 부분은 여성 재현보다 오히려 남성의 존재감 자체에 자의식을 충분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대로 좋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요. 성인 남성이 가할 수 있는 폭력을 되게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헛소리하는 건 다 성인 남성이거든요. (웃음) 재필도 결국은 자기 위의 남성에게 밟히고 그 원한을 풀어버리잖아요. 성인 남성 간의 위계가 어떻게 파국으로 갈 수 있는지 보여주죠. 남성이 생각하는 남성의 폭력성이 잘 드러난 부분 같습니다.  

 

임유빈: 세진이 경찰서에서 “어차피 그런 아저씨들 있으면 우리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데.”라고 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성인 남성에 대한 그런 것도 계속 체화하고 있다고 생각했고요. 영화가 수용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가학적이려고 하면 컷을 바꿔서 의외의 장면을 보여줘요. 이를테면 (세진에게) 마사지하는 사람도 나체 상태로 등에 땀을 흘리고 있어서 분명 원치 않는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마사지를 열심히 하는 거죠. 그때 제가 기대하는 바와 조금 달라지는 지점들이 영화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까 앞에서 말씀해 주신 관객분의 질문에도 많이 공감하는데요. 〈어른들은 몰라요〉의 소구대상이 사실 영화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이기 때문에 청소년은 극장에서 볼 수 없고요. 그래서 ‘청소년이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할까? 본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청소년이 볼 수 없는 청소년에 관한 영화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해보아야 할까?’ 이런 지점들을 생각했을 때 기성세대가 갖는 오해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새롬 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배새롬: 그 오해가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임유빈: 청소년 당사자가 이 영화를 봤을 때 ‘우리의 현실은 이래요’ 혹은 ‘영화를 보면 우리를 좀 더 이해하게 될 거예요’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을지, 아무리 인터뷰하고 사전조사를 했다고 해도 생겨나는 간극이 있어서 ‘정말 뭘 모른다’라고 생각하게 될지 모르는 거죠. 새롬 님 말씀대로 청소년의 문제와 실태를 다루는 이 영화를 두고 “어른들이 조금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라고 했을 때 그 주체의 행위는 어른들에게 있는 거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영화의 인물 혹은 영화를 보는 사람과의 위계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새롬: 말씀하신 딜레마가 모든 청소년 영화에 있는 것 같아요. 재현하는 주체와 대상이 일치하기 매우 힘들잖아요. 이렇게 청소년관람불가로 등급이 나오면 그 간극이 더 벌어질 수밖에 없고, 사실 ‘청소년’이라는 집단도 하나로 묶이기 어려운 집단 같거든요. 그래서 그들의 젠더나 계급, 학교에서의 위치에 따라 감상이 다양할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불량 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보았을 때 어떨지 궁금하긴 한데, 저도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있다고 느끼지만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너무 어른의 시선 같다고 느낀 예시로 유빈 님도 롱보드를 말씀해 주셨었잖아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자유로움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판에 박힌 이미지로 쓰인 감이 없지 않아 있다”라고 하셨는데 저도 거기에는 동의해요. 롱보드 나오는 장면은 음악이나 화면연출이 달라지고 조명도 되게 환하잖아요. 롱보드만은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세진만의 무엇을 상징한다고 봤어요. 롱보드를 타는 활동에 대해서 주영, 재필, 신지, 다른 인물들과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롱보드는 굉장히 분리된 활동이에요. 세진에게 그런 것이 하나쯤은 있는 게 되게 다행스럽고, 완전히 무력해 보이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임유빈: 맞아요.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새롬 님에게 “제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데, 이런 장면들은 왜 그런 걸까요?”라고 여쭤보았었습니다. 그리고 새롬 님이 이 영화를 선택해 주신 이유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과 그 이유가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스틸컷

 

 

