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소소대담] 2024. 11 첫눈과 함께
[인디즈 소소대담] 2024. 11 첫눈과 함께
*소소대담: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의 정기 모임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기록입니다.
참석자: 봄, 여름, 가을, 겨울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다. 소복이 쌓인 눈 사이로 걸었고, 흩날리는 눈을 우산 없이 반겼다. 그 길을 건너 저마다의 영화 이야기를 들고 우리는 오랜만에 테이블에 앉았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가져왔던 영화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이야기에는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쌓여간다. 영화가 불러일으킨 저마다의 세계가 쌓여 우리는 그 영화를 다시 보고, 다시 기록한다. 그렇게 우리는 눈 앞에 펼쳐진 완연한 겨울에 서서 올 한 해의 독립영화를 다시 펼쳐보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의 우연한 인사를 기대했다.
*개봉작 단상들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리뷰]: 소녀는 따로 자란다(김한들)
[단평]: 세상이 달라졌던, 처음(안소정)
[뉴스레터]: Q. 😘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우.천.사> (2024.10.30)
가을: 이 영화가 퀴어영화이고 배경이 1999년이라는 것까지 알고 다른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영화를 보러 갔어요. 초반부터 되게 폭력적인 장면이 계속 나오는 것이 힘들었어요. 코치 캐릭터는 그냥 완전한 악인이라 관객에게 반감을 사게 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그런 점이 몰입이 안 되더라고요. 세상의 모든 악을 뭉쳐놓은 것 같은, 입체감이 없는 캐릭터 하나가 이 영화의 모든 나쁜 면을 다 담당해 주는 그런 느낌이라서요.
겨울: 저도 너무 폭력적이라고 느꼈어요. 후반부에 갈수록 심해지잖아요. 영화는 긴장감을 조성하려 하는데, 오히려 거부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극중에서 이유미 배우가 부르는 ‘애인발견’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웃음)
여름: ‘세기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계속 이렇게 비슷하게만 쓰이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워요. 제가 세기말을 겪어본 적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시대가 어땠는지가 궁금해요. 당장 내일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기분이 어떠했길래 세기말을 다룬 영화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보이는 걸까 궁금해요.
가을: 저도 90년대가 정확히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가 90년대를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야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어요. 약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느낌을 받았어요.
〈공작새〉
[리뷰]: 엉겨 붙은 눈길 사이로(김예송)
[단평]: 아득히 먼 존재에게 다가서기(이지원)
[인디토크]: 울지 말고 웃어(김한들)
[뉴스레터]: Q. 💃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다? <공작새> (2024.11.13)
겨울: 재작년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봤었는데 영화가 화려하고 강렬해서 너무 좋았어요. 불이 활활 타오르는 장면도 인상 깊고요. 배우가 주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느껴졌던 영화이기도 해요.
가을: 저는 인디스페이스에서 혼자 봤는데 혼자 봐서 차라리 좋았어요. 신나는 장면이 많잖아요. 음악도 그렇고, 신난다는 느낌을 내내 가지고 영화를 봤어요. 왁킹댄스와 농악의 조합이 신선했어요. 나나영롱킴도 나오고 예전에 무속 관련된 책을 읽다가 알게 된 트랜스젠더 무속인분도 카메오처럼 출연을 하시더라고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어요. 고모부가 완고한 빌런 같은 캐릭터로 느껴졌었는데 한순간에 화해를 하는 장면에서는 흐름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점은 있었어요.
여름: 저도 왁킹이랑 굿을 연결 짓는 게 좋았는데, 캐릭터나 서사의 설명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우기'가 '신명'에게 유산이 있으니까 굿을 해달라고 한 게 거짓말로 들통나잖아요. 그런데 왜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부탁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설명이 조금 아쉬웠어요.