배새롬: 이 영화를 본 게 이번이 네다섯 번째쯤 되는데 오늘 보기 직전에 딱 머리에 남은 장면이 있어요. 세진이 은정의 사진을 보고 혼자만의 장례식을 치르는 듯한 순간이 있거든요. 은정의 사진을 핸드폰으로 띄우고 불상 옆에 둔 다음에 포스트잇에 이름을 써놓고 자기만의 의식을 치릅니다. 세진은 격하게 반응할 수도 있지만 보여주지도 않아요. 이런 걸로 짧지만 분명한 순간을 남기면서 은정을 상실한 게 슬프고 앞으로도 많이 기억에 남을 일이라는 점이 드러나서 되게 좋았고, 세정까지 다섯명이 밥을 먹는 장면이 아주 짧은데 아주 짧은 평화가 있어요. 세진이 입덧하기 전까지 다다미 쇼트로 찍힌 그 장면은 〈아무도 모른다〉(2004)도 생각났어요. 아이들끼리 잠깐 평화롭게 먹는 장면이 떠올랐고요. 마지막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롱보드가 앞으로 계속 가잖아요. 세진의 표정을 보면서 ‘앞으로도 삶이 남아 있는데 지금 어떤 기분이고 이제 어떻게 살까?’ 이런 부분에서 궁금해지는 장면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임유빈: 같이 밥 먹을 때 그 집만은 되게 안전한 집인 것 같아서 〈박화영〉과는 다르게 인물들이 안전한 영역에 있는 것 같고, 영화가 계속 보호를 해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느껴서 저도 그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몰라요〉가 임신중절수술에 관한 소재가 주를 이루는데요. 아까 관객분이 말씀해 주셨듯이 남성 감독인데 좀 섬세하다고 느꼈던 게, 요즘에는 ‘낙태’라는 말 자체를 많이 안 쓰려고 하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재필이 네이버에 검색할 때 낙태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게 아니라 되게 정직하게 ‘임신중절수술’이라고 검색하더라고요. 되게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고요. 2019년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이후에 2021년에 임신중절수술이 비범죄화되었고, 이에 대한 정식적인 입법은 아직 지지부진한 상황인데요. 〈어른들은 몰라요〉가 2021년 4월에 개봉했어요. 영화를 보면서 임신중절이 아무리 비범죄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청소년의 경우는 특히나 사각지대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진과 친구들이 계속 돈을 모으려고 하지만 돈을 벌려고 하면 할수록 돈이 모이지 않는 상황들이 일어나고요. 결말에서 종교(혹은 신)의 도움인지 세진이 그렇게 바라던 일이 그제야 성공하게 되는데요. 아까도 말씀해 주셨지만 〈박화영〉에서도 세진은 임신하는데 임신중절수술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자기 선택권을 가지게 된 세진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이 영화의 중심 이야기가 세진의 임신중절수술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부분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배새롬: 〈박화영〉의 세진은 임신하고 막 웃으면서 얘기하잖아요. 옆에서 담배 피우면 “나 임신했다. 그래서 몸에 안 좋다” 하면서 마치 지금 정말 아이를 낳으려는 건가 싶은 질문이 떠오르게 하죠. 〈어른들은 몰라요〉의 세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면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거거든요. 표현하는 대신 웃잖아요. 그리고 낙태도 중절도 아니고 “애를 뗀다”는 말을 계속해요. 조금은 상스럽고 잔인한 말을 씀으로써 오히려 방어 기제를 세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른들은 몰라요〉의 내러티브는 〈박화영〉의 세진에게 더 시간을 주고 자기에 대해 생각하게 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독은 “아직 낙태에 대해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놀랐거든요. 근데 아마 그 고민을 정직하게 담아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임유빈: 맞아요. 재필의 대사도 보면 교회에서 기도하라고 불법이 아닌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감독의 자의식도 반영이 되어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러면 저희가 또 질문을 받아보고자 하는데요. 조금 더 궁금하신 지점이나 소감에 대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스틸컷

 

 

관객: 엔딩이 결국 아이를 유산하는 것으로 끝나는데요. 만약 출산해서 입양을 보내는 결말이었다면 전체적인 감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배새롬: 인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세진이 피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없었을 거고요. 부부가 기본적인 선함이 있는 것 같거든요. 관객으로서는 선한 부부에게 아기가 잘 갔다는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을 보면서 외국 영화 하나가 떠올랐는데 〈주노〉(2007)예요. 10대 여성이 임신하고 한참 고민하다가 이웃 부부에게 입양 보내기로 합니다. 근데 주인공이 굉장히 주도적으로 결정을 하고 입양을 맡기려는 부부와 끈끈한 유대를 맺어요. 근데 이 영화에서 세진은 부부와 대화를 하나도 안 하잖아요. 그 부부에게 연결해 준 자원봉사자가 나오는 순간부터 세진은 말을 하나도 안 해요. 요가할 때 딱 한 번 되게 희미하게 들리는 것 말고 대답을 안 해서 정말 저 상황에서 편치 않고, 부부의 선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자기를 되게 수단화했다고 느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입양으로 끝났다면 입양되었다는 사실만큼이나 부부의 태도와 세진과의 관계가 어떻게 암시되느냐에 따라 의견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분의 질문이나 소감이 있으실까요? 

 

관객: 세정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어떻게 보면 세정은 세진의 미래일 수도 있는데 영화에서 보이는 모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와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전달하기도 해요. 그래서 감독이 어쩌면 세정에 대해서 하나의 작품을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되는데요. 세정의 이야기를 두 분께 듣고 싶습니다.  

 