〈럭키, 아파트〉
[리뷰]: 닿지 못한 곳에 스며드는 냄새(안소정)
[단평]: 우리를 닮은 집(김예송)
[뉴스레터]: Q. 👭 오래오래 살 수 있을까? <럭키, 아파트> (2024.11.20)
여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부터 이야기가 많이 되었던 작품이잖아요. 저도 기대를 하고 봤어요. 퀴어 커플에 대한 보이지 않는 편견이나 시선들을 보이지 않는 냄새로 엮어낸 게 좋았어요. 이 영화를 보고 다른 네이버 기사를 봤는데 〈럭키 아파트〉 단톡방처럼 어떤 퀴어 뉴스에 사람들이 댓글로 다 혐오 발언 같은 걸 적어놓은 거예요. 마음이 아팠어요.
가을: 강유가람 감독님 인터뷰를 보니까 영화에 등장한 단톡방 발언들이 굉장히 순화를 해서 실은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냄새가 그 아파트 내에 퀴어를 향한, 보이지 않지만 공고하게 존재하는 혐오를 말해주는 것과 동시에 사실 그 냄새의 근원지가 퀴어 당사자라는 게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어요. 그 모호한 지점이 되게 좋았어요.
여름: 선우가 흔적을 파내면서 희서랑 사이가 안 좋아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선우가 그렇게까지 꼭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할머니도 사실 퀴어 당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선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가을: 갑자기 희서의 어머니가 두 사람이 사는 집에 찾아오는데 그때 스티커 사진도 재빨리 떼고, 침대가 하나니까 어머니가 “너네 둘이 같이 자니?” 이렇게 물으면, 한 명은 방바닥에서 잔다고 대답하는 그런 장면을 보고 나니까 왜 선우가 이렇게까지 나서는지 알겠더라고요. 가족들한테도 인정을 못 받고 법적으로도 인정되지 않는 관계이니까 아랫집 할머니와 자기를 동일시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했어요.
〈최소한의 선의〉
[리뷰]: '최소한의 선의'가 만든 낙관의 자리(이지원)
[단평]: 어른에 관하여(김지윤)
[인디토크]: 바라본다는 것은(김윤정)
[뉴스레터]: Q. ❄️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나요? <최소한의 선의> (2024.11.27)
겨울: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지점들이 좋았어요. 영화를 나누자면 여러 챕터가 있어요. 그 챕터들이 모두 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더라고요. 임신한 학생,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라는 관계 사이에서 서로의 입장 차이도 보이고 갈등도 하고 구원해 주기도 하는 순간들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과 엮이면서 계속 변화하는 인물들이 보였어요.
〈미망〉
[인디토크]: 돌고 돌아 다시 만나,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안소정)
가을: 일상적인 대화를 툭툭 서로 던지는데 그 안에 굉장히 많은 게 숨어 있었어요. 단편에서 시작을 하고, 이야기 두 개를 더 덧붙여서 1부, 2부, 3부 이렇게 나누어진 영화인데, 이 사이사이에 시간이 계속 흘러 있는 상태라 인물들이 각자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속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흥미로웠어요. GV를 갔었는데, 감독님의 톤이 영화의 톤과 비슷하더라고요. 배우 분들이 그 현장을 즐기신 것 같았어요. 백승진 배우님이 말씀하시기로 이 현장에서 자신이 되게 안전하다고 느꼈고, 그 현장에서 있는 게 너무 즐거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배우분들도 똑같이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영화를 보고 귀가하는 버스에서 영화 속에 나왔던 장기하 노래를 들으면서 갔는데, 영화의 연장선 같더라고요.
*올해의 독립영화
가을: 저는 〈여행자의 필요〉, 〈잠자리 구하기〉, 〈절해고도〉, 〈미망〉을 재밌게 봤어요. 〈미망〉을 보고 며칠 뒤에 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그러다 보니까 영화랑 연결이 되더라고요. 〈열개의 우물〉과 〈미망〉 이렇게 두 개를 볼 때, 되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웃었던 기억이 나요.