배새롬: 저는 세정 캐릭터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언니를 함부로 단죄하지 않잖아요.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면서 굉장히 성숙하게 바라봅니다. 그 나이면 ‘언니는 왜 그래’하고 원망하거나 한심하게 볼 수도 있는데 그걸 넘어선 듯한 느낌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 오히려 세정은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한 것 같아요. 유빈 님은 세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고, 특히 세정은 나빠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렇게 나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있다는 점에서 슈퍼히어로물에 나오는 캐릭터 같다고 말씀해 주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임유빈: 이 영화에는 정말 끔찍하게 나쁜 인간은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중심에 세정이 있는 것 같고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나중에 세정의 작품이 나오면 좋겠는데 만약 그렇다면 또 세정이 나쁜 길로 빠져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지점에서는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정 캐릭터가 선하고 착하기만 하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다르게 수단화되었다는 느낌도 받게 됩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면요. 영화에서 종교의 사용도 인상적입니다. 하루 머무는 무당의 집에서 상섭이 불상에 오줌을 누기도 하고, 교회 헌금통을 타려고 새벽에 들어가기도 하고, 엔딩에서 교회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종교의 모순을 비추는 것 같기도 한데요. 세진이 은정을 위해서 기도할 때 유일하게 신의 힘이나 구원을 믿는 부분도 느껴지게 했는데 이런 사용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배새롬: 오히려 세진은 은정을 추모할 수 있는 게 그런 공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교회에서 세진은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미워해요?”라고 묻잖아요. 그 질문은 사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거든요. 말하자면 자기가 하나님을 미워하긴 하는데 그 이유는 신이나 질서가 자기를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나한테 왜 이러냐’라고 묻고 싶은 걸 주객전도해서 이야기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인상깊게 보았던 건 기독교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나온다는 거예요. 재필이 “신에게 기도해”라고 했을 때 사실 웃기잖아요. 그 말을 하기 전에 십자가가 엄청 많은 밤을 비추면서 한국에 얼마나 교회가 많은지를 보여주고요. 세진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말 것을 종용하는 교장실에도 십자가가 있고, 그걸 종용하는 선생님도 “하나님 앞에서 얘기해”라고 말하며 세진을 코너로 몰잖아요. 청소년 자원봉사자도 세진의 의사를 묻지 않고 갑자기 기도해 버리거든요. 그런 걸 보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 그러니까 자기가 선함을 매우 잘 수행하고 있고, 옳은 길을 가고 있고, 바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기독교’라는 종교나 개신교인이라는 구체적인 집단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사회에서 상식으로 다수의 동의를 받는 것을 잘 지키고 있다는 사람들이 사실은 무심하고 폭력적이라는 것을, 기독교를 통해 이야기해 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임유빈: 감사합니다. 가출 청소년이나 비행 청소년이 나오는 영화를 이야기했을 때 저희가 장선우 감독님의 〈나쁜 영화〉(1997)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최근 인디스페이스의 또 다른 기획전인 [벽을 해킹하기]에서 극장 상영을 하기도 했었죠. 꽤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에 많은 팬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새롬 님도 저희가 처음 만난 날 “사실 좀 〈나쁜 영화〉를 틀고 싶다”라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는데요. 독립영화에서 청소년이 주요 소재이기도 하고, 어떤 소속이나 집단, 사회로부터의 억압이나 방치 같은 부분에서 좀 대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이 사용되는 방식이 관계, 자유, 세대 갈등, 혹은 어떤 노스탤지어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어른들은 몰라요〉와 함께 또 많이 이야기되는 영화가 〈꿈의 제인〉도 있고요. 이런 맥락에서 이환 감독의 영화가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어떻게 위치 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배새롬: 확실히 한국의 어떤 특정한 특징을 가진 청소년들이 독립영화에서 재현되는 패턴이 있기는 한 것 같아요. 〈나쁜 영화〉에서도 찾을 수 있죠. 근데 1990년대는 차이가 있다면 메인스트림 미디어에서도 흔히 말하는 불량 청소년이나 집을 나온 가출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있었던 것 같아요. 시리즈 드라마 《학교》(1999~2022)도 있었고 그 드라마에 앙상블 캐스트가 많았는데 청소년이 굉장히 다양했고요. 그래봤자 공중파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을 정도로만 보여줬지만 어쨌든 되게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건 보여줬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2010년대부터는 정말 독립영화 말고는 메인스트림에서 청소년들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어진 것 같아요. 만약에 찾는다면 뭐 《상속자들》(2013)처럼 어떤 측면을 굉장히 과장해서 청소년들의 삶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의 오락을 위한 드라마 정도의 청소년 재현이 많아졌고요. 독립영화에서 많아졌다는 건 사실은 그만큼 메인스트림에서 무심하다는 얘기 같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그런 1군의 독립영화에 관해서 어제 기획전 토크에서도 유빈 님이 말씀해 주셨던 글이 하나 있어요. 최근에 씨네21에서 나온 글인데 ‘KAFA 영화스러움’에 관한 기사입니다. KAFA(한국영화아카데미)는 많은 감독을 길러낸 기관이고, 그 감독들이 만든 영화에 청소년이 많이 나오는데 조금 암울한 이야기가 많죠. 요지는 결국 KAFA 영화가 어떤 일정한 경향성을 갖는다는 거였어요. 그 경향성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그리면서도 그 아이들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에 있고, 잘 잘할 거라는 안심을 주는 봉합을 하면서 끝난다는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환 감독의 영화들은 2010-2020년대 한국 독립영화적인 부분이 크면서도 그 안에서 구분되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쉽게 낙관하기 어렵잖아요. 세진이 성장했다거나 잘 살 것이라고 결론 내리기도 어렵고, 어려운 상황에 인물을 몰아넣고 쉽게 꺼내주지 않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끝까지 간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라 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임유빈: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저희 이제 토크를 마무리해 보려고 하는데요. 마지막 인사 또는 소감을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배새롬: 와주신 분들께서 질문도 많이 주셔서 저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영화가 좋으셨다면 주변에 〈어른들은 몰라요〉를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저희가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로 대화를 나누고 글로 남겨서 인터넷에 게시도 해두었습니다. 그것도 보신다면 최근의 영화계나 OTT, 다른 매체에 관해서 얘기를 나눈 것이니까 또 좋은 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