봄: 저는 홍민키 감독의 〈낙원〉이 좋았어요. 주제도 주제인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귀여웠어요. 말하는 사람에게 공감하고,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애니메이션이 되게 좋은 장치였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애니메이션의 방식 덕분에 영화가 알려주는 내용을 학습하게 되는 과정이 부드럽게 연결된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본 〈담요를 입은 사람〉도 무척 좋았어요.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과정에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편견들이 깨진 영화였어요.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영화였어요. 11월 인디돌잔치 때, 〈느티나무 아래〉라는 농부가 주인공인 영화여서 그 농부님이 오셔서 GV를 했거든요. “아무것도 없는 젊은 청년인데 귀농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질문을 하셨어요. 어떤 방법이 있을지, 어떤 마음을 먹고 가야 하는지 그런 취지로 여쭤보셨는데 농부님이 “다 필요 없고 그냥 서울 살기 힘드시면 내려오십시오.”라고 답하셨어요. 거기서 돈이 없어도 내가 뿌린 씨앗으로 물 주고 거기서 뭘 따먹어 보면 돈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면서요. 머리가 띵하더라고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순간이동'이라는 VR 전시를 하고 있어요. 거기서 봤던 김진아 감독의 〈동두천〉도 좋았어요. VR기기를 쓰고 작품을 관람하는데, 상하좌우 모든 화면이 스크린이라 굉장히 더 공포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소요산〉이랑 〈아메리칸 타운〉 모두 이 전시 가시면 체험하실 수 있어요.
겨울: 저는 〈이어지는 땅〉을 요즘 다시 생각하고 있었어요.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인 것 같아요. 과거의 기억을 갖고 계속 누군가를 쫓아가는데, 거기에 캠코더라는 사물이 존재하는 그 구조가 좋더라고요. 외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과거로 엮인 인물들이 서로 얽히면서 익숙함이 스크린 밖으로 전해지는 것도 좋았어요.
여름: 저도 〈이어지는 땅〉이 좋았어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봤는데, 두 작품에서 꽤 많은 인물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 인물들이 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은 모르지만, 교차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 게 좋더라고요. 그 사람들의 상황과 관계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우리는 다 아는데, 그 사람들은 서로 모른 채 계속 한 공간에서 서로를 비껴가는 지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저는 〈딸에 대하여〉가 좋았어요.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도 보고, 썸머프라이드시네마로도 보고 여러 번 봤었는데, 그때마다 감독님께서 작품을 대하는 신념이 너무 좋았어요. 아무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하시는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어요.
겨울: 저도 〈딸에 대하여〉 너무 좋았어요. 볼 때마다 너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드는 영화 같아요. 딸, 그린이 있고 딸의 애인, 레인이 있는데, 엄마와 딸이 영화 내내 보여지는 게 아니라 후반부에는 레인과 엄마의 관계를 보여주잖아요. 저 역시 그 관계에 더 집중하면서 보게 되었는데, 그 관계가 꼭 타인으로 여겼던 사람을 더 이상 타인으로 여기지 않고, 애정을 주고 관심을 주는 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수유천〉도 좋았어요. 혼자 처음 봤었고, 두 번째는 친구들이랑 같이 봤는데, 웃긴 장면에서 함께 웃고, 탄식이 나오는 장면에서 같이 탄식하며 보니까 역시, 극장에서 다 같이 모여 보는 영화가 좋구나 하며 생각했어요. 그 영화가 주는 에너지도 더 커지는 것 같고요. 조금씩 웃으면서 극장 분위기를 한두 명이 편하게 만드니까 다른 분들도 웃긴 장면에 함께 웃으며 영화를 봤던 기억에 참 오래 남아요.
가을: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옥순의 조각〉이라는 단편을 봤었는데, 거기서 일제강점기를 지나오신 할머니의 얘기가 나오는데, 영화 속에서 트로트 노래를 부르시면서 신나하시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관객 중에 할머님 할아버님이 계셨는데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시면서 분위기가 순간 훈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이렇게 영화관에서 뭔가 조용히 하고 봐야 되는 것보다는 영화에 대한 반응이라면 이렇게 같이 노래 부르는 것도 재밌다고 생각했던 그런 경험이 있어요.